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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 김병희·이규근·김호준·백영종·이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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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12호(2011. 11) 43~94쪽.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김병희·이규근·김호준·백영종·이원재* 목. 차. Ⅰ. 머리말 Ⅱ. 고대 석축산성 현문의 특징 1. 연구사 및 형식 분류 2. 조사 사례@ 3. 현문 구조 및 변천과정. Ⅲ. 현문 조사연구 방법 1. 조사계획과 조사지역 범위 설정 2. 예비조사 3. 지장물 철거 4. 조사기준점 설정 및 지형측량 5. 안전 조치 사항 6. 표토제거 7. 유구의 확인 8. 정리 및 기록 9. 조사의 마무리 및 복구. Ⅳ. 맺는 말. * (재)중원문화재연구원.

(2) 국문초록 본고는 고대 석축산성의 문지 중 신라 영역 각지에서 발굴조사된 懸門에 대한 연구 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연구사와 연구대상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문지 형식 구분이 기존의 통행시설로써 분류한 것을 성벽에 딸린 시설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문지는 성벽시설물로 보았을 때, 입면상으로 平門과 懸門(凹자형 다락문)으로 나뉜다. 그리고 문구부 상면을 조성한 재료에 따라 開据式과 平据式으로 구분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번 연구의 대상 현문도 평문과 마찬가지로 조사사례가 많아진다면 개거식과 평거식 으로 구분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하였다. Ⅱ장에서는 고대 석축산성의 현문이 조사된 사례와 입지조건 및 주변 유구와의 관계, 현문의 내부 시설물, 형식 분류를 통하여 현문의 변천과정을 소개하였다. 현문은 5~6 세기경에 소백산맥 이남에서 축조된 신라성곽에서 시작하였고, 그 후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이후인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는 소백산맥 이북에서 黨項城으로 이어지는 대당교역선상에서 계속적으로 축조되었다. 7세기 중엽에서 8세기 전반 경에 이르러서는 통일신라 영역권 내에서는 기존의 내옹성 대신 계단시설을 설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현문 발굴조사에서 조사방법론을 9가지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조사연구 방법을 통해 문지를 조사한다면, 문지의 변화과정과 축조기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고대 석축산성 문지의 정확한 구조 규명과 체계적인 조사방법론이 나오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조사가 진행되어야 하며, 관련학자들의 활발한 연구가 선행 되어야 할 것 이다.. 주제어 : 懸門, 문지 형식, 開据式, 平据式, 입지조건, 형식분류, 신라, 석축산성, 소백산맥, 黨項城. 44. 제12호.

(3) Ⅰ. 머리말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동북쪽 끝에 있는 半島로 삼면이 바다와 맞닿 아 있다. 그리고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전란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뤄진 지형을 이용하여 일찍부터 山城을 축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誠之가 산성의 나라로 부를 정도로 많은 산성이 축조. 되어 왔다1). 산성의 기원은 청동기시대에 거주하는 공간의 일정한 범위에 도랑을 돌려 파는 시설로 부터 찾을 수 있고, 부여 송국리 유적의 단계에서는 여기에 나무 목책이 더해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d사기e조선전에 漢武帝의 미움을 받은 衛滿朝鮮의 우거왕이 왕검성의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농성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고조선에도 산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2). 삼국시대에는 삼국 간의 항쟁이 치열해 지면서 접경지대는 물론 왕도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 거점 지역에 산성이 축조되어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부분의 산성이 이 때(4세기에서 7세기 사이) 축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고대의 산성은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수축되어 활용된 곳이 많았다. 따라서 산성은 우리나라의 대외관계나 전쟁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포함한 최상의 고고학적 자료 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과도 같은 존재이다3). 그러나 고대 석축산성의 성벽시설을 조사한다는 것은 시·공간적 복합성과 다양성을 지닌 유적을 조사하는 어려움에다가 동시에 축조 당시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체하는 작 업을 뜻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산성은 축조 후 점유국가별로 활용한 지역이 다르고, 목 적에 따라 여러 번에 걸쳐 증·개축이 이루어지게 된다4). 이러한 경우 조사과정에서 성내 유구 및 토층 상황과 동반되는 유물을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그 선후 관계와 변천 시기를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유적 발굴조사가 유적이 조성되어서 붕괴, 매몰되는 과정을 예상하고 역순으로 추적하는 탐색작업이라고 한다면 석축산성의 성벽 발굴조사는. 1)@차용걸 외, 2003,d京畿道의 城郭e , 수원: 京畿文化財團. 2)d史記e권 115,「朝鮮 傳_제 55, 에는“天子募罪人擊朝鮮. 其秋, 遣 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 , 出遼東 討右渠. 右渠發兵距險.… 船將軍將齊兵七千人 先至王險. 右渠城守,…’험준한 곳을 거하여 적을 파했고, 右渠가 城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점은 이른 시기부터 城의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3)@김호준, 2010,「관방유적 조사방법론 –산성 성벽 중심으로-_ , 중부고고학회 워크숍발표자료집. 4)@金虎俊, 2002a,「抱川 半月山城의 時代別 活用 硏究 -三國 및 統一新 時代를 中心으로-_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학위논문..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45.

