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08
유형별 수가계약제, 꼭 필요한가?
지 영 건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1. 수가 결정의 여러 방법들
수가(酬價)는 ‘갚다’, ‘배상하다’의 의미를 가진 수(酬)와 값의 의미를 가진 가(價)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국어사전에는 ‘보수(報酬)로 주는 대가(代價)’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주로 의료수가 (medical charge, medical fee)에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하에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량와 공급량이 일치하는 가격에서 결정 되며, 수요의 증감 또는 공급의 증감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 그러나 의료에서는 의료서비 스가 국민의 필수 서비스라는 점, 그리고 면허제도라는 공급의 독점성이라는 특수성에 의하 여 제3자의 개입을 통한 가격 결정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되어왔다. 그리고 실제로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가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의료보장에 대하여는 제3자의 개입이 이루어지 고 있다.
그렇다면, 제3자의 개입을 통한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수 있는가? 우선 의료서비스를 제공 함에 따른 투입된 자원의 양, 즉 비용을 인정하고 이를 보상해주는 방법이 있다. 행위별수가 제는 어떠한 환자에게 제공된 의료서비스를 행위의 종류별로 구분하고, 이를 각각 보상해주 는 체계이며, 예산제는 공공재원(조세수입)에 의하여 운영되는 공공의료기관에 적용되는데, 의료기관을 단위로 소요될 비용을 계상하여 의료기관에 보상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요된 비용을 전제로 보상해주는 체계는 단점이 있는데, 행위별수가제의
문제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회계년도 말에 멀쩡한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공사는 흔히 보는 사례이다)
또 다른 의료 가격의 결정 방법은 소요되는 비용여부와는 상관없이 총보상금액을 고정시 키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공급자로 하여금 비용-효과적인 의료서비스의 행위를 선별하 도록 유인한다고 보고있다. 포괄수가제로서의 한 종류인 DRG와 인두제가 이에 속한다. 의 료공급자는 보상금액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선별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료증가가 억제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두 가지 분류 이외에 다른 선택은 계약제이며, 수가계약제라 함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계약에 의하여 정함을 의미한다.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총액계약제는 지역별로 질 병금고와 보험의협회가 총액계약을 통해 총의료비를 결정하는데, 여기에서 유념하여 볼 것 은 보험의협회가 각 의료기관별로 상호 견제 및 감시를 통하여 의료비 배정에 적극 관여하 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보험의협회가 각 의료기관별로 상호 견제 및 감시 시스템이 없다면, 제도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2. 우리나라의 수가계약제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요양급여비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요양급여비용이라 함 은 ‘요양급여에 소요되는 시간·노력 등 업무량, 인력·시설·장비등 자원의 양과 요양급여의 위험도를 고려하여 산정한 요양급여의 가치(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24조)’를 말한다. 요 양급여비용은 행위, 약제, 치료재료 의 세 가지로 구분하되, 약제와 치료재료는 요양기관이 실제 구입한 가격에 근거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요양급여비용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행위의 경우 수천가지로 분류된 각각에 대하여 비용을 정하여야 하는데, 이해집단의 요구 사항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정부는 상대가치점수만을 고시하고, 최종 금액은 공단과 공급가 가 점수당 단가를 통하여 알아서 정하라고 떠넘긴 형국이다. 논리적으로는 이러한 방법이 문제될 것은 없으나, 상대가치점수에 점수당 단가를 곱하여 행위의 요양급여비용을 정하도 록 하는 방법은 몇 가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상대가치점수는 실제 행위의 비용에 근거하여야 한다. 즉, 상대가치점수와 실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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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면 모든 행위에 매년 동일한 점수당 단가를 곱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셋째, 상대가치점수에 점수당 단가를 곱한 금액은 요양급여에 소요된 비용(원가)와 일치 하여야 한다. 물론 비급여 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요양급여비용 전체를 보상해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한다고 하면 아니된다. 이는 단순히 「수가」일 뿐이다.
