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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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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Special Issues

精 神 精 神 分 析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 精 神 分 析 分 析 分 析 : : 第 第 11 卷 卷 第 第 2 號 號 2 0 0 0

Vol. 11, No. 2, page 198~208, 2 0 0 0

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기타야마 오사무 * (번역:이무석 ** ·기혜영 *** )

Affect and Language-East and West

Osamu Kitayama, M.D.*

((((Translated by Moo-Suk Lee M.D., Ph.D.,** Hye-Young Key***))))

서 론

필자는 임상에서 언어화의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이는 매우 심오한 의미를 가진 주제이다. 나는 여러 측면에 서 이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다. 정신분석 치료의 고유한 특 징은 언어를 통해서“억압된 정서를 의식화” 시키고“통찰 을 얻게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정신분석은 오랫 동안 환자와 치료자 간의 언어적 의사소통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정서적 통찰 emotional insight”이라 는 말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정신분석이 지향하는 것은 언 어적 통찰 만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와 동시에 정서적 통찰 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 나는 먼저 정서의 언어 화 문제를, 문화의 차이 및 언어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접근 해 보고자 한다.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라”는 정신분석의 기법은 언어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이다. 영어권에서는 정신분석 치료 중에 환자가 느끼고 있 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경우 치료에 대한“저항 (resistance)” 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그렇게 쉬운 일로 생각하지 않

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정서와 언어를 오 히려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해석이나 자유연상이 모두 언어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언어적 의사소통을 중요시하는데, 학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어적 의사소통 이외의 것도 인정하 고 있다. 분석가에 따라서는 정통 정신분석 고유의 이론과 기법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로 정신분 석은 이밖의 여러 이론과 기법들을 포함하고 있다. 정신분석 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여러 요소들 중 어느 것을 강조하 느냐에 따라 정신분석에 대한 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언어적 치료에 대한 저항이 있다.

일본인들은“인간관계를 움직이는 것은 언어가 아니다” 라고 말할 정도다. 따라서 일본에서 활동하는 정신분석가로서 필 자는 정신분석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언어의 역할의 중요 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있다. 비분석적 치료를 행하는 동 료들은 필자에게“언어를 너무 강조한다”고 비판하기도 한 다. 그러나 여기는 정신분석에 관해서 토론하고 생각을 나 누는 자리이기 때문에 굳이 언어적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언어적 의사소통과 동시에 비언어적 의사소통도 공부해서 정신분석 치료의 전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국가 간의 비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 인류학자도 아니고, 문화 심리학자도 아니다. 다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문화적 차이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서 배운 풍부한 지식과 이에 대한 연구 및 임상경험일 것이 다. 또 일본인인 필자에게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한 약간의 임상경험이 있고, 일본어 개념을 활용해서 국제적으 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다께오 도이(土居健郞)의“아마 에” 연구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편집자 주:본 특집의 각 연제는 영문으로 발표된 것이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국문 번역을 달았음.

*

Psychoanalyst and training analyst of Japan Psychoanalytic Society Kyushu University, 6-19-1 Hakozaki, Higashi-ku, Fukuoka City 812-8581, Japan

**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Department of Psychiatry, Chonnam National University Medical School, Kwang-Ju, Korea

***

Clinical Psychologist Kyushu University, 6-19-1 Hakoza-ki,

Higashi-Ku, Fukuoka City 812-8581,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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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야마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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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언어의 대립

1.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서

감정과 정서는 오래 전부터 연극, 시, 회화 등의 예술, 나 아가 종교, 운동, 오락 등을 통해 표현되어 왔지만, 그에 관 해 논의된 적은 별로 없었다.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거나 어 둠의 세력에 속한 것이거나, 이성은 밝은 빛인데 감정은 이 성과 대립되는 장애물 같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일본인 중 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 내지는 느낌으로 보며, 지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그리스 철학용어로“logos”와“pathos”는 대립개념이고, 언어는 배타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서에 대해 서도 배타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다.“pathos”

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진“paschein” 에서 유래했으며, 영어 의“passion”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이 수동적인“pathos” 를 자신의 것으로 회복하기 위해서“lo- gos” 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감정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 간에 약간의 차이도 있지만 같은 점이 많다. 즉, 감정은 언어 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과 정신 현상은 이성과 감정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이성과 감정은 서로 대립한다는 생각은 동서양이 같다. 다만 어느 것을 우선시 하느냐가 서양과 동양의 차이 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인에게 희노애락의 정서는 언어로 표현되기보다는“신 체화(somatization)”되기 쉽기 때문에 동양의 우울증 환자 는 서양의 우울증 환자보다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 다는 보고도 있다(Kleinman 1986). 따라서 정신신체 장애 (psychosomatic disorder)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al- exithymia”라는“감정 언어화 곤란증”은, 정서의 언어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서양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동양인들은 정서를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그것을 쉽게 할수 있다’ 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정신분석에서 정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카타르시스”가 목적이다. 그러나 카타르시스는 언어화를 통해서만 일어나 는 것이 아니고 울거나 웃는 행동화 및 신체화를 통해서 도“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문화와 정서