(4) 토목공사의 역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산성의 출입시설인 성문은 산성 내 다른 시설물보다 다양한 변화가 있다. 왜 냐하면 성문은 방어적 측면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구조물로서 적 침입시 가장 먼저 공격대상이 되며, 이곳이 함락되면 성곽은 방어시설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새롭게 문지를 축조하거나, 보수하여 재사용, 혹은 폐쇄하는 등의 조치가 빈번하게 확인되고 있다5). 이러한 과정에서 그 둘레에 甕城 및 敵臺 등을 시설하여 방어력 을 증강하는 경우와 보축성벽을 쌓아서 성벽을 보강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고대 석축산성의 문지 중 신라 영역 각지에서 발굴조사된 懸門에 대하여 특징을 알아보고 조사방법론을 제시하려고 한다. Ⅱ장에서는 먼저 성곽 성문의 연 구사 및 형식을 분류한 후, 그동안 조사가 실시되었던 유적의 조사사례를 통하여 조사현 황과 시설물에 대하여 검토하고, 현문의 형식구분과 변천과정을 통해 고대 석축산성 현문 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조사방법론을 일반화 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현문의 특징과 조사방법론을 통해 조사원이 현문을 조사한다면, 특징과 시 설물, 변화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고대석축 산성 문지조 사에 합당한 방법론이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Ⅱ. 고대 석축산성 현문의 특징 1. 연구사 및 형식 분류 1) 연구사 우리나라의 산성 연구는 1960년대 말부터, 홍사준(洪思俊)·성주탁(成周鐸)·정영호 (鄭永鎬) 등에 의하여 문헌자료가 적은 백제사의 공백을 보충하기 위해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발굴조사보다 지표조사가 많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지표조사의 현황은 광역 조사의 일환이든가 혹은 학술탐사단이 사비를 모아서 성곽의 현황조사를 하는 정도였다.. 5)@성문의 구조와 형식은 축성재료와 축성시기, 축성의도 등에 따라 다양한 구조와 형식이 보인다. 이러한 다양한 구조와 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문의 위치, 출입의 방법, 통로의 형태, 문루의 구조와 형식 등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손영식, 2009,d한국의 성곽e , 서울: 주류성, p.477).. 46. 제12호.

(5) 초기 산성 연구자들은 문헌을 뒤지고 현지를 답사하면서 많은 수의 산성을 찾아내고 그 현황을 기록하였다. 그 분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대부분의 산성에 대한 기초 자료가 확보 되었다. 이러한 열정은 차용걸6)과 이원근7)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한국의 성문 형식은 18세기 말엽에 축조된 수원 화성의 기록지인d華城城役儀軌e 를통 해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문의 실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성 문에 대한 연구는 평면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구분과 門 , 敵臺, 져왔다8). 특히 1975년. 墻, 甕城과 함께 다루어. 東賢9)에 의한 우리나라 성문 형식과 그 유형을 연구한 이래로 조선. 시대 성곽 문지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83년에는 應默이 성문 건축형식의 현황을 파악하고, 성문의 개괄적인 정의와 분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10). 이러한 연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고려~조선시대 읍성 연구를 통해 활발히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11). 근래에는 읍성 문루 원형복원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12). 그러나 고대 석축산성의 성문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산 성 발굴조사가 연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자료가 축적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연 차적으로 조사된 산성을 중심으로 성벽 및 문지, 성내 시설물의 변화과정과 산성의 성격 을 밝히려는 연구 속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져 왔다13). 이러한 시도는 주변 성곽을 엮어 축 조세력(시기)별 축성방식 양상, 주변 교통로, 지방통치 문제 등 여러 분야의 파생 연구도 가능하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성문, 집수시설 등의 산성 내 시설물을 대상으로 종 합적인 연구성과가 진행되고 있다.. 6)@ 勇杰, 1975,^韓國城郭의 史的 考察_ ,d大學院. 文集e5, 忠南大學校.. 7)@ 元根, 1980,^三國時代 城郭硏究_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8)@ 勇杰, 2008,^韓國 古代山城 城門構造의 變化_ ,d中原文化財硏究e2, p.61, 중원문화재연구원. 9)@성문의 범주는 출입문, 문루, 적대, 여장 옹성을 모두 포함 시켰고, 출입문은 홍예식(아치식)과 평형식으로 구분한 다음 홍예 식을 반타원형식, 타원형식, 포물선형식, 마제형식으로 구분하였다. 문루는 단층식, 중층식, 적대는 성벽돌출식, 별치식, 여장은 평여장식, 반원여장식, 凸형 여장식, 옹성은 반원형식, 사각형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옹성에 조성된 문지는 중앙식 옹성문과 편문식 옹성문으로 구분하였다( 東賢, 1975,^우리나라 성문(城門) 형식과 그 유형( 型) 관한 자료_ ,d문화재e9, 문화재관리국). 10)@ 應默, 1983,^韓國城郭의 城門建築樣式에 關한 硏究 -朝鮮時代 城門을 中心으로-_ , 단국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석사학위논문. @ @ @ 맹홍규, 1988,^조선시대 성문의 건축형식에 관한 연구_ ,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학위논문. 11)@심봉근, 1995,d한국 남해 연안성지의 고고학적 연구e , 서울: 학연문화사. @ @ @ 沈正輔, 1995,d韓國 邑城의 硏究 -忠南地方을 中心으로-e , 서울: 學硏文化社. 12)@우정희, 2007,^성곽문루의 건축적 특징에 관한 연구 -읍성문루를 중심으로-_ ,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문화재학과 석사학위논문. 13) 심광주, 1988,^이성산성에 대한 연구_ ,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김용민, 1997b,^부소산성의 성벽축조방법 및 변천에 대한 연구_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김낙중, 1998,^신라월성의 성격과 변천에 관한연구_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金虎俊, 2002a,^抱川 半月山城의 時代別 活用 硏究 -三國 및 統一新 時代를 中心으로-_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학위논문..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47.

