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일왕국시대: 사울-다윗-솔로몬 (삼상 9 장-왕상 11 장. 대상 1장-대하 9 장) 2. 분열왕국시대: (B.C. 931 년. 왕상 12 장-왕하 16 장. 대하 10 장-28 장)
1) 북왕국 (여로보암에 의해 10 부족으로 북왕국을 시작): 19 명의 왕
2) 남왕국: 20 명의 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의해 유다와 베냐민 2 부족으로 남왕국을 시작. 8 명의 왕은 좋은 왕: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아)
3. 포로생활: (왕하 17 장-25 장. 대하 29-36 장)
1) 북왕국 이스라엘: 앗수르에 의해 멸망 (B.C. 722 년) 2) 남왕국 유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잡혀감 (B.C. 586 년)
바사왕 고레스는 B.C. 538 년 유다백성으로 유다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발표.
1) B. C. 538 년: 스룹바벨에 의해 1 차 귀환
2) B. C. 483-473 년: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동안 사단과 하만은 페르시아(바사)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밈. 하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유대 여인 에스더로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게 함으로 유대인의 생명을 구원케 하심. 에스더의 내용은 에스라서 6 장 (스룹바 벨에 의한 1 차 귀환) 과 7 장 (에스라에 의한 2 차 귀환) 사이에 일어난 사건 구약역사서 III
2016. 9월29일 김승호교수
에스라 7 장 강해
포로생활 70년을 마치고 스룰바벨이 바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성전을 다시 건축했 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이 매일 하나님께 번제(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한 목적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듯 ‘건물로서 성전’은 하나님 께서 임재하시고, 백성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장소였지만 하 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좇고,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은 성전을 이방 나라에 의해 불타게 만드는, 즉 건물로서 성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고 심판하심을 보게된다.
성전건축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백성의 영적회복’ 이었다. 하나님 의 백성이 하나님앞에 ‘서로 서는 것’ 이었다.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지 59(B.C. 516년 성전완공을 기준으로) 년 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온다(2차 귀환으로 불러짐).
이다.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왕들
1) 고레스왕 (B. C. 559-530. 스 1:1) 2) 캄비세스왕 (B. C. 530-522) 3) 스메르디스왕 (B. C. 522)
4) 다리오왕 (B. C. 521-486. 스 4:24-5 장)
5) 아하수에로왕 (B. C. 486-464. 에스더의 남편 왕) 6) 아닥사스다왕 (B. C. 464-423. 느 1:1, 2:1) 7) 다리오2세왕 (B. C. 423-404)
3) B. C. 457 년: 에스라가 2 차 귀환을 인도함/유다에 ‘백성들의 영적부 흥’(People)을 가져옴 (스 7-10 장)/에스라는 스룹바벨 보다 81 년 후 유다로 돌아와 백성을 말씀으로 권면함/ 에스라서 6 장까지의 중심인물은 스룹바벨이고 7 장부터 에스라가 등장한다.
3) B. C. 444 년: 느헤미야가 3 차 귀환을 인도하여 예루살렘 성벽(Wall) 을 쌓음 (에스라가 귀환한 후 13 년 후 느헤미야가 귀환)
유다 20 명왕들의 행적 (대하 10-36 장)
* 8 명의 왕은 좋은 왕: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 시아 외 모두 악한 왕들이었음.
1. 르호보암 (B.C. 931-914. 17 년통치. 왕상 11:42-14:31, 대하 9:31-12:16)
솔로몬의 아들이었다/우둔하고 분별력 없는 처신 (행동)은 왕국의 분열을 가져옴/비록 의롭지 못하였지만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있었음(대하 12:12)/18 명의 아내와 60 명의 첩을 둠/가장 사랑했던 아내 (여자) 는 압살롬의 악한 딸 마아가였다 (대하 11:21)/르호보암 때 애굽 왕 시삭에 의해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받음
2. 아비야 (B.C 914-911. 3 년. 왕상 14:31-15:8, 대하 13:1-22)
유다의 2 대 왕으로 악한 왕/ 하나님이 초자연적 간섭하심으로 북왕국의 왕 여로보암의 침공을 물리침 (대하 13:13-18)/ 하나님의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사악한 왕이 되어갔다.
