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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ities Meaning of Teaching Ge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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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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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인문학적 의미

박승규*

The Humanities Meaning of Teaching Geography

Seungkyu, Park*

본 연구는 2017년도 춘천교육대학교 연구교수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임.

*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Professor, Departmen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Chuncheon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mail protected]

요약 :이 연구는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의미를 탐색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학교의 일상 적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 때문이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지 리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지리학의 본질은 땅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토대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교육이기에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지속하여왔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 역시도 지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점에서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인문학적 의 미를 담고 있다. 쓸모있고 실용적인 지리적 지식에 대한 교육을 넘어, 진학이나 취직과는 무관한 쓸모없는 무형 의 가치를 지닌 지리적 지혜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의미인 것이다. 나아 가,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는 지리교육의 존재론적 논의로 연장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 서 의미가 있다.

주요어 : 인문학, 존재론, 가르친다는 것의 존재론적 의미, 지리적 지혜, 쓸모없는 지식, 무형의 가치

Abstract : This study explores the humanities meaning of teaching geography. Teaching geography is not because it is a routine activity of the school. It is because of ontological worries about teaching geography.

Teaching geography is about reaching the essence of geography. The essence of geography is to look at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space on the basis of the traces carved on the ground. As it is a geography education for human beings, interest in human life has been continued. Understanding human life was also an important factor in teaching geography. In that respect, teaching geography has the humanities mean- ing. Beyond education on useful and practical geographical knowledge, teaching geographical wisdom with useless intangible values that are not related to further study or employment, it is the humanities meaning of teaching geography. Furthermore, the ontological discussion of teaching geography is meaningful in that it can be extended and extended to ontological discussion of geography education.

Key Words : humanities, ontological, ontological meaning of teaching geography, geographical wisdom, useless knowledge, intangible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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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글 : 가르친다는 것의 전제에 대한 논의

가르친다는 것은 학교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존재 했다. 인류의 문화유산에 입문시키는 교육의 과정을 전제로 탄생한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당위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내용 과 방법으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가르친 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시 대가 변해감에 따라 가르침의 존재론적 의미는 달라 진다. 가르치는 행위는 그대로지만, 시대에 따라 가르 침을 설명하는 말들이 변한다. 가르치는 것을 설명할 때 말로 표현하는 언어와 말로 표현하지 않는 언어가 있다. 언어의 차이는 가르치는 행위가 가진 의미체계 를 변화시킨다. 가르친다는 것을 설명할 때 말로 표현 하지 않은 언어가 무엇인지, 당위적으로 생각하면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려 한다(김세 희, 2018).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전수의 수단이 아니 다. 프레이리(Freire)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르친다 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전수나 전달 행위가 아니라는 것(사람 대 사람, 역, 2007)은 교과교육학 전공자들에 게는 기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당위론적인 사실 이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교육적 행위에 대해 무 관심하게 하는지 모른다. 지리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할 인간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가르치 고 있는 지리 지식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등 우리가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전제로 삼고 있 는 많은 요소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당위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기에 성찰을 어렵게 한다. 가르친다는 것 도 우리 모두의 일상적 실천이기에 그런 매일의 반복 적인 실천을 숙의하면서 교육하기가 어렵다. 가르친 다는 것의 반복을 통해 생산해내는 차이의 문제에 역 시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가르치지만,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그것이 단지 내용의 문제 가 아니라, 내가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나 철학의 문 제는 아닌지 성찰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가르친다는 것이 가진 무게는 모두가 느

낀다. 가르치기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현상학적 인 관점에서 서양교육사를 살피고(고요한, 2012), 가 르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의미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한기철, 2012). 가르 치기 어려운 시대에 학교와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임 태평, 2012), 가르치기 어려운 시대가 가진 교육의 보 편적 문제나 지금 여기의 교육문제에 대해 설명하기 도 한다(신득렬, 2012). 또한, 가르치기 어려움은 ‘교 육’개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 기도 한다. 에르치흥(Erziehung)은 앞선 세대가 후속 세대에게 문화유산을 강제적, 의도적으로 전수하는 행위인데 비해, 빌둥(Bildung)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 구조에 기초한 심미적, 도덕적, 지성적 과정 과 관련된 교육 개념이다. 이 가운데 가르치기 어려움 의 문제는 교육을 Bildung이 아니라, Erziehung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조상식, 2012).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개념사적인 연구가 등장하기 도 한다(한용진·김자중, 2016). 이를 통해 ‘교수’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어왔는지를 살핀 다. 개념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르친다는 것 은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1880년대 들어와 가 르친다는 말의 한자어인 ‘교수(敎授)’는 직함을 의미 하기도 하고, 가르치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교수 라는 개념이 다양한 교육적 상황에 적용되어 왔다. 이 런 이유로, 189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 교 수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교수 개념은 지적인 도야 이외에 심신의 수양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었고, 인간을 올바르게 성장시킨다 는 용어들과 혼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상황 에 놓여있다고 말한다(한용진·김자중, 2016).

