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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論介)의 애인(愛人)이 되어서 그의 묘(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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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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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論介)의 애인(愛人)이 되어서 그의 묘(廟) *

한용운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 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同時)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 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

나는 황금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回想)한다.

술 향기에 목맺힌* 고요한 노래는 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 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은 귀신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핀*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無毒)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 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 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朝雲)이냐 울음의 모우(暮雨)이냐 새벽달 의 비밀이냐 이슬꽃의 상징(象徵)이냐.

빠비* 같은 그대의 손에 꺾이우지 못한 낙화대(落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醉)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밟히운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교긍(驕 矜)*에 넘쳐서 푸른 사롱(紗籠)*으로 자기의 제명(題名)을 가리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 릅니다.

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 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 는 까닭압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 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 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 친 한(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 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의 곡조를 낙인(烙印)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 에 제종(祭鐘)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세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를 아니 한 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 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시집 『님의 침묵』, 1926)

* 묘(廟) : ‘종묘’와 ‘문묘’를 두루 이르는 말. ‘종묘’는 역대 와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祠堂)이며, ‘문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이다. 여기서는 이와 달리 일반적인 ‘사당’의 뜻으로 쓰였다.

* 살 : 화살

*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 당년(當年) : 그 때, 그 당시.

* 목맺힌 : 목 메인.

* 가냘핀 : 가냘픈

* 빠비 : 수정(水晶)을 뜻하는 ‘파리(玻璃)’로 파리는 불교의 칠보 (七寶)의 하나임. 한편 이를 ‘삘기’(띠와 같은 풀의 어린 순)로 보기 도 한다.

* 교긍(驕矜) :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스스로 믿어 잘난 체하며 뽐 내느 것.

* 사롱(紗籠) : ‘사등롱(紗燈籠)’의 준말로 ‘사초롱’이라고도 함. 여 러 가지 빛깔의 깁(비단)으로 거죽을 바른 등롱을 가리킨다.

* 천추(千秋) : 오래고 긴 세월. 또는 먼 미래.

* 한용운 : 한정옥(韓貞玉). 만해(萬海). 한유천(韓裕天). 충청남도 홍성 출생(1879), 동학에 가담하였으나 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 세암에 들어감(1896),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 립 선언서」에 서명(1919), 신간회 중앙 집행위원(1927), 월간지 『불 교』 발행인(1930), 사망(1944).

◈ 해석

이 시는 기승전결의 4단 구성을 지닌다. 기(1~6행)는 ‘논개의 애 국심에 대한 추모의 정’을, 승(7~14행)은 ‘논개에 대한 회상’을, 전 (15~26행)은 ‘논개에 대한 연민과 속죄 의식’을, 결(27~31행)은 ‘논 개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추모의 정’을 드러내고 있다.

유장한 산문적 리듬을 바탕으로 비장한 어조로 논개의 충혼을 추 모하고 예찬하며, 논개와 같은 굳은 의지와 절개로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성찰하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 를 통해 역사적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시적 이미지 외에 감상의 중점이 되는 표현은 ‘역설’이다. 정(靜) 과 동(動)의 모순【가지 않는다↔흐른다, 선다↔달음질친다】, 존재와 부재의 모순【있다↔없다, 죽지 않는다↔살 수 없다】, 기쁨과 슬픔의 모순【웃음↔울음, 즐거움↔슬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화자가 ‘논개’를 애인으로 호명하는 점이 주목된다. 제목에 서도 드러나듯이, 화자는 논개를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인물로 간 주하지 않고, 자신에게 즐거움과 슬픔, 눈물과 울음을 동시에 주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화자가 논개의 애인이 된다 는 것은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역사 적인 차원에서 그녀의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애인’처럼 사모 하면서 그것을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 다.

반영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2)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논개의 정신적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따르 겠다는 다짐이나 논개를 기리고 예찬하는 정신은 일제 강점기 암울 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의지를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상호텍스트적 관점에서 보면, ‘논개’가 갖고 있는 의미는 시대적 비극을 일깨워주는 존재에서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존재, 추모 와 예찬 및 정신적 교감의 대상, 조국애와 민족애를 실천으로 보여 준 존재로 점차 확대됨으로써 결국 「님의 침묵」의 ‘님(당신)’과 동 일한 존재가 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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