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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프로망제론: 그림-기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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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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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프로망제론:

그림-기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Deleuze ’ s Reading of Fromanger : How Does Painting - Machine Work ?

성기현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Gi - Hyeon Seong

/ SeniorResearcher, InstituteofHumanities, SeoulNationalUniversity

Ⅰ. 들어가는 글

Ⅱ. 예술작품-기계란 무엇인가?

Ⅲ. 프로망제의 그림-기계 1. 부품

2. 작동방식

3. 효과: 두 개의 순환

Ⅳ. 나가는 글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B5A070868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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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연구는 들뢰즈의 기계 개념을 통해 제라르 프로망제의 신구상주의 회화를 고찰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랜 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에서 들뢰즈는 ‘형태의 재현(구상)’과 ‘힘의 포착’을 대립시키면서 후자에 우위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프로망제론에서 우리는 구상 내부의 회화적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다른 회화론을 발견한다. 여기서 문제는 구상 자체를 과격하게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색을 통해 그 속에 새로운 운동을 불어넣는 데 있다. 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는 프로망제의 그림-기계를 분해하고 그것의 작동방식을 탐구하여 그것 이 야기하는 효과를 밝혀낸다. 그가 보기에, 프로망제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상품 이미지들로 가득찬 세계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다른 무언가를 활성화시킬 것인가?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들’ 속에 ‘내일 의 생명을 구성할 색채적 운동’을 불어넣으면서, 프로망제는 구상 속에서 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한다.

핵심어|그림-기계, 기계, 신구상주의, 제라르 프로망제, 질 들뢰즈

ABSTRACT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Nouvelle Figuration paintings of Gérard Fromanger by means of a Deleuzian concept, the machine. As is well known, in Francis Bacon, Logic of Sensation, Deleuze sets

‘capture of force’ against ‘representation of form (figuration)’, and gives priority to the former. But in his essay about Fromanger, we can find a different theory of painting that advocates pictorial struggles inside figuration more affirmatively. In this case, the point is not to extremely transform figuration, but to bring about new movements inside it through colors. To explain these movements, he disjoints Fromanger’s painting-machine, explores its operation, and elucidates its effect. In his point of view, the critical mind of the painter is summarized as follows. Leave the world full of merchandise images as it is, or activate something else inside it? Imbuing “the ugliness and the disgustingness” with “movements of colors which will constitute tomorrow’s life,” Fromanger creates a new way of overcoming figuration inside figuration.

Key Words|Gérard Fromanger, Gilles Deleuze, machine, Nouvelle Figuration, painting-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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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

이 연구는 질 들뢰즈(GillesDeleuze)의 기계(machine) 개념을 통해 신구상주의(Nouvelle Figuration)1의 핵심 인물인 제라르 프로망제(Gérard Fromanger)의 연작 <화가와 모델>을 고찰한다. 가시오 탈라보(GérardGassiot-Talabot)는 신구상주의를 서술적 구상(Figuration Narrative)2이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이 잘 보여주듯 신구상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추상 미술이 철저히 제거했던 구상을 재등장시킨다는 데 있다. 신구상주의 작가들은 주로 방송, 광 고, 쇼 윈도우 등 범람하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뚜렷한 윤곽, 평면적인 구성, 인공적인 색채 로 조형화한다. 이러한 특징은 일견 팝아트와 유사하지만, 대부분의 신구상주의 작가들은 그렇 게 이해되기를 거부한다.3 그들이 보기에, 팝아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삽화에 불과한 데 반해 자신들은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구상주의 작가들은 뚜렷한 정치적 성향 을 지닌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반-파시즘적인 태도를 취했고 일부는 마오주의 등 사회주의 활동에 가담하기도 했다.4

프로망제 역시 68혁명 시기 정치적 투쟁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이른바 민중공방(atelier 1. 신구상주의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술계의 상황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사회와 예술을 엄격히 분리하고 예술의 전적인 자율성을 주장하는 이론(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모더니즘)과 실천(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추상표현주의)이 화단을 주도하고 있었다. 프랑스 에서도 사회적 현실과는 무관한 즉흥적·서정적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아르 브뤼(Art brut)와 앵포르 멜(Informel)이 그 예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1960년대에 이르면, 물질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네오 다다(Neo Dada)와 팝아트(Pop Art),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 즘(Nouveau Réalisme)과 신구상주의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글항아리 2017), pp. 136- 173 참조.

2. 그는 1967년 파리의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일상의 신화들> 전시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

이야기를 담는 서술성 혹은 일화라는 요소를 너무 부끄럽게 여겨왔다. 그리하여 더 이상 무엇을 표현하는지 정 확히 알 수 없게 되었으며, 특히 추상회화의 문맥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나] 이제 오늘날의 많은 화가들 은 일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장-루이 프라델, 『신구상회화』, 박신의 옮김 (열화당 1991), pp. 14-15 (번역 일부 수정, [ ]는 연구자).

3. 김지혜, 「프랑스 68혁명과 예술운동 - 예술의 대중화와 정치화」, 『마르크스주의 연구』 5권, 2호 (2008), pp. 76- 98 (DOI: 10.26587/marx.5.2.200805.004), p. 95 참조. 프로망제도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질문자: (지금이 든, 과거에든) 자신을 팝아트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프로망제: 아니오. 지금도, 과거에도 그 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 문답은 2015년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세계는 '팝'으로 향한다 The World Goes Pop》 전시의 연계 인터뷰 중 일부로,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s://www.tate.org.uk/whats-on/tate- modern/exhibition/ey-exhibition-world-goes-pop/artist-interview/gerard-fromanger (2021년 3월 30일 최종 접속).

4. Sarah Wilson, The Visual World of French Theory: Figurations (New Haven/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0), p.

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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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ulaire)을 주도하면서 수천 장의 정치적 포스터를 제작·배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 로망제는 혁명기의 예술, 정치와 예술의 관계, 팝아트와 신구상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의 작품이 사진을 토대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사진과 회화의 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될 수 있는 화가다. 그러나 활발한 정치적 활동5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은 형식적 측면보다는 주로 내용적 측면에서, 특히 작품이 담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와 관련해서 연구되어 왔다.6 그런데 들 뢰즈는 미술사학계의 이런 일반적인 연구 경향과는 크게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기계 개념을 통해 프로망제에 대한 독창적인 미학적 논의를 전개한다.7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논의 는 프로망제가 만들어낸 그림-기계의 부품, 작동방식, 효과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데서 성립한 다.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은 그의 다른 예술 관련 논의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8 우리 가 보기에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편으로는 텍스트가 전시도록의 형태로 출판되어 광범위하게 읽히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여러 이론적 참 조점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참조점들은 대략 다음의 세 종류로 구별된다. 1) 들뢰즈 자신의 다른 저작들에 대한 참조. 여기에는 『차이와 반 복』의 팝아트 관련 논의, 『안티 오이디푸스』의 기계 개념, 『프루스트와 기호들』 2부와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하여』의 예술작품-기계 개념,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의 클리셰 관련 논 5. 프로망제는 진보적 미술가들의 모임인 조형예술가전선(Front des artistes plasticiens)의 회장을 맡았을 뿐만 아 니라, 푸코(Michel Foucault), 들뢰즈 등과 함께 감옥정보그룹(GIP, 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에 참여 했고, 2003년에는 이라크전쟁 반대를 천명하는 전시 《전쟁은 결코 차갑지 않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프로망제 의 작품 세계를 포괄적으로 다룬 자료집으로는 다음을 보라. Gérard Fromanger, Gérard Fromanger: Périodisation 1962-2012 (Paris: Texuel 2012); Michel Gauthier (éd.), Gérard Fromanger (Paris: Centre Pompidou 2016).

