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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초현실주의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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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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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필*

1)

Ⅰ. 서론

Ⅱ. 초현실주의의 이상과 카메라의 시각적 무의식

Ⅲ. 디지털 기술과 초현실주의 미학의 동시대적 확장 1. 간극과 여백의 패러독스

2. 사진적 충격과 승화/탈승화 3. 부재의 풍경그리기

Ⅳ. 기술을 통한 초현실주의적 갈망

Ⅴ. 에필로그

Ⅰ. 서론

사진 기술이 가지고 온 다양한 인간 삶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 인식의 변

* 홍익대학교 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7년 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이며, 2017학년도 홍익대학교 학술연구진흥비에 의하여 지원되 었음.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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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논한 수잔 손택 (Susan Sontag)은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덕택에 이 세계를 한 다발의 잠재적인 사진으로 보려는 사고방식”1)이 널리 퍼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손택에 의하면 사진이 실재하지 않는 과거의 “상상적 소유”2)를 가능하게 하였다면, 우리는 그 한 장 한 장의 세계의 그림자의 단편들을 눈으로만 보고서 도 마치 세계를 다 경험했고 이해하는 듯 착각에 빠진다.

손택이 관찰한 아날로그 사진이 가져온 세계인식의 변화는, 198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이 사진에 유입되기 시작하고 2000년을 전후로 사진의 촬영과 편집, 인쇄에 지배적으로 활용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감각적 인식체계를 시험하는 새로운 이미지들의 세계 를 열었고 우리가 명확히 규정하고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각 이미지의 기준 과 정의와 범주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디지털 이미지의 범람은 무엇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이 두 범주가 우리의 인식과 관련하여 도대체 뚜렷이 구별할 수 있 는 것인지 조차 혼동되는 상황을 초래했다.3)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4)의 사진은 실재하지 않는 현재를 상상적으로 소유

1) 수전 손택, 「플라톤의 동굴에서」,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출판사, 2005), p.

23.

2)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p. 26.

3) 나의 한 학생은 본인이 지난 수년간 여행을 많이 다녔고 많은 것을 느꼈는데, 여행을 하며 본 풍경과 경험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학생의 작품은 묘한 환상 속 풍경 같아 보였다. 학생의 작업에 대한 많은 질문이 오간 후에야 나는 학생이 말한

‘여행’이 게임을 통한 온라인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라인을 통한 여행이라 는 의미라면 작품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그 학생에겐 그것은 중요 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에게 온라인 여행은 실제 여행과 같으며 온라인 여행을 통한 경험은 그 학생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인 것이다.

4)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the post-photographic age)는 간단히 말해 디지털 기술이 사 용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이 용어는 미첼(William J. Mitchell)이 그의 저서 The Reconfigured Eye에서 사용한 부제로, 이미지의 디지털화 이후의 시대를 의미한다.

미첼의 저서는 디지털 이미지 조작과 합성 기술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온 변화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정확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 미술사와 사진사에서 리얼리즘 논쟁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부족,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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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정밀한 이미지 구축 기술과 편집 프로그램 덕분에 그 상상을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보이게 시각화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차 를 지워내 영원히 현재화하기도 한다. 손택에게 카메라는 사용할수록 중독되는

“환상-기계”5)였다면,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했듯이 디지털시대의 사진적 장치와 그 시스템은 환상적 이미지의 제작뿐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인터넷 유통 체계 내에서 그러한 이미지들이 자동적 변형 및 조합, 재생산을 통해 증식 하는 환경을 양산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함께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도래 를 진단한 미첼(William J. Mitchell)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사진을 “상 상과 실재, 그리고 비극적인 도피와 데카르트적 꿈 사이에서, 우리의 존재론적인 분별력이 뿌리깊이 허약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직면해야만 한다”고 했다.6)

이처럼 포스트포토그래피가 단순하게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 의 사진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진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재고하고 해체할 것을 요 구한다면,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두드러진 양상인 ‘리얼리티에 기반을 둔 환상 이미지’에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미학의 재고는 우리시대의 의미 있는 과제이다.

동시대의 많은 사진가들이 디지털 이미지와 편집으로 실재하지 않지만 실제처럼 보이는 창작된 실재(created reality)를 제작한다. 이들의 사진은 미술관, 비평, 옥 션 등 미술제도에서 활발하게 전시되고 수용되고 있다. 나는 본고에서 디지털 기 술이 초래한 인간인식의 확장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동시대의 디지털 사진 과 그 수용,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가져온 미학적 징후를 분석하고자 한다.

동시대 디지털 기술은 사실적으로 보이는 환상이미지의 창작을 용이하게 함 으로써 현실을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초현실주의적 욕망의 표출을 촉진한다. 디

리고 스트레이트 사진을 정상적인 사진으로, 몽타주 전통을 비주류로 놓은 점, 디지털 과 아날로그의 단편적인 구분 등, 현재까지도 사진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반론의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매노비치(Lev Manovich)를 비롯한 많은 이론가들 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5)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p. 34.

6) William J. Mitchell, The Reconfigured Eye: Visual Truth in the Post-Photographic Era (MA: MIT Press, 1992), p.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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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털 이미지 제작과 편집 기술, 그리고 이미지 유통시스템 때문에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는 우리시대에 만연한 현상이다. 나는 원본과 모방, 현실과 가상, 실재와 비 실재, 현실과 초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배회하는 새로운 사회풍경과 토 폴로지(topology)7)를 드러내는 동시대 시각 이미지들을 역사적 초현실주의 미학 의 계승과 변형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현실과 가상에 대한 동시대 담론을 통해 해석할 것이다. 나는 동시대 미술에 팽배한 이와 같은 탈-매체적8) 초현실주의적 풍경 그리기 현상을 초현실주의의 간극의 미학의 재고를 통해, 그리고 사진적 충 격과 승화, 부재의 풍경 그리기를 통해 분석할 것이다.

본고의 논의에 깔려있는 하나의 줄기는 예술과 기술의 상호연관성이다. 기 술이 몰고 올 인간 삶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정치적 변혁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공명하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의 텍스트들이 예견했다. 벤야민에 이어 2003년 W. J. T. 미첼(William John Thomas Mitchell)은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에서 “바이오사이버네틱 복제 (biocybernetic reproduction) 시대”로의 전환을 천명했다.9)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

7) 수학에서 토폴로지는 일반적인 공간이론으로 구축되었으나 이후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이 공간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디지털테크놀로지의 팽배로 인해 마치 뫼비 우스의 띠처럼 원본과 모방, 실재와 비실재 등의 정확한 경계를 인지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현상의 시각화를 동시대의 새로운 토폴로지로 본다. 미술 분야에서 수학적 토폴로지의 동시대적 확장에 대해서는 http://www.tate.org.uk/whats -on/tate-modern/topology 참조.

