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關한 liff究 (其一) 系統論에
韓國語의
根*
崔 짧뚫
序 論 第-章
I →1) 人類가 그 言語(말)블 어느 째, 어멕한 方法으로 發展시겼는가 하는 問題는 오늘날 아무도 그 記園을 가지고 있는 사란이 없으려니와,
過去에도 이에 關허서 正確하게 記錄한 사람도 없다.
人類가 오늘날 地球上에서 「萬物의 靈長」이라고 휩處하게 된 原려은,
尤先 그들이 다른 動物보다는 일 찌 기 直立하께 되 어 서 그 頭腦를 保굶쫓 그 앞다리룹 「쓴J(手)으로 바구 特히 「도끼 J(쏟) 와 「積」의 發 그들을 支配하게 된 直援的안 하고 思考力을 發展시캘 수 있었으며,
어 서 모든 道具흘 만드는 훨機가 되 었고,
動物에게 君臨하고 明은 地球上으l 모든
原因。j 퇴었다.
그리고 人類는, 오늘날, 精神的으로나 智的으로 「萬物의 靈長」이라고 해 서 不足한 點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얼짜기 그 社會生活의 經驗에샤 發展시킨 「말J(言語)을 所有하고 있고, 또 이 「말J(言話)을 聯間的이고 一時的띤 것에셔부터 永久的얀 것, 또는 永久따인 것은 아닐지라도, 적
또 이어l 어.'i. 持續性을 지난 것으로 만듣키 행해사 「文字」릎 發rm하고
依한 記錄들, l!P 書籍을 i짧{'P할 수 있게 된데서부터 人類의 참l펠는 長 오늘날의 宇핀時代의 科學的 짧展을 거 듭하고,
足의 發展을 繼續해서 문녁에 이르른 갓이다.
우리는 우라의 「말J (言語)이 우리로 하여금 「萬勳의 靈 長」이 되게 한 直接的안 !京因。l고 「文字」와 「記錄J(콤籍)들이 人類의 精
1 -2) 따랴서,
*서 울大學校 人文大 敎f핫(國잣;뚱)
19함
神的, 智的發展을 加速시칸 張本임을 찰 알고 있으띤셔도 그 「말J(言語)이 어느때, 어렇게 해사 發生댔는가 하는 正確한 까口識에 對해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그 進展이 없닥는 것은 甚히 週↑폈이 아닐
월機에 關한 學說이 全혀
東간표Y:1r.
4
수 없다.
없 었먼 것은 言語發生의
그러나 過去에
舊約聖書의 創 그리고 니었다.
:::t;先 그 하나가 基督敎의
世記 第一章의 四節~十節1)까지, 第二章의 七節~十九節2)까지,
第十一章 一節3)의 記錄들연데, 01들을 經合하면,
그 놀라울 만한 쇠 (Bible) 인
1. r말J(름語)은 하나념 (yahweh, yahveh, J ehovah) 이 人問얀 Adam도 創造했다.-(言품용IJ造說) ;
人間의 「발J(言語)의 피g語는 하나이 었다, ←-(Hebrew語 : 릅語)元語) ;
10"
創造하고, �
2.
뺨 「말J(言話) 어l 關한 記錄은 以上과 같은 創뎌-期의
로 흉용約펴는데,
寫한 言語맑究에 5띤對 그리 스도敎 宣敎師들의 펄등불핸&듭뿔을
期에 있어서
的 인 指針。1 되었다.
있어서 위와 같은 單純"ðl- 가까운 오늘날에
그다냐 二十뀔;紀의 공葉에
수는 그래로 받아들여 질
「즙語發生」에 關한 疑問응 그대로 남아 있을 없는說이
T 꺼
어느 모로 보아서나 證明될 따라서
←7
�,
찌論 없는 일이다.
1) 11(4) 화나념이 빚고F 어두움을 나누사, (5〕 련을 낮아다 천하시고? 어두움 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중략 ... (8) 학나넘이 궁창(펀蒼〉을 하늘이라 칭하
시 니 라 중략 ... (10) 하나님 이 붙을 땅이 라 칭 하시 고, 도인 울을 바다라
청하지니라‘ ... 하략』
2)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윤 지무시고, 생기을 그 코에 불어 녕으λl니 사람。] 생펑약 된 지 러 ... 중략"'(16) 여호와 하나난이 그 사란얘꺼1 명학여 기라사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띄되 (17) 선악음 알기1 히 는 나무의 섣과는 먹지 딴라. 네 가 먹는 날에는 정녕 즉무려 라 하치냐려 .
.. . 중략. ,. (19)'" (19) 여 호와 하나님 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c시고, 아담이 야떻게 이릎을 짓나 보시켜고 그것을윷 그에거호 이 끌어 이르시니, 아담。l 각 생물을 일컴는 바가 곧 그 。l픔이라 한략』
3) 11 (1) 온 땅의 구음〔디흘)야 하나이요, 언에〔言語)가 하나이더라 하략』
후품팅랩등픔의 *統論에 關한 없究(其一) 5 수 밖에는 道理가 없는 일야 었다.
그 다음에 는 「言話테造說」에 多分히 反對하는 說들이 잇달아 나타났 는데, 그 意圖와는 달리, 그 名稱들은 多少 弄調로 表現띈 名題으} 「言 語發生說」들이다. IlP “Pooh-pooh說" “Bow-wow說” 그 리 고 Yo-ho→ho 說들이 그것인데, “Pooh-pooh說”은 A間의 最初의 「뜻」이 있는 「말J(言 發팩초되 었는데 , 그 後에 漸次로 全般的인 體系的 形成 說이고, 이에 lt해서 “Bow-wow說”은 人類가 덤然에사 語〉은 本能的으로
을 途行했다는
들은 소리들을 흉내내는데서(따 擬聲, 避態) 發生했 4는 主張이 며 , 」→n:
“Yo-ho-ho說”은 深呼랬의 刺戰으로 因해 서 過分한 觸肉運動。1 不時에 人間의 활렌블 ;辰動시 켰 다는 說이 다.
또 여기에 「손칫→(Gestures)의 發展이 人間言語로 發達했 다는 說이 여 기에 加擔하게 되는데, 。1 모든 「言語發生」에 關한 學說들은 人類의 「言 語짧生說 의 ~효ß分은 說明할 수 있을지언정, 全體的얀 發生過程의 說 明으로서는 얼마나 不足한 것인가블 深刻하게 느끼게 하는터, 假令
“Bow-wow說”은 (韓) . “장수시 다” “자지 다”의 “캡 ” “자~’와 tungus.
“zep-’‘과 이짧) . “jembi"의 “je-"가 各딩 “먹는 입소리”의 짧합化알 수도 있다. 그러 나 (韓) . “막다”의 “먹 ”과 (日語) . “모구모구" (二é::7 꿋 ::7) 는 「먹는 소i.'] J의 업소리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萬一 이 「말」이 「목」
〈짧)과 관련이 있는 것이 라연, 名詞의 「목J (짧)이 먼저 「語棄J (\Vord) 로서 이 루어 겼어 야 說明이 가능하다.
또 萬若 擬헬, 擬態의 흉내내는 소리에서 言語發生이 可能하다고 하 더 라도, 그 數는 A類言듭혐의 極히 小部分악 語棄플 白 핫 뿐으로,
외 다른 모든 「말」의 發生說明은 難關으로 남는다.
그밖
또 「손짓 J (Gestures) 에 서 「言語發生」을 說明하혀고 하는 說은 “-定 한 意味”를 表示할 수 있는 Gestures들이 어 녁 한 過程으로해 서 그 Ges- tures가 表示하는 意味에 該當하는 “一聯의 흡참”을
가? RP 다시 말하면, “어 느 Gesture에 該짧하논
同伴할 수 있었떤 줍聲」은 어걱
「一;댈의
C 6 J 東52소化 19팩
한 體系로 그 Gesture가 表示하는 「意味」흔 代表하게 되 었는가 ? ” 가 論 êJj할 수 없는 問題로 남는다.
이 外에 Pooh-pooh theory냐 Yo-ho-ho theory도 A맴言語짧生의 極 등1 初步的이고, 極히 그 一部分얀 것 밖에 닙보r:Jl할 수 없을진매, 人類는 그들 自身을 地球上에서 名實共혀 「萬物의 짧長」으로의 옳場을 ï1J能커}
한, 그들의 「말J(言語)의 發生에 關래 서 즘급悔力의 쓸弱性을 다시 한벤 痛感케 한다.
