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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정책, 유공자를 더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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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우리나 라 안보상황에 관심이 있고, 이중 절반 이상이 ‘심각하다’고 응답해 우리의 안 보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 사됐다.

국가보훈처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 국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 로 실시한 나라사랑의식조사 결과에 따 르면 응답자의 68.6%가 ‘안보상황에 관 심이 있다’고 답했으며 또한 51.5%는 ‘현 재 안보상황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64.7%는 전시작전통제 권 환수가 우리나라 안보에 영향을 미친 다고 답해 향후 전작권 전환 여부에 대 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77.9%는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 제고를 위한 체계적인 안보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에 대 해서는 75.5%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전 쟁 발발 시 지원 의향에 대해서도 75.6%

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또한 국가 위기

시 위기극복 활동 참여 의향을 묻는 질 문에는 86.6%가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나라사랑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평가인 ‘나라사랑의식지 수’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 가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 크게 낮은 것 으로 나타났다.

전체 국민의 ‘나라사랑의식지수’ 평균 은 79.1점으로 나타났는데 20대 61.5점, 30대 59.4점인 반면 50대 81.1점 60대 이 상은 84.8점으로 조사돼 2030세대와 5060세대간의 인식차가 큰 것으로 조사

됐다.

또 나라사랑 인식 평가 가운데 10개 항 목의 상관관계분석 결과, 국민들은 ‘전 쟁발발 시 참전’, ‘국가위기 극복 참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나라 사랑의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 했다.

이번 조사는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1 월 20일부터 26일까지 7일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1,000명 을 대상으로 전화설문방식으로 진행됐 다 . 표 본 오 차 는 95% 신 뢰 수 준 에 서

±3.1%p.

정부는 지난달 17일 정부서울청사에 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국가 보훈위원회를 열어 ‘명예로운 보훈 5개 년 계획’을 심의·확정하고, 김재창 대통 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등 민간위원 15 명을 새로 위촉했다.

국가보훈위원회가 지난해 11월 국무 총리 소속으로 격상되고 처음 열린 이날 회의는 보훈 5개년 계획에 따른 보훈문 화 창달과 국민 애국심 함양방안을 논의 했다.<3면에 상세 보훈 5개년 계획>

정부는 이날 확정한 명예로운 보훈 5 개년 계획에 따라 앞으로 정부 주도로 국가유공자를 발굴하고, 국가유공자 보 상금을 물가수준 등을 고려해 인상하는

등 보훈가족들의 영예로운 생활을 보장 해 나가기로 했다.

또 국가유공자의 특성을 고려한 보훈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보훈병원 병상을 1,400병상(기존 800병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국가유공자의 고령화에 따라 급증 하는 안장수요에 대비해 국립묘지 안장 능력도 확충키로 했다.

한편 제대군인의 사회복귀를 지원하 기 위해 2017년까지 제대군인을 위한 일 자리 5만개를 확보하고,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공훈선양으로 보훈외교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범정부적 ‘나라사랑 교육’,

‘태극기 달기 활성화’ 등을 추진해 국민의 안보의식, 호국정신을 함양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 총리는 “박근혜 정부는 역대정부 최초 로 ‘명예로운 보훈’이라는 국정과제를 채택하여 튼튼한 안보를 실현하고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인 평화통일 기반구축

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국가보훈위원 회가 국무총리 소속으로 격상됨으로써 보훈정책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할 수 있 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또 정 총리는 “보훈정책은 국가 유공 자들의 영예로운 삶을 국가가 보장하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문화를 조성, 국

민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높여 건강하고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정 부는 국가 유공자와 유가족 등의 복지를 증진하고 건강한 보훈문화와 국민의 애 국심 함양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보 훈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 했다.

보훈정책, 유공자를 더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국가보훈위원회 개최

“보훈문화 창달과 애국심 함양” 추진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1577-0606

국민 51.5% “우리나라 주변 안보상황에 우려”

지난달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회 국가보훈위원회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민간 보훈위원 등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3 정책

명예로운 보훈 5개년 계획 5 단체

보훈복지 문화대학 워크숍 8 9 기획

국가보훈의 개념 / 지평리 전투 11 아름다운 인생

제주 한라산 / 박수근 100년 전

~

“체계적인 안보교육 필요하다” 77.9%

“위기극복 동참” 86.6%

‘전쟁시 참전’ ‘위기 참여’

나라사랑 의식에 중요 요소

0 20 40 60 80 100

나라사랑의식지수(단위:점) 현재의 안보상황인식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이상 61.5 59.4

81.8 84.8

보통이다 33.5%

78.82

심각한 편이다 40.4%

매우 심각하다 11.1%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 10.3%

심각함 51.5%

심각하지 않음 11.4%

모름/무응답 3.6%

전혀 심각하지 않다 1.1%

(2)

국가보훈처는 중국 충칭 ‘한 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의 이 전 복원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충칭시가 ‘오샤야 항 제3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를 철거한 후 복원하면서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도 함께 이전해 복원한다는 계획을 확 정한데 따른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14일 현충시설심의위원회를 개최 해 국내 역사학자 및 건축 전 문가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한국광복군동지회 등 관련 단체의 의견수렴 절차 를 거쳐 충칭시의 이전 복원 계획 따라 이를 추진키로 결정 했다.

국가보훈처는 이전·복원에 따르는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향후 복원되는 건물에 한국광 복군 관련 전시시설을 조성하 는 한편 현 광복군 건물터에 기 념표지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은 1940년 9월 17일 창설한 한 국광복군 총사령부가 1942년 을 전후한 시기까지 사용한 것 이다.

발행일 2014년 2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2)780-0420/1

339-012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2

종합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명예선양 및 역사적 기록을 보존키 위해

생존 애국지사 구술 자료집을 제작·발간한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구술 자 료집 제작을 위해 광복군 활동 을 한 이윤장 애국지사를 비롯 해 광복군, 국내항일, 일본방 면, 학생운동 등에서 활동한 19

명의 독립유공자를 선정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번에 선정 된 생존 애국지사들의 전 생 애, 특히 해방 전 독립운동 활 동 등에 대한 증언을 채록할 예정이다.

구술자료 수집사업 참여자는

채록 시 필요한 전문성을 고려 해 한국 근현대사 및 관련분야 를 전공한 박사급 연구자를 선 정할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자료집 발간을 위해 이달 초 채록사업 자를 선정, 오는 3월부터 채록

을 시작해 감수를 거쳐 내년 중으로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 이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6·25참전 유공자의 전쟁경험담도 채록 하여 자료집으로 발간하는 것 을 추진할 계획이다.