8) 여기에서 ‘탈-매체적’이라는 것은 광범위한 의미에서 한 가지 매체적 성격과 방법으로 만 제작되지 않은 사진을 말한다. 예를 들면 제프 월의 사진[도 5]은 문학 텍스트, 시 네마적 세팅, 그리고 사진(디지털 수정 포함) 등 세 가지 매체의 성격과 방법을 혼용 한 결과물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포스트미디움 상황(post-medium condition)”을 피력했으나, 본고의 탈-매체는 크라우스 이론의 반-그린버그적 맥락, 구-기술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는 미분화된 특수성(differential-specificity)과는 맥을 달리한다.

9) W. J. T. Mitchell, “Art in the Age of Biocybernetic Reproduction”, Modernism/modernity 10. 3 (2003), p. 486. 미첼은 사진, 시네마, 어셈블리 라인과 같 은 산업 공정 등이 모더니즘 시대를 지배했다면, 우리 시대는 초-고속 컴퓨터 사용, 비디오, 디지털 이미지제작, 가상현실, 인터넷, 유전공학의 산업화와 같은 바이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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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신체 감각과 인식능력으로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하기 힘들다.

이처럼 스스로 한계를 가진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기술의 보조를 통해 구현되어 왔다. 카메라와 디지털 기술의 발명은 인간 욕망의 발현을 극대화시킨 이미지 생산의 두 전환점을 이룬다. 나는 본고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 용하는 동시대 미술에서 드러나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갈망을, 주어진 실재와 현 존재(Dasein) 사이에 내재하는 모순을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전복적 환타지와 가상현실 세계로 경도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욕망으로 볼 것이다.

Ⅱ. 초현실주의의 이상과 카메라의 시각적 무의식

벤야민은 카메라의 발명과 함께 도래한 인간인식의 변화를 일찍이 통찰했 다. 그는 카메라가 대상과 똑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고 카메라의 렌즈는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데, 확대나 고속 촬 영술의 경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의 시각이 미치지 못하는 이미지를 포착한다는 점에 주목했다.10) 벤야민에 의하면 육안으로 보는 것과 다른 성질을 가진 이 기계 이미지는 오로지 기계적 결과물은 아니다. 이들 이미지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에 무의식이 개입한 결과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추락과 상승, 중단과 분리, 연장과 단축, 확대와 축소-등을 통해 개입한다.11) 이를 통해 벤야민은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충동의 무의식 세 계를 알려준 것처럼, 카메라가 시각적 무의식 세계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

버네틱 복제가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10)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 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16), p. 104. 그는 그러한 의미에서 카메라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이는 인덱스 이론에 대한 때 이른 도 전이자 매우 앞선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적 시각이기도 하다.

11)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p. 19. 손택은 사진은 축소, 확대, 수정, 제거, 개작, 조작 을 통해서 이 세상의 크기를 마음대로 갖고 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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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한다.12) 그의 이러한 관찰은 자연스럽게 초현실주의와 다다에 대한 통찰에 이르는데, 벤야민은 “예술작품은 미래에 대한 반향들로 전율하고 있는 한에서만 가치를 갖는다”고 한 앙드레 브르통의 말을 인용하며 “예로부터 예술의 가장 중 요한 과제 중 하나는, 아직 충족되기에는 때 이른 어떤 수요를 창출해내는 일”이 라고 한다.13) 벤야민에게 있어 이는 물론 기술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벤야 민은 기술은 일정한 예술형식을 향해 발전해간다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예술형식 이 위기를 맞았을 때, 예술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 돌 파구를 찾는다. 벤야민은 위기의 시기에 “괴상하고 조야한 형식”의 예술이 생겨나 는데, 이는 “실제로 그 시기의 가장 풍부한 역사적 에너지의 중심부에서 나온다”

고 하였다.14)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이성이 중심이 되어온 세계의 무력한 파괴를 목 도한 반향으로 나타난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현실을 넘어서 무의식과 비이성, 꿈 의 세계를 추구했다. 무정부적 아방가르드로서 브르통이 선도하여 주창한 초현실 주의는 기존의 가치를 전격적으로 공격하고 전복하여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다다 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브르통은 자동기술법이 사회변혁에 더 나은 전략 이라고 생각하고, 다다가 취한 파괴와 전복의 전략과는 다른 노선을 취했다.15) 기를 거부하는 한편 특이성(idiosyncrasy)을 수용한 것이다. 브르통은 1924년 발표 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초현실주의의 사전적 의미와 백과사전적 의미를 구 분해 정의한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글로 쓰인 말로 혹은 어떤 다 른 방식으로든지 생각의 실제 기능을 표현해 내는 순수한 심리적 자동주의. 모든 미적이고 도덕적인 심취를 벗어난, 이성이 행한 모든 통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

12)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p. 139.

13)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p. 139.

14)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p. 140.

15) 브르통의 이러한 태도는 초현실주의의 기본원리인 경이를 부르주아 현실이 전복되고 새로운 혁명적 세계가 도래하는 변증법적 절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아라공과는 달리 개인적인 것으로(시적인 극복) 환원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MA: MIT Press, 1997),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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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진 생각의 선언”이라고 규정했다.16) 미술, 문학, 영화, 음악 등에 널리 적용된 브르통이 강조한 순수한 심리적 자동주의는 이성의 통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 어진 생각의 표현으로 꿈 혹은 무관심적 놀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꿈과 현실의 모순적인 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자유 연상, 꿈의 분석, 무의식이 상상력을 방출한 다는 프로이트의 방법론을 중요시 했다.

생각을 점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집중하여 글을 쓰는 자동기술 글쓰기의

“순수한 심리적 자동주의”는 미술에서는 자동기술 드로잉 혹은 회화로 나타났다.

