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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仁의 두 短篇小說에 대한 精神力動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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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s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0, No. 2, page 276~299,1 9 9 9

金東仁의 두 短篇小說에 대한 精神力動的 考察:

‘狂炎 소나타’,‘狂畵師’

*

河 智 賢

**

·趙 斗 英

**

A Psychodynamic Study on the Two Short Stories of Kim Dong-In::‘Flamboyant Sonata’, ‘Crazy Painter’*

Jee-Hyun Ha, M.D.,** Doo-Young Cho, M.D.**

序 論

金東仁(1900~1951)은 [배따라기], [광화사], [광염 소나타], [젊은 그들], [감자]

등 많은 단편, 장편소설을 써 한국 근현대 문학에서 현대적인 단편소설을 확립하였으 며, 최초의 탐미주의자, 자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근대 소설문학 定着에 주요한 역 할을 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윤명구 1990;김윤식 1987).

김동인이 1929년 1월 중외일보에 발표한‘광염 소나타’ 와 1935년 12월 잡지‘野 談’ 의 창간호에 발표한‘광화사’ 는 그의 탐미주의 계열 단편소설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동안 문학계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김춘미 1985;장백일 1989;윤명구 1990;

이문구 1995), 기존의 연구결과중 작품의 심리적 이해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김경희(1982)는‘광화사’ 를 深層心理的(Teifenpsychologie)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 소설이 솔거의 무의식적 근친상간욕구와 이에 대한 초자아의 강한 질책, 죄악감에 의한 발작으로 소경처녀를 살해하는 결말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공이 그린 미녀도는 화공의 무의식속의 어머니상이며, 마지막에 화공이 돌벼게를 베고 자다

*본 논문은 1999년 10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되었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Department of Psychiatr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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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영원히 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춘미(1985)는 일본의 탐미주의 계열 소설가인 谷崎潤一郞의‘刺靑’ (1910)이라 는 작품과 광화사를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그는‘광염소나타’ 와‘광화사’ 의 공통점을 언급하며 작가가 소설이란 허구이며 공상의 세계임을 강조했고, 사회에서 소 외되고 핍박받아 존재의 정당성이 용납되지 못한 비극적 삶을 사는 오이디푸스 콤플 렉스의 소유자인 소설 속의 두 명의 천재 예술가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했다. 즉, 작가 는 두 소설을 통해 천재 예술가는 어떤 행동을 하던 용납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 며,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장백일(1989)은‘광염 소나타’ 의 주인공 백성수의 행위를 Erich Fromm을 인용하 며‘죽음을 사랑한 사람(necrophilia)’ 이라 말하고 이는 오스카 와일드류의 광폭적이 고 악마적 탐미의 형상화인데 여기에는 작가의 공허와 고독이 투영되어 있다고 했다.

이렇게 기존의 문학계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김동인의 두 소설에서 문학적, 심층심리 적 공통점의 존재와 작가의 예술지상주의적 관점이 반영되 있다는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결과는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보면 정신분석이론과 정신분 석비평에 대한 적용이 단편적이며 인상주의적 경향이 있고, 소설전체의 맥락이나 각 등장인물의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본 것이라기보다 주인공의 행태의 분석에 집중하고 있어서 작품전체에 대한 정신분석적 비평이라 보기 어렵다. 또한 작가의 창작심리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나 연구도 없는 실정이다.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김동인의 전반적인 창작세계에 대한 정신분석비평적 접근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이규동 1993;

하지현 등 1996). 이에 저자들은 김동인의 단편소설중‘광염 소나타(1929)’ 와‘광 화사(1935)’ 두 작품을 선택해 공통점 및 특징, 작가의 창작심리를 정신분석비평의 방 법론으로 고찰해보고자한다.

硏究對象및 方法

본 연구에서 저자들은 한국의 소설가 金東仁(1900-1951)의 단편소설‘狂炎 소나 타(1929)’ 과‘狂畵師(1935)’ 를 연구대상으로 했다.

김동인은 생전에 [文壇 三十年의 자취], [女人], [亡國日記], [韓國近代小說考], [3.1 에서 8.15] 및 방대한 양의 소설 및 雜文을 자신의 개인사를 소재로 썼다. 이들 내용 은 그가 작품화한 것이라기 보다 事實 그대로를 기록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 많 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비록 自敍傳이나 공인된 傳記는 없으나 전기적 고찰을 함에 있어 일차자료로서 상대적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다(김춘미 1985).

작가의 개인력은 기존에 출간된 김동인에 대한 연구서 및 東仁全集(弘宇出版社,

1967)을 개괄하여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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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정신분석적 연구를 방법론적으로 보면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Baudry 1992). 첫째, 작품자체에 완결된 자료를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것의 분석만 으로 충분하다는 견해가 있어 사례분석을 하듯이 작품의 등장인물의 내적심리, 줄거리 의 분석을 강조하는것(Werman 1979). 둘째, 형식과 내용을 갖춘 하나의 미학적 구 조를 탐구하는것. 셋째, 작품은 작가의 그 시기의 정신활동의 한 사건(event)일 뿐이 므로 예술가의 인생의 재구축(reconstruction)이 더 진실된 정신분석적 연구라 말하 며 작가의 체험과 개성이 어떻게 작품내에 구현되는지 그 창작심리에 주목하는 견해 (Weissman 1978). 네번째로, 수용자인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하는데 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의 무의식에 오랫동안 억압되어온 의미있는 긴장감이 해방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Lerner 1987).

본 논문에서는 위의 예술작품의 정신분석적 연구의 네 가지 방법론중 두 가지 방법 론을 주로 사용해 먼저 각 작품의 등장인물의 내면심리, 줄거리의 특징과 두 작품사이 의 유사점 등을 고찰한 후, 작가의 전기적 연구에 기반하여 각 작품을 쓰던 때의 창작 심리 및 작가의 정신세계가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정신역동적 고찰을 하겠다.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정신역동적이라 한 이유는 방법론적으로 애매하고 모 호한 면은 있으나 기존의 고전정신분석학적 해석뿐만 아니라 대상관계이론, 자아심리 학, 자기심리학 등 현대정신분석학의 여러 이론을 취사선택하여 자의로 수용하는 것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더 깊고 넓은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作家 金東仁의 個人略史

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 平壤市 下水口理 6번지 全州 金氏 大潤의 삼남 일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대윤의 둘째부인 옥씨의 첫째아들로 태어났으며, 17세 연 상의 이복형 동원이 있었던 김동인은 평양성내 400여평의 대저택에서 자라났다. 어렸 을 때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매우 발버둥을 쳤고, 아무도 말리지 못했으며, 곡식을 흐 트리는 것을 제지당하여 울자 부친이 제지한 하인을 꾸짖기도 하였다는 일화가 있는 등 김동인을 유아독존적으로 자라게 하였다고 한다(정한숙 1965).

1912년 숭덕소학교를 졸업한 후 형이 교장으로 있던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김 동인은 아버지의“나쁜 가정의 아이들과 사귀지 말라” ,“너는 남보다 뛰어나다” 는 훈 육아래 집밖에선 친구가 거의 없었고, 유일한 친우였던 주요한이 목사이던 아버지를 따 라 소학교 졸업후 유학을 가자 성경암송시간에 성경을 펴놓고 시험을 보다가 꾸중을 듣자 그 길로 학교를 나와서 자퇴를 하였고, 아버지도 그것을 허락하였다(김동인 1929).

