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론 5차시:
고전소설론
○ 18C 후반 : 호질(熱河日記, 1780) 허생전(열하일기, 1780), 열녀함양박씨전(1793), 임장군전, 장풍운전, 최현전, 소대성전, 장박전, 소운전, 최충전, 사씨전, 옥교리전, 이백경전, 설인귀전(상서기문(象胥記聞), 1794), 심청전, 유씨삼대록, 옥원재합기연, 명행록, 비씨명감, 신옥기린, 완월회맹연, 십봉기연, 유효공선행록, 이씨세대록, 현봉쌍의록, 벽허담관제언록, 옥 환기봉, 현씨양웅쌍린기, 명주기봉, 하각노별록, 임씨삼대록, 쌍열옥소봉, 취미삼선록, 임하정 문록(<옥원재합기연(玉鴛再合奇緣)>, 1786-1796 필사)
봉성문여(鳳城文餘)(이옥(李鈺), 1760-1813), “어떤 사람이 언문소설을 가지고 와서 나에 게 긴 밤을 지새우는 데 도움이 되게 한다기에 그것을 보니 바로 인간(印刊)한 책인데 소대 성전이었다. 이 책은 서울의 담배가게에서 부채를 치며 낭독하는 것들이 아닌가.”(人有以諺稗 來 爲余消長夜者 視之乃印本 而曰蘇大成傳 此其京師烟肆中 拍扇而朗讀者歟)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趙秀三), 1762-1849), 「전기수(傳奇叟)」: “수는 동문 밖에 살 았다. 언과패설을 구송하는데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 등 전기이다. 매월 초 첫째 날 은 첫째 다리 밑에 앉고, 둘째 날은 둘째 다리 밑에 앉고, 셋째 날은 배오개에 앉고, 넷째 날 은 교동 입구에 앉고, 다섯째 날은 대사동 입구에 앉고, 여섯째 날은 종루 앞에 앉는다. 위로 올라가 7일째부터는 그 길을 따라서 내려온다. 내려왔다 올라가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그 달을 마치면 다음달도 또한 그렇게 한다.”(叟居東門外 口誦諺課稗說 如淑香 蘇大成 沈淸 薛 仁貴 等 傳奇也 月初一日坐第一橋下 二日坐第二橋下 三日坐梨峴 四日坐校洞口 五日坐大寺 洞口 六日坐鍾樓前 溯上旣自七日 沿而下 下而上 上而又下 終其月也 改月亦如之)
아정유고(雅亭遺稿)(이덕무(李德懋), 1741-1793), “옛날에 어떤 남자가 종로 담배가게에 서 어떤 사람이 패사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영웅이 가장 실의한 대목에 이르러서,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뿜으며 담배 써는 칼로 패사 읽는 사람을 찔러 죽였다.”(古有一 男子 鍾街煙肆 聽人讀稗史 至英雄最失意處 忽裂眦噴沫 提截煙刀 擊讀史人立斃之) 정종대 왕실록31권, 정조14년(1790)에도 같은 기록.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기록에는 “김자 점이 장군에게 없는 죄를 씌워 죽이는 데 이르러 분기가 솟아올라 미친 듯이……”(至金自點 構殺將軍 氣憤憤衝起如狂……)로 되어 있음.
파수편(破睡篇)(편자 미상), “이업복은 겸인의 부류다. 아이 적부터 언문 소설책들을 맵시 있게 읽어서 그 소리가 노래하듯이 원망하듯이 웃는 듯이 슬픈 듯이, 가다가는 웅장하여 영 걸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가다가는 곱고 살살 녹아서 예쁜 계집의 자태를 짓기도 하였 는데, 대개 그 소설 내용에 따라 백태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자로 잘사는 사람들이 그를 서로 불러다 소설을 읽히곤 했다. 어떤 서리 부부가 그의 재주에 반해서 업복이를 먹여 살리며 일가처럼 터놓고 지냈다.”(李業福 傔輩也 自童稚時 善讀諺書稗官 其聲 或如歌 或如 怨 或如笑 或如哀 或豪逸而作傑士狀 或婉媚而做美娥態 盖隨書之境 而各逞其態也 一時豪富 之流 皆招而聞之 有一胥吏夫婦 酷貪此技 哺養業福 遇如親黨 許以通家)
영웅소설의 유형 및 편년
• 제1기(모색기) : 17세기 중·말엽(1687년 구운몽 창작, 김집(金集, 1574-1656) 수택본(手澤 本) 전기소설집에 최문헌전 수록). 금방울전, 양풍전, 숙향전, 소대성전, 구운몽.