이에 比헤서 그리스CGreece) Á들의 言語뿔生說은 함學上의 必要로 因 해셔 出發힌- 것인만큼 「哲學떠」이었다.
그리스(Greece)人들의 主흰 學說은
1. Physei Cφ삐ε,J設 펴紀 5며紀휩 Helàclitos가 조張)←→-범然찢生設,
2. Thesei COI:OSlJ說 (Democritus가 主張) 퍼:會훤約듬li':.
3. Nomoi :HoμOIJ說 (2. 와 한께 Democritus가 보張)-社會慣習的形)항,
以上 l� 은 Platon과 그 追從者들에 게 댔해 서 3Zt란 主張되 었거 때 문에 Platon 王義者의 「寫實論」 이 라고 하고 2) 와 3) 은 Aristote1es와 그 追從 者들에게 依해사 5:한 主張되 댔껴 배문에 Aristoteles 主義者의 「名目歸」
이라고 稱했다.
以上의 言諾發生어1 聯한 諸說이1사 보이-온 비→외- 갇이 人類의 룹듬흘‘는 그 「本能과 生理的인 것」에 힘接的인 關聯이 있는 것도 事實이고, 또 E 然의 소리 에 서 의 「흉내 J(擬뽑, F엉態) 와 「슨것 J (Gestures) 과도 直接的 인 關聯아 있는 것도 事實이기는 하냐, /、R죄믹 「닫」은 무엇보다도 그들 이 우리지어 모여 사는 「社會」와 깊은 l해剛이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왜 냐하띤, r言語의 必횡性」은 두엇보다도 「社햄生活」이] 있어 서 各者의 意思表示에 對한 그 傳達과 聽取어] 있기 해 둔이 다.
n-l) r말J(言語)과 社會와의 關係와 關짧히1서, 다유의 問題는, Á類 의 言語는 「一元的發生J (Monogenetic) 이 냐 ? 或은 「多元的發生J �Polyg
enetic)이냐? 하는 멈題얀데, 이에 對해사는 前記 舊約聖書 創世記으}
關한 까究(其一〉 7
韓國語의 系統論에
記錄4)이 簡單하거1 解決하고 있는데, 前記힌- 바와 같이, 이것은 적어도 中世紀에서 十八世紀까지에는 한때 總對的인 @좋1별로 받아들여쳐 있었다.
은 것이 띈다.
그려나 「言語創造說」과 t1J-찬가지료 現tE에 信젠하려 는 形便이 되 어 있지 않다.
그것은 Hebrew語이었다』라는 말과 똑 같 祖語는 하나얀데,
.Þ!P rr Å類의
이것을 열른 이르러서는,
샌펀a해 올라가 言語發生問題에 關한 限, 數萬年을
/ι間의 왜냐하면,
jt記한 바와 같이 , 現tE 그 「言語發生」에 關한 記떤과 꺼口 야만 되는데,
多元8f:J發 .IlP 一元的發生이냐?
이 問題,
識이 全혀 缺如되어 있는 限,
그 發生時期도 떻然하게 「數萬年 하는 것도 解決펼 수 없고,
生이냐?
또는 五萬年]때--- -「萬年 三萬年前얀가?
r二萬年前-인가?
前」일뿐이지?
前얀가?JJ 하는 것도 現在에 있어서는 아무도 斷定할 수 없다
。LE
다만 오늘난 이 問題에 關해 서 關心있는 言뚫學者틀에 게 確寶하게
「言語」가 使用되고 있으며, :2
이 파球上에 는 數千種類의 려진 팎實은,
八千인가? JJ li'fíi賞하 또는 五千인가?
그 했블 定할 수 없다는 事實。l다.
前記 「言語發生의 B풍期」가 大略 「數萬年」臺라먼,
三千인가?
「數千J2L :r二千인가?
커
「듣듣표 "'p口
種類」의 境週는 大略 「數千」휠이 고, 구태 어 그 歡字블 대 라고 한다면,
E적 게 잡으면 2,500이 고, 많。l 캅으면 7,OOOJJ에 達할 것 이 라고 한마.
그러 나 이 數字도 「言語J(Language), í方 言J (Dialect) 과의 이 地球上의
關係가 않 그리고 이 「뜸認」와 理되면, 可變할 수 있는 數字임을 否認할 수 없다.
여러가지 事情으르 因해서5) 가까 그 整理될 수 있는 可能性이 橋합흉한 것 이 다.
「方言」과의 關係는, 推測할 수 있는 운將來에
4) 前註 3) 參照
5) 한사람의 룹‘讀學者가 習得할 수 있는 「言語」ι〕 따는 i-1固듬듭홈탬度가 훨大 며{度라고 한다. 꺼論 世界의 言語學者들이 組織的인 分웹制토 i멤걷F한다면 不可能한 것도 아니겠지만, 現在로서는 亦밑 그 『즙찮의 ;ζj벼뎌&f몫』로 不可 能한 狀態c]다.
C 8 J 쫓亞」文化 19輯
1I -2) 以上과 같이 「人類의 言語」는 그 所有主인 人間플 팀 身들에 게 모르는 것 푸성이이고, 또 짤雜多端한 狀況에 있었지만, 漸[次로 그 言 語블 整理해 보려는 試圖가 行히l졌었는데, 이 試圖가 「形態論的 分類]
(Morphologícal Classífìcatíon; Morphologisch Klassifizierung) 와 「系統的 分類� (Genetical Classification; genetisch Klassifizierung) 이 었 다. 히
形態的 分類 (Morphological c1assifìca tion) 7) 는 十九 맘紀初頭 Friedrich von Schlegel에 서 부터 試圖되 었 었는데 , 그는 “Über die Sprache und Weisheit der Inder" (1808) 라는 著書에 서 , 人類言語흘 二分하고, li경5옳휩 語�:8) (Language with affixes) 와 1)파折語j (Language with inflection) 으 로 나누었다.
그 뒤 Friedrich의 아 우 August von Schlegel은 三分하고 1). 1非文펀 構造語J (Languages without grammatical structure); 2). n펌解語J(Af죄
xing languages) 3) . 1파折語J (Inflectional Languages)로 나누었는데.
1) 은 後代에 일 캠 는 「孤立찮J (Isolating) 에 該當하고,
(Agglutinative) 에 該J합하는 것 이 었 다.
2)는 「웹看語
그 리 고 August (von Schlegel)는 IJ핀折語」는 Indo-Europeans와 Semitics 만이 여 기 에 包含되 는데 , 이듭 言늠홈만이 “一種의 有機的生야과 發展과 成長의 本質을 示現하는 語根(Roots)을 所침‘하고 있으박, 이 에 比해서
「非文法構造語J, 則 中國語로 代表되는 I1JJl立폼」는 이 「語根」이 贊弱힌-
6) 그 화나는 Grasserie, Raoul de la의 강類얀례 , “De la classifìcation des Iangues; IIe Portie; Classification des langues non-apparentées" (Zeitsch
rift für allgemeine Sprachwissenschaft 5. 269�33B) 1890. 에 서 그 分類方 式을 줍i파分類의 類컨펀에 基짧를 둔 것인터], 則 accent型, 즘홈윷pg部의 ¥쓸節
찢f{, 그려 고 子줍을 排除파는 言등흠와 ffi츰을 排除헤 는 를語와의 區分이 다.
(前者는 Maori語와 German語이 고, 後者는 Arabia語이 다. )
또 다른 하냐는 Wundt Wilhelm M.는 “Völkerpsychologie II. Die Spr
ache (Leipúg, Engelmann) 1900에 샤 “그 픔語블 區分할 수 있는 十二f댐
條의 「對立條J(Gegensatzpaare)플 發表했는데, 그*에는 授頭雙語 對 接 尾購듬홈 , 自 由語I1팀語 휩 l펀j定語1j頂語 , 名詞形語 對 動詢形 重點語等
7) 形態的 分類(Morphological classin.cation), 이 術語는 事實1: Typology (言
등홈類形學)와 一敎하는 術폼이았는데 1928年부터 f흰用되 였 였다.
8) òl 찌감語는 後代에 rr젖看諾� (Agglutinative Languages)로 稱名했다.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昭究(其-→
것이다"고 主張했다.