생존 애국지사 19명 구술 자료집 발간…3월부터 채록

중국 충칭시 현장 건물터엔 표지물 설치

광복군 총사령부 이전 복원 추진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설날을 맞아 지난달 24일 대전시 유성구 에 거주하는 6·25참전유공자 전 이복(85)씨 댁을 방문, 온누리상품 권 등 위문품을 전달하고 환담했 다. 이 자리에서 박 처장은 “조국 을 위해 헌신하신 숭고한 정신과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 다”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했다.

국가보훈처는 나라사랑교육 의 목표, 주안점, 지도방향 등 을 제시함으로써 초·중·고등학 교에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나라사랑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나라사랑교육 참고자료를 개 발·배포했다.

나라사랑교육 참고자료는 역 사·안보 전문가, 교육학 전문

가, 초·중·고 교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초·중·고교별 발달 단 계와 학습과정에 적합하게 제 작했으며, 지난달 전국 초·중·

고 총 1만2,000개교에 각각 1부 씩 배포해 교원들의 참고자료 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개발된 ‘나라사랑교 육’ 참고자료에는 나라를 위한

희생·헌신이 국민화합의 정신 적 기반을 조성함을 강조하는 등 학교 나라사랑교육의 중요 성과 목표를 제시하고, 대한 민국 수난과 발전의 역사에 대 한 균형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등 근현대사의 발전과정과 그 가치에 대한 지도방향을 제시 했다.

초·중·고교용 나라사랑교육 참고자료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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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

전쟁 경험담도 발간

(3)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제825호 3

정책

정부는 지난달 17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보훈위원 회를 열어 ‘명예로운 보훈 5개 년 계획’을 확정했다. 이날 확 정된 계획은 향후 5년간 국가보 훈정책의 핵심전략으로 세부 추진계획과 함께 실천으로 옮 겨진다.

보상 및 예우 강화

국가유공자 보상금은 물가상 승률 등 사회지표를 고려해

‘+α’ 수준으로 인상하고, 참전 명예수당과 무공영예수당도 단 계적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또 서훈이 누락된 6·25참전자 를 발굴해 훈·포장을 수여하고 자료 부족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자료를 확보하는 등 입 증 책임을 강화한다.

중국·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

미주지역의 국외 독립운동 사 료를 발굴하는데도 노력을 확 대할 방침이며, 현충시설에 대 한 관리 강화와 다중집합 장소 에 현충시설을 건립하는 등 국 내·외 현충시설을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할 계획이다.

의료·요양 등 복지 확대 보훈병원 병상을 1,400병상 으로 확대함에 따라(기존 800병

상) 치료-재활-요양을 연계한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 고, ‘보훈의학연구소’를 설치해 고엽제질환·PTSD 등을 체계적 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고령의 국가유공자를 위해 남양주 보훈요양원을 건립하는 한편 민간 요양시설도 활발하 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 화한다.

기존 국립묘지를 확충하고 신규 국립묘지 조성(산청, 괴 산, 제주)으로 국립묘지 안장수 요에 대처하며, 장기적으로는 경기북부 또는 강원권에 제3현 충원 건립을 추진한다.

제대군인 사회복귀 지원 연평균 6,000여명에 달하는 제대군인이 10년 동안 안정적 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국방부, 안전행정부 등 부처 협업을 통 해 2017년까지 제대군인을 위 한 일자리 5만개를 확보할 계획 이다.

제대군인 지원센터는 현재 6 개소에서 단계적으로 증설할 계획이며 의무복무자를 위한 사회적 보상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

참전국과의 보훈외교 강화 지 난 해 유 엔 군 참 전 의 날

(7·27)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됨 에 따라 6·25 행사와 차별된 행 사로 진행한다.

유엔참전용사의 감동스토리, 참전사 등은 자료로 제작해 국 민들에게 홍보하고 ‘디지털 아 카이브’를 통해 참전용사 인터 뷰 등의 자료는 수집해 보존할 계획이다. 또 각 국 참전단체와 국내 유엔 참전 관련 민간단체 를 활성화하고 국제보훈장관회 의 참여 등을 통해 유엔참전국 과의 교류협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소방 공무원에 대한 예우 및 지원 강화

경찰·소방공무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안해 보훈병원의 PTSD 클리닉 지원을 실시할 예 정이다.

순직·경찰 공무원을 위한 추 모시설을 현충시설로 지정하는 등 경찰·소방 공무원에 대한 예 우 강화방안을 수립해 시행할 예정이다.

나라사랑교육을 통해 국민 애 국심 함양

부처협업을 통한 범정부적

‘나라사랑교육’을 실시하고 공 직자·공공기관·유관기관 교육 계획에 나라사랑교육이 포함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한 편 ‘태극기 달기’ 활성화를 통해 애국심 확산의 계기를 마련한 다. 또 주요정부·공공기관 행 사·회의 진행 시 국민의례(국기 에 대한 경례, 묵념) 준수 지도 및 홍보를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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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의 안정적 생활 보장 국가가 주도적으로 국가유공자 발굴 국내・외 현충시설 관리 및 사료발굴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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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특성을 고려한 보훈의료체계 구축

고령 국가유공자 맞춤형 보훈복지서비스 강화 국립묘지 안장능력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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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협업을 통하여 ’17년까지 일자리 5만개 확보 제대군인에게 맞춤형 교육훈련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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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참전의 날(7・27) 행사 개최 공훈 선양

참전국과 지속적인 교류・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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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인프라를 활용한 의료서비스 제공 각종 추모 및 기념사업 적극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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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협업을 통한 범정부적 나라사랑 교육 공직자・공공기관 등 교육계획에

나라사랑교육 포함

주요행사・회의 시 국민의례 준수 홍보

‘태극기 달기’활성화를 통한 애국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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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보훈 5개년 계획’ 추진

국가유공자 복지 확대 … 참전국과 보훈외교 강화

(4)

지금까지 연 4%로 돼 있던 제대군인의 대부이율 하한선이 연 3%로 조정되고, 주택관련 대부한도액도 국가유공자 수준 으로 개선된다.

국가보훈처는 제대군인지원 에 관한 법률이 개정(2014. 1.

17. 시행)됨에 따라 장기복무 제

대군인의 대부지원 이자부담을 낮추고 교육지원 범위를 명확 히 했다고 밝혔다.

개정된 법률은 직업교육훈련 을 사회적응교육과 직업교육 훈련으로 명확히 구분해 제대 군인이 목적에 맞게 교육을 받 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했다.