제2기(확립기) : 17세기 말 18세기 초(1649년 송시열의 기축봉사를 기점으로 이원론적 주 기론, 북벌론이 지도이념으로 채택됨, 18세기 초에 직업적 낭독자·세책가·방각본 등의 출현이 확인됨). 조웅전, 유충렬전, 현수문전, 황운전, 이대봉전.
제3기(해체기) : 18세기 중엽 이후(사상도고들의 시전상인에 대한 승리, 일원론적 주기론과 실학의 등장, 1794년 상서기문의 기록). 장풍운전, 장경전.
• 소대성전 유형 : 장풍운전, 금방울전, 현수문전. 주인공 수난이 가족원 박해로 갈등 야기, 개인적 박해자와 국가의 적대세력이 분리. 외적을 물리치는 공로. 복수는 뉘우침으로써 간접 적으로 성취. 18세기 초~중엽.
유충렬전 유형: 조웅전, 황운전. 정치적 적대세력의 탄압으로 주인공 수난. 적대자는 왕권 의 도전자가 되어 주인공과 대결. 주인공의 몰락과 수난 및 입공과 득세는 반대파의 득세·몰 락과 병행. 정파의 싸움. 18세기 말~19세기 초엽.
장백전 유형 : 유문성전. 주인공이 창업하는 새 임금을 도와서 구왕권을 타도하는 활약. 능 력면에서 주원장을 능가하나 천명이 그에게 있음을 알고 양보한다는 점 강조. 역성혁명 의식.
19세기 중엽.
→작자: 몰락 양반층(당쟁에서 패배하여 서민화된 남인 출신이 생계를 위해 창작)
• 통속성 : 감상적 문체, 파노라마적 서술구조. 주인공인 영웅과의 절대적 동일시. 상투적이 고 공식적인 구성. 신비한 체험이 사건전개의 주요한 계기로 반복 주입. 비현실성·반시대성.
체제유지적·보수적. 민중정서·의식의 왜곡된 양상의 한 측면. 긍정적인 면으로서의 민중적 낙 관주의.
*예문-<유충렬전>
이때 [정]한담이 [유]원수를 치우고 정병만 가리어 급히 도성에 드니 성중에 군사 없고 천자 는 원수의 힘만 믿고 잠을 깊이 들었다가 뜻밖에 천병만마 성문을 깨치고 궐내에 들어가 함성 하는 말이, “이봐 명제야, 어디로 갈다? 팔랑개비라 비상천(飛上天)하며 두더지라 땅으로 들 다? 네 놈의 옥새 앗으려고 하더니, 이제는 어디로 갈다? 바삐 나와 항복하라.” 하는 소리 궁 궐이 무너지며 혼백이 상천하는지라. 명제 넋을 잃고 용상에 떨어져 옥새를 품에 품고 말 한 필 잡아타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북문으로 도망하여 변수 가에 다다르니 한담이 궐내에 달려들 어 천자를 찾은즉 간 데 없고 황후, 태후, 태자 도망하여 나오거늘 호령하고 달려들어 황후를 잡아 궐문에 나와 호왕에게 맡기고 북문에 나서니, 이때 천자 변수 가에 도망커늘 한담이 대 희하여 천둥 같은 소리 하고 순식간에 달려들어 구척장검 번듯 하며 천자의 앉은 말이 백사장 에 거꾸러지거늘, 천자를 잡아내어 마하(馬下)에 엎지르고 서리 같은 칼로 통천관(通天冠)을 깨 던지며 호통하는 말이, “이봐 들어라. 하늘이 날 같은 영웅을 내실 제는 남경에 천자 시킴 이라. 네 어찌 천자를 바랄쏘냐. 네 한 놈 잡으려고 십 년을 공부하여 변화무궁하니 네 어찌 순종치 아니하고 조그마한 충렬을 얻어 내 군사를 침노하니 너의 죄를 논지컨대 이제 바삐 죽 일 것이로되, 옥새를 드리고 항서를 써 올리면 죽이지 아니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네 놈의