인간은 어떤 감정을 문화를 초월에서 느끼는 것 같지만, 실은 문화와 언어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Kitayama &

Markus 1994). 정서는 문화와 언어의 영향을 받고있기 때 문에, 단순히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이미 느낌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정서적 의사소 통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어려운 점은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 는 언어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감정의 가치(value)도 문 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경우를 예로 든다 면“Kanjyo”(감정, affect),“Jyoucho”(정서, emotion),

“Jyonen”(정념, passion),“Kansyo”(감상, sentiment),

“Kanji” (느낌, feeling) 등의 비슷한 말이 많이 있고, 여기 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영어의“emotion”,“emotional”과 이에 상당하는 일본어의“Jyoucho, 정서”,“Jyouchoteki, 정서적” 이라는 말 조차도 그 의미와 가치 면에서 미묘한 문 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Kimochi(기분)” 라는 중요한 일본어를 영어로는 좀처럼 표현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은 감정적인 국민(emotional people) 으로 알려져 있고, 이별 장면은 서양인에 비해서 유별나다.

최근의 젊은 세대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인은 영화나 옛날 이야기 중에“이별 이야기” 를 좋아하고, 어떤 영화 평 론가는‘일본인은 울기 위해 영화를 본다’ 고도 했다. 또 정 신치료의 종결기에 일본에서는 환자나 치료자가 모두“센치 멘탈”“정서적”“눈물 젖은(wet)”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 는데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다. 이에 비해 서양인들 은“드라이(감정이 메마른)”한 인상을 준다(Kaya 1999).

일반적으로 서양인은 슬픈 정서(wet emotion)에 대해 부정 적이며, 이점에서 Winnicott의 다음과 같은 말은 필자에게 놀라운 것이다:“센치멘탈리티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 쓸 모 없는 것이다(sentimentality has no place in the ma- nagement of children)” (quoted from“Deprivation and Delinquency” ).

이에 대해 Emdie는 옛날부터 젊은 분석가를 풍자해서“분 석후 파킨슨병 post-analytic parkinsonism”라고 부르는 농담이 있었다고 했다. 정신분석 교육에서‘분석 중에는 절 대적 중립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어서 파킨슨병 환자와 같이 무표정하고 경직된 얼굴이 되 고 만다는 것이다.

치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의사소통에서 정서적 의사소통 과 언어적 의사소통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서적 의사소통을 말로 표현하려면고 하면 파괴되고 만다

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본에서는 일상 생활에서도“말

해 버리면 귀중한 것이 파괴되고 만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고, 환상도 이미지도 말로 표현하고 나면 귀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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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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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언 어적 의사소통의 폭로성과 다른 여러 가지 결점을 지적하면 서, 임상이나 이미지 요법 시에 비언어적 치료와 정서적 의 사소통을 중시하는 치료자가 많다.

3. 정서와 언어가 대립되는 이유

정서가 왜 언어와 대립되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한데, 먼저 생각할 것은 정서가 의미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으로는 그 의 미가 불분명하고 일과성이라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정서 체험을 언어로 분류하고 정리한다던가 문장으로 만들어 고정시켜 직선적으로 배치해서 생각하게 되면 정서 체험 그 자체가 변질될 우려가 있다. 또 일본어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정서의 농도이며, 정서적이지 않은 사람은‘인정 이 없다’ 라고 비난 받기도 한다. 요컨대“gradation(균등한 분배)”라는 영어 처럼, 정서의 강함과 약함이 정서적 의사 소통의 메시지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nakiwarai, 울면서 웃는다”와 같이“희노애락”

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는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기란 굉장히 어렵고 어떻게든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려고 하면, 시나 예술적 표현의 힘 을 빌릴 수 밖에 없다. 언어는 명확성을 요구하고 선적(li- near)인 논리 전개를 강요하며 모순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 에 시적 표현이라는 특별한 방법 이외에는 뒤섞인 정서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애매한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언어의 편리한 점이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명확하게 되면 실제 체 험하고 있는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 에 정서는 언어에 의해 파괴되기 쉽다. 알기 쉬운 심리학의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한다면 정서적으로“양가감정(ambi- valent)”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언어적으로 양가감 정을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언어는 에디푸스적인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문법이라는 불문율이 있어서 언어는 제3자, 즉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초자아가, 더 알기 쉽게 말 하면 지금 이 장소에 없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하며 이것이 언어가 가지고 있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만약 알기 어려운 언어로 의사가 통한다면, 그것은 밀통이며 배 타적인 교류가 되어서 이해를 위한 언어적 의사소통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를 위해 일본어는“Wakaru, 알다 (understood)” 와“Tsujiru, 통하다(getting across)” 를 구 별하여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의 중복되 는 영역을 접어두고 단순화 시켜 말한다면, 일본어의 언어 적 의사소통은“알다”에 해당하고, 정서적 의사소통은“통