[ 9 J
그러나 近代에 와서 Indo-European語들이 古代段階에 짧見되는 「屆折」
이 喪失되 어 가는 1項向이 있는 事實을 發兒하고9) 그는 그의 學說에 不 安을 느끼 고, 이 플 補彈해 서 屆折語를 =分해 서 古代段階플 「結合型」
(Synthetic type) , 後代語플 「分折型J (Analytic type)으로 分離했다.
그 後에 四分法을 主張한 사람은 Wilhelm von Humbolt1이 인데 , 그는
“Incorporating" (웹合語)플 하나 더 包含시켰는데, 이것은 그의 American Indian語 맑究에서 비롯된 것이 었다.
이 웹合語의 主要한 特徵은 같은 한 動詞語根에 그 動詞의 目的語가 包含되어 있는 것01치 매문에 Humbolt에 依하면 이것은 「文章語쫓」
(Sentence-words) 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었다11)
그어l 依하면, “言語는 精神(Geist)의 明顯한 發現”이며, 이와 갇은
“自體發現은 그 自身의 權限內에 있어셔의 正當한表現일뿐만이 아니라,
적 든 크든 間에 그 完成度를 나타내는 것”이 라고 主張하고, 또 모든 言 語는 “「完成J(voIlendet)한 컷이치만, 그 모든 릅語가 다 「正確J(vollko
mmen)한 것은 아니 라”고 主張혔다.
또 言語는 그“形態의 正確性이 理想的 目的이 치 만, 實質的으로는 꽃IJ 達할 수 없는 것이 고, 接近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며, 이것은 오직 「屆 折語_(Inflexional language) 에 依해 서 만 이 루어 진 다" 고 말했 는데 , 검P Humbolt는 “下級型의 言폼에 서 上級型의 줍語로 發展할 수 있는 歷史
的進化‘’블 펀否했다.
9) 英語는 孤立語化해 가는 碩向이 있 는더] ,
L. emittentur=E. they sha11 be sent out;
L. gladio =E. with a sword
以上의 境遇의 Latin諾는 陽著이 라고도 볼 수 있는더] , “E-mitt-e-nt-ur."
10) “Affixing" (徐蘇語)를 “Agglutinative" (陽쏠語)로 改뺨한 사람도 Humbolt 이었다.
11) 北America의 Indian얀 Aztecan의 혐長名 이 었던 “Mon tecuzomai thuica -mina"
(Montezuma) 는 “When -the-chi ef -is-angry-he상loots-to-heaven" 야 란 뜻 이 包含되어 있다.
( 1 0 J 東김E文化 19輯
「言語의 類型J (Sprachlich typus) 은, 그에 依하면,
의 差異段階이 었다. 따라서 Isolating (孤立語)은,
“精神(Geist) 實짧、
가장 그 未體展段階。1 고, Inflexional (屆折) 段階는 그 가장 發達한 狀態”라고 생각한 것아다.
그러 나 中國語로 代表되 는 「孤立語」가 過去 人類의 가장 뛰 어 난 또 하 나의 哲學과 文化블 表現하는 言語로 使用되면서도 何必、이면 그 言語는 그렇게도 未發達段嘴 이 었던가 하는 問題에 對해서는 그는 言及한 바가 없었다.
이와 같은 Humbolt의 「言語쉰存」的 思考方式어l 對해서, iE面으 로 距否하고 나션 사람이 August Schleicher의 「言語後績 (1'\ acheinander) 說이 다12)
에 에
그에 依하면, “言諸란 自然現趣。1요 自IZ的이 며 民族精神CVolksgeist) 自體의 法則 力說한다.
密看되 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分離되어 있고, 二L
依해 서 變化한다는 것 은 植物의 경우와 같다”고
.êP 言語類型의 三段階플 「言語의 歷벚的發展의 三段階」로 說明했는데 言語三段階는 各己 그 前段階에 서 의 「發展狀態」라고 指觸했 다 13)
.êP J힘折語는, 特히 英릅탑의 경우, 뿔륨節語的 (Monosγllabic) 語薰와 쩔 훌語 的(Agglutinative)語棄플 多分히 包含하고 있는데, A. Schleicher의 意見에 依하면,
語에서 壓훌語의 는 것 이 다.
“ 言語가 長期間의 變훌훌過程을 거 치 는 사이 에 ]Jl立 過f품을 거 치 고 最後로 댄折듬홈段階로 發展한 것 l� 14) 이 라
이러한 言語進化學說은 드디어는 言語三꿇F쁨의 類F뱉은 서 로 個環한마 .êfJ 지 곰은 單즙節語é'J :Ð미立語인 대:1國語는 한 해 는 는 學說로 變했는더'l,
]련折즙홈段階를 거 치 고 現在에 이 르렀다는 것 이 고, 따라서 現在의 屆折語
12) August Schleicher: “Zur :yrorphologie der Sprache" (M6moires de 1’Aca
demie Impériale des Sciences des St. PUersbourg, 7e Serié, Tome 1. No 7, 1859)
13) Isolating→Agglutinative→Inflexional로 發展뚱짧 14) 前註 9) 參照、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1Jff究(其一) [ 1 1 ) 段階에 있는 Indo-European語族은 다시 또 孤立語段階와 }굉훌語段階로 遺元 領環하게 펜다는 說이 다.
以上의 「듬語類型學J(Typ이ogie) 에 있 어 서 도 듬語一元說과 多元說을 解決짓지 못하고 있는데 , 言語領環說은 多分혀 言語--元說에 가깡고,
言굶의 歷史的進化說을 1.2否하고, 下級型의 言語와 上級型의 言語록 뭘 分한 Humbolt의 學說은 多分히 言語多元說에 가깡다.
m-l) 그러 나 十九世紀未葉(1870)에 新文法學派(Neogrammarians) 의 擾頭와 同時에 言語의 形態論的 分類(Morphological classification)는,
August Schleicher플 最後로, 그 關心이 사라졌는데, 이는 言語의 形態 的分類가 여 러 가지 E죄에 서 그다지 言語分類에 正確性이 있는 것 이 아니 라는 意見이 쩔頭했기 때 푼이 다.
뭉n 한 言語가 正確히 조]立語라고 斷定할 수도 없는 點15)이 많을 뿐만 이 아냐 라, 또 댐折語의 경 우에 도 孤立語的안 性格과 뺑옳룹홈的얀 性格 을 옳有하고 있커 때문16)에 言語의 形態的分類는 正確性을 期待할 수 없
다는 點이 그 主要原因야기도 하겠지만, 新文法學者17)들의 좁폐의 課題 가 〔난곳 에 있 었기 때 문얀데 , 그것은 “言語의 歷史的比較에 基없흉를 둔 Indo-European諸語의 「祖語의 再構」와 「좁調法則에 例外없다」라는 原則 T에 「픔 끓法則외 發見」에 餘念이 없 었고, 01 I즙題法則J (Sound-law : Lautgesetz) 에 基없훈을 둔 「즙題對應J (Sound-Correspondence: Laut-Ents
prechung)에 依한 「親族關係」의 發見。] 그들의 使命이 었다‘
따라서 新文法學派에 거l 는 「親族關係가 없는 言語의 lt較」는 無意味힌:
15) Isolating우로 包含되 어 있는 「西藏語j는 多分허 ¢찢훌語的얀 性格도 暴右하 고 있다.
16) 例하면 “English"꾀 경 우
17) Neogrammarian(新文法學派)는 또는 J unggrammatiker (Y oung Grammar
ians), 則 그 좁年文法學派로도 불리우는더], 이의 王P탑者들을 “Brugmann,
R Paul"을 흙始해 서 “。schoff, Leskien"等이 었 고, H. Paul의 “Prinzipien
der Sprachgeschichte" 이980) 과 BrugmanEi “Morphologische Untersuchun
gen auf dem Gebiete der indogermanischen Sprachen" (18í8"-' 191 0) 等은 그 名著로시 으늘날까지 도 }없을 거 듭하고 있 다.
C 1 2 ) 束亞文{I:: 19輯
것으로 맏고 있었 다18) 따라서 이와 같은 班究態度는 言語의 「系緣的 分 類J(Geneti.cal dassifì.cation) 에 關心을 쏠리 게 했고, 또 그들 大部分의 言語學者들은 이 「系統的 分類」만이 有益하고 價碩있는 것으로 믿게 되 었는데 , 그 中에 Antoine Meillet 갚은 言語學者도 이렇게 말했 마19)
『言語의 質實하고 有益한 分類方法은 오직 系統的 分類뿐이다』라고.