또 제대군인의 지원 자격 확 인과 실태조사를 위해 관계기 관에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범위도 확대하는 한편 다 른 법률에 의해 교육 지원을 받는 경우 입학금,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합한 금액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도록 조정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개정 으로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 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함 에 따라 제대군인에 대한 원활 한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 망했다.

제대군인 주택대부한도 유공자 수준으로

제대군인지원법 개정 한도·상환기간 개선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4

정책

‘환경개선비용 부담법’ 일부 개정으로 국가유공상이자 등의 보철용 경유 차량에 대한 환경개 선부담금이 올해부터 면제된다.

환경개선부담금은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 감소를 유도하고 환경 투자재원을 확보키 위해 경유자동차 소유자 등에게 연 2 회에 걸쳐 평균 15만원을 부과 하는 세금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경유 차량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 국가 유공자, 장애인이 소유하는 보 철용·생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환경개선부담금이 면제된다.

이에따라 국가유공상이자 (1~7급),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경도장애 이상)가 대상에 포함 돼 올해부터 혜택을 받게 되며, 독립유공자와 5·18부상자는 추 후 법 개정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중앙보훈병원이 1,400병상 (급성기 778·재활센터 190·요 양병원 432병상)의 매머드급 공공병원으로 재탄생한다.

중앙보훈병원은 구 서울보훈 병원 부지(서울 강동구 둔촌동) 에 지하 4층 지상 13층, 연면적 86.090㎡ 규모로 신축하는 1단 계와 기존 본관과 신관 및 재활 센터를 리모델링하는 2단계로 나누어 추진돼 왔다.

이제 지난 2011년 9월 신축개 원과 함께 리모델링 공사가 완

료돼 이달부터 국가유공자의 자긍심에 부응하는 명실상부한 중앙보훈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에따라 중앙보훈병원은 1,400병상 확대운영으로 진료 환경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급성기와 재활센터, 요양병원 을 복합적으로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의료체계를 구축했다.

중앙보훈병원은 국가유공자 의 수요변화와 보훈의료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급성기·아급성기·만성기 질환자 구분이 없던 진료체계 에서 재활과 만성질환자를 별 도로 구분하고, 급성기 진료 기 능도 분야별로 특화해 환자 질 환상태에 맞는 의료혜택을 받

을 수 있도록 했다.

급성기병원은 진료기능 고도 화 및 연구기능 확대로 대학병 원 수준의 진료역량을 확보해 전국 5개 보훈병원의 중앙병원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재활센 터는 각각 운영되던 보장구와 재활체육센터의 기능을 유기적 으로 연계해 상호 융합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타 의료기관과 차별화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재활센터로 거듭나게 된다.

또 새롭게 설립된 요양병원 은 급성기 병원과 재활센터와 연계해, 아급성기 환자에 대한 전문화된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국가유공자의 지속적인 건강유 지와 회복을 담당한다.

이로써 중앙보훈병원은 보훈

가족의 생애주기와 질환 상태 에 따라 진료-재활-요양-재가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통합의료서비스로 국가유공자 의 다양한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관계 자는 “중앙보훈병원의 시설과

병상, 그리고 장비에 대한 인프 라는 대학병원과 비슷한 수준으 로 대외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며 “인프라 확충에 걸 맞는 서비 스의 획기적 개선과 다양화, 그 리고 통합으로 국가유공자의 높 은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유차량 환경개선비용 면제

1,400병상으로 확대…재활·요양병원 등 복합 운영

중앙보훈병원 재탄생 생애주기·질환 따른 통합의료서비스 제공

중앙보훈병원이 구 서울보훈병원 본관 리모델링을 마치고 1,400병상 의 매머드 선진 의료기관으로 발돋움한다. 사진은 리모델링을 마친 본 관 모습.

보철용 차량 대상

(5)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제825호 5

단체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총회 장 이형규, 회장 강인호)는 지난 달 7일 서울 동작동 서울현충원 참전전우 및 고엽제 묘역을 참 배했다.

이날 현충원 참배는 회장단 및 감사, 이사, 대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으

며, 참배가 끝난 뒤 신년 단배식 을 갖고 우수지부 및 지회 포상, 모범간사 표창, 우수사업소 등 을 표창했다.

이날 강인호 회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회원분들이 인 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국가유 공자로서의 명예를 지켜 나가 는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 고 밝혔다.

한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는 설 명절을 맞아 지난달 22일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국가유공자 및 고엽제 환 우들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 며 위문품을 전달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인호 회장 및 박근규, 황규승 부회장, 김 홍준 인천지부장 등이 참석 했다.

국립현충원 참배 및 신년 단배식 가져

무명의 독지가가 지난달 17 일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회장 왕성원)에 편지와 함께

떡 20상자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신원 불명의 회원 이 “외롭게 지내실 어르신들께 작은 마음을 전하고 싶어 보내 게 됐다”며 “불우한 회원들에

게 따스한 국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왕 회장은 전달받은 떡을 서울 지부에 전달했고 서울지부는 “기 증 받은 떡을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역의 불우한 회 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무명 독지가, 사랑의 떡 전해와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 덕남)는 고령 국가유공상이자 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운영 중 인 보훈복지문화대학을 활성화 하기 위해 지난달 15일부터 17 일까지 수원 보훈재활체육센터 에서 ‘2014년 보훈복지문화대

학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에는 전국 16개 시도지부의 복지담당자와 사회 복지사 등이 참석해 보훈복지 문화대학의 발전방향, 2013년 대학운영 결과 및 올해 계획, 특 화 프로그램 운영 사례 등 다양 한 주제를 가지고 토의와 교육 을 진행했다.

기간 중 참석자들은 수원보 훈요양원을 찾아 입소중인 고

령의 불우 국가유공자를 대상 으로 봉사활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상이군경회 관계자는 “국가 유공자분들이 노인성 질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훈복지문화대학 을 내실 있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상이군경회는 설 명절 을 맞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5개 보훈병원을 방문해 상 이를 입고 입원 중인 환자들을

찾아 이들을 위로하고 위문품 을 전달했다.

보훈복지문화대학 워크숍 실시

고엽제전우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광주 광역시지부(지부장 강철부)는 설 명절을 맞아 지난달 24일 공 군 제1전투비행단(단장 정영 진)을 찾아 어려운 환경에서 국 토방위를 위해 힘쓰고 있는 공 군장병들을 위로 격려하고 무 공수훈자회 임원 및 유족회원

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으 로 구입한 300만원 상당의 위문 품을 전달했다. <사진>

강 지부장은 “항상 대한민국 영공을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안보 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 다”고 말했다.

