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News, Volume 19, No. 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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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담긴 국보(3) - 경주 천마총 출토 천마도(국보 207호)
❙강 병 희 강사 (고려대학교)
경주에서 길을 가다 보면 시내 한 복판에 불쑥 솟아 있는 커다란 왕릉들과 마주치게 되고 문득 신비로 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아마도 오래된 과거 속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옛날과 직접적으로 만나기 때 문일 것이다. 이들은 오랜 멸망의 세월을 거치면서 매장된 인물들과 사연들을 모두 잃고 단지 일부 몇몇 무덤들만 왕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경주 유람을 오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고분을 봉황대라 칭하며 그 위에 올라 북서쪽에 있었던 경주 읍성과 시내를 전망하곤 했다.
신라 김씨 왕조 시대에 경주 시내에 조성된 이 고분들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으로 지표면이나 그 보다 조금 낮게 판 지면에 돌을 깔고 시신을 둔 목관과 부장품 나무상자를 두고, 그 전체를 나무 곽으 로 두른 후, 그 위로 사람 머리만한 냇돌을 쌓고 흙을 덮은 구조이다. 따라서 시간이 오래되면 나무 곽이 썩어 그 위의 돌들이 무너져 내려 중앙부가 함몰된 모습으로 남겨졌다(그림 1). 현재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이후 위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그림 1. 신라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 무덤)의 구조.
이런 구조의 무덤은 고구려, 백제, 심지어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먼 유라시아 대륙 알타이지역, 현 카자흐스탄 이씩(Issyk)에 남겨진 스키타이(기원전 8세기-4세기) 후기 적석묘와 닮았다. 처음 발굴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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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19권 제3호, 2016관총을 비롯하여 이 고분들에서는 특이한 모습의 금관, 금장식, 유리 그릇 등의 이국적인 물건들이 출토 되었는데 역시 동북아시아에서는 생소한 것들이었다(그림 2-1, 2-2, 2-3, 3, 4).
그림 2-1.
서봉총 금관, 5세기.
그림 2-2.
Issyk 출토 모자 핀.
그림 2-3. 흑해 연안 사르파티아 족 무덤 출토 금제 관, 1세기,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그림 3. 左, 계림로 14호묘 출토 금제감장보검, 5세기. 中, 카자흐스탄 보로우에 출토 단검, 5세기,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右, 신장성 키질벽화 검, 5-7세기.
그림 4. 반점문 유리 완.
上, 금령총 출토, 5-6세기.
下, 독일 쾰른 출토, 4세기.
그중 가장 큰 규모의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고분에 대한 지식 축척을 염두에 두고 먼저 발굴해 보기로 한 작은 규모의 황남동 155호 고분에서는 동쪽 중앙부 부장품 상자에서 천마도가 그려진 백화수피 말다 래(장니) 한 쌍, 대나무 살로 엮은 바탕 위에 천마 등을 투조한 10장의 금동 판을 금동 못으로 고정시킨 말다래 한 쌍, 칠기로 만든 말다래 한 쌍 등 6점의 말다래가 수습되었으며 이 중 칠기로 만든 것은 너무 손상이 커 확인만 가능하였고 백화수피 말다래 한 쌍과 대나무 금동장식의 말다래 하나만 보존 처리를 거 쳐 남겨졌다. 이후 회화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신라의 귀중한 그림 자료가 되었으며 이 무덤도 대표 적인 출토 유물에 따라 천마총이라 불리게 되었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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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左, 천마총 백화수피 천마도 말다래. 中, X선 촬영본. 右, 대나무 바탕의 금동판 말다래 천마도.