3. 아사 (B.C 911-870. 41 년. 열상 15:8-14, 대하 14:1-16:14)
유다를 부흥으로 이끈 왕이었다/ 구스 사람들이 유다를 치러오자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예루살렘 성을 구함 (대하 14:11)/ 자신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 자 그녀를 폐위시키고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 불랐음/ 이방 우상과 우상제단 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를 회복함/후에 북왕국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오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과 협약을 맺어 타락함/ 왕의 죄를 책망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음(대하 16 장)/발에 심한 병이 들었으나 여호와께 구하지 않았고 결국 죽 음
4. 여호사밧 (873-848. 25 년. 열상 22:41-50, 대하 17:1-20:37)
제사장과 방백들을 모든 성읍으로 순회시키며 율법을 가르치는 신앙교육프로그램을 개 시함(대하 17:7-9)/유다에 큰 부흥을 가져옴(대하17:6)/우상을 무너뜨리고 율법을 백성 들에게 강조함/후에 북왕국의 악한 왕들과 협약을 맺음으로 자기 자신을 타락시킴 (북왕 국의 악한 왕 아합과 혼인협약 맺고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과 혼인/북 왕국의 악한 왕 아하시아와 무역협약. 대하 20:35/아합과 군사협약을 맺음)/예루살렘이 모압의 침공을 받을 때 여호사밧왕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기도했고 기도가 응답됨/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의 나라에 태평을 주심 (대하 20:30).
5. 여호람 (853-845. 8 년. 왕하 8:16-24, 대하 21:1-20)
여호람왕은 아합 왕의 딸 (아달랴. 대하 22:2) 과 결혼/자신의 6명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즉위/유다 여러 산들에 산당을 세워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 함/하나님은 엘리야 를 통해 그에게 하나님의 큰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심/블레셋과 아라비아인들의 마음 을 격동하게 하여 여호람을 치게 하심/창자에 병이 들어 창자가 몸에서 빠져나오는 고통 스런 죽음을 맞이함/그의 죽음에 아무도 슬퍼하거나 분향하지 않음
6. 아하시야 (841. 1 년. 왕하 8:24-9:29, 대하 22:1-9)
부친 여호람과 모친 아달랴만큼 악한 왕/북왕국의 악한 왕 아합의 집을 멸망케 한 예후 (북왕국의 10 대왕) 에 의해 살해됨
7. 아달랴 (841-835. 6 년. 왕하 11:1-20, 대하 22:1-23:21)
여왕/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유다왕위를 계승. 모든 왕족의 혈통 (씨) 를 살해함 (요아스 한명만 도피해 살아남음)/살해됨
8. 요아스 (835-795. 40 년. 왕하 11:1-12:21, 대하 22:10-24:27)
아달랴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작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음/성전을 수리하고 예배를 회복 시킴/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지만 후에는 잔인한 독재가가 됨/개혁자이며 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가 죽자 백성이 우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묵인함/신복에게 살해당함
9. 아마샤 (796-767. 29 년. 왕하 14:1-20, 대하 25:1-28)
얼마동안은 좋은 왕이었음/부친 요아스를 죽인 자들을 보복 살해함/에돔과의 전쟁을 위 해 은 일백 달란트로 북왕국 군사 10 만 명을 고용함으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에게 책망을 들음/마지못해 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냄/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만의 군사로 에돔을 무리침/ 아마샤가 에돔을 도륙하고 돌아오면서 에돔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으로 삼고경배하며 분향함/아마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선포하였으나 자신이 패배당함/예루살렘의 무리가 아마사를 살해
10. 웃시야 (792-740. 52 년. 왕하 15:1-7, 대하 26:1-23)
큰 용사였고 유다(예루살렘) 를 건축 (세운) 한 왕/강성하여지매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 는데 제사장도 아닌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함/문둥병이 들어 죽 는 날 까지 문둥이가 됨