설맞이 공군장병 위문 실시

광주 무공수훈자회 상이군경회

5개 보훈병원 위문

지난달 15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보훈복지문화대학 관계자들이 새 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실무자 워크숍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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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소리가 나면서 아프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것이 잘 안된다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다 앉았다 일어나기가 어렵다 허리 및 관절부위가 아프다

저출력 레이저402를 관절연골세포에 직접 조사하여 연골세포의 활성화를 유도하여 조직의 재생과 회복 을 자극하여 관절염통증을 해소하므로 치료한다 장기간 통원치료의 불편을 해소하고 가정에서 편하게 사용 1일 30~60분 사용(자동리모콘으로 어르신 쉽게 사용)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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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부산지방보훈청(청장 유주 봉)은 취약계층 저소득 보훈가 족의 실질적인 노후복지 향상 을 위해 지난달 14일 부산진소

방서(서장 백승기)와 ‘119 보비 스 콜-보훈가족 복지지원 확대 및 소방안전대책’ 업무협약식 을 가졌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보훈가족의 노후안전 관리 지 원에 만전을 기할 것을 약속 했다.

부산진소방서는 관할 119안 전센터별로 매월 보훈가족 2~3 가구를 선정해 단독경보형 감 지기 설치, 소화기 비치, 응급상 황 시 119 우선 지원 등 소방안 전대책을 추진하고, 지역 저소 득 보훈가족에 생필품을 지원 할 예정이다.

보훈가족 소방안전대책 업무 협약

부산지방보훈청 부산진소방서

창원보훈지청(지청장 전외 숙)은 지난달 24일 정부경남지 방합동청사에서 감동복지 실천 다짐대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보훈복지인력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 를 위해 희생·공헌한 국가유공

자 및 보훈가족의 입장에서 친 절한 자세로 보훈복지에 앞장 서고,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했다.

창원보훈지청은 고령 또는 만성질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500 여 보훈가족에게 가사간병서비 스를 지원하고 있다.

감동복지 실천 다짐대회 개최

창원보훈지청

서울지방보훈청(청장 안중 현)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보훈정책을 마 련키 위해 이달부터 2월 28일 까지 ‘보훈 나라사랑 아이디 어’를 공모한다.

이번 공모 주제는 ▲현충일, 호국보훈의 달 등 보훈기념행 사 홍보 방안 ▲청소년 나라사

랑 정신 고취 프로그램 ▲저소 득 보훈가족을 위한 보훈복지 지원방안 ▲제대군인의 원활 한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방 안 및 일자리 창출 등으로, 국 가보훈처의 중점 사업을 성공 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아이디 어를 자유롭게 작성해 제출하 면 된다.

이번 공모는 보훈 정책에 관 심을 갖고 있는 국민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작성한 서류 는 서울지방보훈청(서울 용산 구 이태원로6)을 방문하거나 우편 또는 전자우편(kilnye@

naver.com)으로도 제출이 가 능하다.

서울지방보훈청은 심사를 통해 우수 아이디어 제출자를 선정, 소정의 상품을 증정하고 정책 자문위원 위촉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보훈 홍보방안 등 나라사랑 아이디어 공모

서울지방보훈청

대전지방보훈청(청장 이명 현)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제대 군인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 기 위해 지난달 17일 대전지방 보훈청 대강당에서 제대군인 멘토 위촉식을 가졌다.

대전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이 날 위촉식에서 군 관련, 사회복 지분야, 시설관리분야, 교육분 야 등 12개 분야의 제대군인 취 업성공자 36명을 멘토로 위촉 함에 따라 취업 준비에 필요한 정보제공과 조언을 통해 미취 업 제대군인들에게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지원하게 된다.

멘토로 지정된 제대군인 취 업 성공자들은 한 해 동안 멘 토·멘티 만남의 날, 취·창업워 크숍 등에서 자신이 일하고 있 는 분야에 취업을 원하는 멘티 제대군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 게 된다.

대전 제군지원센터, 멘토 위촉식 가져

대전지방보훈청

지난달 14일 부산지방보훈청과 부산진소방서가 저소득 보훈가족 복 지지원 협약식을 갖고 있다.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 영양사업에 써달라며 1 억원을 기부한 전몰경찰유자녀 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록찬 울 산광역시 호국선양기념사업단 장. 전 단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유니세프를 통해 기금을 전달 하면서 “6·25전쟁에 참전해 우 리나라를 도와준 아프리카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어린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 고 싶었다”고 말했다.<사진>

참전국 아프리카 어린이에 성금

전록찬 씨, 유니세프 통해 1억원 기탁

※라파 레이저402골드구입자 특별선물

1. 불가마발열 허리벨트(음이온) 증정 2. 토르말린 무릎벨트증정

3. 관절영양제 글루코사민 2박스증정 (종근당, 1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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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제825호 7

며칠 전 ‘6·25호국영웅기장’이 배송되 어 왔다.

나는 지금부터 63년 전인 1950년 12월 16세의 나이로 군번도 없이 학도병에 나 갔다. 직접 군에 찾아가 고향에서 일개 소대를 편성해 읍민환송리에 입대한 것 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위기를 당해 당연한 애국이고 선택이라 믿었다. 그때

공적으로 내 가슴에 6·25호국영웅 기장 이 달렸다. 너무나 감격스럽다.

당시 우리가 전투에 투입됐을 때의 전 세는 중공군이 월등히 우세해 지금의 평 택 이남까지 밀고 내려오던 참이었다.

당시 다양한 전투들이 파노라마처럼 스 쳐 지나간다. 전쟁터에서 피난가지 못한 채 노부부가 남아 우리 학도병과 같이

적진 속에서 시달리던 것도 떠오른다.

지금도 당시의 전장이었던 곳 주변을 지 날 때는 그 노부부가 반길 것만 같다.

이 자랑스러운 기장의 값은 따질 수 없이 크기만 하다. 이 기장이 아무리 쓸 모가 없더라도 ‘애국훈록’인 만큼 최소 한 내 사후 명정으로 쓰고 싶다. 그러면 무어라 쓸까. ‘국가유공자 6·25호국영웅 여기에 잠들다’라고. 그럴듯한 묘비가 세워지지 않을까.

송정덕

이 난은 보훈가족 여러분 의 다양한 생각을 담는 공 간입니다. 고정란인 ‘칭찬 합시다’와 함께 보훈가족 이야기 등을 매 월 20일까지 보내주십시오. 원고량은 800 자 내외입니다.

