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지도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사우디아라비아 지도"

Copied!
137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2)
(3)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1973년 제정된 것으로 초록 바탕에 아랍어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알라 외에는 신(神)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 라는 <꾸란>의 구절이 씌어 있다.

글씨 아래의 칼은 네지드, 헤자즈 왕국을 통합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압둘아지즈 왕(통칭 이븐 사우드)이 1902년에 추가 하였다.

(4)
(5)

사우디아라비아 지도

(6)
(7)

Ⅰ. 사우디아라비아 일반사항

1. 개관

가. 일반개관 ··· 3

나. 자연환경 ··· 4

2. 약사 가. 약사개요 ··· 9

나. 정치약사 ··· 11

3. 정치제도 가. 권력구조 ··· 14

나. 행정각부 ··· 18

다. 지방제도 ··· 19

4. 정치정세 가. 국내정치정세 ··· 20

나. 대외정책 ··· 23

5. 경제현황 가.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특징 ··· 31

나. 최근 경제정세 ··· 32

6. 국방관계 가. 군사조직 ··· 36

나. 병역제도 ··· 36

다. 병력 및 장비 ··· 37

라. 국방예산 ··· 38

마. 국방정책 ··· 38

바. 군사협력관계 ··· 38

사. 기타 ··· 39

C ONTENTS ・목차

(8)

7. 사회・문화

가. 인 구 ··· 40

나. 교 육 ··· 40

다. 언 론 ··· 43

라. 종 교 ··· 45

마. 생 활 ··· 46

바. 관 습 ··· 47

Ⅱ. 우리나라와의 관계 1. 기본관계 가. 정치・외교관계 ··· 53

나. 주요인사 교류 ··· 54

다. 정부간 협정체결 ··· 58

2. 경제・통상관계 가. 한-사우디 경제관계 개관 ··· 59

나. 교역동향 ··· 60

다. 건설 및 플랜트 수주 현황 ··· 61

라. 산업・기술 및 투자협력관계 ··· 62

3. 문화・교육관계 가. 문화교류 ··· 64

나. 교육・청소년분야 교류 ··· 65

다. 방송・언론분야 교류 ··· 66

4. 정부간 협의체 및 친선단체 가. 한-사우디 공동위원회 ··· 67

나. 한-사우디 석유광물위원회 ··· 68

다. 의원친선협회 ··· 68

5. 재외국민, 기업진출 현황 가. 재외국민 실태 ··· 69

나. 재외국민 현황 및 단체 ··· 69

다. 정부 투자기관 등 ··· 70

라. 진출기업 현황 ··· 70

C

ONTENTS

(9)

Ⅲ. 주요인사

1. 국왕 ··· 73

2. 여타 왕실인사 및 주요각료 ··· 74

Ⅳ. 방문정보 1. 안전정보 ··· 81

2. 출입국 유의사항 ··· 82

3. 체재시 유의사항 ··· 84

부록 Ⅰ. 사우디아라비아 주요자원 및 산업현황 1. 석유 및 정유산업 ··· 89

2. 가스산업 ··· 93

3. 기타 광물자원 ··· 95

4. 전력산업 ··· 96

5. 건설 및 플랜트산업 ··· 99

6. IT 및 통신 ··· 101

7. 제조업 ··· 103

8. 농업 및 축산업 ··· 104

부록 Ⅱ. 사우디 교역 및 투자환경 1. 시장환경 ··· 107

2. 유망분야 및 투자정보 ··· 123

사우디아라비아 개황

(10)
(11)

사우디아라비아 일반사항

(12)
(13)

1 개 관

가. 일반개관

■ 국 명 : 사우디아라비아 왕국(Kingdom of Saudi Arabia) ※ 사우디 왕국 선포일(국경일) : 1932.9.23

■ 수 도 : 리야드(Riyadh주 인구 약 567만명, 2014년)

■ 면 적 : 약 215만㎢(한반도의 약 10배)

■ 인 구 : 약 3,077만명(사우디인 2,070만명, 외국인 1,007만명) ※ 사우디 중앙통계국 발표(2015.2.1)

■ 종 족 : 아랍족(베두윈족 27%, 기타 아랍정착민 73%)

■ 공 용 어 : 아랍어(영어 통용)

■ 종 교 : 이슬람교(순니파 90%, 시아파 10%)

■ 정부형태 : 이슬람군주국(국왕중심제)

◦ 국가원수 : 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 King Salman bin Abdulaziz Al Saud(총리 겸임)

■ 의 회 : 국정자문회의(Majlis Ash-Shura)

■ 정 당 : 없음

■ 사법제도 : 꾸란 및 샤리아(이슬람법)가 재판의 기본, 3등급의 법원 및 사법감독위원회 존재

■ 주요경제지표(2014.12월 사우디 재무부 발표)

◦ GDP : 7,520억불

◦ 실질 GDP 성장률 : 3.59%

◦ 물가상승률 : 2.3%(생활비지수 기준)

◦ 실업률 : 11.8%

(14)

◦ 공공부채 : 443억불

◦ 경상수지 : 1,064억불 흑자

◦ 무역수지 : 2,103억불 흑자(수출 3,596억불, 수입 1,504억불)

■ 군사제도 : 지원병제

■ 기 후 : 고온건조한 대륙성기후

(연 평균 섭씨 32-34도, 최고 54도, 최저 0도)

■ 사회관습 : 이슬람 국가중 가장 엄격한 이슬람 관습 유지

나. 자연환경

1) 지정학적 위치

◦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걸프만, 서쪽으로 홍해와 인접해 있다. 인접국가로 북쪽으로는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동쪽으로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남동으로는 오만, 남쪽으로는 예멘과 접해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 수단,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와 인접해 있다.

◦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로 토양은 척박하며, 내륙지방은 혹서 기후로 극도로 건조하며, 해안지방은 습한 기후가 병존한다.

≫ 사막지대

(15)

2) 지형 특색

◦ 헤자즈(Hejaz)

- 요르단의 아카바(Aqaba) 만과 메디나(Medina) 사이에 뻗쳐 있는 해안 지방으로 헤자즈 동부는 강우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농경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 아시르(Asir)

- 티하마(Tihama)라 불리는 홍해연안 평야중 북위 20도 이남의 좁게 뻗은 다습한 고원지역(해발 1,500m, 연간 강우량 150-300㎜)으로 농경지로의 개발이 가능하다.

- 예멘과 접경한 아시르州를 산악 지역의 자연경관을 이용, 사우디 제일의 관광 지역으로 개발하기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나지드(Najd)

- 수도 리야드 주변의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를 말하며, 오아시스 농경 지역으로 유명하다. 석유 수입의 증대로 인해 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있다.

◦ 룹 알-칼리(Rub'al-Khali)

- 오만 및 예멘과 접하고 있는 남부 사막지방으로 면적이 50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사막중 하나이며, ‘The Empty Quarter’ 라고도 불린다.

◦ 하사(Hasa)

- 오만의 무산담(Musandam) 반도와 샤트 알-아랍만(Shatt Al-Arab, 이란, 이라크 및 쿠웨이트 연결) 사이에 뻗쳐 있는 해발 200m 이하의 해안지방으로(사우디 내에서는 쿠웨이트와 카타르 사이의 해안지방 의미), 대량의 석유자원이 매장된 지역이다.

◦ 나푸드(Nafud)

- 사우디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북부(요르단 인접지역)에 위치하며, 여름기온이 49℃에 달하나 겨울에는 서리가 내릴 정도로 기온이 낮다.

(16)

3) 기후와 강우량

◦ 아열대 고기압 지대의 영향을 받아 남서부지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불볕 더위이며, 강우량이 미미한 전형적인 사막형 기후이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크며,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밤낮의 기온차도 심하다.

