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문화사
3강. 고려시대의 복식
교재: 우리 옷 이천년, 류희경 외, 미술문화, 2011
1. 역사적 배경 신라시대의 문화를 계승하고 당, 송, 원, 명등의 문화를 흡수하여 복식의 구조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2. 복식제도의 변천과정(상류층)
① 고려초기(송복식 영향기) - ( 송 )의 영향으로 관복이 변화하였고, 여자 복식은 통일 신라의 복식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 광종 때 백관의 공복을 4색으로 구분하여 제정하였다.
② 고려후기(몽골복식 영향기) - ( 원 )과의 국혼 관계를 통하여 몽골 복식이 고려에서 유행하여 지배계층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몽고풍: 개체변발, 비단옷감, 족두리, 도투락 댕기, 신부의 연지
③ 고려말기(명복식의 영향기) - 원이 쇠퇴하자 공민왕은 자주성을 모색하여 ( 명 )나라와 친근을 도모하였다.
-명에 관복을 청하여 사여받음으로써 새로운 주변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 상류층과 서민층의 복식이 다른 이중구조가 지속되었다.(상류층은 중국의 영향받음. 서민층에 의해 우리고유 복식이 큰 변화없이 유지되어 갔다.)
- 중국에 비해 2등체강원칙이 적용되어, 복식에 있어서 왕과 왕비의 제복, 백관의 관복에 적용하였으며 왕복은 중국의 황제가 아닌 왕세자 복식을 따랐다.
3, 대표 복식의 명칭
남자복식
왕복- 제복, 조복, 공복, 상복, 연복 백관복- 제복, 공복, 조복, 상복 서민- 고유복식 유지
여자복식
왕비복- 공민왕 때 명으로부터 ( 적의 )를 받았다. 평상시는 저고리 치마의 고유 복식을 입어 일반서민 부녀복과 같았다.
귀부인복- ( 몽수 )(얼굴과 몸통을 완전히 가렸다. 조선시대 너울의 기원)를 썼으며, 몽고풍의 영향을 받았다.
서민여복- 기본복식 몽수를 썼다.
고려시대
구분 명칭 유물 또는 벽화 특징
(왕복)
공민왕복
- 고려시대 왕복은 제복, 조복, 공복, 상복, 평상복으로 구별되었다.
- 제복은 면류관과 현의로 구성되며 하늘·땅· 조상·농신에 제사할 때 착용한다.
- 상복은 왕의 사무복으로 담황색의 소매통이 좁은 포를 입었으며 자색라로 한 늑건을 띠었다.
- 평상복은 서민과 똑같이 백저포를 입었는데 남녀상하가 모두 입었던 옷이다.
- 공복은 왕이 사신을 접견할 때 착용하던 복장으로, 자색공복에 옥대를 띠고 상홀을 들었다.
(조복) - 조복은 왕이 백관과 사민을 접견할 때 착용한다.
백 관 복
(제복) - 계급에 따라 칠류면·칠장복, 오류면·오장복, 삼류면·삼장복, 삼류면·일장복, 평면·무장복이 있었다.
(조복) - 송의 제도를 인용한 것으로 조선시대와 유사하다.
고려시대 남자 복식
(상복)
=단령
- 둥근 옷깃 때문에 단령, 원령이라고도 한다,
- 고려 우왕 13년 6월에 명의 관복 제도를 따라 곤복을 다시 정했는데 1~9품까지 사모·단령이고 대로 품계의 상하를 구별하였다.
(일상 복) (직령)
- 직령은 고려 우왕 13년 6월에 명나라 제도에 의해 단행한 관복 개정시 하류 계급이 착용하도록 규정 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직령이 입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머리에 ( 발립 )을 쓰고 홍색 직령 에 사대를 띠고 화를 신었다.
(심의) - 심의는 주자학과 함께 원에서 들어온 유학자들의 법복이다.
- 조선에 전해져서 말기까지 유학자들이 입었다.
(철릭)
- 철릭은 고려시대 때 원에서 들어왔으며, 의와 상을 따로 재단하여 봉재된 옷으로 곧은 깃이다.
- 서민들이 많이 입었고 여름에는 모시로 만들어 입었다.
- 철릭의 허리 부분에 선을 넣어 장식한 것을 요선철릭이라고 한다.
(답호) - 답호는 옆트임이 있는 반소매 포로 원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다.
명칭 사진 특징 (왕비복)
- 왕비복은 색이 홍색이며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았다.
- 왕비복은 고려 말 명에게서 공민왕비의 적의를 받았다.
- 공민왕의 비는 머리에 관을 쓰고 소매가 넓은 포를 입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왕비복이다.
( 귀 부 녀 예 복 - 자 의 )
- 자의는 곧은 깃에 앞길이가 뒷길이보다 짧은 예복이다. 상의와 치마를 입은 위에 중의를 입고 자의를 맨 위에 입었다.
(귀부녀
복)
- 귀부녀는 황색 치마를 높이 치켜 입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저고리 위에 치마를 입고 등에 숄을 둘렀다고 본 다.(서민복)
- 서민들은 삼국시대 기본 복식인 상과 유를 계속 입어 치마저고리가 되었다. 치마저고리란 명칭은 고려말에 생긴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