문학중심이던 초현실주의가 시각예술에 수용된 지점은 1923년 앙드레 마쏭 (André-Aimé-René Masson)이 프로타주와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한 자동기술 드로잉을 발표했을 때로 본다. 그러나 미술에서 기법중심으로 자동기술이라는 개 념을 설명하는 것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브르통에 의하면 백과사전적 의미에 서 초현실주의는 “꿈의 전능함속에서, 생각의 무관심적 놀이(disinterested play)속 에서, 이전에 무시되었던 연상의 특정 형태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리얼리티에 대 한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17) 그러나 미술에서 자동기술 드로잉은 구체적 형 상을 띠기가 어려운 탓에 이미지를 통해 실재를 연상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브르통이 구상한 초현실주의 미학은 결국 ‘사진적 정밀성’과 ‘일상사물의 기괴한 변형’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비논리적인 장면을 마 치 사진과 같이 정밀하게 그리되 평범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일상 사물을 가지고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상상력을 자극하는 배열을 시 도했고,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놀랍고 예측하지 못한 배열을 추구했다. 브르통 은 “통상 같이 있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요소를 함께 배치하여 결합함으로써 비논리적이고 놀라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18) 이처럼 초현실주의는 사진 적 정밀성으로 리얼리티의 가느다란 끈을 붙잡은 유사 리얼리티와 그것들의 부조

16) Andre Breton, “Manifeste du surréalisme”, published by Éditions du Sagittaire, 15 (October 1924).

17) Andre Breton, “Manifeste du surréalisme”.

18) Thomas Pynchon, Slow Learner (Back Bay Books, 1984),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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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 조합을 통해 현실의 부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상은 사진이 왜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매체였는지를 설명한다. 사진처럼 보이는 사실적인 이미지의 부조리한 배열은 그것이 사실적이기에 더욱 환상적으 로 느껴진다. 그림으로 그린 사실적 이미지보다는 사진 이미지가 더욱 효과적인 데, 카메라의 자동기술로 제작되는 사진이미지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인간의 무의식이 개입한다는 점은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바를 더할 나위 없이 구현한다.

브르통은 이성과 의식이 지배하지 않는 몸의 기계적인 기록 과정으로서 심리적 자동주의와 카메라의 자동기술성(automatism)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본 것이다.

이는 앞서 논했듯이 벤야민이 카메라를 든 사람의 의식이 작용하는 자리에 무의 식이 개입한 결과가 사진 이미지라고 본 것과 상통한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경험을 개혁하려고 했고 그것은 인간의 부재, 즉 인간의 의식과 이성의 부정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성과 의식의 부재의 자 리는 ― 벤야민이 카메라가 정신분석학적 충동의 무의식 세계와 유사한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낸다고 보았듯이 ― 기계의 개입, 즉 카메라의 기계성 (mechanicity)을 통해 채워진 것이다.

Ⅲ. 디지털 기술과 초현실주의 미학의 동시대적 확장

1. 간극과 여백의 패러독스

브르통에게 있어서 초현실주의는 사고의 몽타주였다. 그가 추구한 리얼리티 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연상표현은 사진의 자동기술성과 함께 사진 이미지의 정 밀성에 이론의 기저를 둔 몽타주와 콜라주를 통해 손쉽게 성취될 수 있었다. 브 르통은 “두세 가지의 거리감 있는 리얼리티들의 병치”를 논하면서 “병치된 리얼 리티간의 관계가 동떨어지면 동떨어질수록 진실로 보이면 보일수록, 그 이미지는 더욱 강렬하고 감정적인 힘과 시적 리얼리티는 더욱 커질 것이다”고 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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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조각조각 붙여진 사실적인 이미지들의 몽타주는 실재하지 않는 사실과 허구 가 혼재하는 모순적 이미지가 되어 충격과 경이를 준다.

몽타주 사진, 구축 사진, 컴비네이션 프린팅 등은 오스카 래일렌더(Oscar Gustave Rejlander)나 핸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등 초기 사진가들의 실험에도 존재했다. 초창기 예술 사진가들이 예술이 추구하는 이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상상력이 사진 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실험을 했다면, 무의식과 비이성, 꿈의 세계를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의 이념은 사진이 가장 왕성하게 사용 되는 계기가 되었다.20) 평범한 사진 이미지와 조작을 가하지 않았으나 독특한 이 미지들은 연상을 자극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한스 벨머(Hans Bellmer)의 조 각을 오브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 케르테즈(André Kertész)의 왜곡 상, 만 레이 (Man Ray)의 포토그램, 라울 위박(Raoul Ubac)의 필름 태우기 등이 그 예이다.21)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 게오르그 르로츠(George Grosz), 존 하트 필드(John Hartfield), 한나 훼흐(Hannah Höch) 등이 적극적으로 실험한 포토몽타 주도 다다 시기를 거쳐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사진 이 미지의 단편을 조합하는 포토몽타주는 사진적 사실성 자체를 이용하여 전통적 리 얼리즘을 공격했다. 조각조각붙인 이들의 사진에는 균질적인 공간 감각이 파괴되 고 엉뚱한 배치와 파열, 잘려나감 등이 놀라움을 준다. 이음새 사이의 수많은 간 극과 남아있는 화면의 여백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진이 초현실주의 미학의 조건, 그 자체를 제공했다고 주장한 로잘린드 크 라우스(Rosalind Krauss)는 포토몽타주에 보이는 이러한 간극(spacing)의 효과에 주목한다. 크라우스는 다다의 몽타주에는 거친 간극과 수많은 여백(blanks)이 보 19) Andre Breton, “Manifeste du surréalisme”.

20)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뜨, 라울 우백, 로드첸코, 만 레이, 모리스 타바드 브라사 이, 라울 울스, 한스 벨머, 도라 마, 앨리 로타르, 클로드 카훈, 피에르 몰리니에, 리 밀 러 등이 다양한 기법을 실험했다.

21)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정리.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in: October, vol. 19 (Winter, 1981), p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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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데 이 매끄럽지 않은 간극이 생긴 사진 이미지는 사진의 수많은 환영 중에서 가장 강력한 환영을 박탈한다고 보았다 [도 1]. 즉 간극이 드러나는 사진이미지는 실제 같은 느낌을 잃어버린다. 간극을 표시한다는 사실은 현존의 동시성을 파괴 하며 결국 서로 무관하게 분리된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들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보게 한다. 크라우스에 의하면 간극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석과 의미작용에 의해 감염된 양상, 다시 말해 기호의 실존에 앞서 형태적 조건들을 구성하는 공백과 여백에 의해 확장된 현실을 바라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22)

[도 1] Hannah Höch, <Cut with the Cake-Knife>, collage and photomontage

on paper, 90x144cm, 1919, Staatliche Museen, Berlin.

[도 2] Man Ray, <Yesterday, Today, Tomorrow>.

1924.