6. 이를테면, 신구상주의 작가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이미지로 혁명 의식을 고취시키거나 만화 이미지로 정치 권력을 풍자한다는 것이다. Jean-Luc Chalumeau, Lectures de l’art (Paris: Chêne 1981), p. 134. 국내 미술사학계 의 프로망제 연구도 그의 사회의식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한승혜, 「1960- 1970년대 프랑스 신구상회화에 나타난 저항의식」, 『현대미술사연구』 38집 (2015), pp. 259-286 (DOI: 10.17057/

kahoma.2015..38.011). 박주원, 「제라르 프로망제의 작품에 나타난 사회의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7), pp. 1-98 (UCI: I804:11048-000000148103).

7. Gilles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L’île déserte et autres textes, textes et entretiens 1963-1974, éd. David Lapoujad (Paris: Minuit 2002), pp. 344-350, p. 344. 이 글은 1972년 프로망제의 전시도록에 실려 출간된 뒤 위의 논문집 에 재수록되었다.

8. 단적인 예로, 들뢰즈의 예술론을 다루는 대표적인 연구서에서 프로망제론은 특별한 해설 없이 세 차례 언급될 뿐이다. Anne Sauvagnargues, Deleuze et l’art (Paris: PUF 2005), p. 10, p. 23, p. 250. 국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을 (미술사적 관점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논문은 단 한 편으로, 들뢰즈와 푸코의 프로망제론을 비교 연구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한의정, 「제라르 프로망제,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접속 과 탈주」, 『현대미술사연구』 44집 (2018), pp. 69-92 (DOI: 10.17057/kahoma.2018..4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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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등이 속한다. 2) 들뢰즈 외에 프로망제론을 쓴 다른 저자들에 대한 참조 혹은 그 저자들의 들뢰즈에 대한 참조. 여기에는 프레베르(JacquesPrévert)가 쓴 두 편의 서문, 푸코의 「포토제 닉한 회화」, 그리고 과타리(FélixGuattari)의 「제라르 프로망제, <밤, 낮>」이 속한다.93) 들뢰 즈가 자신의 텍스트에서 직접 인용하는 매클루언(MarshallMcLuhan)의 미디어론과 로런스 (DavidHerbertLawrence)의 회화론에 대한 참조. 이 연구는 언급된 이론적 참조점들의 복잡 한 연결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가운데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에 대한 체계적인 독법을 제공하 고자 한다. 이를 통해, 프로망제 연구 및 들뢰즈 미학 연구에서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이 갖는 의 의와 중요성을 드러내는 데 이 연구의 목표가 있다.

Ⅱ. 예술작품-기계란 무엇인가?

들뢰즈의 기계 개념은 그의 학문적 동반자 과타리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과타리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등장하는 분화소(différenciant)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기계 개념을 본격적으 로 개진한다.10 그의 문제의식은 다분히 ‘후기’ 구조주의적인데, 이 개념은 기표적 구조의 존재 를 인정하는 한편 그 구조의 바깥을 탐색하는 데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주체화 과 정에서 기표적 구조의 역할이 제한적임을 보여주고자 하며, 이를 위해 기계를 그 구조를 야기 하는 것이자 그 구조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내세운다. 말하자면,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횡단하고 분열시키는바 모든 종류의 기표적 연쇄가 교차되면서 만들어내는 귀결들”을 받아들 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발화 기계인 목소리”를 통해 “랑그(langue)라는 구조적 질서를 절단 하고 근거짓는다”는 것이다.11 들뢰즈는 과타리의 기계 개념이 품고 있는 존재론적·역사철학적·

예술론적·실천철학적 잠재성을 전개시켜 나가는데, 그 작업은 『프루스트와 기호들』 2부(1970) 에서 시작된 뒤 『안티 오이디푸스』(1972)를 거쳐 『카프카, 소수 문학을 위하여』(1975)로 이어 진다. 1972년에 써진 프로망제론은 이 과정의 한가운데 있으며, 특히 같은 해 출간된 『안티 오

9. Jacques Prévert, “Rouge”, Choses et autres (Paris: Gallimard 1972), pp. 227-239. Michel Foucault, “La peinture photogénique”, Dits et écrits: 1954-1988, tome 2: 1970-1975 (Paris: Gallimard 1994), pp. 707-715. Félix Guattari,

“Gérard Fromanger, La Nuit, Le Jour”, Les années d’hiver: 1980-1985 (Paris: Les prairies ordinaires 2010), pp. 256- 265. 프레베르의 글은 1965년과 1971년, 푸코의 글은 1975년, 과타리의 글은 1986년 전시도록의 형태로 출간된 뒤 위의 저작들에 재수록되었다.

10. 이하 과타리의 기계 개념에 대해서는 성기현, 『들뢰즈의 미학』 (그린비 2019), pp. 135-139 참조.

11. Félix Guattari, “Machine et structrure”, Psychanalyse et transversalité. Essai d'analyse institutionnelle (Paris: Maspero 1972), pp. 240-248, p. 243. 이 논문은 라캉(Jacques Lacan)의 파리 프로이트 학회에서 발표하고자 1969년에 써 진 것으로, 이후 위의 논문집에 재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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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푸스』의 주요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점은 프로망제의 작품을 분석하는 3장에 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우선 다른 두 저작의 기계 개념, 특히 예술작품-기 계 개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작품이 하나의 기계이고, 그것의 핵심적인 문제는 의미와 해석이 아니라 작동과 효과라 는 생각은 들뢰즈 예술론의 한 변곡점을 표시한다.12 개정·증보된 『프루스트와 기호들』 2부에서 들뢰즈는 프루스트(Marcel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기계로 간주하는데, 이는 다 음을 뜻한다. 그 소설은 미리 주어진 단 하나의 의미, 즉 저자의 의도와 관련해서 닫혀 있는 것 이 아니라 외부의 독자를 향해 열려 있으며, 어떤 독자의 어떤 문제의식과 연결되는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현대 예술작품은 기계이며, 그러므로 작동한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 사교계에 대한 안내 책자, 형이상학 논문, 기호와 질투에 대한 망상, 정신능력들의 훈련장이기도 하다. 우 리가 그 전체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13

이러한 관점은 『카프카, 소수 문학을 위하여』로 이어지는데, 이 책의 1장에서 들뢰즈와 과타 리는 예술작품-기계에 대한 범례적인 분석을 제시한다.14 이 분석은 카프카(FranzKafka)의 소 설-기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두 계열의 구성요소들 혹은 부품들을 골라내고 그것들의 연 결, 작동, 효과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편으로, 초상화 내지 사진의 계열이 있다. 예 컨대, 「변신」에서 갑충이 된 그레고르는 벽에 걸린 여자의 사진에 집착하다 여동생을 분노하 게 만들고,15 『소송』의 카는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티토렐리의 아틀리에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법관들의 초상화를 발견한다.16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부품이 흔히 다른 하나의 부품, 즉 ‘숙인 12. “들뢰즈 철학의 두 번째 시기에, […] 예술은 더 이상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작동의 문제가 된다. 해석은 실험으

로 결정적으로 대체된다.” Sauvagnargues, Deleuze et l’art, p. 30.