다른 측면에서는 가르친다는 것은 곧 교과의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가의 다른 이름이라 말하기도 한 다. 우리가 가르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가르친다 는 것 자체가 아니라, 교사의 유형에 관해 관심을 갖 는 것도 이런 생각을 전제로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 고 했을 때, 지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가르친 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전달하는 교사의 유 형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근거해서 가르 친다는 것은 교사의 역할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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눠진다(박수연, 2001). ‘관리자적 접근’, ‘치료자적 접 근’, ‘자유주의자적 접근’의 유형이다. ‘관리자적 교사’

는 가장 효율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학생들 학습이 이 루어지게 하는 사람이다. ‘치료자적 교사’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자라게 하고, 자기실현, 자기 수용에 도달 하게 하는 인정 있는 사람이다. ‘자유주의자적 교사’

는 학생들을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자 율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으로 발전시켜주는 사 람이다. 이처럼 교사의 유형을 통해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선행연구들은 가르침의 존 재론적 차원에 대한 고민은 깊어 보이지 않는다. 가르 침의 어려움을 말하고, 가르치는 것의 개념사에 말하 고 있지만, 정작 가르침의 존재론적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가 르친다는 것은 당위이다. 학교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학교이기에 의심하지 않는 행위가 가르친다는 것이 다. 하지만, 우리가 당위로 생각하고 있는 ‘가르친다 는 것’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가르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당위적 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전제 하고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18세기에 흄(Hume)은 과학의 정당성을 설명하 기 위해 ‘존재’와 ‘당위’의 문제를 제기한다(박승규, 2010). 과학은 당위적으로 가르쳐져야 할 것이 아니 라,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객관적 인 식의 조건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 역시도 이 런 흄의 논리에 기대에 설명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알 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가르친다는 것 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학교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가르칠 것인지를 말하면서 ‘무엇을’

과 ‘누구’에 초점을 두어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에게

‘무엇을’과 ‘누구’를 생략한 ‘가르친다는 것’의 존재론 적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없었다. 하지만, ‘무 엇을’과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인지 이전에 가르친다 는 것이 무엇을 전제하고 있으며, 가르친다는 것이 어 떤 의미의 층위를 갖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있 어야 한다.

우리 삶이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매일같이 새로운 일상적인 삶을 살게 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듯 가르 친다는 것의 의미 또한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다른 의미체계를 생성한다. 파머(Parlmer, 2013)는 학교에 서 ‘무엇을’, ‘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 가’ 가르치는가의 문제라 말한다. 하지만, 가르친다 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있고 난 후에 ‘무엇을’

과 ‘누구’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교육의 효과는 높아 질 거라 믿는다. 나아가,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학 습자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인간 에 대한 고민도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 속에 포함되어 야 한다고 본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인문학적 의 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리를 가르친 다는 것이 가진 의미의 지층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 을 통해 우리가 당위적으로 생각했던 지리를 가르친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 요구 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가르친다 는 것에 익숙한 ‘나’이기에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 인지 생각한다. 교육이 우리의 평범한 순간과 마주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는 바흐친(Bakhtin)(오문석 외 2 명 역, 2006)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우리의 일상공간에서 말해지 는 교육에 대한 논의까지 인식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그리하여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말하는 것이 그게 뭐 야 …’, ‘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못 배웠어.’, ‘학교에서 는 그런 것도 안 가르치니?’ 등등의 말에 관해 설명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학교는 우리의 일상 에서 말해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가르칠 여백이 없 다.