하다” 에 해당한다. 일본어의“Wakaru, 알다” 는 어원적으로 보면“Wakerareru, 나눠지다”라는 단어와 깊은 인연을 가 지고 있으며 분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고 카테고리로 분 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필자들은 글을 쓸 때 이미‘주로 언어만으로,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제 삼자도 알 수 있도록 쓸 것’ 을 지시 받고 있다.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높은 평가를 받고, 여기에 없는 누군가에게, 요컨대 익명의 제 삼자에게도“알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에디푸스적인 구조 인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처럼 여기에 있 는 상대, 즉 어머니, 친한 친구, 애인,“우리 아이” 등 눈앞 에 있는 사람에게만‘통하면 된다’ 는 식이 아니다.

일본어에서“Kanjyo, 감정”이나“Jyoucho, 정서”의 밀 통적 특징(secretive characteristic)은, 공통적으로 일본어 의“Jyo, 情”를 쓰고 있다. 일본어의“Jyo, 情”는 때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적 욕구나 깊은 욕구를 나타낸다.

정은 성욕을 의미하고,‘get accross one’s Jyo, 정을 통하 다’ ‘exchange one’s Jyo, 정을 나누다’ 라고 하면 육체관 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제 삼자의 관여를 거부 하는 당사자들만의 교류로“incestuous(근친상간)”이며 배 타적인 밀통이다. 달리 말하면 일본인의 情의 교류는 영어 로는 성교를 의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통의 교류를 의미 하는“intercourse”와 비슷한 말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무 매개적(without medium) 교류가 되기 쉽고, 이“무 매개 적”이라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몸을 포개다’라든가, 한 몸이 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와 같은 매개적 교류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이원론(dualism)에서는 정이나 정서 의 교류는“아는 것”이 아니라, 주로 특정의 누군가와“통 하는 것” 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 적으로 언어는 주로 여기에 없는 제3자가 알 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무엇보다 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한 의사소통에 이용되는 것이고, 이는 이 논문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언어우위의 논문에서는 지금의 필자의 정서는 배제되 고,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언어와 정서의 관계를 논하면서, 통

찰(insight)을“정서적 통찰(emotional insight)”과“지적

통찰(intellectual insight)”로 나눈 사람들에 대해 고찰해

보려고 한다. Sandler의 유명한 교과서“환자와 분석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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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야마 오사무

201 는 이 정서적 통찰(또는 情動的 洞察)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 나와 있는데 그는 Reid & Feinesinger(1952)의 논문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서적” 통찰에서는“정동이, 환자가 자신에 대 해서 이해하는, 통찰의 주된 내용이 된다. 더 명확하 게 설명한다면, 통찰을 통해서 정동의 의미를 이해한 다는 말이다.” 바꿔말하면,“정서적” 통찰이란“그 것이 환자에게 사실(그것은 정동일 수도 있고, 그렇 지 않을 수도 있다)을 의식시켜서, 정동적 반응을 일으키게 하거나,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통찰”이다.

그것은“역동적으로 효과적” 인 통찰이다.

정서적 통찰은“ahaexperience” (아, 그랬었구나 체험)와 비슷해서 자신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면 감정적이 되고, 때 로는 통찰을 얻는 순간, 웃거나 울거나하는 희노애락의 깊 은 정서체험이 일어난다. 프로이드의 보고에 의하면 어떤 히스테리의 여성환자가 프로이드의 정확한 해석을 듣고 웃 었다고 한다. 우리도 자신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얻었을 때,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감정 반응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경 험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찰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지식획득이 아니라 정서적인 반응이 동반되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정서와 언어의 이분법이 접점을 찾을 때 비로 소 정신분석 체험은 의미있는 것이 되며, 정신치료 중에 이 접점의 경험을 했다면 정말로 얻기 힘든 것을 실현한 셈이 된다. 그래서 정신분석 고유의 특징은 언어적인 것이라기 보 다는 정서와 언어가 섞여있는 것이며, 그 두 가지 사이에 다 리를 놓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적 통찰은 정신분석의 핵심 이며 이런 현상은 일본의 분석 치료자들 사이에서 오래 전 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와 같이 정서와 언어가 접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가 일치하기가 어 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런 언어 와 정서의 대립구조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대립은 공 (public)과 사(private), 정신(psyche)과 신체(soma), 남 성과 여성, 부성과 모성, 강함과 약함 같은 극히 일반적인 개인경험의 이중성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어 개념을 사용 한다면 안과 밖, 타테마에(겉마음)와 혼네(본심), 의무와 애 정과 같은 상황적인 대립 도식에서도 볼 수 있다. 흔히 정서 는 사적인 것이며 사정(私情)이라고도 한다. 사정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사적인 장소에서는 터놓고 표현해도 되는 것이다.