파괴와 전복을 꾀한 다다에 있어서 거친 간극이 적합하였다면 자동기술법을 통한 기괴함을 이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취한 초현실주의는 부드러운 간 극이 더 적합했다. 따라서 ‘현실 같은 꿈’과 같이 환영의 리얼리티를 중시한 초현 22)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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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주의자들은 다다와는 달리 거친 포토몽타주를 거의 쓰지 않았다.23) 대신 균열 과 틈새가 없는 한 장으로 된 매끈한 프린트를 선호했는데, 그러한 이미지는 사 진적으로 읽혀져 “현실과의 직접 접촉,”24) 즉 현실 같은 느낌을 보장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실과 착각할 만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 해 간극은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포기될 수 없는 것이었다. 크라우스는 초현실주 의자들이 단 한 장의 사진 프린트 속에 이미지를 중첩시킨 점에 주목하며 초현실 주의 사진에서 간극은 이처럼 여러 장의 네거티브를 동시에 프린트 한데서 나온 다고 본다[도 2]. 중첩(doubling)이야말로 순간의 통일성을 사라지게 하고 분열의 경험을 주는 간극의 형식적 리듬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크라우스에 의하면 이 중 첩과 반복의 과정에서 복제의 존재자체는 원본의 유일무이성을 파괴해버린다.25)

사진이 일종의 현실의 각인이며 전사라는 인덱스성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 의 간극 만들기와 중첩은 구체적 현실의 단편을 중복적으로 간극을 내며 기록하 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은 기호로서 이루 어진 리얼리티, 즉 부재(absence), 재현(representation), 간극(spacing) 또는 글쓰 기(writing)로 변형된 현존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재현으로서 리얼리티(reality as representation)에 대한 이러한 모순된 인식이 ‘경이로움(the marvelous)’과 ‘발작 적 아름다움(convulsive beauty)’ 등 초현실주의 핵심 개념을 형성한다.26)

크라우스의 논의는 사진은 언제나 실제 존재했던 무언가의 이미지, 대상이

23)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 25. 훼흐나 하우스 만의 작품에서처럼 조각 이미지들을 붙이면서 이음새와 여백을 거칠게 놓아둔 다다의 몽타주나 콜라주와는 달리 초현실주의자들은 컴비네이션 프린팅으로 포토몽타주의 효 과를 시도했다. 그러나 크라우스에 의하면 초현실주의자들의 이 같은 간극은 “그들이 행한 작업 과정 중 가장 흥미가 덜한 전략”이다.

24)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 25.

25)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 25.

26)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 28. 크라우스에게 있어서 현실의 일부를 찢어내는 사진 프레임은 간극의 또 다른 예이다. 프레임은 틀 속에 넣은 단편을 기호로 인식하게 한다. 크라우스는 프레이밍을 통해서 초현실주의자 들은 리얼리티 자체를 재현 혹은 기호로서 고려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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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증거이자 흔적이라는 인덱스(index) 개념에 근거하고 있 다.27) 따라서 초현실주의 사진에 대한 논의 또한 사진의 인덱스성(indexicality), 반복성(repetition), 전사(copy, 혹은 re-creation), 그리고 프레임(frame)에 의존하 고 있다. 그러나 인덱스 개념에 근거한 크라우스의 간극 이론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초현실주의 사진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28) 다다의 포토몽타주에서 거친 간극이 명백한 작위성 때문에 실제처럼 느끼는 환영을 박탈하는 역할을 했고, 초 현실주의의 충첩 사진에서 부드러운 간극이 분열의 경험을 주었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균질적 화면에서 이미지의 중첩 없이 몽타주의 거친 이음새를 너 무나 능청스럽게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간극을 찾아내지 못할 정 도로 매끄럽게 이미지를 결합한다. 몇 개의 이미지로 구성되었는지, 그 이음새가 어디인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한 화면을 구성하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조합은 오 히려 더 기이함을 자아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열정적으로 초현실주의적 환영에 빠져들게 한다 [도 3].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더불어 초현실주의 기법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이는 본고에서 앞서 설명한 초현실주의의 주요 표현 전략인 ‘사진적 정밀성’과 ‘일상사물의 기괴한 변형,’ ‘상상력을 자극하는 배열’을 통한 미학을 변화시키고 확장 시켜왔다. 아날로그 필름의 물질성을 숫자 코드가 대체하고, 연속적인 톤으로 이루어진 재현은 정확한 수치로 나누어졌다. 표면과 분리가 불가능했던 시각 기호들은 숫자와 전자 펄스로 분리 가능해졌고, 재료와 재료를 다루는 기술과 결합된 아날로그 매체의 매체-특수성은 하나의 바이너리 코드(binary code)로 일반화되었다.29)

27) Rosalind Krauss, “Notes on the Index: Seventies Art in America, Part Ⅰ”, October, vol. 3 (Spring, 1977), pp. 68-81; “Notes on the Index: Seventies Art in America, Part Ⅱ”, October, vol. 4 (Autumn, 1977), pp. 58-67 참조.

28) 프레임을 간극이라고 본 크라우스의 시각 또한 디지털프린트의 시대에 재고되어야 한 다. 인간 신체와 직면하는 커다란 스케일의 프린트는 관객과 프레임의 간극을 오히려 좁히고 오히려 프레임 바깥으로 환영의 공간을 확장한다고 볼 수도 있다. 대형 프린트 들은 프레임의 공간을 확장하고 실재 관객이 존재하는 실재공간과의 연결을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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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사진은 순수 환타지이자 순수 상상의 산물일 수 있다. 자유로운 편집을 통해 충돌과 혼종, 하이퍼 리얼리티, 혼성적 내러티브와 상 호텍스트성을 구가할 수 있다. 메기 테일러(Maggie Taylor)는 수집과 아카이빙, 수집된 이미지의 디지털화와 재조합을 통해 혼종된 초현실주의적 내러티브를 구 사한다 [도 4]. 테일러는 수집한 오브제나 일상 오브제들을 디지털 이미지화하여 포토샵을 통해 다양하게 변형하고 조합한다.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매끄럽게 조합 하고 의도적으로 오래된 아날로그 사진의 효과마저 덧입힌 테일러의 사진은 마치 동화의 세계와도 같이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 3] Eric Johansson, <Impact>, photoshop, Hahnemühle Photo Rag Baryta, 180x135cm,

2016,

[도 4] Maggie Taylor, <Various photomontage images>, photoshop.