11. 요담 (750-736. 16 년. 왕하 15:32-38, 대하 27:1-9)
훌륭한 왕/예루살렘 성전의 윗문을 건축했고 망대와 견고한 요새 (영채) 를 수축함/암몬 자손을 패배시키고 그들로부터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 석과 보리 일만석의 조공을 받음/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승리와 번영을 주심
12. 아하스 (735-719. 16 년. 왕하 16:1-20, 대하 28:1-27)
유다의 20명의 왕들 중 두 번째로 가장 악한 왕이었음/이방인들의 가증한 행실을 본받 아 자기 자녀를 불사르고 산당을 세워 분향함/바알 우상을 만듬/동정녀 탄생에 대해 들 은 첫 번째 사람 (사 7:1-25)/이방 앗수르인의 제단을 건축할 것을 명하고 그것을 예루 살렘 성전에 둠/대적의 손에서 고통을 당하였고 성전기물들을 앗수르에게 조공함/
13. 히스기야(29 년)
성전을 수리하여 다시 열고 부친 아하스 가세웠던 우상을 제거/그의 의로움 때문에 하나 님께서 앗수르공격에서 유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호/ 그의 개혁정치가 대하 29, 30, 31. 32 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14. 므나셋(55년): 유다의 20명 왕들중 가장 악한 왕/나라 전역에 우상을 세움/앗수르에 포로잡혀갈 때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유다로 돌아오게 하여 개혁정치를 펼 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살해당함
15. 아몬(2년): 부친 므나셋의 악한 길을 따라감/살해당함
16. 요시아(31년): 영적,사회적 개혁을 시도한 왕/성전예배를 회복하고 율법을 강조/잊혀 진 유월절 절기(대하 34-35장) 회복을 함
17. 여호아하스(3개월)
18. 여호야김(11년) 이 3 명의 사악한 왕들로 인해 유다의 멸망을 재촉됨/성전이 이들 로 말미암아 무너져 감/
19. 여호야긴(3개월)
20. 시드기야(11년)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악했다/예루살렘과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고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감
역대하는 이런 역사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포로생활을 마친 후 유다백성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적 희망의 메시지를 적고 있다(대하36:23).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쓰인 3 권의 선지서(포로 후 선지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이어 왕이된 아들 벨사살왕의 죽음을 예언하는 “글” (메네 메 네 데겔 우바르신) 이 만찬장 벽에 쓰였다. 다니엘이 해석을 했는데 “베레스는 왕의 나 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 라를 얻게 되었다. 단 5 장).
1) 학개서: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고국 (유다) 로 돌아온 유다백성이 사마리아인의 방 해와 흉년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성전을 재건하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스룹바벨은 학개 와 스가랴의 격려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완성하게 된다/학개의 설교는 백성들이 성전건축보다 자기 집 건축에 더 빠른 것을 책망하며 성전건축을 독려했다.
2)스가랴: 학개의 동역자로서 여덟 개의 환상을 중심으로 백성들을 격려하며 예루살렘 재건에 관하여 예언/스가랴는 메시아의 오심 (재림) 을 강조했다.
3)말라기: 십일조와 기타 예물을 잘못 드리는 유다백성의 거짓된 행위와 결혼(하나님 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관계)의 신의를 지키기 않는 부도덕한 생활을 지적하며 올바 른 율법생활을 촉구했다.
1. 에스라의 귀환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친 유다백성의 본국으로의 귀환은 3 차에 걸쳐 이루어진다. 1 차 귀환은 바사 고레스왕 때 유다총독 스룹바벨이 49, 897명을 이끌고 돌아왔고, 2 차 귀 환은 바사왕 아닥사스다 때 제사장 겸 학사(priest and teacher of the Law) 에스라가 1,754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3차 귀환은 바사의 아닥사스다왕때 유다총독 느헤미야가 이
끌었다. 스룹바벨은 유다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temple)을 재건했고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wall)을 재건했으며 에스라는 느헤미야가 돌아왔을 때 느헤미야를 도와 백성들 (people)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영적으로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참고:느 8, 9 장).