주요한이 유학을 간 것을 따라 1914년 변호사나 의사가 될 요량으로 단신으로 일본

으로 유학을 갔다. 동경에 가서 주요한으로부터 문학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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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듣고 주요한이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한 김동인은 주요한이 다니던 학교가 아닌 동경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15년 동경학원이 문을 닫고 명치학원으 로 전학하게 되어 결국 주요한이 3학년일 때 2학년으로 다니게 됐다.

1917년 부친이 사망하여 귀국해 당시 돈 10만여원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듬 해 4월 이복형의 중매로 동갑나이의 남성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김혜인과 결혼을 한후 1918년 9월 부인을 두고 혼자 일본 유학을 갔다.

일본에서 다니던 명치학원에 복학하지 않고 김동인은 낭만주의적 탐미주의 화가인 후지지마 다께지(騰島無二, 1867~1943)가 있던 가와바타 화학교(三幡畵學校)에 입 학해 미학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주요한은 중학생때 유명시인인 川路柳虹의 시가집에 투고해 가작으로 뽑히는 등 문재를 일찍이 떨치다(1924년 12 <조선문단> 제2호) 한 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런 주요한에 대한 경쟁의식 때문에 김동인은 다시 학교로 가는 대신 미학을 공부하여 문학보다 위라 생각하던 예술과 미 학으로 그를 능가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이때 이미 미술에서의 낭만주의와 문학의 예 술지상주의가 같은 것을 알아차리고 후지시마에서 그것을 보고 배우려한 것이다(김윤 식 1987).

1918년말 주요한과 하숙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문예잡지를 시작하기로 하고 첫 호 의 자금 200원을 김동인이 집에 이야기해 구하기로 했고 동인지‘創造’ 를 통해 조선 신문학을 창건하고자 했다. 1919년 2월 1일‘創造’ 창간호를 발행했고, 1호와 2호에 걸쳐 처녀작‘弱한 者의 슬픔’ 을 게재했다. 2월 24일 히비야 공원에서 독립선언 사건 에 참석했다 피검돼 하루만에 석방된 후 귀국하라는 전보를 받고 귀국했다.

1920년 12월 장남 일환을 낳았고, 1921년 9호로‘창조’ 가 폐간됐다. 이후 기생 김

옥환 및 세미마루와 관계하고 김옥엽과 애정행각을 벌이다 모친에게 첩살이를 허락받

았으나 옥엽이 배신하고 달아나 좌절하는 등 환락과 방탕의 나날을 보냈다. 수년 동안

의 계속적인 낭비와 방탕으로 1926년 급기야 재정적 파탄위기에 빠져 김동인은 남은

재산을 정리한 1만 5천원으로 평양 보통강벌에서 관개수리사업을 벌였으나 총독부의

뒤늦은 관개사업 불허지령과 일본관리와의 불화로 결국 파산을 하게 되었다. 이에 심

한 충격을 받은 김동인은 조부의 유산을 처분하여 빚을 갚는 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서

울로 가서는 마작으로 소일을 하다 1927년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본가마저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한동안 남을 두려워해 피해다니고, 심

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해 결국 약물없이는 정상생활을 할 수

없고 잠을 이룰 수 없는 약물중독자가 됐다. 그와중에 아내가 돈을 벌어오겠다며 동경

으로 가출을 해버리자 쫓아가 딸만 데리고 돌아왔고 곧 이혼을 했다. 1928년 동생 동

평이 하던‘春姬’ 라는 영화의 제작을 도와 평양의 金千代座(긴치요좌), 진남포의 港座

(미나도좌), 정주, 해주, 선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흥행하는 사업을 하다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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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다.

이러던 중 1929년 1월 중외일보에‘광염소나타’ 를 발표하였다. 발표를 한 후 재혼 을 할 생각을 하였고 경제적 독립과 생계를 위해 고료를 받으며 신문연재소설을 시작 했다. 1930년 6월 11살 아래인 김경옥과 약혼하였다. 약혼 후 동아일보에 젊은 그들 을 연재하다 1931년 4월 재혼을 했고 서울로 이사해 집을 장만했는데 그는 집값을 갚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우 많은 글을 빠른 시간동안 써야 했다. 지속적인 불면증 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약물 없이는 하루 도 지내기 힘든 상태가 됐다.

1934년 어머니 옥씨가 종기절제술의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1935년 당시 대중소설 의 일종인 야담작가가 되어 여러 가지 글을 쓰다 사업성이 있다 판단하고는‘野談’ 지 를 직접 인수해 창간했다. 여기에‘광화사’ 와‘와자’ 의 최후(연재물)를 쓰고 2호부터 수년간 수십편의 역사물과 야담류를 썼다.

1937년 극도의 신경증으로 졸도하였고 이후 집필이 어려워 장기간 휴양을 했다.

1938년 3월 하순 불면과 심한 신경증상의 치료를 위해 베르날을 지나치게 복용한 탓 에 수일간 정신착란상태를 겪었고 5일간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후 건강이 나 빠 1939년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경에 갔다 혼절해 한동안 실어증을 앓기도 하였고 이후 6개월간 글자 상실증에 걸려 글을 쓸 수 없었다. 1948년 글씨를 정상적으로 쓰 지 못하고 가족을 분별하지 못하는 증세가 생겼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거 동이 불가능해 피난을 포기하고 서울에 있었고, 1951년 혼자 남아 있다가 餓死하였다.

두 작품에 대한 정신역동적 해석

1. 두 소설 주인공의 어머니와의 관계

김동인의 1929년작‘광염 소나타’ 의 주인공은 백성수다. 그는 야성의 마력을 예술 로 피어올리다 알콜중독으로 사라져버린 아버지와 양가집 처녀로 아버지와 관계를 맺 은 후 집에서 쫓겨난 어머니사이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백성수를 많은 고생 을 하며 혼자 길렀는데,

성수의 어머니는 몹시 어질은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성수의 교육을 몹시 힘 을 들여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길렀습니다. 그 어질은 교육때문에 그가 하늘에서 타고난 광포성과 야성이 표면에 드러나지 못하였습니다.

라는 구절로 보아 백성수에게서 아버지의 야성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살림에도 세살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아버지의 예술성은 이어가기를 원하는

양가감정적 행동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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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백성수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혈육으로 누구보다도 중요한 존재였다. 그녀가 병에 걸리자 치료비 때문에 돈을 훔쳤고 그 죄가로 감옥에 갔다오자 어머니는 죽어 있 었다. 이에 그는 전에 돈을 훔쳤던 집에 충동적으로 불을 질렀고 그때 처음 매우 강한 예술적 감흥을 느껴‘광염 소나타’ 를 작곡했다.

