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 평시조(가곡창) 초삭대엽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 긴밭을 언제 갈려하나니 여창 평시조(가곡창) 이삭대엽 버들은 실이되고 꾀고리는 북이 되여 구십삼춘에 짜내는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든고 남창 평시조(가곡창) 언락
벽사창이 어룬어룬커늘 임만여겨 펄떨 뛰어나가보니
임은 아니오고 명월이 만정한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목을 후여다가 깃다듬는 그림자로다 마초아 밤일세 망정 행여 낮이런들 남 우일번 허여라
여창 평시조(시조창)
매아미 맵다울고 쓰르라미 쓰다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줄 (몰라라) 남창 사설시조(시조창)
어와 청춘소녀들 이내 말을 들어보소
허송 세월 하지말고 밭갈고 글을 읽어 수신제가 할지어다 만고성인 순임금도 역산에 밭을 갈아 부모봉양 하오시고 천하문 장 이적선도 광산에 글을 읽어 명전천추하였으니
하물며 우리 인생이야 시호부재래라 성현문장 본을 받아 서경야독(하리라)
여창 평시조(시조창)
매아미 맵다울고 쓰르라미 쓰다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줄 (몰라라) 남창 사설시조(시조창)
어와 청춘소년들 이내말을 들어보소
허송세월 하지말고 밭갈고 글을 읽어 수신제가 할지어다 만고성인 순임금도 역산에 밭을 갈아 부모봉양 하오시고 천하문장 이적선도 광산에 글을 읽어 명전천추하였으니
하물며 우리인생이야 시호부재래라 성현문장 본을 받아 서경야독 (하리라)
①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은 三更인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랴마
多情도 病인양여 못 일워 노라 (이조년)
② 仙人橋 나린 믈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년 王業이 물소리 이로다
아희야 故國興亡을 무러 무엇리요 (정도전)
③ 지아비 밧갈나 간 밥고리 이고 가 飯床을 들오 눈섭의 마초이다 진실노 고마오시니 손이시나 실가 (주세붕, <오륜가> 중)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한데 쉬어간들 어떠리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니블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④ 한산셤 근 밤에 戍樓에 혼 안자 큰칼 녀프 고 기픈 시 는적의 어듸셔 一聲胡笳 남의 애를 긋니 (이순신)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절로 水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송시열)
⑤ 즁놈은 승년의 머리털 잡고 승년은 즁놈의 상토쥐고
두니 맛고 이왼고 저왼고 쟉자공이 쳔듸 뭇소경이 구슬보니 어디셔 귀머근 벙어리 외다 올타 니
⑥ 설악산 돌을 날라 독립기초 다져 놓고 청초호 자유수를 嶺너머로 실어 넘겨 민주의 자유 강산을 이뤄 놓고 보리라 (남궁억)
窓外三更 細雨時에 兩人心事 兩人知라 新情이 未洽한듸 하날이 장차 밝아 온다 다시곰 羅衫을 뷔혀잡고 後ㅅ期約을 뭇더라
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
<사설시조>
노래갓치 조코 조흔 거슬 벗님야 아돗던가
춘화류 하청풍과 추월명 동설경에 필운 소격 탕춘대와 남북한강 절승처에 주효난만 조은 벗 가즌 혜적 아릿따온 아모 가이 제일명창드리 례로 안자 엇거러 블러 니 中大葉 數大葉은 堯舜禹湯文武고 後庭花 樂戱調 漢唐宋 이 되어잇고 騷聳이 編樂은 戰國이 되어이셔 도창검술이 각자승양야 관현성이 어엿다 공명과 부귀도 몰
라
남아의 탕기를 나 됴하노라
수작시(酬酌詩) 또는 화답시(和答詩) 이런들 엇더며 저런들 엇더리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딘들 긔 엇더리 우리도 이 치 얼거저 백년지 누리이다 (이방원, <何如歌>)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白骨이 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丹心歌>)
鐵을 鐵이라커든 무쇠 錫鐵만 여겻더니 다시 보니 正鐵일시 的實다
맛에 골풀무 잇더니 녹여볼까 노라 玉을 玉이라커든 荊山白玉만 여겻더니 다시 보니 紫玉일시 的實하다
내게 송곳 잇더니 러볼가 노라