(6) 먼저 윤선영은 2005년에 고대 산성의 성문의 구조를 크게 개거식과 현문식으로 구분하였 고, 현문식의 경우를 방어적으로 한 단계 진보된 형태의 것으로 본다는 연구를 진행하였다14). 백영종은 2007년에 5~6세기 소백산맥 북부 일대 신라산성의 문지에 대한 입지조건과 그 기능 및 문지 구성요소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그리고 당시 현문이 조성된 배경에 대해 서도 거점성 확보와 방어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견해도 제시하였다15). 김병희는 2007년에 신라산성의 성문 특징을 5세기 후반경에는 초기 현문구조에서, 6~7 세기에는 현문바닥의 변화, 통일기에는 평문과 현문의 절충형인 복합형식의 구조를 변하 는 3기 구분설정을 하였다. 그리고 성문의 변화과정을 통해 신라의 축성목적과 배경을 검 토하였다16).@@@ 차용걸은 2008년에 한국 고대 산성 성문구조의 변화를 연구하면서 축성연대가 명확한 고구려 평양성의 성문과 신라의 삼년산성 서문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를 바탕으로 성문의 필요요소를 구분하였고, 이러한 성문의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형식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구분을 통해 성문을 축조하는 기술 발전의 연속성과 편년 설정할 수 있는 계 기를 열어 놓았다17). 더불어 고대 석축산성 성문의 기술적 특성이 우리나라 중세와 근세의 성문양식으로 변화 검토해야할 필요성과 세밀한 형식 분류와 고찰하는 작업의 필요성도 숙제로 제시하였다. 2) 형식 분류 본 연구의 대상은 고대 석축산성에서 확인되는 현문으로 성벽 開口部의 입면 형태가 凹字形으로 일명 다락문이다18). 한국성곽의 성문은 출입의 방법, 통로의 형태, 문루의 구조와 형식 등으로 구분하였다. 그러한 분류는 입면구조에 따라 開据式, 平据式, 虹霓式, 懸門式 등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현문식은 개거식의 일부라 하여 분류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다19).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성곽에서 성문을 별개 시설물로 보는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곽은 성내 거주인과 시설물의 보호를 위하여 축조된 건축물로, 외부 적으로부터 침. 14)@尹善暎, 2005,^古代山城의 門址에 대한 硏究_ ,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15)@白永鐘, 2007,^5~6世紀 新 山城 硏究 -小白山脈 16)@김병희, 2007,^新. 部 일원을 중심으로-_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城郭 城門의 特徵과 變遷過程 檢討_ ,d학예지e14,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pp.27-47.. 17)@ 勇杰, 2008,^韓國 古代山城 城門構造의 變化_ ,d中原文化財硏究e2, 중원문화재연구원. 18)@김병희, 2007,^新. 城郭 城門의 特徵과 變遷過程 檢討_ ,d학예지e14,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pp.27-28.. 19)@손영식, 2009,d한국의 성곽e , 서울: 주류성, p.488.. 48. 제12호.

(7) 입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이중 성문은 방어적 측면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 는 구조물이다. 따라서 성문은 성벽과 관련된 시설물이다. 성문을 성벽에 설치된 시설로 본다면, 성문은 성벽의 단절 여부에 따라(입면 형태) 平 門과 懸門으로 크게 구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문지 주변 성벽의 형태 에 따라(평면 형태) 일자형, 내만형, 볼록형, 어긋문 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 은 읍성의 옹성에서도 적용될 거라고 판단된다. 평문은 통로부 상면에 조성된 재료에 따라 개방되거나 목재일 경우는 개거식, 석재 혹 은 전축일 경우는 평거식으로 구분하며, 다시 평거식은 통로부의 입면형태에 따라 홍예. (출처: 정영호 감수, 1999,d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1)e , 시공테크, p.194). 현문식(懸門式) 성문. 개거식(開据式) 성문. <그림 1> 수원화성 팔달문 구조 및 현문식, 개거식 성문 비교.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49.

(8) 식, 유사홍예식, 장방(방형), 사다리꼴형 등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문은 성벽 開口部의 입면 형태가 凹字形으로 일명 다락문이다. 현문도 평문과 같이 통로부 상면에 조성된 재료에 따라 개거식과 평거식으로 구분될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 산성조사에서 현문의 상단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없어 대부분 개거식으로 추정하 고 있다. 그리고 현문은 다락문형식 이외에 문지 외부의 외황 혹은 해자 시설에 설치된 跳 開橋(釣橋, 弔橋(吊橋는 弔橋의 잘못된 표기임), 棧橋, 懸垂橋 등의 drawbridge), 層梯 (escalier), 輾橋(turningbridge)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20). 그리고 중국 성곽 성문 중 겹문 구 조일 경우,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안쪽 혹은 양쪽에 도르래를 이용하여 위 아래로 차단 하게끔 설치하는 문을 일컫는 경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21).. 2. 조사 사례 1) 입지조건 고대산성에서 문지는 출입이 쉬운 곳을 피하고, 성문으로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곳을 택해서 개설되었다. 평지와 경사면이 만나는 곳이나 계곡의 안쪽, 능선에서 약간 빗 겨난 부분에도 축조되었다. 즉 출입의 편리함 보다는 성문으로 진입하는 인마를 관측하기 유리한 지형에 축조된 것이다. 또한 외부에서 성문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피하도록 만들 어 놓은 것이다22). 현문의 입지조건은 계곡 중심부가 아닌 능선 사면에 치우친 곳에 축조되고 있다. 이는 방어력과 배수시설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입지조건 중에 고려될 사항은 현문 주변에 성벽 배수시설과 중요 건물지 및 집수시설이 배치된 경우도 확인되고 있다. 현문이 축조 된 입지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城門의. 地條件에서 계곡부에 해당되는 성문은 계곡 중심부가 아닌 능선 사면. 에 치우친 곳에 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성과 관련한 공성기록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지만, 상식선에서 적이 산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능선 혹 은 계곡을 따라 산성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먼저 능선을 따라 침입하는 적은 현문을 공격. 20)@ 勇杰, 2008,^韓國 古代山城 城門構造의 變化_ ,d中原文化財硏究e2, 중원문화재연구원, p.64의 주 9). 21)d文宗實 e6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2월 2일(신미) 6번째 기사 d文宗實 e7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4월 12일(경진) 3번째 기사 22)@김호준ㆍ강형웅ㆍ강아리, 2008,^고대산성의 지표조사 방법_ ,d야외고고학e4,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50. 제12호.

