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고찰-〈매스미디어의 유물>,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제4집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고찰-〈매스미디어의 유물>,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제4집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Copied!
14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투고일_2021.08.10 심사기간_2021.09.01-14 게재확정일_2021.09.23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5.26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고찰

-〈매스미디어의 유물>,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제4집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A Study on Avant-Garde of Kim Kulim

-focused on 〈Relics of Mass Media>, Happenings before the Fourth Group and Fourth Group's activities-

이은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Lee, Eunhee_Department of Art Studies,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시대의 변화를 포착한 메일 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

3.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그 활동

3.1. 감상자의 개입: 〈콘돔과 카바마인>과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

3.2. 예술적 아방가르드의 실천인 제4집단의 활동

4. 김구림 아방가르드의 의미 분석 4.1. 전위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 4.2.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 5. 결론

References

(2)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고찰

-〈매스미디어의 유물>,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제4집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A Study on Avant-Garde of Kim Kulim

-focused on 〈Relics of Mass Media>, Happenings before the Fourth Group and Fourth Group's activities-

이은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Lee, Eunhee_Department of Art Studies, Hongi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김구림 해프닝 제4집단 전위 예술 아방가르드

본 연구는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실험적 예술을 실천한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의의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 대상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김구림이 참여한 메일 아트, 해프닝과 제4집 단의 활동이다. 이를 위해 김구림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 진행한 <매스미디어의 유물>과 <콘돔과 카 바마인>,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을 각각 분석하고 제4집단의 새로운 예술을 향한 시도를 살펴볼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유물>은 편지라는 새로운 매체를 한국 미술에 도입함과 동시에 편지의 수신 자들을 작품의 창작 및 가치 생성의 참여자로 끌어들였다. <콘돔과 카바마인>은 예술을 감상하는 새 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기존의 사물과 인식에 대한 고정 관념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육교에 풍선 백여 개를 매달아 행인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한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 역시 사람들의 참여를 필연적 으로 요구한 새로운 시도의 작업이었다. 작품의 생산과 수용에 있어서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렸 던 이러한 김구림의 작업은 이후 제4집단의 활동을 통해 문화 비판적 예술을 실현하는 것으로 확대된 다. 제4집단은 인간 본연의 해방을 주장하고 기성의 문화예술을 비판함으로써 보다 개념적인 예술의 실천으로 나아갔다. 이와 같은 김구림의 작업들은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으로 묶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김구림의 작업에 있어 전위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게 된다. 본 연구는 그 해답을 새로 운 예술을 지향하였던 작가의 시도 그 자체에서 찾고, 이를 레나토 포지올리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통 해 부연할 것이다. 포지올리가 말한 것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의 이해는 새로운 예술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필요성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 다룬 김구림의 작업들 역시 한국 미술사에서 실험미술의 시작에 위치한다는 점, 곧 시대가 요구한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를 감지하여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BSTRACT

Keywords Kim Kulim happening Fourth Group avant-garde art avant-garde

This research aims to study the significance of Kulim Kim‘s avant-garde art, who made the early step to experimental art in Korea. The subject of the study is mail art, happenings, and the Fourth Group movement that he participated in from 1969 to 1970. <Relics of Mass Media>,

<Condom & Carbamine>, and <The Happening on the Overpass> were the series of works that Kim and his fellow artists performed for the new form of art, avant-garde. <Relics of Mass Media> introduced and implemented letters as a new medium to Korean art. The recipients of the letter became creators of the art and the value. The work, <Condom & Carbamine>, tried to break the stereotypes of objects and perceptions that proposed a new way of art appreciation. At

<The Happening on the Overpass>, more than a hundred balloons were hung on the overpass and allowed pedestrians to walk through, was also a new attempt that inevitably required the participation of people. The artist intended to break boundaries made between the artist and the audience in the production and reception of the art. Later, he went ahead to the culture-criticizing works by participating in the Fourth Group. While insisting on the liberation of human nature and criticizing the existing art and culture, the Fourth Group pursued conceptual art. Although Kim is regarded as an avant-grade artist, the question has remained unanswered as to what Kim's avant-garde is. This study will explore the answers in the artist's attempt that pursued a new art, and expand it through Renato Poggioli's avant-garde theory. As Poggioli has stated, the understanding of avant-garde art is possible when it gives legitimacy to the existence of new art itself and recognizes its necessity. From that point of view, Kim's works, dealt with in this study, have meanings that occupy the beginning period of the experimental art of Korea. His works sensed a demand given by the time he lived in; to change the content and form of art and actualize it in artistic forms.

(3)

1. 서론

1970년대는 일본의 모노하, 이우환의 영향, 동양철학, 현상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AG, ST 등에 의해 물질성, 언어, 장소성, 시간성 등을 탐구하는 새로운 미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미술평론가 김복영(1981)은 「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기조」라는 글에서 1970년 대를 기점으로 한국미술이 전통과 서구, 동양화와 서양화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다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특징으로 삼는다. 특히 1970년대의 다양화는 미술이 기예 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념, 개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라는 사실에 기반한다.

이제 새로운 미술의 제작에 있어서 화가는 자신이 현실에 대하여 느낀바와 그것에 대한 의식을 작품화하며, 특정한 기법이나 예술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러한 197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미술로의 변천은 아방가르드 예술가 김구림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오브제, 판화, 대지미술, 해프닝 등 김구림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 창작은 전통적 미술 개념 -모방이나 재현, 즉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데 집중하는 화가의 기술- 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김구림은 특정한 예술 형식에 천착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현실에 대한 그만의 작가적 반응, 곧 전위의 예술을 제시하고 실험함으로써 한국 미술사 안에서의 예술의 지경을 넓혔다.