노모, 처자를 한 칼에 죽이리라.” 천자 하릴없어 하는 말이 “항서를 쓰자 한들 지필(紙筆)이 없다.” 하시니, 한담이 분노하여 창검을 번득이며 왈, “용포(龍袍)를 떼고 손가락을 깨여 항서 를 쓰지 못할까.” 천자 용포를 떼고 손가락을 깨물려 하니 차마 못할 즈음에 황천인들 무심하 리. 이때 원수 금산성에 적진 십만 병을 한 칼에 무찌르고 바로 호산대에 득달하여 적진 정병 을 씨 없이 함몰코자 행하더니, 뜻밖에 월색이 희미하며 난데없는 빗방울이 원수 면상(面上)에 내려지거늘 원수 괴이하여 말을 잠깐 머무르고 천기를 살펴보니 도성에 살기 가득하고 천자의 자미성이 떨어져 변수 가에 비췄거늘, 대경하여 발을 구르며 왈, “이게 웬 변이냐.” 갑주 창검 갖추고 천사마상 바삐 올라 산호편을 높이 들어 말석을 채질하며 말더러 정설(叮說) 왈, “천사 마야, 너의 용맹 두었다가 이런 때에 아니 쓰고 어디 쓰리요. 지금 천자 도적에게 잡히어 명 재경각이라, 순식간에 득달하여 천자를 구원하라.” 천사마는 본디 천상에서 타고 온 비룡(飛 龍)이라. 채질을 아니 하고 정설만 하되 제 가는 대로 두어도 순식간에 몇 천 리를 갈 줄 모 르는데 하물며 제 임자 급한 말로 정설하고 산호채로 채질하니 어찌 아니 급히 갈까. 눈 한 번 깜짝이며 황성 밖에 얼른 지내 변수 가에 다다르니, 이때 천자는 백사장에 엎어지고 한담 은 칼을 들고 천자를 치려하거늘, 원수 이때를 당함에 평생에 있는 기력과 일생에 지른 호통 을 진력하여 다 지르니, 천사마도 평생 용맹 이때에 다 부리니, 변화 좋은 장성검도 삼십삼천 어린 조화 이때에 다 부리고, 원수 닫는 앞에 귀신인들 아니 울며 강산도 무너지고 하해도 뒤 노는 듯 혼백인들 아니 울리요. 혼신(渾身)이 불빛 되어 벽력같이 소리하여 왈, “이놈 정한담 아, 우리 천자 해치 말고 나의 칼을 네 받아라.” 하는 소리에 나는 짐승도 떨어지고 강신(江 神) 하백(河伯) 넋을 잃어 용납지 못하거든 정한담의 혼백인들 아니 가며 간담이 성할쏘냐. 호 통 소리 지내는 곳에 두 눈이 캄캄하고 두 귀가 먹먹하여 탔던 말 둘러 타고 도망하여 가려다 가 형산마 거꾸러져 백사장에 떨어지니 창검을 갈라들고 원수를 겨누거늘 구만 청천 구름 속 에 번개 칼이 언뜻 하며 한담의 두 팔목이 마하에 내려지며 장성검 언뜻 하며 한담의 장창대 검 부서지니 원수 달려들어 한담의 목을 산 채로 잡아들고 말에서 내려 천자 앞에 복지하니, 이때 천자 백사장에 엎어져서 반생반사(半生半死) 기절하여 누웠거늘, 원수 붙잡아 앉히고 정 신을 진정한 후에 복지 주 왈, “소장이 도적을 함몰하고 한담을 사로잡아 말에 달고 왔나이 다.” 천자 황망 중에 원수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아 보니, 원수 복지하였거늘, 달려들어 목을 안고, “네가 일정 충렬이냐? 정한담은 어디 가고 네가 어찌 예 왔느냐? 나는 죽게 되었 더니 네가 와서 살리도다.”
