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responding author: Jisoo Sim, College of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Blacksburg, VA, USA, Tel.: +1-540-425-6265, E-mail: [email protected]
일제강점기 광장의 생성과 특성
- 조선은행 앞 광장을 중심으로 -
서영애*․심지수**
*
기술사사무소 이수․
**버지니아 공과대학 건축도시대학
Creation of the Plaza and Its Featur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ed on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 -
Seo, Young-Ai*․Sim, Jisoo**
*
ESOO Landscape
**
College of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ABSTRACT
A plaza represents the identity of a city, and that reveals a plaza’s importance. Gwanghwamun Plaza and Seoul Plaza are two representative plazas where the citizens can freely express their opinions. Many major plazas in the center of Seoul were built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Among these, the plaza of Joseon Bank has different characteristics than Gwanghwamun Plaza and Seoul Plaza. Even though this plaza was built in the center of the commercial, administrational, and cultural distric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research on this plaza has been limited. This study was conducted to verify the features of this plaza by analyzing its construction and transform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study’s results outline how the plaza was constructed by the Japanese administration. The intention of the government is shown by the fact that it purchased land parcels and held a design competition. In the 1910s, the government purchased seven parcels of land during the expansion of roads as the place for the plaza. During the late 1930s, the government accepted a traffic circle to regulate the traffic and eliminate the conflict between crossing movements. In 1939, a fountain was built in the plaza’s center, and its design was selected through a design competition. It was planned as a square, but gradually turned into a rotary. Furthermore, the plaza was a landmark and symbol of the power and modernity of Japan. As the main modal point of public transportation, the plaza became surrounded with largescale Western-style buildings, commercial advertising, and neon signs. The plaza became a place where people could experience the modern city. These spectacular displays showed that Japanese imperialism was perceived as a strange and peculiar landscape to the majority of Korean citizens.
This study investigates the history and characteristics of the plaza, focusing on its beginning as well as the transformation of its form. As to the limitations of the study, it does not consider political and economic contexts within the transformation of Seoul and in relation to this plaza. Instead, that research remains for a future study.
Key Words: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 Symbolic Plaza, Urban Plaza, Landmark
국문초록
광장은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은 시민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대표적인 광장이다. 서울 도심 내 주요 광장들은 근대 도시계획이 시행된 일제강점기에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중에서 조선은행 앞 광장은 현재까지 ‘광장’이라고 부르지만,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 광장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음에도, 이 광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본 연구는 조선은행 앞 광장의 생성 과정과 변화를 통해 광장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 결과, 첫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토지 매입과 설계 공모를 통해 완성된 기획의 결과물이다. 1910년대에 총독부가 도로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조선은행 앞의 일곱 필지를 매입하여 광장의 공간적 기틀을 마련했다. 1930년대 후반에는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순환식 회전교차로 시스템이 도입되고, 설계 공모를 통해 분수대를 설치하면서 현재의 광장 형태가 완성되었다. 광장으로 기획되었으나, 점차 로터리로 변화했다. 둘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일제의 권력과 근대성을 과시하는 랜드마크이자 상징 광장이다. 자동차 중심의 교차로와 대형 분수대는 초점 경관을 형성했다. 서양식 대형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을 중심으로 상업 광고와 네온사인이 설치되었다. 조선은행 앞 광장은 당시 근대 도시문화를 체험하 는 첨단의 공간이었다.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스펙터클한 경관은 경성의 대표 이미지로 소비되었지만, 피지배자에게 는 낯설고 소외된 경관으로 인식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은행 앞 광장 자체에 집중하여 생성 과정을 추적하였고, 그 특성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울의 도시변화와 함께 정치․경제적 여건을 반영한 공간 연구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주제어: 선은전 광장, 상징 광장, 도시 광장, 랜드마크
Figure 1. Study site Source: map.naver.com
Ⅰ. 서론
서울의 광장은 대한 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형성되 었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은 시민의 의견을 표출하는 대표 적인 공간이다. 광장이라는 용어는 중세 유럽 도시에서 형성된 것으로 근대화와 더불어 도시 생활과 문화를 표출하는 장으로 인식된다. 넓은 의미에서 광장이란 건조 환경으로 둘러싸인 도시 공간에서 가로와 가로가 만나는 지점 혹은 일정한 건물군 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형성된 오픈스페이스다(Kim
1, 2011).
Franco Mancuso는 유럽의 60여 개 광장을 분석하여 그 역할 에 따라 장터로서의 광장, 문화의 장으로서의 광장, 예술작품으 로서의 광장, 의식이나 군중 집회를 위한 광장 등으로 구분하 였다(Mancuso, 2009). 우리나라의 광장은 ‘도시계획시설의 결 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의한 규칙’에 의해 공원, 녹지와 함께 공간시설에 속하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에 따라 교통광장, 일반 광장, 경관 광장, 지하 광장, 건축물 부설광장으로 구분된다.
조선은행 앞 광장
1)은 일제강점기에 도심을 대표하는 광장 이었지만, 주로 통과 교통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됐다(Kim
1, 2011).