김구림에 관한 기존 연구는 1970년대 혹은 1980년대까지의 작가의 작업을 통시적으로 서술하 거나 제4집단의 전개와 활동을 연구하는 한 부분으로써 그의 작품을 다루었다(Kim, D., 2014;

Han, J., 2018; Kim, M., 2000; Song, Y., 2016; Cho, S., 2013). 이 외에 윤난지(2003)가 데리다의 차연 개념을 통해 김구림을 해석한 연구가 있으나, 이 또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의 작가의 오브제, 회화, 영상, 퍼포먼스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작업을 분석의 예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연구 대상을 1969년과 1970년의 <매스미디어의 유물>, <콘돔과 카바마인>,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 제4집단에 한정함으로써 한국 실험미술의 시작에 있는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의 의미를 되살펴보고자 한다. 김구림의 메일 아트와 두 해프닝은 제4집단 의 활동의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써 관객의 참여, 일상 속으로 들어간 예술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제4집단에서의 해프닝의 시작을 연 것이며, 본격적으로 새로운 예술을 모색한 작가의 초기 아방가르드 작업의 예이다. 이후 김구림은 제4집단의 활동을 통해 전 미술계, 문화계에 쇄신을 외치는 보다 확장된 예술 개념을 선보였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전위의 명목으로 묶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김구림의 아방가르드가 지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작품들에 대한 해석과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의 2장과 3장에서 그의 작업들을 분석하고, 4장에서는 레나토 포지올리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통해 어떠한 맥락에서 김구림을 한국 미술사에 위치 지을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시대의 변화를 포착한 메일 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

김구림은 1969년 10월 10일에 김차섭과 함께 한국 최초의 메일 아트라고 일컬어지는 <매스미 디어의 유물>이라는 행위 예술을 진행하였다. 김구림과 김차섭은 80명의 화가와 20개의 신문 사 앞으로 발신 주소 없이 발신인의 이름만 표시한 채 100통의 편지를 이틀에 걸쳐, 총 세 차례 발송하였다. 이들은 백지에 빨간 인주로 김구림의 검지 지문을 찍고 검은 인주로 김차섭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찍은 뒤 종이를 반쪽으로 찢어 각각의 지문이 반으로 나뉘도록 하였다. 그리 고 첫 번째 봉투에는 빨간 지문 반쪽과 검정 지문 반쪽을 노란색 봉투 속에 담아 김구림의 이름으로 발송하였고, 두 번째 봉투는 나머지 반쪽 지문들을 흰색 봉투에 담아 김차섭의 이름으 로 보냈다. 그 다음날에는 김구림, 김차섭 공동 이름으로 ‘귀하는 매스미디어의 유물을 1일 전에 감상하였습니다’라는 구절과 함께 편지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작품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에 담긴 반쪽 자리 지문을 합쳐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형태였다(Kim, C., 1970;

Unknown Author, 1969. 10. 19; Unknown Author, 1969. 10. 22).

당시 김구림과 김차섭을 인터뷰한 두 언론 매체에서는 편지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는데, 편지 수신인들은 작품을 “수수께끼” 같다거나 “농담이 지나치다”라고 여기거나 (Unknown Author, 1969. 10. 19, p.14), “하찮은 장난”, 혹은 두 작가가 정신이상이 있는지를

(4)

묻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Unknown Author, 1969. 10. 22, p.87). 김구림과 김차섭은 편지를 받는 이가 공포감이나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작품의 실현이라며 자신들의 작업들을 자축하였는데, 이에 덧붙여 작가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관객이 보이는 심리적 반응들이 현대미술 의 감상법이라 말한다. 이러한 작업 배경에는 “화가들이 캔버스에 그리는 작품은 요즘 같은 기계문명시대에선 컴퓨터가 그릴 수 있는 것. 그래서 기계가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우주적인 작품을 만든다”라는 시대적 현실의 포착이 있다(Unknown Author, 1969. 10. 22, p.87).

비슷한 맥락에서 김구림과 김차섭은 이 작업을 설명하며 “기계문명에서 탈피”해야 한다거나 그들의 작품이 “최신 우주 작품”이라고 주장하였다(Unknown Author, 1969. 10. 22, p.87).

두 작가가 실현한 메일 아트의 작업 방식과 위와 같은 주장의 연결성을 이해해 보자면, 기계문 명으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은 컴퓨터로 인해 형상의 복제 혹은 모방이 용이해진 상황에서 예술 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관념이다. 작품의 소재인 지문은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두 작가는 기술발전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 본래의 의미를 지문을 사용한 예술을 통해 포착하고 가시화 한 것이다. 더불어 종이 위에 찍힌 두 지문은 김구림과 김차섭 각 개인의 상징이자 흔적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우주적인 작품을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1969년 7월 16일 지구를 출발한 아폴로 11호는 7월 20일 인류 역사상 처음 으로 달 착륙에 성공하였다. 우주 개발의 신호탄을 알린 이 사건은 인류가 새로운 과학 기술의 시대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분수령이었다. 김구림과 김차섭이 메일 아트를 선보 이게 된 것은 불과 이로부터 몇 달 후였다. 인류의 새로운 도전에 따른 새로운 시대와 기술의 시작을 목도한 두 작가는 자연히 미술가로서의 질문 곧 앞으로 예술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히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예술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두 작가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지문을 활용한 이들의 메일 아트는 컴퓨터 기술의 부상을 바라보며 활자 우편이 종말 할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다(Kim. C., 1970). 때문에 두 작가가 자신들의 메일 아트를 우주적이라고 한 것에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변화한 기계, 컴퓨터, 기술의 상황에 맞추어 미술의 가치와 의미 또한 변화하여야 한다는 촉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동시에, 여기에는 컴퓨터 이전의 소통 매체인 편지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의도가 혼합 되었다. 결국 김구림과 김차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마주하고 미래를 예상하며, 이에 대해 예술가로서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 <매스미디어의 유물>을 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의 유물>은 자연스레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을 작품에 참여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었다. 작품, 참여자, 작가는 편지를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 게 되는데 이 때 시간과 공간의 개입이 작품의 완성에 포함된다. 이들의 우편은 이틀에 걸친 간격을 두고 발송되었으며 작품을 보내는 행위와 받는 행위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시간의 경과는 시간성 개념을 작품 속에 개입시킨다. 또한 메일을 보내는 작가의 장소와 각 참여자들의 또 다른 장소가 우편을 매개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장소성의 개념 역시 내포한 다. 이때의 장소성은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즉 이 작업은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어느 공간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참여자가 자신이 작품을 감상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작품을 감상하게 하였다(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GMoMA] (Eds.)., 2011). 그러한 의미에서 윤진섭(2010)과 윤난지(2003)는 <매스미디어 의 유물>을 예술계 밖의 사람들을 참여시킨 ‘관객 참여 예술’이라 평한 바 있다.

이들의 메일 아트에 대해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점 또한 우편이 작품의 실현에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매체이자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김구림과 김차섭은 자신들의 작업을 설 명하면서 그들이 사용한 봉투의 색, 우표,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지문이 찍힌 종이를 찢는 행위, 편지를 접은 선, 중간에서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의 행위 등이 작품에 포함 되는 요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편지 수신인들의 반응은 이들의 서로 다른 행위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100개의 편지가 곧 개별적인 100개의 작품이 된다고 보았다(Unknown Author, 1969.

(5)

10. 19; Unknown Author, 1969. 10. 22).