○ 19C 초반 : 종옥전(鍾玉傳, 목태림(睦台林, 1782-1840), 1803), 이옥(李鈺, 1760-1813) 의 전계 소설, 일락정기(一樂亭記, 이이순(李頤淳, 1754-1832), 1809), 삼한습유(三韓拾遺, 김소행(金紹行, 1765-1859), 1814), 유씨삼대록, 미소명행, 조씨삼대록, 충효명감록, 옥원재 합, 임화정연, 구래공충렬기, 곽장양문록, 화산선계록, 명행정의록, 옥린몽, 벽허담, 완월회맹, 명주보월빙, 숙향전, 풍운전(<제일기언(第一奇諺)>(1835-1848 사이에 번역) 서문, 홍희복(洪 羲福, 1794-1859))
○ 19C 중반 : 옥련몽(玉蓮夢, 남영로(南永魯, 1810-1857), 1832-1842. 작가 자신이 한문 본 옥련몽을 국역하고, 한문본 옥루몽(玉樓夢)으로 개작), 옥수기(玉樹記, 심능숙(沈能淑, 1782-1840))
○ 19C 후반 : 신재효(申在孝, 1812-1884) 개작 판소리사설, 육미당기(六美堂記, 서유영(徐
有英, 1801-1874경), 1863)
판소리계소설의 작품 세계
현실주의적 주제 :
• 춘향, 심청과 심봉사, 흥부, 토끼 등의 고난상 : 조선후기 서민계층의 현실적 기반이 갖는 취약성. 서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물건에 대한 관심과 욕망.
•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 항거 : 변학도에 대한 춘향, 용왕에 대한 토끼의 항거 등. 조선후기 지배층의 무능, 부패, 착취에 대한 고발과 저항.
• 인간성 옹호 :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심봉사에 대한 심청의 효도, 놀부에 대한 흥부의 용 서와 의리 등. 인간의 본성과 예의에 대한 긍정적 시각. 욕망의 실현을 위해 관념과 허위의식 을 과감히 무너뜨리는 경향. 정절, 효도, 우애 등의 전통적인 덕목에 대한 재해석.
환상과 이상주의 :
• 민중적 낙관주의의 표현 : 제비의 보은박·보수박, 심청의 환생 등 환상적인 수단을 통한 위 기 극복의 양상. 현실 도피 혹은 현실 대응의 한계로서 지적될 여지가 있지만,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려는 민중적 낙관주의의 표출로 볼 수 있음.
• 극적 전환이 주는 미적 쾌감 : 암행어사 출도, 맹인잔치에서의 눈뜸, 토끼의 귀환 등 고난 을 행복으로 바꾸는 양상. 체제 변혁의 의지가 환상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표출됨. 판소리계소 설이 갖는 흥미의 한 중요한 요인.
표현과 구조 :
• 일상구어의 사용 : 가사체를 통한 리듬감 형성. 속담, 비속어, 유머 등의 다채로운 사용.
풍자적 표현. 한문어투를 섞어 사용하여 구어와 문어 사이의 묘한 긴장감 형성.