이질적 리얼리티의 단편을 결합하여 강력하고 감정적인 시적 리얼리티를 극 대화하는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몽타주는 에릭 요한슨(Eric Johansson)의 작업에 서 훌륭하게 실현된다 [도 3].30) 요한슨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 몽타주 작업으로 29) Liz Wells, “Photography in the Age of Electronic Imaging”, in: Photography: A

Critical Introduction, ed. Liz Wells (London; New York: Routledge, 2000), p.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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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가 추구했던 꿈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의 초현실주의는 몽타주적 간극을 극소화함으로써 이질적이고 환영적 인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디지털 기술로 이음새를 감추어 간 극이 눈에 띄지 않는 그의 사진에서 미처 예견치 못했던 낯설고 생경한 이미지들 이 매끄럽게 만나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포토몽타주에서 간극과 여백이 상 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면, 요한슨의 디지털 사진에서는 간극을 찾아낼 수 없는 매끄러운 이음새와 실재보다도 더 생생하게 보이는 세부묘사와 색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찾지 못하게 한다. 감상자는 강물이 깨진 거 울 조각으로 변한 기이한 풍경 속에서, 얼음처럼 조각난 강물과 땅의 경계에서 조각배를 타고 있는 인물과 그의 파편화된 이미지를 거울을 통해 보게 된다. 초 현실주의가 사진적 정밀성으로 현실과의 끈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이미지들의 부 조리한 조합을 통해 현실과 이성을 부정하고 간극과 경이의 체험을 유도해 의식 의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초현실주의는 아마 브르통 이 추구한 이성과 현실의 부정을 넘어서 무의식과 비이성, 꿈의 세계를 자유자재 넘나들며 표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현실주의적 이상의 정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2. 사진적 충격과 승화/탈승화

브르통이 “환상과 관련해 놀라운 것은 더 이상 환상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 이다. 오직 실재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 것에 주목한 할 포스터(Hal Foster)는 초현실주의가 안고 있는 초월성과 세속성의 공존이라는 패러독스를 모든 종류의 경이는 언캐니하다는 측면에서 이해한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의 기본 원리는 경 이인데, 경이는 ‘발작적 아름다움(convulsive beauty)’과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으로 나타난다. 포스터는 전자는 생명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상태의 언 캐니한 뒤섞임이며, 후자는 뜻밖의 만남과 발견된 오브제 속에서 드러나는데 이 러한 경이는 언캐니한 상황의 마력으로 말미암아 반복 강박을 낳는다고 본다. 이 30) http://www.erikjohanssonphoto.com/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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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이는 충격을 내포하며 트라우마의 경험과 히스테리와 같은 경험을 수반한 다.31)

포스터는 ‘발작적 아름다움’을 사진적 충격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사진은 발작적 아름다움을 가장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수단 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사진은 발작적 아름다움인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것,’ 그리고 운동 중 정지된 자연이라 할 수 있는 ‘정지된 폭발,’ 이 두 가지를 모 두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32) 생명이 있으면서 동시에 생명이 없어 보이는 모습, 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모습,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것의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강박에서 죽음충동을 이끌어냈던 프로이트와 달리 삶을 죽음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언캐니하다. 또한 폭발적인 것이 굳어 져 고정되어 있는 모습, 즉 정지된 폭발은 언캐니하다. 이러한 양가성의 공존이 언캐니를 자아내는 이유는 그것이 삶속에 내재해 있는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 다.33) 그러나 그는 경이는 무의식적이고 억압된 것에서 발원하지만 일부는 무의 식과 억압에서 벗어나 세계와 미래를 향해 투사된다고 본다. 즉 초현실주의자들 은 아름다움의 발작적 힘을 생성하기 위해 언캐니한 회귀를 활용했을 뿐, 죽음 충동이라는 결과를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34)

포스터는 브르통이 경이가 아름답다고 함으로써 언캐니가 유발하는 ‘병적 불안’을 아름다움의 미학으로 재 부호화했으나, 결국 이 미학은 아름다움보다는 승화 문제와 더 많이 관련되었다고 본다.35) 그는 브르통의 발작적 아름다움은 31)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p. 19-21.

32)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7.

33)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1. 포스터의 논의의 출발은 바르트의 푼크툼에서 묘사된 언캐니이다. 그는 사진, 특히 역사적 초상 사진에서 대상이 죽는다는 미래의 사실과 존재 했다는 과거의 사실이 등가성을 가지고 동시에 존재하기에 푼크툼(예리 한 것으로 찌름: 각별한 느낌을 갖게 하는 개인의 순간적 체험을 의미한다)을 준다고 한다. 포스터의 해석을 빌리면 하나의 정지된 사진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언캐니 는 바르트에게 푼크툼을 제공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 김 (동문선, 2006), p. 119.

34)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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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와 마찬가지로 무정형을 강조하고, 표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기시키려 했다.

뿐만 아니라 기쁨과 두려움, 매혹과 혐오를 뒤섞기도 하고 생명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부정적 쾌락을 추구하기도 했다”면서,36) 칸트 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에서도 이러한 부정적 쾌가 여성적 속성을 통해 논의되었기에 초현실 주의가 추구한 승화의 영역은 여전히 여성의 신체에 머물렀다고 본다.37) 그러나 더 나아가, 포스터는 초현실주의가 여성의 신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된 이미 지가 아니라 오히려 숭고한 것이 탈-승화되는 장소로 취급했다고 본다. 여성의 신체는 성의 기호와 죽음의 흔적이 새겨진 히스테리 성 신체로 취급되었는데, 초 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이미지나 인물들을 욕망하고, 심지어 자신들과 동일시했 다는 것이다.38)

35)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8. 승화는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힘든 충동이나 이상화가 무의식적으로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행동이나 행위로 변형되는 성숙한 형 태의 방어 매커니즘이다. 프로이트는 승화가 인간을 문화적으로 수용가능한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성숙의 기호라고 보았다. 그는 승화를 성적 본능을 정신적이거나 학 문적 예술적 관념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도의 사회적 가치의 행위로 변형하는 과 정으로 정의했다.

36)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8.

37)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8.

38) Hal Foster, Compulsive Beauty, p. 28.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같은 책 p.

110 참조. 이처럼 초현실주의가 추구한 승화의 영역은 전통이 추구한 아름다움의 영역 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성의 신체에 머물렀기 때문에 전통적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본다. 포스터는 브르통적 초현실주의가 (바타유적 초현실주 의자들과 달리) 이러한 탈승화의 언캐니를 인지했지만 그에 저항함으로써 탈승화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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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Hans Bellmer, <La Poupée>, gelatin silver prints, 17.5x13.02cm, Berlin, ca., 1934-1936.

