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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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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활의 발견’

홍상수의 경주

서영채 |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ycseo@snu.ac.kr) 영화와 도시 • 73영화와 도시 • 74

제460호 2020 febr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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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 좋아 하지 않는다.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고, 예술 작품의 세계에 만장일치는 없는 법이니까. 게 다가 홍상수의 영화는 특이해서, 평양냉면처럼 호오가 극명 하게 갈리는 편이기도 하다. 취향과 호오라는 것 자체가 예상 과는 다를 경우가 많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홍상수의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저런 내용을 첫 문장으로 내보내는 일은 좀 이례적이지 않은가. 홍상수의 영화에 대한 비판이라도 해보겠다는 말인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자기 생각이라 해서 자기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워낙에 졸가리가 분명치 않고 오락가락 하는 것이 생각이라는 물건이기도 하 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홍상수의 영화와 경주라는 공간에 대해 쓰겠다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 바로 저것 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여기에서 진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 문장이 떠올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 문장 을 활자로 옮겨 글의 초두로 삼았다는 점이다. 생각이야 얼마 든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다른 차원 의 일이다. 어찌된 것이건 간에 몸이 움직였다는 것은, 갈팡 질팡하던 생각에 각이 잡힌 셈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로 말하 자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이 글의 서두에 적어가는 순 간, 나는 이미 그에 뒤이어질 두 번째 문장이 무엇인지를 알 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바로 그 두 번째 문장이, 저 무례하고 당돌한 첫 문장을 글의 서두에 나서게 했다고도 할 수 있겠 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홍상수 의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2.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고 좋아하 지 않는 옷은 입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 니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홍상수의 영 화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본다. 영화를 보는 일이니, 음식과 의복처럼 불가피한 경우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보아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두 번쯤 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홍상수의 영화를 본다는 말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정 도는 되어야 저런 표현에 합당하다. 헤아려보니, <돼지가 우 물에 빠진 날>(1996) 이후로 지금까지 20여 편이 넘게 나온 그의 영화를 나는 거의 다 보았다. 이런 정도라면 단지 정상

생활의 발견(2002) 출연: 김상경, 추상미, 예지원 감독: 홍상수

대릉원과 남산

제460호 2020 febr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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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이상해도 많이 이 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 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같은 어조로 또 한 마 디 덧붙여진다. 경주도 마찬가지야!

3.

물론 이것은 매우 비겁한 태도이다. 논리를 외면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데올로기적 태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빨갱이가 싫다는데 무슨 이유를 대란 말인

가, 나는 그냥 싫어!’와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게 정답이다. 그 것은 전형적인, 비겁한 강자-다수자의 태도이다. 싫어한다고 말해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오히려 싫어한다고 말함으 로써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사람의 태도인 것 이다. 그러니까 그 뒤에 이유로 덧붙여진 것들은 모두 겉치레 일 뿐이고, 나중에 찾게 된 핑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더욱더 비겁해진다. 정작 자기가 싫어하는 빨갱이나 자이니치나 다 문화의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싫어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겠기에, 그렇게 말해도 되는 만만 한 대상에게 그런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내가 지금 그런 단 세포 멍청이 괴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런 힐문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홍상 수의 영화와 경주라는 장소를 상대로 해서. 그래서 두 번째 문장을 저렇게 썼다고 해야 한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 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라고. 자기를 분열시켜서.

게다가 문장을 비틀고 꼬아서. 뭔가 있는 것처럼. 그러니 그 것은 설사 아이러니라 해도, 단순히 뒤집어 말하기로서의 반 어는 아닌 것이다.

물론 내가 경주라는 도시나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 는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내가 바로 그 어떤 사람에 해당한다), 다수의 고평을 받아온 것들의 가치가 흔들릴 수는 없다. 홍상수의 영 화와 경주는 모두 그런 대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 실을 글의 초두에 썼고,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 러니 때문이라고 쓴다. 오락가락에 갈팡질팡이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고 하고 싶으나,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바 로 뒤통수를 친다. 무엇 때문인가.