Kris(1952)는 인생에서 주요한 사건이나 상처, 대상의 상실이 창작의 동기가 되고 이를 통해 그 경험을 통제(mastery)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대상의 상실이나 대상에 대한 갈구(object hunger)가 고통스러운 감정의 영향으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 때 창작심리기제가 발동하는데 작가는 이 과정의 결과물인 작품을 소유함으로써 상실의 고통을 피하고 극복하게 된다(Warick과 Warick 1995).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소설속 백성수의 첫창작의 動因(drive)은‘어머니 죽음의 상실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 수’ 라 할 수 있다. 다른 면에서 보면 그동안 그의 야성을 억눌러왔던 어머니가 사라졌 기 때문에 이전의 피아노 연주와 너무나 다른 야성의 발호가 가능했다 할 수 있는데, 이는 무의식적 충동이 어머니라는 외적통제의 장치가 사라지면서 솟구쳐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1935년작 광화사의 주인공은 솔거다. 솔거 역시‘희세의 미녀’ 였던 어머니의 유복 자로 태어나 자랐다. 추한 용모로 결혼을 두 번 실패한 후 외딴 오두막에 혼자 살며 삼 십년간 부득이한 은둔생활을 하며‘여인에게 소모되지 못한 정력은 머리로 모이고 머 리로 모인 정력은 손끝으로 뻗어’ 그림에만 정진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솔거는 어머니의 표정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걸 느끼고 잊고 있던 40여년전의 어머니 사랑 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리워져‘번개같이 순간적으로 심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 영’ 을 미녀상으로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처음 어머니의 아름다운 얼굴을 구현 하려던 미녀상의 계획은 점차‘자기 아내’ 로서의 미녀상을 그리고픈 욕구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세상이 주지 않는 아내를 자기는 자기의 붓끝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비웃어 주리라.

이 세상에 존재한 가장 아름다운 계집보다도 더 아름다운 계집을 자기의 붓끝으 로 그리어서 못나고도 아름다운 체하는 세상 계집들을 웃어 주리라.

덜난 계집을 아내로 맞아 가지고 천하의 절색이라 믿고 있는 사내놈들도 깔보아 주리라.

사오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좋다구나고 춤추는 헌놈들도 굽어 보아주리라.

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 솔거의 생각의 변화는 첫째, 미녀도를 그려 소유함으로써 어머니를 영원히 간

직하겠다는 모자관계의 근친상간욕구의 충족을 원하던 처음 의도에서 아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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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성간의 관계로 변화하는 정상발달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Tyson과 Tyson 1990). 둘째, 자기를 버리고 일찍 죽어버린 나쁜 어머니상(bad maternal representation)을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창작물로 재현해 환상속에서나 마 재결합을 하고 유아기의 마술적 전능감을 다시 갖고자 하는 욕구의 소산이다(Wa- rick과 Warick 1995). 세째, 근친상간욕구가 의식상으로 올라오는 것에 대한 방어의 일환으로 어머니를 아내라는 좀더 안정적이며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으로 치환한 것이다.

이후 솔거는 미녀상에 그려넣을 얼굴을 찾아 수년간 전국을 해메다닌다. 이미 미녀 의 아랫도리는 쉽게 완성했으나 얼굴을 찾을 수 없었던 솔거는 십여년이 지나 절망하 고 있던 차에 우연히 자기 오두막앞에서 소경처녀를 만나 그녀의 눈과 얼굴에서 그토 록 찾아헤맸던 완벽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드디어 그녀를 모델로 미녀상의 얼굴을 그려 완성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솔거는 눈동자를 그려넣고 그림을 끝을 내려고 했으 나 날이 어두워 그만두고 다음날 마무리를 짓기로 하고 그날밤 솔거와 처녀는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처녀의 눈은 어제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미 남자를 알아 버린 그녀의 눈은‘여인의 눈’ ,‘지어미의 눈’ ,‘애욕의 눈’ 이었다.

솔거가 십수년을 미녀를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무의식에 강력히 자리잡고 지배하고 있는 어머니상(maternal represenation)과 근친상간 욕구가 있었 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 자 신만의 기준을 강하게 고집했기에 그는 미녀도의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Freud(1910)는 Leonardo Da Vinci의 전기와 그림을 분석하며 그가 어릴때 가졌던 독수리에 대한 기억을 어머니에 대한 성애적 사랑과 연관시켰다.‘마돈나’ 와‘모나리 자’ 를 그린 것은 마음속의 어머니 미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며. 이후에 도 그의 그림 여러곳에 그런 미소가 등장하는데, 이는 어머니에 대한 어린시절의 성애 적 사랑의 기억을 예술적 창작행위로 승화시켰던 것이라 했다. 그만큼 작가에게 어머 니에 대한 기억과 이의 재현 및 승화는 창작에 중요한 소재와 동기를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솔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랫도리는 완성하였으나 얼굴을 그리지 못해 그릴 대상을 찾아 다니며 미완성인 그림이‘얼굴을 그려주기를 기다리듯이 힐책한다’ 고 한것은 솔거가 어머니 외의 다른 현실의 미녀에 대한 욕구와 근친상간욕구사이에서 강한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드 러내는 부분이다.

완전한 그림을 얻기 직전 어쩐 일로 그림을 완성하지 않고 눈동자만을 남겨둔채 그

만뒀고, 다음날 그림을 망쳐버리게 된다. 솔거에게 완전한 미녀도-어머니의 완벽한 아

름다움을 간직한 아내를 나타내는 그림-를 얻는다는것은 그의 근친상간욕구가 의식에

서 충족됨을 뜻한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므로 초자아의 검열의 작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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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그림을 완성하지 않은채 피했고, 처녀와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전에 그가 알고 있 던 완벽한 아름다운 부모표상(idealized parental image)을 다시는 얻을 수 없도록 파 괴해버렸다.

2. 유복자인 두 주인공

‘광염 소나타’의 주인공 백성수와‘광화사’의 솔거는 모두 아버지 없이 유복자로 자라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남자아이에게 아버지가 없이 성장한다는 것은 정신역동 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前오이디푸스期(preoedipus period)의 아버지 역할은 동일시의 대상, 자아이상(ego-ideal)의 한 부분, 장차 발달할 초자아 의 전구체(precursor), 공격성을 길들이고 모친에 대한 애착의 강도를 희석시켜 장차 삼자관계로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다(Freud 1914;Ross 1984). 그리고 오이디푸스 기에 아버지는 성정체감(gender identity)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남근기에 아 버지가 없는 경우 아동의 공격성이 완화되지 못해 부친에 대한 적개심과 경쟁심이 강 화되거나 부친을 내재화하지 못하게 된다(Tyson과 Tyson 1990). 위에 언급한 아버 지의 역할없이 자라난 아이는 오이디푸스적 삼자대상관계(triadic object relation)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고, 그결과 발달에 있어 어머니와의 양자관계(dyadic relation)가 상대적으로 강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아이는 편모가 자식을 일방적으로 편들거나 응 징만 하는 막강한 모습으로 느낄 수 있는데(Neubauer 1960),‘광염 소나타’ 에서도 어머니는 백성수에게 무의식적 외적통제로서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백성수는 방화를 일삼다가 시체를 훼손하고 이어서 범하는 행위를 하는데, 이는 그 가 성적, 공격적 충동을 잘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험 을 토대로 창작행위를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은 McDougall(1989)이 어머니 가 자식을 자기애적 연장(narcissistic extension)으로 보거나 남편없는 공백을 메울 성적 대상으로 여길 경우 자식의 성발달이 잘못되어 적절히 성적 충동을 해소하지 못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해소되지 못한 충동의 해결과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극복하 기 위해 창작행위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백성수의 경우가 그렇다.