[도 6] Gregory Crewdson, <Brief Encounters>, digital pigment print, 2012.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은 시네마적 재현과정을 사진제작 과 정에 차용하여 가능한 한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초현실주의적 언캐니의 장면을 연 출한다. 이는 만 레이나 라울 위바크, 모리스 타바르(Maurice Tabard), 한스 벨머 (Hans Bellmer) 등이 비정형적 여성 신체의 탐구로 추구한 초현실주의의 경이와 언캐니의 미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그들의 비정형적 여성신체는 병적 불 안과 히스테리와 부정적 쾌락과 변태성욕, 공포와 불안, 상처와 트라우마의 표상 에 가까웠다 [도 5]. 포스터가 주목했듯이 초월성과 세속성의 공존이 초현실주의 의 특징이라면, 크루드슨의 사진은 완벽에 가깝게 그것을 성취한다. 그의 작품

<Brief Encounters>에서 여성들은 진부하면서도 기이한 언캐니의 장면 속에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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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다. 그들은 생명이 있으면서 동시에 생명이 없어 보이는 모습, 움직이면서 동 시에 움직이지 않는 듯 애매한 모습,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것의 모습이다. 크 루드슨은 일상적인 실내의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에서 아름답고 경이로 운 장면을 찾아낸다 [도 6]. 그의 사진에서 여성의 신체를 중심으로 승화와 탈승 화, 세속화와 초월성, 생명과 죽음, 부정적 쾌락에의 매혹과 두려움은 기묘하게 공 존한다.39)

3. 부재의 풍경그리기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기호주의 소비이론에 의하면 포스트모던 시 대는 미디어, 시뮬레이션, 그리고 “cyberblitz”40)가 새로운 경험의 시대와 새로운 단계의 역사와 사회유형을 만든다. 그는 소비자, 미디어, 정보, 과학기술 사회의 발전에 비추어 급진적인 사회이론과 정치학을 재고한다. 그는 모더니티를 상품화, 기계화, 기술, 그리고 시장관계의 폭발(외파)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포스트모던 사 회는 모든 경계와 지역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외형과 실재, 그리고 전통 철학과 사회이론이 유지해온 모든 이분법의 구별들이 내파 하는 장소(site)로 보았다. 모 더니티가 삶의 영역들의 점진적인 차별화의 과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포스 트모더니티는 ‘차별화의 해체(de-differentiation)’와 그에 따르는 내파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보르리야르에게 있어서 문화적 소비는 “이미 존 재하지 않는 것의 회화적 소생”, 혹은 “사물과 현실을 부인하는 토대 위에서 기호 들에 열광하는 것”41)이며 소비자는 죽음의 환영들을 좇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

39) 이는 전통적 아름다움의 영역에 머물렀던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의 장애를 넘어서는 긍 정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40) 보드리야르는 예측 불가능한 무작위의 미디어 형태나 이미지들을 묘사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다. cyberblitz는 새로운 경험의 영역, 사회의 새로운 단계의 역사와 유 형을 구축한다.

41) Jean Baudrillard, Screened Out, trans. by Chris Turner (London; New York: Verso, 2002), pp. 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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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맥락에서 보드리야르는 재현과 리얼리티의 관계의 주요한 반전을 지적했는 데, 이전에는 미디어가 리얼리티를 비추거나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것으로 여겨졌 다면 요즘은 (하이퍼)리얼리티, 새로운 미디어 리얼리티(리얼보다 더 리얼한)를 구축한다. 리얼한 것이 리얼한 것의 궁극적인 용해와 소멸을 이끄는 재현에 종속 된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시뮬레이션과 시뮬라크르, 미디어와 인포메이션, 과학 과 신기술, 파열(내파)과 하이퍼리얼리티가 새로운 포스트모던 세계의 구성요소이 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 조직, 생각, 경험을 구축하면서 모든 경계, 카테고 리, 그리고 가치들을 지워버린다.

[도 7] Jean Baudrillad, <Luxembourg>, 2003, Giclée print on pure cotton paper, 50x75cm.

이러한 그의 이론은 그의 사진 작업을 통해 드러난다 [도 7]. 일생을 통해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었던 보드리야르는 주로 도시와 소도시만 찍었다. 그의 도시풍경은 도시의 표면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덧없이 일시적으로 만나는 풍경이 다. 그는 환영적인 도시의 표면만을 중첩하여 환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차이 가 별반 드러나지 않는 부재의 풍경만을 내놓는다. 도시에 존재하는 사물의 표면 이 있는 그대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사진에서 리얼리티는 비확정적으로 나 타난다. “환영과 실제적인 것(illusion and the real)의 섬세하고 엷은 차이”42) 42) Jean Baudrillard, Fragments: Cool Memories Ⅲ, 1990-1995, trans. by Emily A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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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겹겹이 쌓여있는 투명하고 환영적인 층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의 사진 은 주제도 의미도 부재하는 부재의 기록, 부재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크라우스는 이러한 사실과 허구의 모순이 사진의 본질에 속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자국처럼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사진은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하 나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기호로서 이루어진 현실이라는 말인데, 말을 바 꾸면 부재, 재현, 간극 또는 글쓰기로 변형된 현존의 모순이다.”43) “복수성, 사실 성, 반복과 스테레오 타입을 모든 미적 제스쳐의 중심부에 노출함으로써, 사진은 원본과 부본의 구별 가능성을 해체한다.”44) 이러한 면에서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 거나 모방하는, 그 자체로 시뮬라크르이며 보드리야르가 언급한 것처럼 재현이 실재를 대신하는 하이퍼리얼리티, 즉 ‘원본 없는 실재’이다.

디지털 시대에 사진의 죽음이라든가 사진은 정말 끝났는가에 대한 논의가 지난 수년간 세계 예술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벳첸(Geoffrey Batchen)은 ‘기술적인 것(technological)’과 ‘인식론적인 것(epistemological)’의 국면 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45) 실재와 같아 보이는 ‘가짜’때문에 무엇이 실재이고 가 짜인지 알아낼 수 없다. 이로 인해 사진을 대하는 수용자들의 태도는 변했다. 진 짜 사진처럼 보이는 디지털 이미지의 만연함은 미디움으로서 사진의 정체성마저 도 앗아갔다. 원본과 원본을 흉내낸 모사(simulations)를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사물과 기호, 자연과 문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 지고 있다. 곧 세계는 구별이 불가능한 “인위의 자연 (artificial nature)”으로 구성

(London; New York: Verso, 1997), p. 63.

43) Rosalind Krauss, “The Photographic Conditions of Surrealism”, p.28.

44) Rosalind Krauss, “A Note on Photography and the Simulacral”, October, Vol. 31 (Winter, 1984), pp. 49-68. “Copies are secondhand possessors, well-grounded claimants, authorized by resemblance. Simulacra are like false claimants, built on a dissimilitude, implying a perversion, an essential turning away”. Gilles Deleuze and Rosalind Krauss, “Plato and the Simulacrum”, October, Vol. 27 (Winter, 1983), p.