말다래는 오늘날 자동차나 자전거 바퀴의 흙받기와 같은 용도로 말안장 양 옆으로 드리워져 말이 달리 면서 튀는 흙을 막아 주는 마구이다(그림 6). 천마총 말다래 한 쌍은 각 75 × 53 cm, 두께 6 mm로 백화 수피를 여러 장 겹치고 다시 고운 백화수피를 입혀서 14줄의 사선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누빈 후 가장 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가장자리에는 먹(검은선)과 주사와 광명단 등의 납 화합물(붉은색)로 그 려진 인동당초문을 두르고 중앙에는 호분으로 흰색의 천마를 그렸는데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나오고 꼬리와 갈퀴가 뒤로 날리는 힘찬 모습이지만 네 발과 함께 표현된 서기 표현이 서툴러 하늘을 나는 하체 의 움직임은 약화되어 보인다(그림 5).
그림 6.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 토기, 5-6세기.
말을 탈 때 발을 받치는 등자 측면에 늘여 뜨러진 사각형 마구가 말다래이다.
그림 7. 중국 감숙성 주천 정가갑 5호묘 전실 천장 천마도, 4-5세기.
기마 풍습은 북방 이민족들이 북중국을 지배했던 오호십육국시대(304-439년)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에 확산되었으며 한반도에서도 기마병을 위한 마구들이 정비되기 시작하는데 신라 고분에서도 말다래를 포 함한 마구들이 출토되고 있다. 한편 천마총의 천마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도 유사성을 보이는 4-5세기 중국 감숙성 주천 5호묘의 전실 북벽에 그려져 있는 천마도(그림 7)와도 비슷하여 역시 북방 유목민 문화 와 관련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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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19권 제3호, 2016그림 8. 左, 경주 보문리 부부총 출토 귀걸이와 누금상감 세부.
上, 보석이 감입된 누금상감 기법의 금제감장보검 세부, 일부 보석 손실됨.
특히 천마 몸체에는 반달 모양의 문양이 있어 누금세공(鏤金細工) 기법에서 찾아지는 보석 감입의 형태 로 보여져 주목된다. 금제품에 금실로 문양의 테두리를 두르고 금알갱이를 붙이고 보석을 감입하여 장식 하는 기법을 누금세공 기법이라 하며(그림 8) 이는 이집트 12왕조에서 시작되어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스 키타이, 중국 한나라에서 성행하였으며 특히 신라에서 유행하였다. 이때 사용되는 금실과 금알갱이의 크기 는 mm 단위의 작은 것까지 용도에 맞추어 다양하게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이들을 얇은 금판에 붙일 때는 금보다 용융점이 낮은 금속이나 붕사 등을 이용해 접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북방 유목민족적 인 영향으로 이해되며 금속을 다루는 다양한 화학적 지식과 응용을 기반으로 하는 기법과 기술이다.
한편 천마가 그려진 백화수피는 자작나무 종의 얇고 하얀 껍질로 세로로 칼집을 내면 겹겹이 얇은 껍질 이 한 장씩 잘 분리되고 매끄러우며 큐틴(cutin)이란 방부제와 왁스 성분이 많아 잘 썩지 않고 방수성도 좋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주로 백두산에서 시베리아 벌판에 걸쳐 자라며 남한에서 자라는 자작나무 종은 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로 이 중 박달나무들은 껍질이 너무 다르고 앞의 두 예는 자작나무보다 약간 품질이 떨어지긴 해도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전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는 현미경으로 보는 이들 세포 형태는 같고 오랜 시간 땅 속에 있었 던 관계로 품질의 상, 하를 구별할 수 없는 천마총 말다래 백화수피는 수입된 북쪽의 자작나무인지, 신라 영토 내의 자작나무 종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신라 고분에서는 여러 백화수피 제품이 출토되고 있어 이러한 양상을 북방 유목민족과의 연관 관계를 보여 주는 일면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신라 적석목곽분 4-6세기 왕릉들은 우리 고대사의 중요한 단서를 간직하고 있다. 그를 해석함에 있어서 과학적 자료와 지식들은 중요한 핵심을 짚어 낼 수 있는 보조적 수단의 하나임은 틀림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