13. Gilles Deleuze, Proust et les signes (Paris: PUF 2010[1976]), pp. 175-176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서동 욱·이충민 옮김 [민음사 2004], pp. 228-229 번역 참조).

14. 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 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Paris: Minuit 2005[1975]), pp. 7-13.

15. “그때 텅 빈 벽에 모피 제품만을 걸친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재빨리 기어 올라가 유 리 위에 몸을 붙였다 […] 어머니는 […]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레고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거칠게 울부 짖는 소리를 질렀다. […] “그레고르.” 여동생이 주먹을 쳐들고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소리쳤다. 그것이 변신을 한 이후 동생이 직접 그에게 건넨 최초의 말이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단편전집』, 이주동 옮김 (솔 2017), pp. 144-145 ([ ]는 연구자).

16. 변호사 사무실의 “문 오른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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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라는 부품과 연결되고 그것과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성』의 서두에서 분명 하게 드러난다. 이 소설은 잠에서 깨어난 K가 성에 속하지 않는 자는 여인숙에 머무를 수 없다 는 통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을 떠날 때 K는 벽에 걸린 집사의 초상화를 발견하는데, 그는 ‘깊이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17 들뢰즈와 과타리가 보기에 초상화 내지 사진 과 숙인 고개의 이러한 결합은 특정한 효과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방을 떠날 수도(「변신」), 소 송에서 벗어날 수도(『소송』), 성을 이해할 수도 없게 만드는(『성』) “기능적인 봉쇄, 실험적 욕망 의 무력화”18라는 효과다.

다른 한편으로, 음악적 소리의 계열이 있다. 예컨대, 「변신」에서 갑충 상태의 그레고르가 자 신의 방을 떠나 위험한 외출을 감행하는 것은 누이의 바이올린 소리 때문이고(이 외출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에서 생쥐 가수 요제피네는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로 “적대적인 세계가 주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종족의 복음”을 전한다.19 여기 서도 우리는 음악적 소리와 연결되어 작동하는 다른 부품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 닌 ‘쳐든 고개’다. 그레고르는 ‘몸을 일으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누이의 목에 키스하고자 하 며,20 요제피네는 휘파람을 불 때마다 “우뚝 일어서서 목을 곧게 펴고, 마치 천둥에 직면해 있는 목동처럼 자신이 이끄는 무리들을 둘러보려고 애쓴다.”21 들뢰즈와 과타리에 따르면, 이 음악적 소리는 자신의 형식을 더 많이 잃어버릴수록, 악보에 그려진 음들에서 휘파람 소리로, 휘파람 소리에서 강렬한 비명이나 외침으로 나아갈수록 카프카의 인물들을 점점 더 먼 곳까지 인도한 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음악적 소리와 쳐든 고개의 결합이 야기하는 효과를 발견하는데, 그 효 과란 떠나고자, 벗어나고자,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치솟게 하고, […] 탈 렸다. 법관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 “아마 내 담당 판사인지도 모르겠군.”” 카가 티토텔리에게 묻기를, ““그림을 그리시는 중이군요.” […] 이 우연한 기회가 다행히도 카로 하여금 법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왜냐하면 그 그림은 어느 판사를 그린 초상화였던 것이다. 그것은 변호사 사무실 에서 본 그림과 닮은 점이 많았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이주동 옮김 (솔 2017), pp. 114-115, p. 154.

17. “떠날 때, 벽에 걸려 있는 칙칙한 틀 속의 어두운 초상화가 K의 눈에 띄었다. […] 쉰 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의 반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가슴 쪽 깊이 숙이고 있었[다.]” 프란츠 카 프카, 『성』, 오용록 옮김 (솔 2017), p. 15 ([ ]는 연구자). 그림 속의 남성이 성의 하급 집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여인숙 주인은 ‘그에게도 권력이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18. Deleuze & Guattari, Kafka, p. 8.

19. 카프카, 『변신』, p. 313.

20. “그는 여동생을 소파에서 자기 옆에 앉히고,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게 한 후에 자기가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 내려는 확고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과 […] 어떤 반대를 무릎쓰고라도 모두에게 그것을 발표했을 것이라는 이야 기 등을 털어놓고 싶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나면 여동생은 감동의 울음을 터뜨릴 것이고, 그레고르는 그녀의 어 깨까지 몸을 일으키고 그녀의 목에 키스할 것이다.” 카프카, 『변신』, pp. 158-159.

21. 카프카, 『변신』, p.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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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화시키며, 그 접속을 증가시키는”22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렇듯 문학론에서 주로 활용되던 기계 개념이 프로망제론에 서 최초로 회화론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들뢰즈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프로망제론을 작 성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들뢰즈는 이 텍스트를 위해 프로망제와 다섯 번에 걸친 토론을 진행하면서 그가 사용하는 도구들과 언급하는 개념들을 꼼꼼히 기록했는데,23 프로망제 는 후일 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저의 작품 앞에서, 들뢰즈는 기계공과 같았습니다. 우리 가 모터를 분해하듯이 그는 그림을 분해했고, 일단 모든 부품을 바닥에 늘어놓고 나서 이렇게 물었죠. “이건 어떻게 작동하는 겁니까?””24 이러한 탐구의 결과, 들뢰즈는 프로망제의 작품이 하나의 그림-기계이며, 의미가 아니라 작동의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색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녹색은 희망이 아니고, 노란색은 슬픔이 아니며, 빨간색은 즐거움이 아니다. 뜨거움이나 차가움, 차가움과 뜨거움이 있을 뿐이다. […] 프로망제는 그린다. 다시 말해, 그림을 작동하게 만든다. 예술가 기계공의 그림-기계. 문명의 예술가 기계공. 그는 어떻게 그림을 작동시키는가?25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프로망제가 만든 그림-기계의 작동원리로 들뢰즈가 뜨거움과 차가 움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매클루언의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의 구별을 원용한 것이다.26 그에 따르면, 뜨거운 미디어란 정보량을 많이 제공하는 대 신 수용자의 참여를 적게 허용하는 미디어고, 차가운 미디어란 정보량을 적게 제공하는 대신 수용자의 참여를 많이 허용하는 미디어다. 예컨대 사진과 만화를 비교해보면, 후자는 훨씬 적

22. Deleuze & Guattari, 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p. 9.

23. Wilson, The Visual World of French Theory, pp. 137-138 참조. 이 토론 과정에서 들뢰즈는 현대 미술에서 클리 셰에 맞선 투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는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빈(blanche) 캔 버스 앞에 있다는 건 어떤 느낌입니까?” 제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시다시피, […] 캔버스는 비어있지 않 습니다. […] 캔버스가 가득 차 있다(noir)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잠깐만요 제라르, 그 얘기는 아주 흥 미롭네요!” 그리고 그는 메모를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덧붙였죠. “캔버스는 다른 이들과 저 자신이 이미 했던 온갖 작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실은 캔버스를 가득 차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걸 텅 비게 만들어야 합니다.””

Fromanger, Gérard Fromanger: Périodisation 1962-2012, p. 27. 이 통찰은 이후 들뢰즈의 베이컨론에 대동소이한 형 태로 다시 등장한다. Gilles Deleuze,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Paris: Seuil 2002[1981]), p. 19, p. 83.

24. Fromanger, Gérard Fromanger: Périodisation 1962-2012, p. 27.

25.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4.