학교에서는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교육과 정과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낯선 지리 지식을 가 르친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지리학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지리 지식에 관심이 적다. 그들의 일상과 너무 다른 낯선 이야기여서 그런 지리 지식과 친숙해지는 과정이 쉽지 않다. 학교 밖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의 심한다. 일상에서 교육의 과정에 대한 효과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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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치고 있는지 되묻기도 한다.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 치는 목적이 성숙한 시민이거나 온전한 인간으로의 육성이라고 한다면, 가르친다는 것에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힘 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 가는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 는 것이 가진 인문학적인 의미를 살펴봐야 할 이유이 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인문 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지를 살핀다. 가르친다는 것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지리를 가르친다 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의 지도를 그 려보고자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인문학적 의 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인문학이 무엇인지는 생략 하려 한다. 논의가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최 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연구자의 관점에서 말하 고자 하는 인문학은 애매함과 모호함을 특징으로 하 고 있음을 밝힌다. 애매함과 모호함의 출현은 어떤 배 경을 가졌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미세지 각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지각을 통한 모호 함과 애매함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는 사유의 과정을 유발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2.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1) 지리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허쉬(Hersh)는 수학을 가르친다고 했을 때, ‘수학 을 가르치는 제일 나은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잘못이라 비판한다. 오히려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수학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수학의 본질에 맞서 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Earnet, 2004). 그런 점에서 허쉬는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방법론적이고 교수법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수학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

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다(박승규, 2015). 수학이 무 엇이어야 하며, 수학이라는 학문이 궁극적으로 무엇 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수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 학을 가르치는 사람들 역시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라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허쉬의 이런 생각은 수학자 와 수학교육자가 분리된 지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기도 하다. 어쩌면 수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수 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 을 것이다. 이미 하나의 전제로 수학 내용이 있었기에 그것을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천착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 칠 내용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이 무엇 인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수학이 무엇이어 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가 지금 가르 치고 있는 수학내용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내용에 대 해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허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 역 시도 지리를 가르치는 방법이나 교수법의 문제가 아 니다. 지리학이 본래 어떤 학문이고, 어떤 특성이 있 는지 숙고해야 한다. 하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 들이 놓여 있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리를 가 르치는 사람들 역시도 이런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지리내용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사람이 나 누어져 있는 현실에서 지리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한다. 허쉬의 충고에 귀 기울 인다면, 지리를 가르치는 사람들 역시도 지리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지리학의 본질에 대해 더 고민해 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적 구조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한때 ‘발생론적인 지리교육(genetic geography education)’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 리적 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적인 지식에 대 해 비판하고, 지리 학습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 리교육 내용의 생산에 관해 관심을 표현했었다. 그 들은 지리교육이 지리학과는 다른 별개의 학문이라 는 인식을 토대로 학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 운 지리내용의 생산을 주장했었다(최원회 역, 1988).

허쉬의 비판을 고려한다면, 발생론적 지리교육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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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각은 오늘날 유효할지 모른다. 그들의 시도는 미 완의 기획으로 끝났지만, 논의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버마스(Habermas)가 생활세계에 대한 소통 이론 을 통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근대에 대한 미완의 기 획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있는 것처럼, 발생론적 지리 교육적 입장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지금의 지리교 육 현실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습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지리교육의 미 래를 생각한다. 지리교육을 지리학의 응용분야가 아 니라, 지리학과 대등한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생각한 다. 방법학으로서의 지리교육을 거부한다. 새로운 지 리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지리내용 요소에 대한 갈 증이 있다. 지금까지 지리교육은 지리학자들이 지리 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지식을 생산하면, 지리교육 자는 가르치기 위한 지식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었 다(김민정, 2002). 하지만, 발생론적 지리교육학자들 은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지리학자와 지 리교육자가 분리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리를 가르치 는 사람들이 지리 지식을 생산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리교육의 위상 에 대해 고민한다.

현재의 지리 교육적 상황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것 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다른 이름이었다. 잘 가르 치기 위해 다양한 교수모형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지리를 잘 가르칠 방법에 대해 천착했다. 하지만, 그 런 방법론 너머에 어떤 인식이, 어떤 지리철학이 있는 지에 관해 묻지 않는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통념적 인 식은 허쉬의 관점에서라면 수정되어야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지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 위였다. 너무나 분명한 이 명제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박승규, 2018). 가르친 다는 것이 단지 지리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이 지리를 가르치는 것 그 이상에 다른 의미의 지평이 있다는 인 식은 거의 없었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지리학의 본질에 다가가 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리교육의 모습은 지금까지와 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리학을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마주하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 에 대한 학문으로 정의한다면, 학교에서의 지리교육 은 조금 더 앎과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 이다. 우리 삶과 앎의 유기적 관련성은 우리가 일상 에서 ‘학교에서 그것밖에 못 배웠냐?’, ‘학교에서는 그 런 것도 안 가르치니?’, ‘많이 배운 사람이 그렇게 밖 에 행동을 못해?’라는 식의 말에 어느 정도 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교과를 통한 학교 교육에 서는 이런 일상적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지리 수업시간 역시도 이런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 다. 지리적 앎과 우리 삶의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일 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감이나 배려 등의 가치를 지리수업을 통해 배우지 못했다.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는데 요 구되는 공감이나 배려에 대한 개념 학습에 그친다. 그 것이 가진 무형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데 소홀했다.