우선, 첫 번째 가정을 살펴보자, 상대가치점수는 실제 행위의 비용에 근거하는가? 요양급 여비용의 상대가치점수제도가 시작된 2001년에 당시 상대가치점수는 이전의 고시금액에 근 거하여 점수가 고시되었고, 이를 수년간 적용하여 왔다. 최근에 와서 심사평가원이 보건복지 부의 연구용역으로 전면적인 상대가치점수를 산출한바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의 한계 등으 로 진실로 제대로 된 상대가치점수라고 모든 공급자, 공단이 이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같은 검사, 같은 수술이라 할지라도 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의사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의료행위의 비용을 단일 점수로 도출한다는 것이 어쩌면 사실 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이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 에서 요양기관종별 가산율을 검증하지 아니한 채 단일 상대가치점수를 고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둘째, 모든 행위에 소요되는 비용 증가율이 동일한가? 행위별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요양기관별로도 비용구조와 내용이 상이한데, 동일 점수당 단가 인상률을 적용하는 것이 문 제일 수 있다. 물론 작년에 유형별 수가계약제를 통하여 이를 분리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기는 하였다. 그런데 유형별로 수가계약을 함에 있어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여야 한다. 적 어도 유형별로 요양기관의 비용구조와 이들의 비용구조의 비용증가율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 라도 했는지 의문이다.
셋째, 법에서 말하는 행위별 요양급여비용이 행위별 원가와 같은가? 이에 대한 것은 그동 안 공급자와 공단/정부/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였다. 원가의 개념을 행위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비급여를 포함한 요양기관의 의료수익 구조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치과, 한방, 약국의 경우 비급여를 포함한 수익구조가 의과에 비하여 균질하고, 비급여를 포함한 수익구조를 통하여 요양기관 수익구조의 원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의과의 경우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의과의 경우에는 다양한 진료과목과 다양한 규모의 의료기관으로 구성되어 있 으며, 요양급여행위의 원가보존이 되지 아니함은 결국 그 요양급여행위의 기피로 이어져서 필수 의료행위의 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01년도부터 수가계약제를 실시하였으나, 수가계약을 하지 못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 원회에서 점수당 단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정부는 ‘수가계약제 무용론’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가입자대표들로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의 의결 을 거쳐야 하는 공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가의 동결 또는 더 나아가 수가 인하의 주장만 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공급자 역시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므로 협상의 결렬은 당연한 결과이다.
계약이 성립하려면, 협상의 대상이 될 조건이 존재하여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에서 보듯이, 자동차 수입관세 인하를 요구하려면, 쇠고기 수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등 의 뭔가 상호 요구 조건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요양기관지정 반납이나 건강보험과의 경쟁하 는 다른 보험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점수당 단가 딸랑 하나만 놓고, ‘몇 점으로 할까’
의 계약이 체결되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2006년도에는 2007년도 계약부터는 유형별 수가계약제를 전제조건으로 수가계약제 도입 이후 최고의 인상률인 3.58%로 계약에 「성공」하였다. 정부의 입장에서 수가계약제의 무 용론을 불식시키는데 명분이 있었고, 공단 역시 수가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는데 힘을 얻었으며, 직능 단체들 역시 일단 어느 정도의 수가인상을 쟁취하였다는 실익에 만족하였다.
이들 모두 유형별 계약의 의미나 본질적인 필요성 여부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다.
유형을 어떻게 구분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직능별(의과, 치과, 한방, 약국 등) 로 할지, 병원규모별(전문종합, 종합, 병원)로 할지, 병원 기능별(일반병원, 요양병원, 정신병 원, 전문병원)로 할지, 진료과별로 구분할지 등은 매우 중요한 국가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협회 중심의 직능단체에 병협을 추가하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2007년도 계약의 결과로만 놓고 보면, 정부와 공단은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다. 앞서 언 급하였듯이 정부는 법에 명시된 수가계약이 형식적으로나마 집행되었다는 점, 공단은 수가 계약의 주체로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점 등은 이미 예견된 성과였다.
공급자 단체들별로 살펴 보면, 치과, 한방의 경우 어차피 비급여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급여의 점수당 단가에 상대적으로 연연해 하지 않아도 입장에서 높은 점수로 계약도 하는 실익도 챙기고, 정부 정책에 협조하였다는 명분도 챙겼다. 약사(약국)의 경우 수가 인하의 필요성도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제스츄어를 충분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 니라 실익도 나름대로 챙겼다. 간호사(조산소)의 경우 계약의 독립된 주체로서 등장함으로써
「간호사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공단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이들과의 계약은 전체 보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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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가계약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형별 수가계약제의 향후 방향을 제언함에 있어서 3가지 쟁점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첫째, 수가계약제가 꼭 필요한가?
