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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식 원장: 극빈자들의 아버지, 영등포의 슈바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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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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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HYSICIAN OF KOREA

J Korean Med Assoc 2017 March; 60(3):213-215

pISSN 1975-8456 / eISSN 2093-5951 https://doi.org/10.5124/jkma.2017.60.3.213 영등포의 슈바이쳐 213 선우경식 원장은 1945년 7월 31일 평양에서 아버지 선우 영원 베드로 옹과 어머니 손정복 빌리짓다 여사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미국 Kingsbrook Jewish Medical Center Brooklyn N.Y.에서 내과학을 전공했다.

해방동이로 평양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난민수용소에서 생활했던 그는 군인이 되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외삼촌이 전사하자 부모님이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를 원했고 선우 원장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는 길 을 택했다. 그러나 의과대학에 다니면서도 모태 신앙에 따른 신념이 그를 방황하게도 만들었다. 실제로 그는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성소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동안 고민하기도 했었 다고 한다. 이런 성품이 1984년부터 ‘작은형제회 재속회’ 회 원으로 평신도이면서도 성직자에 준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밑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귀국 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등을 하면서

선우경식 원장: 극빈자들의 아버지, 영등포의

슈바이쳐

신 완 식 | 요셉의원

Dr. Kyoung Shik Sunwoo: father of homeless,

Schweitzer of Yeungdeungpo

Wan-Shik Shin, MD Joseph Clinic, Seoul, Korea

Received: February 10, 2017 Accepted: February 27, 2017 Corresponding author: Wan-Shik Shin

E-mail: [email protected] © Korean Medical Association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 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약력: 1945년4월평양에서출생  1970년가톨릭대학교의과대학졸업,의사자격취득 1973년미국KingsbrookJewishMedicalCenterBrooklynN.Y.내과수료 1987년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부설요셉의원개원 1997년서울영등포현위치로병원이전 2001년올해의자랑스러운가톨릭의대인상 2003년올해의자랑스러운서울인상 2003년호암상사회봉사상 2005년대한결핵협회복십자대상(봉사부문) 2007년백강사회복지봉사상 2008년4월26일지병으로선종 2008년대한민국정부국민훈장동백장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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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대한의사협회지

J Korean Med Assoc 2017 March; 60(3):213-215

주말 무료진료 봉사를 하다가 평소에 마음먹었던 무료 자선 진료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뜻있는 이들과 함께 요셉의원 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요셉의원은 노숙자, 행려 자, 알코올의존증 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이 찾는 병원이라 늘 퀴퀴한 냄새가 나고 분위기가 어두울 때가 많다. 게다가 가끔씩 술 취한 환자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욕설까지 퍼 붓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는 사람 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곳에서 터뜨린다고도 할 수 있다. “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어린 아기가 엄마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우는 것과 같은 거예요. 우리가 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마음을 털어 놓겠어 요? 우리가 힘들더라도 참고 받아 주어야 해요.” 생전에 선우 원장이 늘 하던 이야기다. 하기는 선우 원장도 처음부터 이 어려운 길을 걸으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한 환자들을 도와야한다 는 단순한 생각 하나로 뛰어든 무료진료 사업. 그것이 얼마 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일 을 시작했어요. 당시를 되돌아보면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 이 무조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 하나로 덤벼들었지 요. 하다가 능력이 모자라 문을 닫아도 이 길이 바로 하느님 께 영광을 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무서 울 것이 없었어요.” “좀 모자라서 제 것 못 챙기며 속 썩이 는 자식을 가장 염려하고 마음 쓰는 게 부모이듯, 의사인 나 는 가장 속 썩이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모든 의료행위의 ‘꽃봉오리’라고 여긴다. 돌이켜보면 요셉의원 환자들은 내게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환자 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이렇게 귀한 선 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우 원장이 요셉의원 개원 20주년에 즈음해서 개원 당시를 회고하면서 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돈을 미리 준비해 서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순탄한 길이 될 수 없었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 약해지면 안 된다. 무슨 방법이든지 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염치불구하고 가까운 동창들 이 운영하는 병원에 환자를 떠맡기기도 하고, 대형병원에 찾 아가 입원시켜달라고 떼 아닌 떼를 쓰기도 했다. 가난한 사 람이라고 치료를 소홀히 할 수는 없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차츰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병원은 그래도 멈추지 않고 한걸음씩 앞으 로 움직여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환자들을 20여 년간 돌보면서 어려움 이 얼마나 많았을까. 너무 힘들어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차라리 몸이 아프기 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해 보곤 했어요. 그 핑계로 좀 쉬어보고 싶었어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하면 왜 그 힘든 일을 붙들고 있느냐고 반문을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 다고 했다. 그 때마다 그는 혼자서 “힘들어도 말로 표현하기 는 어렵지만 나만이 아는 기쁨과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라 고 자답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결국은 그 힘든 멍에를 벗고, 그렇게 사랑하 던 가난한 이들의 손을 놓고 하느님 품으로 가게 된 것은 하 느님이 “이제는 내 품으로 오너라.”하고 배려를 해 주신 것 이 아닐까. 2008년 4월 18일 선우경식 원장은 많은 사람들 의 애도 속에 눈을 감고 선종했다. 향년 63세. 명동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다음 과 같이 고인을 기렸다. “요셉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버 림받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원장님은 환자들을 하 느님께서 보낸 선물, 보물로 생각했습니다. 고인은 항상 자 신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에 맡겨진 불쌍한 사람들의 착한 이웃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분이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희생과 봉사정신은 이 각박하고 거친 세상 속에서 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등불이 될 것입 니다. 선우 원장님의 뜻이 더 많은 이들을 통해 널리 퍼지기 를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선우 원 장님의 평생은 마치 살아있는 성인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선우 원장의 고등학교 동문인 조창환 시인은 장례미 사에서 “어두운 곳에 놓아두어도 촛불은 빛을 발하듯, 말없 이 조용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모여든 수많은 자원봉사자 들과 후원자들이 요셉의원을 도왔습니다. 덮고 감추어도 향 기는 번져나가듯 당신이 나서지 않아도 말없이 지켜보고 부 끄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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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슈바이쳐 215 Shin WS•Schweitzer of Yeungdeungpo

서 행한 가장 큰 일은 병든 이를 고쳐주고 가난한 이들의 눈 물을 닦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더 큰일은 차갑 게 얼어붙은 우리의 양심, 어둡고 그늘진 곳에 파묻어둔 우 리의 사랑을 일깨워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낸 것이었습니다. 국가와 교회, 우리 동네가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을 때 당신이 말없이 뿌린 씨앗 하나가 이제 줄기를 뻗고 가지 를 뻗고 잎을 퍼뜨려 크나큰 그늘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라고 그를 기렸다. ORCID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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