◦ 기온

- 홍해연안 : 아열대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11-12월)에는 따뜻하며 때때로 비가 내린다.

- 중부 및 북부 내륙지방 : 사막성 기후로 기온은 연평균 32-38℃이고 최고기온은 48℃이다. 여름은 건조하고 무더우나 겨울에는 0℃까지 내려간다. 대륙성 기후 영향으로 여름에 해가 지면 서늘하고, 때때로 강한 북동풍이 불어 많은 먼지와 모래바람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 동부 걸프연안 : 열대성 기후로 연중 무더위가 계속되며, 여름에는 때때로 기온이 43℃ 이상까지 올라간다.

4) 민족구성

◦ 토착민인 아랍인(약 2,070만명) 외에 파키스탄,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제3국인(약 1,007만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5) 주요도시

◦ 리야드(Riyadh)

- 최근 도시인구가 급증한 인구 약 570만명의 사우디의 정치 및 행정수도 이다.

≫ 리야드

(17)

◦ 젯다(Jeddah)

- 인구 약 350만명의 사우디 최대의 상업 항구 도시이다. 홍해에 면해 있으며 리야드보다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 매년 약 수백만명의 성지 순례객이 항공 및 선박편을 이용하여 젯다를 통해 입출국하고 있다.

≫ 젯다

◦ 담맘(Dammam)

- 동부해안에 위치한 유전, 군사도시이자 젯다에 이은 사우디 제2의 무역 항이다.

- 담맘은 인구 약 80만명의 사우디 동부 최대의 도시로, 주변도시 알- 코바르(Al-Khobar), 다흐란(Dhahran) 등을 포함하는 경우, 인구 약 200만명 규모의 큰 도시이다.

≫ 담맘 코니쉬 해안지역

◦ 메카(Mekkah)

-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태어나고 알라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전파

(18)

◦ 메디나(Medina)

- 선지자 무함마드가 초기 무슬림들과 함께 메카 지배세력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도시로, 이슬람 제2의 사원인 선지자 무함마드 사원이 위치해 있다.

≫ 메카

≫ 메디나

◦ 타이프(Ta'if)

- 메카에서 100km 남동쪽 해발 1,879m에 위치한 도시로 사우디 왕실의 많은 휴양지가 위치해 있다.

≫ 타이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 국왕별장

6) 종교

◦ 국민의 대부분이 정통 이슬람 교리에 따른 엄격하고 검소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슬람 순니파(90%)가 대부분이나 동부지역 등을 중심으로 일부 시아파(10%)도 존재한다.

(19)

2 약 사

가. 역사개요

◦ 아랍족의 발상지는 중앙아라비아와 북아라비아이며,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에서는 기원전 4-5천년 전에 이라크 남부에서 이주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기원전 약 500년경 나바트인(Nabateans)들이 메데인 살레(Madain Saleh, 사우디 타북(Tabuk) 남쪽 160km지점)를 주요 거점으로 아라 비아 반도 북부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 고대부터 홍해 연안 대상로를 따라 대상인 상대 정착도시가 활성화되었고,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7세기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면서 사우디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609년 메카에 거주하던 꾸라이시(Quraysh)家의 무함마드가 알라 (Allah)의 계시를 받아 612년부터 알라를 유일신으로 설교하면서 이슬 람교를 창시했다.

- 622년 무함마드가 메카에서의 박해를 피해 추종자들과 메디나로 본거 지를 옮긴 것을 히즈라(Hijra)라고 하며 이 해를 이슬람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744년 리야드 인근 디라이야(Diraiya)를 근거지로 한 나지드의 지도자 무함마드 빈 사우드(Mohammad bin Saud)와 엄격한 종교생활을 요구한 종교학자 무함마드 빈 압델-와하브(Mohammad bin Abdel-Wahhab)가 제휴함으로써 시작되었다.

- 오늘날까지 사우디 왕가 합법성의 초석이 되고 있는 정통 와하비즘 (Wahabism)을 전개했다.

※ 와하비즘 : 이슬람 4대 학파중 하나인 한발리 학파(Hanbali School)에 기초, 일체의 해석을 배제하고 오로지 쿠란과 순나에 따른 정통 이슬람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창도자의 이름을 따서 와하비즘 으로 불린다.

(20)

- 19세기 초 사우드家의 군대는 성지(聖地)인 메카(1801), 메디나(1805) 및 헤자즈 지역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사우드家의 성지 장악은 즉각 오스만 터키 제국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1814년 오스만 정부는 속주인 이집트 군대에게 사우드家의 지배로부터 성지를 해방시키라는 권한을 위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1818년까지 사우드家는 아라비아 반도의 영토 대부분을 빼앗기고 수도 디라이야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 19세기 중반 파이잘 빈 투르키(Faisal bin Turki)의 지휘하에 사우드 家의 간헐적인 봉기가 시도되었지만, 오스만 정부가 경쟁자인 하일 (Hail) 지역의 알-라쉬드(Al-Rashid) 부족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좌절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우드家는 쿠웨이트로 일시적으로 피신했다.

◦ 압둘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이븐 사우드(Abdel-Aziz bin Abdelrahman Ibn Saud)가 1902년 알-라쉬드家로부터 리야드를 재탈환함으로써 사우디 재건의 기반을 확보하였다.

- 1902년과 1906년 : 나지드 지배 강화

- 1913년 : 알-하사(Hasa)지역으로 오스만 주둔군을 추방함으로써 지배권 확대

- 1917년 : 압둘아지즈, 스스로 나지드의 술탄(Sultan)으로 선언

- 1926년 : 메카를 지배하고 있던 하심(Hashemite)家의 후세인(Hussein) 왕을 축출한 후 히자즈(Hijaz) 왕국 선포

- 1932년 : 나지드 및 히자즈를 통합,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선포

◦ 1953년 압둘아지즈의 사망 이후 그의 아들중 사우드(Saud)가 왕위를 계승 하였으나, 통치능력의 부족으로 1964년 11월 폐위되고, 이복형제 파이잘 (Faisal bin Abdel-Aziz)이 왕위를 계승하여 사우디 제3대 국왕으로 취임 하였다.

- 파이잘은 대내적으로 기본법제정, 지방통치규정제정, 사법기구설립, 경제 개발추진, 사회보장제도구축 등을 추구하여 사우디의 근대화를 실현 하고자 노력하였다.

- 대외적으로는 인접한 아랍 국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사우디의 국제적 지위 향상에 공헌하였으며, 특히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하여 1973년 OPEC의 석유금수조치를 주도하였다.

(21)

◦ 1975년 3월 파이잘이 조카에게 암살당하자, 이복동생 칼리드(Khalid)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 1982년 6월 칼리드 국왕이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이복동생 파흐드(Fahd) 왕자가 제5대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 1992년 3월 파흐드 국왕은 사우디의 정부체계, 자문회의(Majlis Al-Shura) 및 지방행정 등을 규정한 기본법(Basic Law) 제정에 관한 칙령을 공표하였다.

◦ 2005년 8월 1일 파흐드 국왕 서거로 이복동생인 압둘라(Abdullah) 왕세제가 제6대 국왕에 취임하였다.

◦ 2015년 1월 23일 압둘라 국왕 서거 후 살만 왕세제가 제7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나. 정치약사

1) 고대

◦ 무함마드의 탄생 이전 고대 예멘 국가(아라비아 반도 남서부 하드라마트 지방)에서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하였다.