또 언어적 교류를 우선시하는 공적인 장소에서 청중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이해 받으려하는 것은 “ 아마에

(being too dependent, *한국어로는‘응석 부림’이나‘어 리광부림’ 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불 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역자 주)” 라 하여 흔 히 해서는 안될 짓으로 부정해 버린다. 그러나 사적인 장소 에서는 정서표현이 넓은 범위에서 허용된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그대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아마에”가 사 적인 만남에서는 쉽게 허용된다. 여기에는“이중 기준(do- uble standard)” 또는 이중 자기(dual self)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얼굴로는 웃고 마음으로는 우는”

이중성이라든가, 집안에서는 사자이지만 밖에서는 쥐새끼가 되는「內弁慶(집안 호랑이)」와 같은 자신의 이중화를 일본 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비교 문화 연구에서 흥미있는 것은 서양인에 비해서 동양 인은 자기부정의 경향이 강해서 자기평가가 자기비하나 겸 손 쪽으로 기울기 쉽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우울이나 절 망의 정도를 서양에서 개발한 척도로 조사해보면 일본인은 비교적 자신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다. 비교 문화심 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은 자신의 성공 원인을 타인에 게서 찾고 실패의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는 자기비판 성향이 현저하며, 이는 서양인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을 주 장하는 경향을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했다(北山忍, 1998).

이 현상을 일본인의 이중적 자기, 즉“double standard” 로 설명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임상가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적 자기와 사적 자기라는 이중자기 를 인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자학적 뒷바라지, masochistic caretakers」

(北山修, 1991)라고 부르는 자기비하나 우울을 중요한 특

징으로 하는 정신신체장애 환자나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일본인들의 수동적이며 부끄러움이 많은 표면적 자기

의 배후에는, 자기를 남들이 귀하게 봐주기를 원하는 자기

중심성이나, 상처받기 쉬운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을 강하게

원하는“아마에” 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환자들의 자

기비하의 배후에서 자기를 높게 평가하고“내 마음대로 살

고 싶다” 는 욕망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이면을 발견하는 경우

가 많다. 일본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인“자신을 죽이다

(killing oneself, 자기주장을 억누르다)” 라는 말은 자기주장

이나 자기표현을 억제하여 겸손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치료과정 에서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거침

없이 털어 놓는 일이 많다. 요컨대 공적으로는 자학적(ma-

sochistic)인 사람도 사적 영역에서는 가학적(sadistic)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부

분이다. 이런 현상은 어떤 일을 말로 표현해 버리면 재앙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KOTODAMA-S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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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靈信仰”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언어의 마술적 힘 에 대한 신앙이며 언어적 치료를 행하는 치료자가 관심을 둘 현상이다.

여기서 세 환자의 임상증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30세의 여성이다. 주된 증상은 우울이며 자 신을‘나는 바보다 바보다’ 하는 자책이 심했다. 어 릴 때 어머니에게 학예회 때 입을 의상을 만들어 달 라고 부탁했는데 밤을 새워 바느질을 하다가 어머니 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 께 못할 짓을 시키지나 않을까 늘 걱정했다. 실제로 몇 년뒤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휩싸여 우울감정이 심해졌다. 여기에는 주위 사람들이‘네가 나쁘다’고 책망했던 것도 한 몫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치료과정 에서는 어머니의 심장병 책임이 환자의 행동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지 만 환자는 계속 자기의 잘못을 주장했다. 그러나“무 죄”라는 치료자의 주장에 내심 기뻐하고 있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서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지만 치료자에 대한 신뢰감이 점차 커졌고 치료자의 도움을 받아서 환자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35세의 한 남성은 여러 가지 신체증상 과 대인 공포를 가지고 병원에 온 컴퓨터 기사였다.

어머니는 심한 신체 질환을 앓고 있었다. 환자의 가 장 자신 있는 일은 수리하는 것이었다. 장남인 환자 는 자신이 일할 수 없게되면 집안이 무너지고 말거 라는 생각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다. 자리를 비우기 가 일쑤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수리를 계속해 왔지만 드디어 탈진하여 회사 가기를 거부하는 상태에 빠지 게 되었다. 그는 타인을 잘 돌보면서도 자신을 돌보 는 것은 서툴렀고 또 화를 내거나 타인을 탓하는 것 이 서툴었다. 언제나 자책해 버리기 일쑤였다. 특히 환자의 과로가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과 관계있다 는 것을 인정하려하지 않았다. 드디어 치료실에서의 대화가 비밀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 서부터 그는 화난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 다. 특히 치료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신경증에 관해 쓴 기사를 잡지에서 보고 치료자에게 화가 났다는 말 을했고, 그런 것을 쓸 때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 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환자의 분노 표현이 자주 나

왔다. 치료자는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라는 것 을 알았지만 그것을 그대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오 히려 그는 치료자에게 분노를 표현하면서 한편으로 는 안도감을 몸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 고 있었다.

