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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독 교 신 체 관 의 성 서 적 고 찰 A In v e s t i g a t i o n o n t h e B ib l e a b o u t S o m a t i c V ie w o f C h ri s t i a n it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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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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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 사 학 위 논 문

기 독 교 신 체 관 의 성 서 적 고 찰

A In v e s t i g a t i o n o n t h e B i b l e a b o u t S o m a t i c V i e w o f C h ri s t i a n i t y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체 육 학 과

1 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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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사 학 위 논 문

기 독 교 신 체 관 의 성 서 적 고 찰

A In v e s t i g a t i o n o n t h e B i b l e a b o u t S o m a t i c V i e w o f C h ri s t i a n i t y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체 육 학 과

1 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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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독 교 신 체 관 의 성 서 적 고 찰

지 도 교 수 김 현 덕

이 논 문 을 석 사 학 위 청 구 논 문 으 로 제 출 함

2000년 7월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체 육 학 과

윤 준 호

19 99

(4)

윤 준 호 의

석 사 학 위 청 구 논 문 을 인 준 함

200 0년 7월

심 사 위 원 장 ________________인

심 사 위 원 ________________인

심 사 위 원 ________________인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5)

Ⅰ . 서 론 1

1. 연구의 필요성 1

2. 연구의 목적 3

3. 연구의 방법 4

4. 신체관에 관한 선행연구 5

Ⅱ . 인간의 성서적 구조 12

1. 인간구조의 기본적 견해 13

2. 육체와 혼의 관계 22

3. 몸 영혼 정신 23

4. 성경에 나타난 몸・영혼・정신 41

Ⅲ . 신체의 성서적 상징 51

1. 인간의 창조 51

2. 성육신 63

Ⅳ . 신체의 성서적 의미 70

1. 육적인 의미의 몸 71

2. 인격적 의미의 몸 73

Ⅴ . 신체의 성서적 역할 78

1. 거룩 78

2. 희생 81

3. 속죄 85

Ⅵ . 결 론 88

참 고 문 헌 92

A b st r a ct 96

(6)

Ⅰ . 서

1 . 연 구 의 필 요 성

성경은 학문으로서의 가치 보다 신학적으로 인류의 근원과 사상, 그리고 삶을 말해 주는 인간역사의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인류(人類)라는 주제는 다른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가 아 니라, 신학의 중심(中心) 주제이다. 인류의 거의 모든 큰 문화들은 인간의 육체를 경멸해 왔고, 인간의 육체가 마치 지적(知的)인 가치(價値)로 이루어 진 진정한 인간성을 가두어 놓은 감옥인 것처럼 취급해 왔다. 비록 역사적 으로 기독교가 항상 다른 큰 문화들의 오류와 탈선에 떨어지곤 했을 지라 도, 복음에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보는 관점과 육체를 경멸하는 관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란 그 육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김수복, 1988, 92).

인류는 인간이라는 형성 개체로 나누어지고, 이 인간은 피와 근육과 뼈로 이루어지는 신체와,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 영혼으로 나누어지며, 이러한 점들로 인해서 짐승과 구별되어진다. 인간은 골학상(Ostelolgical), 즉 골격의 구조상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만이 그의 손가락과 동격인 엄지 손가락 을 지니고 있으나 유인원류는 다른 발가락과 동격인 큰 발가락을 지니고 있다.

수족의 형태는 인간과 다르나, 원숭이의 네발은 모두 같다. 또한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고 자기 마음속에서 고안한 모든 것을 도구로 할 수 있다(권호 덕, 1977, 16). 사람은 영혼에 대한 체험을 몸짓, 말, 필적등의 육체적인 것 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탄생과 그 신비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그 근원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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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였을까?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이고 문제이다.

인간은 동물과 전혀 다르다 는 주장을 평이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근 본적으로 두가지 뿐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기독 교 성경의 구약중 창세기 1, 2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천지 창조의 설명이나, 인간은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우주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의 설명 이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권호덕, 1977, 3). 그러나 앞에서 말 했듯이 성경은 인간의 신체와 그 근원에 대한 열쇠이고 답이 될 수 있다.

성경만이 창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주장은 우주가 그 자 체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는 단지 우연에 의해 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주의 깊게 연구된 과학적 사실들을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이다(김종배, 1993, 8). 또한 육체의 근원과 그 의미의 중요 성은 스포츠 활동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것이라 생각 한다.

한국의 기독교역사는 100년을 넘었고 남한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200만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사회와 문화가 점차 기독교화 되 는 현시점에서 성경을 중심으로한 기독교의 신체관을 고찰하는 것은 체육의 학문적 입장으로 보나 한국사회의 문화적입장으로 볼때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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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연 구 의 목 적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최종적인 진리라고 믿는 어떤 권위에 근거해서 사 고하고 행동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기독교인이란 자신의 최종적인 권위가 성경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물려받은 어 떤 책과도 구별되는 다른 책이다. 이책은 저자의 동기와 과정과 내용 그리 고 전승 과정에 이르기 까지 그 어느 하나도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는 볼 수 없는 뚜렷한 특징을 소유하고 있다(관주 톰슨 성경, 1989, 4). 성경 은 지금 까지 쓰여진 책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책이고 신의 계시가 성경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전하여 진다.

사실과 역사를 토대로 쓰여진 역사서이며 예언서인 성경을 가지고 우리 신체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하나의 살아있는 자료이며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이 기에 이것이 말해주는 단어와 그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 줄것이라 생각된다.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문헌으로 인간의 창조 섭리와 신체관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므로 이것을 토대로 기독교는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보고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내용 을 설정하였다.

① 신체의 성서적 구조

② 신체의 성서적 상징

③ 신체의 성서적 의미

④ 신체의 성서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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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연 구 의 방 법

연구의 방법은 일반적인 연구, 경험적 연구, 권위적 연구와 신비적인 연구 방법을 모두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 연구방법은 물론 신비적 연구방법 도 논리성에 의하여 인정받은 부분만을 채택코자 한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 표현된 신체관을 연구하기 위하여 헬라어와 라틴어 로 된 성경 해설집을 참고하여 단어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신학적으로 연구 된 관련 문헌과 논문을 참고하여 문헌 연구하였다.

본 논문에서 분석되어질 성경구절은 크게 5부분이다.

① 신의 인간창조

신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 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스리게 하자하고, 신이 자기 형상 곧 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할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고 이들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움직 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했다 (창세기 1장 1절 - 5장 32절 ).

② 산제사

번제와 소제 , 화목제 , 속죄제, 속건제을 통해 앞으로 올 예수에 대한 예표와 비유를 나타낸다 (레위기 1장 1절 - 7장 38절 ).

③ 인간의 형태, 예수

예수는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됐다 . 이 부분은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강조하고 예수 또한 신이며 사람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 1장 18절 - 25절 ).

④ 성육신

신의 아들 예수는 기독교의 시작으로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 앞에 서의 고백과 부활하기까지 신의 아들로 선언되고 있다 (마태복음 1장 18절 - 2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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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바울의 몸

너희가 신의 성전인 것과 신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아야 하며 , 신의 성전은 거룩하므로 그 성전인 사람 또한 거룩해야한다 (고전 3장 16절 - 17절 ).