지금까지 지리교육학자들은 지리학의 연구 성과를 가르치면 학습자는 자연스럽게 인간다운 모습을 갖 출 거로 생각한다. 지리적 개념이나 원리에 대한 학습 을 통해 학습자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무형적 가치를 내면화한 인간으로 성 장할거라 전제한다(권오정·김영석, 2003). 이런 생각 은 헤르바르트(Herbart)의 도야론이 가진 맹점인지 모른다. 양동이속에 개념이나 원리를 주성분으로 하 는 지리지식이라는 물을 가득 채우면 양동이가 넘쳐 흐르듯이, 개념이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지리교육은 양동이로서의 학습자가 그와같은 효과를 나타낼 거 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리 교육 역 시도 이러한 일상적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리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지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런 문 제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지리학이 본래 어떤 학문이고, 오늘의 우리 삶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 숙의해야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학습자를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학습자들을 성 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을지? 를 고민해야 한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존재론적 고민이 단지 가르치는 행위를 넘어 지리학의 본질에 다가갈 때 비 로소 가능한 답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적 삶과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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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에서의 지리적 앎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 는 것은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지리 지식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지리 지식을 생산하는 사 람과 지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 구조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지리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적었다. 학교 지리에서는 지리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과 앎의 거리를 줄여주지 못하면 우리의 일상적 질문에 답할 수 없었 다. 하지만,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지리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리를 가르치는 사 람들 역시도 자신들이 가르치는 지리에 대해 성찰할 것이다. 그런 성찰의 결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지리 지식을 생산할 것이다.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사 람들이 느끼는 지리학의 모습이 반영된다면, 지리는 지금보다 더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유용한 내용의 교 육이 가능할 거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허쉬의 문제제기는 단지 지리를 가르 치는 것이 지리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넘어, 지리 교육이 갖고 있었던 지리 지식의 생산과 소비라고 하 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 지식의 생산과 소비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 나 지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지리학의 본질에 더 고 민하길 바란다. 자신들이 가르치고 싶은 지리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지리학의 본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 으면 한다. 다양한 지리학의 모습이 지리교육으로 이 어지길 바란다. 지리학이 가진 지리학의 본디 모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지리교육은 인간 삶과 앎 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학문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 문이다.

2)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이다

1963년에 루세라는 바로크 학자가 ‘과연 바로크 는 정의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바로크라는 예 술 양식이 가진 다양성의 의미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바로크는 한두 가지의 용어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성 을 함의하고 있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바로크를 말하 는 학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바로크를 이야기함으로

써 오히려 바로크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고 주장한 다. 그러면서 그는 바로크는 ‘다양성을 통해 역동적으 로 파악된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 역시 도 그 자신만의 바로크를 이야기하고 있어, 자신이 제 기한 문제제기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박치 완, 2016).

어쩌면 지리학의 본질에 대한 정의 역시도 마찬가 지다. 지리학이 가진 학문적 다양성은 지리학의 본질 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의 지리학을 갖게 한다. 메시 (Messy)도 지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정의 가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한다. 소통의 원활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의미로 공간을 정의하고 있는지 말했으면 한다(김지 혜 역, 2014). 바로크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고, 지리 학에 대한 각자의 지리학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메시 의 지적은 지리학자들 간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인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지리학에 대 해 정의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지리학은 ‘땅(geo) 에 새겨져(graphien)’있는 흔적들을 토대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리학은 처 음부터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학문이었다. 인간이 새겨놓은 흔적이 왜 무엇을 위해 누가 새겨놓았는지를 물을 수 있고, 그런 물음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학문이 지리 의 본질이다. 존재론에 지리학이 없었고, 지리학에 존 재론이 없었다는 베르크(Berque)의 표현은 이런 지 리학에 대한 정의를 접하기 이전의 문제였다(김웅권 역, 2007). 하지만, 지리가 땅위에 새겨진 우리의 흔 적을 근거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학 문이라고 한다면, 지리학에 존재론은 구체적이고 물 리적인 영역에서의 논의가 가능하다.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공간위에 수많은 ‘터 무늬’를 새긴다. 그 런 터 무늬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 성찰한다.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우리 의 존재론적 특성에 대한 고민한다. 지리는 누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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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위에 흔적을 새겨놓았는지를 묻는다. 그런 과정 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 다. 지리는 땅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토대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관심 둔다. 공간은 비어있지만, 비어있 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흔적이다. 그렇기에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은 - 그것이 물질적이든 기억 등의 비물질적이든 - 지 리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요 소이다.