2) 중세

◦ 570 메카에서 무함마드 탄생

◦ 622 무함마드, 메카에서 메디나로 본거지 이주(히즈라 원년)

◦ 632 무함마드, 메디나에서 사망, 초대 칼리파 아부바크르 취임

◦ 634 제2대 칼리파 우마르 취임

◦ 644 우마르 피살, 제3대 칼리파 오스만 취임

◦ 656 오스만 피살, 제4대 칼리파 알리 취임(무함마드 사촌)

◦ 661 알리 피살, 우마이야 왕조 시작

(22)

◦ 750 우마이야 왕조 패망, 압바스 왕조 시작

◦ 1099 십자군 전쟁

◦ 1258 몽고군, 바그다드 공략

◦ 1325 오스만 터키군, 유럽 진출

◦ 1453 오스만 터키군, 아라비아 반도 지배

3) 근대

◦ 1744 무함마드 빈 사우드는 무함마드 빈 압둘-와하브와 제휴, 정통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사회개혁운동을 통해 제1기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기반을 구축

◦ 1811-1818 무함마드 알리 이집트 총독, 사우디-와하비 세력 진압

◦ 1843-1865 파이잘 이븐 투르크가 제2기 사우디 왕국의 기반을 구축 하였으나, 1865년 파이잘 사후 내분으로 급격히 세력 약화

◦ 1890 하일 지역의 라쉬드家(사우드家의 라이벌)가 오스만 터키의 지원하에 리야드 점령

◦ 1902 건국의 아버지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리야드 탈환 - 1917년 자신을 나지드의 술탄으로 선언

- 1924년 메카 점령 - 1925년 젯다 점령

4) 현대

◦ 1926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히자즈 왕국 선포

◦ 1927 젯다 조약으로 영국의 승인 획득

◦ 1929 이크완(Ikhwan) 반란군 진압

◦ 1932 나지드 및 히자즈 통합, 국명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개칭

(23)

◦ 1938 미국 회사에 의해 동부 지역(담맘)에서 석유생산 성공

◦ 1945 아랍 연맹 및 유엔 가입(원가맹국)

◦ 1953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 서거, 사우드 제2대 국왕 즉위

◦ 1964 사우드 국왕 폐위, 파이잘 제3대 국왕 즉위

◦ 1973 파이잘 국왕, OPEC 석유 금수조치 주도

◦ 1975 파이잘 국왕 피살, 칼리드 제4대 국왕 즉위

◦ 1979 동부 시아파 소요사태 발생

◦ 1981 걸프협력이사회(GCC) 창설

◦ 1982 칼리드 국왕 서거, 파흐드 제5대 국왕 즉위(압둘라 왕세제 책봉)

◦ 1987 메카내 이란 성지순례자들의 데모로 순례자 400여명 사망

◦ 1990 걸프전 발생, 미군 사우디 주둔

◦ 1992 파흐드 국왕, 왕위 승계권 관련 칙령 발표 형제 승계에서 아들 승계로까지 범위 확대

◦ 1994 국정자문회의 설치

◦ 2001.9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및 미 국방부 테러사건에 사우디 아라비아인 다수 개입

◦ 2002.2 압둘라 왕세제, 아랍 평화안 제안

◦ 2005.2 사우디 최초 지방의회의원선거 실시

◦ 2005.8.1 파흐드 국왕 서거, 압둘라 제6대 국왕 즉위

◦ 2015.1.23 압둘라 국왕 서거, 살만 제7대 국왕 즉위

(24)

3 정치제도

가. 권력구조

1) 국 왕

◦ 국왕은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며, 종교의 수장을 겸직한다. 이슬 람에 대한 대표성과 책임감을 강조하기 위해 1986년(파흐드 국왕 당시) 이후부터 ‘성스러운 2대 사원의 수호자(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 국왕이 왕세제직을 임명하거나 박탈할 수 있으며, 왕세제직은 종교 지도자 회의(Ulama)와 왕족으로 구성된 왕실위원회 및 승계위원회(Allegiance Committee)의 승인으로 확정된다.

◦ 1992년 파흐드 국왕 칙령으로 왕권은 왕의 형제 외에도 직계 아들이 승계 할 수 있도록 승계 범위가 확대되었다.

2) 내 각

◦ 국왕이 왕실위원회와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를 주재, 국정을 총괄 한다.(파이잘 국왕 이래 국왕이 총리직 겸직)

◦ 현재 살만 국왕이 총리를 겸임하고 이복형제인 무그린 왕세제가 제1부총리, 무함마드 나이프 내무장관이 제2부총리 겸 제2왕세제에 임명되어 있다.

◦ 내각회의는 총리, 제1․2부총리, 23개 중앙부처 장관과 7명의 무임소장관 등 31명으로 구성된다.(2013.5.27. 국가방위군이 국가방위부로 격상) - 매주 월요일 각료회의 개최

◦ 국왕이 직접 내각과 군 주요 인사를 임명 할 수 있다.

(25)

3) 국정자문회의(Majlis Ash-Shura)

≫ 국정자문회의

가) 설립 : 1992년 국왕 칙령에 의해 Ash-Shura법 제정 및 설립 ※ 1927년 최초로 Ash-Shura법 제정

나) 구성 : 국왕이 임명하는 의장 1명 및 의원 150명으로 구성

- 1996년 60명에서 90명, 2001년 120명, 2005년 150명으로 증원 다) 의원임명관련

◦ 자 격 : 30세 이상의 사우디 국민

◦ 공무원 겸직 금지

◦ 임기는 4년으로 새로운 의회가 구성될 때는 신임 의원수가 전체 의원 수의 50% 이상이 되어야 함.

◦ 의원들은 전직각료, 공무원, 의사, 기업인, 군인, 학자, 언론인 등 사회 각계 전문가 그룹에서 임명

- 총원의 20%인 30명을 여성에게 할당토록 규정을 개정(2013.1.11)

◦ 결원 발생시 의원을 추가로 임명, 의원 수는 상시 150명 유지 라) 주요 기능

◦ 심의・자문기능

- 경제・사회개발 정책심의

- 법률, 국제법, 조약 등에 관한 심의 및 법의 해석 - 정부 각 부처의 연차보고서 심의

◦ 법률 제・개정

- 10명 이상의 의원 발의로 법률 제․개정 제안

(26)

마) 정족수

◦ 회의 : 의장을 포함한 의원 2/3 이상 참석

◦ 의결 : 과반수 찬성 바) 의결사항의 처리

◦ 정부 부처에서 자문위원회에 의견 검토 요청

◦ 각 전문위원회에서의 심의 후 자문위원회 의결

◦ 의결된 사항은 일단 각료회의로 송부

- 각료회의 동의가 있을 경우, 국왕의 승인을 거쳐 효력발생 - 각료회의 동의가 없을 경우, 국왕이 결정

사) 의장

◦ 의장은 국정자문회의의 모든 활동을 감독하고 동 기구를 대표

◦ 의장 밑에 부의장 및 사무총장을 둠.

아) 회의

◦ 매주 2회 정기의회 개최(매주 일, 월요일)

◦ 의원이 발언을 위해서는 서면으로 신청 필요 - 발언시간 : 10분 이내

※ 국왕은 매년 초 국왕자문회의에 참석, 개회 및 시정연설 실시 자) 위원회

◦ 운영위원회 : 국왕자문회의 의장, 부의장 및 각 위원회 위원장으로 구성 - 의장이 의사결정권자

- 국왕자문회의 및 각 위원회 운영계획 준비

- 국왕자문회의 회의 의제 준비 및 회의 결과보고서 작성 관리 등

◦ 전문위원회(Specialized Committees)

- 5개 이상(현재는 8개)으로 각 전문위원회는 소위원회 구성 가능 - 상임위원회로서 8-13명의 위원으로 구성

◦ 필요에 따라 임시위원회 구성

◦ 각 위원회는 주1회 회의 개최

(27)

4) 사법부

가) 이슬람법

◦ 사우디의 법은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와 규율(regulations)로 구별 된다. 이슬람에서는 국왕이 법률을 제정할 수 없고, 다만 알라(Allah)가 내려준 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규율을 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 그러나 샤리아와 규율이 상치될 때에는 샤리아가 우선한다. 규율은 왕국의 최고 집행기관인 국무회의를 거쳐 제정되고 왕령으로 승인된다.

