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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28권 제6호, 2010
우리
의작가 박조열
과그
의작품
조 은 경
연극배우, [email protected]
연극이야기
박조열(1930. 10~)은 함경남도 함주군 하조양 면 기회리에서 1930년 대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독립투사가 되는 꿈을 꾸고 문학에 빠 지며 걱정 없이 자랐고 그가 제일 좋아한 극작가 는 버나드 쇼였다. 그의 삶은 1945년 해방 후 급변 하게 되었는데, 함흥고급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 단행으로 거의 알거지가 되다시피 한 그는 1년 후 민주청년동맹 위원장이 던 친척에게 통사정을 하여 받아낸 엉터리 추천장 을 들고 당시 강원도청 소재지가 있던 원산으로 가 도청 공무원 눈에 들어 운 좋게 교원으로 뽑혔 다. 원산공업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주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로 그는 6개월 만에 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박조열은“내가 묵던 이 학교 기숙사는 전쟁 직후 폭격당해 흔적도 없 이 사라졌다”며“쫓겨나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죽 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49년 3월 문천군 마전리 오지(奧地)의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6·25가 터지자 학교에 서 대대적인 조직 정비가 시작되었고 박조열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은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가족같이 대해주었 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박조열을 외면했다. 파리 목숨과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교원들 도 북으로 올라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출발 전날 박조열은 제자의 아버지인 역술인을 찾아가 앞으
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제자의 부친은“선 생님은 군인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허탈 한 웃음을 짓고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 우연히 동료교사를 만났고, 그는 박조열에게
“인민군을 따라가지 말고 도망가자”고 했다. 그날 밤 둘은 산속으로 숨었고, 나흘쯤 지난 후 마을로 내려가자 국군이 보였다. 그는 국군을 따라 고향 까지 올라가서 모처럼 가족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 다. 그때만 해도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몰랐다.
중공군 참전으로 수세로 바뀌자 수십만 명의 피 난민이 흥남부두로 몰렸다. 박조열도 그중 한명이 었다. 배에 오르기 직전 국군 정훈장교의 입대권 유에 체면상 거절하기가 곤란하여 덜컥 승낙한 것 이 그를 군인으로 살게 하였다. 사격훈련 한번 제 대로 받지 못한 채 전장으로 투입된 그는 M1 소 총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약골이어서 탈진해 쓰 러져 동료들 신세를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부분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농민 출신 동료들은 박조열을 전우애로 감싸주었다.
1953년 휴전 직전 피붙이 하나 없이 생계 자체 가 막막했던 그는 육군에 창설된 부관병과 사관후 보생에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25명의 합 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관학교 교관, 육군 본부 행정·계획 장교 등을 거쳐 9년 이상 군에 머물렀다. 인사적체로 중위에서 더 이상 진급을 못하자 1963년 전역했다.
박조열은 군에서 나오자마자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 연구과정에 지원했다. 연극이 좋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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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우리의작가 박조열과그의작품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는
“민간인으로서 남한 사회와 접촉하는 첫 기회여서 기대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관광지대(판문점 명도소송)’라는 첫 작품을 냈다. 미군 대표를 냉소적으로 그린 부 분이 문제가 되어 그는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1965년 내놓은‘토끼와 포수’가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당시 유일한 연극상이었던 동아연극 상 대상·연기상·희곡상을 휩쓴 것이다. 물론 이 작품도 검열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그 작품에 나 오는 소는 공화당의 상징이니 다른 짐승으로 바꾸 라는 식이었다. 박조열은 화제작을 계속 내놓았다.
1974년 발표한‘가면과 진실’이라는 작품은 당시 로선 드문 토론극 형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락을 비롯, 북한 외무상 허담, 딘 러스크 전 미 국무장관 등이 등장해 각자 가 구상하는 통일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방송대상을 탄‘땅의 아들들(1981년)’
은 방송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좌익 계열의 항 일운동을 다룬 내용이 문제였다. 박조열은“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이 방송을 즐겨들었는데 등장인 물이 실존하는 줄 알고‘표창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것이 알려지자 방송 중단 논의가 쏙 들어 갔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 던 박조열의 희곡은‘조만식은 지금도 살아 있는 가(1976년)’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닥 치는 대로 라디오나 TV 등 방송극을 쓰느라 여력 이 없기도 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그는“내가 구상 하는 내용들은 써봐야 공연될 수 없거나 연극계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앞서면서 움츠러 들었다”고 했다. 남북분단에 집착했던 자신의 작 품에 대한 연민마저 더해지면서 작품 쓰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그는“전쟁 때문에 갈라지게 된 혈육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실상 창작의 원동력이었고 지난 날의 정치상황에선 민감한 주제들을 소극(笑劇)
처럼 우화적으로 그려내야 했다”고 말했다.
