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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하면 1970년대에 베트남의 내전에 휩싸여 외신을 통하여 戰禍에 피해상황을 전하던 도시명 루앙푸라방, 비엔티안 등이 떠오른다. 그후에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고립되어 우리에게는 전설에서 듣던 국가처럼 인식되었 었다. 필자는 이번에 2010년 여수 해양박람회 유치에 라오스를 우리의 원군 으로 삼고자 우리 정부가 라오스 직업훈련 지원사업을 구체화하도록 한국국 제협력단의 프로젝트 타당성조사에 참가하였다.
7월 14일 한 여름 낮에 우리 일행이 비엔티안 공항에 내리자 주변이 우리 나라 어느 촌락의 기차역처럼 한가로와 보였는데 영접 나온 노동사회복지부 여직원의 꽃다발을 받을 때 한편 놀라면서도 라오스 국민의 순수하고 따뜻 한 국민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후에 각 관련 부처와 기업체, 학교, 훈련원을 방문하면서도 처음 그날의 인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수도인 비엔티안에는 우리 나라 60 - 70년대의 거리모습과 같았고 다르 다면 3륜차와 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리 에 노점상이 즐비하고 큰 시장이라야 종합 노천 시장이 고작이고 백화점도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식 건물로는 ADB 등 국제기구 청사와 아파트 몇 곳이 있을 뿐이었다.
이 나라의 정식 국명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으로 우리가 통칭 라오스라는 것은 복수형으로 뒤의 PDR을 생략하고 쓴다.
원래 라오스의 기원은 14세기 중엽 중국의 윈난[雲南] 지방에서 남하한 타이족(族)의 한 분파인 라오족에 의해 건국되었다. 크메르(캄보디아)의 원 조를 받은 파눔이 1353년에 루앙프라방에서 왕위에 올라 란상 왕국을 세움 으로써 기록상의 라오스 역사가 시작되었고, 다시 그는 시암(타이)과 전쟁 을 벌여 현재의 타이 북부·북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 뒤 번영을 지
라오스의 기술인력양성과 한국의 지원
신 명 훈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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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하여 17세기 말엽의 술리나봉사왕(王)의 통치를 받 으면서 라오스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694년 에 술리나봉사왕이 죽자 왕위계승 분쟁이 일어나서 1893년 프랑스 침략 때까지 세 왕국의 분열·대립이 지 속되었으며, 그 동안에 시암·베트남의 간섭과 지배도 받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베트남·캄보디아를 차 례로 지배한 뒤, 1893년 라오스를 보호령으로 하였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왕국을 1개국으로 통합하여 프랑 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에 편입시키고, 프랑스 밑에 루앙프 라방왕을 둠으로써 라오스의 상징적인 왕으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라오스가 프랑스공동체 소속 독립 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자 왕가(王家)의 후예들이 우 파, 좌파, 중립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1957년 푸마공은 중립파와 파테트라오가 합의한 연 립정부 및 1962년에 3파가 합의한 연립정부 등에서 수 상이 되어 혼란한 국내정세의 안정을 위해 진력하였고, 국제적으로도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 치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캄보 디아가 공산화되자 여세를 탄 파테트라오는 내전을 가 열화하는 한편, 1975년 8월에 대규모의 시위를 벌여 지 배권을 장악하고 행정권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같은 해 12월 2일 국왕을 폐위시키고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면적은
우리 한반도와 비슷한 23만 6800㎢ 이고 인구는 540만 7000명(1999), 인구밀도는 22명/㎢(1999), 공용어는 라오어이며 태국말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1인당 국 민총생산이 라오스는 1인당 GDP가 $267인 최빈국 (LLDCs)에 속하여 매우 가난하게 들 살고 있으나 성품 이 온순하고 욕심이 없어 거리에서 거지도 발견할 수 없 었다.
동쪽으로 베트남, 남쪽으로 캄보디아, 서쪽으로 타이,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 으나 국민들의 얼굴 모습은 태국사람보다 베트남사람과 비슷하고 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많아 신기하였다.
기후는 고온 다습한 열대 몬순 기후로서 평균기온 25.7C, 평균강우량은 1,714mm이다.
수도는 Vientiane으로 주민은 55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의 주요도시로는 Savannaket, Pakse, Luang Prabang 등이 있다. 종족은 라오룸, 라오숭족 및 68개 의 소수민족이 있다 한다.
종교는 동남아 다른 국가와 같이 소승불교가 95%를 점하고 있으며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를 소수가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도인 비엔티안에는 최고층 건물 이 7층에 지나지 않아 볼만한 건물이 없는 데도 도처에 호화로운 사원이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있고 오렌지 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을 길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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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A O S
경제 사정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매우 피폐한 편이 며 1986년 신경제 제도(NEM: New Economic Mechanism)를 채택, 중앙 집권적 경제체제에서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코자 노력중이다. 시장 개방화 정책으 로 상품 및 서비스 거래 자유화, 가격통제 철폐, 시장원 리에 의한 환율결정, 세제 및 관세제도의 개혁, 통화, 신 용정책의 합리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조건 완화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자본 및 고급인력 자원부족, 제도 적인 장치 미흡, 협소한 국내시장, 인프라시설 미흡, 내 륙국으로서의 한계 등 경제성장의 장애요소를 많이 내 포하고 있다.