에스라는 2차 귀환을 인도했다. 1차 귀환 때 돌아온 49,897명보다 훨씬 못 미치는 1,754 명을 데리고 귀환했지만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에스라가 유다백성 가 운데 일으킨 ‘말씀부흥운동’(백성을 율법으로 세우는 운동)으로 진정한 빛을 발했다.
7장 1절과 6절은 에스라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 야의 아들이요 아시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에스라의 족보가 거스러 올라가 아론 까지 가고 있고, 6절은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오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 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에스라의 신분은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 계통이었다. 아버지 스라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 대제사장이었다. 또한 에스라의 신분은 ‘학사’(율법학자) 였다. 즉, 율법에 정통한자였 다.
유다 백성으로 본국으로 돌아도록 조서를 내렸던 바사왕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라7장 11-12절에서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며 에스라가 어떤 자질 을 갖춘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2.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
에스라의 귀환에 있어 놀라운 점은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의 예루살렘의 귀환을 적 극적으로 도왔고, 심지어 페르시아 왕과 왕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드리도록 예물까지 주었다는 점이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 들 중에 예루살렘 으로 올라 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7:12-13).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면서 그를 지원하는 문제를 상당히 신중하게 다루었다고 말을하고 있다.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유다와 예루살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왕 과 일곱 모사의 보냄을 받았으니 왕과 모사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 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7:14-15).
즉 아닥사스다 왕과 일곱 명의 모사는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주어, 하나님께 제사드 리고 율법을 연구해 가르치게 하는 것이 페르시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신중하게 검토한 후 에스라를 보냈음을 말하고 있다. 23절은 아닥사스다 왕은 유다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왕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곳에서 말씀 부흥운동이 일어가는 것이 바사제국에도 도움이 될 것 으로 판단했기에 에스라를 보낸 것임을 말해준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 자의 수가 1,754명이었다. 우리가 여기 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스룹바벨이 1차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백성들이 기 뻐하고 감격하며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영적상태가 많이 침 체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 상황을 말라기(B.C.432-425) 가 잘 기록해주고 있는데, 유다백성들이 하나님께 제 물을 바치면서 ‘눈 먼 것’ ‘다리 저는 것’ 과 같은 제물을 바쳤다(말1:13).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표현인데 그런데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또 눈먼 제 물과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다. 이것은 유다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 이다(말1:7-8).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의 재건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유다백성들의 영적상태는 시간이 흐르 면서 말할 수 없이 다시 피폐해져 갔다. 말라기서는 포로생활 에서 돌아온 유다백성이 에스 라, 느헤미야, 학개 와 스가랴 같은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부흥이 있는가 싶더니 100 년이 못가서 또 영적인 후퇴의 징조가 역역했다. 하나님을 향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냉담해져 갔다. 그들의 예배와 제사가 형식으로 흘려갔다. 제사장 들은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 았다. 십일조 와 헌물을 드리는 백성들의 마음이 냉담했고, 유다백성과 이방여인 사이의 결 혼이 성행을 했다. 유다백성의 영적 무관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시면서 그들에게 7 가지 질문을 던지시고 그 질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기록한 책이 말라기서 이다. 하나님 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유다백성이 꺠닫고 돌아오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백성들에게 질문을 하실 때 마다 유다백성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
는 식으로 대꾸를 한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1:5)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1:6) “어찜이니까?” (1:14)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2:17)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 (3:7)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3:8) “우리가 무슨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3:13) 1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백성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영적인 슬럼프로 치닫게 되었고 어 디에서 실패했는지 나온다. 그 이유가 말라기 3장7 절에 나온다. “너희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규례 (degrees, commandments) 는 하 나님의 말씀, 명령, 정해놓으신 규칙을 의미한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백성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극심한 영적침체를 겪는 시기에 에스라 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율법’ 을 가르쳐 백성을 영적으로 갱신시키는 일을 하 게된다.
교훈) 처음에는 열심히 믿는다고 해도 시간이 흐름면서 타성에 젖어 버리면 예배가 의식 화, 습관화가 되고 신앙의 순수성과 열기가 떨어짐을 늘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다!