英國人 Sir William Jones가 1786年, Bengal Asia 學會에 서 行 한 San
skrit에 關한 講演은 lndo-European語族의 꺼주究에 長足의 發展을 招來했 고, 그 前 에 는 lndo-European語族01 란 單一話族이 그렇 게 도 넓은 面域 을, 그렇껴도 數多한 族屬으로 分離되어셔, 이 地球上어l 分布되어 있는 事實을 아무도 想像하지 못했으며 , 또 마른 分野의 學問, IlP 人類學이
나, 考古學, 또는 歷史學等, 그 허 느 分野의 學問도 完途하키 不可能한 成功을 言語學은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lndo-European語族의 分派關係논 August Schleicher는 「系練樹」
(Stammbaum) 20.\로 表記해 서 印歐語%究史上 有名 한 指標가 판 바도 았 었 다21)
18) 그러 나 形態的分類가, .lt較言語學에 있 애 서 必須的얀 課題연 系統的分類에1
全然 無意味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正經한 것은 아니지만, 깜은 形態 플 가잔 言語들은 大體的으로 同一系뺏에 않j1는 f뿜率0] 컸기 때 문이 다.
j'iIJ r孤立語」는 大體的으로 中國-西藏語族이 고, 댐折話는 Indo-European 語族과 Ham -Semi tic語族에 園하며 , ←R젖쏠語」는 大體的무로 “Ural語族”과
“Altai語族」에 屬하는 順向이 많은 것은 否認합 수 없다. 또 Typology(틀 語類型學) 은 Schleicher 다음에 도 繼績되 었 는데 , Max Müller(1861), \^l.
D. Whitney (1868) , Gustav Oppert0879�, Otto ]espersen (l894) , G. von der Gahelentz (1901)쏠에 依해 서 論해 쳤는더. , 極히 흉풋近어l 와서 「構造主義
言語學J (Structua!ism) 은 이 Typology에 새 로푼 쟁n뽕과 方法을 試;웹하고 있다.
19) An taine Meillet; “Introduction", Les langues du morid. (ed. par Antoine Meillet et Marccl Cohen, 1st edition; Paris Champion, 1924)
20) A. Schleicher; Compendium der vergleichenden Grammatik der indoger
manischen Sprachen, 1; CWeimar, 1861) p.7
21) 이 Schleicher의 系행樹表는 그 當時에 는 言語分派익 標準이 되 었 £나, n퓨 R륨이 흐름에 짜라서 쨌點이 發見되 기 始作해 서 ‘ 드디 어 는 그의 弟子인 J.
Schmidt의 「言폼波動說j (Wellentheorie)에 보다더 현賽이라 믿에지게 되 었다.
*힘‘國語의 ?F*{c펴에 씨한 11T1)t (�'t.-→) cl J J
][ -2) 이 와 같이 lndo-European語族의 分ìJÆ 0없族) 關係가 밝 혀 지 자,
그 外의 言語들도 系統上의 分類가 試圖되 었는데 , 그 니1에 서 Louis H.
Gray의 分類22)를 →例로 틀어 본다.
1) Indo-European;
2) Hamito-Semitic;
3) Uralic;
4) Altaic;
5) Japanese and ]{orean;
6) Eskimo-Aleut;
7) Caucasian;
8) Ibero-Basque;
9) Near-Eastern and Asianic;
10) Hyperborean;
11) Burushaskï;
12) Dravidian;
13) Andamanese;
14) Sino-Tibetan;
15) La-Ti;
16) South-East Asiatic;
17) Malayo-Polynesian;
18) Papuan;
19) Australian;
20) Tasmanian;
21) African;
22) Sudano-Gunean;
23) Bantu;
24) Hottentot-Bushman;
25) American;
26) North American;
22) Louis H. Gray; F ounda tions of Language (N ew York, The Macmillan Co. 1939) pp. 295"'418
Chap. XI, The Indo-European Language와 Chap. XII, The Non-Indo
European Lauguage로 區分해서 說明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語旅(Language family)만윤 덩|用한다.
C 1 4J *i�3.C{� 19r꺼 27) Mexican and Central American
그라고 쥔(이1 가서 名 語族의 -줍語數륜 감디갔헛]‘는데 參考i츠 iJ I ffi하면 9
유과 걷디.23;1
Indo-European . - .. . . .. . .. . , • • . . • ‘ ... ....... 132
Hami1.o-Semitic . , ‘ • • . . • • • • • • • • . • •• • ‘ ....... .... .... ,J6 Uralic or Fino-Ugric ..... ... ... … ... , . . • • • 32
Altaic . . ... ... ... ... 34
Japanese and Korean ... ............... 2
Eskimo-Aleut .. ... -. . . .... . . ‘ • • • • •• • • . "2'l Caucasian . . ... ... ....... , • .• • , . • . .• • . • • • • . 26
Ibero-Basq'�e‘ ... .... . ‘ • ‘ . � .. . ... . .. •. . . ... . . . 2
Near-Eaatern and Asiatic ... .... ..... . . 29
Hyperborean or Palco-Asiatic . ... . ..... ... -,12 Papuan ‘ • . • • • , • .. . • . • . . • . ‘- ... --- ... 132
Australian . -.. . . -- ... ... . . . .. .. . . ‘· ‘ ... --... 96
Tasmanian .... ....... . . . .... - - ‘ •• • • • • • • • • • • • • • • • • -5
Suclanor-Guinean'''''''' '"‘ ..... ... -- .. 435
Bantu . .... “‘--“ ... . .. . ‘ .. ‘ ... … .. ‘ ... - ... 83
BurushaskI, Khajuna, or KunjütI . . ..... -... -1
Dravidian . --... - ... --... --. '26
Andamanesc .. .... … . . . .... ‘ ... , • " • • • • ‘ · ‘ ... , “ .12 Sino-Tibetan ....... - . ‘ . " . .. . . .... . . .. . '" “ . .... 115
La-Ti .... ... . … -… ... . . … .... … ........ ..... 1
South-East Asiatic or Austroasiatic… . .... . 52
Malayo-Polynesian or Austronesian .. ‘ ... 263
Hotíentot-Buchman or Khoin .. ... ... ... …6
North American . ....... ‘. - ... .. ......... - ... 351
Mexican and Central American .. ... ... 96
Antillean and South American ....... ‘ ... 783
Total 2,796
23) Ibid; p. 418
韓國語의 系統論에 關한 찜究(其一) C 1 5 J 또 하나 다른 分類例로 Antony Arlotto의 分類블 듬어 보기 로 한다. 잃)
1) Indo-European;
2) Semitic;
3) Hamito-Semitic;
4) Sumerian;
5) Fino-Ugric;
6) Altaic;
7) Basque;
8) Nothern and Southern Caucasian;
9) Sino- Tibetan;
10) Tai;
11) Mon-Khmer;
12) Dravidian;
13) Malayo-Polynesian;
1:í) Austrlaian and Papuan;
15) Paleo-Asiatic;
16) Niger-Congo and Khoisan;
17) North American lndian;
18) Eskimo-Aleut and Athabascan;
19) Algonquian;
20) Iroquoian and Muskogean;
21) Siouan and Uto-Aztecan;
22) Mayan;
23) Southern American Indian;
以上 二人의 言語學者에 依한 系純的分類는 그 分類方法이 一致點도 있는 것도 事寶이 치 는 하나, 그 ←→꿨點보다는 오히 려 差뿔點이 많은 것
쨌 ‘ 수 l H r i
으 E
따라 서 系統的 分類가 形態的 分類 以上으로 複雜하고 또雖事임을 얄 수 있겠고, 그러무로 아직 一定한 定듭강。1 確定되어 었지 않는다.
2,1) Anthony Arlotto; Introduction to Historical Linguistics CHoughton Miffiin Co. Boston, 1972) pp. 45'"'-'63
( 1 6 J 束亞文{t 19�펴
][ -3) 그리나 펀-하系統問짧에 關해서 JF앗보다도 븐 우리의 關心은 rrh�l語J(歸國語〉의 系統F,,'짧 얀 것 이 다.