윤선도의 <오우가>와 그 패러디
내 버디 몃치나 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밧긔 또 더야 머엇리 불 아니 일지라도 졀노 익 솟과
녀무쥭 아니 먹어도 크고 져 건 과 질 여기첩(女妓妾)과 술 주전자(酒煎子)와 양보로 낫 감은 암쇼 두고
평생(平生)의 이 다 가져시면 부롤거시 이시랴
잘새 라들고 새은 도라온다 외나모 리에 홀로가 져 禪師야 네 절이 언매나 멀관 遠鍾聲이 들리나니 물아레 그림자 지니 리 우희 즁이간다 져중아 게서거라 너가 무러보쟈 손으로 흰구름 르치고 말아니코 간다 님이 오마 하거늘 져녁 밥을 일지어 먹고
눙문 나서 대문 나가 지방 우희 치다라 안자 손들어 이마에 대고 오는가 가는가 건넌산 바라보니 거머흿들 셔잇거늘 져야 님이로다 보션보셔 품에 품고 신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늼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듸 마른듸 갈희지 말 고 워렁충창 건너가서 정엣말 하려 하고 겻눈을 흘긧보니 上年 칠월 사흔날 갈가벅긴 주추리 삼대 살드리도 날 소겨거다
모쳐라 밤일싀만졍 행혀 낫이런들 남 우일번 하괘라
半여든에 첫 계집을 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주글번 살번 다가 와당탕 드리라 이리져리니 老도령의 음 흉글항글
진실로 이 滋味 아돗던들 긜적부터 랏다 一定百年 살줄 알면 酒色 다 관계랴
혀 은 후에 백년을 못살면 긔 아니 돌온가
두어라 人命이 在乎天定이라 酒色 온들 백년살기 쉬우랴 어흠아 긔 뉘옵신고 건넌 佛堂에 동령승이 내올너니 홀居士 내 홀로 시 방안에 무스것랴 와 겨오신고 홀거사 내 노감토 버셔거 말겨 내 곡갈 버셔걸너 왓노라
閣氏네 더위들 사시오 일은 더위 느즌 더위 여러 포 묵은 더위 五六月 伏더위에
情에님 만나이셔 근 평상우희 츤츤 감겨 누엇다가 무음 일 엿던디 五臟이 번열여 구슬 흘니면서 헐덕이 그 더위와 冬至 긴긴밤의 고은님의 픔의 들어 스 아목과 둑거온 니블속에 두몸이 몸되야 그리져리
니 手足이 답답고 목굼기 타올적의 웃목에 슉늉을 벌덕벌덕 켜 더위 閣氏네 사려거든 所見대로 사시옵소
쟝야 네 더위 여럿듕에 님 만난 두 더위 뉘 아니 됴화리 의게 디 말고 브 내게 라시소
간밤의 자고간 그놈 아마도 못이져라
瓦冶人놈의 아들인지 즌흙에 드시 沙工놈의 뎡년인지 沙於로 지르드시 두드쥐 녕식인지 곳곳지 두지드시 平生에 처 음이오 흉중이도 야롯라
前後에 나도 무던히 격거시되 盟誓지 간밤 그놈은 아 못니저 노라
드립더 득 안으니 셰허리 늑늑
紅裳을 거두치니 雪膚之豊肥고 擧脚蹲坐니 半開한 紅牧丹이 發郁於春風이로다 進進코 又退退니 茂林山中에 水舂聲인가 노라
얽고 검고 킈 크고 구레나롯 제것조차 길고도 넙쥭
뎜지 아닌 놈이 밤마다 긔여올라 죠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너허두고 흘근흘근 할젹 제 愛情은 니와 泰山이 덥누로듯
放氣조차 날 졋먹던 힘이 다이노라
아므나 이놈을 려다가 百年同住고 永永 아니 온들 어 개년이 싀앗새옴 리오
常 평平 통通 보뷔寶字
구멍은 네모지고 四面이 둥그러셔 글 구으러 간곳마다 반기고나 엇더타 죠고만 金죠각을 두챵이 닷토거니 나 아니 죠홰라
들에 동난지이 사오 져 쟝스야 네황후 긔 무서시라 웨다 샤쟈
外骨內肉 兩目이 上天 前行 小아리 八足 大아리 二足 靑醬 스슥 동난지이 사오 쟝스야 하 거복이 웨지말고 게젓이라 렴은
논밧 가라 기음고 뵈잠방이 다임쳐 신들메고
낫가라 허리에 고 도벼러 두러메고 茂林山中 드러가셔 삯다리 마른셥흘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집팡이 밧쳐 노 코 옴을 가셔 點心도슭부시이고 곰방 톡톡러 닙담 퓌여물고 코노 조오다가
夕陽이 너머 갈졔 엇를 추이르며 긴소 져른소며 어이갈고 더라
一身이 사자니 믈것계워 못살니로다
皮튼 갈랑니 보리알튼 슈통니 잔벼록 굵은벼록 왜벼록 는놈 긔는놈의 琵琶튼 빈세 使令튼 등에어이 갈
귀 사메여기 셴박휘 누른박휘 바금이 거져리 부리 족 모기 다리 기다 모기 살진모기 야윈모 기 그리마 진에 룩이 晝夜로 뷘틈업시 믈거니 쏘거니 거니 거니 심 당벼리에 어려웨라 그듕에 아 못견딀손 五六月 伏더위에 쉬린가 노라
孫約正은 點心히고 李風憲은 酒肴를 쟝만소
거믄고 伽倻ㅅ고 奚琴 琵琶 笛 觱篥 杖鼓 舞工人으란 禹堂掌이 려오 시글짓고 노래 부르기와 女妓女花看으란 내다 擔當리라
춘풍장책 상잠두여 한양형지를 역력히 둘러보니
仁王三角은 虎距龍盤으로 北極을 괴얏고 洛南漢水 金帶相連여 久遠 氣象이 萬千歲之無彊 이로다 君修德 臣修政니 禮儀東方이 堯之日月이오 舜之乾坤이로다
송실솔(宋蟋蟀)
송실솔은 서울의 가객(歌客)이다. 노래를 잘 불렀는데, 특히 <실솔곡>을잘 불러서 ‘실솔’이란 이름으로 날렸다.