우편이란 송신자와 수신자의 존재와 행위에 기반을 둔 매체이다. 한 방향의 전달이든 양 방향적 인 교류이든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관계에 기초하는 편지 매체의 특성은 김구림과 김차섭의 작품에서 작가, 관객, 작품 간에 발생하는 행위들을 연결했다. 이로써 작품의 생산과 감상이 미술가와 관객 사이에서 동시에 벌어지게 되었다. 과거 모더니즘 미술이 물감, 선, 형, 색, 평면 성 등 화면 내의 요소와 구조에 집중하여 미술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면, 김구림과 김차섭은 일상에서 활용되는 우편제도를 통해 미술에서 사용되는 매체의 확장을 이루어내었다. 더불어 비록 이들의 메일 아트는 종이와 인주, 편지 봉투 등의 사물, 물질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편을 매개로 나타나는 비가시적인 수신자의 심리적 반응, 비물질적인 개념 역시 포함하였다.

김차섭은(1970) 󰡔AG󰡕 2권에서 우편의 ‘매체성’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매체 (media)는 인간 내부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환경을 바꾸어 버리기 때문에 매체 자체가 단순한 매체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인간의 확장이라 는 말은 예술 개념의 확장 혹은 예술 경험의 확장으로서 읽힌다. 즉 매체라는 것이 앞으로의 새로운 예술 형태를 전망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며, 이를 포착하고 철저히 탐구하는 자세로서 해당 작업을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해당 글에서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확신하면 서도 당대에 우편은 하나의 전달자(communicator)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에 편지 를 사용하였다고 덧붙인다. 결국 김차섭은 한편에서는 한국 미술에 있어 편지라는 새로운 매체 를 사용한 점에 의의를 부여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컴퓨터 기술의 도래를 목도하는 1970 년대의 상황 속에서 해당 매체의 한계점 또한 분명히 인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는 미술작품에 사용되는 매체란 시대와 시기에 따라 그 양식과 방식이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가능성 또한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김차섭에게 있어 편지는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오래지 않아 없어질 활자 미디어, 곧 유물이 될 것이었다(Unknown Author, 1969.

10. 22).

3. 제4집단 이전의 해프닝과 그 활동

3.1. 감상자의 개입: <콘돔과 카바마인>과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

<콘돔과 카바마인>은 김구림, 정찬승, 방태수가 1970년 5월 15일 오후 3시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약품, 쪽지, 작은 봉투가 4개 들어있는 흰색 편지 봉투를 나누어준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쪽지가 든 흰 봉투를 열면 ‘5월 15일 오후 8시 40분에 1번 봉투를 개봉하시오’라는 메모가 들어있었다.

두 번째로, 제시된 첫 번째 메시지에 따라 색종이에 싸인 1번 봉투를 열면 다른 색의 작은 봉투와 그보다 더 작은 봉투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봉투를 열면 가루약과 함께

‘가루를 20cc의 냉수에 타고 자기 이름을 3번 반복하고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어 제2번 봉투를 8시 50분 정각에 개봉하시오’라는 메모지가 나타났다. 세 번째 1번의 지시문에 따라 2번 봉투 를 개봉하면 다 뚫린 콘돔과 함께 ‘자기의 국부에 끼고서 3번 봉투를 9시 정각에 개봉하여야 됩니다’라는 메모지가 있었으며, 네 번째로 3번 봉투를 열면 ‘여기 첨부된 종이의 구멍을 통해 심호흡을 4번하고 4초간 남산 하늘 중심부를 향해서 보아주신 다음 제4번 봉투를 9시 5분 정각에 개봉하시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의 4번 봉투에는 ‘1번 김구 림 작 <심주(心柱)>, 2번 정찬승 작 <콘돔>, 3번 방태수 연출작 <0= 1+1-1⨯1>’이라는 메모가 포함되어 있었다. 김구림, 정찬승, 방태수는 각각 201개의 콘돔, 카바마인, 인쇄된 메모 지를 준비하여 총 201세트의 <콘돔과 카바마인>을 만들었다. 이 중 20개는 국내의 평론가들 에게, 나머지 81개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이 세 작가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한 바 있다. 우선 김구림의 작품 <심주> 즉 1번 봉투에 든 카바마인 작업은 인간이 정신 문제와 관념에 대한 희롱을 담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찬승의 <콘돔>에서는 콘돔이 찢겨 있음을 사람들

(6)

눈에 보여줌으로써 관념의 고정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며, 방태수는 <0= 1+1-1⨯1>에서 새로운 예술 감상법을 보이고자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봉투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소 황당한 이 지시문들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김구림과 정찬승, 방태수는 그들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관념의 희롱”, “관념의 고정을 불식” 하거나 “새로운 감상 법을 창조” 하고자 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세 작가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자 한 것은 기존의 예술 감상과 생산 방식의 탈피였다(Unknown Author, 1970. 05. 27).

김구림은 전형적인 미술 소재의 사용에서 벗어남으로써, 정찬승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찢긴 콘돔을 제시함으로써, 방태수는 시각 중심의 기존의 미술 감상 방식이 아닌 관객이 자신의 호흡 과 무의식의 흐름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에 대한 관념을 이루고자 하였다. 1번 봉투 에 들어있던 카바마인(카르바마제핀)은 항 신경제로, 신경통, 불안장애, 경련 등의 질병에 사용 되는 약품이다.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예술 소재의 활용은 물감이나 캔버스 같은 공인된 미술 재료의 제한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뜨린 것이며, 새로운 예술 형식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2번 작품에서도 보이는데 정찬승은 찢어진 콘돔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자 하였다. 해당 작품은 콘돔이라는 일상적인 사물을 작품화하였다는 점에서, 첫 번째 로, ‘사물’로서의 콘돔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났다. 두 번째로는 콘돔을 찢어 놓아 피임구 로써의 기능을 상실시켰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콘돔이라는 사물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했다. 이는 예술이라는 매개로 사물의 정의와 관념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방태수의 3번 봉투를 열고 작품을 실현할 때는 관객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는데, 종이의 구멍을 통해 심호흡함 으로써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아닌 주어진 지시문과 매개체들을 통해 작가와 관객이 함께 공동으로 실현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렇듯 이 해프닝의 특징은 각 지시문의 내용과 형식의 파격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진행 과정이 온전히 작가 자신에게도 참여자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둘 사이의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콘돔과 카바마인>은 작가, 참여자, 작품 전체가 이루는 새로운 예술의 의미를 만들 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해프닝에 대해 당시 작가들은 “이것이 바로 관념 타파를 위한 캠페 인”이며 “무한예술의 확대”를 위한 예술 활동이라 설명한다(Unknown Author, 1970. 05. 27, p.16). 즉 해당 작품은 예술 개념을 확장한 것이며 새로운 예술의 시도를 통해 관람자와의 의미 관계 역시 새롭게 생산해내었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유물>, <콘돔과 카바마인>이나,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의 이러한 작업은 모두 편지 수신인, 행인, 봉투 수령인이라는 작가의 상응 자의 일련의 행위가 끝나야만 하나의 작품으로써 혹은 해프닝으로써의 의미가 완성된다 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 또한 해프닝의 특성상 세 작업 모두 일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결과물 보다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며, 관객의 참여를 통해 예술의 영구성, 작가의 작품 이라는 고유성이나 유일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미학에 도전하였다.