• 긴장과 이완, 비장과 골계의 교체 : 판소리 사설이 애초에 지니고 있던 창-아니리의 교체 에 의한 사설 구성을 판소리계 소설도 어느 정도 담고 있음. 이러한 사설은 긴장과 이완의 미적 효과를 가져 옴. 심청의 고난-심봉사·뺑덕어미의 농짓거리, 흥부 가족의 고난-놀부의 심 술 등 미의식의 측면에서 비장과 골계가 섞여 있음. 울음을 웃음으로 이겨내는 민중적 경험 의 소산.
• 갈등의 해결 : 어느 작품이나 행복한 결말. 민중적 낙관주의. 인간의 선한 본성, 착한 행동 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의 반영.
• 어긋남(모순)의 미학 : 이야기의 합리적이고 일관된 전개에서 일탈한 예들. 부분의 독자성 또는 장면의 극대화 등 판소리 사설의 형성 과정상 나타난 문제.
*예문-<춘향전>(열녀춘향수절가)
겨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아(內衙)에 들어가, 사람이 무론(毋論) 상중하(上中下)하고 모친께 는 허물이 적은지라, 춘향의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으로 나오는데, 설움은 기가 막히나 노상에서 울 수 없어 참고 나오는데, 속에서 두부장 끓듯 하는지라. 춘향 문전 당도하니 통째, 건더기째, 보(褓)째 왈칵 쏟아져 놓으니, “어푸어푸 어허.” 춘향이 깜짝 놀라 왈칵 뛰어 내달아, “애고 이게 웬일이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노상에 오시다가 무슨 분함 당해 계쇼.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거니 중복(重服)을 입어 계쇼. 점잖으
신 도련님이 이것이 웬일이오.” 춘향이 도련님 목을 담쑥 안고 치맛자락을 걷어잡고 옥안(玉 顔)에 흐르는 눈물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도련님 기가 막혀 울음 이란 게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울던 것이었다. 춘향이 화를 내어, “여보 도련님 아굴지 보 기 싫소. 그만 울고 내력 말이나 하오.” “사또께오셔 동부승지(同副承旨)하여 계시단다.” 춘향 이 좋아하여, “댁의 경사요. 그래서 그러면 왜 운단 말이오.” “너를 버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사실 줄로 알았겠소. 나와 어찌 함께 가기를 바라리오.
도련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는 예서 팔 것 팔고 추후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오. 내 말대로 하였으면 군색잖고 좋을 것이요. 내가 올라가더라도 도련님 큰댁으로 가서 살 수 없을 것이니, 큰댁 가까이 조그마한 집 방이나 두엇 되면 족하오니 염탐하여 사 두소서. 우리 식구 가더라도 공밥 먹지 아니할 터이니, 그렁저렁 지내다가 도련님 날만 믿고 장가 아니 갈 수 있 소. 부귀 영총(榮寵) 재상가에 요조숙녀 가리어서 혼정신성(昏定晨省) 할지라도 아주 잊든 마 옵소서. 도련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 외방(外方) 가면 실내(室內) 마마 치행할 제 마마로 내세 우면 무슨 말이 되오리까. 그리 알아 조처하오.”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렇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 여쭙고 대부인 전(前) 여짜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의 자식이 부형(父兄) 따 라 하향(遐鄕) 왔다 화방작첩(花房作妾)하여 데려간단 말이 전정(前程)에도 괴이하고 조정에 들어 벼슬도 못한다 하더구나. 불가불 이별이 될 밖에 수 없다.” 춘향이 이 말 듣더니 고닥기 발연(勃然) 변색(變色)이 되며, 요두전목(搖頭轉目)에 붉으락푸르락 눈을 간잔지런하게 뜨고 눈 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발심 발심하며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온몸을 수숫잎 틀 듯하며, 매 꿩 차는 듯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원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 르륵 찢어 버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며 도련님 앞에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예문-<박타령>
이때에 주인 흥보 제비를 보내고서, 일념(一念)으로 못 잊어서 왕왕 생각타가 삼삼일(三三 日)이 돌아오니, 그 제비가 다시 올까 품 팔러도 아니 가고 앉았더니, 반갑다 저 제비 처마 안 에 날아들 제, 봉통이진 두 다리가 옛 모습이 완연쿠나. “아지주지” 고운 소리로 그린 회포 말하는 듯, 흥보가 좋아라고 무한히 정설(情說)한다. “너 왔느냐, 너 왔느냐, 내 제비 너 왔느 냐. 강남(江南)은 가려지(佳麗地)라 어찌하여 내버리고 누추한 이내 집을 허위허위 찾아왔나.