영화와 공간을 연결시켜달라는 이 글의 청탁을 받았을 때 홍상수의 경주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홍상수의 영화 <생활 의 발견>이 만들어낸 기억과 잔상 때문이다. 확인해보니 2002 영화와 도시 • 74

홍상수 감독의 filmography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2000 오! 수정

2002 생활의 발견 2004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 극장전

2006 해변의 여인 2007 밤과 낮 2008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 하하하

옥희의 영화

2011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 20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 우리 선희

2014 자유의 언덕

2015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6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2017 그후

풀잎들

2018 강변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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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영화이다. 깜짝 놀란다. 그렇게나 오래된 영화였나 싶다가, 1992년이 아닌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각설하고.

이 영화에는 중요한 두 개의 도시가 나온다. 춘천과 경주 이다. 이 두 곳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한 세대가 지니는 상 징적 공간이며 특별한 장소이다. 여기에서 장소라 함은 주관 적 경험이 각인됨으로써 고유의 체취를 갖게 된 공간이라는 뜻이다. 장소는 개인의 고유성이 새겨져 있는 곳이고, 또한 그 고유성은 사회적이거나 세대적일 수도 있다. 춘천과 경주 는, 특히 1970, 1980년대 대학생활을 한 내 또래들에게 공간

선배는 명숙을 마음에 두지만, 정작 명숙은 경수에게 사랑을 강요한다 무작정 떠난 경수의 춘천여행길

적 클리셰이기도 하다. 춘천은 대성리 청평 가평으로 이어지 는 북한강 벨트의 심장과 같은 장소이다. 소양호, 청평사, 강 촌과 같은 고유명사들은 엠티, 데이트, 혼자 여행하기 같은 일반명사와 연관된다. 그리고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 고 있는 장소이다. 우리 세대에게는 고등학생들의 단골 수학 여행지였다. 불국사 여관촌, 여관 밥, 기차, 캠프파이어, 기타, 담배, 소주 같은 단어들이 이어져 있다. 이런 단어들은 그곳 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 게도 자기 세대 친구들과의 교유와 대화 속에서 공동의 경험

불국사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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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정서를 만들어낸다.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은 바로 그 같은 장소적 상징 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경수는 춘천에서 대학 선배를 만나고, 경주로 가는 기차에서 중학 시절과 연관된 여 성을 만난다. 두 장소에서 모두 사고가 생긴다. 사람 사는 일 이 결국 사고의 연속이며, 평온함이란 두 사고 사이의 휴지 부일 뿐임을 일깨워준다. 물론 사고라 함은 젊은 남성과 젊 은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니,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DNA나 인류의 종적 차원에서 보자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 이다. 반하고, 같이 먹고 마시고, 섹스를 한다. 그러나 그 안에 서 막상 감정과 충동의 파고를 감당해야 사람들의 입장에서 는 괴롭고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홍상수의 영화는 잔인하다. 보통 사람들의 언어적 감각을 가감 없이 화면 위에 올려놓는다. 무대에 오른 정련 된 대사가 아니라, 동어반복과 아이러니의 무의식을 드러내 는 날것의 일상 언어가 배우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화면 에 실감이 뚝뚝 묻어나온다. 오글거리고 소름이 돋는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포르노그래피이다.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어야 할 것들이, 공중 앞의 화면에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스

스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랜만에 만나는 선후배 끼리 데면데면하면서 나누는 말들, “형, 만나보고 싶더라, 정 말로” 혹은, “야, 반갑다, 정말”이라는 말에서 부가적으로 붙 어 있는 ‘정말’이라는 부사는, 별로 그렇지 않다는, 감추어져 야 할 사실을 드러낸다. 정제된 대사와 동작이 있어야 할 무 대의 자리에, 다큐멘터리 같은 실생활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다. 그런 것이 포르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경주에서 끝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 상적인 공간에 솟아 있는 고대 귀족의 무덤, 그 무덤에서 흘 러나오는 소리를 전해주는 영매의 목소리가 그곳에 있다. 그 곳은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죽음 너머의 세계이다.

4. .