우리 「民族」이 獨立떠으프 發展해 온 갓이 이나고, 어느 엣날 어느 原始)�通社힘에 사 分책IlZ;ll 니 온 것 이 라띤, 그 原웨共週社會는 地球上의 어느 꽤點에 位置했있、으마, 어느 때 우라 民族이 01 폈뼈共通파t會에서
分離되 어 λ] 어 따 한 펀땀노 韓半島로 進入하거1 뇌 았고, 그 原始共通社會 에 λ1 分離혜 니온 다든 쐐族認들은 어떠한 듭語들엔가, 하는 것을 쩨究 래보고, 적어도 밝펴브며고 챙力하는 것이 우려의 義務rJ:!의 하니앨 것
。l 다.
우리 韓國訊의 系跳냄R끄에 開해서는 이미 l겨外學:흙들에 依래서 많이 論해지고 있으니, 아직 간7. 定說을 보져 뭇하고 있는 터이다.
;4:;}E 떼닙è íJ I}챔한 Louis H. Gray는 편l팽語판 “Japanese and Korean family"로 해서 티겨;5핀와 유었는데, 더우71 그는 그 찮깨에서 다음과 감
。l 記웠하고 있다.
j' 0] 관 言핍플으1 分상!는 소然 ?、�íMJ;�"�ll�.l 그 j티효성명젠 또한 짧心스민 다 며j
�Zr-' -. 균本5폼에 附혜 이 는 그 짜땀i딴 ì�li):품는 fEft詩옴J의 픔댐등。l 다 ‘다l때-. -
합國폈는 ::'1- “語形燮{1::"25ì왜 “갓;판1파’”이에 있커서 티本펌외 아주 接近해서 類 {μ-;:;]나, 그 뻐윤 表示파는 後뽑iiiTI에 있이서는 웬짧힌원한 ←差뿔」른 료 0]고 있다.
0] 두 듬 핍으} 훤關의 問댐는 ìl/1. S. Kanaza wa27)에 {}'<해 서 딩aj뚫띈 바가 있 고,
또 한 候으로는 핸國語외 Indo. European話族과의 %펴連윤 試圖된 바도 있다.28) J 또 다음의 Anthony Ar1otto는 近來에 와서 韓國語륜 Altai 품族에 包 含시 켜 고 있으나 "前記 세 듬펀팎(Mongo밟, Manchu-Tungus訊, Turkic 끊)에셔 分離되어 있는 ‘E£:흠이다”리고 記錄하고 있으며, 이에 關한}
25) L.H. Gray.E\;는 얘기에 “Inflection"이 한 댐쉰달 않멤했는데, 그7] 효、'*하 는 것이 動詞펀]폐플 意1짜하는 것인 7], 또는 템JJf, 찌] 댐Jf�變{k른 i힌끽;마는 것인가는 不分jJJ j)1다.
26) 同上에서 “Syntax"리고 했다.
27) 金澤.8:.츠郞 ; 티따同細論(1929, 250面) 28) Louis H. Gray; Op. Cit. pp.372"-'373 29) Anthony Arlotto; Op. Cit_, pp
C 1 7 J d찮國닙흠의 3Ft統마U이l 써한 {MJ;E(JAi→〕
그 캠‘뿔30) 그믹 고 問L갱-은 Turkic
그러 니 이 세 語群둡을 한7C댐族오로 Winfred P. Lehmann는
에 서 “Altai語族은 Mongo譯와 Manchu -Tungus語,
여71 에 包깜시키고 있다.
또다른 한 學者의 例릎 들어 보민,
^ '.JJ
좀 더 歐짧관 {탱說은 間따 提議되 기도 하는데,
그려니 이 假定응
도 語
類하는 것 은 類型學的 標準에 基폈흉듭 눈 것 이 다.
Fino-Ugric語族과 Altai語들과의 親族I뼈係가
이 連合語群을 “Ural-Altai"이 라고 다|用하기도 한다.
不確寶하다.
極度포
야기이1 加떠 듬‘語」가 째�는
I1JJl立판
L
이 假說的 Ural-Altai話센이l T
以
“ H木5감”이 다.
i한異있는
uì- û Lι;τL_
DP “韓國訊”외 또 더 하기도 하는데,
上 두 둡語들은 한층 더 接近한 돼族i해係릎 論끓하기 에 는 너 푸 쐐小하 없을뿐만 이니다, lcl i'.U 이 들 때互:間의 親族關j타�:플 랫 게 할 수
기 때문에 ,
듭디錄하고 있다.
은 語群(Altai語族)에도 111立시키고 있다. ’‘31)고
言語學者들의 記錄올 縣감하면, 結局은 『韓國語의 系統은 模 없 으며, 日本語와의 關係도 많은 差짧룹 보이 고 以上세
있 t�j해서 確定지 을 수
또 間或 Altai語族과도 j핀關지 어 지고 옷하고 孤立的 位원에 있다.�라 그 親近關係가 不確定的이 고,
또 한 假定의 域을 벗어나지 어서
í!J論 以上의 새 學者는 Altai 語學者들도 韓國語블 鼎究한 學者들도 아니 고, 따라서 팩問바J 수 있다.
。1
는 l쳐 容으로 평約될 있 으 니
記錄했을 따릎야지만, 어느 것은 퓨lff이기도 하마.
學者들이 l뽑L펴語빠究플 全 뿐만이 아니 라,
으로 이 方面에 努力없。1 大體的인 見解블
程度의 「根據와 權威있는 見解」블 代表하고 있는 일찌 기 Gabelentz321와 M. Courant331 같은 아닐
(New
du 30) Winfred P. Lehmann;
York, 1966) 31) Ibid; pp. 45
32) Georg von der Gabelentz; Zur Beurtheilung des Korcanischcn Schrift und Lautwesens. CSitzungsherichte der Kδniglich Preussischen Akadc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1892
Georg von der Gabelentz; Die Sprachwissenschachaft,
Methoden und bisherigen Ergebnisse(同上) 1901
33) Maurice Courant; Sur les études Corénnes et Japonaises (Les Congrès des 0 ricn talistes, Paris) 1899
Aufgaben,
aclcs Introcluction
ihre Linguistics: An
Historical
C 1 8J 束김묘킹C化 19障
然 等티던히 한 분플은 아내치 만, 前記한 바와 같은 結論을 내린 바가 았 었다.
그러 나 보마더 體系的으로 륨擊하게 韓國語의 系統問題플 퓨{究한 學 者들이 았 었는데 , 우리 논 그들의 學說에 對히l 니 는 微底한 땀f究가 必맺 하다고 믿 기 때 문에 可Íîg한 �� 1子細헤 , 그려 나 簡mtí-한 짧點만으로 다용 렐에 서 紹介하려 고 한다 3 4)
第二章 國語系續에 關한 諸學說
國語系號에 關한 닙휩學說을 究明紹介하는데 있어 사 , 筆者는 모든 學說 에 對해서 批判의 立場에 사 가 아냐고, 어느 學說이든 一次는 肯定의 }L
;陽에 서 究明해 보략 는 態度플 取하기 로 한다 .
.êP ï휩方由來說01건, 北方由來說이건, 또는 Indü-European語族由來說 이 건 간에 各說에 對해 서 一次는, 可能한 限 그 學說에 함定的인 立場 에서 그 홉f앓可否에 對래 서 公zp:하게 파헤쳐 보려고 하는 것이 띈者의 態度이다.
다시 말하면, 筆者의 見解와 다료다고 생 각되 는 學說에 對해 서 偏見 的이 라거 나 批判하는 態度블 삼가하고, 오핵 려 親近感과 함께 接해 보 콰고 하는 것이 筆者의 옳바른 判斷에 도움이 되 리 라고 믿고, 또 이러 한 態않가 筆者의 j팎信。l 기 도 한다.
1) 中國語와 같은 系統이 라고 믿 는 說35)
I←1) 韓民族야 어 느 해부터 漢民族과 接하게 되었으며, 또 二L 文化 34) 꺼論, 첫 으면 I쳐外學者들의 많은 學說플01 있겠 으니 , 얘 기 셔 는 따다n:셈↑系로
可能한 Il1'l: 結定的인 結論을 내 린 것 만을 紹介파려 고 한다.
35) 中잃語와 韓國語가 갚은 系統。11 屬한다고 主張한 學꿇은, 룡|1a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筆者는 아직 찾지 옷파고 있다. 그러나 過去의 歷뾰의 記錄
에 있어서나 過去 韓l園學者들의 語源說에서 야라한 色援가 灌맏한 것도 事 탑이기 폐문에 여기에 함께 究마j해 보려고 한다.