땅위에 새겨놓은 인간의 흔적을 통해 존재론에 고 민하는 학문이 지리학이라 한다면, 지리의 본디 모습 은 인문지리학이 아니라, ‘지리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지리학과 지리인문학 모두 인간 삶을 대상 으로 한다. 그런데도 지리인문학이 조금 더 땅에 새겨 져 있는 인간 삶의 흔적을 통해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학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인문지리학에서 ‘인문’이 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을 극복하고, 지리학이 인간 삶에 조금 더 밀착된 학문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 다. 지리학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 이었다. 산 너머에 누가 살고 있는지, 강 건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해 하는 학문이었다. 인 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 었던 학문이 지리였다. 그런 지리학의 모습을 더 적절 하게 표현하는 것이 지리인문학이라 생각하기 때문 이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존재론적 고민은 이러한 지리학의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지리학의 본질 에 다가가는 것은 기존 지리학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리학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 정일 수 있다. 인간이 땅위에 새겨놓은 다양한 흔적 을 통해 우리 삶과 앎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지리교육 내용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 리교육은 지리인문학으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생각한 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교육이기에 지리인문 학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인문지리학이 가진 지리 학의 본래적 모습을 넘어 새로운 지리학의 본래 모습 을 찾아낸 것이 지리인문학인 것이다(물론 이런 논의 는 조금 더 충분한 논증이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연구에서는 가르친다는 것이

지리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표현을 쓴다).

결국,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인간과 공간의 관계 를 통해 인간의 삶에 관심 두고, 우리 사회에 대해 고 민하는 것이다. 땅위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우리 사회 의 문제점들에 대해 ‘파르헤지아(parrhêsia)’ -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다 - 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학습자들 을 가르치는 것이다(심세광 외 역, 2006). 땅위에 새 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 리를 가르치는 과정은 명증한 명제들로 가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다 양한 담론들이 공존해야 한다.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목소리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숙의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명 해야 한다. 교실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목소리는 지식 의 비대칭성이 가진 일방통행적인 가르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 공간의 의 미가 하나의 의미체계로 환원되지 않도록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 의 존재론적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인문학적 의미

1) 인간에 대한 ‘배움’의 과정이다

들뢰즈(Deleuze)는 기존의 서양철학이 전제하고 있는 생각의 바깥에서 사유하기를 희망한다. 그는 우 리가 전제하고 있는 사고의 틀 바깥에서 생각할 수 있 는 사유의 환경에 관해 관심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너머에 존재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들뢰즈는 ‘사유의 이미지’

또는 ‘내재성의 원리’라 명명한다(신지영, 2009).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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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은 새로운 사 유의 이미지를 그려가는 과정이다.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교육적 행위의 반복성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차이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대 에 따라 공간에 따라 의미는 변화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그렇기에 일상적 행위로서 가르친다는 것 에 대한 당위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르친다 는 것이 가진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지리학이 지리인문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면, 지리 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은 지리학이 가진 인문학적인 성격도 고려해야 한다. 지리인문학 적인 관점에서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존재론 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지리를 전공한 우리들이 지리 를 가르치는 행위에 대해 가진 통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지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리를 가르 치는 것이 중요하고 느낄 수 있도록 지리를 가르친다 는 것이 담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그런 고민의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부여할 수 있는 학문이 지리학이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지리 교과임을 알게 했으면 하 는 것이다.

