52
공업화학 전망, 제21권 제5호, 2018장자, 영원한 자유인
❙이 상 은 교수 (상지대학교)
장자(莊子, BC.369-286)는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도가사상(道家思想)을 완성한 인물이 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의하자면, 장자는 몽인(蒙人)으로 이름은 주(周)라고 불렀다. 그는 몽 (蒙)의 칠원(漆園)에서 작은 벼슬을 한 적이 있으며,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동시대인이다. 그렇다면 맹자(孟子, BC.371?-289?)와도 동시대 인물일 터인데, 맹자와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의 학문은 살피지 않 은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장자의 기본사상은 노자의 설에 귀착했다. 그의 저서는 10여 만자나 되는 방대한 양인데, 대체로 우화(寓話)를 많이 썼다. 자신의 철학을 문학적 방법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몽(蒙)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과 하남성(河南省)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인데, 장자는 여기서 은둔생활을 하 였으나, 그의 사상은 널리 소문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장자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재상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사자(使者)를 보냈지만, 그는 더러운 도랑에서 자유를 즐길지언정 위정자의 굴레에 매이기는 싫다며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의 근본적인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장자(莊子)≫라는 책은 ≪남화경(南華經)≫이라고도 하는데, 크게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으로 되 어 있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아 외편과 잡편은 대부분 장자의 저술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이 그의 사상체계를 이 어받아 완성시킨 것으로 본다. 내편의 <소요유(逍遙遊)>와 <제물론(齊物論)>편만은 확실히 장자의 친작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판본의 ≪장자≫는 아마도 AD.3세기경 위진(魏晉)시대의 주석가인 곽상(郭象)이 편집한 것 같다.
장자의 철학은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도(道)와 덕(德)에 대한 기본 입장은 같지만, 성격상 많은 차이 를 보인다. 장자는 <천지편(天地篇)>에서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무(無)가 있었다. 무는 존재[有]도 없고, 이름 [名]도 없다. 그것으로부터 하나[一]가 생겼고, 하나는 있었지만 아직 형체는 없었다. 만물이 그것을 얻어서 생 겨나는 것이 덕(德)이다.”(泰初有無 無有無名 一之所起 有一而未形 物得而生謂之德) 장자는 천지만물의 생성의 총원리(總原理)를 도(道)라 일컫고, 사물의 생성원리를 덕(德)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대체로 노자의 도와 덕에 관한 개념과 일치한다.
지난 호에 이미 노자의 도(道)는 우주적 본체(本體)로서 일원론(一元論)적이며,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파생되 어 나오는 유출론(流出論)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결국 노자의 도는 원심(遠心)에서 구심(求心)으로 집약되고 수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와 같은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자의 도(道)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변화의 흐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를 도편재설(道偏在說)이 라고 하는데, 만물생성의 총원리인 ‘도(道)’는 어디에든 존재한다(道無所不在)고 보는 것이다. 장자는 <지북유 (知北遊)>편에서 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동곽자(東郭子)의 질문에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無所不 在).”고 답한다. 예를 들어 지적해 달라고 하자, 장자는 개미, 강아지풀이나 피, 기와나 벽돌 심지어는 오줌이 나 똥에도 있다고 말한다. 동곽자가 기가 막혀 아무 말 못하자, 장자는 그대의 질문은 애초부터 도의 본질에
인문학칼럼
http://www.ksiec.or.kr
KIC News, Volume 21, No. 5, 2018
KIC News, Volume 21, No. 5, 2018
53
미치지 못했으며, 도를 꼭 어디에 있는 것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는 사실 상 개별 사물을 떠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극한 도란 그런 것이고, 위대한 이론도 그렇습니다. 포괄성(周), 편 재성(遍), 총체성(咸) 이 셋은 이름은 다르나 실상은 같은 즉, 그 가리키는 바는 동일한 것입니다.(汝唯莫必 無 乎逃物 至道若是 大言亦然 周遍咸三者 異名同實 其指一也)”이와 같은 관점은 마치 “신은 자연이요, 자연은 신이다.”라고 하여 신(神)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하는 스 피노자(Spinoza)의 범신론(汎神論) 철학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이름엔 노자가 들어있지만, 그의 사상은 오히려 장자에 가깝다. 