둘째, 유형별 수가계약제만이 수가계약제의 바람직한 방안인가?
셋째, 유형별 수가계약제를 해야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해야 하는가?
앞에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의 수가계약제는 ‘계약’이라는 법률상의 용어를 적용하기 어 려울 정도로 일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협상의 조건이 되는 여러 요인을 배제한 채 정부(공단)의 일방적인 요구를 공급자들에게 강요하는 형국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수가를 정부가 고시하는 편이 훨씬 낳을 듯싶다.
미국 메디케어의 수가 결정구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가치점수와 점수당 단가로 구분되어 있다. 다만 점수당 단가를 정함에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계약으로 하는 것이 아니 고, Sustainable Growth Rate system(SGR)이라는 환산지수(점수당 단가) 결정 모형을 설정하 고 있다. SGR은 의료비 상승 요인의 모형을 구성하여 의료비 증가 상한선을 설정한 후, 적 정 환산지수를 결정하되 초과 의료비 증가에 대하여 이를 환산지수에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수당 단가 결정모형은 이론적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가치점수 제도를 도입할 때 이러한 합리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통제의 수단에 초점을 둔 정부의 입장과 예측불가능한 방법론 적용에 대한 공급자의 불 안으로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조차 하지 못하였다.
독일의 경우 총액계약제이면서도, 보험의협회가 개별 의료기관에 대한 배분기능과 통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계약제는 각 직능단체가 이러한 배분기능이나 통제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총액계 약제를 도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정부는 독일의 제도에서 ‘계약’이라는 용어를 상대가치제도에 차용함으로써 ‘계약을 통한 의료비 상승 억제’를 기대하였다고 추측 되는데, 최근의 의료비 증가 추세를 보면 정부가 이러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들 국가의 경험과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수가계약제는 위 2가지를 혼합한 형태, 즉 적정 수가인상에 대한 방법론을 법률에 담고, 동시에 공급자에게 기대하는 여러 정책 사안들(원가절감 노력, 의료 공급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제도 등)이 수가인상안을 가감하는 계약의 조건으로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유형별 수가계약제만이 수가계약제의 바람직한 방안인가에 있어서 주관적 입장에서 반드
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 제시가 없는 상황에서의 유형별 수가계약제 적용은 ‘유형별로 상대 가치점수의 수준이 불형평하다’는 정부의 책임을 공급자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조산원의 행위가 몇 개 안되고 의료비의 비중이 크기 않은 상황에서, 조산소의 수가를 30%
인상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면, 상대가치점수를 정책적으로 30% 인상하면 될 일이지, 점수당 단가를 30% 인상하여 ‘계약하였다’는 성취의 사례로 꼽을 일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유형별 수가수준의 차이가 유형별 수가계약제의 당위성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본인은 이것은 상대 가치점수의 문제이지 점수당 단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유형별 수가계약제 필요성(비용상승 구조의 상이성)의 본질적인 검토 없이, 총재원을 정 해놓고 어느 직능 단체가 먼저 순응하느냐에 따라 「베풀듯이」점수를 할당해 주는 것은, 한정된 의료비를 필요한 곳에 배분할 의무를 가진 국민의 대리인(agent)인 공단의 역할이라 고 볼 수 없다.
상대가치점수를 유형별로 재조정할 수 없어서, 유형별 수가계약제가 불가피 하다면 어떤 형태로 유형별 수가계약제를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유형의 세분화를 제시하 고 있다. 이들은 의과의 전문과목 종별로, 의료기관 규모별로, 약국의 위치별로 경영여건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치과, 한방, 약국, 조산원은 수가 항목이 분리되어 상대가치점수가 고시되어 있고, 의료기관 규모별로 요양기관종별 가산율이 책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형별 점수당 단가를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어차피 정부(공단)이 정한 점수에 서명을 강요당하는 계약제에서 계약서 여러 장을 만 들 필요가 있겠는가? 미리 정한 유형별 점수가 있다면, 그 유형별로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하 거나 요양기관종별 가산율을 정하여 고시하고, 대표를 자청하는 한 분으로부터 서명 받으면 행정적으로 간단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