독자의견 받습니다

나는 새해를 맞은 오늘도 연평도 포성 을 듣는다. 2010년 북한의 무차별적인 연평도 포격도발로 해병대 장병 2명과 무고한 민간인 2명이 숨졌을 뿐만 아니 라, 민간인 주택 다수가 전소 또는 불길 에 휩싸이는 등 연평도가 초토화 되었으 며, 북한의 1, 2차 포격에 맞서 우리 연 평부대가 자주포로 80여발의 대응사격 을 실시하였다. 이는 6·25전쟁에 의한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남한 본토에 무력 기습포격을 가해 국민의 생 명과 재산을 앗아간 사전에 치밀하게 계 획된 중대한 도발행위였다.

연평부대는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 서도 신속히 포상으로 이동하여 대응사 격을 하였고, 일부 병사는 자신의 방탄 모가 화염에 불타고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응사격을 실시하는 등 투철 한 군인 정신을 발휘하였다. 또한 연평 부대 해병 장병들은 북한의 갑작스런 포 탄 피격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주민들의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를 위해 절반 이상 의 장병들이 직접 나서 주민들의 대피를 돕고 잔류 인원을 확인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무력도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이은 연평도 포격도발로 국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충격을 주었지만 3년이 지나면서 국민 들의 마음속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 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앞선 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아직도 그 아들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북한 도 발에 대하여 먼 나라 이야기나 역사의 한 사건으로 지우려 애쓰고 있지는 않는 가. 우리 스스로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는 않는지 되묻고 싶다.

개인에게는 일신상의 건강의 유지되 어야 올바른 삶을 영위하듯이 국가에도 그 국가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세울 수

있는 힘과 건강이 필요하다. 이것이 국 가의 건강이고 바로 안보의식을 바로 세 우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잊을 수 있지만 연평도에는 아 직도 포성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금방이라도 아들 이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울지 않 겠다”며 흐르는 눈물을 가리며 자식을 품안에 묻은 부모의 슬픔은 오늘도 기다 림 중이다. 아직도 그날의 충격으로 공 포와 두려움의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살 고 있는 전역 부상자들이 고통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 이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이웃이자 이 땅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겠다는 마음과 함께 가족을 위로하고 희생자 묘 역을 찾아보는 일 또한 나라사랑과 국가 안보를 실천하는 작은 일이다. 함께하며 진정으로 화합하고 소통하기 위해 나서 는 작은 일, 그것이 굳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소중한 발걸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전몰군경유족회 홍성군지회장 조성일

아직도 연평도에 포성이 들린다 6·25호국영웅기장을 받고

저희 아버지는 1950년 7월 30일 6·25 전쟁 당시 적과 교전 중 전사하셨습니다.

저는 무남독녀의 유복자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지난 2011년 7월 초순에 육군본부로부 터 6·25 무공수훈자 훈장 찾아주기 안내 의 공문서가 도착해 구비 서류 준비 차 목포 보훈지청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유연신 보상과장님과 김정희 주 무관님은 훈장 받는 데만 급급하던 저에 게 수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전몰군경 유자녀 수당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 습니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목포 보훈지 청에 접수를 했더니 국가유공자 유족결 정 권리부활 통지를 받고 이때부터 매월 유자녀 수당을 받게 됐습니다.

제가 모르고 있는 사실을 두 분의 아름 다운 안내 덕분에 훈장 뿐 아니라 수당도 매월 수령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소중한 아버지는 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지만 뒤 늦게나마 아버지의 명예와 유족의 경제 적 지원을 받게해준 관계자분들께 감사 의 인사를 드립니다. 전남 목포시 박행자

훈장 찾아준 목포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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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한 민국이 오늘 에 이르기까 지 언 설 로 다 표현하기 힘든 애국선 열들의 희생 이 있 었 다 . 1860년대부 터 시 작 된 한국근대사와 1945년부터 시작된 한국 현대사는 우리 민족이 BC2333년 나라를 세운 후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격동과 격변의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기간인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는 민족의 얼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직접통치에 다 동화정책을 병행하여 무자비한 폭력 으로 우리 민족 구성원의 인권을 유린하 고 억압했다. 이에 우리 민족은 일제의 잔혹한 통치에 민족수호의지와 자주정 신으로 해방되는 그날까지 줄기차게 저 항했다.

유공자 보답, 애국정신 기린다는 뜻 우리 민족의 조국수호의지는 대한민 국이 성립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김일성 의 남침에 의해 자행된 6·25전쟁 시 오직 조국과 민족을 보위해야 한다는 일념으 로 수많은 애국용사들이 하나뿐인 조국 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6·25참전 애국용 사들의 희생과 투쟁이 없었다면 어찌 오 늘 조국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

가? 6·25전쟁 이후에도 산업화와 민주 화의 과업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 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국내외 과제는 산적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지역 갈등, 이념분열, 세대격차 등에 의한 분 열현상이 증대되고 있고,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의 3대 세 습정권의 계승과정에서 북한정권의 불 안정성이 점증하고 있다. 나아가 동북아 의 국제상황을 보면 탈냉전 후 지역의 패권 장악을 위한 동북아 안보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유동성 과 불투명성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국가보훈은 무엇인가. ‘보 훈’이라는 용어를 개념정의하면 우선 국 가를 유지하거나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 하기 위해 공헌한 국가유공자에게 국가 가 보답하는 행위 일체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보훈은 개인이나 단체를 넘어선 국가의 보은(報恩)작용 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보훈은 단순히 유공자의 행위 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그 행동과 함께 유공자의 국가에 대한 정신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애국정신(愛國精神)을 기린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보훈에는 유공자의 행적과 정신이 동시대에 끝나 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후손들에게 계 승·발전한다는 국가의지도 포함되어 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좀 더 명확하 게 정리하면 국가보훈은 우리나라에 대 한 애국심을 기초로 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 서의 보은이라고 개념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보훈은 우리 국가의 독립과 호국 및 구국의 목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국가와 민족 및 역사의 제단에 바친 애 국선열들과 그 유가족에 대한 국가적 차 원에서의 보답행위 일체를 말한다.