26. 이하의 논의는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비평판)』, 김상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pp. 60-61 참조. 이 저작은 1964년 출판되었으며, 1968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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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양의 시각적 정보를 담고 있는 대신 수용자의 상상력을 훨씬 크게 자극한다. 그에 반해, 사 진과 같은 “뜨거운 미디어는 이용자가 채워 넣거나 완성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 […] 뜨거운 미 디어는 차가운 미디어보다 참여를 적게 허용한다.”27

매클루언의 이러한 구별은 프로망제의 그림-기계를 분석하는 핵심적인 개념적 도구를 들뢰 즈에게 제공한다. 여기서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프로망제의 <화가와 모델> 연작이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사진작가 엘리 카강(ElieKagan)의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사실 이다.28 프로망제가 사진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프로젝터로 그것을 캔버스에 영사한 뒤 그 위에 채색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길거리의 장면과 아틀리에의 시선을 교차”29 시켜 “사진-사건 위에 그림-사건을 창조”30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은 사진이 제공 하는 구상이 작품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인정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화가가 어떤 색을 어디에 어떻게 칠하는지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지점임을 시사한다.

매클루언의 구별로 다시 돌아가자면, 첫째로 우리는 디테일을 덜어내면서 사진에서 회화로 옮겨간 프로망제의 작품 자체가 뜨거운 미디어에서 차가운 미디어로 이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둘째로, 프로망제는 흑백사진에다 색을 더해 그것을 다시 뜨겁게 만든다. 보다 정확 하게 말하자면, 그는 색을 통해 캔버스 위에 차가움과 뜨거움의 운동을 조직한다. 우리가 잘 알 고 있듯이, 하나의 색은 다른 어떤 색과 관계하는지에 따라 뜨거울 수도 차가울 수도 있다. 차 가움과 뜨거움은 색들 간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상대적 규정으로서, 관계상의 변화에 따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끊임없이 이행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색의 사용과 관련된 ‘참여의 여 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그것은 화가의 경우 채색을 통해 흑백사진 위에 차가움 과 뜨거움의 운동을 조직하는 데서 성립하고, 감상자의 경우 그러한 운동을 시각적으로 추적하 면서 그 운동의 작동방식과 효과를 파악하는 데서 성립한다.

핫(hot)과 쿨(cool),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색에서, 그리고 다른 사물(글쓰기, 춤, 음악, 미디어)에 서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 매클루언이 보여주듯이31 차가움은 모든 참여가, 즉 모델에 대한 화 27.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p. 61.

28. 이하 프로망제의 작업방식에 대한 설명은 Wilson, The Visual World of French Theory, p. 134 참조. 카강은 독립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프랑스의 주요한 정치·사회·문화적 사건들을 기록했다.

프로망제는 그의 보도 사진들 중 일부를 골라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29. Michel Gauthier, “Marchandise et code couleur”, Gérard Fromanger, éd. Michel Gauthier (Paris: Centre Pompidou 2016), pp. 51-63, p. 57.

30. Foucault, “La peinture photogénique”, p. 712.

31. [들뢰즈의 원주] M. McLuhan, Pour comprendre les médias (Paris: Mame-Seuil 1968), pp. 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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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참여, 화가에 대한 관객의 참여 […] 가 능동적일 것을 요구하지만, 환경이 뜨거울 경우 차가 움만으로는 아무것도 순환하고 소통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핫과 쿨을 지속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인데, 그에 따라 뜨거움은 차가움을 시원하게 만들고 차가움은 뜨거움을 데우게 된다.32

Ⅲ. 프로망제의 그림-기계

1. 부품

들뢰즈가 프로망제론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1973년 파리의 갤러리 9에서 개최된 개인 전 《화가와 모델》에서 발표된 작품들로서, 여기에는 1972년경 그려진 11개의 유화 작품이 포 함된다. 이 작품들은 저마다 화면 전체를 뒤덮는 강렬한 주조 색(couleurdominante)을 갖고 있으며, 그 색의 명칭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는다. 들뢰즈가 언급하는 9개의 작품을 예로 들자 면, <카드뮴 레드>, <베로네세 그린>, <바이외 바이올렛>, <오뷔송 그린>, <이집트 바이올렛>, <

밝은 카드뮴 레드>, <마스 바이올렛>이 모두 그러하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 연작에서 작품을 구성하는 부품들은 다음의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 로, 전경에는 검게 처리된 화가의 거대한 실루엣이 존재한다. 이는 카강의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프로젝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화가의 그림자를 캔버스에 그려 넣은 것처 럼 보인다. 이 실루엣은 앞서 언급된 9개의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며, 대체로 후경의 상품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전경의 좌측이나 우측에 위치한다. 둘째로, 중경에는 음식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홀로 있거나 함께 모여 있지만, 어느 경우든 비 일상적이고 상호 이질적인 색으로 칠해져 있다. 과타리는 프로망제 작품의 구상적 요소들이 단 순한 ‘내용의 복권’이 아니라 지배적 현실로부터 새로운 회화적 재료를 추출하기 위한 토대라 고 말한 바 있는데, 이때 그 새로운 요소란 바로 소위 ‘통상적인 채색’으로부터 이탈한 색이다.33 우리는 이후 그림-기계의 작동방식을 논하면서 이 채색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셋째로, 후경에는 쇼 윈도우 안에 진열되거나 벽에 걸린 상품들(그리고 흔하게는 그

32.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p. 348-349 (강조는 원문, [ ]는 연구자).

33. “프로망제의 사실주의는 분명 그런 종류의 ‘내용의 복권’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광물에서 무언가를 추 출하듯이 지배적인 실재성 및 의미작용에서 새로운 회화적 재료를 추출하고자 그것들을 다루는 경험에서 성립 한다. […] 그는 색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할당되어 있는 형태들로부터 색을 떼어내고자 했다. 그리고는 […] 이

‘색들의 하모니’를 체계적으로 고장냈다. 그는 여섯 원색과 보색을 동등하게 다루면서, 각각의 색이 저마다 그 고유의 기질에 따라 가능한 모든 음계, 주제와 변주, 전주곡과 푸가를 연주하도록 이끈다.” Guattari, “Gérard Fromanger, La Nuit, Le Jour”, pp. 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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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들을 선전하는 마네킹들)이 존재한다. 들뢰즈는 이 연작에서 상품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화가의 모델은 상품이다. 모든 종류의 상품들, 즉 의류, 수영용품, 결혼 용품, 성인용품, 식료품. […] 하나의 모델에서 다른 모델로 가면서, 모든 것은 화가와 함께 순 환하는 상품이라는 유일한 모델에 따라 평가된다.”34 흥미로운 것은 이 상품들 중에 프로망제 자신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베로네세 그린>의 후경에는 <밝은 카드뮴 레드>가 진열된 갤러리 9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화가의 작품 또한 거대하고 무한한 상품 순환 의 일부로서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시사한다.

