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역사, 제 2학기 - 제 11주차
중세 중세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 -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중세 중세 왕국의 왕국의 발전과 발전과 쇠퇴 쇠퇴 - -
제 제
22항 항
.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중세 중세 왕국의 왕국의 발전과 발전과 쇠퇴 쇠퇴
토미슬라브 이후 크로아티아
: 트르피미르 2세(재위 928-935)와 크레시미르(재위 935- 945) 시기를 거치며 발전
: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베네치아 및 아드리아 해안도시들에 대한 관할권을 넘겨받음
-> 10세기말, 베네치아의 조공 거부
-> 크로아티아와 베네치아 간의 전투 지속 -> 1024년, 비잔틴 제국의 영향력 재 확대
크로아티아 최대 전성기, 크레시미르 4세(재위 1059-1075) : 당시 국제적 상황
- 1054년 크리스트교 대분열로 동 서 교회간 갈등 최고조 - 11세기, 바이킹들의 해안 지역 약탈과 셀주크 터키 족의 공 격으로 비잔틴 제국의 세력 약화
영토 확대를 통해 최대 전성기 마련
바이킹족의 유럽 진출도(8세기 말-11세기 중엽)
크로아티아 최대 전성기, 크레시미르 4세 시기
마지막 왕, 즈보니미르(재위 1075-1102)의 생애 : 크레시미르 4세가 후사 없이 사망
-> 포사비아의 즈보니미르(재위 1076-1089)가 로마 교회 지원으로 왕으로 추대 (* 자신의 부인인 헝가리 공주, 리예파)
-> 로마 교회에 충성 서약
: 십자군 전쟁의 시작 (제 1차 1095-1099)
- 셀주크 터키(11-14세기)가 비잔틴의 소아시아 지역을 차지 -> 비잔틴은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재위 1088-1099)에게
도움 요청
- 로마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교회 복속 위해 십자군 원정 추진
=> but) 십자군 전쟁을 적극 추진하던 즈보니미르가 1089년 귀족들에 의해 암살
십자군 전쟁 원정도(제 1차-제 4차)
@ 역사적 의미
- 1918년까지 헝가리 영향력 하로 편입
- 크로아티아와 헝가리 간의 역사적 갈등 시작
- 크로아티아가 중부와 서유럽 문화권으로 편입된 계기 (세르비아와의 문화, 역사적 결별)
크로아티아 중세 왕국의 몰락
: 즈보니미르 암살 이후 왕위 계승권 전쟁
- 1091년 리예파의 중재로, 헝가리 왕 라디슬라브(재위 1077-1095)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
-> 1094년 자그레브에 가톨릭 교구 수립
: 라디슬라브 사망후, 왕위는 동생 콜로만(재위, 1095-1116) 에게 계승
- 1102년 슬라보니아,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위에 즉위 -> 크로아티아의 자치권과 Sabor 권한 인정 약속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에 자리한 헝가리 왕 콜로만(Kálmán/ Coloman)(왼)과 1075년 크 로아티아의 왕으로 추대되는 즈보니미르(오른)
헝가리 왕국의 영토(11세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