(9) 하려고 한다면, 능선 앞 성벽을 따라 우회하게 되어야 한다. 또한 계곡을 따라 공격하는 적 은 현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개방된 공간에 노출되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입지 선정은 문지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측면이 고려되었다고 여겨진다. 둘째, 현문은 성벽 중단에 개구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계곡 중심부에서 벗어난 지점 을 택하여 입지를 선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문은 지형적 고저차이에 의하여, 수량이 일시적으로 흐를 경우, 평문보다 붕괴 위험성이 높다. 또한 첫째의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능성 상면 성벽구간에 비하여 낮은 지점에 해당되기에 우수가 집결될 여지가 많다. 이러 한 요인으로 현문 통로부에 배수시설을 설치하거나, 옹벽을 설치하여 우수의 차단을 막기 도 한다. 또한 주변 성벽에 배수구를 설치하기도 한다. 현문 조성시 부터 동일한 계획 아 래 城門과 배수시설을 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현문 주변에 집수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산성 내 집수시설은 평상시의 식수와 화재 를 대비한 방화수를 모아두는 시설로 추정할 수 있다. 집수시설을 현문과 SET 개념으로 접근하 여 해석한다면, 현문의 板門 혹은 문루의 방화수를 저장하기 위한 조합으로 볼 여지도 있다. 넷째, 현문은 주변에 중요 건물지가 배치되어 있다. 현문은 평문보다는 방어력을 고려 하여 조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현문 주변에 중요 건물지가 배치되었을 가 능성도 있다. 또한 현문은 규모가 작은 경우, 위급 시에 적의 감시망을 벗어나 통행하는 암문의 기능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 2) 유적 현황 (1) 姑母山城 姑母山城은 慶. 聞慶市에 있는 包谷式의 石築山城(規模 1,300m)이다. 洛東江 上流. 域인 永江에 接하여 있는 垂直斷崖面과 江邊에 突出된 丘. 野山部(海拔 231m)를 이용하. 여 축성한 江岸山城이다. 最近 南門과 西門, 體城壁에서 突出하여 축조한 防禦施設物인 南東曲城, 水量을 排水하기 위한 水口施設, 城內 수량을 貯藏하기 위한 集水施設 등에 대 하여 發掘調査가 실시되었다23).. 23)@차용걸 외, 2004,d聞慶 姑母山城e지표조사보고서, (재)중원문화재연구원. @@@ (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05,^聞慶 姑母山城_1차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집. @@@ (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06,^聞慶 姑母山城_2차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집. @ @ @ 백영종, 2006,^姑母山城의 築城時期 考察_ ,d한ㆍ일고대산성 연구세미나e , 한국성곽학회ㆍ일본고대산성연구회..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51.

(10) ① 姑母山城 南門 南門은 山城 南側 丘.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開設되어 있다. 성문. 좌우로 南東曲城과 雉城이 각각 축조되어 있다. 體城壁 2/3 지점에. 面 凹자형으로 開口部. 를 낸 懸門 構造이다.(개구부 하단 체성벽 높이 5.8m) 성문 규모는 총길이 16m, 幅 5~5.8m 이다. 개구부 側壁은 동벽 높이 6~14단 60~150㎝, 서벽 7~11단 70~110㎝가 殘存하고 있다.@ 門址 내부시설은 內側面. 端에 方形 石築施設(높이 8단 90cm)과 이와 연결되는 橫方. 向 石列施設이 존재한다. 排水施設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문 基底部(바닥)시설은 층단을 이루지 않는 平坦面을 이루고 있으나, 城外側으로 40cm, 중심부와 측벽으로 10cm의 경사 도를 보이고 있어 양쪽 측벽선을 따라 성벽 상면에서 흐르는 漏水를 배수 처리하였던 것 으로 파악된다. 성문을 통과하여 성내측의 시설물은 성내로 오르기 위한 階段施設, 內擁壁, 投石用 石 丸施設 등이 있다. 內擁壁은 西側 頂上部로 연결되는 지점에 축조된 석축시설로 잔존규모 는 길이 5.5m 높이 1~3단 60㎝이다. 옹벽은 성내 경사면의 土砂의 崩壞를 방지하고 진입 로를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축조된 것이다. 동측에는 투석용 석환시설이 내벽에 접하여 170×70×100㎝ 범위 내에 있다. 주변 강돌을 이용하였는데 손으로 잡기 쉬운 정도의 크 기로 가공 흔적은 없다(直徑 10㎝ 이내). 성문 외측으로는 체성벽과 기저부 補强施設物인 斷面 三角形態의 補築城壁(높이 26단 4m, 幅 1.5m, 경사도 65°)이 축조되어 있으며, 성문으로 진입하기 위한 登城施設은 확인 되지 않는다.. ② 姑母山城 西門 西門은 체성벽이 성내 가장 낮은 지점인 溪谷部를 연결하여 축조된 구간에서 남동쪽 綾扇에 치우쳐 개설되어 있다. 평면에서 체성벽이 계곡부내로 내만하고 있으며, 좌우 능 선과 연결되는 지점이 체성부과 바깥쪽으로 돌출하여 있어 성문을 감싸고 있는 지형적 입 지를 이용하였다. 주변 雉城 등 방어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으며, 성문 서측에서 水口시설 이 체성벽을 관통하여 개설되어 있다.@ 성문은 체성벽을 6m 쌓아올린 후 開口部를 내고 체성벽과 직교하는 양쪽의 通 部 側 壁을 축조한 懸門式 構造( 面 凹字形)이다. 규모는 총길이 20m, 幅 500㎝이다. 측벽은 남 측벽 높이 6~11단(160㎝), 북측벽 7~18단(325㎝)이 잔존하고 있다.. 52. 제12호.