나) 이슬람법의 분류

◦ 샤리아는 네 가지 근거, 즉 꾸란(Quran), 순나(Sunna), 이즈마(Izma), 끼야스(Qiyas)에서 비롯되었다. 이중 꾸란(이슬람 경전)이 가장 기초가 되고 중요한 원천이나, 판사가 판결을 할 때 보다 더 필요한 지침이 요구되는 경우 순나에서 인용할 수 있다.

◦ 순나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본으로 하는 무슬림의 생활방식으로 하디스 (Hadith)에 기록되어 있으며, 하디스는 9세기경 체계적으로 수집되었다.

◦ 이즈마나 끼야스는 꾸란이나 순나보다는 덜 중요한 것으로 이즈마는 꾸란이나 순나에 의해 직접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종교학자들이 합의한 사항을 말하며, 끼야스는 앞의 세 가지 근거에 의해서도 명백한 판결이 불가능할 경우, 이에 대한 유추 해석을 의미한다.

(28)

다) 사법부 조직

◦ 샤리아와 규율에 의거, 재판하는 3심의 법원이 있고, 사법감독위원회가 법원을 감독한다.

- 대법원 : 수도 리야드에 소재 - 상급재판소 : 13개주 주도에 소재 - 초심원 : 전국 주요도시(시, 군)에 산재

※ 최고사법감독위원회(Special Judicial Council) : 메카 소재 ․ 위원장 : 국왕

․ 위 원 : 국왕이 임명하는 권위 있는 이슬람 법학자들로 구성

◦ 한편, 압둘라 국왕은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이래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 한 바 있다.

나. 행정각부

국왕 겸 국무총리 King 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왕세제, 제1부총리 Prince Muqrin bin Abdulaziz Al Saud

제2왕세제 겸 제2부총리 Prince Muhammad bin Naif bin Abdulaziz Al Saud 외교부장관 Prince Saud Al-Faisal bin Abdulaziz Al Saud 내무부장관 Prince Muhammad bin Naif bin Abdulaziz Al Saud 국가방위부장관 Prince Miteb bin Abdullah bin Abdulaziz Al Saud 국방부장관 Prince Mohammed bin 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지방행정부장관 Abdullatif bin Abdulmalik bin Omar Al Al-Sheikh

이슬람업무담당장관 Sheikh Saleh bin Abdulaziz bin Mohammed bin Ibrahim Al Al-Sheikh

교육부장관 Azzam bin Mohammed Al-Dakhil

법무부장관 Dr. Walid bin Mohammed bin Saleh Al-Samaani 석유・광물자원부장관 Ali bin Ibrahim Al-Naimi

교통부장관 Abdullah bin Abdulrahman Al-Muqbel 상공부장관 Tawfig Fawzan Alrabiah

사회부장관 Majed bin Abdullah Al-Qassabi

경제・기획부장관 Muhammed Bin Sulaiman Bin Mohammed Al-Jasser 보건부장관 Ahmed bin Aqeel Al-Khatib

문화・공보부장관 Adel Al Toraifi

(29)

노동부장관 Adel Mohammad Fakeih 행정부장관 Khalid bin Abdullah Al-Araj 재무부장관 Ibrahim bin Abdulaziz Al-Assaf 수전력부장관 Abdullah bin Abdulrahman Al-Hussein 농업부장관 Adel bin Mohammed bin Abdulqadir Faqih 하지장관 Bandar bin Mohammed bin Hamza Asaad Hajjar 정보기술통신부장관 Mohammed bin Ibrahim Al-Suwaiyel

주택부장관 Shwaish bin Saud bin Dhwaihi Al-Dhwaihi 무임소장관(Minister of State)

Chief Cabinet Secretary Prince Abdulaziz bin Fahd bin Abdulaziz Al Saud Political Affairs(정무담당) Muttalib bin Abdullah Al-Nafisah

Shura Affairs(의회담당) Saud bin Saeed Al-Met'hami Cabinet Affairs(각의담당) Abdulaziz bin Abdullah Al-Khuwaiter Foreign Affairs(외교담당) Nizan bin Obeid Madani

Foreign Trade(통상담당) Musaad bin Mohammad Al-Aiban

다. 지방제도

◦ 지방행정조직

- 사우디는 13개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주지사는 왕실에서 임명한 왕자가 맡고 있다. 각 주는 내무부장관이 임명하는 정원 30명의 주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 지방행정자문회의(Municipality Council, 우리의 지방의회에 해당)

- 전체 의석(1,184석)중 1/2에 해당하는 592석에 대해 2005년 2월부터 3단계에 걸쳐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 2005년 12월 선출직 의원 592명과 임명직 의원 592명으로 구성된 178개의 지방행정자문회의를 구성하였다.

- 상기 지방행정자문회의 선거는 압둘라 전 국왕이 추진 중인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사우디 역사상 실시된 최초의 주민직접선거이며, 2015년 지방선거부터 여성의 참여를 추진하였다.

(30)

4 정치정세

가. 국내정치정세

1) 개 요

◦ 2015년 1월 압둘라 국왕의 서거(1.23) 이후 왕위를 계승한 살만 국왕은 취임 후 왕실 계파간 화해 및 점진적 정치・경제개혁과 민생정책간 조화, 미국 등 서방, 아시아 및 아랍・이슬람 국가와의 관계강화 등을 통한 국정 운영으로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지향하고 있다.

◦ 중장기적으로 살만 국왕 하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이 안정적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① 왕실 지도부의 후계구도 관련 계파간 갈등 가능성,

② ISIL, 알카에다(AQAP) 등 이슬람 테러조직에 의한 안보위협, ③ 동부 시아파 이슬람 강경세력의 반정부활동, ④ ‘아랍의 봄’ 이후 사회개혁 요구와 고실업률 및 빈부격차 등 난제들을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 주요 정책 동향

가) 왕실 화합 도모 및 후계 구도 안정화

◦ 살만 국왕은 압둘라 국왕 서거 이후 왕위를 계승하고, 제2왕세제인 무그린(초대국왕의 막내아들)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한편, ‘수다이리’

가문의 무함마드 나이프 내무장관(나이프 前 왕세제 아들)을 제2왕위승 계자(살만 국왕의 조카)로 임명하는 등 차세대 왕위승계 구도를 조기에 확정함으로써 안정적 국정운영을 도모하고 있다.

- 국왕 또는 왕세제 서거시 제2왕위승계자 겸 제2부총리가 왕세제 겸 제1부총리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승계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31)

※ 수다이리 7형제 : 사우디 왕가의 건립자 압둘아지즈 국왕이 총애한 부인 하싸 빈트 아흐메드 알-수다이리(Hassa bint Ahmed Al-Sudayri)가 낳은 자식들

◦ 살만 국왕은 2015.1.23 즉위 후 왕세제 및 제2왕위승계자와 함께 무함마드 살만 왕세제실장(살만 국왕의 아들)을 국방장관 겸 왕실비서 실장으로 임명하고, 1.29일 개각을 통해 10여개 중앙부처 장관을 신규 임명함.

나) 대국민 화합 도모 및 점진적 정치・경제개혁 추진

◦ 살만 국왕은 왕실 및 보수세력과의 화합을 통한 안정적인 통치기반 확립을 위해 보수 및 개혁을 조화한 완만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 하고 있다.

- 사우디는 인구의 다수가 정통 이슬람(Wahabism)을 신봉하는 보수적 성향으로, 왕정은 점진적인 정치·경제·사회개혁과 함께 이슬람 가치를 보존하는 등 조화로운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 언론・방송 등 대중매체와 트위터 등 SNS를 통하여 직접 국민에게 다가가는 홍보 정책을 통해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 사우디 정부는 압둘라 국왕 집권 당시 완만한 정치·경제 개혁정책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일부 진전을 이루었다.