4 . 신 체 관 에 관 한 선 행 연 구

1 ) 그 리 스 철 학 에 서 본 성 서 적 신 체 관

신학 서적들은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성서적 설명과 그리스적 설명이 서 로 상반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은 인간의 통일성을 굳이 해 명하려 들지 않고, 일반적으로 그 주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 이 관심을 집중하는 바는 육체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 앎을 얻는데 있었 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에 있어 인간의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는 앎이다.

그리스인들은 육체와 앎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은 뇌 와 신경조직의 기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은 지적 활동의 자율성 을 믿는다. 그들은 또한 사고(思考)에 있어 언어나 말의 기능에도 관심이 없다.

그리스 인간학은 인간에게 세 가지 혹은 두 가지 원칙만을 인정하고 있다.

즉 적어도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육체는 보다 저급한 차원의 것이고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문명을 전제로 놓고 고찰해 보 면 그같은 주장들을 어느 정도 상태화 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육체를 예찬한 작품들로 주류를 이 룬다. 그들이 육체를 경멸하게 된 배경은 노예제도에 기초를 둔 사회를 반 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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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오는 인간은 손으로 일하는 인간이요 동시에 자유로운 인간이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육체 노동자였으며 체계적인 지적 활동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하나로 보였음이 분명하다. 성서안에는 육체 와 영혼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육은 영혼과 구분된 육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육은 약하고 죽게 되어 있고 유혹을 받고 죄를 범하는 전체로 본 인간을 가 리킨다(권영집, 1983, 34).

2 ) 기 독 교 적 관 점 에 서 의 신 체 관

(1) 성서적 어원

구약에서 인간을 표현할 때에는 갈망하는 인간으로의 네페쉬 (napas ), 전권(全權)을 부여 받은 인간으로의 루아하 (rv ah ), 이성적 인간으로의 렙 (leb ), 몰락한 인간으로의 바사르(basar )로 설명하였다(김지현, 1995 : 24).

구약의 사상은 희랍의 사상과 달리 종합적, 집체적 그리고 긍정적이기 때문 에 전체를 대표해서 몸이라고 정의할 만한 단어가 없다(Robin son , 1952, 13)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바사르이다. 왜냐하면 70인 역에서 는 바사르를 번역할때에 대부분 육(肉)또는 몸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Harrison ,1960, 101).

신약에서는 소마(som a)라는 희랍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소마는 인간의 생명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인간기능을 중심으로 사용하였다. 이것 은 히브리어의 네페쉬와 동일하게 사용하지는 않지만, 초기 히브리어의 프 쉬케(pshike)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주해(註解)한 것에 의하면 인간을 신체(body ), 영혼(Soul sprit )의 개념으로 보고 있으만 인간은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존 재 보다는 전인으로서 관찰되어지고 있다.

(12)

마틴・루터(Martin Luther )도 히브리어에서 육(Flesh )이 바사르라는 단어 하나로써 몸(body )과 육(Flesh )의 두 가지 뜻이 다 포함되어 있다라고 하였 으며 인간의 몸, 혼, 영의 구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구분이 아니고 기능의 구분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 가운데에는 혼과 영과 몸이 있으며 이모든 부분은 선(善)할 수도 있고 악(惡)할 수도 있다. 즉, 영도 될 수 있고 육도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인간을 통일된 전체적인 인간(T otu s Hom o)으 로 설명하였다. 또 그는 사람은 항상 육과 영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만 일 육신(肉身)에 힘이 있게 되면 정신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거기에 관계 된 전체적인 사람이 그러하다고 보았다(나영일, 1983, 2- 3).

(2) 신체의 기독교적 의미

바울(Paul)을 포함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理 解)하고 있었다. 첫째로, 몸은 단지 인간에 딸려 있는 어떤 것, 다시 말하면 희랍사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영(靈)의 무덤이나 감옥으로 또는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 처럼 몸은 저급(低級)한 지상적(地上的)인 것으로써 이해하지 는 않았고 몸은 신으로부터 구별되는 중요한 표시(Sign )인 동시에 피조물 (Cr eatur e)인 사람을 창조자로부터 구별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 람의 몸은 구별된 영적 존재 혹은 나라는 것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특징이라는 견해이다. 둘째로, 몸은 곧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으로 보았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그자체가 사람이 라고 표현할수 있고 살아있는 유기체(有機體)로써 그리고 인격(人格)으로써 생각하였는데 이는 어떤 일을 하는 주체로서 혹은 그 행동의 객체로서의 인 간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결코 시체(屍體)를 몸이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기독교 신학에서 인간의 존재는 신(神)의 육체가 인간화 되는 과정에 중 요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부활에 있어서도 중요성을 갖지만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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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과 죄와 죽음을 연결하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인간을 통해 신은 예수 를 육체화 했고 육체를 통하여 구원의 사업을 펼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도 예수가 육체화 된것에 대한 의미이다.

다른 측면에서, 부활적 신학에서는 기독교적인 사고(思考)는 희랍의 사상 즉 내세적(來世的)인 육체가 없는 영혼 (bodiless soul)의 사상을 명백하게 부인하고 있다. 진실로 기독교적인 사고는 어떠한 형태로든 부활(復活)된 육 체가 영혼과 결합하여 완전해 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와 같은 사상이 바탕이 되어 현세의 육체와 복합된 육체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까지 하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에 대해 중점을 두는 경 향까지 생겼다. 이 세상에서의 육체적인 삶이 사람을 죄와 죽음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육체란 사람의 존재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라 하 겠지만 육체 그 자체로 죽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기독교 신학은 분명히 육체가 죄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否定)하고 있다(권 영집, 1983, 311).

3 ) 기 독 교 에 서 의 신 체 활 동 에 대 한 인 식

초기 기독교적 관념론이 심신 이원론을 강조하면서 체육 및 신체적 레크 리에이션 활동이 무시되고 또 금욕주의(禁慾主義)를 실행함으로써 영혼을 구제할 수 있다는 원죄(原罪)의식이 오랫동안 존속됨으로 해서 더욱 신체활 동이 억제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신체활동에 관한 특징을 본다면 스콜라 철학과 금욕주의,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 내세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사상, 육체보다는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상이 근간이 되고 있다. 이런 사상이 기반이 되어 심신 이원론적 사고방식으로 발전하여 신체활동을 경멸하는 시대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노희덕, 1975,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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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독교가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종교개 혁과 더불어 마틴 루터(Martin Luther )는 모든 노동을 하나님과 이웃에 봉 사하는 길 이라 주장하였다. 칼빈주의(Calvinism )자들도 교인은 모두가 항상 자신이 선택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자기 반성(Self- ex amination )을 하며 근면하게 주어진 일에 종사하고 신이 부를 때에 언제든지 봉사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 이 노동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교회 지도자들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큰 죄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교인들에게 적당하고 유익한 레크리에이션 활 동을 허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청교도들은 계속적인 자기반성에서 벗 어나 스트레스 해소 및 심신의 휴식을 갖게 되었다. 체육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이 성행하였고 궁술, 사격, 육상, 레슬링, 펜싱 등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사격은 몸과 마음을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를 방위할 수 있는 공동의 이점이 있었으므로 권장되었다(Philips, 1677, 289- 290).