3. 에스라의 율법을 연구. 준행. 가르치는 사역
에스라는 율법에 능한 자였다. 오늘의 표현으로 바꾸면 그는 ‘말씀의 전문가’ 이었다. 에 스라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야만 살 수 있다”
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에스라의 개혁운동은 “말씀으로 돌아가자” 는 운동이었 다.
에스라는 스룹바벨에 의해 이미 59년 전 성전공사가 마무리 된 후 유다로 돌아왔기에 그 의 사명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 앞에 바로세우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돕는자” (helper) 라는 뜻을 갖고 있던 에스라 한 사람을 통하여 유다백성들은 영적 부흥 을 맞게 된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부흥의 통로가 되었다.
교훈) 하나님께서 종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양함을 보게된다: 스룹바벨으로 성전을 짖게 하고, 느헤미야를 통해서는 예루살렘 성벽(군사적으로 중요)을, 에스라를 사용해서는 백성들 에게 ‘율법’ 을 가르치게하여 영적부흥을 가져오게 하셨다.
7장10절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 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고 기록하고 있다. 2차 귀환을 인도하며, 유다 땅을 다시 밟으면서 에스라에게는 하나의 소원이 있었는데 자신부터 먼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한 후, 백성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소원이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전 ‘자신이 먼 저’ 율법을 연구하고 ‘자신이 먼저’ 준행한 후, 백성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참되고 신실한 하 나님의 종 이었다!
아닥사스다 왕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말고도 몇 가지로 에스라를 지원했다. 그 하나가 강 서편의 왕의 국고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재정을 마음껏 쓸수 있게 한 것이다(7:22).
왕은 그냥 왕의 창고에서 “은은 일백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일백 밧 까지, 기름도 일백 밧까지 하고 소그은 정수 없이하라” 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7:22). 그리고 성전의 제사장이나 노래 부르는 사람들,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까지 조공과 잡세를 면제해 주었다. 이것은 세상일에 일체 신경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 율법연구에만 전
력을 다하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에스라에게 율법을 가지고 재판까지 하도록 했다. 율법을 가르치고 재판을 할 때에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옥에 가두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심지어는 죽일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결국 유브라데 강 서편에서 에스라를 괴롭히거나 간섭할 사 람을 아예 없애버렸다. 그래서 에스라로 마음놓고 율법을 연구해서 가르치고 영적부흥을 일 으킬 수 있는 배려 만들어주었다.
에스라는 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손이 함께했다”고 고백한다(7:28).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연구는 그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고, 말씀만이 영적부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이방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이다.
구약역사서 III 2016. 9월29일 김승호교수
에스라 8 장 강해
8장 본문이해
1. 에스라와 귀환한 사람들(8:1-14) 1)서론(8:1)
2)제사장(8:2 상)
3)왕족의 가문(8:2 하-8:3 상) 4)일반백성(8:3 하-14) 2. 마지막 준비(8:15-30) 1)레위인들의 모집(8:15-20) 2)하나님께 간구함(8:21-23)
3)제사장들과 기명들을 성별함(8:24-30) 3. 여행
4. 책무의 감당(8:33-36)
8장에는 에스라를 따라 2차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가져온 예물 그리고 그들 이 바쳤던 번제물 짐승의 수가 기록되어 나온다. 우리가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를 읽을 때, 현재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사람의 명단이나, 그들이 하나님께 바쳤던 소나 양들의 수가 나오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었다.
첫째, 에스라와 함께 유다로 올라가서 에스라를 도와 영적부흥을 일으킬 동역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떠나기 전 레위 인이 없는 것을 보고 온 땅에 사람을 보내어 유다의 영적부흥을 도울 수 있는 레위 인을 찾아 데리고 왔던 것이다.