- 2005년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우디 역사상 최초로 주민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선출직 의원(592명)과 임명직 의원(592명)으로 2005년 12월 지방의회를 구성하였다.

- 사상 최초로 리야드 상공회의소 이사회 여성 임원 2명, 교육부 여성 교육 담당 차관 등 여성을 공직에 기용하고, 2013년에는 국정자문 회의(슈라) 총원의 20%(30명)를 여성에 할당하는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경제개혁 분야에서도 비석유부문 및 민간부문 추가 개방 등의 조치를 통한 외자유치 및 고용증대를 노력하고 있다.

- ‘King Abdullah 경제도시’ 등 다수의 신도시 건설, 다수의 지방국립 대학 신설, 서민층을 위한 보건 복지정책 확대 추진 등의 정책을

(32)

≫ ‘King Abdullah 경제도시’ 건설

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과격세력의 테러리즘 척결

◦ 제2차 이라크 전쟁이후 테러사건이 빈발하였으나, 사우디 정부는 2000 년대 중반 이후 미국 등 서방과의 공조 하에 강력한 테러 소탕작전을 전개한 결과, 테러조직이 와해되고 핵심요원은 예멘 등 해외로 도피한 상태이다.

- 사우디 내무부는 예멘 등에서 조직을 재정비한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 (AQAP) 등 반정부 테러 조직에 대한 검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 사우디 동부 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시아파 무슬림으로 사우디 정부의 차별정책에 대한 불만이 있고 순니파 무슬림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간헐적으로 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 사우디는 2014년 3월 강화된 대테러법이 발효되고,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시리아의 알누스라전선 및 ISIL,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 예멘 북부 후티 반군 등을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등 국내외 테러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라) 실업 및 빈부격차 해소 노력

◦ 살만 국왕은 즉위 이후 부패척결, 정의실현 및 국민 복리증진을 민생을 위한 최우선 정책으로 채택하여, 부의 공정한 배분을 통한 빈부격차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 사우디의 실질 실업률은 약 12%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으며(청년실업 약 40% 추정), 민간분야 고용을 외국인이 약 90% 점하고 있어 청년 실업해소가 경제분야에서 현안이 되고 있다.

(33)

- 사우디 정부는 실업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자국인화 정책을 추진, 75%의 산업인력을 자국인화 한다는 목표 하에 자국인 고용 의무 비율을 상향조정하고 외국인 채용제한 업종을 늘려나가고 있다.

- 청년들의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의 수요를 반영한 교과과정 개편을 위해 교육개혁도 추진 중이다.

- 또한, 사우디 정부는 2006년 압둘라 국왕 재임 당시부터 18만명의 해외 국비유학생(King Scholarship Program)을 지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2014년말 기준 약 600여명의 사우디 국비 유학생이 수학 중이다.

마) 민심정책

◦ 사우디 정부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지역 국가들의 민중봉기 이후 약 360억불 규모의 대국민 경제 지원책과 사법 개혁안을 발표, 사회 취약요소인 청년실업, 일반 서민들의 거주환경 문제 등 개선을 중점적으로 지원하였다.

- 사우디 정부는 2011년 3월 20여개의 국왕칙령을 통해 약 1,330억불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는 각종 복지정책을 발표하였으며, ①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립반부패기구 설립, ②신규 일자리 창출 등 실업자 지원 정책, ③공무원과 군인에 대한 복지 확대, ④의료서비스 및 주택 건설 확장, ⑤종교계 지원 강화 등을 요지로 하였다.

- 또한, 살만 국왕은 2015.1.23 즉위 직후 공무원 및 사회복지혜택 수급자들에게 2개월 급여 지급, 각종 공인 자선단체 및 사회복지·

문화단체 등에 수십억 리얄(SR)을 지원 등 총 300억불 지출을 결정 하였다.

나. 대외정책

1) 외교정책 기조

◦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주권존중, 독립,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하여 ① 주변 국가들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과 선린 우호관계 유지 ② 양자, 지역간 상호 협력 증진 ③ 적대행위 금지 ④ 지역 및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34)

◦ 미국과는 압둘라 국왕 서거 후 조문외교(2015.1.27 오바마 대통령 사우디 방문) 등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ISIL 부상 이후 대테러 국제공조를 강화하고 주변 걸프·아랍제국과의 안보협력, 유가안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이슬람 성지 소재지로서 위상과 풍부한 재정적 여력을 토대로 국제 및 지역기구에서 아랍・이슬람 세력을 대변하고 동 국가들에 대한 정치, 경제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사우디의 국제적 비중 및 위상을 제고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 걸프지역 역내 왕정체제 유지와 정세 안정을 위해 역내 주요국들에 대한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대외정책을 간접적으로 행사해 왔으며, 근래에는 시리아, 이란, 예멘, 바레인 등 역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주요 외교 사안별 입장

가) 아랍 이스라엘 분쟁(일관된 팔레스타인 입장 지지)

◦ 사우디 정부는 2002년(압둘라 왕세제 당시) 아랍평화안(Arab Peace Initiative)을 제안하고, 범아랍권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 동 구상은 유엔 안보리 결의 242 및 338에 근거한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지지하며, ‘land for peace’ 원칙에 입각, 1967년 이후 점령한 모든 아랍 점령지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를 주장하고, 궁극적 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아랍연맹 정상회의, GCC 정상회의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아랍평화안 수용을 촉구하고, 팔레스타인 입장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35)

나) 대테러

◦ 사우디는 2003-04년 자국내 동시다발적인 테러사건 이후 대테러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2005년 ‘대테러국제회의’(리야드), 2014년 반 ISIL 주요 아랍국가회의(젯다) 등 국제공조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 사우디는 2005년 테러국제회의에서 참가국들은 리야드 선언을 채택 하고 ‘대테러 국제센터’ 설립을 결의한 바 있으며, 2014년 대테러 관련 유엔에 대한 재정적 기여 등 대테러정책에 앞장서고 있다.

◦ 사우디는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는 용인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2014년 2월 압둘라 국왕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전하거나 극단 주의 테러단체에 참여한 자국민에 대해 처벌을 강화한 왕령을 발표하였 으며,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성직자들에 대한 사상적 통제도 점차 강화하고 있다.

다) 역내 사회적 변혁에 따른 정세불안 대응

◦ 사우디 정부는 2011년 이후 중동지역 민중봉기 초기부터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망명접수, 이집트 국민들의 선택 존중 발표, 바레인 정세불안 발생시 반도방위군 파병 주도, 요르단과 모로코에 대한 재정적 지원, 시리아 사태관련 적극 대응, 예멘사태 관련 GCC 중재안 제안 등 역내 정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오고 있다.

◦ 사우디 정부는 역내 민중봉기가 사우디내 불만세력을 자극하지 않도록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역내 국가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 주력하여 대외적으로 이슬람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이집트 무르시 정권의 실각과 군부의 재등장 이후, 이집트 군부 과도 정부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2013년 3월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무슬림형제단의 역내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36)

3) 주요 국가와의 관계

가) 대미 관계

◦ 9·11테러 이후 양국관계가 다소 소원해지기도 하였으나, 사우디와 미국은 안보·대테러 필수 협력국으로서, 특히 이라크 전쟁시 사우디가 전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양국 지도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2003-04년 동시다발적 테러 사건으로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들이 사우디를 직접 공격목표로 겨냥하면서 사우디 정부는 대테러 관련 미국과 대응 공조 및 양국관계 강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복원 하였다.