김구림, 정찬승, 방태수는 그다음 날인 1970년 5월 16일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을 명동 신 세계 백화점 앞에서 진행함으로써 전위의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 해프닝은 관객이 그 의미를 결정하도록 기획되었다. 작가들은 오색의 풍선 백여 개를 육교 위에 설치하여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풍선을 뚫고 지나가도록 하였다. 풍선은 행인들이 육교를 통과할 때 그들의 몸짓 때문 에 움직이거나 공중으로 날아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길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써 작품은 행인 들을 육교라는 공간 위의 작품의 관람자이자 동시에 실연자로서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 작가의 해프닝이 연극의 공연 무대와 구분되는 점은 육교라는 공간이 연극처럼 관객과 무대를 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극에서 관람객은 객석에 앉아 관람하기 에 자신의 공간과 배우의 공간 사이에 분리가 발생한다. 그리고 배우는 무대라는 공간 위에 제한적으로 행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해프닝의 무대를 일상 공간으로 이동 시킴으로써 작품의 행위자와 관객 사이의 경계, 작품이 실현되는 장소와 감상의 장소의 구분을 무너뜨렸다. 관객의 범주를 예술의 참여자의 위치까지로 확대한 것이다.

비록 당시 행인들은 작가들에 대해 “왜들 이러느냐”, “돈 친구들이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지 만 육교 위의 풍선은 감상자들의 적극적 개입을 유도하는 새로운 시도였다(Unknown Author,

(7)

1970. 05. 27, p.17). 작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써 풍선 사이를 지나거나 풍선을 치우는 행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렇기에 이 작업 또한 김구림이 김차섭과 진행하였던 메일 아트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람자들은 자신들이 작품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 하지 못한 채 참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은 작가의 작업의 장 (場)과 관람자의 감상의 장을 분리하였던 과거의 구분에서 벗어나 일상 속으로의 예술의 개입 을 이루어내었다. 다시 말해, 육교라는 장소 자체를 작품의 장으로 만듦으로써 그리고 행인들을 해프닝의 참여자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술 감상과 체험을 미술관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 대체 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행인들은 육교라는 작품의 무대에서 행위 하는 작품 창작의 참가자이자 동시에 관람자가 될 수 있었다.

3.2. 예술적 아방가르드의 실천인 제4집단의 활동

1970년 6월 20일 서울 을지로의 소림 다방에서 결성식을 가진 제4집단은 김구림(통령), 정찬 승(총령), 방태수(포령), 손일광(의령)을 중심으로 하여 총 13명을 구성원으로 하였다. 결성식 에서 이들은 애국가에 맞추어 일제히 일어난 후 소울과 사이키 음악, 새 소리, 파도 소리 등의 자연 구체음악이 퍼지는 가운데 선언서를 읽어나갔다. 제4집단의 선언은 인간 해방과 한국 문화의 독립과 현실 참여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5장 23조의 자체 규약을 채택하였다(Unknown Author, 1970. 06. 28). 연극, 음악, 미술 등에 의한 총체적 예술을 지향하며 문화비판적 성격 을 띤 이들의 제4선언을 살펴보면 그 최종 목표는 각 예술 장르를 구분 짓지 않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의 다분야에 걸쳐 통합적인 예술을 융통하는 것이었다. 오광수 와 서성록(2001)은 제4집단에 대해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는 해프닝의 요소를 가지며 냉소적인 시각을 견지한다는 점에서는 문명 비판적이라고 평가한다. 제4집단의 선언문에는 ‘원체’, ‘무체사상’ 같은 제4집단만의 특이한 용어와 강령들이 등장하는데, 그 대략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잘 못 형성된 오류를 타파하고 정신과 육체의 분리에서 오는 모든 모순을 종식시키 며…이것은 우주의 원체가 무체로서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무체의 유체화인 인간이 무체에서 출발하여 무체로 환원되는 새 인간 윤리의 표방이다. 우리는 정신과 육체가 같으며 밤과 낮이 같으며 흑과 백이 같으며 우연과 필연이 같으며 이 세상 모든 것이 우주의 속성인 원체사상이 무체주의임을 알고 이러한 바탕 위에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여기 제 4집단을 결성 하는 것이다.

1. 제4는 인간을 본연으로 해방한다.

2. 제4는 참된 한국문화의 독립이 세계문화의 주체임을 확인한다.

3. 제4는 참여로서 모든 체제를 통합한다.

4. 제4는 무체로서 일체를 이룬다(Seoul Museum of Art (Eds.)., 2013).

제4집단이 처음으로 행한 퍼포먼스는 1970년 7월에 명동 입구에서 정찬승과 고호가 진행한 가두 마임극이다. 정찬승은 ‘당신은 처녀임을 무엇으로 증명 하십니까’라는 구호를 가슴에 붙였 고 고호는 등 뒤에 ‘목표액 4천 4백 4십 4만 원 잃어버린 나를 찾음. 연락처 제4집단’이라는 글을 붙였다. 이 둘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각각 위치하였는데 고호가 정찬승에게 빵, 포도주 를 건네려거나 불을 쥐여주려고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창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없었다(Kim, M., 2003; Moon, Y., 1970). 여기서 고호는 물질주의에 젖은 인간상을 대표한다 면 정찬승은 순수한 인간성을 상징한다(Song, Y., 2016). 고호로 대표되는 인간은 물, 빵, 포도 주와 같은 물질을 쥐고 있지만 자기 자신 곧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즉 정찬승 에게 닿지 못한 고호는 물질 사회에서의 인간의 단절을 보여준 것이며, 나아가 인간의 순수에 닿고자 하나 순수한 본성을 잃어버린 자기 상실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8)