현재 광장 부지도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과는 달리 지역 지 구의 분류에 따라 도로로 지정되어 있다(luris.molit.go.kr). 조 선은행은 1950년부터 한국은행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한국은 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6년에 ‘한국은행 앞 분
수광장 리뉴얼 아이디어 공모’가 열렸고, 2017년 이후 재조성할 계획이다. 조선은행 앞 광장은 과연 어떤 공간인가? 본 연구 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Figure 1 참조).
조선은행 앞 광장은 남대문통(현 남대문로)이라는 광대한 가
로와 남촌 일본인 거리의 관문, 그리고 근대 문명 시설물이 밀
집한 커뮤니티의 중심이라는 세 가지 주요한 요소들의 결절점
이었다. 이 광장은 남촌 신시가지의 중앙이자(Kim, 2011), 행
Figure 2. Study area
Source: Daegyeongseongjeondo(1936) Figure 3. Study process
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Jeon, 2003). 일제강점기에는 조 선은행 앞 광장을 줄여서 ‘선은전 광장’ 또는 일본어로 ‘센킨마 에 광장’이라고 불렀다. 광장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서는 해방 전 몇 차례의 문화행사(동아일보 1923년 4월 26일, 매일신보 1930년 9월 17일)가 열렸을 뿐이며, 해방 이후에도 집회와 시위 장소로 활용된 경우(동아일보 1989년 2월 25일, 동아일보 1990년 5월 10일)를 제외하면, 광장으로 자유롭게 활 용한 사례는 드물다. 광장이 생성된 시기의 중요성에도 불구하 고, 조선은행 앞 광장 자체에 대한 연구 성과는 미비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광장이 생성된 일제강점기에 주목하여, 광장의 생성 과정과 그 변화를 통해 조선은행 앞 광장의 특성을 도출 하고자 한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시구 개정에 관한 훈령과 이에 따른 1912년 경성부 시구 개수예정 계획노선이 고시되고, 경성의 도 시계획도 본격화되었다. 광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은 이러한 도 시계획의 결과물이다(Kim
2, 2003). 이에 본 연구의 시간적 범 위를 일제강점기, 즉 1910년부터 1945년으로 한정한다. 공간적 범위로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건축물을 포함한 조선은 행 앞 광장 주변으로 설정한다. 광장의 북쪽에 면한 도로의 일 제강점기 지명은 남대문통 2정목과 3정목이며, 광장 남측에는 본정이 자리하고 있다(Figure 2 참조).
Ⅱ. 분석의 틀
조선은행 앞 광장에 대한 연구는 Kim
1(2011)의 연구가 대표
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도심부 대표적인 광장인 조선은행 앞 광장과 경성부청 광장(현 서울광장)을 대상으로 두 광장의 형 성사적 배경과 장소성의 차이를 규명했다. 광장을 소통형과 과 시형으로 구분하고,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도시의 광장 공간에 대한 특성을 고찰했다. 이 외 연구들은 조선은행 앞 광장에 관 한 연구라기보다는 도로와 건축물의 변화에 관한 연구가 대부 분이다. 주요 도로였던 남대문통과 일본 거류민의 동태 변화에 관한 연구로, 결절점으로서 조선은행 앞 광장을 다루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Kim, 2001; Jeon, 2003; Kim
2, 2003; Kim
3, 2003; Kim
2, 2011; Yeom, 2016). 서울 도심의 이벤트 공간에 관 한 연구로 조선은행 앞 광장을 비롯한 주요 가로에서 벌어진 행사, 이벤트, 집회 활동을 분석한 연구(Park and Choi, 2005) 와 남대문통의 주요 건축물의 변화를 고찰한 연구가 있다(Yoon, 2003).
광장에 관한 선행 연구 중 공간 구성에 관한 연구(Jang, 1996;
Seong & Ryu, 2013)와 광장의 형성, 설계요소, 만족도에 관한 연구(Hong, 2002; Lee et al , 2012; Choi et al , 2014) 등을 참고 하여 분석의 틀을 설정하였다. 광장이 생성되는 시점의 도시계 획 변화와 공원녹지 정책을 분석하여 조선은행 앞 광장이 생 성되는 시기의 배경과 맥락을 먼저 고찰한다(Ⅲ장). 분석 대상 을 물리적 요인과 비물리적 요인으로 구분한다. 물리적 요인으 로는 공간 특성으로, 대상지의 토지 변화, 주변 도로 및 교통 시 설, 주변 건축물, 광장 시설로 세분하여 분석한다. 사회 문화적 요인으로는 광장에 대한 이용과 인식을 분석한다(Ⅵ장). 광장 의 공간적 생성과 변화를 통해 조선은행 앞 광장의 특성을 도 출한다(Ⅴ장)(Figure 3 참조).
본 연구는 경성부 도시계획의 근거가 된 조사 자료인 1927년
경성 도시계획 자료조사서를 중심으로 당시 공원녹지 정책, 도
로계획과 교통 현황을 파악한다. 1910년대와 1930년대 발행
된 경성시가도, 대경성부대관 등의 지도와 1912년 토지조사 후
작성된 지적원도 등을 통해 필지 및 도로 변화를 추적한다. 주
Title Year Reference Contents Gyeongseongbu dosigyeheog josa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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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igado [경성시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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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igaji gyehoeg pyeongmye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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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dosigyehoeggaloma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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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gyeongseongbudaeg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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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bu nambu jijeogw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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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igkind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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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ilbo
[경성일보] 1910~1945 Owned by the Japanese administration and promoted colonial policies iden- tified for policies related urban planni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ongailbo
[동아일보] 1920~1940 Naver News Library
(newslibrary.naver.com) Launched in 1920 and forced to be terminated in 1940 used to identify the Koreans perspective to many policies.
