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경련과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공동 초청한 미국의 저명한 국제전 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 소장 존 햄리(John J. Hamre) 박사의 강연(9월 2일 신라 호텔)을 들을 기회가 있었 다. 강연이 있기 전 이미 수일 동안 강의 및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김일성 100세가 되는 시점인 내년 4월 15일 이전에 무력 도발을 획책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필요하면 전쟁을 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강조했던 존 햄리 소장은 9월 2일 조찬 강의에서도 한 미 동맹관계와 미국이 인식하고 있는 한국의 중요성을 미국 전략이론가의 입장에서 분명한 논조로 설명했다.
존 햄리 소장은 미국 내 민주당 공화당 양당이 모두 혼란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정책에 관해서는 견해의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제 한 후, 미국의 외교정책 중에서도 동아시아 정책은 특히 사활적으로 중 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향후 10년 이내에 미중관계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금명간 2001년 발발했던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과 같은 무력 충돌도 재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한 다. 결국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이 직접적으로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라는 언급이었다.
최근 미국사회에서는 전과 다르게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
존 햄리 소장의 한국에 대한 언급은 최근 미국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 확산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전문가들이 최근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 예사롭지 않 2011-09-16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변화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은 이유는 사실 지난 100년 이상 미국이 한국을 그렇게 중요한 나라라고 생 각한 적은 없었다는 현실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1905년 카츠라 태프트 조약을 통해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 할 수 있는 길을 터 준적이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점령군으로 한국에 주둔했던 미 군은 철수하기 이전, 한국이 미국에게 얼마나 중요한 국가인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는 한국은 미국이 도와주어야 할 나라 16 개국 중에서 겨우 13등 정도에 불과 한, 그렇게 중요한 나라는 아니라는 것 이었다. 이 같은 보고서에 의거,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한국에 주둔했던 미 군을 1949년 11월 완전히 철수시켰던 것이다. 미군 철수 이후 겨우 반년 정 도가 지났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 발발 직후 불과 1주일 만에 미 국은 지상군의 한국 파견을 결정했었지만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입장은 ‘작 은 전쟁’(한반도에서 예기된)을 사전에 잘 막지 못하면 그 작은 전쟁은 큰 전쟁(유럽 혹은 중동)으로 비화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한국 그 자체가 중요해서는 아니었다.
냉전(1950-1990)이 지속되는 동안, 미국사회 일각에서는 주한 미군을 철 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주독 미군, 주일 미군 철수론 은 존재한 적이 전혀 없었는데 반해 주한 미군 철수론은 끊임없이 지속되었 던 이유는 문자 그대로 한국은 독일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중요 한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미국 사람들이 내 건 이유는 한국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공산진영에 복속될 경 우, 미국이 사활적 이익으로 간주하는 일본의 방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을 미국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이익(일본)을 지 키기 위해 필요한 파생적 이익(derived interest)이 걸려 있는 지역 정도로 생각해 왔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귀찮은 부담쯤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이토록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한반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최근 급 속히 달라지고 있다. 작년 가을 행해진 미국의 한 여론조사는 한국이 중요하 다고 대답한 미국인이 80%를 상회하며,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유지되기 를 원하는 미국 시민들이 65% 정도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제 미국은 한미동맹을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이 분명해 보인 다. 존 햄리 소장은 이번 연설에서 “독일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을지 몰 라도 아시아 주둔 미군은 철수시킬 수 없다.”는 결정적인 언급까지 했다. 그 는 한국은 미국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나라라는 사실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을 이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국력증대가 미국이 우리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도록 한 원동력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 스스로가 커진 결과다. 경제력, 군사력 등 국력의 제반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이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 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 동안 아시아에서 전략 균형을 유지하려 할 때 한국을 전략적 대상으로 고려한 적은 없었다. 중국과 일본만이 미국의 전 략적 고려 대상이었다. 한국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힘밖에 없는 나약한 대상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아시아의 균형을 쉽 게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미동맹을 중국의 도전에 효 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를 소중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의 대전략을 위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우리는 급부상 하는 중 국의 위세 아래 주눅이 든 나머지 통일마저도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하 는 사람도 나올 정도였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과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던 시절의 허약한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최강 미국이 전략 적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나라로서, 앞으로 우리가 하기 나름에 따라 자유 민주통일을 이룩하고 동아시아 강대국 국제정치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도 강대국이 될 수 있는 문턱에 도달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문턱을 넘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국내정치, 포퓰리즘에 목매달고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멀리 그리고 크게 내다 볼 줄 아는 정치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