2. 작동방식

단적으로 말하자면, 프로망제의 그림-기계는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순수한 채색의 유희”35 를 따라 작동한다. 들뢰즈는 이 유희를 모두 네 측면에서 분석하는데, 우리는 그중 세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36

1)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상승하는 주조 색의 색계(色界, gamme)가 존재한다. 이는 화가 의 채색이 흰색에 가까운 가장 밝은 부분에서 시작되어 “물감 튜브에서 나온 순수한”37 상태 의 주조 색을 향해 점점 진해져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이를 “연접 (connexion)들의 체계 전체”38라고 칭하는데,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안티 오이디푸스』의 기 계 개념을 잠시 경유하기로 하자. “하나의 기계는 언제나 다른 기계와 짝지어져 있다. […] 흐름 을 생산하는 어떤 기계와 이 기계에 연결되는, 절단을, 흐름의 채취를 수행하는 또 다른 기계가 늘 있으니 말이다(젖가슴-입).”39 아기의 입은 하나의 기계로서, 젖가슴 기계가 생산하는 젖의 흐름을 절단하여 채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절단과 채취는 또 다른 생산이기도 한데, 그것은 위 기계의 절단과 채취를 위한 흐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입 기계는 “자신이 연결되는 기 계[젖가슴 기계]와 관련해서는 흐름의 절단이지만, 자신에 연결되는 기계[위 기계]와 관련해서

34.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4.

35. Gauthier, “Marchandise et code couleur”, pp. 51-52.

36.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 우리가 다루지 않는 네 번째 측면은 채색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사 진의 잔여물과 관련되는데, 들뢰즈가 언급하고 있는 9개의 작품들 중 <바이외 바이올렛>에서만 예외적으로 발견 된다.

37.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5.

38.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5.

39. 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t. 1: L’anti-oedipe (Paris: Minuit 2005[1972]), p. 11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김재인 옮김 [민음사 2014], p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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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흐름 자체 또는 흐름의 생산이다.”40 이제 프로망제의 그림-기계로 돌아오자면, 여기서 연접 은 카강의 사진이 영사된 캔버스로 흘러드는 주조 색에 대한 절단과 관련된다. 각각의 부분적 인 형태-기계는 주조 색의 흐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절단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역과 그 성 격을 구획하며, 자신이 절단한 흐름을 다음 형태-기계로 넘겨준다 (‘그 다음에’, 그리고 ‘그 다 음에’…). 그런 가운데, 캔버스에는 서로 다른 형태들을 가로지르면서 점차 고조되는 주조 색의 연속적인 흐름이 나타난다.

2) 주조 색과 다른 색들 사이에는 체계적인 상호 작용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차가움과 뜨거 움의 이접(disjonction)들, […] 뜨겁게 하기와 차갑게 하기라는 가역적인 유희 전체를 형성한 다.”411)에서 2)로 이행하는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연접의 ‘비가역적’ 상승이 이접의 ‘가역 적인’ 뜨겁게 하기와 차갑게 하기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하나의 색은 더 이상 ‘그 다음 에’의 방식으로 일방향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이제 “색의 차가움이나 뜨거움은 어떤 포텐셜 (potentiel)을 규정할 뿐이고, 그 포텐셜은 다른 색들과의 관계 전체 속에서만 실효화될 것이 기 때문이다.”42 가령 색A는 차가움과 뜨거움의 포텐셜을 모두 갖지만, 그 포텐셜은 색B와 관련 해서는 뜨겁게 실효화되고 색C와 관련해서는 차갑게 실효화된다 (‘…이거나’). 『안티 오이디푸 스』에 따르면, 이접의 표현인 ‘…이거나’는 “이전(移轉)되고 미끄러지면서 늘 같은 것[포텐셜]으 로 회귀하는 차이들[뜨거움과 차가움] 간의 호환 가능 체계”43를 가리킨다. 프로망제의 경우 ‘늘 같은 것’이란 바로 포텐셜로서, 상호 호환될 수 있는 (따라서 ‘가역적인’) 뜨거움과 차가움이 생 겨나고 회귀하는 원천에 해당한다. 이상의 논의와 관련해서, 이제 프로망제의 <바이외 바이올 렛> [도 1]에 대한 들뢰즈의 분석을 직접 살펴보자.

후경에 녹색으로 차갑게 그려진 작은 사람이 있는데, 이는 뜨거움의 포텐셜을 지닌 보라색을 대 립을 통해 [실효적으로] 뜨겁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la vie)이 이행하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전경에는 노란색으로 뜨겁게 그려진 한 남자가 보라색을 유인하거나 재-유인하 고, 녹색을 통해, 녹색을 넘어 보라색이 작용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제 차가운 녹색 은 회로 밖에 홀로 존재하는데, 이는 단번에 자신의 기능을 다 소진해버린 것과 같다. 세 번째 인

40. Deleuze & Guattari,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t. 1: L’anti-oedipe, p. 44 (들뢰즈·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p.

75).

41.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

42.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p. 345-346.

43. Deleuze & Guattari,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t. 1: L’anti-oedipe, p. 18 (들뢰즈·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p.

39, [ ]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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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노란색 뒤에 있는 차가운 파란색 인물을 통해 그를 그 자체로 유지하고, 그림 속에 다시 위치 시키며, 그림 전체 속에서 그에게 다시 생기를 부여하거나 다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44

녹색으로 채색된 후경의 작은 사람은 주조 색인 보라색을 뜨겁게 만드는 데 반해, 노란색으 로 채색된 전경의 큰 사람은 그것을 차갑게 만든다. 주조 색의 가역성을 구성하는 이 대립을 하 나의 완결된 회로로 만들어주는 것은 파란색으로 채색된 중경의 사람이다. 그의 차가운 파란색 은 한편으로는 전경의 사람이 지닌 뜨거운 노란색과 대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뜨거운 보라색 을 경유하여 후경의 사람이 지닌 차가운 녹색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보라색과의 대 립 이후 ‘자신의 기능을 소진해버린’ 듯했던 녹색의 작은 인물이 다시 활성화되며, 다른 요소들 과 더불어 색 운동의 회로 속에 포함되기에 이른다.45

3) 마지막으로, 이 연작 곳곳에 출몰하는 화가의 거대한 실루엣을 살펴보자. 먼저 그것이 검 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2)의 경우 하나의 색이 지닌 포텐 셜은 주변의 다른 색과의 대립 속에서 때로는 차가운 것으로, 때로는 뜨거운 것으로 규정되었 다. 그와는 달리, 실루엣의 검은색은 주조 색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규정성을 변화시키 면서 주조 색의 차갑거나 뜨거운 구성요소를 이끌어낸다. 들뢰즈는 검은색이 “두 번째 등급의 포텐셜”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차가웠던 것[주조 색]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주 44.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6 ([ ]는 연구자).

45. 푸코 역시 프로망제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역동적인 색 운동에 주목했는데, 예컨대 다음의 구절은 들뢰즈를 염 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저마다 차이나는 색들(뜨거운 색과 차가운 색, 타오르는 색과 얼어붙은 색, 전진하는 색 과 후퇴하는 색, 움직이는 색과 정지하는 색)은 간격, 긴장, 인력의 중심과 척력의 중심, 높은 영역과 낮은 영역, 포텐셜 차이를 확립한다.” Foucault, “La peinture photogénique”, p. 712.