술장사 하는 갓 40세가 된 여성환자가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증상으로 병원에 왔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 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고생하는 것은 보람이며 기쁨 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환자의 관계를 표현하는 특 징적인 에피소드는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젖이 잘 안 나와서 아무리 빨아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할 때 치료자는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느껴 졌다. 그래서 그런 어머니의 결점을 말하기가 어려 운 듯하다고 말해 주었다.‘마치 어머니에게 뭔가 금지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요’라고 지적 하자“그런 것을 여기서 말해도 됩니까”라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치료자도 자유를 속박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그 뒤 1년 정도 가 지나서 공격적인 표현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제는 잘 잘 수 있을 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인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내가 곧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주 세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 지 않아요’ 라고 웃으면서 어리광을 부리듯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증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인을 정신분석 치료 할 때, 분석가가 환자의 마음 속에서 공적인 영역에 속해 있 는 한 환자의 정서는 언어화 되기 힘들다. 환자는 치료자가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일단 기본적 신뢰(basic trust)와 안도감을 느낀 다음에야 비로소 강한 정서적 표현 이 흘러 나온다. 그래서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일본인 은 말수가 적어서(quiet Japanese) 정신분석적 치료가 불 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단 치료동맹이 형성 되어 환자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나 마음의 비밀이 지켜질 것 을 알게되면 일본인도 아주 말 수가 많아진다. 일본인의 겸 손은 현실 적응적일 뿐 겸손의 뒤편에는 강한 공격성이 숨 어 있으며, 나약함과 강한 [아마에]가 숨어 있을 수가 있다.

필자는 이런 일본문화에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감추는 경향, 즉“진정한 자기, true self”를“공적인 자기, public self” 로 감추는 경향을“봄의 금지, prohibition of looking”

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은 진정한 자신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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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습을 드러냈을 때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는 예상이 감소되고

신뢰관계가 확립될 때까지는 본래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언어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서로는 그것이 전달되는 일이 빈번하며, 이런 종류의 사적인 생각 은 언어적 교류의 배후에서 비언어적으로 활발하게 전해지 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오늘은 제가 건강하게 보일지 몰라 도 실은 기운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의 사는 환자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해도 그가 힘든 상황 에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말로는 자신있게 얘기 해도 왠지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숨겨진 슬픔을 치료 자는 비언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양자간 의사소통의 안과 밖 (Internal and External Twobody Interchange)

1. 이중적 의사소통

동양인은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배 려하는“타자중심, other-centered” 의 경향이 강하지만 서 양인은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는“개인중심, self-cen- tered”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그 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차이일 뿐이고, 동양인의“타자중심”

의 이면에는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과거의 미-일 비교연구를 통해서, 일본인은 서양인에 비하여 타인의 감정을 알고 싶어하고, 감정에 대 해서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i- roshi Azuma(1994)에 의하면 일본인의 타자중심적 경향 은 일본의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육아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일본 부모는 아이들에게 주위 사람들의 기분이나 마음을 살피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 본인의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언어적 의사소통의 이중성도 그 기원을 일본부모의 육아방식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公的인‘언어적 의사소통’과 私的인‘정 서적 의사소통’의 이중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자관 계에서“열려진 양자 관계, open two-body relationship” , 또는“함께 보기 viewing together” (공동주시 또는 공동주 의로 번역되어짐)를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가 소속한 큐우 슈우 대학에서 지금 이에 대한 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 어 왔고, 임상에서는 이 연구결과를 장애아들에게 적용하려 는 시도를 하고있다. J. Bruner 등은 이를“공동주의 joint attention”라고 불렀다.“공동주의 joint attention”의 기본

개념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나의 사물을 바라 보는 것으로, 주로 모자간에 이루어지는 언어습득이나 문화 계승의 방식이다.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 현상에 대해 서 주목하는 연구자가 있었고, 야마다 요오꼬씨는 이것을“3 항 관계(三項關係) three-term relationship” 라고 불렀다.

다음 Fig. 1은“joint attention” 이라는 논문에 나오는 것 으로“The Formation of Symbols” 라는 책의 저자가 직접 그린 것을 수정한 것이다(Werner & Kaplan). 세 개의 원 이 중복되어 있고 3자가 균등하게 참가하여 어머니와 아이 가 대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세대 간에는 관습 적인 코드나 언어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코드가 문화적으 로 전달되는 기 때문에“공동주의 joint attention”가 문화 계승에 일반적으로이용된다. 또한 연구자들의 보고에 의하 면 장애를 가진 어린이나 장애시설에서 자란 어린이는“공 동주의 joint attention”이 어려운데 이는 장애시설에서는 대상을 함께 보며 공유하고 획득하고 사용하는 기회가 제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Viewing Together” 의 모양도 문화적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언어라는 것은 특정 문화에서 발생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 라 그 언어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필자는 문화가 인간관 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그림에 나타 난 모자상의 연구를 계속해 왔다. 예술가에게 배우는 연구 자라는 자세를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여 알게 된 것은 이“원 상징적 삼각 관계(protosymbolic triangle)” 에 언어적 의사 소통과, 비언어적인 정서적 의사소통, 그리고 신체적 의사소 통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Fig. 1. 문화 문화 문화 문화 속의 속의 속의 원초적 속의 원초적 원초적 원초적 공유 공유 공유 공유 상황 상황 상황(Adamson & McArthur 1999).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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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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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겠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 로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이다. 이 그림이 그려지던 시대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 표정이 풍부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우선 마리아와 그리스도는 대상을 공유하고 있다(Fig. 2).