Architecture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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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22, Joseon’s architects were formed the association of Korean arch- itecture and published architecture of Joseon‘ as the official magazine con- tained articles related to architecture in Korea until the liberation.
Post cards 1910~1945 Busan Museum Used to study major events and cultures of that time.
Table 1. Primary literature list
요 시설의 변화와 이용 양상은 ‘매일신보’, ‘동아일보’, ‘경성일 보’ 기사와 ‘조선과 건축’에 실린 도면들과 당시 광장의 모습을 담은 엽서와 사진, 관광안내도 등을 활용한다. 광장에 대한 당 시 이용자들의 인식은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통해 파악한다(Table 1 참조).
기존 연구와의 차별점은 첫째, 조선은행 앞 광장 자체에 집 중하여 생성과 구체적인 변화과정을 모색하는 점이다. 둘째로 는 물리적인 변화 외에 광장의 기능, 이용, 사회적 인식을 파악 하는 점이다.
Ⅲ. 일제강점기 도시구조 변화와 광장
경성의 도시계획은 1912년 조선총독부의 시구 개정에 관한 훈령과 이에 따른 1912년 경성 시구 개수예정계획노선의 고시 로 시작된다. 1910년대부터 시행해오던 시구 개정을 위한 사업 은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한 계획으로 대체된다. 1912 년 경성시구개정 사업내용은 중심가로의 신설 및 도로 폭 확장 과 직선화, 계획적인 격자형 직선 도로망, 광장을 중심으로 하 는 방사형 가로망 구상, 주요 결절점의 광장 설치 등이다(Kim
2, 2003). 이 중 광장이라는 용어는 노선도에 등장하고 있는데,
1912년 경성시구개수예정노선계획에서는 황토현 광장(세종로 네거리), 황금정 광장(을지로 3가), 탑동공원 앞 광장, 대안동 광장(안국동 로터리), 대한문 앞 광장과 남대문 주변과 함께 조 선은행 앞 광장이 포함되어 있다
2). 1919년에 개정안에 따르면 이 중에서 황토현 광장, 탑골공원 앞 광장, 대한문 앞 광장, 남 대문주변과 조선은행 앞 광장만 유지되고, 그 외에 광장은 삭 제되었다
3).
1910년과 1927년의 지도를 비교하면 도시계획이 어느 정도 실행된 후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 조선은행 앞 광장이 형태적 으로 완성된 것을 파악할 수 있다(Figure 4 참조).
이와 같은 계획은 신문에도 보도하고 있다. 매일신보에 ‘광 장 시설과 의견’이라는 제목으로 “가로의 풍취를 위해 도로의 교 차지점에 광장을 설치한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대상지로 조선 은행 앞, 경복궁 앞, 대한문 앞을 들고 있으며, 장래 시설 계 획 대상지로 황금정과 탑골 공원 앞 등을 선정하고 있다. 광장 시설은 도로시설물 정리위원회에 의견을 받아 설계되어야 한 다고 강조하고 있다(Maeilsinbo, 1914. 7. 19)(Figure 5 참조).
광장 설치 대상지가 도로의 결절부나 공원이나 궁궐 앞과 같은 넓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시계획이 시작된 1930년대의 광장 계획에서는 조
a: Before the plaza
Source: Gyeongseongsigajeondo(1910) b: After the plaza
Source: Gyeongseongsigado(1927) Figure 4. Transformation of urban structure
a:Gyeongseongsigajigyehoegpyeong-
myeondo(1936) b: Seoulsidosigyehoeggalomangdo(1953)
Figure 6. Urban planning and the plazaFigure 5. Facilities in the plaza and related opinions Source: Maeilsinbo, 1914. 7. 19.
선은행 앞 광장이 삭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6에서 1936년과 해방 이후인 1953년도의 계획상에서 광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1번이 표기된 대한문 앞 광장을 시작으로 번호 를 매겨 광장을 분류하고 있으나, 조선은행 앞 광장은 포함되 지 않는다(Figure 6 참조).
공원 녹지 계획에서는 공원, 유보지, 수원(樹園)으로 분류 하고 있는데, 이 중 수원이 보도를 설치하고, 식재와 전등 설비 를 갖춘 것으로 보아 광장과 유사한 시설로 보인다. 수원으로 분류된 곳으로 수원 1은 태평정(서울광장 주변). 수원 2는 태평 정 및 신교부근(광화문 광장 일부)이다(Gyeongseongbu do- sigyehoeg josaseo, 1927: 248).
요약하면, 1912년 경성부 시구 개수노선도에 광장이 등장하 고 있으며, 선행연구와 신문기사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 도로의 교차점이나 공원 앞 넓은 공간을 광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 선은행 앞 광장은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과 함께 도심의 주요
광장으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다른 두 광장과는 달리 조선은행 앞 광장은 본격적으로 도시계획이 시작되는 시기인 1930년대 이후부터 계획에서 제외된 것으로 파악된다.
