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교수: 김세기
제13강 한국의 도자기(2)
1. 조선시대자기
가. 분청사기(粉靑沙器)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 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 [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 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 분청박지모란문병,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1. 조선시대자기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 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 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여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 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사 기는 이 백토분장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분청상감, 분청인화, 분청박지, 분청 음각[彫花], 분청철회, 분청귀얄, 분청담금[덤벙]으로 구분된다.
(좌) 분청음각어문편병, 조선, 16세기, 호암미술관
(중) 분청인화국화문'내섬(內贍)'명 접시.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우) 분청철회당초문항아리, 조선, 16세기. 개인소장
1. 조선시대자기
가. 분청사기(粉靑沙器)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 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 [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 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 분청박지모란문병,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1. 조선시대자기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 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 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여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 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사 기는 이 백토분장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분청상감, 분청인화, 분청박지, 분청 음각[彫花], 분청철회, 분청귀얄, 분청담금[덤벙]으로 구분된다.
(좌) 분청음각어문편병, 조선, 16세기, 호암미술관
(중) 분청인화국화문'내섬(內贍)'명 접시.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우) 분청철회당초문항아리, 조선, 16세기. 개인소장
1. 조선시대자기
가. 분청사기(粉靑沙器)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 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 [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 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 분청박지모란문병,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1. 조선시대자기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 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 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여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 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사 기는 이 백토분장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분청상감, 분청인화, 분청박지, 분청 음각[彫花], 분청철회, 분청귀얄, 분청담금[덤벙]으로 구분된다.
(좌) 분청음각어문편병, 조선, 16세기, 호암미술관
(중) 분청인화국화문'내섬(內贍)'명 접시. 조선, 15세기, 호암미술관 (우) 분청철회당초문항아리, 조선, 16세기.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