우리 안보현실서 안보역량 제고 국가보훈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보훈의 성격을 먼저 언급하면 첫째, 국가보훈은 국가존립의 근거로서의 성 격을 지니고 있다. 애국선열과 호국용사 들의 위국헌신의 행동에 대해 국가가 모 든 정성을 다해 보은의 차원에서 보훈하 는 것은 바로 국가의 존엄성과 유지 및 발전에 대한 간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가보훈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가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중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국가보훈의 또 다른 핵심적 성격은 애국정신 즉 나 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상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국가 보훈이 지금 현시점에서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국가보훈은 국가와 나와의 일체 감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국가보훈은 국 가공동체의 존립, 유지 및 발전을 위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보훈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국가공동체 의 구성원으로 하여금 국가와 나 간의 일체감을 형성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 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둘째, 국가보훈은 국민통합의 초석이 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국민통합

은 이러한 통합을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 구성원 전체를 뜻하는 국민적 차원에서 의 통합을 뜻한다. 이러한 국민통합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화시대의 국 제질서의 흐름에서 그리고 국가가 처한 국난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나 가게 하는 초석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다. 이런 점에서 국가보훈은 다른 그 어 떤 정책수단보다도 실질적인 국민통합 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국가보훈은 우리 국가가 표방하 고 있는 이념과 가치와의 일체성을 조성 하는 역할을 한다. 즉 국가정체성의 유 지와 확산을 위한 중요한 계기를 조성한 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국가정체성이 란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이념적 지향성 과 가치성을 포함하고 있는 용어이다.

보훈처 장관급 이상 격상 고려를 마지막으로 국가보훈은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에 대비하는 안보역량을 제고 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안보 는 국가보훈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 다. 즉, 적절한 보훈제도의 확립은 국민 들의 안보의식과 희생정신을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리고 국가의 주 권과 영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하려는 의지를 대를 이어 전수하게 만든 다. 이렇게 볼 때 국가안보와 국가보훈 간에는 서로 떼라도 뗄 수 없는 밀접한 상호관련성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국가보훈을 책임지고 있 는 정부 기관 국가보훈처의 위상 강화, 즉 보훈처의 부로의 격상 혹은 부총리 급으로의 격상도 적극 고려돼야 할 것 이다.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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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훈과 애국

 

 

  





 



   

   



 

 



 



 

 

  

     





 

호국·보훈 왜 필요한가

보훈, 국가공동체 존립·유지·발전의 전제

정 경 환

동의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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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미 제2사단 제23연대(프랑스 대대 배속)가 원주 북방 지평리에서 중 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공격 을 막아낸 방어 전투.

당시 지평리는 홍천-여주를 잇는 병참 선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유엔군과 공산 군 양측 모두 이곳 점령을 전략적 목표 로 삼아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 유엔군은 지평리가 인접지역 도로망을 통제하고 한강선으로 진출할 관문 역할 과 함께, 미 제10군단 좌측방을 방어할 강력한 방어진지이며, 남한강 서쪽 광주 지역의 적을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요 충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중공군 포위망 … 지평리 포기 검토 중공군 제39군은 2월 공세 개시일인 11일 남한산에서 지평리로 이동을 완료 했다. 이날 오후 5시에 시작된 공세로 횡 성지구의 유엔군 방어선이 급격히 무너 진 상황이었다. 이어 중공군 지휘부는 13일 저녁 지평리의 미 제23연대를 포위 섬멸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중공군 은 12일에 이미 구준리와 지평리 간의 기동로를 차단한데 이어 13일 아침부터 지평리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미 제10군단은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 고 지평리에서 철수하는 것도 고려했다.

그러나 지평리의 포기는 인접한 제9군 단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고, 이렇게 되 면 당시 진행 중이던 썬더볼트작전의 성 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반격의 거점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평리 사수명

령에 따라 제23연대장 프리만 대령은 방 어진지를 강화했다. 직경 5킬로미터 주 위에 연결된 원형진지를 형성하고, 예비 병력 배치와 진지 주위의 지뢰설치 등도 완료했다.

13일 오후 5시 30분을 기해 중공군의 공격이 개시됐다. 밤 새워 전 방어선에 걸쳐 계속된 공세를 버텨냈으나 연대 CP에 집중된 포탄 발사로 연대장이 화 상을 입고 군수참모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밤새 100여명의 인력 손실이 발 생한 상황에서 부상을 입은 연대장 프리 만은 즉각 후송 명령을 거부하고 신임 연대장 자문을 위해 24시간 동안 지평리 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14일. 중공군은 2개 연대를 추가 투입 해 공세를 강화함에따라 아군은 강풍 등 기상 악화로 유엔공군의 항공지원도 어 려운 상태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상 황이었다. 오후 전폭기의 지원공격과 보 급품 투하가 있었으나 모든 것이 충분치 는 않았다. 야간 공격에 나선 중공군은 남쪽의 제2대대 G중대를 집중 공격하면 서 아군은 백병전으로 버티면서 저항했 으나 순간적으로 진지를 빼앗기게 됐고, 이어 이쪽 진지를 향한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진지 탈환은 실패했 으나 인근 미군은 200m 가량 이동한 곳 에 진지를 구축해 끝까지 저항하며 전투 를 이어갔다.

전투의 중요성을 파악한 미 제9군단장 은 장호원에서 전열을 정비중이던 제5 기병연대를 지평리 방면으로 진출토록 명령했다. 중공군의 공세를 뚫고 지평리

로 진출하던 기병연대는 15일 오후 5시 15분경 지평리 남쪽의 미 제23연대 전차 와 연결할 수 있었다. 미군의 증원으로 적들은 사기를 잃어 퇴각하기 시작했고 용감하게 백병전으로 버틴 지평리 전투 는 승전의 깃발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전술적 성공, 새로운 사기 충전 계기 이 전투에서 미 제23연대가 중공군에 게 가한 손실은 총 4,946명으로 추산되 며, 미 제5기병연대도 500명 이상의 적 을 사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아군 의 손실은 사망 52명, 부상 259명, 실종 42명으로 집계됐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상황에서 백 병전을 불사하며 중공군과 싸워 큰 손실

없이 지평리를 방어한 것은 국군과 유엔 군의 전투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중공군 조차도 “우리는 출 동하고 승리했으나 승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지평리가 해결되지 않았다. 설 사 적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물러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해 지평리 에서의 패전이 얼마나 뼈아팠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유엔군 입장에서는 지평리에서 중공군과 싸워 얻은 최초의 전술적 성공 으로 지난 12월과 1월 초의 곤혹스러웠 던 철수 시기에 상실한 사기를 확실하게 되찾고 새로운 각오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전환점을 갖게 된 것이다.

<특별취재반>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제825호 9

기획-보훈과 애국

 

 

  





 



   

   



 

 



 



 

 

  

     





 

6·25전쟁 격전지 순례 - 지평리 전투

고립된 채 버틴 백병전 … 중공군 격퇴한 최초의 전투

6·25전쟁 발발 7개월 여를 지나면서 유엔군의 반격과 중공군의 공세가 치열하게 맞 붙던 시기. 아군과 유엔군의 힘을 북돋우는 결정적인 전투가 있었다. 바로 지평리 전투 다. 중공군으로서는 강원도 횡성을 확보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양평군 지평리를 확보하 기 위해 3개 사단을 투입했다. 지평리가 무너지면 다시 중부권을 내주고 대대적인 후퇴 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아군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백병전까지 치르며 공세를 막아 냈고 다시 반격의 토대를 마련했다.