(11) 門址 內部施設은 내측면. 端에 방형 석축시설이 존재하며 이와 연결되는@ 계단시설. 3단이 있다. 城門 바닥(基底)시설은 60~80cm 크기의 板石形 石材를 정연하게 맞물리게 놓아 조성하였다. 성문 기저부 바닥석재 상면에는 중앙부에 횡방향으로 5열의 石列이 있다. 바깥쪽 4,5열은 ㄷ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석렬 내부에서 성문 回轉軸에 사용된 확쇠 와 圓形 鐵製板이 出土되었다. 기저부에 확쇠를 고정하였던 門確石은 확인되지 않으며, 기저부를 노출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성문 結構用 鐵釘이 수습되었다. 배수시설은 따로 조 성하지 않았으며, 기울기에 따른 경사도를 이용하여 처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을 통과하면 성 내측 시설물은 남측에 內擁壁이 있으며 좌우측에 투석용 석환무지 가 2.5×1.5×1m(높이) 범위 내에 있다. 성문 외측으로는 체성벽과 基底部를 補强하기 위 한 斷面 三角形態의 補築城壁이 接合하여 築造되어 있다.. 고모산성 남문(항공사진). 고모산성 서문(성내에서). <그림 2> 고모산성 남문 및 서문. (2) 三年山城@ 三年山城은 忠. 報恩郡에 位置하고 있는 包谷式의 石築山城(규모 1,600m)이다. 신라. 慈悲麻立干 13年 (470년)에 築城되었으며, 486년에 改築되었다는 文獻記 이 있다. 城門 4곳에 대하여 調査가 이루어졌다24).. 24)@忠淸 道 報恩郡, 1980,d三年山城 西門址 調査槪要e . @@@. 勇杰ㆍ趙順欽ㆍ白永鐘, 2006,d報恩 三年山城e , (財)中原文化財硏究院. @.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53.

(12) 삼년산성 남문 전경. 삼년산성 동문 전경. <그림 3> 삼년산성 남문 및 동문. ① 三年山城 南門 남문은 남벽 계곡부 서측에 위치하고 있다. 성문 남동쪽에 방어시설인 曲城이 축조되 어 있다. 체성벽 中段部에 開口部가 造成된 懸門 構造이다. 初築 이후 2~3차례 改築되어 活用되었다. 開口部 규모(初築)는 幅 3.6m 길이 10.8m이다. 성문 기저부는 板石形 割石을 이용하여 상면을 맞추어 평탄하게 깔아 조성하였으며, 할석 사이는 작은 돌과 흙으로 다짐하였다. 바닥시설 외에는 배수시설과 門確石 등 관련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문 내부에서 확쇠 1점과 철정이 출토되었다. 개구부 내측 양단에 석축시설이 존재한다(幅 90㎝, 길이 140~190㎝). 개구부 측벽은 높이 35층 3.5~3.9m가 잔존하고 있다. 개구 외측 아래로는 체성벽과 이 에 덧대어 2중의 補築城壁이 축조되어 있다. ② 三年山城 東門 동문은 동쪽 성벽에서 작은 계곡을 이루는 지점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개설되어 있다. 현문 구조의 성문이다. 동문 남쪽으로 성벽을 관통하여 개설된 수구가 존재한다. 개구부 규모는 幅 5.1m, 측벽 길이 10.5~10.6m이다. 성문 기저부는 板石形 할석을 평탄 하게 깔아 바닥면을 조성하였다. 성문과 관련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문을 통과 하면 내측으로 內擁壁이 존재한다. ③ 三年山城 西門@ 1980년대 水害로 인한 緊急調査가 이루어졌다. 2차례에 걸쳐 성문이 조성되었음이 확. 54. 제12호.

(13) 인되었다. 上代 門址는 성문 길이 방향에 따라 측벽으로 4개의 方形 柱穴이 있는 門礎石 이‘H'자 모양을 이루도록 結構되어 있다. 문지방돌과 문초석이 만나는 바깥으로는 문 확 쇠를 고정시킬 수 있는 원형과 방형 구멍이 있는 門確石(屯太石)이 한단 낮게 파여져 있다. 문지방돌에는 수레 등이 지속적으로 通 함으로써 磨耗되어 생긴 흔적이 확인된다. 서문은 門口部 및 城外側으로 열리는 특이한 구조로 밝혀졌다.@. (3) 忠州山城 忠州山城은 忠 忠州市 南山(해발 636m)에 위치하고 있는 包谷式의 石築山城이다(규모 1,120m). 동문과 남문에 대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25).. ① 忠州山城 東門 동문은 충주산성 體城壁이 가장 낮은 지점의 계곡부를 통과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치 우쳐 개설되어 있다. 성문 내외측이 경사를 이루며 이중으로 높은 層段을 이루고 있는 懸 門 構造이다(성문 기저부와 체성벽 하단 출입로와의 고저차이 30층 4.5m). 성문과 인접하 여 계곡부에 체성벽을 관통하여 개설된 수구시설이 있다. 開口部의 幅은 4.6m이다. 개구부 내측에 반원형의 防壁과 集水施設을 갖추고있다. 성문 기저부 시설물은 바닥면에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排水口의 幅은 0.8~1.1m이다.. ② 忠州山城. 門@. 북문은 체성벽이 방향을 바꾸어 회절하는 구간의 능선부로 회절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 쳐 개설되어 있다.. 面 凹자형의 懸門이다. 開口部 幅 4.7m, 길이는 8.1m(동측벽)이다.. 문구 기저부 내부에서 문 회전축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문 확쇠 1점과 성문 결구용 철정 5점이 출토되었다. 성문 기저부 바닥면은 교란이 심하여 敷石施設은 확인되지 않는다.. (4) 父母山城. 門. 父母山城은 忠 淸州市 父母山(海拔 231m)에 위치하고 있는 包谷式 石築山城이다(규모. 25)@차용걸 외, 1999,d충주산성 동문지e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 (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06,^충주산성 북문지 발굴조사_현장설명회의 자료. @ @ @ 조순흠ㆍ조록주, 2006,^충주산성 북문지 발굴조사 개보_ ,d한국성곽학보e9, 한국성곽학회..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55.