일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Protest ant ) 종교 개혁자들은 마틴 루터를 제외 하고는 젊은이를 위한 신체활동의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지적되고 있 으나, 당시의 몇몇 인문주의자나 종교 개혁자들은 나름대로 신체활동의 가 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 예로 영국인 토마스 엘리어트(T homas Elyot ), 에 라스무스 (Erasmu s ), 쯔빙글리(Zwingli)를 들고 있는데 엘리어트는 레크리 에이션이 신체에 이익을 준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레슬링, 달리기, 수영 등의 신체활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 로욜라(Royola )도 신 도를 지도하는 수련의 일환으로 신체의 조화적 발달과 레크리에이션의 목적 을 위해 게임과 신체활동을 장려하였다(나영일, 1983, 32).

또한 에라스무스도 우리는 운동가를 키우는데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유능한 학자나 인간으로서 마일로(Milo : 희랍시대의 올 림픽 영웅)와 같은 경기자가 아닌 적당한 상태의 건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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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쯔빙글리도 자신들의 친구와 함께 노는 놀이는 신체 를 단련시키고 기능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것을 제 공해 주어야 한다 고 주장 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기독교인들에 있어서 점 차 신체와 그 활동에 대한 이해가 발전되어 감에 따라 기독교사상의 사람들 은 점차 스포츠를 지지하게 되었고 운동선수들은 상호승인과 협력을 뜻하는 기독교의 신앙과 상황을 지지해야 한다는데 이르게 되었으며, 운동이 인간 의 생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건강을 증진시켜 인격형성에 유익하며, 신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발달시킴으로써 신을 찬양할수있다는 주장도 나 오게 되었다(권영집, 1983, 313).

4 ) 성 경 의 표 현 바 사 르

히브리어로 몸 , 육 , 육신 , 육체를 나타내는 바사르는 네페쉬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히브리어는 종합적인 인간의 신체기관을 언제든지 물질적이고 정 신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사람은 바사르, 즉 육체을 통하여 영혼을 알게 된다.

육체의 여러 기관이 네페쉬와 관련되어 그 기능을 반영하는 것으로 묘사된 수많은 성서구절들이 있는데 이러한 기능들은 때로는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바사르를 뜻 하기도 한다. 묘사된 기관과 성경구절을 보면 심장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대 단히 중요한 요소로 마태복음 15장 19절에 심장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들이 다. 라고 나타나 있고 심장이란 실제로 네페쉬란 말과 같은 것이지만 육화(肉化)된 네페쉬이다. 신은 이 심장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이 심장은 돌로 된 심장 이 되지 말고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신은 마음을 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음경 의 마음의 표피로부터 제거하기 위하여 마음의 할례란 말 즉 심장의 할례를 쓰는 데 이를 최초로 성경에 쓴 사람은 예레미야이다. 콩팥과 심장은 함께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콩팥과 심장을 살피시나니…. 이러한 표현을 쓴 것도 역시 예레미 야인것 같다. 콩팥은 은밀한 생각, 감추어진 느낌이나 원욕을 표시하기 위하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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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다. 간(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기관으로 비위에 거슬린 다는 말도 있고 다른 말로는 예레미아가 애가서 2장 11절에서 쓴거와 같이 창자 (간)가 터져 땅에 쏟아지는 것 같구나 라고 서술된 것도 있다. 시편과 말라기에서 는 신체의 다른 기관들중 인격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기관의 역할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시편 84장과 말라기 2장 7절을 보면 사람들은 그 입술만 쳐다보면서 인생을 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하였다 고 하는데, 이것 은 사제의 직무가 여호와의 특사로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사제 인격 이 입술에 집중되어 요약됨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시편 35장 9절에서 10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 영혼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는 내 뼛고에서 나오 는 나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내 모든 뼈가 신께 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김종배 역, 199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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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 인 간 의 성 서 적 구 조

인간이란 무엇인가 ? 라고 물을 때, 우리는 몇 가지 다른 질문을 묻고 있는 것이다 . 첫째로 . 인간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또 어떻게 출생하 게 되었는가? 를 묻는 것이다 . 둘째로, 인간의 직무와 목적이 무엇인 가 ? 곧 인간이란 무엇을 하도록 계획 되었는가 ? 를 묻는 것이다 . 이것 은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m ak eup )있는가 ? 를 묻게한다 . 인간은 단일 한 실체로 구성되어 있는가? 아니면 둘 혹은 그 이상의 요소로 구성되 어 있는가? 그리고 만일 인간이 여러 개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요소들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을 묻는 것이다 .

인간의 구조적 본질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견해를 갖는가 ? 하는 것 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 만일 우리가 인간을 이원론적인 존재로 간 주한다면 거기에는 인간이란 다른 인간들과는 고립된 존재라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예를 들어 혹자 (或者 )는 인간의 영적 인 면이 그의 육체적인 면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한다 . 이와 반대 로 만일 우리가 인간을 단일체 곧 일원론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면 인간 의 본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 그것은 몸인가? 혼인가 ? 아니며 또 다른 무엇인가? 일단 우리가 이 문제에 대 하여 만족할 만한 답을 하게 되면 인간을 단지 그 실체만을 가진 존재 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려 할 것이다 .

인간 본성의 구성적 요소들을 고려함에 있어 우리는 특별히 우리가 제시한 전제들을 조심스럽게 고찰해야만 한다 . 왜냐하면 비 성경적인 학문들 또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분야들이 제 시하는 개념들 중의 일부는 우리의 신학적인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도 있다 . 그것이 고대 희랍의 이원론이든 혹은 현대 행동주의의 일원론

(18)

이든지 간에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상반되는 비성경적인 전제들을 해 석함에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용화외 역 , 1993, 121- 122)

1 . 인 간 구 조 의 기 본 적 견 해

1 ) 삼 원 론 (T ri c h o t o m i s m )

삼원론적인 인간관은 보수 적인 개신교 진영에서 인기 있는 견해로 인간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이다 . 첫 번째 부분은 육체적 인 몸 (b ody )이다 . 육체적 본성은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과 공유하고 있 는 것으로 본질상 인간의 몸 그리고 동물이나 식물의 몸 사이에는 아무 런 차이가 없다 . 굳이 차이점을 한가지 들라면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에 비해서 보다 복잡한 육체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 두 번째 부분은 혼 (s ou l)인데, 이 혼은 심리적인 요소로서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사회적 상관 관계등이 기초가 된다 . 동물은 초보적인 혼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 인간이 혼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은 그를 동물이나 식물과 구 별되게 한다 . 인간의 혼이 동물의 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능력이 있 긴 하지만 본질상 이 둘은 유사하다 .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되게 하는 진정한 차이점은 그가 동물 보다 훨씬 복잡하고 유능한 혼을 가지고 있 다는 사실에 있다기보다는 인간이 세 번째 부분 즉 영 (靈 )을 가지고 있 다는 사실에 있다 . 이 영은 종교적인 요소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영적인 자극에 반응하게 한다 . 영은 각 개개인의 영적 인 특성들 (S piritu al Qu alities )의 장소이다 . 이에 반하여 인격적인 특성 들 (P er s on ality tr ait s )은 혼 안에 거한다 . 삼원론의 상당 부분은 고대 희 랍 철학자들의 영향은 생각만큼 그렇게 명백한 것은 아니다 . 사실상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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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의 주요한 기초는 인간 본성의 3가지 구성 요소들을 열거하거나 혹 은 영과 혼 사이를 구별 짓는 성경 구절들이다 . 삼원론을 주장하는 자 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 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 라 와 또 다른 본문인 히브리서 4장 12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 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 니 라고 나타나 있다 . 이 본문들 외에 삼윈론적인 구분이 암시되어 있는 구절은 고리도전서 2장 14절에서 3장 4절로 바울은 여기에서 인간의 본 성을 육에 속한 사람 과 육신에 속한 자 그리고 신령한자 등으로 분류 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인간의 다른 기능들을 언급하는 듯이 보인다.