스피장자라고 했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요컨대 장자의 도(道)는 만 물에 편재된 변화의 흐름 그 자체이며, 구심(求心)에서 원심(遠心)으로 발휘하여, 근원적인 무(無)로부터 광막 한 허(虛)의 세계로 확산함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본체론에서는 천지만물은 차별과 시비(是非)와 진위(眞僞)와 미추(美醜)가 없다는 만물일체관(萬物一 體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제물론(齊物論)>편에서 장자는 “천지는 나와 함께 생긴 것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天地與我 竝生而萬物與我爲)”고 하였으며, 또 같은 편에서 “저것은 이것에서 생기고, 이것 은 저것에서 생긴다(彼生於是 是亦因彼)”고 하여, 만물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말하고 나아가 만물평등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노자의 철학을 ‘제왕(帝王)의 학’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듯이 노자는 국가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 으며,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강조하였다. 노자는 “남보다 먼저 하지는 않지 만 남의 뒤에 하지 않는다(不爲人先 不爲人後)”는 적극적인 처세태도를 가지고 응세치술(應世治術) 즉, 세상에 응하여 다스리는 기술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장자는 소극적이며 진정한 피세자로 현실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 에게는 국가의 존재나 정부의 개념이 없다. 일종의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자는 기계의 문제점에 대해 의미 있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 당시 기계래야 도르래 정도를 사용하는 두레 박 같은 것이겠지만, 기계의 폐해에 대한 앞선 인식과 경고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경청할 만하다. 오늘날 같 은 과학기술문명시대에 기계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고귀한 인간주체를 소외시키거나 인간성 을 말살하는 방향으로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발전은 아닐 것이다.
“내가 나의 스승에게 들었는데, 기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를 쓰는 일이 생기고, 기계를 쓰게 되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수함과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수함과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삶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삶이 불안정한 사 람에게는 도(道)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기계의 편리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서 쓰지 않는 것입니다.”(吾聞之吾師曰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則純白不備 純白不 備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장자≫ 천지편)
이밖에도 노자와 장자 사상이 구별되는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노자는 무(無)를 유(有)의 모태로 생각(有生 於無)하여 유(有)를 승인하는 입장이지만, 장자는 근본적으로 유(有)의 존재성을 의심한다. 노자는 보신(保身), 순인(順人)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장자에게는 호접몽(胡蝶夢)에서 보이듯이 보신, 순인의 대상이 사라졌다.
노자사상의 본령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무(無)로 집약된다면,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은 자유분방하고, 문학적 이며, 개방적이고, 무(無)에서 진일보하여 광막한 허(虛)의 세계를 소요(逍遙)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자는 무지무욕(無知無欲)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무지를 알고, 무욕을 욕구하는(知無知 欲無欲)”하는 적극 적 주장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장자는 사회적 속박을 초탈하여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고자 한다. 그 에게는 세계질서에 앞서 자신의 해탈이 근본문제였던 것이다.
장자에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장자는 행복을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으로 나누어 본 것 같다. 타고 난 본성을 구김살 없이 펼쳐감으로써 우리는 상대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유한한 관점을 탈피하여 사물의 본성을 좀 더 깊이 통찰해야 한다.
우리가 타고난 본성을 구김살 없이 펼쳐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그리고 자유로이 발휘
http://www.ksiec.or.kr
54
공업화학 전망, 제21권 제5호, 2018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타고난 능력이 덕(德)이요, 이것은 모두 도(道)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본성 의 자연스런 계발과 능력의 자유로운 발휘를 위해서 장자는 자연적인 것(天)과 인위적인 것(人)을 대비하여 설 명한다.