(14) 충주산성 북문 전경. 부모산성 북문 전경. <그림 4> 충주산성 및 부모산성 성문. 1,135m). 북문지 일원에 대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26). 부모산성은 初築國家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고고학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6~7 세기경 百濟와 新 에 의해 出土遺物을 통해 수차례 반복하여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북문은 山城 북쪽 계곡부를 연결하여 축조된 체성벽의 서측에 치우쳐 위치하고 있다. 계곡부내에는 수구시설이 개설되어 있다. 성문은 외측과 높이 460㎝ 차이를 보이는 현문 구조이다. 규모는 길이 770㎝, 幅 450㎝이다. 성문 측벽은 높이 130~180cm이 잔존하고 있다. 기저부 바닥시설은 파괴가 심하게 진 행되었으나, 배수시설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된다. 확쇠 1점과 성문 결구용 철정이 출토되 었다. 성문 외측으로는 체성벽 바깥면으로 덧대어 초축 시기에 축조된 1차 補築城壁(斷面 三角形 石築)과 후대 개축된 2차 보축성벽(斷面 부채꼴-層段式 石築)이 확인되며, 2차 보 축성벽선과 연결되어 성문 바깥쪽으로는 登城施設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개구부 내 측으로는 동쪽으로 옹벽이 축조되어 있다. (5) 大母山城 동문과 서문 大母山城은 京畿 楊州市에 위치하고 있는 테뫼식 石築山城이다(규모 1,400m). 북문은 1980년대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후 동문과 서문에 대하여 발굴조 사가 실시되었다27).. 26)@김병희ㆍ백영종, 2004,^청주 부모산성_ ,d한국성곽학보e7, 한국성곽학회. @@@ (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06,^청주 부모산성 2차발굴조사_현장설명회의자료. 27)@文化財硏究所ㆍ翰林大學校 博物館, 1990,d楊州 大母山城 發掘報告書e , 翰林大學校 博物館 硏究叢書 第4冊. @ @ @ 최영희 외, 2002,d양주 대모산성 -동문지ㆍ서문지-e , 한림대학교 박물관 연구총서 제21책.. 56. 제12호.

(15) 대모산성 동문. 설성산성 서문. <그림 5> 대모산성 및 설성산성 성문. 동문은 성벽 중간에 개구부를 낸 현문 구조이다. 성문 규모는 幅 520㎝, 길이 660㎝ 이다. 성문 기저부 바닥시설은 장방형의 板石을 남북방향으로 11열의 石列을 이루며 조 성하였다. 외측 2열에 門確石이 있으며, 확석 내부에 2개의 鐵製 回轉軸(확쇠)이 결구된 채로 출토되었다. 양쪽 확쇠 사이의 거리는 306㎝이다. 서문은 동문과 동일하게 체성벽 중단부에 개구부를 개설한 입면 凹자형 懸門 構造이다. 성문 幅은 510~590㎝이다. 성문 기저부 바닥시설은 교란이 심하게 진행되었지만 크고 작은 판상형 석재를 이용하여 깔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닥 중앙부에 排水 가 설치되어 있다.. (6) 설성산성 서문 설성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산 115-1번지(경기도 기념물 제76호) 일대 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성은 설성산 정상인 해발 290.4m의 봉우리와 그 북쪽에 위치한 해 발 266m의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계곡을 포함하여 능선의 7~8부 능선에 걸쳐 축조된 포 곡식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095m이며, 성내에서는 문지 2개소, 추 정건물지 12개소, 장대지 1개소, 우물지 1개소, 산정상부 서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토성 등이 확인되었다. 5차 발굴조사까지 진행되었다. 설성산성 서문지는 초축 이후 2차례에 걸쳐서 개축되었던 것이 파악되었다. 이를 초축 문지부터 축조 순서대로 각각 1차 문지, 2차 문지, 3차 문지로 구분하였다. 1차 문지는 초축 시의 문지로 규모는 길이 6m, 폭 5m 정도이다. 1차 문지와 관련된 부 속시설물로는 문지외부의 등성시설, 문지에 포함된 배수로, 문지 내부의 내옹성이 있다. 통로부 바닥은 성벽 뒤채움석을 정리한 후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바닥석을 올려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 중앙부에서는 판문에 사용되었던 철제 못 7점이 출토되었다. 성문은.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57.

(16) 목재를 사용하여 만들었고, 철제 못의 크기로 보아 두께는 12㎝ 정도로 추정된다. 이 밖에 문을 고정하였던 흔적, 즉 문확석이나 이와 관련된 고정 장치는 출토되지 않았다. 2차 문지는 1차 문지가 화재로 소실된 후, 높이 100㎝ 정도 석재를 매몰한 후 재축조된 것이다. 2차 문지와 관련된 시설물은 1차 문지와 동일하나, 문지 내부에 초석을 설치하고 기와를 올린 문루가 더 확인되었다. 2차 문지의 규모는 길이 6m, 폭 3~4m로 추정된다. 문 폭이 축소되었는데 초석 간 간격이 350㎝로 동일하며, 측벽이 초석 위에 세워진 기둥사이의 벽체를 구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3차 문지는 2차 문지가 화재로 소실된 이후 다시 축조되었다. 3차 문지와 관련된 시설 물은 문지외부의 등성시설과 문지에서 문지 내부로 진입하는 계단시설이 있다. 2차 문지까 지 활용되었던 내옹성은 폐기되었다. 또한 3차 문지가 사용될 때에는 문지 안쪽도 거의 내옹 성 높이까지 매몰되어, 폭이 20㎝ 내외인 2~3단의 계단을 통해 진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차 문지의 규모는 길이 4~5m, 폭 3m 정도이다. 서문지에 대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여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설성산성 서문지 현황표 차수. 규모(㎝) 길이. 폭. 600. 500. 형태. 관련 유구. 현문식. 등성시설, 내옹성,. 1차 배수로, 1차. 바닥석 300 2차. 600. ∼ 400. ∼. 300. 400. 이음쇠(성문사용), 백제토기(등성시설 다짐층). 현문식. 초석 4매, 2차 배수로,. 고배편(6세기 후∼7세기 초),. (누문). 바닥석. 기와(중심연대 7세기). 500 3차. 관련 유물. 현문식. 계단,. 줄무늬병편,. 바닥석. 편병편(9세기). 폐기 이유. 화재. 화재. 폐성. 활용시기. 기타. 6세기 후반. 판문. 이전. (두께 12cm내외). 6세기 후반∼. 성외 등성시설,. 9세기 후반. 내옹성 사용. 10세기 이후. 성외 등성시설 사용, 내옹성 폐기@. (7) 반월산성 반월산성(사적 403호)은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구읍리 산 5-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 은 해발 284.5m의 靑城山에 축조된 半月形의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80m이다. 현재까지 6차 발굴조사와 2차례의 정비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58. 제12호.