이는 ‘인간을 본연으로 해방’하고자 한 제4집단의 강령을 작품으로 실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제4집단은 1970년 8월 15일 광복 25주년을 맞아 정강자, 김구림, 정찬승, 방태수, 손일광 이 모여 진행한 <기성 문화의 장례식>이라는 행진 해프닝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이들은 한국 문화의 독립을 선언하고, 기성문화예술 혹은 기존 체제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하고자 한다는 의미로 사직공원에서 모여 선언문을 낭독하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행렬은 무체사상과 순수화 합을 뜻하는 집단의 상징인 백기를 든 김구림을 선두로 하였으며, 그 뒤를 태극기를 든 정강자, 꽃 관을 진 손일광과 박중웅, 태극기를 든 정찬승과 최영식 등이 각각 50m 간격을 두고 따랐다 -50m 간격을 띄운 이유는 당시로서는 체제에 위협이 되는 중죄인 불법시위의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본래 행진 코스는 사직공원을 출발로 하여 독립문 서대문을 거쳐 광화문 시청 앞, 명동, 남대문, 용산 제1 한강교 밑 백사장까지였으나 광화문에서 회원 모두가 경찰에 연행 되어 남대문 경찰서로 이관되었고, 결국 도로 교통위반법의 유죄를 받고 해프닝은 끝나게 된다 (Unknown Author, 1970. 08. 23; Unknown Author, 1970. 08. 26).

위의 두 해프닝을 종합하여 볼 때 ‘인간 본연의 해방’, ‘순수한 한국 문화’, ‘참여로서 모든 체제 를 통합’하며 ‘무체로서 일체를 이룬다’라는 제4집단의 행동 강령은 낡은 가치관을 타파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해 나가기 위한 시대적·예술적 전환기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제4 집단의 해프닝들은 기성문화예술과 체제에 대한 항변과 쇄신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새 로운 예술 형식을 실험하는 것을 넘어서는, 확장된 의식과 문제 제기를 이루어내었다. 이들은 보다 개념적인 범주로 예술에 대한 관념을 끌고 나간 것이다.

제4집단의 결성식에서 김구림은 제4집단이 순수하게 예술 활동을 펼칠 것임을 밝히면서도, 히피족이 하원 의원에 당선된 해외의 사례나 일본의 창가학회처럼 필요에 따라 정계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유신 체재 하에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특정한 정치적 의식이나 목적을 내세우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들의 활동이 정치적 아방가르드가 아닌 예술의 아방가르드를 통해 기존의 예술 및 문화의 테두리에 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계에 도전할 의향이 있다는 주장도 “창작활동 을 제거하는 독소들을 제거하기 위해”라는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새로운 예술과 창작을 추구하는 제4집단의 예술적 목적과 목표를 더욱 강조하는 발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Unknown Author, 1970. 06. 28, p.13).

하지만 제4집단의 이러한 의지와는 별개로 당시 정권은 이례적인 미술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의 예술 활동을 제한하였다. 제4집단이 미술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 가치 전도의 위험성까지 내재한 단체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시 정부는 제4집단 의 길 위에서 해프닝뿐만이 아니라 정강자를 비롯한 제4집단 회원들이 1970년 8월 12일부터 8월 24까지 서울 국립공보관 화랑에서 3막 5장의 《무체전》을 계획하고 실행했을 때 작가들 을 연행해 가거나 전시의 시작 자체를 막았다. 제4집단의 전위적 활동을 당시 유신 정권은 일종의 퇴폐미술로 간주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73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 미술 평론가의 「전위예술은 퇴폐가 아니다」라는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해당 기사는 제4집 단이 해체한 지 3년 뒤에나 나온 것이긴 하지만 당시의 한국에서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바라보 는 시선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저자는 이 글에서 전위의 시작을 다다에서 찾으며 다다나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등의 활동은 새로운 예술 의지를 향한 결과임을 명시하였다. 특히 나치와 소련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를 언급하며 “더구나 대중을 어떠한 이데올로기 또는 정치적 목적에 강제하려 할 때 통치 권력이 대중의 보수성을 이용함으로써 전위예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라고 서술한다(Unknown Author, 1973. 01. 23, p.5). 다시 말해, 전위예술이란 새로운 미술로의 의지에서 나타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성과 권력에 의해 아방가르드 예술이 퇴폐 로 낙인찍히게 되었음을 꼬집어 말한 것이다. 해당 글에서 제4집단이 언급된 것은 아니나, 결국 기사의 저자는 한국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제재한 정권의 모습을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대한 나치와 소련의 탄압을 예로 들어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맞게 당시 정권 은 제4집단 회원들이 주로 하였던 장발의 두발 모양까지 규제하려고 하였는데 경향신문(1970)

(9)

의 한 기사는 8월 15일 제4집단의 가두 해프닝이 계기가 되어 단발령을 내렸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매일 경제(1970)의 기사는 장발족들을 일제히 단속하였다고 증언한다.

해프닝 등 소위 전위 예술을 포함하여 1. 공개 장소에서 신체의 전부나 주요 부분을 노출, 음란 한 행위를 하는 자 2. 음악 감상실에서 음탕한 가무에 도취, 주위를 소란케 하거나 양속을 해하 는 자, 3. 지나친 더벅머리로 일정한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며 행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 4. 다방, 다과점 등 업소에서 장시간 좌석을 점유하여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자 등이다 (Unknown Author, 1970. 08. 29, p.7).

위 네 가지 항목은 모두 제4집단 구성원들의 활동을 정확하게 지칭하고 있다. 제4집단의 구성 원인 정강자의 누드 퍼포먼스의 예가 첫 번째 단속 대상에 해당하고, 두 번째의 ‘음악 감상실’은 김구림이 1969년 <1/24초의 의미>와 <무제>를 올렸던 아카데미 뮤직홀에서의 해프닝을 지 칭한다. 또한 제4집단 회원들은 8월 15일의 가두 퍼포먼스 뒤에 연행되었는데 남아있는 사진에 서는 회원들의 장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다방, 다과점’은 이들이 결성식을 했던 소림다방 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적은 예술적 아방가르드를 향한 제4집단의 미시적인 행동까지도 권력의 주체들에게 있어 정치적 아방가르드로 읽혔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이 시기에 정치적 아방가 르드와 제4집단의 예술적 아방가르드는 구분되지 못하였고, 이들의 공식적인 활동은 1970년 6월부터 8월까지 이르는 약 2개월간의 짧은 활동에 그쳤다. 하지만 결과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의 탄압으로 인한 조기 해체라는 지점은 오히려 문화비판적 관점을 주지하던 제4집단의 예술적 아방가르드의 전개와 실천의 효과를 강조하였다.

4. 김구림 아방가르드의 의미 분석 4.1. 전위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

작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한 미술사 안에서의 정리를 위해서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객관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김구림의 초기 작업에 나타난 아방가르드에 관해 탐구하기에 앞서 그의 작품을 분석할 때 발생하는 정당성의 문제 곧, 논리성이나 이론적 뒷받침의 부족을 살펴보고자 한다.