“면소재지 인근 언덕이 중공군 시체로 가득했습니다. 거의 언덕의 8부 능선 아 래는 모두 시체로 덮였다고 보일 정도였 습니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가 중공군에 게 충격을 줘 기세가 확실히 꺾인 것이 지요”

현장에서 전투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 정훈씨의 증언이다. 그는 전투 이후 입대 해 전국의 전장을 누볐다. 자랑스런 참전

용사 이씨는 현재 6·25참전자회 지평면 분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엔 전투에 참여했던 이정환 예비역대령이 당시의 전사를 정리한 ‘지평리를 사수하라’에 이어 후기와 뒷 이야기를 엮은 ‘지평리의 승전’을 내놓고 지평리 용사들의 영웅담 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사에 길이 남을 지평리 전투는 해마다 재현행사로 뜻을 기리고 있다.

지평리 현지의 증언

지평리 전투 직후 고지의 참혹한 모습.

치열한 전투를 앞둔 지평리에 공수된 보급품과 병사들.

지평리의 참전용사들이 전투기록을 모아 전투기념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지평리의 승 전’ 필자 이정환 예비역대령(오른쪽에서 두번째)과 6·25 참전자회 지평리분회 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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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을미사 변과 단발령은 우리 민족의 공분을 불 러 일으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 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구연영 선생이 참여한 남한산성의 진(이천수창의소)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편성되어 군 사적 요충지인 남한산성을 한 달 이상 점거해 서울 진공을 눈앞에 두었을 정도로 성세를 크게 떨쳤다.

선생은 의진의 중군장이 되어 1896년 1월 18일 백 현(이천 널고개)전투를 압승으로 이끌었다. 을미의병 의 쾌거였다.

선생은 남한산성에서 해산한 후 김하락을 의병장 으로 추대해 영남지방으로 내려가 안동에서 영남의 병과의 연합항전 방략을 논의하고, 1896년 5월 한 달

동안 청송 감은리, 의성 수정사 등에서 수차에 걸쳐 관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선생은 1896년 고향으로 돌아가 광주군 도척면 노 곡리에 정착한 뒤 기독교에 투신해 새로운 구국투쟁 의 길을 모색했다. 선생은 1899년 이천 덕들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1902년 지역교회를 관리하는 권사가 됐 으며, 기독교 신앙을 구국투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이천에서 ‘구국회’라는 애국단체를 결성했다.

군중집회를 통해 일진회의 반민족 매국행위를 성 토하는 등 구국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던 선생은 일진회원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장남 구정 서와 함께 체포돼 1907년 8월 24일 부자가 함께 순국 했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 서했다.

“청하건대,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1951년 5월 중공군의 1 차 춘계공세 당시 용문산 은 아군의 서부전선과 중 부전선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북으로 향한 진 격요선이자 남으로는 방어를 위한 기지로서 작전상 양보할 수 없는 피아간의 쟁탈 초점이었다.

중공군의 계속된 투입으로 분전과 혼전은 종일토 록 계속됐지만 아군은 계속 진지에서 물러나질 않았 다. 계속된 적군의 공격으로 밀고 밀리는 전투 속에 서 353고지가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했으며, 치열한 전투로 통신이 끊겨 제3대대는 고립되고 말았다.

이에 제2연대에서는 제3대대와 통신이 두절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선은 353고지 근방에서 절단된 것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지점은 중 공군이 삼면을 포위한 곳이었다.

이때 이천길 일등중사와 노승호 하사가 ‘저희가 그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라고 결사대를 지원하고 나 섰다. 그들은 적의 매복병이 잠복해 있는 곳을 피해 빗발치듯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 속을 뚫고 경사와 기 복이 심한 경로를 따라 유선 줄을 한 손에 쥔 채 포복 으로 전진했고 유선을 찾아 연결함으로써 전멸위기 에 있는 제3대대를 구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제3대대는 역공의 일선에 서서 353고지를 무 사히 확보할 수 있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구연영

선생(1864. 6. 20 ~ 1907. 8. 24)

을미의병의 쾌거, 구국계몽운동으로 꽃피우다

고립된 상황서 용문산전투 승전 이끌어

이달의 6·25전쟁영웅

이봉창의사 의거 기념식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 를 만천하에 알린 ‘제82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 념식’이 지난달 8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 서 개최됐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념식은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일반시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 는 정보를 입수하고 1932년 1월 8일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해 일장기기 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 만을 거꾸러뜨리고 안 타깝게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다.

현장에서 피체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동 경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10월 10 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계원 노백린장군 88주기 추모식이 1월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은 신명철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독립운동 관련 단체대표, 광복회원,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노백린 장군은 1899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에 귀국해 육군 참위로 임관, 한 국무관학교 교관으로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부 총장으로 임명됐고 미국에 머물면서 1920년 비행사양성소 를 설립해 1923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22년 임시정부 국무총리 서리에, 1923년에 정 식 국무총리로 추대됐으며, 1925년에는 교통 겸 군무총장직을 겸직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노백린장군 88주기 추모식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10

현충

이천길

육군상사(1927.3.6~2013.7.3)

노승호

육군하사(1921.3.15 ~?)

(11)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제825호 11

제주시 동쪽 북제주군에는 조천 만세운동공원이 당시의 함성을 안 은 채 주변 관광객들과 최근 부쩍 늘어난 올레길 탐방자들을 맞고 있다.

작은 언덕이지만 당시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이곳에는 제주하늘을 이고 주변의 오랜 소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제주3·1독립운동기념탑 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사진>

매월 3·1절이면 만세운동을 재 현하는 행사를 갖는다.

공원에는 제주 일원의 항일운동 을 정리한 항일운동기념관과 추모 시설도 함께 갖춰져 있어 청소년 등의 교육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파란 하늘을 만난다. 눈꽃으로 덮인 한라산을 만난 다. 둘이 만나 기적을 이룬다.

인간은. 그곳에서 인간은 그저 조용히 그 속에 섞인 방문객일 뿐이다.

줄 지어 한라산을 오르는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겸손함이다.

이들은 산을 오르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 속 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자연 이 보낸 환상적인 인사에 손을 내민다.

정상 즈음에서 만나는 주목 군락은 모두가 작품이

다. 눈으로 덮이다 얼음이 되고 다시 덮인 얼음으로 만 들어진 천혜의 조각품이다. 누가 구상하고 누가 일일 이 일으켜 세웠을까. 나무의 모양마다 크기마다 서로 만나고 선 형태마다 다른 그림이다.