둘째, 에스라는 바사 왕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아 가지고 귀환을 함으로 유다 재건에 조 금이라도 힘을 보탰다. 유다로 가져간 예물에서 조금도 부정이 틈타지 않도록 모든 인수인 계를 투명하고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무턱대고 떠난 것이 아니라 안전한 귀환을 우ㅟ 해 금식기도를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1.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에스라가 이미 유다백성들이 1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한 80년 만에 2차로 귀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에스라는 바벨론, 바사에 거주하는 동안 하나님의 율법의 전문가가 될 만큼 율법연구를 많이 한 사람이었고, 그는 유다로 귀환하면서 자신이 연구한 ‘율법’을 유다백성들에게 가르쳐 영적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에는 ‘언약궤’ 가 없었다. 언약궤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폐망당할
때 없어졌고, 스룹바벨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언약궤를 다시 만들지 않았음이 분명하 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 는 너무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그런데 스룹바벨 성전에 없던 언약궤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율법’ 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성전시대에서 신약성전시대로 넘어오는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 징인 ‘언약궤’ 는 신약시대엔 ‘말씀’ 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시고 말씀을 통해 축복과 영적축복을 주시는 것으로 대처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라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많은 족장과 가족들을 함께 보내셨는데 그 수가 1,754 명이었다.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 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 록된 남자가 일백오십명이요”(8:1-3).
물론 1차 귀환 때 스룹바벨과 함께 올라온 자의 수 보다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다. 1차 귀환자들은 성전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면, 2차 귀환자들은 말씀(율법) 의 부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에스라에 함께 한 자들이었다.
2절엣 이다말 자손 중에 다니엘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이 아니 다. 다윗 자손은 아마도 다윗 자손이 맞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귀환을 인도했던 스룹바벨 도 다윗의 자손이었다. 유다가 망하기 전까지 다윗자손들은 모두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가 능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포로가 되고 난 후 스룹바벨이 그 사명을 감당해내었고 2절에 언급된 또 다른 다윗 자손들도 에스라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복귀하였다. 하나님께서 는 에스라에게 사람만 붙여주신 것이 아니라 많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셨다.
“저희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내가 달아서 저희 손에 준 것은 은이 육 백오십 달란트요 은기명이 일백 달란트요 금이 일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이십 갤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8:25-27)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많은 보물을 왕이나 방백들이나 또 바사에 있는 이스라 엘 자손들로부터 받아 가지고 왔다. 은 육백달란트는 약 25킬로그램, 금은 약 3킬로그램, 금잔은 200킬로그램이나 되었다. 사실 이 돈은 에스라가 도착해 예루살렘 제사자들에게 깨 끗하게 인계해주었다.
2. 보호하시는 하나님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데
길에 강도와 도둑들이 많았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청하여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 도록 군대를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왕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지켜 주시며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을 했기 때 문이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왕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로 했다. “하나 님은 이런 분입니다” 라고 자기가 말해놓고 인간적 청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하 나님의 종으로서 믿지 않는 왕에게 한 말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인간적으로 에스라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염려된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지켜주시도록 기 도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금식기도를 했다.
“때가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 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8:21)
교훈) 오늘 우리도 위급한 상황,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나거나 해야 할 때 금식기도가 필요하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도와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며 금식 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에스라의 금식기도는 응답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 느니라”(8:29).
에스라와 일행은 금식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되었 다. 에스라의 믿음대로 되었다.
“정월 십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 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8:31)
에스라와 일행은 석 달 반 걸려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간에 분명 강도와 도적떼 가 있었지만 그들은 에스라 일행을 공격하지 못했고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일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3. 레위 인을 찾아 데려감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도 입었지만 자신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에스라 는 일행을 아하와 강가에 모이게 했다. 거기에 모인 유다백성드을 점검할 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함께 가야 할 사람들 중 레위인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무리를 아화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 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8:15)
에스라와 함께 돌아가던 일행 가운데 왜 레위 인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지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제사장은 있었는데 레위 인들이 없었다. 추측하거든 레위 인들이 제사장들보다는 성전에 대한 열의가 더 식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봐야 제사장보 다는 못할 일을 할 것이니까 아예 돌아가지 말고 바사 안에서 장사나 해 돈이나 벌자고 생 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스라는 예루살렘의 부흥에 있어서 레위 인의 역할과 존재가 중요함을 알고 있었 다. 자기만 있어도 안되고 제사장만 있어도 안되고 반드시 성전에서 다른 일에도 봉사하는 신실한 레위 인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스라는 이런 이유로 레위 인이 없는 상 태에서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