한편 고린도전서 15장 44절도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을 구별하고 있다.

몇몇 희랍 철학자들은 몸을 인간 본성의 물질적인 부분으로 , 혼을 비 물질적인 부분으로 그리고 영을 몸과 혼사이의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 으로 가르쳤다 . 희랍 철학에서는 인간의 몸과 혼과의 관계를 물질적 우 주와 신과의 관계로 비교하여 설명했다 . 즉 신이 제3의 물질 또는 중간 적 존재를 통해서 물질계와 교류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영도 제3의 중간적 요소인 혼을 통해서만 몸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혼은 한편으로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몸에도 결정을 내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 혼은 영을 소유하고 있는 한 불멸의 존재로 간주되지만 몸에 관계하는 한에 있어서는 육적이고 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삼원론은 특별히 기독교 역사 초기의 알렉산드리아 교부들의 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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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다 . 형태는 다소 다양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 en t ), 오 리겐 (Orig en )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 (Greg ory ) 등은 대체로 같은입장 을 취하였다 . 그러나 아폴리나리우스 (A pollin ariu s )가 삼원론을 이용하여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손상시키고 난 뒤부터는 불신 당하기 시작했다 . 비록 일부 동방의 교부들은 여전히 삼원론을 지지했으나 그 인기도는 상당히 손상되었다 .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 및 독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삼원론이 부활되었으나 신학계의 지지를 별로 받지 못했다

(나용화 외 ,1993, 36 - 40).

2 ) 이 원 론 (D i c h o t o m i s m )

아마도 기독교 사상사를 통하여 가장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아온 이원 론은 인간이 두 부분 , 곧 물질적인 부분인 몸과 빗물질적인 부분인 영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이다 . 이원론은 기독교 사상사 초기에는 그다지 폭넓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였다 . 그러나 38 1년 콘스탄티노플

(Con st an t in ople )회의 이후에 이 입장은 보편적으로 신봉되었다 .

보다 최근의 이원론의 형태는 구약성경이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통일 체로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신약에서 이 통일체는 이분법 에 의해서 대치된다 . 인간은 몸과 혼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몸은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부분과 반대로 인간의 비물질 적인 부분으로 죽음을 면하는 혼이라는 부분이다 . 또한 혼은 인간을 다 른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불멸의 요소이다 .

이원론 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논쟁은 그 본질에 있어서 삼원론 옹호자들의 견해에 대한 것들이다 . 이원론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 유를 들어 삼원론을 반대한다 . 즉 우리가 만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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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나타난 영과 혼과 몸이 각기 독립된 실체를 가리킨다는 원리를 따 른다면 몇몇 본문들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예 수는 누가복음 10장 27절에서 ‘내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 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3개가 아니라 4개의 실체를 보게 된다.

이들 4개의 실체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3개의 실체와 거의 조화 되지 않는다. 사실상 그것들 중 단지 하나의 실체 곧 혼(soul)만이 동일하다.

게다가 혼 뿐만 아니라 영도 동물의 창조에 사용되었다 . 예를 들어 전 도서 3장 21절은 짐승의 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 성경은 분명히 영 과 혼 두 용어를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한다 . 예를 들어 누가복음 1장46 절에서 47절의 병행어법을 주목하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 음이 하나님 내구주를 기뻐하였음은’여기에서 두 용어는 사실상 동일 한 표현이다 .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주는 예들은 수 없이 많다 .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형식이 마가복음6장 25절에서 몸과 혼 으로 , 전도서 12장 7절과 고린도전서 5장 3절에서는 몸과 영 으로 나타난다 . 죽음은 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영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 다고 창세기 35장 18절과 열왕기상 17장 21절 그리고 사도행전 15장 26 절에 써있다 . 더욱이 시편 42장 6절 , 요한복음 12장 27절에 있는 혼과 창 세기 4 1장 8절과 요한복음 13장21에 있는 영이 다 같이 번민과 관련하 여 사용되었다고 써있다 .

자유주의 신학은 몸과 혼을 두 개의 다른 실체로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몸이 아니라 , 혼 또는 영과 동일시 된다 . 클라크 (W illiam N ew t on Clar k )의 저서 조직 신학 개요 (Ou t lin eof Chr ist ian T h eolog y )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 그는 인간이 몸과 영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 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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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한 도덕적 존재인 인간은 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몸안에 거하면서 몸을 통제하는 존재이다 . 그는 인간의 영을 몸 안에 거하면서 몸을 통 하여 활동하는 영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로 생각한다 . 또 몸은 인간의 생명이 거하는 장소일 뿐 인간 본성의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다라고 하 며 몸은 감각들을 모아 그것을 표현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 인간 (P er s on alit y )은 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 인간은 감각이 아니더라도 다른수단들을 통하여 외부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존재이며, 몸이라는 기관을 통하지 않고서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감각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몸은 인간 본성의 필수 적인 부분은 아니다.

인간은 몸 없이도 매우 잘 기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의 이원론이다. 죽음은 몸의 죽음이며 영은 매우 성공적으로 존속한다 . 인간의 죽음은 물질적인 몸을 떠나나 새로운 삶의 영역을 계속적으로 살아간다 . 클라크처럼 몸과 혼을 그렇게 명백히 구분하지는 않지만 기 본적으로는 같은 입장을 취하는 학자로는 드울프 (L. Harold Dew olf)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이 몸과 혼이라는 두 개의 다른 실체로 구성되어 있 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모든 견해는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드울프는 성경이 혼의 생명은 살아있는 몸에 종속됨을 가정하 고 있음을 인정하나 그는 이러한 성경의 가정을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 실체를 감각의 상 (象 ) 없이 단지 말로 표현함에 있어서의 어려움과 인 간은 필연적으로 어떤 매체를 통하여 의사를 소통할 수밖에 없다는 사 실에 비롯된 것이다 .

드울프는 몸과 혼의 이원론적인 구분을 시사하는 수많은 성경 구절들 에 주의를 기울인다 . 마태복음 27장 50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누가복음 23장 46절에 보면 예수는 그의 죽음의 순간에 아버지여 , 내 영혼을 아 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 라고 크게 소리지르고 영혼 (Spirit )이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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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두드러진 본문들은 누가 복음 12장 4절, 고리도전서 15장 50절, 고린도후서 4장 11절과 5장 18절등이다 . 몸은 신의 계획에서 고귀한 지 위를 갖는다 . 그것은 인간의 목적을 표현하고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되 었다 . 그러나 혼은 몸을 통제해야만 한다 .