백성수는 음악평론가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K의 종용에 의해 신화와 같던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다 파국을 맞게 된다. 이는 알콜중독자이며 사회적으로 부적응자였던 아버

지의 실제모습은 없이 어머니를 통해 듣고, 자신의 환상속에 키워나간 왜곡된 신화적

아버지상을 백성수의 무의식에 갖고 있었던 결과다. 일반적으로 유복자로 자란 아이는

이런 환상의 부친을 함입(introject)해 동일시한다. 함입된 환상의 부친은 어머니로부

터 들은 얘기, 자신의 소망과 공포, 자신이 직접 들어서 알아낸 것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고 각각 다른 이 세 부분은 하나로 통합되기 힘들어 결국 자신을 버린 부친

과 이상화된 부친의 양극성의 함입물이 된다(Krueger 1983;Gill 1991). 비록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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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는 했으나 아버지처럼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성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키워나가 그의 심상 안에서는 왜 곡된 아버지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 예배당에서 K가 접근하자 먼저 K를 알아 보고 자신을 밝혔으며, 음악을 하지 않겠냐는 K의 권유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광화사’ 의 솔거에게서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유복자, 혹은 3세이전부터 편모의 양육에 의해 자라난 아이들의 특성은 남아의 경우 근친상간의 금기사항이 더 욱 두드러지고, 어머니와 가까와지려는 불안에 의한 소망(anxiety-driven wish)이 강하다. 또, 성적 정체성 확립의 문제와 적대적이고 냉혹한 아버지상이 오이디푸스 상 황에 그대로 노출되어 해소되지 않고 원초적 초자아(archaic superego proper)로 남 는다. 이것은 본래 오이디푸스적 동일시에 의해 자아이상(ego-ideal)과 제대로 통합 돼 완성된 초자아를 구성해야하나 그것이 실패하는 경우 비현실적으로 가혹한 초자아 (harsh superego)를 일찍 형성함을 뜻한다(Burgner 1985;Gill 1991). 이런 특성 을 염두에 두고 광화사를 보면 솔거가 갑자기 떠오른 불안을 동반한 소망과 충동으로 어머니의 상을 재현할 미녀도를 그려야겠다 결심하고 10년을 방황하는 행동을 하는 면, 근친상간의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실현되는 미녀도의 완성을 막아버리는 禁制의 행 위, 완성된 미녀도는 자신을 처벌하는 모습을 띄게 되 결국 자기를 완전히 파괴해 광 인이 돼버린 점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모두 유복자 솔거에 내재돼 있던 비현실적 으로 가혹한 초자아의 징벌이었다.

3.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

‘광염 소나타’ 의 백성수는 음악평론가 K를 만난후 그의 집에서 살며 좋은 환경에서 하고 싶던 음악에 정진할 수 있었지만 이전과 같은 폭발적인 음악이 다시 나오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낫가리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했고 이내 흥분을 하 여‘성난 파도’를 작곡했다. 이후 불을 질러야만 곡을 하나씩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불지르기에 의한 흥분유발이 내성이 생기게 되자 이번에는 송장을 시해하고 피의 선 율을 작곡하였고, 다음에는 屍姦을 하고‘死靈’ 을 만들었다. 이렇게 자극의 강도를 높 이다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게 된다.

독일의 작가 Shiller는“자연은 재생을 위해 파괴를 원하듯이 나는 위기를 원한다, 이

를 통해 창조가 가능하다.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나 나 자신은 나를 이해

한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Berman(1995)은 자기파괴적 행위를 통해

창작의 영감을 얻은 환자의 분석사례를 제시하며 그의 내적 갈등의 결과물은 신경증

상과 창조성 혹은 둘의 혼합물일 수 있고 갈등이나 이를 촉발하는 행위가 창조성을 북

돋거나 반대로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신경증상을 창작의 동인으로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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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예술가(neurotically-driven artist)에겐 좀더 자유로와지기 위해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백성수는 범죄행위, 비윤리적 행위 등으로 자신을 위기상황에 몰아넣고 이에 따른 강한 흥분감을 통해 창작의 동인(drive)과 영감(inspiration)을 얻으려 했 다. 흥분의 결과물인 창작품은 비록 뛰어났으나 그때문에 백성수는 자신을 더 큰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게 되었고 결국은 자기파괴에 이르렀다.

‘광염소나타’ 는 음악평론가 K가 사회교화가인 모씨에게 백성수의 이야기를 들려주 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K는 백성수의 행각을 모씨에게 이야기하며 그의 범죄행 위를

예술가로서는 능히 머리를 끄덕일 수 잇는 심리외다.

어떤‘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천재와 함께,‘범 죄 본능’까지 끄집어 내었다고 하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 겠습니까, 축복해 야 겠습니까? -중략- 평소 명민하고 점잖고 온화한 청년이 그 흥분때문에 눈이 아 득해져 무서운 죄를 범하고, 그 죄를 범한다음에는 훌륭한 예술을 산출합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범죄를 밉게 보아야 합니까, 혹은 그 범죄 때문에 생겨난 예술을 보 아서 죄를 용서해야 합니까?

라며 두둔하는 입장의 발언을 한다.

두 작품에서 인간의 도덕성과 선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는 예술지상주의적 태도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광염소나타’ 에서 사회교화 가가‘죄를 범하지 않고 예술을 만들어 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말에 K가‘천년 에 한번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변변치 않은 범죄로 세상에 없이 하는 것은 더 큰 죄 악’ 이라 반박하는 부분은 작가의 의도가 거칠게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광염 소나 타’ 는 소설의 얼개구조가 상반된 입장의 K와 사회교화가가 균형잡힌 견해를 피력해 독 자에게 전달한다는 듯이 짜여져 있으나 실상 작가의 미의식을 대변하는 K와 그의 열 변을 귀기울여듣는 청취자인 독자와 사회교화가라는 일방적 관계로 되어 있다.

이는 작가 김동인이 이광수의 계몽주의를 비판하며‘사회교화적인 글은 올바르지 않 다’ 고 주장했던 부분 등을 고려할때 K를 통해 자신의 탐미주의적 생각을 주장하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작품 발표시기인 1929년 조선일보에 기고한‘朝鮮近代小說考’ 에 나 온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를 보면 당시 김동인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나는 善과 美, 이 상반된 양자의 사이의 합치점을 발견하려 했다. 나는 온갖 것 을‘미’의 아래 잡아넣으려 했다. 나의 욕구는 모두 다 미다. 미는 미다. 미의 반대 의 것도 미다. 사랑도 미다. 미움도 또한 미다. 선도 미인 동시에 악도 또한 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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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이건 악이건 상관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모든걸 그리겠다는 탐미의식을 갖고 있었고 선악구별의 윤리적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 생각했다(정신재 1992).

이런 김동인의 탐미주의적 예술관이 어떤 식으로 소설에서 드러나고 있는지 알아보 도록 하자.

소설속의 각 등장인물은 작가의 자기표상(self-representation)과 대상표상(object- representation)이다. 각 표상은 꿈에서 그렇듯이 매우 복잡한 무의식의 여러 과정 을 거쳐 나타나는데 작가의 목적, 가치판단, 문학적 기호 등의 관점에 따라 의식 혹은 전의식 차원의 각색(elaboration)을 거쳐 최종적 등장인물로 소설에 나온다(Berman 1993)고 볼때 광염 소나타의 주요등장인물 백성수, 어머니, K, 사회교화가를 작가 내 부의 심리표상들로 거칠게나마 대치해볼 수 있다.