내 작품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다른 사람들에 늘 불만이 있었던 게 행위 쪽에 너무 치우치고 논리성이 결여된 걸 했기 때문이지요. 누가 왜 이렇게 했냐고 질문하 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내가 100%

이론적인 걸 가지지도 못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일본의 미술전문지

「미술수첩」의 글을 봐도 이론이 정연하고 해서 73년도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Oh, S., (Eds.)., 2001, p.26).

작품에 있어 논리성의 결여는 작가 자신 또한 인지하고 있었던 지점이다. 오상길과의 위의 인터 뷰에서 김구림은 자기 작품이 시대성에 영향을 받았으나 본인 또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뒷받 침의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결과 1973년 도일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1975년 한 좌담회(김구림, 심문섭, 정찬승, 사회:박용숙 1975. 2. 20)에서 김구림은 해프닝이나 입체가 곧 전위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GMoMA. (Eds.)., 2011). 이 두 가지 발언을 종합하여 볼 때 논리와 이론이 부재한 상태에서 진행된 전위는 진정한 전위가 아님을 그 스스로도 인식하였 던 것으로 읽힌다. 즉 제4집단 전후의 해프닝이나 그 이후의 오브제 작업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전위의 정당성을 완전히 획득하지 못하였음을 감지한 것이다.

나아가 실험적인 작업에서의 이론적 뒷받침의 문제는 비단 김구림 개인 작업에서 뿐만이 아니 라 제4집단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였다. 이 지점에서는 김구림이 참여하였던 다른 그룹 활동이 었던 AG와 차이를 보인다. 이론가인 오광수, 이일과의 계속된 관계 속에서 활동하였던 AG는

(10)

미셀 라공의 「새로운 예술의 탄생」, 오광수의 「예술 기술 문명」, 이우환의 「만남의 현상학 서 설: 새로운 예술론의 준비를 위하여」 등의 글을 그들의 잡지 󰡔AG󰡕에 실었다. 이들은 새로운 미술의 탐구, 소위 한국적 ‘개념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며 그들의 작품들과 이론의 연계성을 찾고자 하였으나, 제4집단의 활동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적극적인 이론의 모색이나 작품에 대한 충분한 뒷받침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론의 부재라는 문제는 김구림과 제4집단만이 아닌 당대 전위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던 다른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광수는(1970, p.5) 1970년 8월 29일 동아일보의 사설에서 “한국의 전위 운동이란 그것 자체의 제한이란 모순과 현실적인 여건 이라는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라며 한국의 전위예술 운동이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 양식화한 것에 크게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하였다. 전위란 일종의 정신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하는데 정신 적인 지주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여전히 근대화 과정 속에 있으므로 정신과 현실적 여건의 불일치가 일어나며, 이것이 전위 운동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당대에 나타난 새로운 예술들은 전체적으로 작품들을 뒷받침할만한 개념의 부재 속에서 서양의 모사 로써 평가되는 측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7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 한국의 실험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그 당위성의 판단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한 연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이 되는 김구림은 과연 어떠한 맥락에서 그가 지닌 아방가 르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4.2.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

결론부터 밝히자면, 김구림의 아방가르드는 한국 미술사 안에서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의 시도를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그가 제4집단 활동 이후에도 책상, 유리병 등의 일상적 사물을 그린 1970년대의 평면 작업, 새 의자나 삽을 칠해 마치 오래된 것처럼 꾸며 시간성을 나타내고자 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의 오브제 작업, 대비된 이미 지들의 병치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1990년대 이후의 음과 양 시리즈 등의 새로운 예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는 점이 그 증거가 된다. 그는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내 작품은 형태들은 다 다르지만, 그 밑에 관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것이 어느 시기의 작품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Kim, K., 2013). 결국 김구림의 변화된 작업의 공통된 기저에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과 양식을 탐구하고 그것을 실현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있다.

따라서 김구림의 작업을 분석할 때 있어 시기별로, 또한 작업의 개별 양상별로 해석하되 전체적 으로는 아방가르드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비평은 아방가르드 예술을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방가 르드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술의 정당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 예술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또는 일시적으로나마 수용하는 것이다. 또 그 예술의 도달점 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 출발점은 필요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Poggioli, 1962/1999, p.218).

김구림의 아방가르드를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위의 인용문을 통해 해답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oli)는 그의 저서

󰡔아방가르드 예술론󰡕에서 아방가르드의 개념과 내용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 책은 아방가르드 에 대한 일관적인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아방가르드를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 미학적 등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본 연구는 그 중 비평적 관점에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를 다룬 포지올리의 논점을 통해 김구림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해하고자 한다. 포지올리는 아방가르 드를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로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후자와는 별개로 진행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예술적 아방가르드에 관심을 두고 이를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포지 올리는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지니는 의의 내지는 가치라는 것은 ‘시작점’ 그 자체에 있다고

(11)

보았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방가르드의 예술의 정당성을 이해하는 것은 전개의 결과가 아닌 그것의 탄생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포지올리는 시대가 부과한 작업명령을 수락하는 것이 예술에 필요하다고 말한 아방가르드 이론가 오르떼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 José)를 인용한다. 다시 말해 시대에 따른 양상과 요구에 따라 예술의 변화 를 포착하고 시도하는 것, 이것이 전위 예술과 전위예술가가 짊어진 숙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포지올리는 오르떼가가 아방가르드 예술에 반응하는 계층을 두 부류로 나눈 것을 언급한 다. 오르떼가에 의하면 새로운 미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또다시 새로움을 추구하는 소위 엘리 트 계층과, 아방가르드를 이해하기에는 모자라거나 부적당한 나머지 계층이 있다. 포지올리가 보기에 이 엘리트 계층에게 필요한 일은 아방가르드 예술이 어떤 미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공헌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보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역사적 사명을 직감하는 것이다.

그는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집단적 혹은 개인적인 선언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해 야할 필요성은 없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아방가르드 예술이 가져온 번영을 판단하는 것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시도를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적인 경험, 경향들 속에서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 총체적인 시각에서 아방가르드의 윤곽을 포착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라고 할 수 있다(Poggioli, 1962/1999).