클라크와 드울프의 이원설은 비록 이들이 혼이 몸과는 별개로 존재하 는 실체라고 주장하지만 몸의 부활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 이들에 따르 면 죽음 이후에 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 그 러나 몇몇 자유주의자들은 몸의 부활이라는 전통적인 교리 대신에 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 이들 중 하나가 바로 포스틱 (H arry E m er s on F osdick )이다 . 그는 신약 성경의 부활 개념을 신약 시대의 시 대적 산물로 간주했다 . 사후의 영혼들이 무의미한 존재로 거주하는 장 소인 스올 (Sh eol:음부 )에 대한 유대적 견해에 의하면 , 불멸 (im m ort ality ) 은 부활이라는 개념을 떠나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 그리고 포로기 동안에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 (Zor oa strian ism )의 영향아래 있게 되었으 며 , 부활의 개념은 점차로 불멸에 대한 소망 개념에 부속되었다 .

그러나 희랍 철학의 관점을 지닌 학자들처럼 포스틱은 불멸의 개념을 부활의 개념과 동일시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 그는 육체의 부활이 라는 개념 대신에 죽음을 통한 인간의 영속 (per sist en ce of per s on ality t hr ou g h deat h )이라는 개념을 더욱 선호했다 . 포스틱이 주장한 혼의 불 멸 교리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영속을 체험한다는 사실을 보존한 반면에 내세의 소망에 대한 신약의 양식을 대신하였다 .

보수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이원론적인 견해를 취하지 않았다 . 이들은 혼이 죽음이후에도 육체에서 불리 된 상태로 생존한다고 믿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미래의 부활을 기대하였다 . 그것은 혼의 생존과 대립되는 몸의 부활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미래에 있어서 불리 된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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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둘 다이다 (나용화 외 , 1993, 40- 44 ).

3 ) 일 원 론 (M o n i s m )

이원론과 삼원론은 그 견해에 있어서 차이점보다도 일치점이 훨씬 더 많다 . 두 견해 모두 인간이란 복합적인 존재 곧 분리된 부분들로 구성 된 존재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인간이 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견해 또한 다양하다 . 일원론은 인간은 몇 개의 다른 실체들로 구성된 존재로 간주되어서는 안되며 , 오히려 하나 의 통일체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일원론의 해석에 의하면 성 경은 인간을 몸 , 혼 그리고 영으로 구성된 존재로 보지 않으며 , 단지 한 자아 (s elf)로 본다 . 때때로 인간 본성의 구성적 요소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들은 사실상 기본적으로 같은 견해를 지닌 것들이다 . 성 경은 결코 인간을 이원론적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다 . 일원론에 따르면 인간이 되는 것은 몸 , 즉 육체를 갖는 것이다 . 어쨌든 인간이 몸과 분리 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서 사후의 영혼이 몸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영이 불멸한다는 생각은 결코 지지 될 수 없다 . 그러므로 육체적 부활이 없 는 내생이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죽음과 부활 사이에 어떤 중간 상태 가 존재한다는 생각 역시 불가능하다 .

부분적으로는 혼의 불멸에 대한 반감으로 생긴 일원론은 신정통주의와 성경신학에서 인기가 있다. 이들의 방법론은 주로 단어- 연구 방법 (W ord - st udy m ethod )을 통한 것이다. 우리는 한 두드러진 예로 로빈슨 (JohnA . T . Robin son )의 바울 신학 중 몸(T he Body )에 관해 그가 이해하 는 결정적 단서와 신약 저자들 중 오직 바울만이 헬라어 소마(Som a)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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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로빈슨에 따르면 실제로 몸에 해당한 히브리어 단어가 없는데 구약에 헬라어 소마 (S om a )에 상당하 는 단어가 없음은 놀랄 만한 사실이다. 70인역 (S eptuagint )에서 소마로 번 역된 몇 가지 히브리어 단어들 중 가장 중요하고도 신학적인 의의를 갖는 유일한 단어는 바사르 (Basar )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본래 몸 (body )이 아 니라 육 (flesh )을 의미하며 70인역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싸륵스로 번역되 었다. 따라서 바울의 인간론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두 단어 육 과 몸 은 본래 공통된 히브리어에서 기원하였음을 알수 있다. 로빈슨의 주 장에 따르면 바울의 인간론은 인간에 대한 히브리적 가정(假定)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구약은 인간을 단일체로 구성된 존재 곧 육과 몸이 구 별되지 않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육과 몸이라는 용어는 그것들 이 바울 서신의 어느 곳에서 사용되든지 간에 결코 구별되어서는 안된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과 몸은 다른 실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견 해는 잘못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단일한 개념으로 간주한 것을 희랍인들 은 두 개의 다른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로빈슨은 어떻게 설명하 고 있는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은 희랍인들이 제기한 문제들 을 결코 문제시하지 않았다. 희랍적 사고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은 결국 육과 몸사이의 구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① 형식 (form )과 실질 (m attr er )사이의 대립 . 몸은 강요된 형식으로 실 질이나 내용을 규정한다 .

② 하나 (on e)와 다수 (m any ) 곧 전체와 부분 사이의 대조 . 몸은 그 구 성 요소들 혹은 기관들을 감독한다 .

③ 몸 (b ody )과 혼 (sou l)사이의 대조 . 희랍적 사고에 있어서 몸은 인간 에게 있어 비본질적인 것이다 . 몸은 인간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이 지니고 있는 그 무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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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개체화 (in div idu ation )의 원리 , 비개별화하는 육과는 반대로 몸은 개개의 인간 존재를 다른 존재와 구별짓는다 .

로빈슨에 따르면 희랍인들이 제기한 위의 문제들은 히브리적 사고에 있어서 매우 낯선 것이었다 . 이러한 사실은 로빈슨이 희랍적 사고에 관 한 증거 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때 분명하다 .

물론 로빈슨은 바울이 두 용어 곧 몸과 육을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로빈슨은 바울이 육을 사용함으로써 몸을 형성한 본질로서의 육 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 오히려 육은 전인을 가리키며 특 별히 외형적이고 신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 예를 들어 육 이라는 용어는 마음의 내적인 할례에 대조되는 인간을 지시하는데 사용 되었다 . 육은 인간의 연약함과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 마찬가 지로 바울서신에서 몸이라는 용어는 결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그 무엇 곧 인간의 외형적인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몸은 인간 자신과 동의어이다. 로빈슨은 프쉬케의 경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로빈슨은 구약 술어 또는 전문 용어를 통하여 인간과 그의 본성에 대하 여 논했던 휠러 로빈슨 (H . W h eeler Robin s on )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 몸과 혼 (b ody an d s oul)이라는 표현은 둘 사이의 구분이나 몇 가지 요 소들로 구성된 인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 오히려 이 표현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묘사로 간주되어야 한다 . 구약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심리적 - 신체적 통일체 (p sy ch o- ph y sical) 곧 혼에 의해서 생명을 공급받는 육체이다 . 히브리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이란 혼이 육화된 존재가 아니라, 몸이 혼으로부터 생명력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한 국 복음서원 번역부 역, 1995, 766- 800).