K는 백성수가 작곡에 대한 계통적 훈련을 받고싶어하자 이를 반대하며 온갖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가슴에서 터져나오는대로 연주할 것을 권유하고,‘밤에 전등 아래 앉 아 있노라면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방’ 에서 기거하게 하는 식으로 그의 숨겨져있던 야성이 드러나는 것을 암묵적으로 부추기는데 이를 정신세계의 심리표상의 상징으로 대치해보면 본능(Id)의 행태라 할 수 있다. 반면 백성수의 야성이 드러나지 않게 애쓰 던 어머니는 내재화된 초자아(internalized superego)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 의 사망은 억압기제가 느슨해짐을 의미하고 이후 어머니 사망의 복수로 우연히 촉발된 충동의 표현이 K와 만나면서 점차 상승해 자기파괴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하 다. 그리고 사회교화가는 내재화되지 못한 일반적 도덕관 수준의 초자아로 백성수로 상 징되는 작가의 창작심리에 영향은 미치지 못하나 작품전체를 균형잡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위의 가정을 받아들이면 음악평론가 K의 입장이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하게 주 입되며 소설중의 백성수 또한 위대한 예술을 꿈꾸는 K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광염소나타는 본능주동형(Id-dominant)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란 본능(Id)과 자아(Ego)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Storr 1978)이며, 본능이 지 배하는 무의식의 세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Lowenfeld 1941), 끝내 백성수가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K가 자신이 평생 추구한 예술 지상주 의가 실재로 존재불가능함을 알고 끝내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결말을 맺으므로 소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일반적 사회의 권선징악적 가치관과 현실감각이 유지되고 있는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비록 이 소설이 본능주도형의 작품이라 해도 작가의 자아의 통제하에 이루어진 것(regression in the service of the ego)이기 때문이며 예술가란 본능에 압도되지 않은 채 본능의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일차과정을 조절할 능력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라 하겠다(Kris 1952).

‘광화사’ 의 솔거는‘어머니의 아름다움’ 이라는 절대미를 찾아 십여년을 보낸다. 결

국 찾아낸 소경처녀를 통해 완벽한 미녀상을 구현하는가 했으나 하룻밤의 관계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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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수 없게 되자 이성을 잃고 소경처녀를 닥달하다 사고로 그녀를 죽인다. 그 와중에 튄 먹물이 미녀도의 눈동자에 묻어버리자 미녀도가‘원망의 눈’ 을 하고 영원히 그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끼고 미쳐버려 얼어죽고 만다. 화자인 余는 이런 솔거를 동정심을 갖고 애도한다. 이 또한 위에서‘광염소나타’ 의 K의 입장과 흡사하며 작가의 탐미주 의적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솔거가 절대미를 추구하는 과정은 그의 추한 외모에 의해 더욱 강조되는데 외모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코가 질병 자루 같다. 눈이 퉁방울 같다. 귀가 박죽 같다. 입이 나발통 같다. 얼 굴이 두꺼비 같다 … 소위 추한‘얼굴을 형용하는 온갖 형용사’를 한 얼굴에 지닌 흉한 얼굴의 주인으로서, 그 얼굴이 또한 굉장히 커서 멀리서 볼지라도 그 존재가 완연하기만 하다.

이 얼굴을 가지고는 백주에는 나다니기가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

이런 솔거의 외모의 묘사는 비극적이라기보다 희극적인 면이 있고 사실성이 결여되 어있는데 절대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분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문구(1995)는‘광화사’ 에서 솔거가 찾던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소설에서‘희세의 미녀였다’ ,‘눈물 글썽글썽한 눈’ ,‘동경과 애무로 빛나던 눈’ ,‘입가에 떠오르는 미 소’ 라 묘사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미혼모의 슬픔과 아픔, 恨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솔거가 발견한 소경처녀의 아름다움은‘세상에 드문 미녀’ ,‘동경의 물결이 비치는 커다란 눈’ 등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도 소경처녀가 겪어야 했을‘슬 픔’ 과‘恨’ 의 哀傷美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솔거는 이 애상미를 통해 어머니와의 접점을 발견했고 그녀를 유일한 모델로 판단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경처녀는 솔거와 하룻밤을 보낸후 전날까지 지녔던 슬픔과 한 의 정서가 사라지게 됐고 솔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작품에서 주인공은 모두 미쳐버린다. 하지만, 제목에‘狂’ 이 들어가고,‘정신병자 라는 명목으로 정신병원에 감금’ ,‘음울한 늙은 광인’ 이라는 묘사는 있으나 구체적으 로 어떤 미친 행동을 하였는지는 언급이 없다. 이것은 작가의 의식에선 미쳐버렸다고 표현하였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이를 승인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金東仁의 創作心理

1. 광염소나타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17세때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아 금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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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고, 유아독존적이며 자기애적인 성향이 강해‘자신만 이 조선에서 진짜 순문학을 하는 사람’ 이라 자부하던 김동인은 1926년경의 경제적 파 산과 1927년의 부인의 가출에 따른 이혼으로 큰 심리적 상처를 받았다.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경제적 파탄은 김동인에게 무서운 공포를 경험하게 했던 것으로 추측되 는데 그가 당시의 어려움을 소설‘여인’ (1930)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 쓴것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가까운 장래에 거지꼴을 하고 나서려니 하면, 그 꼴을 보기전에 콱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다.

고 묘사하고 있다.

김동인은 그때까지 이복형 김동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해왔다. 형이 사 업을 하자 자신은 문학에서 조선 제일이 되고자 했고, 문학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 은 이후엔 김동인도 사업을 시작해 이복형과 같은 영역에 그를 능가하려 했다. 이는 그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갈등과 관련한 내면심리는 그 의 처녀작‘약한 자의 슬픔’ (1919)에서 주인공 강 엘리자베뜨가 K남작을 상대로 소 송을 했다 패하자 문학을 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나‘배따라기’ (1920)에서 드러나는 형제간의 대결의식 등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하지현과 조두영 1996). 하지만 그의 오이디푸스 갈등의 극복을 위한 의식적, 무의식노력은 계속적인 사업실패, 남은 재산 을 정리해 투자한 관개사업의 실패로 파산에 직면하게 되면서 오이디푸스 패배(oedipal defeat)와 거세공포의 현실화(actualization of castration fear)라는 결과로 일단락 지었다. 이는 그에게 견디기 힘든 정신적 상처였고 그 결과 신경증적 붕괴(neurotic breakdown)로 심한 우울감, 불면, 대인회피 등의 정신병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당시의 심리상태가‘광염 소나타’ 에 반영돼 있다. 백성수는 그가 아버지 와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던 어머니가 죽은 후 요절한 천재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음악 세계를 뒤따라간다. 그의 첫작품‘광염소나타’ 가 연주된 후 음악평론가 K가 그를 요 절한 아버지의 아들로 소개하고 청중들이 흡족해 할때 그는 아버지와 동일시되는 감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의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점차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 창작을 했고 이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있었으나 자신 은 자기파괴적 행위로 망가져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이 과정은 작가 김동인이 이복형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무리한 행동을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파산과 이혼, 자기파괴적 신경증상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의 내면

세계가 소설에 투사된 것이다. 그는 사업실패, 방탕한 생활의 자기파괴성을 자인하며

자신의 예술적 정신세계를 정신병원에 감금해버리는 자기징벌(self-punishment)을

단행한 것이다. 동시에 음악평론가 K의 입을 통해 백성수의 행위를 두둔하고 합리화

하는 과정을 보임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괴로운 내면세계를 감싸고 합리화하고 있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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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양가감정적(ambivalent) 면모를 드러낸다.