무표정한 마리아 쪽이 주도하는 가운데 성모와 그리스도 사 이에 언어적 의사소통과 정서적 의사소통이 함께 이루어지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의 명화에서는 성 모자상의 그림이나 일반 모자상의 그림을 막론하고 이런식의 정서적 의사소통을 보기가 힘들다.

한편, joint attention은 공동행위(joint action)를 동반한 다. 언어습득이나 문화계승이 이루어질 때 어머니와 아이가 반드시 시각적으로 같은 대상을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머니와 아이가“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란 말의 의미 는“같은 일에 관여하고 있을 때”라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심리학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Fig. 3). 이와 같은 joint attention이나 joint action, 그리고 그 변형(variation)이 일본의 풍속화(Ukiyoe)에 그려진 모자상의 30~40%를 차

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보고한 대로이다. 그러므로 이 현 상은 적어도 일본에서는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 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예술가의 감수성으로부터 배울 필요 가 있다고 생각한다.

joint attention의 이 자세는 모자상 뿐만 아니라 연인이 나 가족 같은 성인 커플의 그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것이 일본의 임상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joint attention을 반복하는 심리요법이 일본에 많기 때문이다. 그 림 속의 어머니와 아이가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공 유하는 것과 같이, 치료자와 환자가 모래상자 요법에서는 모 래상자를, 음악요법에서는 음악작품을 공유하는 것이다. 대 부분의 정신요법에서도 치료자와 환자는 사물을 공유하고 그 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정신분석의 자유연상법에서도 당연 히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필자는“joint-attentive position”

의 심리학적 의의를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joint-attentive position”의 내용도 다양하다.

대상을 발견하고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쫓아 어머니도 같 은 대상을 응시하는 경우도 있고 어머니가 보여주는 대상에

Fig. 2.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 다빈치[베누아의 베누아의 베누아의 베누아의 성모 성모 성모 성모]. “ The Benois Mad- onna” by Leonardo da Vinci(The state Hermitabe Musium, St. Petersburg, Russia).

Fig. 3. 歌 [婦人相學捨體風車].“Mother blowing a Pinwheel for her son”by Kitagawa Utamaro(The Fine Arts Museum of San Francisco, San Francisco,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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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야마 오사무

205 아이가 눈길을 줄 때도 있다. 그리고 아이와 어머니 두 사람

이 동시에 뭔가를 쳐다보다가 어머니가‘금붕어’하면 아이 가‘금・붕・어’라고 그대로 따라서 대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2. 정서적 의사소통

풍속화는 300~100년 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판화 예 술이지만 수 많은 모자상이 발견되었고 현재 필자가 발견한 모자상 만해도 400장이 넘는다. 모자상의 풍속화를 일본 사 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모자간의 의 사소통에 대해 물어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언어적 의사소통 과 비언어적 의사소통, 즉 정서적・신체적 의사소통의 양면 을 보았다. 그리고 감상자의 대부분이 따뜻함, 안도감, 신뢰 와 의존 등의 비언어적 메세지를 읽어 냈다.

이와 같이 대상의 공유와 언어적 의사소통, 그리고 그것 을 지적으로「생각하는 것(contemplating, finding out, D.

Freeman)」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따마로의 그림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모자상의 그림에서 어머니의 팔이 아이를 든든하게 껴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 적 의사소통을 하면서 동시에 모자간에 신체적, 정서적 의 사소통, 즉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풍성하게 이루어져서 정서 적인 끈(emotional bond)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습은 한국이나 중국의 그림에서도 찾 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와 자, 양자 간 에 일어나는‘양자간의 의사소통(intradyadic communi- cation)’과, 모자와 제 삼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양자 외의 의사소통(extra-dyadic communication)이 동시에, 이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예술작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정신치료 역시 양자간 의사 소통과 양자 외의 의 사 소통이 동시에 일어 나기 때문에 적용해 볼수가 있다. 즉 정신치료에서도 치료자와 환자 두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 고 언어적 의사소통(extra-dyadic communication, 말로 마음을 표현하기)을 할 뿐만 아니라,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는 비 언어적 의사소통(intra-dyadic communication)이 일어 난다.

한편 Fig. 4의 우따마로의 그림은 어머니와 아이가 우산 에 뚫린 구멍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어머니의 팔이 든든하 게 아이를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양자간의 의사소통(intradyadic commu- nication)’이 섬세하고도 천재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본다.