현대의 일원론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성경의 자료는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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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통일체로 묘사한다 .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인간은 결코 몇 개 의 실체로 구성된 존재일 수 없다 . 몸과 혼은 서로 대립되는 용어가 아 니라 , 상호 교호적인 동의어이다 .

2 . 육 체 와 혼 의 관 계

영혼 또는 혼은 육체이다 . 즉 육체는 영혼이 표현되는 형태중의하나 이다 . 마찬가지로 영혼은 생명이며 피이다 . 그러나 이것은 또한 생명과 피 이상의 것이다 . 영혼이라는 성서적 개념을 그 어떤 것보다도 잘 나 타내는 표현인 사람은 실제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적 차원에서 확장될 수 있다 . 사람의 영혼은 또한 그 집안의 선조 들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기도 하다 . 그 영향이 그 사람에게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사 람에게 속한 대상들, 옷, 무기, 사는 장소들에게도 영혼은 영향을 미친다.

열왕기하 2장 14절과 4장 29절을 보면 요단강 물을 갈라지게 한 엘리야 의 겉옷 , 수넴의 한 아이를 살린 엘리사의 지팡이도 마찬가지로 영혼의 연장 이였다고 할 수 있다 .

성서에서 영혼 또는 혼과 육체 사이의 관계를 고찰할 때 , 이 양자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이 양자는 서로 하 나이다 . 육체는 영혼의 일부가 아니라 영혼을 대신할 수 있는 한 형태 이다 . 이것은 인간의 본질에 관한 서구적 이원론과는 다른 인간에 대한 일원론적 견해이다 . 이런 관점을 강하게 지지해주는 근거중의 하나가 민수기 6장 6절에 죽은 영혼 이라는 표현이 시체를 나타난다는 사실에 있다 .

육체와 영혼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을 나타낼 수 있는 한 형태이다 . 영혼은 육체가 육체인 모든 시간 동안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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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육체로 인식되고 영혼의 한 형태로 여겨질 수 있는 동안 육체와 의 연결을 유지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파괴될 때 이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 성서에서 시체를 만지기를 극도로 꺼려 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혼과 육체관계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 육체가 이미 육체가 아닌 상태이고 , 육체가 영혼의 한 형태로 여 겨질 수 없고 영혼을 나타내는 기구로 여겨질 수 없는 한계적 순간에 이르는 데 이와같은 상태가 이세벨과 관련되어 열왕기하 9장 36절 ,37절 에 서술되어 있다 .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찌 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 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손봉호 외 , 1983, 3~4 ).

3 . 몸 영 혼 정 신

1 )몸 과 영 혼 의 문 제

이원론은 인간을 물질적인 면과 비물질적인 면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다 . 여러 철학과 종교에서 그것을 몸과 영혼의 구별로 표현하였다 . 때로는 여기에 정신이라는 제3의 요소를 더하여 인간이 단순히 몸과 영혼 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정신을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서로 이어지는 영역으로 보 기도 하였다 .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위와 같은 단어들을 지금도 사 용할 수 있지만, 그것을 서로 전혀 다른 영역인 것처럼 둘 또는 셋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그와 같은 나눔은 인간을 그가 살고 있 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보지 않고 순전히 대상으로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의사가 환자를 단순히 진찰의 대상으로 보면 , 진찰대에 누워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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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저 물질적인 몸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그러나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현대의 철학적 접근이나 이와 관련해서 오늘날 한국 문 화의 발전도 오히려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 몸과 영혼 은 구체적인 인간의 국면이다 . 이 구체적인 인간은 살아 활동하며, 스스 로 책임을 지고 자기의 길을 선택한다 . 바로 이것을 우리는 정신이라 일컫는다 .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도 물질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이 하나 로 뭉친 가운데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손봉호 외 , 1983, 1~2).

그러나 그못지 않게 기본적이고 동시에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시도된 접근은 역시 인간을 육체와 영혼이란 도식에서 보는 것이다 . 육체와 영 혼은 각각 무엇이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질문은 아득한 옛날 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보았던 때로부터 오늘날 신경 물리학적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데 이르기까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인간의 어느 다른 요소보다 육체와 영혼의 문제가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계속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 . 모든 존재를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누어 보는 버릇은 전적으로 창조적인 사상가의 공헌이거나 역사적인 우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럴 말한 객관적 근거를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소위 객관적인 근거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 인간 이외의 대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란 것도 인식론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 그것이 인간의 문제일 경우, 특히 육체와 영혼의 관계 에 관한 문제일 경우 그것은 훨씬더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 여기서는 인식의 대상과 인식의 주체가 동일하고 인식 내용과 인식 행 위가 서로 얽혀져 있기 때문이다 . 반 퍼슨 교수는 이 복잡한 문제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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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것으로 환원하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하게 보이고 , 어떤 경우에 는 단순하게 인식되는 육체와 영혼 , 그리고 그 관계가 어느 정도 복잡 하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으며 , 우 리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오류가 숨어 있는 가도 보여준다 . 우선 육체와 영혼에 관해서 역사상 나타난 여러 견해들 을 소개한다 . 원시인들의 관점들로부터 종교적인 관점, 고대 그리스인들 의 관점 , 유물론 , 유심론, 이원론, 그리고 심지어는 현대 신경 물리학적 견해까지 다양하게 거론하고 분석한다 .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역사 책은 아니다 . 오히려 자신이 의도한 결론으로 이끌기 위하여 여러 견해 들을 유형별로 나누어서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점더 종합 적인 견해로 이끌어 나간다 .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격체 로서의 총체적인 인간관이다 . 이런 전체적인 사람됨의 뜻은 사람을 그 저 육체와 영혼의 연합이라고 보거나 ,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결 정한다거나 , 혹은 영혼이 몸보다 우위에 있다든가 하는 식의 객관적 관 점에서는 나타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 오히려 주위 세계와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결정하는 지향적 주체의 입장에서, 혹은 나의 입장에 서 보았을 때 인간의 참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인간의 이런 주체 적 입장 혹은 관점을 그는 정신이란 말로 표현한다 . 따라서 정신은 몸 , 영혼 위에 또 하나 얹혀져 있는 새로운 층이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에 서 , 즉 문화를 창조하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어 윤리적인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서는 초월적인 존재를 체험하면서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 를 완성하고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며 태도를 설정하고 가치 판단을 내 리는 주체로 보았을 때의 인간이다 . 사실 정신으로서의 인간이 더 근본 적이고 원초적이며,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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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상으로 보았을 때에 생기는 것이요 , 일방적인 관점임을 지은이 는 강조한다 . 지향적 주체로서의 총체적인 인간상은 이미 육체와 영혼 의 도식으로 인간을 보았던 여러 철학적 고찰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음 을 반퍼슨 교수는 증명해 주고 있다 . 그것은 사람을 육체 - 영혼의 이원 론적으로 보거나 , 영혼 혹은 육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다른 것을 환원 하여 설명하려 할 때 , 그런 일방적인 접근을 거역하는 요소로 그 모습 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심지어 가장 대상적으로 인간의 정신 작용을 과 학적으로 연구하는 신경물리학에서도 인간의 총체성과 주체성이 나타나 고 있음을 지은이는 매우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한다 . 이것은 결코 좁은 의미 로서의 철학적 인간학 연구는 아니다 . 물론 인간학이라 칸트가 시사한 것처럼 철학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육체와 영혼이란 테마를 중심으로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으며 , 육체와 영혼이란 문제 의 위치를 이와 같이 분명하게 정의시키므로 , 그를 통해서 인간을 보는 눈을 새롭게 했다는 것은 실로 커다란 철학적 공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몸과 영혼이란 낱말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 며 , 동시에 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 몸과 영혼에 관련된 철학적 문제를 깊이 연구해 본 사람은 누구나 철학이 묻고 있는 문제가 일상 생활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 철학사를 보면 몸과 영혼의 관계에 관해서 온갖 종류의 입장이 있었음 이 나타난다 . 현대 철학에서도 이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철학자들이 나타났다 . 과거나 현재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늘 있 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관심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 그 중에서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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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면성(多面性)만큼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인간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 전혀 다른 관계에서 부딪치며 , 가변적 인 상황에서 만날 수 있다 . 몸 , 영혼, 정신은 이렇게 변모하는 전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단어요 , 지칭이다 . 이 명칭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인간을 보는 시선, 즉 인간을 개인의 측면에서 보느냐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느냐 , 다른 동물과 물체와 같은 평면에 두고 보느 냐 혹은 우월한 것으로 보느냐 , 구체적인 세계나 신들의 영역과 분리된 존재로 보느냐 혹은 상관 관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 다는 사실이 우리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몸 , 영혼 , 정신이란 낱말은 이렇게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과 관계가 있 고 , 인간의 성찰이 변하면 이 문제 자체도 변한다 . 오늘날 철학적으로보 는 인간에 관한 이론은 아직도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는 몸과 영혼이란 개념에 관련된 문제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 여기서 이 문제가 어떻 게 발전되어 왔으며 , 그 내적인 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고 , 끝 으로 몸과 영혼으로 살며 , 정신적인 존재로서 세계에서 정위 (定位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한다 .