들뢰즈는 ‘앎’과 ‘배움’을 구분한다(김재춘·배지현, 2011). 안다는 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지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앎은 재현적 활동인 것이다. 반면에, 배움 은 창조적 사유를 의미한다. 동일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하는 창조적인 사유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배움은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과 마주침 을 통해 인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렇기에 배운다 는 것은 땅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인간과 공간 의 관계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리를 가르친다 는 것의 인문학적 의미는 바로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지향한다.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인간의 삶 을 이해하고 알아간다.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에 대 한 해석은 차이를 생성하기에 지리교육의 과정에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 하나의 관점으로 인간 삶을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삶이 간단치 않 고, 인간과 공간의 관계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공 간에 새겨진 흔적을 누가 왜 새겼는지를 파악하는 것

은 지리 지식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지리 의 사유체계를 단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나 무들에 주목해보자. 나무는 가을이 오면 자신이 살기 위해 나뭇잎으로 가는 물줄기를 차단한다. 그러면 초 록빛의 나뭇잎은 빨갛게 단풍이 든다. 은행잎은 노랗 게 단풍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질 문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나뭇잎은 무슨 색깔일까?

단풍나무 잎은 초록색일까? 아니면 빨간색일까? 은 행나무 잎은 어떤 색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단풍나무 는 붉은색으로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에 의하면 어느 것을 나뭇잎 색깔로 정해야 하는지는 애매하다. 모호 한 이런 상황에서 학습자들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정답을 무어라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둘 다 나뭇잎의 색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붉은 색 과 노란 색을 나뭇잎의 색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 만, 어느 것 하나를 정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상 공간에서 접하는 작은 사례이지만, 이 런 가을의 일상 경관을 통해 우리는 학습자에게 사유 의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이런 시도가 지리를 가 르치는 것의 인문학적인 의미일 수 있다. 일상 공간 에서 접하는 익숙한 경관을 통해 우리의 인식에 대해, 우리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지 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가진 인문학적인 의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명제적이고 명증한 원리나 법칙을 가 르치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지리의 가치를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학문으로서의 지리학을 공유하기 위한 것 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 공간을 구성하는 가시적이고 구체적 인 공간 구성물은 인간이 생산한 의미 있는 흔적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왜 누가 이런 경관을 생산했는지 를 질문한다. 그런 사유의 과정을 통해 인간과 공간이 어떤 관련성을 가졌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다른 사람 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추상적인 언어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 구성물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 가능하 다. 일상 공간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은 추상적이고 관 념적인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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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소한 경관이기에 지금까지 지리 교육의 과정 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들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배움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땅에 퇴적된 의미체계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동일성을 반복하는 재현적 활 동이 아니라, 차이에 주목하는 야생적 사유의 과정인 것이다.

그동안의 지리 교육이 앎의 과정에 경도되어 있었 다고 한다면, 배움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리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은 모든 교육의 과정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지만, 정작 교육의 과정은 앎의 과정에 경도되어 있었다. 교사가 언급한 내용을 재현하는 교육 활동에서 벗어나, 차이 에 주목하는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답을 말하는 재현적 활동에서 벗어나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창조적 사유가 필요하다. 그런 배움의 과정을 추구하는 새로 운 프레임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을 토대로 차이를 만들어내 는 교육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 공간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통해 우리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새 로운 의미체계를 발견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낯설고 어색한 지리내용으로부터 벗어나, 익숙하고 친숙한 일상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나누자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지리적 앎이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는 교육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위 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에 공간이 담겨있다고 한 다면,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 삶 전부와 연결된 다. 우리가 배워야 할 우리 삶이 교육 내용 그 자체이 고, 그런 삶의 다양한 경관을 통해 나와 우리를 알아 가는 배움의 과정을 가르쳤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교 육의 과정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지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2) 무용의 지식과 무형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배우는 것은 사랑하는 행위와 마 찬가지로 삶의 기쁨이었다. 무지와 미신이 지성의 눈 을 가린 사이에 잃어버린 예술과 사색에 깃들어 있는 풍요와 자유의 회복에서 오는 정신적 기쁨을 추구하 던 시대였다. 실용적인 지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논의

와 학문들이 일상적으로 연구되고, 그 가운데서 기쁨 을 찾는 것이 보편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랑스 혁명과 기계의 발달을 거치면서 실용적인 지식에 대 한 관심은 급속하게 증가한다(송은경 역, 2017). 반면 에, 삶의 기쁨을 배가시키면서 우리 삶에 대해 숙고 하고 성찰 수 있는 르네상스를 대변했던 무용한 지식 에 대한 인식은 자리를 잃어갔다. 그런데도 러셀(B.