1991년 박조열은 재미교포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 소식을 들었다. 누이동생 하나만 남고 모두 비참하게 세상을 떴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북 이산가족에 대해 그리려던 작품도 집필 도중 접었다. 그때 마무리 못한 작품을 완성하는 게 그 에게 남은 꿈이다. 박조열은“‘오장군의 발톱’에 서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 남이든 북이든 통일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었다”며“이념 갈등 때문에 혈육을 잃는 비극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해마다‘앞으로 10년 안에 통일될 것 같 다’고 되뇌곤 하는데 이렇게 10년, 20년이 지났 다”며“살아생전에 통일을 보고 여동생을 만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오장군의 발톱>은 1974년에 씌여진 작품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립적인 동화적 우화극의 형태를 취한다. 동화적 순수와 아름다움, 그리고 익살스런 소극 형식으로 처참하게 인간성 을 파괴하고 세상을 황폐화시키는 전쟁의 비인간 성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막이 올라 밝은 태양과 유유히 떠있는 구름을 배경으로 이 연극의 첫 장면은 시작된다. 오장군 은 가난한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현대문명의 이기 에 전혀 때 묻지 않은, 그래서 답답하고 바보스럽 기까지 한 순박한 농사꾼이다. 평화로운 농촌의 전원 그림이 펼쳐지면서 주인공 오장군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암소인 먹쇠와 감자밭 갈이를 하고 있다. 그때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첫번째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이는 전쟁과 관련 된 오장군의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여준다. 감자밭 위를 지나갔다 하여 우직한 오장군은 비행기를 향 해 욕설을 퍼 붓는다. 욕설을 퍼붓는 사이 점심 찬 거리를 들고 나타난 어머니가 오장군을 나무라며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남자 노인이 밭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향해 욕설을 퍼 부었더니 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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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작가 박조열과그의작품런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려와 그 노인을 마구 두들 겨 패고 갔다는 이야기이다. 오장군은 어머니의 이 이야기를 듣고 의기소침해진다. 이 부분은 오 장군의 바보스러움을 일깨워 주면서도 앞으로 군 대에 끌려갈 오장군의 고난을 보이지 않게 예고하 고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점심 후 낮잠 자는 오장군의 앞에 현역 징집영 장을 들고 나타난 우체부가 두 번째 비행기 소리 와 함께 등장하게 된다. 그 사이 낮잠을 깬 오장군 은 어머니께 전쟁터에 나가 죽는 꿈 이야기를 한 다. 이 꿈 이야기 역시 앞으로 있을 그의 죽음을 또 다시 암시 해준다. 오장군은 자신의 애인인 꽃 분이를 찾아가 입대 소식을 전하고 갑작스레 일어 난 일에 당황한 꽃분이는 그 자리에서 오장군과의 결혼에 들어간다.
한편 훈련소에 들어간 오장군은 각박하고 살벌 한 분위기의 군대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 서 지휘 간부들의 질책을 받게 된다. 입소한지 일 주일 째 되는 날, 오장군은 수류탄 투척 연습장에 서 결정적인 실수로 의무실로 불려가 군의관의 검 진을 받게 된다. 의무실의 간호장교를 꽃분이라 부른 오장군은“씨스터 콤플렉스”라는 어처구니없 는 병명을 판정 받는다.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치게 된 오장군은 내무생활을 제외한 전 과목에서 거의 빵점 처리를 받고 전장에 나가게 된다. 전장에 나 가게 되는 모든 동쪽 나라 군인들은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아 유물로 남겨 두게 되지만 우둔한 오 장군은 발톱까지 깎아 유품으로 남긴다.
한편 오장군의 입대로 홀로 남게된 어머니는 고 향에서 일소 먹쇠와 함께 감자밭을 갈면서 군대 간 아들 걱정만을 한다. 열한번째 편지를 받은 꽃 분이는 어머니에게로 달려와 편지 내용을 읽어 주 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며칠 후, 진짜 징집영장을 들고 우체부가 찾아 온다. 지난번 징집영장이 같은 동네 오부자의 아 들‘오장군’(동명이인)에게 배달되었어야 했음이 밝혀진다. 어머니와 꽃분은 잘못 처리된 일을 따 지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간다. 우체국 측은 자신
들의 집배원을 해고한 것으로만 책임을 회피하며 육군 당국에 찾아가 알아보라고 한다. 육군 당국 에서 조차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 회피만을 할 뿐이다.
제5야전군으로 배속 받은 오장군은 군사령관의 어깨를 주무르는 사병으로 차출된다. 우둔하고 겁 많은 그는 사령관의 어깨 주무르는 일에 만족해한 다. 적에게 거짓정보를 퍼뜨릴 포로가 될 만한 병 사를 찾던 사령관은 어리석고 겁 많은 오장군을 그 적임자로 생각하고 오장군에게 정보 장교로 하 여금 거짓정보를 주입시키게 한다. 전쟁을 도박쯤 으로 생각하는 군사령관에게 군인들은 단순한 소 모품으로 간주될 뿐이다.