한때 네덜란드 국민학교에서 사용하던 국어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수 수께끼가 실려 있었다 . 두 기둥 위에 집이 한 채 서 있습니다 . 이 집은 둥근 나무 둥치같이 생겼고 , 그 위에 공 모양으로 된 방이 있습니다 . 그 방에는 창문이 2개 달려 있고 밤이 되면 그 창문이 닫힙니다 . 그리 고 그 아래 구멍이 하나 있고, 그 구멍으로 음식물을 안으로 들여 보냅 니다 . 그 다음 이 집이 무엇인가 ?, 누가 그 안에 살고 있는가 ?를 묻고 있다 . 답은 각각 몸과 영혼이다 . 이것은 하나의 특정한 철학이 빚어 낸 일반적 통념을 잘 대변하고 있다 . 영혼은 곧 몸과는 다른 무엇이며 , 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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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과연 몸 속 어디에 있는가 ? 다시 말하자면 영혼을 공간적인 것으 로 보고 일정한 위치를 지적해 낼 수 있겠는가 ? 다시 말하자면 영혼을 공간적인 것으로 보고 일정한 위치를 지적해 낼 수 있겠는가 ? 그럴 것 같지는 않다 . 가령 영혼이 머리 속에만 있다거나 혹은 심장 속에만 깃 들어 있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 영혼은 특히 그 것이 작용에 있어서 확 실히 몸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 그것은 회상 가운데서 아주 먼 나라를 배회할 수 있고 , 수년 전에 가본 곳에 찾아갈 수도 있다 . 그렇지만 여기 서도 영혼이 몸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곧 알 수 있는데 , 영혼은 적어 도 몸이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을 기억 속에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무엇을 상상할 때는 영혼이 몸에 거의 얽매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환상 가운데서 찾아갈 수 있다 .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상상력조차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표상과 관계해서 작용한다 . 사유 작용은 공간적인 몸의 제약을 완 전히 벗어난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감각적인 표상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 . 예컨대 기억 , 상상, 사유 등 흔히 정신 작용이라 부르는 것도 한 계를 가지고 있으며 몸을 가진 인간의 삶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다 . 그렇지만 영혼을 마치 컵을 찬장 안에 넣듯이 그렇게 몸 속에 공간적으 로 넣어둘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