Russell)은 무용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그는 무용한 지식이 중요한 것은 인간들에게 생각할 수 있 는 습관을 들여 주기 때문이라 말한다. 어쩌면 실용 적인 지식이 강조되면서 우리들은 햄릿이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무용한 지식 의 가치가 사라진 지금에는 오델로처럼 생각없이 행 동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송은경 역, 2017).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인문학적 의미는 러셀이 말하는 것처럼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교육의 과정 이 아니다. 학교는 태초부터 배우는 것 그 자체가 삶 의 기쁨이었던 공간이었다. 학교라는 말의 어원에서 보여주듯이 학교는 여가(schola)를 즐기는 공간이었 다. 그렇기에 학교라는 공간의 본디 모습은 실리를 추 구하기 위해 실용적이고 쓸모 있는 지식 - 진학이나 직장을 구하기 위한 시험 등에 필요한 지식 - 을 가 르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리적 지식이 아니라, ‘지 리적 지혜(geographical wisdom)’를 가르치는 공간 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때 지혜는 우리가 일 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체계인 것이다.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인간들이 공 유하고 있는 무형의 가치이고 무용한 지식인 것이다.

진학이나 구직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이 아 니다. 삶의 기쁨을 생각하게 하는 무형의 가치를 가르 치는 교육의 과정에서 키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리적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의 과정은 학습자들을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학습자들 스스로가 내면화하기를 바라는 것을 지리 교육의 과 정에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의 과정은 우리 삶과 밀착되어야 한다. 일상적 삶에서 지리적 지혜는 일상 공간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하고 성찰하는 힘을 키워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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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현재의 필요나 실리를 줄 수 없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무용의 지식과 무형의 가치를 체 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교육의 과정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 갖게 한 다. 일상 공간을 공유하는 그들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서도 생각한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서로를 존중 한다.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이 우리의 일상임을 알아간 다. 동일성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일상 공간임을 알아간다.

마크 로스코(M. Rothko)는 자신의 그림에 어떤 이 미지도 그려넣지 않는다. 오로지 색깔의 대비만을 통 해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로스코가 그와같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갖는 느낌과 그 림을 관람하는 감상자들의 느낌과 직접 만나기 위해 서다. 그림에 형상을 재현해 놓으면 관람자는 그림 속 형상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예술가의 감정이나 정 서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다. 로스코는 형상을 통해 예 술가의 생각을 알아가는 중간 과정을 생략한다. 그는 자신의 감각과 관람자의 감각이 직접 마주하기를 바 란다. 그런 마음에서 색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그런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로스코의 그 림이나 생각이 묵시적으로 전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는 우리 삶에 대한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 능하게 하는 무용한 지식과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 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 같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그림에 담고자 했던 것을 무형의 가치 를 관람자가 알아가는 것은 색만으로도 가능하기 때 문이다.

지리 수업시간에 한국지리를 가르친다고 할 때, 우 리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가르친다. 한국에 대해 가르치면서 정작 한국성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한국성은 학습자 스스로가 알아야 하는 과제로 남겨 둔다. 지역지리학이 지역성을 알아가는 것이 목적임 에도 한국성을 수업시간에 다룬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도야론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를 이 해하기 위한 실용적인 지식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다양한 일상 공간에서 만나는 지리를 통해 한국성을

알아가기 위한 지리적 지혜를 필요로 한다. 무용한 지 식이나 무형의 가치를 담고 있는 일상 공간에 대한 배 움의 과정을 지향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 땅에 새겨 져있는 우리 삶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는 지리교육 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인간이 새겨놓은 흔적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 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과정 자체가 삶의 기 쁨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실리를 추구하지는 못한다 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무형 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지리 교육의 과정을 만들어가 는 여정이다. 지리 지식이나 쓸모있는 지식을 가르치 는 지금의 교육 너머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리적 앎과 일상적 삶과의 거리를 줄여 교육에 대한 상식적 질문 에 답할 수 있는 지리교육이길 바란다. 지리적 지혜에 대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일상 공간에 새겨져 있는 침 묵의 언어를 공유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지리 교육 의 과정이 지리적 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지리 교육을 보완했으면 한다.