라오스 정부가 2001년 3월 제 7차 당 대 회에서 선정한 8대 우선 사업은 인적자원 개발, 농촌개발, 식량증산, 공업상품증산, 화전농업 금지, 대외경제협력 강화, 사회간 접자본 정비, 서비스산업의 확대이며, 라오
스 정부는 3단계 경제개발 전략을 세운바 있는 데 즉, 1 단계는 신경제제도확립, 2단계로는 경제구조조정 및 역 량 축적, 마지막 3단계는 국민중심의 지속개발이다.
교육의 기본 정책은 민족적, 민주적, 진보적 교육의 건설 및 발전에 있으나 문맹율이 42%에 이르고 초등학 교 취학율 72.4%이지만 그나마 수료율은 41%에 지나 지 않는다. 의무교육은 5년이고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고등과정은 6년이다. 주민 대부분이 학력이 낮아 외국어 소통이 어렵고 지식층이라 하여도 프랑스의 지 배를 오래 받고 근래에는 구소련의 영향권에서 생활하 여 불어와 러시아어는 다소 구사하나 영어는 관광지나 호텔에서도 잘 통하지 않았다.
종합대학은 비엔티안에 1개밖에 없고 의과대학과 공 과대학이 각각 1개교씩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교사의 1/3이 정규 교사자격 취득자가 아닐 정도로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교육발전 계획을 보면 2010년까지 전 대상자 초등교육 의무화, 도·농 교육격차 해소, 각급 교육 기관시설 확충, 지역별 전문학교 설립 추진 등이다.
라오스는 대부분의 숙련기능인력을 주변 인접국에 의 존하고 있어서 기술축적이 안되고 외화 부족을 심화시 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바, 이에 대한 대체인력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수도인 Vientiane과 지방 주요도시에 15개의 국립직 업훈련원과 10개의 기술학교가 있으나 기술인력 양성 효과가 미약하며 특히 공업기술 직업훈련의 구심점이
되는 기관이 없다. 또한, 기능인력의 육성을 견인할 수 있는 자격검정제도도 체계화 되어있지 못하고 최근에 겨 우 ASEAN 기능올림픽에 선수를 출전시킨 바 있었다.
한편, 최근 라오스에서는 각종 가전제품과 자동차 수 입(대부분 중고차)이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이농현상 으로 인하여 농기계 사용도 급속도로 증가(매년 300%
증가)추세에 있고, 컴퓨터 보급 및 인터넷 사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므로 한국 - 라오스 직업훈련 협력 사업 의 완료예정 시점인 2005년 중순경에는 이러한 분야의 숙련기능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 라서, 라오스에 신산업기술 분야 중심의 직업훈련원을 설립할 경우 라오스의 숙련 기능인력 육성에 일대 전기 를 마련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오스 정부는 국가의 장래가 직업훈련을 통해 젊은이들을 숙련기능인력으로 육성함으로써 그들이 해외인력 수입을 대체하고 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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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해외 취업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인 고용 창출을 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인적자원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다.
우리 나라와의 외교 관계는 북한이 이미 1974년에 정식 국교가 맺어 졌으며 사회주의 동맹국으로서 최근 까지 양국의 수상 등 장관급이 빈번하게 교환 방문이 이 어지고 있다. 한국과는 1973년 11월 1일 통상대표관계 가 수립된 바 있었으나 1975년에 단교되었고 1995년 10월 25일에 외교관계가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참가하게된 라오스 직업훈련원 설립사업의 추 진 경위를 보면 2001년 11월 ASEAN+3 회의에서 한·라 정상회의에서 직업훈련원 건립 지원 요청이 있 었고 그후 외교부가 라오스 직업훈련원 건립사업 추진 방안 검토, 공관의 타당성 조사, 주재국의 직업교육ㆍ훈 련 발전 계획 등을 조사하고, 2002년 5월 17일 서울에 서 개최된 한·라오스 총리회담에서 우리 총리가 직업 훈련원 건립을 위해 미화 200만불 규모 지원을 약속함
에 따라 사전 조사를 나가게 된 것이다.
사업목적은 신기술 직업훈련을 통한 라오스 숙련 기 능인력 양성, 기존 직업훈련소의 기능검정 지원, 라오스 의 신기술훈련 학습과정 설치, 숙련공 양성을 통한 외국 인력의 수입대체 등이다.
본 한 - 라오스 직업훈련원 건립사업의 요청 기관은 라오스 노동사회복지부가 되며 2002년부터 2005년까 지 5년간 계속되고 자동차 정비, 컴퓨터, 가전제품 수 리, 목공, 봉제 등 5개 공과를 비엔티안 도심지역에 설 치하게되는데 건축공사, 연수생 초청, 전문가 파견, 기 자재 지원, 한국 관리자 파견 등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 기로 되어있다. 현재 독일, 일본 등 외국의 원조로 지어 진 훈련원이 있으나 사업 종료가 된지 오래되어 시설 장 비가 낡고 교사의 급여가 낮아 운영이 어려운 상태이고 학생들의 지원율도 저조하여 기능 인력 양성에 곤란을 겪고 있어 우리의 원조로 새로운 훈련원이 2005년에 개 원되면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라오스 직업훈련원 설립 사업목적은 신기술 직업훈련을 통한 라오스 숙련 기능인력 양성, 기존 직업훈련소의 기능검정 지원, 라오스의 신기술훈련 학습과정 설치, 숙련공 양성을 통한 외국인력의 수입대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