인심은 교사(巧詐)하여 한 번 가면 잊건마는 너는 어찌 신(信)이 있어 옛 주인을 찾아왔나.”
한참 이리 반길 적에 제비 입에 물었던 것을 흥보 앞에 떨어치니 흥보가 집어 들고 제 아내를 급히 불러 “여보소, 아기 어멈, 어서 와서 이것 보소. 제비가 물어 왔네.” “애겨, 무슨 글자 있네.” “이리 주소, 어디 보세. 갚을 보(報) 은혜 은(恩) 박 포(匏), 보은포, 보은포. 보은은 충 청도 땅 옥천 옆에, 그러니까 이 제비가 올 적에 공주로 노성으로 은진으로 온 것이 아니라, 보은으로 옥천으로 연산으로 왔나. 여러 고을 지나오면 어찌 똑 보은 박씨를 무엇 하러 물어 왔나. 보은 대추 좋다 하되 박 좋단 말 못 들었지. 그러나 저러나 강남 것이든지 보은 것이든 지, 저 먹을 것 아닌 것을 물어 오기 괴이하고, 내 앞에다 떨치기 더욱 괴이하니 아무튼 심어 보세.” …… 흥보가 톱질 소리를 메긴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성인이 풍 류 지을 제, 금석사죽(金石絲竹) 포토혁목(匏土革木) 이 박이 아니며는 팔음(八音)이 어찌 되 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아성(亞聖) 안자(顔子) 안빈낙도(安貧樂道) 이 박이 아니며는 일표 음(一瓢飮)을 어찌 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우리도 이 박 타서 쌀도 일고 물도 떠서 가 지가지 잘 써 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슬근 탁 타 놓니 청의(靑衣) 입은 동자(童子)
한 쌍이 박통 밖에 썩 나서며, “이것이 흥보씨 댁이오?” 흥보가 깜짝 놀라 뒤꼭지를 탁탁 치 며, “이런 재변(災變)을 보았나. 내 이름을 어찌 알고, 무엇 하자 와 묻는지. 허참, 이 노릇이 도망케 되었나. 죽자 원, 내가 흥보다. 이 사이 풀밭에 누워도 진드기 한 마리 붙을 데 없는 사람을 찾아 무엇 하겠느냐.” 저 동자가 소매에서 대모(玳瑁) 쟁반을 내놓는데 병과 접시 종이 봉지 드문드문 놓였구나. 눈 위에 높이 들어 흥보 앞에 드리면서 절하고 여짜오되, “삼신산(三 神山) 여러 선관(仙官)이 모여 앉아 공론하되, 흥보 씨의 지극 덕화(德化) 금수(禽獸)까지 미쳤 으니 그저 있지 못하리라. 수종(數種) 약을 보냈으니 백옥병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 혼을 불러 돌아오는 환혼주(還魂珠), 밀화 접시에 놓은 것은 소경이 먹으면 눈이 밝는 개안주(開眼珠), 호박 접시에 담은 것은 벙어리가 먹으면 말 잘 하는 개언초(開言草), 산호 접시에 담은 것은 귀먹은 이가 먹으면 귀 열리는 별이용(瞥耳茸), 설화지에 묶은 것은 아니 죽는 불사약, 금화지 로 묶은 것은 아니 늙는 불로초, 가지가지 있삽는데 약 이름과 쓰는 데를 그 옆에 썼사오니 그리 알아 쓰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