- 양국은 2005년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정부간 회의체로

‘사우디-미국 전략대화’ 창설에 합의, 제1차 회의를 2005년 11월 젯다에서 개최하고, 제2차 회의를 2006년 5월 워싱턴에서 각각 개최하였으며, 정상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 2010년 9월 사우디가 미국산 첨단 무기(약600억불)를 구매하였으며, 국방·방산분야에 있어서 양국은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오마바 대통령의 대중동 정책 및 사우디의 역할 배려를 평가(‘09.6월 오마바 대통령 방문, ’10.6월 압둘라 국왕 방미, ’14.3월 오바마 대통령 방문, ’15.1월 오바마 대통령 압둘라 국왕 서거시 조문 방문)

◦ 2013년 미국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공격 유예 및 시리아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 반대, 미국-이란간 대화를 통한 이란 핵문제 해법모색을 위한 미측의 접근 과정에서 사우디와 미국간 이견이 표출 되기도 하였다.

나) 유럽 및 러시아와의 관계

◦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와 긴밀한 군사 및 경제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테러리즘 공조 등 협력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 프랑스는 시리아, 이란 문제 등 지역현안에서 사우디 입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2013년 12월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2014년 9월 살만 국왕(당시 왕세제)의 프랑스 방문 등 양국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2015.1.23 압둘라 국왕 서거 당시 올랑드 대통령이 조문 방문)

(37)

◦ 2003년 9월 당시 압둘라 왕세제가 러시아를 방문한 바 있고(동 방문은 사우디로서는 1936년 이래 최초의 역사적 방문으로 평가), 그동안 이데올로기 차이, 사우디의 구소련 당시 아프간 반군지원, 체첸 반군 지원 등으로 소원해진 양국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 다만, 사우디는 시리아, 이란 문제 등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한편으로, 러시아의 입장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군사무기 구매계약 등 양면적 외교를 병행하고 있다.

다) 아시아와의 관계

◦ 사우디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소위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추구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 2006.1-2월 압둘라 국왕,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및 파키스탄 방문

- 2006.4월 술탄 왕세제, 일본 및 싱가포르 방문 - 2006.4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 사우디 방문 - 2007.3월 노무현 대통령, 사우디 방문 - 2010.2월 싱(Singh) 인도총리, 사우디 방문 - 2012.2월 이명박 대통령, 사우디 방문

- 2014.2-3월 살만 왕세제, 파키스탄, 일본, 인도, 몰디브, 중국 방문

라) 주변국들과의 관계 ■ 정책기조

◦ 이슬람, 아랍 국가들과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57개 이슬람국가들의 회의공동체인 이슬람협력기구(OIC) 본부가 사우디 젯다에 소재한다.

◦ 특히 팔레스타인 등 중동 문제에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이익 대변을 통해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의 비중과 위상을 견지하고 있다.

(38)

■ GCC 국가들과의 관계

◦ 걸프협력이사회(GCC) 최대 회원국으로서 이란의 위협에 맞서 GCC 공동 방위정책 등 걸프연합 결성을 주도하고 있다.

- 불편한 관계였던 카타르와 2008년 국경협정서명, 공동위 설치 등을 통해 관계가 개선되었으며, 카타르의 무슬림형제단 지원을 둘러싼 GCC 회원국간 갈등은 사우디의 중재로 2014년말 완화되었다.

◆ GCC 군사협력

1. 반도방위군(Peninsula Shield Force)

◦ ‘82.10 창설 이래 동 군대가 기갑보병대로 발전, 각 회원국 군대와 정기 합동훈련을 시행중이며, 동 군대 현대화와 전투적・기술적 효율 제고를 위한 연구가 지속 진행중

2. GCC 공동방위협정 체결

◦ '00.12 바레인 개최 정상회의에서 서명한 협정으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이나 위협을 GCC 전체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여 공동 자위(自衛)하기로 약속

◦ ① GCC 헌장 준수, 아랍연맹·UN 헌장 존중, ② 군사협력 강화, ③ 개별적・

집단적 방위 역량 개선, ④ 합동 군사훈련 지속, ⑤ 방산기지 설립 및 개발 등을 규정

3. GCC 통합군사령부 추진

◦ '14.12 도하 개최 정상회의에서 역내외 안보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GCC 통합군사령부 창설(리야드 소재), 연합해군본부(바레인 소재), 통합걸프경찰(GCC-POL, 아부다비 소재) 창설 방안 등에 대해 협의

■ 이라크

◦ 사우디는 이라크내 시아파의 영향력 증대가 자국 및 GCC 역내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북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 2014년 중반 이후 ISIL 발호로 시아파인 말리키 정부가 퇴진하고 이라크 정권이 교체되면서 2014년 11월 이라크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등 고위인사 교류가 재개되고, 이라크 주재 사우디 대사관 재개설 등 양국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9)

■ 이란

◦ 이란 핵개발이 자국 및 GCC 역내 안보를 크게 위협한다는 인식하에 중동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이란이 핵문제 관련 국제법을 준수하고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외교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P5+1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기본적 으로 환영하지만, 이란의 핵개발 야욕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며, 진정한 비핵화 이행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대이란 제재 완화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예멘

◦ 걸프전 당시 예멘의 이라크 지지 및 국경분쟁 등으로 사우디와의 관계 에서 경색을 초래하였으나, 2000년 6월 신국경협정이 체결되면서 정치적 화해가 조성되고 재정원조 및 인적교류를 재개하였다.

◦ 2006년 6월 당시 술탄 왕세제의 예멘 방문을 계기로 양국 내무장관간 국경획정(1,845Km)에 서명함으로써 국경분쟁을 종결하였다.

◦ 예멘 정부의 치안능력 약화는 사우디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알-카에다 세력, 후티(Houthi) 반군세력)을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정국 안정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 2014년 예멘 정세불안이 악화되면서 사우디는 예멘의 안정회복을 위해 GCC 중재안 구상에 주도적으로 관여, 과도정부 수립 및 범국민대화를 지지하고 있으며, 예멘 문제 관련 국제사회의 해법모색을 위해 주력 하고 있다.

■ 레바논

◦ 레바논 하리리 총리의 피살 배후 문제로 관계가 악화되었으나 2010년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 등을 통해 관계가 개선되었으며, 헤즈볼라 견제를 목적으로, 2013년 레바논 정부에 대한 프랑스산 무기 구매 지원 등 레바논 정국 안정을 위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40)

■ 시리아

◦ 사우디는 2011.8월초 시리아 정부의 자국 민간인 살상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시리아 정부의 전반적인 개혁을 촉구하면서 주시리아 사우디 대사를 소환한 바 있다.

◦ 시리아 사태 초기부터 아사드 정권(시아파)의 퇴진을 위해 시리아 반정부 세력에 군사 무기를 지원한 바 있으며, 국제사회의 반ISIL연합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시리아 정권 교체를 기대하고 있다.

(41)

5 경제현황

가.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특징

◦ 세계 최대의 석유 부존 및 수출국으로, 석유부문이 정부 세입액의 약 80%를 차지하는 석유 의존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 2014년 사우디의 원유 생산능력은 일일 1,250만 배럴이며, 실제 생산 량은 일일 950만 배럴이다.

- 석유부문이 사우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초 1970년대 GDP의 80%, 정부세입의 85% 수준에서 비석유부문에 대한 육성 및 투자를 확대한 결과 현재 GDP의 40%, 정부 세입의 70∼80% 수준으로 감소 추세이다.

◦ 고유가에 기인한 막대한 재정수입의 상당부분을 사회 인프라 및 석유화학, 전력, 담수시설, ICT 등 기간산업 분야에 투자하고, 제조업의 활성화를 통해 비석유부문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는 산업 다변화 정책(Diversification)을 추진중이다.

- 2020년까지 석유화학, ICT, 천연가스 개발, 농업, 교육, 관광 등에 5,600억불, 2024년까지 전력사업 900억불, 담수산업 463억불을 투자할 계획이다.