[도 1] 제라르 프로망제, <바이외 바이올렛>, 1972, 캔버스 에 유채, 150×200cm

[도 2] 제라르 프로망제, <오뷔송 그린>, 1972, 캔버스에 유 채, 150×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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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색과 같을[주조 색처럼 차가울]” 수도 있고, 그것을 계속 차갑게 유지해야 할 경우에는 “주조 색의 반대일[주조 색과는 달리 뜨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46 예컨대 전자에 해당하는 <오뷔 송 그린> [도 2]의 경우, 검은색은 주조 색인 차가운 녹색의 영향력 하에서 스스로를 녹색의 차 가운 구성요소인 파란색처럼 보이게 만들고, 이를 통해 녹색의 뜨거운 구성요소인 노란색을 활 성화시킨다. 말하자면, 주조 색인 차가운 녹색(특히 짙은 녹색으로 칠해진 소파 등)에서 출발해 서 볼 때 화가의 검은색은 차가운 뉘앙스를 갖게 되지만, 그 차가운 뉘앙스에서 출발해서 볼 때 역으로 주조 색인 녹색(특히 옅은 녹색으로 칠해진 마네킹 등)은 뜨거운 뉘앙스를 갖게 되는 것 이다.

검은색의 화가는 앉아있는 마네킹, 죽은 상태로 녹색으로 차갑게 그려진 여성을 바라보며 애정을 느낀다. 그녀는 죽은 상태로 아름답다. 이 죽음을 뜨겁게 만들려면 이 [차가운] 녹색 속에 들어 있 는 [뜨거운] 노란색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뜨거운] 노란색의 보색 인 [차가운] 파란색을 강조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이 검은색의 화가를 다시 차갑게[차가운 파란 색으로 보이게] 만들어 [차가운] 녹색의 죽음을 [녹색 내부의 노란색을 통해] 다시 뜨겁게 만들어 야 할 것이다.47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화가의 실루엣이 “거대한 통접(conjonction)”을 수행한다는 사실 인데, 이 통접은 “자기 내부에 이접의 항(ledisjoint)을 포함하고 있으며 연접들을 분배한다.”48

『안티 오이디푸스』에 따르면, 기계는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절단한 흐름 과 관련해서 일시적·잠정적인 규정성을 띨 뿐이다(입은 젖의 흐름과 관련해서는 ‘먹는’ 기계이 지만, 목소리의 흐름과 관련해서는 ‘말하는’ 기계이고, 리비도의 흐름과 관련해서는 ‘키스하는’

기계다). 그리고 자신의 규정성이 바뀌는 데 따라 기계는 매번 새로운 차원, 즉 자신의 생산을 소비하는 주체적 차원을 갖게 된다(먹는 쾌락, 말하는 쾌락, 키스하는 쾌락을 즐기는 자, ‘그것 이 바로 나다.’). 말하자면, 통접이란 이런 주체적 차원이 “자신이 소비하는 상태들에서 태어나 고 또 각 상태마다 다시 태어난다”49는 사실을 가리킨다.

화가의 검은 실루엣은 주조 색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에 따라, 즉 차가운 주조 색에서 그 46.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p. 346-347 ([ ]는 연구자).

47.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 ([ ]는 연구자).

48.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

49. Deleuze & Guattari,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t. 1: L’anti-oedipe, p. 23 (들뢰즈·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p.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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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의 뜨거운 구성요소를 활성화시키는지 아니면 뜨거운 주조 색에서 그것의 차가운 구성요소 를 활성화시키는지에 따라 차가움이나 뜨거움이라는 일시적·잠정적 규정과 그로부터 기인하 는 주체적 차원을 갖는다 (뜨겁게 만드는 자 혹은 차갑게 만드는 자, ‘그것이 바로 나다’). 하지 만 “하나의 그림에서 다른 하나의 그림으로 넘어가는 요소”50인 한에서, 화가의 실루엣은 하나 의 그림 속에서, 하나의 주조 색과의 관계 하에서, 차가움과 뜨거움 중 하나의 규정과 관련해서 통접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림들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서로 다른 주 조 색들과의 관계 하에서, 매번 다르게 주어지는 규정들과 관련해서 통접을 거듭하며, 그런 의 미에서 분열증적(schizophrène)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련의 통접(‘거대한 통접’)이 자신이 떠나온 규정(‘이접의 항’)들을 포함하는 가운데 그 규정들 간의 관계(‘연접’)를 분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검은색의 화가는 그림 속에서 두 회로에 따라 두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의 그림 속의] 움직이지 않는 무겁고도 편집증적 실루엣은 자신이 상품에 의해 고정되는 만큼 그 상품을 고정시킨다. 그 러나 [그림들을 옮겨가며] 움직이는 분열증적 그림자는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면서 차가움과 뜨거움의 모든 층위를 주파한다. 이는 제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여행 으로서, 차가움을 다시 뜨겁게 하거나 뜨거움을 다시 차갑게 하기 위한 것이다.51

3. 효과: 두 개의 순환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제 프로망제가 조립한 그림-기계의 효과를 살펴보자. 앞당 겨 말하자면, 그 효과란 상이한 두 회로를 주파하는 두 개의 순환인데 들뢰즈는 이를 죽음의 순 환과 생명의 순환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순환은 작품의 출발점인 카강의 흑백사진에서 기인하 는 것으로서, 무심함(indifférence)의 순환으로 요약된다. “후경의 경우 상품의 무심함, 사랑·죽 음·음식·나체·옷·정물·기계의 동등성. [중경의 경우] <마스 바이올렛> [도 3]에 등장하는 푸른색 남자와 녹색 여자처럼 혹은 [<밝은 카드뮴 레드> [도 4]에 등장하는] 무리지어 있는 마네킹들 앞을 무언가를 먹으며 지나가는 남자처럼 서 있거나 멀어지는 행인들의 무심함. 전경의 경우 검은색 화가의 무심함, 모든 상품 및 모든 행위에 대한 그의 무심한 동등성.”52 확대된 흑백사진 자체에는 이처럼 모든 조형적 요소들(부품들) 간의 무심함(단절·무관심·무력함)이 존재할 뿐이 다.

50.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6.

51.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 ([ ]는 연구자).

52.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7-348 ([ ]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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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보기에, 이 무심함에 대한 프로망제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단절·무 관심·무력함이 순환하는 세계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순환하게 할 것인가? 두 번째 순환의 중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캔버스에 영사된 흑백사진에다 프로 망제가 불어넣은 색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단절된 요소들을 연결하고 그것들의 포텐셜을 차가움과 뜨거움으로 실효화하면서 연속적인 운동으로 조직한다.

도처에 존재하는 이 단절의 지점에 다른 회로가 연결된다. 그것은 그림 전체를 되찾아 다시 조직 하면서 서로 구별되는 전경, 중경, 후경을 나선형의 고리로 뒤섞는데, 그 고리는 후경을 전경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요소들을 동시적으로 유도하는 어떤 체계 속에서 그것들이 서로 반작용하게 만 든다. […] 생명의 회로는 언제나 죽음의 회로에서 자라난다. 생명의 회로가 죽음의 회로와 함께 하는 것은 그로부터 승리를 거두기 위함이다.53

인용문의 전반부는 앞서 살펴보았던 <바이외 바이올렛> 내부의 나선형 운동을 상기시킨다.54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과 생명이라는 선명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별개의 두 세계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죽음의 회로에서 자라난다’는 표현이 잘 보여주듯, 그것은 오

53.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8.

54.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생명의 회로는 하나의 그림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그림들 간의 관계에서도 발견될 수 있 다. “저마다 하나의 주조 색을 띤 여러 그림들이 하나의 계열을 형성한다. 우리는 그 계열이 <카드뮴 레드>에서 열리고 <베로네세 그린>에서 닫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 아니면 우리는 다른 시작과 끝들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하나의 그림에서 다른 그림으로, 온갖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산책은 상점들을 가로지르는 화가의 산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순환에 해당하는 순환[죽음의 회로]이고 색의 여행에 해당하는 여행[생명의 회 로]이다.”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4 ([ ]는 연구자).