Ⅳ. 한국은행 앞 광장의 생성
1. 공간 특성 1) 도로와 필지변화
1895년 남대문통으로의 일본인 진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진고개에서 남대문 사이의 도로를 확장했다. 조선 정부는 남대 문통 시전 가가를 철거하고, 일본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남 대문통과 진고개를 잇는 도로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는데 전력 했다(Jeon, 2003: 192-194). 1896년 일본 영사관은 남산산록 에서 조선은행이 들어설 부지의 건너편으로 이전했다. 민간단 체인 거류민단역소와 상업회의소도 1897년 영사관 부근에 건 물을 신축하여 이전했다. 이로써 일본인 거류지의 중심은 진 고개에서 교통이 편리하고 상업이 발달한 남대문통으로 이동했 다(Kim, 2003: 210-211). 본격적인 근대도시계획이 수립되기 이전부터 조선은행 앞 광장 주변은 일본인의 행정업무를 담 당하는 공간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남대문에서 조선은행을 거쳐 종로에 이르는
총연장 790間(1,436.3m)의 도로에 대해서 차도 10間(18.1m)와
보도 5間(9.0m)를 구분하여 도로 폭을 15間(27.2m)로 확장
하는 공사를 1914년에서 1919년까지 시행했다(Gyeongseongbu
dosigyehoeg josaseo, 1927: 176). 1913년 초부터 남대문통 내
건물의 신축과 개축을 제한하기 시작한 총독부는 5월부터 노선
의 남쪽인 남대문에서 조선은행 앞 구간의 도로 폭을 넓히기
위해 부지 매수를 시작했다(Yeom, 2016: 29). ‘가옥가격과 이 전료,’ ‘남대문통의 확장’이라는 다음 기사로 매수 가격과 가옥 이전료, 시기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남대문통으로부터 본정 1정목에 이르는 도로는 총독부에서 시공 을 결정하였으므로 관계지 매수에 착수하였는데, 매수 토지의 면 적은 63평 정도에 가격은 매 평 120원, 가옥 이전료는 매 평 50 원이다.” (Maeilsinbo, 1912. 1. 21)
“남대문으로부터 조선은행 앞까지 총독부 토목국 경영의 대정 2년 도 경성시구개정실시 지점은 남대문에서 조선은행 앞까지로 전부 15간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하여 선준비도 이행하였으므로, 곧 토 지매수에 착수하여 6월말에는 매수를 완료하고, 8월 중에는 전 부 철거한 후 9월부터 본 공사에 착수하여 본년도 중에는 완성할 예정이다.” (Maeilsinbo, 1913. 5. 21)
남대문통 남쪽 구간 공사를 마무리한 총독부는 조선은행 앞에서 종로에 이르는 북쪽 구간 공사를 다음 해로 미루는 변 경안을 발표하면서 조선은행 앞과 대한문 앞을 연결하는 장 곡천정통(현 소공로 일대)의 정비공사는 예정대로 진행했다 (Maeilsinbo, 1914. 7. 10). 종로에 이르는 나머지 구간도 공사 의 어려움에 불구하고, 공진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완료해야 한 다고 필요성을 언급하며(Maeilsinbo, 1915. 8. 12), 조선은행 앞 주변 도로의 공사를 시행했다.
1912년 작성된 경성부 남부 지적원도를 확인한 결과, 본정 1정목의 일곱 개 필지를 매입하여 주변 도로보다 넓은 공간 을 확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매입된 것으로 추정되 는 필지는 본정 1정목의 1번지부터 7번지다. 1번지와 2번지, 4 번지부터 7번지까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Gyeong- ongbu nambu jijeogwondo, 1912)(Figure 7 참조). 1910년도와 1927년도 지도를 비교해 보면 필지 매입을 통해 본정으로 통 하는 입구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본정 1정목에 위 치한 경성우편국의 정면이 오픈스페이스를 향하여 드러나게 되었다(Figure 8 참조). 주변 도로가 1912년부터 1915년 사이 에 확장되고, 조선은행 앞 광장부지까지 매입이 완료되면서 광 장의 형태적 토대가 완성되었다. 1910년대 후반 사진을 통해 가로가 반듯하게 정비되고, 조선은행 앞에 오픈스페이스가 형 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Figure 9 참조).
2) 건축물
1936년에 제작된 대경성부대관은 조감도 형태로 제작되어 건물의 입면이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에 의하면 광 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건축물은 네 개소로, 북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선은행(1912), 동측의 경성우편국(1915), 남측의 미 쓰코시 백화점(1930), 조선저축은행(1935)이 차례로 자리 잡았 다(Figure 10, 11 참조). 미쓰코시 백화점 이전에는 1896년에 일
Figure 7. Purchased lands for the plaza
Source: Gyeongseongbu nambu jijeogwondo(1912) marked specific lands by authors.