- 2014년 6월 이후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재정수입 감소 및 재정 적자가 예상되나, 산업 다변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는 지속 추진중이다.

◦ 외국인 기업에 대한 스폰서 제도, 자국인화 정책, 불공평한 조세제도 및 불공정 관행 등은 외국인의 투자유치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외국인은 사우디 스폰서를 통해 스폰서 명의로 영업 가능하다.

- 또한 일정수준 이상의 사우디인 채용을 의무화(Saudization)하고 있어 생산성 등에 있어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42)

나. 최근 경제정세

◦ 사우디 경제는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 2011년의 이른바 아랍의 봄 사태 그리고 2012년 유로존 위기에도 불구하고, 100불 내외의 고유가를 기반으로 양호한 경제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 석유부문이 정부 세입의 70∼80%, GDP의 40% 및 수출액의 85%를 차지한다.

- 산업 대변화 정책 추진을 위해 원유세입 재원의 상당부분을 원유 및 가스개발 외에 석유화학, 전력, 담수화, 교통(철도), 교육, 복지 등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 2014년 6월 이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재정수입이 감소하여 2015년 부터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과거와 달리 감산을 통한 가격조정을 추진하지 않고 있으며, 재정지출 또한 크게 삭감하지 않고 있다.

- 사우디는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추진중이다.

◦ 2014년 경제실적으로 적극적인 정부지출에 힘입어 명목 GDP가 2013년 대비 0.5% 증가한 7,520억불이며, 실질 GDP는 3.59%의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총수출은 3,596억불(2013년 대비 4.4% 감소)이고, 총수입은 1,504억불 (2013년 대비 2.6% 감소)로 2,092억불의 무역수지 흑자(2013년 대비 5.6% 감소)를 기록하였다.

- 경상수지는 1,064억불의 흑자(2013년 대비 19.8% 감소)를 기록하였다.

- 물가상승률은 2.3%로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 공공부채는 443억불(GDP 대비 1.6%)로 2013년보다 42억불이 감소 하였다.

- 2014년 공식 실업률은 11.8%로서 2013년의 11.5%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2014년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는 사우디 정부의 재정지출 추이를 감안할 때 2015년에 GDP 대비 1.4%의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2019년 에는 GDP의 7.4%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43)

- S&P사는 사우디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재확인하였으나, 신용전망은

‘positive'에서 ’stable'로 하향조정하였다.

◦ 사우디 정부는 2015년도에도 기존의 석유의존형 산업구조를 탈피하고 보다 다변화된 산업구조로의 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확충, 인력자원 개발 및 보건․복지수준 향상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익사업에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 2014년도 실제 재정수입은 2,789억불(예산 편성안은 2,280억불), 실제 재정지출은 2,933억불(세출 편성안은 2,280억불)이다.

- 2015년도 예산은 1,907억불, 세출은 2,293억불로, 386억불의 적자 예산을 편성하였다.

◦ 특히 사우디 정부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자국민 대상 일자리 창출을 강화한다는 목표아래, 인프라, 교육, 보건 및 치안서비스, 수자원 및 하수 처리, 도로확대에 예산을 집중 편성하였다.

- 구체적으로는 교육분야에 579억불(전체 예산의 25%), 보건·사회분야에 427억불(전체예산의 18.6%), 인프라 및 교통에 168억불, 수자원 등에 160억불을 배정하였다.

◦ 사우디 정부는 2011.3.18. 국왕칙령을 발표하여 SR 5,000억(약1,335억불) 규모의 민심수습용 복지대책을 발표하였다.

- 칙령의 주요 내용(총 18개항)은 △공무원 및 군인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 (2개월분 월급), △정부 장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추가지급, △실업 수당 지급(SAR 2,000/월), △신규 주택 50만호 건설(SAR 2,500억 배정),

△주택융자한도 상향(SAR 30만→50만), △공무원 최저임금 상향 조정 (SAR 3,000/월), △병원시설 확충 및 신규 건설(SAR 160억), △치안 분야 6만개 일자리 창출 등의 민생안정 정책이다.

- 상기 조치들은 리비아, 예멘, 바레인 등 주변 지역 정세 급변에 위기감을 느낀 사우디 왕실이 민심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국내 정치적 이유가 저변에 있으나, 사우디의 만성적인 사회 문제인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부족 해소,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실업자 구제,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를 통한 사회 불안 해소 등 경제·사회적인 이유도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4)

◦ 또한, 사우디 정부는 최대현안인 실업문제(2014년 공식 실업률은 11.8%)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민 강제고용제도(Saudization)를 강화한 니타카트 (Nitaqat) 제도를 2011.6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 동 제도는 사우디 기업, 외국 기업의 구분없이 동일한 기준하에 각 기업을 사업 영역별, 규모별로 구분한 후 각각을 4개 기준(Blue, Green, Yellow, Red)으로 나누고, 사우디인 고용 의무화 비율 충족여부에 따라 인센 티브와 페널티 적용하는 등 사우디인 고용을 강제하고 있다.

- 동 제도의 영향으로 2011-2013년간 민간부문에서 고용된 사우디인 숫자가 73% 증가하여 민간부문 전체 고용인수(976만명) 대비 사우디인 비율은 15.2%(총 147만명)

- 노동부는 2015년 4월부터 더욱 강화된 니타카트(Nitaqat)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여, 사우디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 예) 건설업

10명 미만 10∼49명 50∼499명 500∼2999 3000명 이상

Red 1명 이상 1% 0-2% 0-3% 0-3%

Yellow 1명 이상 2-4% 3-5% 4-6% 4-6%

Green 1명 이상 5-24% 6-27% 7-30% 7-30%

Blue 1명 이상 25% 이상 28% 이상 31% 이상 31% 이상

※ 사우디 노동시장 현황(중앙통계정보국(CDSI) 조사 결과)

- 1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54%, 외국인 노동인구가 사우디 전체 노동인력의 76.9% 차지

- 노동인력의 2/3는 20~39세에 해당되며 이중 남성은 65.5% 차지 - 주간 노동시간은 49.1 시간

- 남성의 43.5%가 공공행정, 국방·보안분야에 종사하며, 15.1%가 교육분야에 종사 - 여성의 71.7%가 교육분야에 종사하며, 11.7%가 보건.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 - 2014년 실업률은 11.8%로서 2013년의 11.5%와 비슷한 수준

- 실업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24세로서, 동 연령대 실업율은 38.1%(남성 47.2%, 여성 42%)

・ 학사학위 소지자의 48.2%, 고교졸업자의 32.9%가 실업자

(45)

- 이와 함께, 불법 외국인노동자 단속을 2013.11.4부터 지속적으로 실시 하고 있는 바, 동 단속전 7개월간의 단속유예기간(Grace Period) 중 약 100만명의 외국인이 자진 출국하였고, 단속개시 후 2014년 2월말 현재까지 약 50만명의 외국인이 추방되었다.

- 이에 따라, 외국인이 종사하였던 일자리가 사우디인에게 일부 전환되는 효과가 나타나 실업률도 미세하게 감소(2012년 12%에서 2013년말 11.5%로 감소)하였으나, 외국인은 주로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고, 사우 디인은 사무직을 선호하여, 외국인의 일자리가 사우디인에게 전환되는 효과는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사우디 정부는 중장기적인 경제개발을 위해 5개년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는 바, 2010년 8월 총 재정 지출액 1조 4,446억 사우디 리얄(약 3,852 억불)규모의 ‘제9차 5개년(2010-14년)개발 계획’을 아래와 같이 승인하였 으며, ‘제10차 5개년(2015-19년) 개발 계획’은 2014년 9월 각료회의에서 승인되었다.