경주라는 장소에 관한 한, 홍상수의 영화를 지속적 으로 보아왔던 것과는 달리 나는 단 한 번의 유의미 한 경험만을 지니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탓이기도 하 지만, 경주와는 별 인연이 없었던 때문이 컸다. 5년쯤 전, 그 곳에 사는 친구를 찾아 KTX를 타고 경주에 가게 되었다. 고 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사실상 처음이었다. 기차역에서 내 려 경주 시내로 들어가는 순간, 도로 표지판에 있는 김유신, 영화와 도시 • 74

황리단길과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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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선덕여왕 같은 이름들이 경주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 주었다. 그곳은 귀신들의 도시였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 렸다. 멀미 같은 느낌이었지만, 뭉클함과 울컥함이 더해져 표 현하기 기묘한 상태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하여튼 뭔가가 좋 지 않았다. 와서는 안 될 곳에 왔다는 느낌이랄까.

경주를 들어서며 들끓었던 마음의 바탕에 있는 것은 무엇 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들과 박정희라는 인물이 그 중심에 있었다. 화랑도의 위대함과 신 라의 위엄이라는 한 축과, 이른바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것 은 외세와 결탁하여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망가뜨림으로써 우 리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찌그러트린 바보짓이라는 또 한 축 이 마음에서 다투고 있었던 듯하다. 둘 모두 국사와 국민윤리 교과서 속에 있는 것들이었다. 정말인가? 그 정도라면 고등 학생 수준이 아닌가. 잘 좀 생각해보시라.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박정희가 공권력의 이름으 로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한 분노가 내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안다. 내 마음속에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실이니 까. 박정희 시절 이른바 유신교육으로 내세워진 충효사상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에 신라의 화랑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 다. 그런데 바로 경주의 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유명사들이 그 곁에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국사와 국민윤리 교과서 속으로 들어와 버린 셈이다. 게다가 그 시절 힘을 썼던 사람 들의 거대한 무덤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정도라면 이미 수학

여행 때 맛보았지 않았을까. 50대 중반의 나이에, 거의 처음 인 경주행에서 느꼈던 강렬한 멀미와 현기를 역사나 이념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퇴행이 아닌가. 물론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세대의 삶이라는 것이, 박정희로부터 전두환 과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이른바 TK정치세력의 악행들을 실시 간으로 목격하면서 진행된 것이니까.

좀 더 근본적이라면? 일제 말기에 나온 이태준의 소설 「석 양」이 떠오른다. 경주의 고분총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기보 다는 산문에 가까운 소설이다. 거기에서 우뚝한 것은 고분이 상기시키는 시간성이다. 홍상수의 경주 풍경 속에서도 수시로 고분들이 배경으로 나온다. 거기에서 물큰거리는 것은 섹스하 는 사람들의 맨살이 아니라 시간의 물질성이다. 사랑에 빠지 고, 연애하고,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줄 알면 서 외면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만지고 냄새 맡고, 거 짓말하고, 속아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옆에 거대한 무덤이 동산처럼 태연하게 버티고 있다. 박정희나 전 두환보다 훨씬 더 난폭하고 가차 없는 독재자, 시간이다.

시간성은 시간이라는 독재자가 자기 본성을 드러내는 순 간의 형상이다. 그것은 육탈하여 깨끗하게 빛나는 바니타스 정물화 속의 해골 같은 것이 아니다. 박물관 속에 있는 추상 적 시간은 우리를 객관적 관객으로 만들어 아무런 느낌을 남 기지 않는다. 내가 경주에서 느낀 것은 물질적인 시간성이었 다. 그 시간성은 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좀비와도 같다. 냄새를 풍기며 살점이 너덜거리는 손을 뻗어 우리를 향 해 달려든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홍상수의 영화가 그렇듯 악몽과도 같다. 누가 악몽을 좋아할 수 있을까. 저항하지만 힘에 부쳐 어쩔 수 없이 끌려갈 뿐이다.

내게 경주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 그곳이 바로 내 존재의 고향이라고 해야 할까. 홍상수의 영화가 그렇듯 자기혐오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는 일조차 힘 겹다. 오래 전 <생활의 발견>에서 본 홍상수의 경주도 그러했 다. 경주의 샤먼은 말한다. 쉿쉿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은 모 든 것의 뜻대로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서 비를 맞으 며 서 있게 될 것이다. 우산도 없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 르면서.

사진제공 경주시청 화랑교육원

제460호 2020 february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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