a: Before lands purchase
Source: Gyeongseongsigajeondo(1910) b: After lands purchase Source: Gyeongseongsigado(1927) Figure 8. Change of the site
Figure 9. Begining of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estimated to be late 1910s)
Source: The looks of modern Korea from postcards 1(2009)
본 영사관, 1906년에는 경성부청이 차례로 위치했다. 이후 경
성부청이 1926년에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로 이전하면서 미쓰
코시 백화점이 들어섰다. 광장을 둘러싼 네 개의 건물은 주변
건물군과는 대조적인 규모와 형식이었다. 유럽풍의 신식 건물
# Station Number of trolley
Number of passengers Get on Get off
1 Jae-gyo 724 818 736
2 In front of Changdeok
Palace 738 1,677 1,539
3 Yeonglahjeong 765 1,991 1,991
4 In front of
Commercial Bank 888 257 257
5 In front of Joseon
Bank 909 4,870 4,912
6 Gosijeong 899 1,199 1,045
7 Samgag-ro 714 1,287 1,221
8 Hwawonjeong 752 842 599
9 Gwanhg-gyo 414 736 583
10 Jonglo 1 Jeongmog 732 462 403
11 In front of Jonglo
Market 398 135 128
12 In front of Docheong 438 605 1,058
13 Seodaemun 686 1,084 1,035
Source: Gyeongseongbu dosigyehoeg josaseo, 1927: 159-160.
Table 2. Main stations of Gyeongseong trolley, number of pas- sengers
Figure 10. The plaza surrounded by Western style buildings Source: Daegyeongseongbudaegwan(1936)
Legend: 1. Joseon Bank 2. Gyeongseong Post Office 3. Mitsukoshi Department Store 4. Joseon Jeochuk Eunhaeng
Figure 11. Main buildings near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 Source: Kim2(2011) Rearranged by authors.
Legend: 1. Joseon Bank 2. Gyeongseong Post Office 3. Mitsukoshi Department Store 4. Joseon Jeochuk Eunhaeng
은 기술적으로 낙후되고, 열악한 피지배자들의 주거문화와 대 비되면서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문명 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고안된 의도적인 정치 적 기획의 산물이었다(Kim
1, 2003). 이 건물들은 서양의 전통 적인 장식 요소들을 직설적으로 도입한 양식 주의를 표방하 거나, 모더니즘 건축과의 사이인 절충형 경향을 보였다(Kim
2, 2011).
3) 교통과 광장 시설
1899년 서대문~청량지간의 전차 노선이 개설된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을지로의 확장과 함께 남촌에도 노선이 건설 되고, 이어 종로에서 본정으로 연장되었다. 이후 1926년에 황토 현 광장과 남대문을 연결하는 노선이 마지막으로 생겼다(Kim
2, 2003). 전차의 주요 정거장 중 조선은행 앞 정류장에서 가장 많은 차량이 통과하고, 가장 많은 승객이 타고 내렸다(Table 2
참조). 교통의 주요 결절점으로서 조선은행 앞 광장은 도로의 정비나 계획에 있어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실현되지 는 않았지만 1937년에는 경성부 토목과에서 남대문-선은전-종 로를 연결하는 지하도를 건설하여 지하 상점가를 조성하는 계 획을 세우는 등 이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상가 개발 논의도 있 었다(Maeilsinbo, 1937. 1. 24.)
4).
광장 주변으로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전차에 사람이 치는 사 고도 증가했다(Dongailbo, 1922. 1. 26). 이에 따라 경성의 주요 교차로에 회전식 순환로를 조성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회 전식 순환로의 주요 목적은 순환식 교통체계를 도입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하고, 원활한 교통의 흐름을 위한 것이다. 언론은 이 새로운 시설이 도시미관을 개선함으로써 경성의 신 명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Gyeongseongilbo, 1938. 8. 26). 또한 도 시미화사업의 일환으로(Maeilsinbo, 1938. 7. 17.)
5), 소공원으로 조성하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니 녹화를 통해 도시민에게 좋은 공기를 마시게 한다는 목적도 있었다(Dongailbo, 1937. 11. 7).
1939년 1월에 서울의 주요 교차로인 삼각지, 원남동 등에 순환
식 로터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 중 특히 조선은행 앞 순
환로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중요하다는 이유로, 블록으로 포장
하고, 분수대와 녹지대를 조성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사비
6만여 원을 들여 완공될 예정이며, 녹지대 중앙으로 전차노선을
배치하고 녹지대와 분수대 위치도 미리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Figure 12 참조)(Dongailbo 1939. 1. 8.)
6). 로터리가 완성된 후
Figure 13. Completed rotary Source: Dongailbo, 1939. 5. 7
a: 1st Sakurai Magarimatsu(櫻井曲松) b: 2nd Shota Iwata(岩田庄太郞) c: 2nd Masumura Sei(潀村 正)
d: 3rd Kuniya Katayan(片柳外夫) e; 3rd Hideo Masato(寶諸秀男) f: 3rd Kim In-hwan(金仁煥) Figure 14. Result of the fountain design competition
Source: Architecture of the Joseon (1939, 9(9): 18) Figure 12. Plan for the rotary in front of Joseon Bank Source: Dongailbo, 1939. 1. 8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었다고 평가하며(Dongailbo, 1939. 2. 3), 추가로 나무와 잔디공사도 시행했다. 공사가 완료된 후 조선은 행 앞 광장은 경성의 새로운 경관이라고 평가하며, 분수만 추 가하면 대도시의 면모가 완성될 것이라고 보도했다(Figure 13 참조)(Dongailbo, 1939. 5. 7).