사령관은 수색중대장으로 하여금 적의 진지에 오장군을 남겨두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겁 많은 오장군은 사령관에게 애원하다시피 매달리 지만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애처롭게 떠나 가는 오장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사령관은 자 신의 명령에 죄책감을 느끼며 순간 갈등하지만 그 명령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이 때 잘못 전달된 징 집영장으로 오장군이 이 곳 전방까지 차출되었음 을 알리는 전문이 사령관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이미 오장군은 수색중대의 일원으로 적진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수색 지역에 홀로 남게 된 오장군은 겁에 질려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다. 그는 결국 적의 포로가 된다. 적의 사령관은 오장군의 발설 내용을 진짜 로 받아들이고 공격 작전을 중단한다. 그러나 얼 마 후 오장군의 발설이 진짜가 아님을 확인한 적 의 사령관은 오장군의 총살 집행을 명령한다. 총 살 집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 하면서도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오장군의 군 인 정신에 적들은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 죽는 순 간까지도 어머니와 꽃분이, 먹쇠를 부르는 오장군 의 소박한 외침마저도 서쪽 나라 사령관은 위장된 연기로 받아들인다.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오장군의 발톱에서도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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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우리의작가 박조열과그의작품얻는다. 오장군이 죽은 후 전사 통보와 유물인 발 톱을 받게 된 오장군의 어머니와 꽃분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군인들 은 오장군의 죽음을 미화하여 보고한다. 총살형 직전 죽음이 두려워“엄마야... 꽃분아... 먹쇠 야...”하고 오장군은 외쳤건만 군인들은 그의 마지 막 유언을“동쪽나라 만세에”라 했다며 왜곡 보고 한다. 군인들은 오장군의 유품을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이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오장군의 발톱 이 들어 있다.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발톱이 마지 막 유품들 중 하나가 됐으며 군인들은 그 발톱을 영웅적 행위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조작된 군인들 의 보고 행위를 통해 전쟁 및 전체주의 조직 구조 의 허구성이 통렬히 고발되어 진다.
‘오장군’이란 단어에서 읽어볼 수 있는 영웅이 라는 외적 이미지와 실제 극중 인물에서 볼 수 있 는 우둔하고 소박한 내적 이미지, 이 두 이미지가 철저히 부조화 내지 불일치 관계에 있음을 우린 확인하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그 이름을 장군이 라 불러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소 망, 이는 주인공의 이름‘오장군’을 통해 그리고 오부자집의 아들 이름‘오장군’을 통해 확인된다.
오장군의 어리석음과 순진함을 이용하여 그를 희 생양으로 삼은 동쪽나라 사령관,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유해를 전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 자신들의 허구적 전략 행태를 은폐시킨다. 오 장군을 마지막 동쪽 나라의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 업이다. 영웅 의식의 조장, 이는 삶의 진실을 파괴 하는 데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평화를 향한 인간 들의 순결한 염원, 목가적인 사랑을 향한 때 묻지 않는 농촌사람들의 소박한 갈망만이 이 연극에서 진실의 이미지로 나타날 뿐이다. 관객은 오장군의 이미지에서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체험한다. 그 러나 사령관의 명령을 전하는 전령들은 오장군을
영웅으로 억지 칭송한다. 이런 불일치를 통한 이 질감은 관객의 비판 의식을 유발시켜 준다.
‘발톱’이란 단어는 이 작품에서 양면적 의미를 지닌다. 발톱은 인간 신체 부위 중 가장 쓸모없는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주인공 오장군은 그 우 둔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쟁을 치루는 군대의 입장에선 별 효용 가치가 없다. ‘발톱’이란 단어는 별 효용 가치를 지니지 못한 주인공 오장군의 현 존을 상징할 수 있다. ‘발톱’의 외적 이미지는 보 잘것 없음이며 내적으로는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상징하기까지 한다. 그런데‘발톱’은 더 나아가 군 대 구조의 허구성마저 통렬히 일깨워주기까지 한 다. ‘발톱’을 담은 하얀 상자, 이는 오장군 이등병 의 영웅 행적을 입증하는 유해 상자로 둔갑하고 발톱을 담은 상자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 공 오장군을 영웅으로 조작하는 데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발톱이라는 이미지와 관련된 군인들의 이중적 태도, 그 허구성이 또 다른 비판의 대상으 로 떠오른다.
오장군이란 단어, 발톱이라는 단어, 그것이 갖는 외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극 속에서 드러난 이중적 이미지, 인간들의 이중적 태도, 이로 인한 모순과 불일치, 이는 이 연극이 겨냥하고자 하는 변증법 연극의 효능이자 미학적 정수이다.
<오장군의 발톱>은 모순과 역설로 연극미학을 이뤄냈으며 반복되는 대조의 이미지와 아이러니 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동화처럼 묘사되는 이 작품에는 날카로운 애환이 있다. 그것은 관객에게 수시로 아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 수료 현재 연극배우
조 은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