물론 이 지점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아방가르드 예술이 이룬 도달점과 결과적 해석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위 예술을 살펴볼 때 있어 마치 모든 예술작품에 응용되는 하나의 특수한 해석학, 해석적 입장이 존재한다는 확신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방가르드 미술이라는 것은 어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론적, 비평적 이해와 해석이 이루어지고 완성될 때는 더 이상 아방가르드가 아니게 된다. 때문에 ‘전위’의 명목 아래 미술작품과 예술가를 분석하고 평가할 때 있어서 완벽한 아방가르드로서의 성취란 없다. 따라 서 우리는 이전에 없었던 미술의 형식 혹은 내용의 탄생이라는 지점에 집중하고 그것이 새로운 예술에의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여야 한다. 김구 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이해 역시 작가의 작업이 최종적으로 성취하게 된 하나의 혹은 특정한 논의나 결과에 관한 판단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다른 관점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한국 미술사 에서 전위, 새로운 예술 활동과 형식의 ‘시작점’에 김구림의 초기 작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다. ‘전위’, ‘아방가르드’ 그 자체는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의 의미와 그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어느 시기이든 예술작품은 이전의 예술 형식과 내용과의 구분으로 인해 그 나름대로 아방가르드적이다. 그 때문에 본 연구에서 김구림의 전위를 해석하 려는 시도는 그의 전위를 절대적 의미의 아방가르드로 위치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진정한 아방가르드의 비평이란 아방가르드를 하나의 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 하였던 포지올리의 입장과 상응하여 김구림의 전위를 해석하려는 것이다(Poggioli, 1962/1999).

작품을 통해 김구림의 아방가르드를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본 연구에서 다룬 메일 아트, 제4집단 이전과 그 활동을 중심으로 한 해프닝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재고 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 작업들이 미술적 실험, 한국 미술사에서의 전위의 시도를 이루어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미술관 밖에서 행해졌다는 점이다. 메일 아트나 <콘돔과 카바마인>, <육교 위에서 의 퍼포먼스>은 예술 개념의 확장을 불러일으켰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세 작업은 관객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작품의 일환으로 삼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매스미디어의 유물>에서는 편지를 매개로 작가와 관객의 장소가 연계되었는데 이는 작가가 속한 특정한 장소에 강조점을 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로써 작품은 예술 창작 공간과 감상 공간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극복하게 하였다. 또한 편지를 보내고 받는 행위를 통해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공동 제작한다는 개념을 실현하였다. 작가인 김구림과 김차섭이 밝힌 바 있듯이 이 작품에 있어 발신자와 수신자의 개입, 우체부의 배달 행위 등은 작품을 이루는 일종의 연극 적인 요소이다. 더불어 메일 아트는 편지를 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근거로 하여 발신자와 수신자, 작가와 관객 사이의 공감이나 합일된 가치에 기초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미술의 실천

(12)

과 내용에 있어 예술 영역을 확대해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두 작가는 종이를 찢는 소리는 작품을 구성하는 음악이기에 종합예술이라고 명명하거나 자신들이 선보인 메일 아트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론이라고 증언하였다(Unknown Author, 1969. 10. 19). 자신들의 작업 이 새롭지 않다는 이 발언은 그러나, 적어도 그전까지 한국 미술에서 그와 같은 시도가 없었음 을 비추어 볼 때, 도리어 이들의 메일 아트가 새로운 예술을 향한 앞서나간 작업이었음을 뒷받 침하고 있다.

육교나 서울대학교 문리대 앞에서의 해프닝 역시 관객의 행위나 신체의 참여를 촉구하였다.

작품의 의미가 작가 자신뿐만이 아니라 감상자들의 행위와 심리적 반응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 서 관객은 단순히 작품을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존재에서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관객은 작가에 의해 생산된 작품을 일방적으로 제시받고 소비하지 않으며 작가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거나, 우연성에 기반을 둔 해프닝 등의 예술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창조적인 예술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분명 기존의 한국 미술의 형식과 내용과는 차이를 지닌다. 따라서 이 작업은 당시의 한국 화단에 있어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매체의 실험을 불러일으켰으며, 시간성, 관객 참여 등 예술 창작과 관람에서의 다양한 맥락들을 생산해 내었다.

김구림의 전위를 평가하는 두 번째는 그의 작업이 일상적인 장소인 육교나 학교의 공간, 곧 미술관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유물>은 편지 매체를 매개로 작가들의 장소와 참여자들의 장소를 아우르며 실현되기 때문에 미술관 안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또한

<육교 위의 퍼포먼스>도 미술관 밖의 장소이며 일상의 현장인 육교 위에서 펼쳐졌기에 ‘미술 품은 미술관 안에서 전시된다’라는 기존의 관점 내지는 한계에서 벗어났다. 비록 정권의 제재 때문에 위축되었지만 제4집단에 의한 해프닝 역시 8월 15일의 가두 행진극의 예에서처럼 길거 리를 기존의 미술과 문화에 대한 비판의 장으로서 삼았다는 점에서 미술계 전반에 신선한 자극 을 주었다. 그러므로 김구림의 작업들은 작품이 미술관이나 화랑 등의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 제도권 밖에서 예술에 대해 인식하고 말하게 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메일 아트, 서울대학교 문리대 퍼포먼스, 육교 위의 퍼포먼스, 바디 페인트 등의 작업을 했던 이유를 “실내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싶은 요구가 생기니까”라고 증언한 바 있다(Oh, S., 2001, p.23). 더불어, 이번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김구림은 한강 변에서 잔디를 태운

<현상에서 흔적으로>나 광목천을 미술관에 두른 <경복궁 싸기> 등의 작업으로 “예술과 삶 간의 경계 허물기를 몸소 실천”한 예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통해 기존에 한국 미술이 지니고 있었던 예술 개념을 더욱 확장하였다(Yun, N., 2003, p.167).

5. 결론

김구림의 메일 아트나 서울대학교 문리대, 육교에서의 해프닝, 제4집단의 활동은 모두 새로운 예술 실험을 이룬 작가의 전위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매스미디어의 유물>은 편지와 작가, 관객이 편지를 매개로 시간성과 장소성의 개념을 포함하였으며, 작품의 실현 과정 이 곧 작업이 되게 하였다. 또한 편지 수신인들의 심리적 반응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불러들임으 로써 예술의 개념을 확장하였다. <육교 위에서의 해프닝>이나 <콘돔과 카바마인> 역시 관람 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미술작품의 요소로 삼았다. 일상적인 장소를 작품의 무대로 삼거나, 관객의 행위와 반응에 의해 작품이 완성된다는 사실은 ‘참여자’를 인식하기 시작한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4집단은 여기서 나아가 기존 문화예술의 가치관을 타파하고 개념 적 및 실천적으로 확장된 예술을 요구하였는데, <기성 문화의 장례식>이 그들의 강령을 현실 화한 예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제4집단의 활동은 당시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였 기에 관습화된 예술문화의 전치 혹은 전복이라는 목표를 더 적극적으로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1970년대의 한국 화단에는 전위의 미명하에 개념화된 미술이 등장하였는데, 이론의 충분 한 뒷받침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의 실험 미술은 서구의 답습이라는 비판지점들이 존재하였 다. 그리고 이것은 제4집단이 활동이나 김구림의 앞선 작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김구림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에서 있어서도 논리성의 결여나 이론적 뒷받침의 문제를 배제할