- 제10차 계획의 주요 목표는 국민 삶의 질 개선, 서비스 수준 향상, 공공시설 효율성 제고, 실업률 감축 및 일자리 확대, 여성의 사회활동 장려, 국가의 균형개발, 천연자원의 부가가치 제고, 국가소득원의 다변화 및 지속가능성 확보 등이다.

- 경제기획부는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제10차 개발계획의 상세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나, 2015년 1월 현재 상세 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 제9차 5개년 개발 계획

․ GDP 규모 : 2,936.5억불(11,012억리얄)달성

․ 경제성장률 : 매년 5.2%

․ 투자 : 매년 10.4% 성장

․ 실업률 : 9.6%에서 5.5%까지 하락

․ 석유재정수입 : 2.83% 증가

․ 전략투자분야 : 주요 4개 지역 가스 생산 프로젝트, 사우디 아람코의 원유 생산능력 및 오일 정제시설 확장 및 기타 석유화학, 철도, 광산, IT 및 통신, 전력 및 담수화 하수처리 시설 등

(46)

6 국방관계

가. 군사조직

◦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편제는 국방부 산하의 정규군(육/해/공/방공군)과 국가방위부 산하의 국가 방위군(National Guard) 및 내무부 산하의 경찰 특수부대, 국경/해안수비대로 각각 구분된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발전과정에서 정규군 외 각 지방 부족 출신으로 구성된 국가방위군(Ikhwan의 후신)을 창설, 발전시켜 왔다. 현재 정규군은 제3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을, 국가방위군은 국왕 친위군대로 대내외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 무함마드 살만 왕실 비서실장이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으며(2015.1.23 임명), 군부의 실권 및 대부분의 요직은 왕족이 차지하고 있다.

- 국가방위군은 2013년 5월 압둘라 국왕 당시 국가방위부(Ministry of National Guard)로 승격되었다.

◦ 정규군은 육군, 해군, 공군, 방공군을 단일 지휘체계화한 통합군 형태로 편성, 운용하고 있으며 총참모장(합참의장)이 각 군 사령관을 지휘한다.

나. 병역제도

◦ 병역제도 : 지원병 제도(18세 이상 남성)

◦ 사우디 기본법 제34조는 이슬람 신앙, 두 성지 및 사회 및 국가방위를 위한 국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징병제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47)

다. 병력 및 장비

1) 정규군 : 124,500명(추정치) 가) 지상군(육군) : 75,000명

◦ 3개 기갑여단, 5개 기계화 보병여단, 1개 공정여단, 1개 포병 여단 등 으로 구성된다.

- 타북 (Tabuk, 요르단 접경), 카미스 무쉐이트(Khamis Mushayt, 예멘 접경), 하프르 알-바틴(Hafr Al-Batin, 이라크 접경) 등이 주요 군사 도시이다.

나) 해군 : 13,500명

◦ 서부(홍해) 함대, 동부(걸프) 함대 운영

- 4,000톤급 프리기트 함, 2,000톤급 프리기트 함, 1,000톤급 코르 벳함 등 전투함 및 기타 고속정, 소해정 등 보유

다) 공군 : 20,000명

◦ Typhoon, Tornado, F-15 등 주력 전투기 보유

◦ AWACS 조기경보기 보유 라) 방공군 : 약 16,000명

2) 국가 방위군 : 100,000명(3개 기계화 보병여단, 6개 차량화 보병 여단 등 으로 구성)

◦ 리야드, 담맘, 젯다 등 주요 도시에 지역사령부 소재

3) 기타 준 군사 조직 : 60,000명

◦ 국경/해안수비대 : 30,000명

◦ 경찰 특수부대 : 20,000명

◦ 석유시설 방호부대 : 10,000명

(48)

라. 국방 예산 : 약 529억불(추정)로 국가 예산의 약 30%차지

마. 국방정책

◦ 이슬람 신앙, 두 성지, 사회 및 국토방위를 위한 국방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 사우디 기본법 제33조는 이슬람 신앙, 두 성지, 사회 및 국토방위를 위한 군사력을 구축, 유지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 걸프협력이사회(Gulf Cooperation Council, GCC) 회원국간 집단 안보체제 구축에 기여한다.

- 1981년 이란-이라크전 발발 및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여 GCC 국가들간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한다.

바. 군사협력 관계

◦ 사우디는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하여 외국과 군사동맹을 맺거나 외국군 기지의 설치를 허용치 않고 있다. 그러나 국가발전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왔으며, 군사부문에서도 미국의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이란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 및 석유 수송로 안전 확보 등을 위해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이 관계를 자체 국방력 강화와 함께 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 1991년 걸프전(Operation Desert Shield) 이후 미군이 주둔, 대이라크 감시작전(Operation Southern Watch)을 수행함에 따라 국내는 물론 이슬람권내 불만에 봉착(9.11 테러사건 기도 배경의 하나로 거론)하여, 미국은 2003년 8월 카타르로 공군기지를 이전하였다.

◦ 국방력 강화를 위해 육·해·공 전반에 걸쳐 미국 등 서방 선진국과의 긴밀한 군사기술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 및 군 장비를 주로 이들 나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 도입 장비에 대한 운영기술, 보급지원 및 훈련을 위해 미, 영, 프, 군사 고문단이 상주하고 있다.

(49)

사. 기 타

1) 국방력 증강 계획

◦ 2005년 당시 술탄 국방장관은 군 교육훈련의 질적 향상과 최첨단 장비 도입 등 획기적인 국방력 증강 의지를 천명하였으며, 지원병제도에 따르는 병력충원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정규군을 20만명 수준으로 증편하는 중장기 계획 추진 방침을 밝혔다.

2) 장비 도입의 다양화

◦ 사우디는 현재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대규모의 첨단무기를 도입하여 운용해옴에 따라 이들 서방국가에 대한 무기체계 종속이 심화되었으며, 2010년 당시 술탄 국방장관은 자국의 무기생산 능력 배양 필요성을 제기하여 기술이전, 합작생산을 강조하였다.

3) 전투 경험

◦ 1990-91년 걸프전쟁시 연합군과 함께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군의 축출에 참여하였다.

◦ 2009.11.5~2010.1.23간 예멘 반군의 사우디 영토 침입으로 사우디 육, 공군 113명이 예멘 반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 2014년 미국주도의 반 ISIL 연합 전략에 동참하면서 시리아내 ISIL 공습에 공군전력(최신예전투기)이 작전에 참가한 바 있다.

(50)

7 사회・문화

가. 인구

◦ 2015년 현재 인구는 약 3천만명(사우디인 2,070만명, 외국인 1,007만명) 이나, 매년 2.5-2.7%에 달하는 급속한 인구증가로 2020년에는 3,7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2010년 인구센서스 당시, 2020년 인구는 3,3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것보다 약 3백만명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약 1천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수를 줄이고, 사우디 내국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우디인 강제고용정책(Saudization)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재계는 사우디인에 비해 생산력이 높고 저임금인 외국인 노동자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고, 사우디인이 선호하는 일자리(사무직)와 외국인이 종사하는 일자리(노동, 단순 노무직)가 달라서, 사우디인 강제고용정책이 사우디인에 대한 일자리 창출로 어느정도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나. 교 육

1) 개 관

◦ 전통적으로 꾸란의 교리에 기초한 이슬람교육은 종교의무로 간주된다.

-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이슬람 교육만이 실시되어 오다 1920년부터는 소수의 사립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소년들에게만 한정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 1953년에 최초로 교육부가 설치되었으며, 이 시기를 전후 학교설립, 교사, 신축 등 근대적인 교육제도 기본골격을 정비하게 되었다.

◦ 1957년에는 리야드에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이후 다수의 종합 대학 교를 비롯한 상당수 초급 및 단과대학이 신설되어 현대적인 교육제도를 마련했다.

◦ 1990년대 자국인화 정책 일환으로 대학에 전문기술 교육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