두번째로 고려할 대상은 아내의 가출과 이혼이다. 김동인에게 첫부인 김혜인은 중요 한 존재였다. 그는‘내작품의 여주인공’ (1939)이라는 글에서 자신은 세 여성형을 좋 아하는데, 첫째는 교양있고 현숙한 여성, 둘째는 명랑하고 쾌활하며 열정적인 타입, 셋 째는 몰아적이고 인종적인 여성이라 했다. 김혜인은 여기서 둘째 타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혜인은 여자로서의 온순함은 가지지 못한 대신 사내로서의 활발함과 능 함을 가졌다’고 했다.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사이의 관계라기보다 기생과 대면시키고 그녀의 승낙을 받는 등의 행동을 보였듯이 그녀를 통해 보살핌을 받는 자식과 어머니 사이 같은 관계도 일면 있다. 그런 김혜인이 김동인에게 사전 상의도 없이 가출하여 일 본에 가버린 사건은 가뜩이나 경제적 파탄으로 어려움을 겪어 자기애적 재급유(nari- cissistic refueling)를 원하던 김동인에겐 자기애적 상처(narcsisstic injury)를 주었 을 것이다. 그래서 김동인은 동경에 가서 수소문 끝에 김혜인을 찾아낸 후에 갖고 있 던 돈을 탕진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던 김혜인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딸만 데리 고 돌아와버렸다. 이후 김동인의 작품세계는 탐미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현실세계에서 겪은 실패와 좌절, 자기애의 상처를 문학세계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 구하는 것으로 부정(denial)하려 한 것이다.

‘광염 소나타’ 에서 백성수는 유복자로 어머니와 함께 살다 그녀가 사망한 이후 억눌 렸던 예술혼이 드러나며 방화와 시체 훼손, 살인 등의 엽기적 행각을 한다. Freud (1908)가 작가의 창작행위는 백일몽(daydreaming)과 같다고 하며 예술행위를 통해 작가의 무의식적 욕구가 분출되고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Rank(1932)는 여러작가의 작품을 분석한 후 작가가 주인공을 자신의 복제물(double)로 인식한다고 했고, Kris (1952)는 작가 스스로 작품 속의 여러 등장인물과 동일시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광염 소나타’ 에서 김동인은 첫번째 부인과의 결별이라는 사건을 통해 겪은 우 울감과 분노를 백성수와 동일시한 후 그의 행각을 통해 분출하였고, 이 행위를 또 다 른 분신(double)인 K라는 음악평론가의 입을 통해 합리화시켰다. 일반적 정서상태의 창작과정이었다면 한 명의 주인공이나 한가지 사건으로 통합되어 작가의 창작심리의 큰 흐름을 표현했을 것이나, 당시 김동인의 신경증상, 불면증 및 약물의존 등으로 미 루어 짐작가능한 자아능력(ego strength)으로는 액자소설 형식을 갖고 백성수의 행각 과 이에 대한 K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리된 흐름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광염소나타’ 는 1927년 4월 조선문단에 발표한‘딸의 업을 이으려’ 이후 약 2년만

에 발표한 소설이었고 이후 김동인은 1931년 10월까지 약 3년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문단데뷔후 1929년까지 발표한 소설이 22편이었는데 비해 이후 3

년간 24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이중엔 전에 써본적 없는 장편소설과 신문연재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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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있었다(Fig. 1). 이는‘광염 소나타’ 는 김동인의 창작심리를 촉발한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가들은 정신외상(psychic trauma)에 남들 보다 민감하고 잘 받아들이며(traumatophilia), 동일시(identification), 자기애(nar- cissism), 兩性性(bisexuality)의 특징을 갖는데 이들은 정신적외상을 받으려 애쓰고, 받은 후에 어떻게든 이를 극복하려 애를 쓴다(Lowenfeld 1941). 김동인의 창작행위 도 이 맥락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파산과 연이은 이혼은 김동인에게 생애 처음 겪는 고통이었으며 자존감의 커다란 상 처였다. 그가 이를 극복하고 벗어나는 데에는 3년이 필요했고, 소설‘광염 소나타’ 의 창작이 큰 역할을 했다. Rank(1932)가 예술가의 창작활동의 네가지 심리역동을 제시 하며 그중 하나로‘무의식적 자가치유와 남성화의 길을 걷는 노이로제 환자’ 라고 했고, Obendorf(1947)가 작가가 때때로 무의식에서 자기 신경증적 갈등을 치료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듯이, 이 소설은 당시 그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만 아니라 치유적 환상(curative fantasy)을 통한 글쓰기에 의한 自家-精神治療(self-psycho- therapy)의 기능도 했던 것이다. 그결과 김동인은 내면의 안정을 찾아 자신이 갖고 있 는 유일한 무기인‘문학’ 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것을 결심했고, 김경애와 만나 1930 년 6월에 재혼함으로써 첫부인과의 이혼으로 받았던 고통과 좌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작품활동이 그를 모든 갈등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 작활동의 자기정화적 요소는 작가가 자신의 무의식적 동기를 돌아보게 하는 기능도 하 는데, 이는 마치 정신치료나 분석의 도중에 환자가 자신의 무의식으로 점차 접근하게 되는 과정과 같다. 이때 동반되는 저항이 적절히 해결되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가 진

Fig.1. 金東仁 書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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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끝내거나 어정쩡한 타협형성(compromise formation) 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글을 쓰는 창작행위를 통한 무의식적 갈등 의 방출로 일시적 만족은 얻을 수 있지만 지속적 위안이나 갈등의 궁극적 해소를 얻지 는 못한다. 이 경우 죽을 때까지 근본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삶을 살게되는데 그 예로 Edgar Allen Poe, Baudelaire, De Quincey 등을 들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정신 분석적 연구가 여럿 있다(Obendorf 1947). 신경증상과 창작행위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방식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창작을 통해 자신의 내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신경증의 증상형성의 과정과 마찬가지 경로를 통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신경증상과 창작행위간에 역동적 동요(dynamic fluctuation)가 있어 상황에 따라 어떤 방식을 이용해 문제해결 을 할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통한 문제해결이 좀더 치유적인 방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Noy 1979), 김동인의 경우 광염소나타를 쓴 후 생활 이 안정되고 재혼을 할 수 있었지만 불면과 신경증상은 지속되었으니 창작이 그에게 근본적 해결을 준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다.

2. 광화사

생존을 위해 글을 쓰면서 그의 작품성향도 변화하기 시작했다.‘훼절’ 을 하였다며 돈 을 받기위해 신문연재 청탁을 받아들여 역사물(젊은 그들 1930)을 쓰기 시작했고, 작 중인물들의 미의 추구와 욕망은 이전 작품들과 수준을 달리하는 강렬한 탐미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전에 그의 생활과 소설관은 하나로 합치되어있었다. 그의 삶은 소설 속의 삶을 현실 화한 것이었다고 할 정도로 아침엔 서울, 저녁엔 동경하는 식의 생활, 원하는 것은 무 엇이든 당장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등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며 지내 왔 다. 일반적 대다수의 사람이 사는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것 이다. 하지만, 파산과 이혼이후 새로운 가정을 꾸미면서 그는 문학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처음 현실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김동 인 자신은‘훼절’ 이라 칭했으나 사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는‘성장’ 과‘자율성’ 의 획득,‘의존욕구’ 의 극복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그가 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아이가 현실세계에서 좌절을 겪고 발달상의 과제에 맞닥뜨려 힘들어할때 놀이 나 환상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얻고 대리 충족을 받게 되듯이(Tyson과 Tyson 1990), 김동인도 생활인이 되면서 겪는 좌절 등을 문학의 세계에서 보상받으려고 시도하기 시 작했고 그 결과 작품경향이 탐미주의라는 이전보다 강한 본능의 분출을 야기하고 현 실상황을 부인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김동인은 재혼을 한 후 서울로 이사해 많은 양의 글을 써서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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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생활의 방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김동인은 예전같으면 거절했을 글을 원고료때문에 삽시간에 써서 넘기기도 했고‘아기네’ 와 같은 글은 하 루만에 써서 월부금을 갚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유아독존적이며 자기애적 성향이 강 한 김동인에겐 견디기 힘든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우울증과 불면 등의 한 원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그는 지속적인 약물의존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병상 만록’ (1931. 6~7), 병과 빈(1932. 2),‘의사원망기’ (1932. 4),‘혼 수 5일’ (1938. 7) 등의 글에서 상세히 적고 있다. 1931년에서 1932년 사이에 가장 심한 신경증상을 보였는데 당시 일년에 200일이상 클로랄, 칼모틴, 브롬, 아달린 등의 약을 복용했다. 약물의존증상이 심해 평양집에 약을 많이 장만해둬야 했고 심할 때에 는 약이 떨어지면 서울에서 90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평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일반적 수면제로는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김동인은 아편중독자가 되 었다(백철 1982).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글을 쓰던 김동인은 1932년 서울로 온 가족이 이주를 한 후 1933년 조선일보 학예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약 40일간 다니다 곧 그만뒀지만 그 에겐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직장이었다.