이런 그림을 보여주면 정신분석가들은 Winnicott(1953) 의“이행기 대상(transitional object)”을 떠올리는데, 이 역시 눈에 보이는 물질적 대상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고 그

보다는 오히려 모자관계의 결합(bond)과 거리(distance)를 상징하는 말이다. Winnicott는“capacity to be alone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을 강조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에 덧붙여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능력 capacity to be together」

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Winnicott(1972)는“holding and interpretation”이란 말을 어느 성인 환자의 치료기록의 제 목으로 썼는데, 이 제목은 필자가 말하는“intra-dyadic communication(*interpretation ;역자 주) ”과“extra- dyadic communication(*holding;역자 주)”의 두 종류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언어와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일본에서 관심을 끌게 된 것 은 Caudill(1969)이 생후 3~4개월의 유아에 대한 어머니 의 태도를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여 발표하면서 부터 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미국의 어머니는 언어적인 어프로치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일본의 어머니는 말은 적게하고 오랫동 안 유아 옆에 있어 주고 돌보며 쓰다듬어 준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공동주시(joint attention)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 과 같이 여기에 그려져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Fig. 4).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아이

Fig.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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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206

는 알고 있고 어머니는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한가지 대상을 향하여 함께 주의를 기울이며 서로 통하는 양자 간의 의사소통의“횡적 연결” 이 있어서 언어적 의사소통과 정서적 의사소통의 이중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 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언어가 모자간의 의사소통의 주요 매개체가 되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언 어라는 매개물이 역설적으로「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만든 다는 것이다. 물론 발달 심리학적으로 볼 때 양자간의 의사 소통의 발달 순서는 껴안는 것과 정서적 결합(emotional bond)이 먼저 형성되고, 다음으로 언어라는 중개물을 통하 여 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ig. 5의 풍속화에서는 배 위에서‘불꽃놀이다!’라고 기 뻐하는 조금 큰 아이를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붙잡고 있 다. 뱃사공이 이들을 지켜주고 있고조용히 흐르는 강물이 이들을 감싸주고 있다. 아이를 중심으로 주변을 보호해 주 는 이런 구조없이 이런 놀이는 성립할 수가 없다. 만약 태풍 이라도 온다면 엉망이 돼버릴 것이다. 이렇게 감싸주는 상 황에서 불꽃은 모두를 이어주면서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요약해 보겠다. joint attention의 이중구조, 3항 관 계(three-term relationship), 그리고 원상징적인 3각관계 (proto-symbolic triangle;*어머니-아이-대상물의 삼각 관계:역자 주)를 요약해 보겠다(Fig. 6). 어머니와 아이 그 리고 대상물이 있다. 아이가 주목하고 있는 것에 어머니가 이름을 붙여 주고 아이를 든든하게 붙들어 주고(holding) 있다. 이렇게 붙들어 줄 때에 둘 사이에 정서적 교류가 적극 적으로 이루어지며 유대관계(emotional bond)가 성립된다.

필자는 이러한 원상징의 삼각관계(proto-symbolic tri- angle)는 에디푸스 삼각관계가 등장하기 전에, 모자관계에 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경 험은 반복된다. 언어란 부성적(父性的)인 것이라고 하지 만 언어의 습득은 모자관계에서 시작되어서 이런 삼각관계 속에 차 세대로 계승되어 마침내 에디푸스적인 표준 언어 (Oedipal standard language)로 이어진다. 원상징의 삼각 관계(proto-symbolic triangle)안에서 일어나는 의사 소통 은 외부 대상을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으로 공유하고 여기에 정서적/신체적 의사소통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배타적 구조와 의미 축소의 구조는 이미 이러한 원상징적인 삼각관계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어머니가 어떤 경험과 사물에 이름을 부치는 언어적 의사소통을 아이와 하다 보면 정서적 의미나 다른 의미들이 왜곡되거나 사라진다:역자 주). 여기에서 어떤 어머니는 개인적 경험과 사물에 왜곡된 의미와 이름을

부여할 것이고 다른 어머니는 경험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 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생초기에는 이런 방 법 외에는 언어를 통한 의미 세계(meaningful world)와 접 촉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이름이 부쳐지면서 아이는 의미 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이윽고 본격적인 언어세계 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이중적 의사소통은 그림에서 볼 수 있을 뿐 만아니라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Yasujiro Ozu의 영화가 이것을 잘 보여 준다.

끝으로 나는 모자 상을 그린 여러나라의 그림들을 비교해 보고자한다. 사실 일본의 모자상 풍속화와 비교할 만한 다 른 나라의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서양의 명화에는 이런 정서적인“joint attention”이 매우 적다. 서 양의 그림은 모자간의 강한 정서적 의사소통을 소재로 하는 것을 피하는 듯하다. 모자 상의 그림 자체가 일본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어서 성모와 아기 예수의 그림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성 모자 상에서는 Fig. 7에서 볼 수 있는 바와

Fig. 5.

Fig. 6.