영혼이 몸이라는 집에 산다는 생각이 생김직도 하다 . 인간의 몸은 사 실 진열장의 마네킹과는 다르다 . 인간의 몸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움 직이고 있으며, 밖에서 보면 몸 안에서 누가 운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한창 작업중인 거대한 기중기와 같다 . 그 움직임은 매우 정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고, 정확한 순간에 짐을 들어서 목적한 곳에 다시 풀어 놓기 때문에 상당히 먼 곳에서도 이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고 그곳에 운전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 데카르트는 지능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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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기계 오늘날의 로봇과 같은 기계와 인간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하였다 . 인간은 밖에서 보면 어떤 움직임이 라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 그것은 곧 인간이 생각한 후에 움직인다는 증거이다 . 이와 달리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는 기계는 일정한 목적을 위한 운동이 가능하지만 인간처럼 갑자기 부딪치는 상황에 대처할 수는 없다 . 인간에게는 이성적인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나타난다 . 몸 과 영혼의 관계를 가시적인 기중기 안에 감추어져 있는 운전수의 관계 로 보는 모델은 영혼이 몸 안에 어떻게 들어 있느냐 하는 어려운 문제 를 야기 시킨다 . 몸이 공간적이라고 하고 , 영혼이 몸 안에 있다고 할 때 이 안에 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 이 문제는 전 철학사에 걸쳐 하나의 큰 문제였다 .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배와 영혼을 의미하 는 선장의 관계로 생각하였다 . 그러나 이 모형의 난점을 그리스 철학자 들도 인정하였다 . 특히 플로티노스는 이에 관해 매우 예리한 분석을 가 하였다 . 그는 선장이 배를 타고 있듯이 영혼이 몸 안에 있지만 그 본질 상 영혼은 몸과 무관하다고 보았다 . 이것은 마치 술통에 든 포도주가 그 통 안의 예비 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나 술통이 포도주와 섞이지 않는 것과 같다 . 이렇게 보면 영혼이 몸 안에 공간적으로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몸도 영혼과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 만일 이 안에 라는 말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본다면, 가령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영혼이 몸 안에 있는 것은 마치 조타수 (操舵手 )의 키 잡는 기술이 배의 키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과 같다 . 이러한 비유는 그 자체는 옳겠지만 여기서 다시 영혼이 어떻게 몸 안에 스며들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 선장과 배의 모델은 그러므로 아무런 해결도 제시 하지 못한다 . 사실 여기서 비교의 초점은 기중기 안 어딘가 운전수가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의 존재나 의도가 그 기계의 모든 움직임에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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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는 점이다 . 영혼의 현존이 몸을 몸 되게 한다 .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플로티노스가 보여준 것처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 위에서 언급한 구절에서 플로티노스는 영혼이 몸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영혼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만일 우리 영혼 이 몸 전체에 스며 있음을 볼 수만 있다면 , 영혼을 몸의 내용으로 보기 보다는 몸을 부수적인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혼이 몸에 스며들어 있다 는 이 말로 플로티노스는 자신의 의견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 데카르트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몸의 각 부분에 영혼이 모두 존재한다는 사상을 잘 요약하고 있다 . 가령 우 리가 다리에 고통을 느낄 때 그 부분에 퍼져 있는 영혼만이 아니라 온 영혼이 다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영혼 전체가 각 부분 에 존재하기 때문에 스며 있다 는 말을 지나치게 문자 적으로 생각해서 는 안 된다 . 여기서 플로티노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 실제로 우리 가 영혼을 몸을 통해서 보며 , 특히 몸이 활동할 때 그 활동의 정도에 따라 더욱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함이 더 옳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 영혼의 현존이 몸에서 마치 광선처럼 비쳐 나온다. 이것으로 수수께끼가 풀 리기는커녕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져 버렸다. 기중기와 비교하는 모델 의 결점은 몸과 영혼을 완전히 별개의 두 실체로 보게 하는 데 있음이 분명해졌다 . 가령 영혼을 의미하는 운전수가 몸을 의미하는 기중기의 동작을 조종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와 반대로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기 중기가 운전수를 잡아 올가미를 씌워 버릴 수도 있다 . 가령 화학 약품 이나 알콜의 작용처럼 육체적인 것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몸과 영혼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 이런 유의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 을 여러 사상가들이 지적하였다 . 일상 생활에서는 이 관계를 몸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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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구별을 전제하고서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 첫째, 영혼이 몸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 손을 내밀고 싶으면 내밀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불안을 경험하고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한다 . 암시를 통해 심지어 몸에 고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둘째 , 이와 반대로 몸이 영혼에 영 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 위에서 잠깐 든 보기뿐만 아니라 의학에서 그 예를 숱하게 찾아 볼 수 있다 . 가령 호르몬 분비가 성격 형성에 작 용하고, 뇌의 손상이 정신 생활에 지장을 주며 , 약을 투여함으로써 기분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 셋째 , 영혼과 몸이 서로 평형 적인 관계를 가 진다 . 일방적인 작용이 아니라 상호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 가령 기분 상태와 얼굴의 기쁨, 고통 , 수치 , 분노의 표정 , 몸의 구조와 성격 , 재능과 뇌의 구조, 필체와 성격 등이 상호 작용한다 . 정신주의자 들인 유심론자가 영혼이 본질적이라는 첫째 관계를 강조하고 , 유물론자 가 몸이 본질적이라는 둘째 관계를 강조한다 . 셋째 관계는 대개 이원론 자들의 주장인데 , 그들은 가령 두 시계가 같이 가고 있는 것처럼 몸과 영혼의 평행성을 강조한다 . 이에 반하여 일원론적으로 보면 한 시계에 두 바늘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문제는 더욱더 쌓인다 . 영혼은 몸의 경우처럼 공간적으로 분명히 구 획지울 수도 없거니와 사유 활동중이라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또한 몸에 자극을 가하여 영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 그러나 몸과 영 혼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묘사할 수는 없다 . 이 양자 사이에 일방 통 행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몸과는 어떤 다른 종 류의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 영혼은 보다 개인적이며, 은밀하 고 친숙하게 보인다 . 그래서 사람들은 몸이 속해 있는 외부 세계와 달 리 영혼을 공간적인 의미는 아니나 내부 세계로 본다 . 타인이 나의 몸 을 관찰할 수 있으나, 나의 정신 생활은 관찰할 수 없다 . 몸은 역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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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에 복종하지만 영혼은 그렇지 않다 . 영혼은 우리의 개인사 (個人史 ) 를 형성하고 , 몸은 공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 그러나 현대 철학자 라일이 지적한 것처럼 개인의 내적 생활을 담은 자서전에서나 공공 생활을 담 은 연보 (年譜 ) 등에서도 이 두 영역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도무 지 읽어볼 수 없다는게 곤란한 문제가 있다 . 나아가서 몸과 몸은 직접 서로 작용할 수 있으나 정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문제 는 더 어려워진다 . 사람은 영혼에 대한 체험을 오직 몸짓 , 말 , 필적등 육체적인 것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유령같은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내면적으로 살아 가고 있다고 라 일은 말한다 .

이제 영혼과 몸을 완전히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실패했음이 분명해졌 을 것이다 . 그러나 몸과 영혼이 서로 속해 있고 서로 의존한다고 하더 라도 이에 대한 입장은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 . 그 중 옛 철학자들을 따 르면서 자기의 이론을 만든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이 가장 전형적인 예 이다 .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영혼은 기수 (騎手 )이고 , 몸은 말과 같다 . 어떤 의미에서 이 둘이 서로 분리되고 또 진정한 인간은 영혼이라 말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마치 말이 있기에 기수가 기수이듯이 몸이 없어 영혼을 생각할 수 없다 . 또한 몸을 진정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 이것을 가령 술잔에 비할 수 있는데 , 술잔은 영혼을 의미하는 술 과 독립해서 존재하지만 술잔이 술잔이 되는 것은 술을 채울 목적으로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 끝으로 인간이 몸과 영혼의 한 쌍으로 된 것으로 보면 황소가 끄는 멍에와 비교할 수 있다 . 그 멍에는 한 쌍으로 황소가 끌 때만 존재한다 . 이러한 관찰은 몸과 영혼을 기중기와 운전수 처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으로 각각 상호 의존해서 존재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점으로 보아 보다 세련된 것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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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몸과 영혼은 상호 관계를 전제로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기 서 나타난다 . 내부 세계에 관해서 말할 때도 그와 같은 상호 관계, 즉 타인과의 관계에 근거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 하지만 어떤 것이 타인에 게 바로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 공적인 일과 감추어진 일에서 각기 달 리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이중성의 문제 등 이것들중에는 많은 의문과 연구대상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 여기서 가장 큰 문제 로 대두된 것은 나에 관한 것이다 . 나는 나의 영혼과 몸인가 ? 아니면 나는 나의 영혼이고 다만 몸을 가지고 있을 뿐인가? 혹은 영혼과 몸을 가지되 내 자신은 정신인가? 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 이 경우 정신 은 영혼과 구별된 다른 존재이어야 한다 . 혹시 나라는 의식은 시각적 환상인가라는 착각에 빠질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 생활에서는 내가 현실의 중심이다 . 내부 세계에 관해서도 이것을 중심으로 논의할 수 있다 . 나란 그저 딴 사람과 한 번 서로 교환해 볼 수도 없는 아주 독특한 관점을 형성한다 . 나의 전 생활은 나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내 앞에 놓여 있는 전 세계도 나를 통해 체험된 것이다 . 뒤에 다시 살펴보 겠지만 나는 실상 내부 세계라 지칭하는 바로 그것이다 . 그러므로 여기 서 안과 밖의 2개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인격 (per s on )으로 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배열된 하나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 나란 총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소외될 수 없는 것이다 . 나 는 자기 중심적인 존재인가? 혹은 보다더 넓은 관계의 장 (場 )에서 비로 소 내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 이러한 질문을 검토할 때 철학적 인 사고 방식뿐만 아니라 철학 이전의 사유와 원시적 사고 방식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 가령 손이 본질적으로 나의 손인가 ? 다시 말하자면 나의 일부를 형성하는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긴 하되 본질적으로 나 와는 상관이 없는 부속품에 불과한가 ? 하는 문제 오직 이를 통해서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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