그러던 중 1934년 김동인의 어머니 옥씨가 사망했다. 어머니 옥씨는 아버지 김대윤 의 재취로 들어와 약 35세의 늦은 나이에 자신의 첫아들로 김동인을 낳아 다른 어떤 자녀들보다 귀중히 길렀다. 김대윤의 사망이후 김동인의 이복형 김동원에게 분배된 재 산이외의 유산을 직접 관리했을 정도로 강하고 굳센 여인이었으나 김동인에게만은 약 한 모습을 보여 김동인이 기생과 첩살림을 하는 것도, 문학을 하고 동인지를 하기 위 해 재산을 축내는 것도 용인했고 동생몫의 재산까지도 그에게 돌려주려 하였다. 김동 인도 옥씨를 무척 따라 재혼을 한 후 서울로 이주를 하고 생활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 주한 것도 빨리 옥씨를 서울로 모셔오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옥씨는 임종순간에도 당시 생계가 어렵던 김동인을 걱정해

“거기 내 뚜머니 이서. 뚜 쭈머니”

“주머니요?”

“어.”

여전히 끝도 밑도 모를 말씀이었다.

“쭈머니에 돈 이써.”

(蒙喪錄, 1934)

라며 마지막 남은 돈까지도 김동인에게 주려고 했다. 김동인은 할아버지같은 늙은 아

버지, 일찍 분가한 17살 위의 이복형에 비해 어머니와 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했고 어

머니의 말을 거역하거나 독립을 하려는 시도는 한번도 없었다. 두번째 부인 김경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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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재혼 역시 어머니가 만족했기에 결심하게 되었고, 외모와 성격이 그의 어머니와 매 우 흡사해서(정신재 1992), 결혼은 그것이 중매이던 연애이던 간에 무의식적 근친상 간 욕구(unconscious incestuous wish)의 대리충족이라는 정신분석적 해석(조두영 1994)이 그의 두번의 결혼 모두에서 잘 들어맞고 있으므로 그의 성장과 생활, 심리기 제 전반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는 작품의 등장인물이 작가의 복제물이거나 내적 표상의 동일시의 대상이라 할 때(Rank 1932;

Kris 1952) 두 작품의 주인공이 모두 유복자로 묘사돼 있고, 유복자의 경우 어머니와 의 애착관계가 더욱 강하다는 점을 생각할때, 비록 김동인이 실제 유복자는 아니었지 만 그의 내면세계에서는 자신을 유복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어 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사망은 1927년의 아내의 가출과 뒤이은 이혼보다 더 큰 상실감 을 줬을 것이다. 그는‘蒙喪錄(1934)’ ,‘가신 어머님(1938)’ 등의 수필을 통해 상실 감을 애도하고 진정하려 했다. 이는 이전에 아내의 가출을 문학적 분출을 통해 극복했 던 경험이 작용해 복잡하게 가장하거나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하는 소설의 형식보다 좀더 직접적이며 자기감정고백이 강한 수필의 형식을 이용한 것이다. 그에게‘어머니의 상실’ 이란 사건은 소설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기다리며 견뎌내기엔 강한 내적 감정의 분출을 일으켰기에 일단 좀더 개인적인 수필의 형식으로 정서의 분출을 했고, 그 이후 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여러 형태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잃어 버린 대상(lost object)을 재생하고 싶은 욕구가 반복적으로 표출된 것이다(Warick과 Warick 1995). 하지만, 이런 심리적 상처와 창작행위에 명확한 시간적 연관관계가 있 어야‘상처에 기인한 창조성(traumatogenic creativity)’ 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심리적 상처가 당장 창조성을 만들어낸다기보다 창작행위를 위한 좋은 원재 료로 제공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Berman 1995).

1935년 김동인은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기고해오던‘月刊 野談’ 이란 잡지를 직접 인수해 1919년의‘創造’ , 1924년의‘靈臺’ 에 이어 세번째로‘野談’ 을 창간했다. 이 잡지 창간호에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광화사’ 가 실려 있는데 이후 2년간 발간된 잡 지 전체를 통털어‘광화사’ 만이 유일한 소설이었다. 이전의‘창조’ 와‘영대’ 가 순수 문학을 주창하는 잡지였던 것에 반해‘야담’ 은 요즘식으로 보면‘통속 대중잡지’ 라 할 수 있고 김동인이‘야담’ 을 인수하게 된 것도 문학적 욕심보다는 금전적 욕심이 컸다.

그의 이런 행동은 1927년 파산에 이은 1931년의 재혼이후 문학을 생계의 수단을 삼

아 수많은 신문연재소설, 역사소설 등을 닥치는대로 써내면서 겪은 변화의 한 결말이

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김동인은 자신의 문학관은 탐미주의적이며 순수지상주의적

이라 주장했다. 이런 삶과 예술적 지향간의 불일치는 그의 우울증, 약물의존의 한 원

인이었고 작품을 통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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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이 1935년‘광화사’ 를 쓰던 시기의 그의 상황을 정리하면 1) 지속적인 약물 의존과 불면, 신경증상 2) 어머니의 사망 3) 생활을 위해 통속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창작행위를 통해 극복하려 했고 정신적 파탄으로부터 보호받고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그가 느낀 우울감은 어떤 것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이 파괴했다 고 느낀 것을 재생하려는 과정에 생긴 것이다(Storr 1978).

‘광화사’ 는 余가 인왕산을 등산하다 공상에 빠져 우연히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는 일인칭 시점과 솔거의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白日夢을 꾸듯이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데 마치 별다른 의미가 없는 몽상이라는 듯이 풀어감으로써 작품과 독자사이의, 작가와 작품사이의‘거리두기’ 를 가능하게 하고 있 다. 이는 역으로 솔거의 행적을 다룬 본줄거리는 작가의 당시 심리상태가 완전히 假裝 (disguised)되지 않은 채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Bergler 1954).

추한 외모의 솔거가 수십년간 은둔해 그림만 그리며 살아가다 어느날 아련한 기억 속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어머니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미녀도를 그리기로 작 정하는 것은 작가의 어머니의 사망에 대한 애도반응이며 어머니의 표상(maternal representation)을 영원히 내재화하고픈 욕구가 드러나는 면이다.