(10)

기타야마 오사무

207 같이, 적어도 일본인의 눈에는, 확실히 모자간에‘거리가 있

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당연히 개인주의와 에디푸스 콤플 렉스가 표현된 것이라고 본다. 즉 대부분의 경우 아기는 어 머니 마리아를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하늘에 있는 아버 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아기는 어머니를 부르기 위해서 무언가 말해야 했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만나기 위한“진리(logos)”를 말하고 공유해 야 했을 것이다(*아기가 어머니의 관심을 확인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고, 어머니와 하나됨이 확인되면 천국이 된 다:역자주).

국가간 육아 비교연구의 다른 연구에서(Bornstein et al 1992), 서양 육아는 아이의 관심을 안에서 밖으로 향하게 하는데 반하여 일본의 경우는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는 경향 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렵민족으로서 자립에 가치를 둔 서양과 농경민족으로서 상호의존(interdependency)에 가 치를 둔 일본을 비교하면 육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인간 관계나 정신치료 방향설정에서도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실제의 육아나 그림 속의 육아는 비교관찰이 전보 다 훨씬 수월해졌다고 하겠지만 임상적인 비교는 어렵다.

정서 표현의 문제는 특히 남녀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이 문

제에 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외래 정신 요법 클리닉에서 주로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취급하는데 외래방문 환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외래에서 여성들은 정 서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동시에 감정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성들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안으로 만 숨긴다. 이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나약함의 상 징으로 보는 문화적인 배경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일본어로“OKU-BYO”는 영어로 겁쟁이라는 말인 데“BYO”는“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특히 남성은 불안 같은 정서를 드러내 놓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상과 같이 일본과 서양의 비교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1) 일본인은 서양인과는 달리 실제의 정서체험이 언어 표 현의 배후에 깊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적어도 일본에서는, 육아를 포함한 타인과의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는 언어적 의사소통과 정서적 의사소통이 공존하는 것을 쉽 게 볼 수 있다. 3) 정서적 체험을 언어화해서 그것을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바꾸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 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정서적 의사소통을 그대로 유지하 려고 하는 경향과 이를 신체화하려는 경향이 높고 빈도도 높다.

결 론

본 논문에서는 언어적 교류와 공존하는“emotional bo- nding” 또는“intra-dyadic communication”의 중요성을 논했다. 이것들은 두사람의 정서적인「끈」,「연결고리」가 강하다고 하는, 지금까지 일본인의 모자관계나 인간관계에 대한 국가간 비교연구에서 내린 결론과 같다. 나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가는가를 고찰하였고, 양자간에 언어 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에 동시에 진행되는 양자간의 내적 교류에 대하여도 고찰 하였다. 이것은 언어로 표현되 기 어려운 내용이다. 오히려 시각적으로 전하는 것이 쉽다.

회화가 시각적으로 그 현상을 잘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 은 실제의 모자관계와는 다를 수도 있으므로 보다 많은 관 찰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한편 임상감각을 가지고 모자관계의 발달을 보아온 오꾸노 요오꼬씨는 모자 관찰을 통하여 일본인의 모자관계는 감정이 풍부하며, 대상을 매개 로 한 언어교류가 풍성하다고 하였다.

私的 자신과 公的 자신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일본인에 게 요구 된다. 또한 내적인 情緖的 의사소통과 외적인 言語 的 의사소통의 이중성을 유지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일 본인의 자아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라고 한다면, 일본인의 성 장을 돕는 정신분석가나 정신치료자는 결코 언어적 의사소

Fig. 7.

(11)

정서와 언어-동양과 서양

208

통을 위해서 정서를 언어에 통합 시키는 것 만을 목표로 해 서는 안될 것이다. 언어화되지 않았더라도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정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교류의 첫 걸음은 성 공했다고 할 수 있다. 비언어적인 교류의 실재와 그 중요성 을 실증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 나 내가 보여드린 것 처럼 예술가들이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들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지금 까지 나는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면서, 내가 잘 알고 있는 일본인에 관한 정보를 인용하여 동양적인 것을 논했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 일본인 그리고 다른 아시아 인들 사 이에도 정서적인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분명한 차이가 있겠 지만 아직까지 학문적으로 논의되어진 일은 그다지 많지 않 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상호 이해를 위해서 우리들 아시아인이 서로의 차이나 공통점을 인정해야 할 단계에 이 르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신분석, 그리고 문화비교나 모자관계의 연구가 우리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 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ƒ 감사의 글

먼저 나를 초대해 주시고 열심히 준비해 주신 이무석 교 수에게 감사를 드리며 국립 전남대학교 병원의 90회 생일 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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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Fig. 1.  문화 문화 문화 문화  속의 속의 속의  원초적 속의 원초적 원초적 원초적  공유 공유 공유 공유  상황 상황 상황(Adamson & McArthur 1999)
Fig. 2.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 다빈치[베누아의 베누아의 베누아의 베누아의  성모 성모 성모 성모]. “ The Benois Mad- Mad-onna” by Leonardo da Vinci(The state Hermitabe Musium, St

참조

관련 문서

※1:ニールセン「TOPS OF 2018: DIGITAL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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