[도 3] 제라르 프로망제, <마스 바이올렛>, 1972, 캔버스에 유채, 150×200cm

[도 4] 제라르 프로망제, <밝은 카드뮴 레드>, 1972, 캔버스 에 유채, 150×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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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려 하나의 세계 속에 공존하는 상반된 두 경향성을 가리킨다. 이를 고려할 때, 죽음의 회로에 서 생명의 회로로 가는 이행은 다음의 두 의미를 갖게 된다.55 첫째로, 프로망제는 주어진 현재 를 구상화하는 작업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 속에서 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낸다. 둘째로, 그 방식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바깥의 이상적 이미지를 추구 하는 것도, 그 세계 내부의 특권적 이미지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그 세계를 구성하는 일상적 이미지들 속에서 멈추지 않는 어떤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지점에서 들뢰즈는 신‘구상’주의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모 색하는 듯하다. 비관적인 현실, 예컨대 자본주의의 상품 이미지들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 구상 화가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델의 유해성, 상품의 속임수, 행인의 우발적인 어리석음, 정치 활동을 하자마자 화가를 둘러쌀지도 모르는 증오”56를 잘 알면서도, 프로망제는 왜 자신이 혐오하는 그 현실을 계속 캔버스에 옮겨놓는 것일까? 들뢰즈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로런스 의 회화론에서 발견한다.

제가 보기에, 그림에는 기쁨이 존재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림이 아닙니다. 피에로 델 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소도마(Il Sodoma),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의 가장 우울한 그림들도 진정한 그림과 함께하는 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언제 나 표현합니다. […] 어떤 예술가도, 가장 큰 절망에 빠진 예술가라 할지라도 이미지의 창조가 야 기하는 이 기이한 기쁨을 경험하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린 적은 없습니다.57

이 구절을 염두에 두면서 들뢰즈가 단언하는 바에 따르면, “기쁨을 느끼지 않는 혁명가는 없 으며,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서 미학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혁명적인 그림은 없다.”58 프로망제의 그림이 자본주의의 삽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의 그림이 혁명을 재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이라면, 그 이유는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세계’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 어넣으면서 그가 느끼는 이 기쁨에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 그 기쁨은 다음의 두 측면에서 설명 된다. 한편으로, 프로망제에게는 “이른바 자기 시대를 증언하는 가짜 대가들”이 매달리는 “고

55. Adrian Rifkin, “A space between: On Gérard Fromanger, Gilles Deleuze, Michel Foucault and some others”, Photogenic Painting, ed. Sarah Wilson (London: Black Dog 1999), p. 36 참조.

56.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9.

57. David Herbert Lawrence, Eros et les chiens (Paris: Christian Bourgois éditeur 1969), p. 195. 들뢰즈는 이 대목 전체 를 직접 인용하고 있다.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50.

58.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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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비극, 불안”이,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고유의 원한과 자기만족”이 근본적으로 부재한 다.59 다른 한편으로, 프로망제는 “생명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과거로 돌려놓는 환상”을 거부하 면서 “항상 죽음에 맞서 승리를 거두고 항상 과거에서 벗어나는 생명의 과정”을 제시한다.60

화가는 상품 이미지들로 가득 찬 세계 안에 있고, 그 세계에 이끌리며, 그 세계 속을 배회한 다. 아무리 혐오한다 하더라도, 화가는 자신의 유일한 세계인 그 세계의 이미지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는 지나치게 ‘뜨거운’, 따라서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상품 세계를 비워

‘차갑게’ 만들고, 원래와는 다른 색들을 채워 넣어 다시 ‘뜨겁게’ 만들기를 계속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그것이야말로 “추하고 혐오스러우며 악의적이고 가증스러운 것으로부터 내일의 생명 을 구성할 차가움과 뜨거움을 이끌어내는”61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망제의 그림 이 갖는 새로운 정치성을 ‘차가운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지나치게 뜨거운 세 계를, 즉 우리를 단순한 구경꾼으로 만드는 세계를 차갑게 만드는 혁명이다. “지나치게 뜨거워 진 오늘날의 세계를 다시 뜨겁게 만들어야 할 것으로서의 차가운 혁명을 상상해보자. 하이퍼리 얼리즘(Hyper-réalisme)이라고 왜 안 되겠는가? 그것이 기쁨을 위해, […] 활기 없고 억압적인 현실로부터 ‘리얼리티 그 이상(plusderéalité)’을 이끌어낸다면 말이다.”62

Ⅳ. 나가는 글

우리가 볼 때,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이 갖는 의의와 중요성은 다음의 두 측면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측면은 프로망제 연구사에서 그것이 제시하는 새로운 해석과 관련되는데, 이 점은 프 레베르의 프로망제론의 비교해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 측면은 들뢰즈의 다른 회화

59.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9. 이와 관련해서, 들뢰즈는 주석 처리 없이 로런스의 문장을 하나 더 인용 한다. 그것은 그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냥터지기 멜러스가 부인의 친구인 화가 덩 컨의 그림을 논평하는 대목이다. 들뢰즈가 인용하는 문장에 앞서, 덩컨과 그의 그림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온통 관과 밸브, 나선형과 이상한 색깔들로 이루어져서 초현대적이었지만 어딘지 힘이 있었고 형태와 색조의 순수함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덩컨은 자기 작품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광적”이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개 인적인 숭배의 대상이자 개인적인 종교였다.” 들뢰즈가 인용하는 것은 멜러스의 다음 논평이다. “난 이 모든 관 과 흔들리는 주름 같은 것들이 충분히 어리석고 몹시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오. 내가 보기에 이것들은 자기 연민 을 많이 보여주고 초조한 자부심을 지독하게 많이 보여주는 것 같소.”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이미선 옮김 (열린책들 2014), pp. 584-585. 들뢰즈는 이 대목을 ‘고유의 원한과 자기만족’에 빠진 그림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60.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9.

61.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9.

62.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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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에 견주어 프로망제론이 갖는 독특한 위상과 관련되는데, 이 점은 ‘구상의 구제’라는 주제로 요약된다. 여기서는 이상의 두 측면을 검토하는 것으로 나가는 글을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프레베르와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을 잠시 비교해보자. 리프킨은 프로망제에 대한 일련 의 연구들을 검토한 뒤, “프로망제에 대한 글쓰기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63한 인물로 프레베 르를 꼽는다. 프로망제가 그려내는 파리의 의미, 그의 화가로서의 정체성, 그가 색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세 측면에서 프레베르가 표준적인 해석의 틀을 선구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뒤 이어 리프킨은 프레베르 이후 써진 여러 프로망제론들 가운데서 “들뢰즈의 것만이 시적 아름 다움과 창조력이라는 면에서 그에 필적”64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듯이 “1971년 프레베르가 남긴 몰입의 시학과 1972년 들뢰즈가 남긴 비극의 ‘부재’에 대한 인식”65 사이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전통적인 좌파였던 시인과 새로운 정치성을 탐색 했던 철학자의 차이로서,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붉은 프로망제’와 ‘차갑고도 뜨거운 프로망제’

의 차이다.