실솔은 젊을 때부터 노래를 배웠다. 소리가 트인 뒤에는 급한 폭포가 쏟아져 웅장하고 시끄러운 곳에 가서 날마다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자, 노랫소리만 남고 폭포 쏟아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 북악산 꼭대기에 가서 까마득히 높은 곳에 기대어 정신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에는 소리가 갈라져서 모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해가 지나자 회오리바 람도 그의 소리를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이때부터 실솔이 방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들보에서 울리고, 마루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대문에서 울렸다. 배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돛대에서 울리고, 시냇가나 산속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구름 사이에서 울렸다. 징을 치듯 굳세고 구슬같이 맑았으며, 연기가 날리듯 가냘프고 구름이 가로걸리듯 머물렀다. 철 맞은 꾀꼬리같이 자지러졌다가, 용이 울듯 떨쳤다.
그의 소리는 거문고에도 알맞고, 생황에도 알맞았으며, 퉁소에도 알맞고, 쟁에도 알맞았다. 그 묘함을 극치에 이르게 하여 남김이 없었다. 그가 옷깃을 여미고 갓을 바로 쓴 모습으로 사람 많은 자리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이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고 허공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당시에 서평군(西平君) 공자 표(標:영조의 근친)는 부유하고 협객인데다 천성이 음악을 좋아했는데, 실솔의 노래를 듣고 기 뻐하여 날마다 함께 놀았다. 실솔이 노래할 때마다 공자는 반드시 거문고를 뜯으며 스스로 어울렸다. 공자의 거문고 또한 한 시대의 묘한 솜씨였으므로, 서로 만난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공자가 한 번은 실솔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거문고로 따라가지 못해, 반주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느냐?”
실솔이 곧 소리를 길게 빼며 후정화(後庭花) 곡조로 <취승곡(醉僧曲)>을 불렀다. 그 노래는 이렇다.
장삼을 잘라내어 미인의 속옷을 짓고 염주를 끊어내어 나귀 고삐 만들었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어디 가서 살까, 저리로 가자.
노래가 3장으로 막 바뀌자, 갑자기 “땅!” 하고 중의 바라 소리를 냈다. 공자가 급히 술대를 빼서 거문고의 배를 두들겨 노래 에 맞췄다. 실솔은 또 낙시조(樂時調)로 바꿔 노래하며 <황계곡(黃鷄曲)>을 불렀다.
벽에 그린 황계 수탉이 긴 목을 늘어뜨리고 두 나래 탁탁 치며
꼬끼오 울 때까지 놀아보세
라는 아랫장에 이르자, 곧바로 꼬리 끄는 소리를 내고는 한바탕 껄껄 웃었다. 공자는 한참 궁성(宮聲)을 뜯다 각성(角聲)을 울다 정신없이 여음(餘音)을 고르다, 뚱땅뚱땅 미처 응하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손에서 술대가 떨어졌다. 공자가 물었다.
“내가 정말 따라가지 못하겠다. 그런데 네가 처음에 바라 소리를 내고는 또 한바탕 껄껄 웃었으니, 무슨 까닭이냐?”
실솔이 대답했다.
“중이 염불을 마치면 반드시 바라로 끝을 맺고, 닭 움음이 끝나면 꼭 웃는 것 같지요. 그래서 그랬답니다.”
공자와 여러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그의 우스갯소리가 또한 이러했다.
공자가 음악을 좋아했으므로, 이세춘, 조욱자, 지봉서, 박세첨 같은 당대의 가객들이 모두 날마다 공자의 문하에서 노닐며 실솔과 사이좋게 지냈다. 세춘이 모친상을 당하자 실솔이 무리들과 함께 가서 조문했는데, 문에 들어서면서 상주의 곡소리 를 듣고 말했다.
“이건 계면조(界面調)일세, 평우조(平羽調)로 받는 게 마땅하지.”
영전에 나아가 곡을 하니, 곡이 노래 같았다. 들은 사람들이 모두 서로 전하며 웃었다.
공자는 집에 악기를 다루는 종 열댓 명을 길렀으며, 희첩(姬妾)들도 모두 노래와 춤을 잘했다. 악기를 다루며 즐거움을 20 여 년 맘껏 누리고 세상을 마쳤다. 실솔의 무리도 또한 모두 몰락해 죽었다. 박세첨만이 아내 매월과 함께 지금까지도 북악 산 아래 살고 있다. 이따금 술에 취하면 노래를 그치고 사람들에게 공자와 예전에 놀던 이야기를 하면서 흐느끼고 탄식하 기를 마지 않았다.
<이옥, 가자송실솔전(歌者 宋蟋蟀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