(13)

수는 없겠다. 그러나 포지올리가 지적하였다시피 예술에서 전위의 의미란 아방가르드 예술이 제시하는 결과가 아닌, 시대의 요구에 따라 예술의 변화를 인식하고 시도하는 것에 있다. 아방 가르드는 새로운 예술로의 이행을 위한 수단이지 하나의 입장에 귀결하기 위한 목적론적·결과 론적 분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구림의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미술 형식의 실험과 그 실현이라는 사실에 위치한다. 즉 새로운 매체의 도입과 그 결과로서 생겨난 작가와 관람자, 작품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는 작품의 해석과 분석에 있어 행위, 몸, 시간성, 장소성, 우연성 등의 다양한 범주들을 한국 미술사 안에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 밖에서 예술 작품을 풀어낸 시도로 이어졌다.

현대 예술의 모호성 혹은 몰이해성은 절대로 확인하기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는 김구림의 전위 적 작업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성이야말로 현대 예술의 특징 이며, 이를 미술사 안에서 하나의 혹은 여러 논지의 기록물로 남기는 것이 연구자들의 숙명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구림의 전위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예술이 지닌 의미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며 명료한 비판적 논쟁, 객관화 및 검증의 작업들이 과제로 남아 있다.

References

Cho, S. J. (2013). The Whole Story of the ‘Fourth Group’: The Challenge and Frustration of ‘Korean’

Happening, The Misulsahakbo: Reviews on the Art History, 40, 141-172.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Eds.). (2011). Korean Historical Conceptual Art 1970-80s, Noonbit Han, J. E. (2018). A study on the Conceptual Art of Kim Ku-Lim's Arts: focusing on the works created in

1970~1984 [Master's thesis]. Hongik University.

Kim, B. Y. (1981). The Basis of Korean Contemporary Art in the 70s, Space, 6, 30-35.

Kim, C. S. (1970). An Experimental Collaboration: Presentation on the Relics of Mass Media, AG, 2, 6-8.

Kim, D. H. (2014). Kim Ku-lim's From <Phenomenon to Traces>(1970), Art History·Culture·Critique, 5, 7-28.

Kim, K. L. (2013, July 16), How Kim Kulim's ‘Meaning of 1/24 Second’ was born, https://www.youtube.com/watch?v=WVQuEmyidis

Kim, M. K. (2000). The 4th Group(1970), Art History Forum, 11, 253-278.

Kim, M. K. (2003). Experimental Art in Korea, Sigongart

Moon, Y. Y. (1970, July 15). Avant-garde Art Caught in Trial, (즉결재판에 걸린 전위예술), Weekly Kyunghyang, 50-51.

Oh, K. S. (1970, August 29). Disappointing Mind Support- Adding on Recent Avant-garde Art (아쉬운 정 신적 지주- 최근 전위미술에 붙여). Daily Donga, 5.

Oh, K. S., & Seo, S. R. (2001). 100 Years of Our Art, Hyeonamsa

Oh, S. G. (Eds.). (2001). Rereading Korean Contemporary Art Ⅱ: A Collection of Art Movements in the 1960s and 1970s (Vols. 1-2). ICAS

Poggioli, R. (1962/1999). The Theory of the Avant-garde, Moonye

Seoul Museum of Art. (Eds.). (2013). Kim Kulim: Like You Know it All, Seoul Museum of Art

Song, Y. J. (2016). The Fourth Group's Performance: A Prologue of Pan-Genre Art Movement, Art History, 32, 347-370.

Unknown Author. (1969, October 19). Peculiar Letters, Insisting Avant-garde Art (괴편지 띄워놓고 전위 예술이다), Sunday Seoul, 14-15.

Unknown Author. (1969, October 22). Two Fingerprints on Torn White paper (찢어진 백지에 지문 두 개), Weekly Kyunghyang, 87

Unknown Author. (1970, May 27). Wearing a Contraceptive Device. This is Art! (피임구 끼고 이것이 예술!), Weekly Kyunghyang,16-17.

Unknown Author. (1970, June 28). Psyche Music and Go-Go Dance in a Buddhist Sanctuary (법당에서 사 이키와 고고춤을), Sunday Seoul, 12-13.

(14)

Unknown Author. (1970, August 23). Don't Laugh at the Scenery Carrying a coffin while Doing Art (관 메 고 예술하니 경관이 웃기지마), Sunday Seoul, 12-13.

Unknown Author. (1970, August 26). Street Play Caught in Handcuffs (연행당한 전위예술), Weekly Woman, 26.

Unknown Author. (1970, August 29). Crackdown on Long-Haired People (장발족 일제단속), Maeil Business News Korea, 7.

Unknown Author. (1970. September 1). Korean Avant-garde Art (한국의 전위예술), Kyunghyang Shinmun, 5.

Unknown Author. (1973, January 23). Avant-Garde Art is Not Decadent (전위 예술은 퇴폐가 아니다), Daily Donga, 5.

Yoon, J. S. (2010). A Study on early 'Happening' in Korean Art, The Journal of the National Academy of Art, 49, 111-137.

Yun, N. J. (2003). Kim Kulim's ‘Deconstruction’, Journal of Histoty of Modern Art, 15, 145-178.

참조

관련 문서

본 차시는 HCI의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 인 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움직임을 통해 경험하고 표현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과정은

움직임 게임을 통해 여러 가지 동선과 움직임을 활용하여 물질의 상태 및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물질의 상태변화를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학생C: 일반적인 교과 시간에는 해당 교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배웠다면 STEAM 수 업에서는 배운 개념을 적용/활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배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자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스스로 설계하고 결 과에 대한 반성과 토의 활동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함께 다양한 창의적 요소를 신장시 킬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하나의 미술사조로서의 옵아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며 , 여기에 숨겨진 과학 원리에 대해서도 학습함으로서 미술과 과학의 연관성에

함께 협력하여 새로운 프로 그램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STEAM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의미 를 느낄 수 있었고,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함께 협력하여 새로운 프로 그램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STEAM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의미 를 느낄 수 있었고,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 IT비즈니스 개념을 중심으로 오늘날 기업의 경쟁우위 확보를 하는 과정에서 IT가 담당하는 역할을 크게 생산효율성 획득, 새로운 비 즈니스 가치 창출, 글로벌 비즈니스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