47.

45) Geoffrey Batchen, “Ectoplasm: Photography in the Digital Age”, in: Over Exposed, edited by Carol Squiers (New York: The New Press, 1999),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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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이다.46)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사진의 종말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보자면 우리가 기존의 인식론 으로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떠한 세계의 종말을 예견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만연한 부재의 풍경 그리기 현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사는 공간(space)과 장소(place), 풍경(landscape)을 재고하게 한다.

W. J. T. 미첼(William John Thomas Mitchell)은 공간, 장소, 풍경을 라캉의 상징 (symbolic), 실재(real), 상상(imaginary)의 개념과 연결시킨다.47) 미첼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풍경을 본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떠한 구체적인 사물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징을 지배적으로 드러내는 전체 게슈탈트(total gestalt)-그러나 그 특징으로 단순하게 환원할 수만은 없는-를 본다는 것이다. 공간과 장소가 분석 가능한 것이라면 풍경은 상대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미첼은 공간, 장소, 풍경을 변증법적 삼자관계, 즉 개념적인 구조로 설명한 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상징적인 것(the symbolic)’으로 볼 수 있다면, 위치로서의 장소(place as the location)는 라캉의 ‘실재(the real)’, 즉 트라우마와 역사적 사건 의 현장(site)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상상적인 것(the imaginary)에 상응하는 풍 경을 통해 장소를 최초로 인식론적으로 만난다. 장소가 특정 위치(location)라면 공간은 움직임, 행위, 내러티브 그리고 기호가 활성화하는 현장(site), 즉 실질적 장소(place)이다.48) 이에 비해 전체 게슈탈트를 보는 풍경은 상상의 장소, 이미지 나 ‘광경’으로 만나는 현장이다. 따라서 풍경으로서 그림같이 묘사된 타블로는 상 상적인 비존재, 부재의 장소를 포함한다. 하나의 장소는 그림같이 묘사된 타블로 혹은 ‘풍경’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46) Geoffrey Batchen, “Ectoplasm: Photography in the Digital Age”, p. 10.

47) W. J. T. Mitchell ed., Landscape and Pow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2), pp. vii-xii.

48) place, location, site간의 미묘한 차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place를 장소로, location을 위치로, site를 현장으로 번역하기로 하였는데, site는 무엇인가가 활성화되고 일어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현장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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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8] Andreas Gursky, <The Rhine Ⅱ>, 1999, chromogenic print, 156.4x308.3cm, Tate.

동시대의 많은 사진작가들이 실재하는 장소의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는 라인강의 사진을 찍고 디지털 후 작업을 통하여 허구적으로 구축된 라인 강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라인 강 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부들-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혹은 공장 건물-을 말끔히 제거하고 매끄럽게 다듬은 그의 사진은 실재하는 풍경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 상적인 라인 강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상상의 풍경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찍은 그 사진은, 그러나 우 리가 그 장소를 찾아가서는 직접 볼 수 없는, 미첼이 말하듯, 타블로로만 소비되 는 풍경, 즉 상상적인 것이다 [도 8].

[도 9] Thomas Demand, <Vault>, 2012, chromogenic print, 220x276.9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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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모형 공간을 찍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의 사진은 마치 실재하는 공간을 보는 착각을 주는 구축된 리얼리티와 원본 없는 이미지이 다. 데만트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장소의 내부공간이나 그 외의 공 간을 실재 이미지처럼 3차원 모델로 만든 다음 사진을 찍는다. 그가 종이로 재연 하는 현장은 터키가 세르비아를 물리친 기념 연설을 행했던 장소이고, 사담 후세 인이 잡히기 직전 쓰던 부엌이며, 쓰나미와 관계된 핵시설물의 내부이다.

<Vault>은 수십 년간 잃어버린 30여점의 거장의 작품이 발견된 파리의 한 사건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도 9]. 그는 종이로 모델을 만들 때 실재처럼 만들지만 사 실과 허구 사이의 차이가 드러나도록 의도적으로 세부묘사를 생략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뒤 종이 모델을 없애버린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은 허구적으로 구축 되고, 또 다시 이미지화되어 언캐니한 상상의 장소와 공간으로 탄생한다. 데만트 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사진은 사진과 실재 세계의 관계를 보다 복잡하 게 얽히게 만드는 부재의 풍경이다.

[도 10] Josef Schultz, <Dayton #14>, 2012, c-print, 125x150.7cm.

요셉 슐츠(Josef Schulz)는 실재하는 장소의 세부를 제거해 나가는 환원의 과정을 거쳐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비현실화 한다. 그의 <Poststructure> 시리 즈는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고 있으나 건물의 세부가 제거되어 어딘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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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이질적인 상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도 10].

이들의 사진에서 우리가 늘 보는 트라우마와 역사적 사건으로서 장소와 행 위와 기호 등이 활성화하는 현장으로서 공간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우 리에게 인식론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풍경은 실제 존재하는 어떤 것의 시뮬라 크르이다. 이 풍경들은 벳첸이 묘사한대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위의 자연”

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인식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어떤 진실을 관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진실의 가짜 복제인 시뮬라크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공 간과 장소가 그림같이 묘사된 타블로 혹은 ‘풍경’으로 소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재가 상상이 되는 부재의 풍경 현상은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

Ⅳ. 기술을 통한 초현실주의적 갈망

초현실주의가 리얼리티에 이성의 통제가 부재하는 자유로운 상상을 더해 현 실과 비현실의 모순적인 조건을 해소하고 특이한 경험과 인식을 환기함으로써 새 로운 사회를 꿈꾸었다면, 디지털시대의 현대인이 전복적 판타지와 가상현실을 통 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미라 콤플렉스로 설명 한 인간의 실재에 대한 갈망은, 어떻게 보면 시공을 넘어선 초월적인 리얼리티의 보존에 대한 초현실주의적 갈망으로 볼 수 있다.49) 소멸할 인간의 몸 혹은 이 순 간의 현재성을 정지시켜 영원한 시간 속에 가두어 놓고 인간에게 부재하는 영원 성을 충족하려는 언캐니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유사하게 손택은 “사진은 유사- 존재이자 부재의 징표”이며 “그 안에 담긴 대상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런 느낌은 그 대상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더욱 더 갈구 하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곧바로 부추긴다. 사진은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불처럼 우리를 몽상에 빠져들게 만든다.”고 했다. 손택에 의하면 사진은 “또 다른 현실을 49) André Bazin, “The Ontology of Photographic Image”, trans. by Hugh Gray, in

Film Quarterly, vol. 13, no. 4 (Summer, 1960), p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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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이하고 싶다거나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50)

손택이 묘사한 인간의 부재와 결여, 그리고 다른 현실에 대한 욕망은 우리 시대에 디지털기술과 함께 급속도로 증폭한다. 디지털 시대의 부재하는 것에 대 한 인간의 욕망은 기술의 장치기제와 결합되어 기술의 시스템 속에서 확산된다.