“조선은행 앞 로터리, 경성의 이채(異彩)로 등장: 조선은행 앞 로 터리는 금년 봄 접어들며 공사를 재촉하더니 요즘은 공사는 필하 고, 잔디 입히고, 식목하는 등 채색에 바쁘다. 이제 한 가운데 분 수를 만들면 조선은행 앞에는 대도시의 면모를 그래도 나타낼 것 이다.” (Dongailbo, 1939. 5. 7)
로터리 녹지대 안에 분수대 설치를 위해 설계공모가 열렸다.
공모명은 ‘경성부 조선은행 앞 분수지 현상모집’으로 총 응모 작 42점 중 1등작 한 점, 2등작 두 점, 가작 세 점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으로 공영(工營) 부장과 경성부 회계과, 토목과 등
의 직원과 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 4인으로 구성되었다. 수상작
들은 입면도, 조감도, 스케치 형식으로 모두 원형의 형태로
분수대를 제안하고 있다(Architecture of the Joseon, 1939)
(Figure 14 참조). 가작 한 작품을 제외하고 참가한 사람은 대
부분 일본인으로, 제도작법을 이용하여 구체적인 설계안을 작
성하고 있다.
a: Reto cream adver-
tising tower b: Kirin beer advertising
sign c: Neon and night scenery d: Entrance gate for Bonjeong Figure 16. Landscape elements around the plaza
Source: Postcards of Japanese colonial period
a: Street lights on the plaza
in front of Joseon Bank b: Street lights in front of
Sogong-dong entrance c: Trolley pole in front of Gyeong- sung Post Office
Figure 17. Street lights and trolley poleSource: Postcards of Japanese colonial period
a: Before the purchase
of land b: After the land ac-
quisition c: Established the Foun- tain
Figure 18. Main Transformations of the Site
a: 1926 b: After 1939
Figure 15. Spatial transformation of the plaza(The plaza overlooking the Namdaemuntong 2 Jeongmok on the Namdademuntong 3 Jeongmok)
Source: Postcards of Japanese colonial period
1939년에 로터리가 조성되면서 조선은행 앞 광장의 경관은 큰 변화가 생겼다. 교통섬 기능을 하는 녹지대에는 잔디와 정 형식 식재, 그리고 분수대까지 조성되었다(Figure 15 참조). 대 형 건축물로 둘러싸인 초점 경관은 새로운 도시의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광장은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대형 광고도 등장 했다. 건물 크기만 한 단독 광고 시설물인 ‘레토크림’ 광고와 건 물 상부에 ‘기린맥주’ 광고가 설치되었다. 네온사인을 설치하여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야간경관이 형성되었으며, 경 성 우편국 옆길에 설치된 본정 입구를 알리는 화려한 게이트는 조선은행 앞 광장이 상업과 문화의 시작점임을 알려주고 있다 (Figure 16 참조). 거리마다 다른 디자인의 가로등과 전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전신주도 설치되었다(Figure 17 참조).
4) 소결
조선은행 앞 도로는 1914년부터 정비됐다. 총독부는 1913년 초부터 도로 확장을 위한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 에서 매입한 조선은행 건너편의 일곱 개 필지로 인해 넓은 공 간이 확보되었다. 1912년에 조선은행이 신축되고, 1915년에는 경 성우편국이 신축되면서 광장의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조선 은행 앞 교차로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차노선 중에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이 가장 많았으며,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 타고 내렸다. 1930년에 미쓰코시 백화점이, 1935년에 조선저축은행
이 각각 신축되었다. 늘어난 교통과 이용자들로 인해 사고의 위험이 늘어나자 1930년대 중후반부터 새로운 교통시스템에 대 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1939년 초에 순환식 로터리가 조 성되었다. 이 시기부터 신문기사나 관보에서의 명칭도 광장이 라는 명칭 대신 로터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함께 1939년 후 반에는 설계 공모에 의해 분수대가 설치되어 오늘날의 광장 이 완성되었다(Figure 18 참조).
2. 이용과 인식
조선은행 앞 광장은 기존의 전통적인 도시경관과는 확연히
Figure 19. The plaza after the liberation Source: LIFE(1947. 6)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Figure 19 참조). 이 광장은 일본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는 상징적 공간이며, 행정과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1926년 경성부청이 태평통으로 이전함에 따라 본 정의 행정 중심지의 기능은 다소 약화되었으나, 그 부지에 미 쓰코시 백화점(1934), 조선저축은행 사옥(1935)이 들어서면서 1930년대에는 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오히려 높아졌다 (Jeon, 2003: 173). 그러나 조선은행 앞 광장은 오백년 고도 한 양의 역사성을 띤 장소들과는 무관하게 일본인 거류민들의 본 거지와 인접한 곳에 외래 식민권력에 의해 건설된 서양식 랜드 마크 건축물들에 의해 새롭게 창출된 공간이었다(Kim
1, 2003).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은행 앞 광장에서 공연이나 이벤트가 열렸다는 보도는 10건 미만이었다. ‘납량전람회’를 위해 ‘광장 에 대분수탑을 장치하고, 전등장식을 행하여 노천음악을 취주 하고자 한다(Dongailbo, 1923. 4. 26)’라는 내용으로 보아, 일시 적인 행사 장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행사나 이벤트 기사 는 주로 1930년대 기사에서 발견된다. 공개연주회 기사로 ‘해 군 군안대 연주대회(Maeilsinbo, 1930. 9. 17)’, ‘영국함대 연주 (Dongailbo, 1935. 8. 6)’, ‘불함대 군악연주(Dongailbo, 1936. 6.