4. 끝맺는 글: 지리교육의 존재론을 지향하며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학문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다.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이해하고 설명 하기 위한 방법론과 인식론이 있다. 하지만, 들뢰즈 는 그런 존재론을 거부한다. 그의 존재론은 ‘be’동사 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can’에서 출발한 다. 하지만, 들뢰즈의 존재론적 의미는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량으로, 생성으 로, 창조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한다는 것’이다(진보 성, 2012). 들뢰즈적으로 본다면, 가르친다는 것이 학 교에서 행해지는 일상적 행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가진 의미 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지속해서 변화하고 생성을 거 듭한다. 그렇기에 가르친다는 것이 생성하는 다양한 의미와 역량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르친다 는 것이 가진 존재론적 의미는 변화와 생성을 통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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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게 의미를 구축해가는 것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기관없는 신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요소들과 이어지고, 단절 되는가에 따라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달라진다. 가 르친다는 것이 어떤 배치채 속에 포함되는 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들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기관없는 신체 로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그동안 의 사유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가르치는 행위 에 대한 당위론적 접근을 넘어, 가르친다는 것이 가진 존재론적이고, 인문학적인 의미를 찾아 지리 교육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은 실 리를 추구하는 실용적인 지리 지식을 가르치는 지리 교육 너머를 지향한다. 지리적 지식이 아니라, 지리적 지혜를 가르치길 원한다. 교육이 일상과 마주할 때 교 육적 의미가 더 드러난다고 말하던 바흐친(Bakhtin) 의 생각처럼 지리가 일상적인 삶의 실천에서 빛을 발 할 수 있는 교육의 과정이길 바란다. 실용적이고 유용 한 지식뿐만 아니라 무용의 지식이나 무형의 가치는 우리 삶을 이루는 근간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무형 의 가치나 무용의 지식에 대한 학습을 통해 일상 공 간의 온기를 유지하길 바란다. 학교 교육을 통해 더욱 더 인간답게 학습자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지리적 지 혜의 교육이 지속해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은 지 리학이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었던 학문이 아니라, 우 리 삶과 밀접한 학문으로서의 지리학의 위상을 회복 시킬 수 있는 시도이다. 일상 공간속에 새겨져 있는 다양한 흔적을 통해 무형의 가치와 무용한 지식에 대 해 학습하는 교육의 과정을 지향하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껏 잊고 있었던 우리의 터 무늬를 이해하고, 그것 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지리교육을 지향 한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리교육의 패러다임을 견 인하길 바란다. 방법학으로서의 지리교육과 내용학 으로써의 지리학의 구별을 해체하길 바란다. 그런 과 정을 통해 지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지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내용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길 바 란다. 이런 지리교육의 과정은 어쩌면 학교 지리교육 이 처음부터 지향했었던 교육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

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의 존재론적 의미는 지리교육의 존재론적인 의미체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 다. 지리교육의 존재론 역시도 단지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던져지는 물음이 아니다. 지리 교육의 존재론적 논의 역시도 지리가 학교 교육에서 다른 교과와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작업 이다. 지리교육이 가진 역량을 밝히는 것이며, 지리교 육을 통해 새롭게 생성하고 변화하는 지리교육의 모 습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지리교육 이 행하고 있는 교육적 실천의 의미를 배가시키고, 미 래의 지리교육의 위상을 찾아가는 것은 지리교육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교육의 일상적 행위를 통해 생성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 가져야 한다. 그것을 통해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지리교육의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지리교육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삶에 다가갈 수 있는 지리교육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런 고민 의 과정이 지리학과 지리교육이 더 많은 존재론적 지 지를 얻을 수 있는 학문으로 교과로 거듭나게 할 거라 믿는다. 그렇기에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존재 론적 물음은 단지 지리의 교수학습 과정에 대한 논의 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리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 우 리의 일상적 행위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한다. 하지 만, 우리의 일상적 삶이 생성하는 차이에 주목한다면, 이 논문은 하나의 삶에 주목한 것에 불과하다. 지리교 육이 가져야 할 다양한 존재론적 물음 역시도 하나의 질문으로 그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도착점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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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신: 박승규, 24328, 강원도 춘천시 공지로 126(석사 동 339)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이메일:topos@

cnue.ac.kr, 전화: 033-260-6425)

Correspondence: Seungkyu Park, Departmen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Chuncheon National University of Edu- cation, Gongji Ro 126(339, Seoksa-Dong) Chuncheon, 24328, Gangwon-Do, Republic of Korea (e-mail:topos@

cnue.ac.kr, phone: +82 -33-260-6425)

최초투고일 2019. 1. 9 수정일 2019. 2. 20 최종접수일 2019. 2. 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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