韓國語의 系統Jid어11 Im1한 맘{究(其一) [ 1 9 � 의 影響을;언제 부터 받게 되 었는가는 지 금 당장에 찰라 말할 수는 없 겠
하여 간 相當히 오랜 옛 날로 j펜j及히l 야 펼 것이고, 大뿜때으로 漢 지만,
四鄭의 設置)) 以後언 것으로 推測되고 있마.
,확句짧의 題l뿔jlJ꽁피lg; 에 있 어서나, 또 約 八 「年後얀 百濟의 짧[뀔g¥쳐}Pì애는 힘ÞJ麗.8';0)니, 딘y펙民 들 사이에는 漢文化나 「漢文」이 相합허 習f냥{專播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
設置에서부터 約七 f年後안 前記 漢四최ß의
이는데, 이들 兩國은 치음부터 그 「인금」에 게 漢字의 「王」字푼 월하고4)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5)
그러나 이에 머해서 新羅는 韓半島의 댔쪽 구석에 f立圖뤘、있만 1권E티로 漢四짧과의 接觸이 늦었기 때문에, 高句麗와 던j쩍 兩國보다는 편씬 늦 거1 漢文化나 漢文을 받아들이고, 또 習깜한 것�-� 보이는데, 新羅에사 는 그 「임금」의 名稱을 「新羅語」로 민어지는 「居西千6), 次次짧7) 尼師 今8) 麻立千9)J 等으로 號稱되 어 오다7t, 第二十二代 智5깐뻐c-효;千四年
(A.D. 503) 에 와서 llJ 호소 漢字인 「王」號틀 使用하고, !핏號르 ?월깃:JJ''J 안 解釋에 有利한 「新羅-듀 定하였다.
新羅本紀第四 쩔l證祝立千條의 젠J年隊에는 1) 漢武帝元封三年 (B.C. 108)
2) 漢孝元帝建昭느年(B.C. 37) 3) 漢成帝鴻嘉三年 (B.C. 18)
4) “秋九月, 王升핀. �풍즈F四十歲 .. 중쉴龍lll. 號東'11�펠g:::E(三國벚記卷第十三, 띔칩 句麗本紀第一, 'úf↑祖菜I�J뿔=E-I냥L깎‘條[B.C. 17])
“百濟始祖溫祚王’‘(며「濟本*ê i¥f→‘ CB.C. 18J)
5) 또 이들 힘꾀麗, 파濟 兩텅짧은 그 初期부머서 漢四캡1엠 파냐인 「樂浪]과의 外交關係의 修찌찌이 있있단 것무로 記錄)三國떳듬디)이 보이는데, 태 이들 샤
。l에는 意펌、í0iliíl1의 「딴J ò] )'힘댔었다고 믿어진다.
6) “始祖姓朴ß:; ‘ 랜納힘판 ...... 다그略 . ..... 四月1적辰E! 1]位 뼈I단견힘千 中略 ... ,
힘西千, 辰言王, 낀!Iì. j긍 Pf- 팝人之제�. (三園史記 j퍼해끼ζ紀第一) 7) “次次雄, 잊코慧充, 金人問파方言‘調짜也"C同上, 채‘m*紀弟
8) 雄條註)“金大問則즙, 尼떠j今方듬 tt!., . . ... 下m'&. . . (同 |→‘ fJi理)t:. rrm今修) 9) “金大問�, M젊jI.者, 方듬請微t다" 이liJ J:, r때j펀때L:IL "f J vfii註)
{힘햄f次次
C 2 0 ) f한뾰갖:11:; FJ ipii
(論I크, jf羅王rílJ:_JiiiE크千컴 次次끼핀者 딘i’�Î 今쉰 j-긋::, fajZ子者띠, 짧게쉰名
↑핍崔됐遠1'1"우í'f王年ftljf, J곽꾀某王, 不즘‘댐西千’j1 뭔以착→言郞땀不fa쥐Hι。1-.:'1。
:Jr., 漢'Í"國벚휩t멘。j,껴1�f�간5홈꿨, 於짧:, i선V!때힘끼센, 孤헬等, 今記新羅팎, 퍼U:F=
方듬→亦宜횟。)
그러 니- ��되年條에 는
(四if.쫓十月, 群펀J:슴, 샘@1f:1j業ζl來, I행名까;;핀, 행저당껴꺼짧, 或}펴행f댐-., 或言
험f羅, 固핑以f장쉽f者, fE‘業日m, 歸者, 網麻四方之義, nU;lU\\1國킹RrEit훗。 又빠 自 I람힘國家者 fÆ'웹帝:1=., 딩fkQf끼1힘立텅랩, 필今;二 J-二tIt, 1딘때方단, 未j1.:영;跳, 今
群닮→→意, 護J:행: '!}Þ�新짧國王, 王從之)
이 는 힘句麗나 딘{한보다는 五百餘f[:':f꽃으1 일 이 다.
1 -2) 以上파 같이 fI용間的으로는 若千 先後의 差는 있으니 , 핏文化룹 받아들얀 後부터는, 父化따으로 지〈準야 펠씬 높은 、漢文化애 ]필!쥔I펜 L-j 머지, 그 民族自體도 1[:'1평1族(漢族)피 同←4族이라고 생각댔있단 6떠向아 있 었먼 것 갇다. 아내, F;族은 사노 다르다는 것을 답覺하고 있었지만,
오히 과 中國族o월族)의 後짧다고 담處하는 것이 보다더 쭈,싼스터운 띤 이라고 생각했었던 푼적이 있는데, 이판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갓인 가?
;t;삶 우리 先人듭은 I=þ國A들이 스스프 自稱해 서 「냐l華J10J 라고 한데 對해서, “我東 「小華J"라고 稱하고 游足해 했다든가, 또는 1=[:]國語 「페 즙」에 對해서 園語룹 「方言-J11i이라고 記錄했다든가, 또는 「訓民표좁」이
란 촌풍한 名稱ù] 있는태 도 不꾀하고, 편宇안 「文字」에 對해 서 「띈文]
이라 쓰는 것을 固執한 點等은 이러 렌 웹tEÉ띠연 意識의 表끄[ù]라고도 환 수 았을 것이매12)
10) 中國人블이 「文化의 中心地」나는 뜻에서 스스로 自處파고 自햄했녀. 이는
그만한 理由가 充分,,1 있다고 누구나 민아지고 있다.
11) 이는 「地方룹펌」의 n땀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버나 첼際로는 [웬人語J (I=þ國!
굽홉)기 아난 邊方의 꿇民族익 듬듬핍를 總째j냈였다.
12) 이 러 한 中|짧文化에 比해 서 우각 5cfr:에 對한 複合的偏Æ(Complex)은 맏 짜기 新j'{:디1부더보 보L이는E↑1, 例학떤 rj��l않14는 名稱에서도 판 수 있고,
韓國語으jf젠’L‘껴에 協j한 {때究(딩>,) C 2 1 J 그러나 무엇보다도 深刻한 것은 從來 우9 先人들의 國셋능디錄方式아 다.
llP r箕子束來說」을 우리 民族의 LE찌그의 E핀寶로 받아들이 고13) 또 그램 으로싸 미1國人들의 後짧라는, 또 「되고 신어 하는」 二L 從來의 ?샘감3마J인 意識을 滿足시키는테 JE當했틴 것이 아난가 하고도 생각된다14’
이 「箕子束來說」은 펜來는 1F是 I멘國人들의 記錄에 핍源한 것인데, 若 千의 史實에 홉張과 ßM웰가 i짜j]O되 어 었는 記錄으로 認定되 고 있고, 中 國人들은 어런 式으로 周園의 異民族을 同차l빙11順시키는 1煩向이 있었다 . .f!p :代生」이 口授했 다는 「jlj뿔大博J lõ)의 記錄이 그 하나요, 史AE의
「처{댔子世家」가 그 톤,01며, 그 셋은 漢편地理志 「熊j條의 記錄이다.
이플 세 記錄들은 한결갇이 「箕子펀走꾀解」싫을 記錄하고 있는데, 이 J랩時의 中國人들에게 依한 「때蘇‘」이란 體;웅;은 탤只 漢然하게 많東半島 以東의 地域을 呼稱해 왔기 때문에 現ff:의 íi짧半,烏」라고 짧I定하키는 어 더운 일이요, 箕子가 出發한 「없」에시 그렇게 3띔이극離의 往쩍。1 쉬게 이 푸어진다는 것은 至폈’t事:힐 것이다.