기술은 인간의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의 생산과 인식, 유통과 해석에 깊이 개입할 뿐 아니라, 이 순환의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과 사진 장치 기제의 시스템 의 메카니즘을 철학적으로 논한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사진은 세계가 보 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새로운 인식론적인 경험과 지식을 예견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사진은 단순히 이미지를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리얼리티 가 구축되고 이해되는 강한 지배력을 가진 문화기술이다. 대상에 충실한 사진 이 미지일지라도 직접적으로 해독될 수 없는데 이는 사진이미지가 생각을 실행 (simulate) 하는 도구인 장치(apparatus) 기제를 통해 생산되기 때문이다.51) 사진 적 장치는 카메라를 조절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미 프로그램된 카메라가 인간이 사진 찍는 행위에 제한(한도)을 정하고 이 장치 가 사진 이미지의 의미를 (재)형성한다. 기술 이미지의 해독은 전통 이미지보다 더 어려운데, 이는 기술 이미지들이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플루서는 이미지 (image), 장치(apparatus), 프로그램, 정보(information)라는 기술범주를 통해 “사진 적 우주(photographic universe)”를 이론화 한다.

플루서에게 있어서 인간과 기계장치 시스템의 메카니즘에 의해 만들어진 이 미지의 세계에서 실재와 재현은 그 본질에서 유사하며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은 중 요하지 않다.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인간신체의 확장으로 본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글로벌 빌리지”를 논했다면, 플루서는 이를

“기술적 이미지들이 가상적으로 조절하는 꿈꾸는 글로벌 브레인”으로 보았다.52)

50)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p. 36.

51) 그에게 있어 카메라도 컴퓨터도 아파라투스이다.

52) Vilém Flusser,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 trans. by Nancy Ann Rot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1), p.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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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서는 보드리야르와 마찬가지로 언어와 전자 미디어(이미지, 코드, 그리고 재 현),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논했다.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시뮬라크르는 재현이 실재를 대신하는 하이퍼리얼,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이미지, 즉 ‘원본없는 실재’라면, 플루서에게는 장치가 바로 인간의 사고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브르통에게 있어 1차 세계대전의 문명과 인간의 파괴는 이성이 일군 사회를 전적으로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초현실주의적 전복을 통해서만 돌파구 를 찾을 수 있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나찌에 의해 죽음에 내몰린 벤야민도, 나찌 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플루서도 사진 기술을 통해 혹은 기술적 장치를 통해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비극을 막고자 했다. 벤야민에게 당시의 기술, 즉 사진은 대 중의 인식과 욕망을 자극하여 나치의 무자비한 권력을 저지할 혁명을 가져올 희 망이었다. 플루서에게 기술 장치와 시스템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과거 나치의 대 학살과 같은 인류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일반 대중에 의한 사회의 변혁도, 역사에서 학살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꿈도 현실을 부정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초현실주의적 갈망일 수 있다. 벤야민에게도 플루서에게도 사진(기술)은 이 갈망을 실행해줄 전복의 매체였고, 전복의 구체적 장소였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극명한 대립이 와해된 오늘날 디지털 기술 시대의 예 술에 초현실주의의 귀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실한 사회적 혁명과 전복의 당 위성이 지배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역사적 초현실주의가 세계대전을 초래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 때문에 기술에게 이성의 자리를 내주었다면, 오늘날 우 리는 전복의 필연성과 절박함 없이 개별적으로 기술 이미지와의 감각적 유희에 매몰되어있는 것인가. W. J. T. 미첼은 동시대를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바이오사 이버네틱스의 시대로 진단하고 디지털 기술로 부활한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의 공룡을 창조주에 저항하는 인간의 생명창조의 신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사이버네틱 코드로 소멸한 생명까지 부활하는 디지털 기술은 “바이오사이버네틱 시대의 꿈을 포착하면서도 그 꿈을 최후의 환상까지 밀고 나간다.”고 한다.53) 역시 소멸과 부재의 공포에 저항하는 인간의 초현실주의적 욕망의 표출로 볼 수 53) W. J. T. Mitchell, “Art in the Age of Biocybernetic Reproduction,” p.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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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시대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의 귀환은 기술을 통해 존재하 지 않는 불가능한 실재를 꿈꾸는 인간적 갈망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가상과 모사의 기술 이미지로 가득차고 그 구별마저 무의미해진 오늘날의 환경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실재’라는 것이 존재한 다고 믿었던 기존의 인식론적 체계를 부정하는 전격적인 이미지의 시대를 예고하 는 것인지도 모른다.

Ⅴ. 에필로그

예술사진에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의 초현실주의의 귀환을 논하는 나의 논의 에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기술이 사회전반 뿐 아니라 인간 개인의 삶 곳곳 에 침투하여 개별적으로 초현실주의적 전복을 꾀하는 이런 현실에서 예술이라는 개념은 문제가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시대에 “여전히 미적 환 영이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밀과 유혹과 마술의 철저한(radical) 환 영인 ‘미적’ 환영에로의 길이 존재하는가? 초시각성(hypervisuality)의 정점에서 여 전히 이미지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가?”하고 묻는다.54) 일상적 현실은 사진 속 으로 들어감으로써 미학화 한다. 보드리야르는 모든 현실이 미학화 되는 것이 바 로 문제라고 본다. 미학화와 함께 예술작품은 이제 형식(form)이기를 멈추고 우리 사회에서 미적 가치(aesthetic value)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은 미학이 되면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현실, 즉 현실의 진부함과 다시 만난다. 이는 예술 과 현실의 극단적 혼동이며 이것이 바로 하이퍼리얼리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과 현실의 본질적 차이는 소멸되며, 이것이 바로 형식으로서 예술의 종말이 다. 보드리야르는 “예술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하고만 제휴하며 더 이상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술의 종착역은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 그리고 인터렉션의 54) Jean Baudrillard, The Conspiracy of Art, edited by Sylvère Lotringer & trans. by

Ames Hodges (MA: The MIT Press, 2005), p. 1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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