(17) ① 반월산성 북문 포천 반월산성 북문지는 북서 26°의 축선으로 길이 7.5m, 폭 1.48m의 규모이며, 외벽의 높이는 1.5m 정도의 현문식 구조이다. 통로부의 길이는 4.3m 정도이고 바닥석 및 동·서 벽에 인접하여 각각 문확석이 확인되었다. 문확석은 통로부의 입구에서 확인되었는데, 상면에는 지름 23㎝ 깊이 11㎝의 원형 홈 뒤편에 15×8×4㎝ 크기의 장방형 홈이 마련되 어 있다. 門楔柱穴과 門扉柱穴이 동시에 설치된 구조이다. 바닥석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모두 5단의 계단석이 확인되었다. ② 반월산성 동문 반월산성 동문는 2차례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1차 문지는 통로부에 배수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시설을 통해 성안으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주변 성벽 폭이 6m이므로 길이 6m, 폭 3.9m, 외벽높이는 2m 이상으로 추정 된다. 통로부 바닥은 부정형 할석재의 편평한 면을 위로 놓아서 수평을 맞추었다. 바닥에 서는 문확석 등 문의 형태나 고정 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유구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문지 바닥에서는 같은 선상에 중복되어 上·下 2열의 배수로가 확인되었다(상단이 2차 배수로이고, 하단이 1차 배수로이다). 계단시설은 폭이 1차 문지의 폭과 유사한 4m 내외이다. 추정높이는 6단, 100~120㎝ 정 도이며, 각 단의 높이는 15~20㎝ 정도로 추정되며, 단의 폭은 40㎝이다. 2차 문지는 1차 문지와 규모면에서 차이가 없다. 다만 외벽을 견치석을 이용하여 보수 하고 기단부 전면에는 적갈색점토+모래층 위로 다시 황갈색점토 + 할석 + 기와층을 다져 올렸다. 그 상단에서 2차 문지 바닥까지의 높이는 60~70㎝정도이다. 등성시설은‘ㄷ’자 형태로 통로부를 감싸고 있다. 상면의 높이는 성벽 상면과 일치하여 마치 내옹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 5단으로 구성된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상단은 남북 4.5m, 동 서 1.8m이며, 최하단은 남북 2.5m, 동서 1m이며, 높이는 70㎝이다. 각 단은 폭은 하단부터 20 → 15 → 10㎝ 등으로 점점 좁아지고 있고, 상단 2단은 들여쌓기를 하지 않았다. 통로부의 바닥은 할석과 점토를 다져서 축조하였다. 남문지의 경우는 바닥은 판석을 정연하게 깔아서 조성하였다. 그런데 동문지는 할석의 바른면을 위로 놓고 돌 사이사이에 는 점토를 채워서 바닥을 조성하여 비교적 조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남문지의 경우에는 성벽축조 당시부터 문지로 설계되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동문 지는 원래는 협축성벽이었던 곳을 성벽을 헐고 문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59.

(18) 반월산성 동문. 자미산성 북문. <그림 6> 반월산성 및 자미산성 성문. (8) 자미산성 북문 慈美山城은 평택시 안중면 덕우1리 산 77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慈美山(해발 110.8m)의 정상부를 따라 퇴뫼식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 길이는 582m이다. 현재 2차 발 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자미산성 북문지는 축조 후 1차례에 걸쳐서 개축되었다. 1차 문지는 통로부와 성 내측 내옹성이 존재한다. 2차 문지는 통로부에 해당하는 유구의 흔적이 유실된 상태이고, 성 내 측 등성(계단)시설과 문확석이 잔존하고 있었다. 1차 문지는 규모가 성문의 폭은(동서 폭) 4.25m, 문지 통로부의 남북 길이는 6m 정도로 추정된다. 양측벽의 높이는 1.5~2m 정도로 추정된다. 외벽바닥에서 통로부 바닥까지의 높이차는 4m 정도이다. 내옹성은 통로부 폭 4.25m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면서 2m 정도로 폭이 좁아진다. 통로부 측벽은 문지 통로부 길이 6m와 같았을 것이다. 추정 높이는 배수 로 상면에서 내옹성 상면까지 고려했을 때 높이 1.5~2m 정도이다. 통로부 바닥은 중앙부 하부에 배수로가 1기 설치될 것이다. 통로부 바닥상면은 얇은 판석 혹은 할석재로 상면의 편편한 면을 맞추어 부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석재와 석재의 빈틈은 잔석재 혹은 점토 를 가지고 메웠던 것으로 추측된다28). 문지의 외부는 1차 보축성벽이 축조되었다. 보축성 벽은 신라 석축산성 현문구조와 같이 문지 외벽 기단부에 덧대어 축조된 상태이다. 세장 방형 석재로 높이 0.8m 정도 높게 덧붙여 쌓았다.@@. 28)@바닥재가 할석재로 상면이 고르지 못하고, 통로부 바닥을 점토로 덧바르는 경우에는 기존의 성벽을 허물고 현문을 조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예는 충주산성 북문지와 문경 고모산성 남문지와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60. 제12호.