新增 「束國與地將펀」 행크i-j'←‘ zp:製, 폐f세fl*에든 「jt子�IIU애 對히] 서 다음과 같은 記錄이 었 다.
「箕子폐, 在城內 7ðS패태핀ij치十年쩔추R핀j〔ntrr;ri션l鄭깅Cffw찮17.패;;�U디"G13'" J
또 三國遭事의 著者는 íji'덴 , 댐댐, 方 탐, 1?}판」等 감더 多彩←룹게 表現하 고 있다. 또 現在에도 [大IIIJ天tifJ 밝은날에 ..... . 피피」하는 만01 :m或펀머 고 있는 터이다.
13) 이와 같은 事첼에 對해서 柳태J ,11솟한 說도 있는데, H[J 이와 까은 것은
“1땅來에는 다1國人틀악 폐쑤되J삼쐐윤 일바간 악이]봐자”는 팬IÍl이] 이 kfìfr되 었다고도 f행한다.
11) 李쩍짧샌士 : 혐國핏, (�(f\:샘) 第二짧, 三 [箕F뿌끼떼」zq rLF짧. pp.92"'95 參照.
15) ["經名尙上也, J.;Ul‘돼 h건f씨잖넓II�땀之文, �따l각Qi파, 합]11:쩍-1G:끼I之퍼也, 泰火 亡失 , 漢初濟떠κLl::ll 쩔題錯二十八짜, 號f월今文fJd밤, 後댐 j:�王맺:fL 'f')'쥐�t;,
於원t中得竹f짧f섬판, JprfF[ 3C 꾀J%jI;iljj:;%iFf 1---띔r淑 16) 李內협 : Op. cit., pp. f.13"'94
[ 2 2 J 東gE文化 19i넓
ÐP 平壞에 「箕子펴」가 原來부터 있었먼 것이 아니고, 그 어느 必몇性 므로 因해서 高麗혐宗 l→年 鄭文의 建議에 ↑k해사 立폐된 것이며, 또 李 內壽I펀士애 依하띤 「돼在의 箕子陸은 아마 이 때 建設되 었다고 생 각되 는 갔子패堂 자리 에 그 후 ff1i1ß장業造한 것 연 듯하다. J17l
그리고 이 짧의 批測。] 正確性이 있는 것으록 부이는데, 前記 新增
「東國!맨地將띈」의 記폈에 논 「箕子패」의 記錄에 는 줬子폐의 確實한 位j뭔 가 明示되 어 있지r않고, I在城內」라고만 記錄되 어 있다는 事實이다.
이에 1:1:해사 「箕子첼」의 記錄에서는 「箕子흙, 在府城:lt%山上。」이략 明示되 어 있는데 , 샌:宗實錄地理志 2f安훤平壞府條에 의 「箕子蘭tE府城北 면山上。」의 說錄괴→ →꿨하고 있다.
1 -3) 이 「箕子東來說」이 언제 부터 우리 民族의 正史로 附會하게 되 었 는기 는 챈考키 어 려 우나, I東國史略J18l이 그 짜]期의 j뿔著라고 생 각된 다.
이 제 그 --例륜 金뿔榮原著 「歷핏輯IIl�J ('합時의 學M細뼈局長 李鍾泰 刊行 光武九年 r-Jj, 1905)에서 플어 본다.
「훼應紀」
「
되
朝따太祖文빨王箕子元年펀
王 箕子, 子姓, 名폼餘, 般王成傷之由짧힘之諸 父←벤。 封於箕而子템, f&號箕子, 乃彼髮f¥狂셈fJJ(, 鼓琴以 自悲及n던펴;王代섬入!投,命김公繹箕子떠, 問股所以亡, 箕子不忍、言, 武王乃問以꿋道, 箕子f펀陳洪範7L購,
따而箕子 義不@t쫓늦닫之朝따, )띄平짧, 或티朝따亦謂之韓]
또 그다음 f nUE에 사 金‘뿔)榮Ef;는
i:J1i:箕子以 f1i‘十또캘t;[t出f싸í:'r JCE; , %:f:치효事記及 햄i奇二�之家訊, 然、箕子之 東서l0:fi、j되j딴}폐 自yj1Tii1거F셈ttL5j또, Jl!I폐T끽한꿇後人之追尊tßo i&特:Ff箕크:,=q:‘以@Jj
具忘」
라고 記錄하고, 그 後에 젝←了→는 ItE{V:四 「年, 壽九十三, 핸平壞之玉깜
17) Ibid., p. 95 註 參照
18) 李때 太宗i꾀] 찌J1ijJòll 1:/c:i511 사 權立 河써 李웰等。l 細짧, 그 卷第←→에 樹겸,
효‘子, 짝1ii팩폐샤\0, 파R-LI컨1; , 드즈韓, 평f羅, 핍濟, 高句짧으1 Ii댐으로 되 어 있다 .
韓國語의 系m폐에 1;펴한 lífF究Ot‘ →) [ 2 3 J 山흉옳觀뿔」이라 했고, 그의 子 莊핀王이 덩|繼하고, �믹十一f\; 평玉名 否가 「奉」에 降服하고, 그의 아들 띠十二代 哀王準이 二十歲에 立했는 데, 그 해에 행人 衛滿의 所훌훌£ζ로 失國한 갓으로 되어 있다19)
끝으로 다시 「箕子꽤縣」에 關한 추며뚫1'[센土의 ;휠見을 Ul用히1 관다.
I-Ifr�볍 箕子朝따은 7i:子와는 *El倒없는 우 리 의 士띨社會인 J::jJjt;딴--,i1JWi ili社햄에서 發i힐된 것이근1고 맏는다. 디 이 딴ß]띤, 0] 朝씨C은 따끼: “밟죄l때때”
。Pt고 일컬어 오딘 阿JUihl'lfd:會으ê{Jí조뻐하IR이 힘i支떼族에 대 산ß]-여 새로운 體iIî�를 이 룬더l 不過한 것 우로, 0] 쩌f支:버êf표jj;은 箕많가 아니 라 後티 中國式원j Lí;에 依한 韓.s;;'i는 結論을 얻게 되 있다, j'O)
1 -4) 그러 나 그 後의 北滅人 「衛滿」의 꽤蘇許取에 依한 「衛滿폐蘇」
의 ��錄은 否認할 수 없는 史寶 이마고 믿어지고 있다.
「펴따王滿者 챈人tiJ. c . . '페王l잃紹, 反入f세/;3., 滿亡i암聚:현千除人…稍값않ì .00ìff 'iJj
빡總것及故채�xff亡命者, J:→之, 都王除j (밍flêt 朝따i專) 또 「歷史밴더略」에는 그 時期가 明示되어 있다.
「衛滿많破朝때 , 센子王I랬, 稍%훼1람짧;1q部及5itq齊亡命者, 연?1ff핀、깨fi힘Ifí時;, 21)
天下稍定, "'j
또 그 後 「衛펴‘댐蘇은 그의 孫子右‘많時에 漢武帝(짧IJ微)에게 滅한 바 되어221 八十七年만에 끝나고, 漢武帝는 그 땅에 自國의 那縣制플 寶拖 해 서 所謂 「漢四那J(樂浪, 환짧, 臨Hl, 玄옳)을 設置231했는더11. 이에 對 하1시 史記卷二펀十 휴VfJXi專에는 「是뽑 漢東技據행꽤蘇 以왔那」이란 記錄
。1 보연다.
이 漢四컵ß은 前漢괴- 後漢의 I행力의 盛養에 따라서 그 撥合이 無常하 19) r 自箕子己때至準T未凡四十::::',t1171,핍=十九年而셈면햄1-뺨벚해Ifl1í
20) 李因壽 : Op. cit., p,95 21) 惠帝高팀時(B.C. 19,1�180) 22) 元封三年(B.C. 108)
23) 元封四{f.(B.C. 107)
l 2 LiJ 겨�5l�文化 19i川
며, 째로는 擬張되고 또 때흐는 縮小되기도 댔였으나, 五百餘年동얀
韓 半흉
맞 평南滿州j캘方얘 }랍住했었던 韓民族(主로 夫餘 i합句麗 r되‘濟,械젠, í'天퍼)에게 3z:配者로이 쿠5;ti/1했았다:ι 만어진다.