“자연적인 것은 안에 있고, 인위적인 것은 밖에 있다. 그러면 무엇을 자연적인 것이라고 하고 무엇을 인위적 인 것이라고 하는가? 소와 말은 네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며, 말 머리에 멍에를 얹고 소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하는 것은 인위적이다.”(天在內 人在外... 何謂天 何謂人... 曰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 穿 牛鼻 是謂人)(≪장자≫<추수편(秋水篇)>)
만물은 제가기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타고난 능력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각자가 타고난 능력을 충 분히 또 자유롭게 발휘하면 모두가 균등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요유(逍遙遊)>편에 언급된 9만 리 상공을 나는 큰 새와 나뭇가지사이를 겨우 날아다니는 작은 새는 능력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 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둘 다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본성 속에는 절대적인 획일성이 없고, 또 그러한 획일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다음 이야기는 이를 잘 얘기해 주고 있다.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이어주면 걱정거리가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끊어주면 슬픈 일이다. 그 러므로 본성이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고, 본성이 짧은 것은 이어서는 안 된다.”(是故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 雖長 斷之則悲 故性長非所斷 性短非所續 無所去憂也(≪장자≫<변무편(騈拇篇)>)
절대적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상대적이고 유한한 관점을 넘어 도의 근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원의 중심과 같은 도의 핵심을 도추(道樞)라고 한다. 장자는 그런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심재(心齋)와 좌망(坐 忘)의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재(心齋)란 무엇인가?
“안회가 말했다. 감히 여쭙겠는데, 심재(心齋)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 뜻을 하나로 하여, 귀 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의미 없는 소리를 듣는데 그치고, 마음은 외부의 기호를 구별하는 데 그친다. 기(氣)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사물에 반응하는 것이다. 도(道)는 비어있는 곳에 모인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심재(心齋)이다.”(回曰 敢問心齋 仲尼曰 若一志 无聽之以耳 而聽之 以心 无聽之以心 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虚而待物者也 唯道集虚 虚者 心齋也(≪莊子≫ 人間世) 여기서 장자는 안회와 공자의 대화를 통해 실은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을 분별하고 분석하려 는 분별지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사물에 반응하라는 것이며, 마음을 비우는 것이 바로 심재(心齋)라고 말한다.
좌망(坐忘)이란 무엇인가? 장자는 역시 안회와 공자이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얘기를 한다. “공자가 낯빛을 바꾸며 물었다. 좌망이란 무엇인가? 안회가 대답한다. 사지의 존재를 잊고, 정신의 총명함을 버려고, 육체를 벗어나고 지식을 폐기하여 대통에 합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 좌망입니다.”(仲尼蹴然曰 何謂坐忘 顏回曰 墮肢体 黜聪明 離形去知 同于大通 此謂坐忘)(≪장자≫大宗師)
여기서 장자는 익살스럽게 유가의 대표적 인물인 공자의 제자인 안회를 내세워, 인위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공자의 인의예악(仁⋅義⋅禮⋅樂)을 넘어 자연적인 질서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좌망(坐忘)을 제시하고 있다. 좌 망이란 결국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판단의식을 중지하는 행위이다. 밖으로 선악과 시비 판단을 중지하면 의 식과 감각은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길이 열린다. 세속적 시비를 멀리 떠나 무심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을 장자는 소요(逍遙)라고 한다. 즉, 자유롭게 거닐면서 노니는 삶을 추구하 는 것이다.
장자는 노자가 욕심을 버리고(無欲) 만족할 줄 알고(知足), 인위를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아야(無爲自然) 한다 고 주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연을 본받고 참된 것을 귀하게 여기되(法天貴眞),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거나 구 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장자는 후세 도가사상의 흐름의 원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문 학과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무엇인가도 모르는 것을 쫓아 스스로에게 강제노역을 부과하고, 고민과 과로에 시달려 삶의 향기를 잃은 피로사회에 장자의 외침은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청량감을 준다. 장자 는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