4)’가 열렸으며, 기념일 행진을 위해 경성역, 삼각지 등과 함께 집결 장소로 쓰인 예로 ‘육군기념일 행사(Dongailbo, 1939. 3.
11)’가 있다. 시(時)의 기념일 행사로는 시계 검사를 무료 상담 해주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Dongailbo, 1938. 6. 11).
이 밖에는 순환로 시설과 관련된 기사들이 있다. ‘거리의 오 아시스(Dongailbo, 1937. 11. 7)’, ‘부민에게 위안을 주려고 (Dongailbo, 1939. 2. 3)’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볼 때 광장의 녹 화를 통해 도시미관을 향상하고자 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은행 앞 광장을 중심으로 새해의 중요한 변화를 소개하 는 기사에 삽입된 삽화에는 ‘대경성건설보’라는 제목으로 자 동차, 전차, 가로등, 양식건물, 포장이 일러스트로 표현되어 있 다(Figure 20 참조). 1930년대 관광안내도에는 전통시설인 경회루와 새로 조성된 조선은행 앞 광장의 경관을 담고 있다 (Figure 21 참조). 이 광장이 경성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igure 20. Construction of the great Gyeongseong Source: Dongailbo, 1939. 1. 8.
Figure 21. Gyeongseong guide map, 1930s Source: Seoul map archive
재경 일본인 소설가의 작품인 ‘취한 배(1948)’를 통해 일본 인의 시각에서 조선은행 앞 광장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 다. 작품 속에 ‘취중에 조선은행 앞 광장에 내려온 길’, ‘물이 말라버린 광장 중앙 분수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새로운 건 축물과 광장은 제국의 권력과 근대를 체험하는 상징적인 의 미를 드러낸다(Jang, 2016). 조선 신궁 조성을 기념하여 제작 한 사진집 ‘은뢰(1937)’에는 경성의 주요 공간을 소개하는 가 운데, 조선은행 앞 광장에 대해서는 모던한 건축물에 둘러싸 인 대광장과 네온으로 치장한 화려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은행 앞 대광장/모던한 건축물/늘어선 거리/맞은편에 보이 는/남산의/하늘은/대륙항공로/방사포장한 대광장/삐걱거리는 전 차에/햇살은 떨어지고/사람과 차가 크로스하는/네온라이트의 밤 이 왔다.” (은뢰, 1937년, Jang(2016)에서 재인용)
활기찬 광장의 모습은 1929년 ‘별건곤’에 실린 글에서도 발
견할 수 있다. ‘활기가 있고 풍성하며, 진열창에는 모두 값진 물
건과 발길을 끌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다(Jeong, 1929). 그러나 급격한 도시 변화를 체험하게 된 피지배자로서 느끼는 낯섦, 좌절감, 소외 등도 발견된다. ‘궤도를 긋고 가는 전차의 비명이여, 도회의 신음이여’(Yohan, 1931), ‘넓다란 광 장에 털퍽하고 앉고는 거리를 향하야 거다란 입을 딱 벌리고 못마땅한 듯이 백화점을 건너다 보고 있다(Lee, 1933)’, ‘조선 은행 앞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고가고 웅성거린다. 뿌하 고 지나가는 전차가 커다란 기관차처럼 육중스럽고 흉하게 보 인다(Lee, 1940)’ 등의 표현에서는 대도시의 변화 속에서 소외 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근대 서울의 풍경은 박태원, 김기림, 이상, 김광균과 같 은 모더니즘 작가의 1930년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시 를 산책하며 쓴 글들에서 ‘백화점 층층대를 넘쳐흐르는 사람들 의 폭포(Kim, 1931)’, ‘내가 미쓰코시 옥상에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이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Lee, 1932)’와 같은 표현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며 겪는 상실감 을 표현하고 있다. 이상은 ‘운동’이라는 시에서도 미쓰코시 백 화점 옥상정원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며, ‘아무것도 없다’라고 공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Lee, 1935). 김광균은 시 ‘광장’에서 조선은행 앞 광장에 서 있는 느낌을 해 질 무렵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고층빌딩에서 있는 공허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늘어선 고층 위에 서걱이는 갈대밭/열없는 표목되어 조으는 가등/
소리도 없이 모색에 젖어/엷은 배옷에 바람이 차다/마음 한구석에 벌레가 운다/황혼을 쫓아 네거리에 달음질히다/모자도 없이 광장 에 서다.” (김광균, ‘광장’ 중: 1939)
1930년대에 근대 광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조선은행 앞 광 장은 제국의 위용과 변화된 도시문화를 과시하는 상징 경관이 었다. 그러나 화려한 이면에 피지배자에게는 소외와 불안을 경 험하는 낯선 경관으로 인식되었다.