그리 나 後漢의 國기의 弱셈외- 高쉰1麗의 興/꼬에 i;&해 서 드다 어 高句麗 에게 滅돗뇌꼬 다시 i司fi]댈의 領土로 統合21)도l었다.
그려 나 以上과 갇은 漢암族의 韓야3鳥統쉰는 &:í、然的으로 그들의 移民 流入이 隨行되 았었、윤 것이나, ]ÌÍJ記한 I 셋記 떼應傳」의 1" .滿亡命, E짝黨
=f餘人.. 'J이바만가(또는 設令 假構마J이마고 할지라도, 箕子의 記錄,
「初箕子之댔來也, �잊A隨之者五千---- j) 또는 漢四캠ß때 의 移民도 비 록 確 失한 數字의 듬타錄은 없으나, 이보다도 펠씬 大端한 數字이었으리라고 믿어진다.
1 -5) 이러한 緣由인지는 確寶치 않지얀, 우리 國民 r:þ에는 中國æ來 의 姓g;가 많다는 默이 마25)
尤先 「箕子束來닮」괴→ 關1獅해 서 「韓많」와 「응하ESJ의 家테얀가 함깨 그 始 祖플 「箕子」로 삼고 있고, 太原(忠州) 默=f밀도 箕子의 後孫。1 파고 記 錄하고 있다.
r:f!상깜子以下五+王事, 장1;出於J데구,r:ç先크5週흉F記71합검 二f(;;之家請!2f,)
이 이1 對해 서 李困틀월1편士는
“箕子플 始祖로 산는 것은 덜한 것도 얹。l 빔E냐]의 家系흔 벚나게 하기 월
한 手段야 거 니 와, 이 El 한 家系의 假t폐은 古今응 i렴하여 보는 事f쩌지 만, 그 籃
觸온 별il 韓J3i후져!1^n댐{t이1 發하었던 것 이려고 생각된다"27) 2-1) A.D. 313
2:;) 그 姓f(;가 尤先 漢字이고, 漢字로 fF姓해야 되는 理며로 因해서 自然 中國 人틀 姓fE;J른 따서 지 였올 可能性도 많다는 原因에 서 이 였윤 可能性도 크다.
26) 歷벚輯略 卷느 p.G 25) 李因짧 : Op. cít., p.97f
26) “韓國姓밍맛헤f' cþ p,25
申奭鎬 “괜國þ!j,tE;柳說” 參照
27) 1981月 5日 30(士)字 lki표,터웹(第18353많)
韓國語의 系統論어'1 �힘한 때7究(져一) C 2 5 ) 이 러 한 例는 뿔單 前記 「韓奇二많」의 箕子始祖系讀에 서 뿐만야 마니 라, 우리 周圍에서 흔히 찾아 괄 수 있는 例이다.
다음에 若二F의 例를 들어 보떤,
o 文化柳�(始祖 庫達)는 夏禹民의 後{싹이라 記錄하고,
。 固城李.Pí;(始祖 짧)는 펴文帝의 後孫이다고 記錄학고,
。팝서‘I姜�(始祖 以式)는 [íf'H�帝가 쉽句麗에 홉入했을 얘 따ζ}-잔 사람이 라고 하며,
。 南陽洪�(始祖 股‘뾰)는 }합太宗이 댐句麗에 派훨했던 學士이 라고 하고,
O 延安李�(始祖 짧〕는 蘇定方。l 百濟블 찬 때에 따라온 將軍이라고 하며,
0 南原房民는 康 名將 房去顧의 後孫이 라고 主張한다.
이 外도 中國의 聖A學者들을 先祖로 모시 고 BÇ旅도 었다. 당IJ
O 昌原孔民는 「¥L子」의 後孫이 요,
O 俊써‘l朱民는 「朱子J(朱헐) 의 後孫이 라고 主張하고,
。 尙1'H周�는 [太極圖說」의 著者이 요, 宋學의 始祖인 「周敎탱」가 그 先組바고 王張한다.
도 이미 名門E族이요, 코族。l연사도 구태어 그 始祖룹 �I:l國에서 求 한 例도 있으니,
。 高1i]麗王室의 高�는 1iT醫高辛民의 後짧라고 王張파고,
。 新羅의 金ß:;도 小돗金天ß:;의 後商라고 主張하며 , O 高麗太祖 王建은 뽑關宗의 後孫으로 되 어 있다26)
이 外어l 도 中國에 二L 超源을 두고 있는 姓民가 相當數에 達하고 있으 나, 여기셔는 以下는 省略하기로 한다.
또 極히 最近의 일이지만, r“中國名門의 後짧”라고 自稱하는 十二姓 ES모엄」엔 「明義會」의 記事가 某日刊紙27’에 記載된 일。1 있었다.
그 記事의 內容에 依하면, 李朝時代에 있어서 中國 歸化人은 세가지 로 分類할 수 있는데,
26) r碩韓國姓ß:;大觀」 中 p.25
C 2 6 J 束단딛갖:11::. 19뼈
그 하냐는 王辰俊亂(1592) 과 T西再亂 (l597� 때 에 明 電의 一員 으로 韓 半島에 ìJff!피펴 었 다가 품 o}가지 않고 머 블 더 산 경 우 얀 티L 上짝떼IGE딛, 海 州石많, 淑江t퍼E5, }Fi江)十5:;, 、댐〔江徐5:;, 뭘1陽느fé�, 쩌끄f、I、I賢5:; 等이 고,
또한 경 우는 鳳林大휩 (孝宗) 이 內子胡亂으로 灌陽에 있올 해 , 짧交를 맺 어 歸國함 때 힘 끼l 와서 歸化한 姓5:;들로 全部 九名 이 고, r 1L義土」 라 고 일 컴 기 도 하는데 , 그 며에 서 濟南王E딩, 짧ßffl鄭ER, ljjJR힘팩5:;, tt1'f'!黃 B;等。1 고, 셋 째 로는 � I쫓피j5:;안더l 仁祖二十←·年 明使닮 으로 왔 먼 胡克 己가 明 나라가 亡‘댔 다 는 消팀、을 듣고 r1JO平」 에 자리 장았다고 힌 다.
以 上의 매國系統의 諸 짧化A둘플 箕子東來時의 「股人隨之者·五千」 과 衛滿亡命 해 의 「聚필千餘人J, 그리 고 漢 四 컴� 째 의 移民數 (그 中에 어 느 짧많가 이 땅에 定홉했、 는기→는 記됐 없 어 不明) 블 合치 고, 또 그 後에 있 어 셔 의 數 많은 네]國 대 來 姓많들의 後孫올 合 치 면 , 우라 民族 中에 ’깎國 系統의 人 口 數는 實로 됩大한 數에 達할 것 으로 생 각되 는데 , 그러 나 이
다l 에 는 事寶음 認定할 수 있는 것 도 있으나 그 랭 지 않은 것 도 많고, 中 國을 뚫拜한 나버 지 지 기 의 世系플 빚 냐게 만들기 寫해 서 後iít에 그렐 듯하게 꾸며 낸 갓도 많을 것이 라고 맏 어 진 다 28) 이 와 같은 갓 이 尤先 韓國A의 姓Ef;가 )fr!행式。] 고 漢약,.플 使用 했、기 때 문에 , 中國人의 姓5:;와 漢宇가 갈은 경 우, 0] 와 팬結시 키 기 가 쉬 웠 다는 데 도 그 原 因 이 있 었 을 것 이 다.
1 -6) 그 렇 거 때 문 이l 우 리 民族의 固有한 「 말J (韓國語) 은 오랜 옛 날 부터 서 中國語에 서 도 借朋 。1 많 았기 때 문 에 深刻한 다격 을 받 았으며 , 이 른 옛 날부터 시 그 發達0] 中止되 었 던 感‘ 이 灌原하고, 새 로운 文化文 物에 關한 諸養는 모조리 며國듬폼 에 서 f곱用 했 으며 , 오히 려 固有한 우리 의 「낱양J (語薰) 이 漢字로 t\;;置되 는 頻向까지 9뭘 하게 되 어 서 , 天文, 地 理“ 時候, 한j族, 家1륜, 人體, 衣服, 方깐노 等에 關 한 「基本譯暴」가 漢字 에 말 라 서 代置되 어 가고, 우 리 의 B 常f텀語에셔 사라져 가논 形使 이 되
28) 申奭鎬 : Op. cit., p.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