겨울 제주는 한라산이다. 한라산의 겨울은 기적이 다. 기적처럼 선물로 받은 한라산, 그 환상에 사로잡힌 시간들이 짧기만 하다.

우리는 자연 앞에 외경심을 가질 뿐이다. 시간을 잊 은, 인생의 시름을 잊은 순간들이다. 그래서 이 겨울 제 주는 모두 기적이다. 삶도 기적이다.

“신이 내린 기적, 자연이 보낸 환상”

커버스토리 - 제주 한라산

<지역현충시설>

제주 3·1독립운동기념탑

전날의 폭설을 깨끗이 잊은 듯 백록담을 담은 영봉을 드러 낸 한라산 모습(큰 사진). 영실기암의 화려한 암석과 얼음 으로 변한 폭포수 옆으로 등산객들이 오르고 있다(위). 한 라산 중턱에서 내려 본 동쪽 한라산 전경(가운데). 온 한라 산은 나무 모습 그대로 눈꽃이 화려하다(아래).

(12)

제825호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월간)

12

1950년 7월 23살에 입대한 전제현 씨 는 부산 육군종합학교 3기로 훈련을 받 고 소대장으로 전장에 투입돼 많은 전 투를 치렀다. 평안도 청천강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중공군의 대규모 투입으로 후퇴, 결국 1951년 4월 사창리 전투에 서 전씨가 속해있던 6사단은 참패를 당 하고 말았다.

“사창리 패배 딛고 용문산서 복수”

“사창리 전투에 패배하고 내려온 우 리 6사단 전우들을 향해 역습을 위해 올라가던 미군들이 ‘갓 뎀 블루스타(6 사단 마크)’라며 침을 뱉었습니다. 조롱 거리가 된 우리는 미군의 비아냥보다 패배의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창리 전투에서 차량을 대부분 잃고 남은 단 두 대의 트럭에 남겨진 보급품 을 부대원들은 나눠 들었다. 마지막 보 급이었다.

한쪽에는 탄띠를 한쪽에는 식량을 두 르고 용문산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장 교들은 한데 모여 ‘죽을 각오로 싸우고 죽은 뒤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며 주 머니에 있는 수첩, 사진, 지폐, 신분증 등을 모두 모아 불태웠다. 장교들은 소 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마음을 재단

장하고 다시 용문산으로 향했다.

전씨는 전면 방어 임무를 받고 3일 동 안 숨막히는 전투를 펼쳤다. 특히 이틀 째, 야산에서 전투에 임했을 때를 기억 했다.

“첫째 날 가지고 있던 탄의 대부분을 소진했고 보급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소대장으로서 가장 힘겨웠던 것은 소 대원들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부대원들에게 설명하고 사기 를 북돋기 위해 ‘소대장은 여기 있다.

두려워 말라’며 소리를 질렀죠”.

“소리 지르며 사기 북돋아”

야간 전투에서 큰 소리는 아군의 위 치를 노출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 었다.

“당시 각지에서 농사를 짓다가 참전 한 대원들에게는 야간 방어 임무는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앞에 있는 적보다 우리 안의 두려움이 더 큰 적이 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크게 소리 치며 사기를 북돋웠죠”.

3일째 427고지에서 드디어 실탄과 보 급이 이뤄졌고 사기가 충천한 장병들 은 다음날 총 반격에서 큰 승리를 얻어

냈다. 내친김에 화천 백암산까지 밀고 올라갔고 당시 화천 발전소 맞은편 길 에는 중공군의 시체가 겹겹으로 쌓여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대 승이었다.

이곳 호수는 북한군과 중공군 수 만명 을 수장한 곳이라 해서 당시 이승만 대 통령이 ‘파로호’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용문산 전투로 6사단이 잡아들인 포 로만 해도 2,617명 이었고, 우리 군을 향한 미군들의 비아냥도 한 순간에 쏙 들어갔다.

전씨는 휴전 이후 4년 동안 월남전에 참전, 포병학교장, 제3사관학교장을 역 임하고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그는 오산고등학교 교장으로 15년간 학생들 을 교육하는데 전념했다.

“당시 교장이자 참전자로써 나라사 랑, 통일 교육에는 무조건 앞장섰습니 다. 청소년들이 이런 것들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판단하고, 소신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저의 목 표였습니다”

그는 ‘나라사랑 교육도 마찬가지’라 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나라사랑의 마 음을 올바로 심어줘야 성장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직생활 중 자진 입대해 용문산전투 등 6·25전쟁, 월남전에 참전하며 군에서 30여년 을 근무하고, 전역 후에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예비역 소장 전제현 씨. ‘올 바른 교육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그는 “군은 지휘관의 생각을 교육을 통해 전투의 이 유와 임무수행 방법을 장병들에게 잘 전달해야 효율적인 전투를 할 수 있다”며 “치 열했던 용문산 전투에서도 생과 사를 잊고 사기충천해 싸울 수 있던 것도 뚜렷한 목 표와 이유를 갖고 임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나라사랑 강조하는 참전유공자

전제현 씨

▶ 여행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 는 욕심을 갖는 순간 진정한 여행의 즐 거움은 사라진다. 목적 없이 길을 떠나 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또 여행은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는 것이 라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여행이라면 서두를 것이 없다.

서두르지 않아야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된 다. 그래서 권근은 사물을 볼 때 “빠르면 정밀하지 못하지만 느리면 그 오묘함을 다 얻게 된다”라 하였다.

천천히 가야 여행의 오묘함을 다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 게는 빠른 말이 아니라 느린 말이 어울 린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디니, 소를 타 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이종묵 서울 대 교수, 한국일보 칼럼 ‘느린 말을 타는 즐 거움’ 중)

▶ 나는 아이를 낳고서 문턱을 알았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가 방문 문턱에 걸 려 넘어진 다음에야 나는 문턱이 높다는 걸, 아니 문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낮 은 문턱이 누군가에겐 장애물이라는 사 실을 아는 데 35년이 걸렸다.

이제 내 아이는 더 이상 방문 문턱에 걸 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더 높고 험한 문턱이 내 아이를 가로막고 넘 어뜨릴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와 길을 걸을 테다.

손을 잡고 문턱을 넘을 테다. 더는 문턱 을 넘을 기력이 없는 나에게 내 아이가 손을 내밀 때까지.(손민호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칼럼 ‘분수대’ 중)

“느긋하게, 소를 타고”

“아이 손 잡고 문턱 넘겠다”

“용문산 전투 아직 생생…나라사랑 더 알려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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