프레베르가 보기에, 프로망제의 파리는 혁명 에 대한 물리적 폭력으로 점철된 장소다. 그곳에 서는 “경찰 수송버스들이 전쟁 규모로 밤낮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66 그 버스들이 도착한 곳 마다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 폭력에 맞서, 화가는 혁명의 거리에 <숨결>이라는 조형 물을 세운다. 프레베르에 따르면, <숨결>은 “사 물과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향해, 부분적으로 다른 색을 향해, 합리적 차원들과는 다른 차원 들을 향해 열린 창문”67이었다. 이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프로망제는 “거리에서 화가의 삶을 살 아가는”68 혁명가-화가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붉은 프로망제’였다. 프레베르는 프로망제의 색 이 언제나 정치적인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그의 붉음은 “살육과 학살의 붉

63. Rifkin, “A space between”, p. 49.

64. Rifkin, “A space between”, p. 49.

65. Rifkin, “A space between”, p. 54.

66. Prévert, “Rouge”, p. 235.

67. Prévert, “Rouge”, p. 233.

68. Prévert, “Rouge”, p. 229.

[도 5] 제라르 프로망제, <숨결>, 1968, 아크릴과 금속, 216×

132×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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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베트남의 붉음, 군비확장의 붉음, […] 체 게바라(CheGuevara)의 붉음”69인 것이다.

그러나 리프킨에 따르면, 프레베르의 이러한 해석은 “정치적 표현이라는 빈사 상태의 시 학에, 지나간 세기에 속하는 피투성이 노동자들의 깃발이라는 유산에, 여전히 스펙터클 (Spectacle)을 거부하는 파리의 거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70 이러한 지적에 비추어보면, 우 리는 들뢰즈의 해석이 갖는 독창성과 현대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 프로망 제의 문제의식은 지나버린 ‘혁명의 거리’를 회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펙터클의 사회’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실존방식을 탐색하는 데 있다. 프로망제의 파리는 기 드보르(GuyDebord)의 비관적 전망이 이미 실현된 사회, “상품이 사회적 삶을 총체적으로 점 령”71해버린 사회다. 쇼 윈도우에 고정된 화가의 시선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품의 지배를, 그 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72 ‘스펙터클’

의 지배를 재현하는 가운데, 프로망제는 상품 이미지들, 사람들, 화가 자신을 가로지르는 차가 움과 뜨거움의 운동을 그 속에 불어넣는다. 상품 이미지들 속을 살아가되, 그 이미지들을 끊임 없이 가로지르면서 살아가기. 들뢰즈가 보기에, 프로망제가 사용하는 색의 가치는 바로 이 ‘가 로지르기’에서 발견된다.

다음으로, 들뢰즈의 회화론에서 프로망제론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을 잠시 살펴보자. 들뢰 즈가 프로망제의 신‘구상’주의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그의 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다소간 의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른다.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에서 그는 ‘형태의 재현(구상)’

과 ‘힘의 포착’을 대립시키면서 후자에 우위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73 먼저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들뢰즈에게서 ‘힘의 포착’이 구상의 완전한 제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며, 이는 구상을 과격하게 변형시켜 형태에 가해지 는 힘을 포착하는 베이컨의 그림들에서 쉽게 확인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구상을 보다 긍정적 으로 고려하는, 구상 내부의 회화적 투쟁에 보다 주목하는 들뢰즈의 다른 회화론도 제시할 수

69. Prévert, “Rouge”, p. 236.

70. Rifkin, “A space between”, p. 51 참조 (강조는 원문).

71. Guy Debord, La société du spectacle (Paris: Gallimard 1967[1992]), p. 25 (강조는 원문).

72. “개인적·집단적 주체성을 지탱했던 재현의 체계가 붕괴되어, 매스미디어 이미지들이 대량으로 유포되고 우리 시대가 인정해왔던 전통적인 코드화 및 초코드화가 대규모로 탈영토화된 이후 그러한 실천[회화]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이야말로 프로망제가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Guattari, “Gérard Fromanger, La Nuit, Le Jour”, pp. 257-258 ([ ]는 연구자).

73. “예술에서,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회화에서, 문제는 형태를 재생산하거나 고안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포착하 는 것이다. 어떤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Deleuze,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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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74 이 경우, 회화의 문제는 더 이상 구상 자체를 제거하거나 과격하게 변형시키는 것이 아 니다. 프로망제에게서 발견되듯이, 그것은 오히려 구상 속에 새로운 색채적 운동을 불어넣어 재현 일반이 함축하는 모델-사본의 위계를 허무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들뢰즈의 회화 론적 투쟁이 한편으로는 “생명력을 단순한 구상으로 환원”하려는 경향과 대결하고(베이컨, 구 상으로부터의 이탈),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 있는 원본과 가치 없는 사본”의 위계를 함축하는

“플라톤적-소비주의적 환상”과 대결한다(프로망제, 구상 내부에 색채적 운동을 도입하기)고 말 할 수 있다.75

실제로, 들뢰즈는 프로망제론에서 후자의 미학적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천명 한다.

화가는 모델로 기능하는 어떤 대상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캔버스의 흰 표면에다 그림을 그려왔던 것이 아니다. […] 이는 모델과 사본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기능을 하는 캔버스를 생산하기 위한 것 으로서, 정확히 말해 그 캔버스는 더 이상 사본도 모델도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76

그러나 이러한 미학적 프로그램이 프로망제에게 국한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찍이

『차이와 반복』의 결론부에서, 들뢰즈는 팝아트도 나름의 방식으로 구상 내부에서 회화적 투쟁 을 벌이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77 이러한 투쟁은 “우리의 일상적 삶이 표준화되고 천편일률화되면 될수록, 또 점점 더 소비 대상들의 가속적 재생산에 굴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 일수록” 점점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으로서, “이 문명의 실질적인 본질을 이루고 있는 [소 비의] 가상과 신비화”를 고발하고, 무력화하고, 다른 운동으로 대체하는 데서 성립한다.78 그러 나 유감스럽게도,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는 앤디 워홀(AndyWarhol)의 이름을 한 차례 언 급할 뿐 그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79 프로망제 이외에 누가, 언제, 74. Martin Crowley, “Deleuze on Painting”, in: French Studies, Vol. LⅩⅦ, No. 3 (2013), pp. 371-385 (DOI:

10.1093/fs/knt073), p. 384.

75. 들뢰즈의 베이컨론에서 구상적 요소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성기현, 「들뢰즈의 미학은 ‘어떤 의 미에서’ 존재하는가?: 랑시에르의 「들뢰즈의 미학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반론」, 『미학』 83권, 3호 (2017), pp.

81-114 (UCI: I410-ECN-0102-2018-100-000698493), pp. 99-101.

76. Deleuze, “Le froid et le chaud”, p. 344 (강조는 원문).

77. “팝아트가 모사, 모사의 모사 등등을 밀고 나가 결국 모상이 전복되고 시뮬라크르로 변하게 되는 그 극단의 지 점에까지 이르는 방식을 보라.”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 p. 613([ ]는 연구자, 번역 일부 수정).

78. 들뢰즈, 『차이와 반복』, p. 612 ([ ]는 연구자).

79. 들뢰즈, 『차이와 반복』, p.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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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투쟁을 시도했는가? 들뢰즈의 프로망제론이 남긴 통찰과 개념적 도구들 로부터 출발해서, 우리는 그런 작가와 작품을 찾아내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들 에 대한 답변은, 따라서 오롯이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논문투고일: 2021년 4월 15일

심사기간: 2021년 4월 16일-2021년 5월 7일 최종게재확정일: 2021년 5월 8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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