어머니상을 재현할 미녀도의 모델을 찾아 십년간을 헤매다 소경처녀를 우연히 만나 는데 소경처녀는 그의 추한 외모를 볼 수 없어 도망갔던 전 부인과 달리 그를 가식없 이 대할 수 있었다. 솔거가 하룻밤을 소경처녀와 지낸후 자신의 심상안의 완벽한 미가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하고 격분해 결국 처녀를 죽게 하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 절대 미를 추구하는 작가의 욕구와 가정을 이끌어 가야만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작가의 괴 리감이 분출되는 부분이다. 십년여를 찾아 헤매다 결국 발견한 절대미의 결정체인 소 경처녀가 솔거의 남녀관계 욕구로 인해 하룻밤만에 오염되버려‘지어미의 눈’ ,‘애욕 의 눈’ 이 되버리자 솔거가 소경처녀를 몰아치다 죽게 한 것은 작가자신의 미학관, 창 작관이 오염된 것에 대한 자기파괴적 행위가 표현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적의있는 파괴본능이 좌절되면 이는 강한 죄의식과 징벌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Warick과 Warick 1995). 이 소설에서 파괴행위의 결과는 우연히 튄 먹물로 완성된 미녀도가 자 신을 바라보는‘원망의 눈’ 에 의해 미쳐버리고 거리를 헤매다 얼어죽는 것이었다. 이 에 대해 화자인 余는‘그의 쓸쓸한 인생을 조상하노라’ 며 동정(empathy)을 보인다.

작가 자신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와 그로 인한 약물의존상태와 솔거의 이후 행각을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한 것이라 하겠다.

結 論

지금까지 김동인의 단편소설‘광염 소나타’ 와‘광화사’ 에 대한 정신역동적 해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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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당시 김동인의 창작심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첫째, 두 소설 모두에서 백성수와 솔거의 창작 動因으로‘어머니’ 의 존재가 작용하 고 있다. 두 등장인물 모두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자라났기에 그들의 성장과정 에 어머니의 역할은 더욱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광염 소나타’ 의 백성수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과 이를 복수하기 위한 방화를 통해 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고,‘광화 사’ 의 솔거는 갑자기 떠오른 아련한 어머니의 모습을 현실에 재현하고자는 욕구가 생 겨 미녀도를 그리기 위해 십년간을 방황한다. 하지만 두 소설에서 어머니가 갖는 정신 역동적 역할은 각각 다르다.

백성수에게 어머니는 그의 야성적인 예술적 기질이 분출되지 않게 제압하고, 길들이 는 내재된 초자아의 의미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죽은후‘광염 소나타’ 를 작곡하고 점 차 광폭한 방법으로 창작을 복돋는 행위를 하는 것을 자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솔거 가 미녀도를 그리려는 것은 원초적 어머니 표상을 미의 근원으로 인식하는 것과, 그림 을 그림으로서 무의식적 근친상간 욕구를 충족받고자 함이었는데 결국 그림을 완성하 지 못하고 만 것은 이런 禁制의 욕구에 대한 가혹한 초자아의 징벌의 의미가 있다.

둘째, 두 소설 모두 예술지상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광염 소나타’ 에서는 백성수의 放火, 屍體 毁損, 屍姦, 殺人 등의 범죄행위를 K의 입을 통해‘천년에 한번 날 지 모르는 큰 천재를 변변치 않은 범죄로 세상에 없이 하는 것은 더 큰 죄악’ 이라고 옹호한다.‘광화사’ 에서 솔거가 소경처녀를 죽인 것도 그가 그토록 찾던 절대미가 파괴 되버린 것에 격분해 저지른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동정심 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작가 김동인이 자신의 1927년 이후의 생활과 문학관 의 괴리를 소설을 통해 투사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과정을 통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은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한 명은 미치광이가되어 얼어죽었다 는 결말은 내용적으로는 예술지상주의적이며, 탐미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전체적으로 는 사회도덕적 한계내에서 수용되도록 해 그의 작가로서의 자아기능은 온전히 작동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번째, 두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가의 창작심리의 공통점이다. 1927년의 경제

적 파산과 아내의 가출에 이은 이혼, 그리고 시작된 우울증, 신경증상, 약물의존 등을

겪고 있었고 1935년경엔 문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통속잡지‘野談’ 지를 창

간했고, 어머니 옥씨의 사망, 지속적인 약물의존 등의 일이 있었다. 이상과 같이 김동

인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중요한 대상의 상실, 정신적인 고통 등

을 겪고 있는 상태에 두 소설을 썼다. 그리고 두 소설에서 당시 김동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소설외적으로는 소설창작이후 생활상의 안정을 보

이는 변화가 있었다. 즉, 김동인에게 소설쓰기라는 창작행위는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

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치유적 의미가 강했다. 그는 정신세계에서 상처의 고통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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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psychic splitting)해낸 후 창작의 과정을 거쳐 완숙해 재통합하는 과정을 거친 것 이다(Rose 1987).

네번째, 1919년 문단데뷔 이후 발표한 작품들과는 달라진 작품성향과 창작심리를 두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작‘약한자의 슬픔’ (1919)에서는 K남작과의 대 결을 통해 17살 차이나는 이복형 동원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고(하지현과 조두영 1996),‘배따라기’ (1920)에서도 형제간의 경쟁관계를 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어 김 동인의 카인 컴플렉스가 나타나고 있다(이규동 1993). 이렇듯 그의 초기 작품들은 아 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던 이복형을 극복하고자 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극복이 주 요 주제였는데 비해, 본고에서 다룬 두 소설은‘어머니’ 와의 애착관계인 모자간의 이 자관계와 관련된 내용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精神-性發達段階(psychosexual de- velopment)로 볼때 後者가 前者에 비해 먼저 일어나는 것인데 작품발표시기는 반대 로 되어 있어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정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이는 단지 김동인의 소설 창작시기의 심리상태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에 발달

상의 순서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각각의 시기에 김동인의 무의식적 소망과 갈등이 각

작품에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김동인의 방어기능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다. 작가의 무의식적 소망과 갈등은 계속

표출되려 하고 자아는 이를 방어하려 한다. 이로인해 생긴 갈등으로 야기된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방어기제가 잘 작동하거나 자아가 기능을 충실히

하면 일반인의 눈으로 작가의 심리기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외

부의 강한 압력이나 내적으로 강한 충동이 솟구쳐올라 기존의 방어기제로는 성공적

으로 막아낼 수 없게 되면 좀더 원초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후퇴하게 되거나 좀

더 심층의 억압되있던 소망이 드러나게 된다(Bergler 1954). 김동인의 경우도 이와

같은 기제를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작가는 자기 속생각을 털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갈등을 풀어내려는 욕구때문에 글을 쓰는데, 무의식적 소망에 대한 갈등

이 방어를 하게 하고 또 그것을 각색하는 방어를 거쳐 나오는 것이 작품이라 할때

(Bergler 1954), 김동인의 초기작품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외형을 띄고 있고

일반적인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주요한

대상(김혜인, 어머니 옥씨)을 상실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고, 문학적으로 훼절을

하는 상황에 빠지며, 심신이 쇠약해져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자 일

상적으로 사용하던 심리기제를 통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표현하지 못하고 좀더 근

저의 갈등인 전오이디푸스기(preoedipal period)의 모자간의 애착관계의 갈등이 표

면으로 드러났다. 이는 작가의 방어에 대한 방어가 이전에 비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

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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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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