Ⅴ. 결론
조선은행 앞 광장이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어 떤 특성을 가진 공간인지 고찰했다. 도시 계획적 배경을 바탕 으로 공간적인 특성, 이용과 인식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1910년대 총독부가 토 지를 매입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1930년대에 순환 교차로와 설 계 공모를 통해 분수대까지 조성한 기획 광장이다. 1910년대 시구 개수계획에는 주요 광장으로 계획하였으나, 1930년대 이 후부터는 교차로로 공간의 성격이 변화했다. 근대 도시계획이 수립되기 이전부터 일본인 거류지의 중심이었던 조선은행 앞 광장은 일본 영사관, 경성부청, 경성 우편국, 제일 조선은행으
로 둘러싸인 정치 행정의 중심이었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토 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조선은행 건너편의 일곱 개 필지를 매 입함으로써 광장이 형성되는 공간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 써 일본인 상업가로인 본정 입구가 확보되고, 경성부청이 이전 한 후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상업과 도시문화를 주도하는 공간 이 되었다.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순환식 교차로를 조성 하고, 설계 공모를 통해 분수대를 완비함으로써 현재까지 이어 진 광장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둘째, 조선은행 앞 광장은 일제 의 권력과 근대성을 과시하는 랜드마크이자 상징 광장이다. 서 양식 대형건물에 둘러싸이고, 상업 광고와 네온으로 장식된 조 선은행 앞 광장은 근대 도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이거나 문화 이벤트를 하는 공간이라 기보다, 대형 분수대와 녹지가 새로운 초점 경관을 이루어, 대 도시의 변화를 체험하는 상징성을 갖는 공간이었다. 일제의 권력을 과시하는 스펙터클한 경관은 근대 도시의 대표적인 이 미지로 소비되었지만, 피지배자에게는 낯선 소외경관으로 인 식되었다.
조선은행 앞 광장은 경성 도심의 주요 광장중 하나로 기획되 었으나, 1930년대 이후 광장이라기보다는 로터리, 즉 교통섬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용과 인식면에서는 대도시 문화를 체험하 는 상징적인 광장으로 작동했다. 이와 같은 조선은행 앞 광장 의 이중적인 특성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조선은행 앞 광장 자체에 집중하여 생성 시기의 특성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서울의 도시변 화와 함께 정치․경제적 여건을 반영한 공간 변화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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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 앞 광장이라는 의미로 선은전(鮮銀前) 광장, 선은광장, 센킨마에 광장 등으로 불렀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은행으 로 통일하며, 신문기사나 문학작품의 원문을 인용하는 경우는 원본 의 명칭을 쓴다. 1930년대부터는 신문기사나 관보에 광장이라는 명 칭보다는 ‘로터리’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광장이라 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 내용상 대상지를 ‘광 장’으로 통일한다.
주 2. 1912년 경성 시구개수예정노선계획도.
주 3. 1919년 경성 시구개수예정노선계획도.
주 4. “드듸여 地下發展 朝鮮銀行압 廣塲에 地下道路 敷設計劃, 總工費 約 二百萬圓 豫算으로 大京城名物 하나.”
주 5. 朝鮮銀行前에 電車事故 사람을 치어(Dongailbo, 1922. 1. 26), 鮮銀前에
로터리 設置 地下道三條도 開鑿 大京城美化案着具體化(Maeilsinbo, 1938년 7월 17일자), 府內重要十字街上에 全部循環道路實現 鮮銀前 이 나면 三角地、苑南町、惠化町에 小公園兼한 綠化地帶建設, 事 故防止에 交通整理高度化(Maeilsinbo, 1938. 8. 5), 조선은행앞, 원남 정, 삼각지 광장에 순환식교통정리시설을 금년도중으로 완성시키는 동시에 동소문 기타 광장에도 속속 급설하여 도시미관상 도는 교통 정리의 이상적 방법으로서 일석이죠의 효과를 얻을 터라 한다 (Dongailbo, 1938. 11. 12).
주 6. ‘대경성의 건설보, 각부의 새해설계’ 작년여름부터 공사를 시작한 조 선은행 앞 로터리 공사는 그동안 공사장에 있어서 철도국과 경전과 경성부 사이에 의견상위로 공사가 지연되었는데, 작년 11월 상순에
의견이 일치되어 조선은행앞에 있는 전차정유장을 상업은행앞과 청 목당 앞으로 옮기는 동시에 로터리는 부로크로 늘어놓고, 순환식 교 통 정리를 개시하였는데, 이 로터리는 부내 딴 곳에 기설된 것보다 교통중심지대에 있는 만큼 중앙지에 분수탐을 세우고, 그 주위에 나 무를 심고 상업은행 앞 네거리에 설치될 적은 로터리에는 화초를 심 어 녹화지대를 만들려하는 것으로… 동공사는 작년 결빙기에 부득이 중지되었었고, 금년 해빙기에 기공하야 5월경에는 완성될 예정이며, 총공사비는 6만여 원이라 한다. 동소문, 삼각지, 원남정 등의 로터리 도 금년봄에 완성될 것이며, 종로네거리, 남대문네거리, 경성역앞에 는 예산관계로 금년도에 착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Dongailbo, 1939. 1. 8).
주 6. 一層(일층) 우에 있는 二層(이층) 우에 있는 三層(삼층) 우에 있는屋 上庭園(옥상정원)에 올라서 南(남)쪽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고, 北 (북)쪽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고 해서… 중략(Lee,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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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www.luris.molit.go.kr
Received Revised
Accepted 3인익명 심사필 : :
:
20 March, 2017 21 April, 2017 09 June, 2017 19 June, 2017 19 June, 2017
(1st) (2nd) (3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