(19) <표 2> 신라 현문 현황표 遺蹟. 幅 (cm). 성문 바닥. 배수 시설. 등성 시설. 시설물. 성문관련 출토유물. 1. 고모산성 남문. 580. 부석. 무. 무. 문구부 석축, 석환무지, 내옹벽. 철정. 2. 고모산성 서문. 500. 부석. 무. 무. 문구부 석축, 석환무지, 내옹벽. 확쇠 2점, 철정. 3. 삼년산성 남문. 360. 부석. 무. 무. 문구부석축. 확쇠 1점, 철정. 4. 삼년산성 동문. 510. 부석. 무. 무. 내옹벽. * 무. 방벽시설, 집수시설. 5. 삼년산성 서문. *. 6. 충주산성 동문. 460. *. 유. 7. 충주산성 북문. 470. *. 무. 무. 8. 부모산성 북문. 450. *. 유. 유. 9. 대모산성 동문. 520. 석렬. 무. 무. 10. 대모산성 서문. 510. *. 유. 무. 유. 유. 500 11. 12 13. 14. 부석 모래. 문설주, 문초석. 확쇠 1점, 철정 내옹벽. 확쇠 1점, 鐵釘 확쇠 2점, 門確石. 내옹성, 판문, 성 밖 등성시설. 철이음쇠. 설성산성 서문 (1~3차). 내옹성, 문초석,. 400. 부석. 유. 유. 300. 부석. 무. 무. 계단시설. 반월산성 북문. 148. 부석. 무. 무. 문확석, 계단시설. 반월산성 동문. 390. 부석. 유. 무. 계단시설, 배수로. (1~2차). 390. 점토. 유. 무. 내옹벽. 자미산성 북문. 425. 부석. 유. 무. 내옹성, 배수로. (1~2차). 600. *. 유. 무. 계단시설, 배수로. 성 밖 등성시설. 철이음쇠. 축조 및 사용시기는 초축성벽보다 늦고 2차 문지보다 이른 시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6세기 중엽 이후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축조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차 문지는 계단시설의 규모로 보아 성문의 폭은(동서 폭) 6m 정도로 추정된다. 문지 통로부의 남북 길이는 7m 정도로 추정된다. 외벽바닥에서 통로부 바닥까지의 높이차는 4m 정도이다. 통로부 바닥을 계단의 북쪽 제 1단 높이에 맞춰 2차 문지의 측벽 높이를 복 원해 보면 1차 문지 측벽 높이와는 같은 1.5~2m 정도로 보인다. 계단시설은 북쪽이 좁은 사다리꼴 형태에 남북으로 이어지는 (추정)배수홈이 있다. 계 단시설의 규모는 동서 상단 폭이 600㎝, 하단 폭이 400㎝ 정도이고, 남북 폭은 330㎝ 정도 이다. 계단시설의 규모는 높이가 110㎝ 정도이고, 추정단수는 8~10단 정도이다. 2차 문지의 출입방법은 성외부의 보축성벽을 넘어, 남북 길이 4m의 통로부에 도달한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61.

(20) 통로부에서 계단시설을 올라가 문확석에 고정된 성문을 지나면 성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2차 문지의 축조 및 사용시기는 1차 문지를 찾기 위해 계단시설 석재를 제거하는 과정 에서 신라 고배편과 인화문 뚜껑 등의 신라토기와 바람개비문 막새와 연화문 막새가 출토 되었다. 그리고 2차 보축성벽 기저부 층에서 바람개비문 막새 및 신라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의 편년을 통해 보면 7세기 중엽에서 8세기 전반까지로 볼 수 있다.. 3) 시설물과 출토품 (1) 외부 시설물 - 등성시설 현문의 외부 출입시설은 당시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조선시대 전기 평안도도체찰사 김종서가 문종에게 아뢰기를 과거의 현문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그 사례 가 없어 축조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이르면 고대산성의 현문은 원형 및 기술적 전통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사된 외부시설물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 등성시설과 삼년산성 외 부 계단시설 등을 들 수 있다. 설성산성 문지 외부 등성시설은 사다리꼴을 반 자른 형태로 문지 전면 외벽에 붙여서 만들었는데 남쪽 진입로 쪽은 좁고, 낮으며 성문으로 오르는 부분은 넓고, 높은 형태를 하 고 있다. 축조방식을 살펴보면, 급경사 지역에 시설되어 밑으로부터 3단을 이루며 계단식 으로 줄어들고 있다. 내부에는 점토다짐층을 시설하고 그 바깥과 상면으로는 석재를 쌓아 가며 축조하였다. 1단과 2단은 사다리꼴이나 3단은 직사각형으로 폭은 약 3.5m이고, 길이 는 1차 문지 개구부의 폭과 같은 약 6m 정도로 추정된다. 등성시설의 축조시기는 1차 문 지와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등성시설의 점토다짐층은 암반층 상면에 시설되었으며, 여기. 설성산성 성문 바깥 등성시설. 고모산성 남문 바깥 보축성벽. <그림 7> 성문 외측 시설물. 62. 제12호.

(21) 에서는 신라토기나 기와는 출토되지 않고 백제토기편만 출토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축의 흔적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등성시설이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문지의 출입 방향은 등성시설 북쪽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의 경우 공 간이 좁고 급경사인 반면에 북쪽은 공간이 넓어서 출입시설을 축조할 수 있고, 경사도 완 만하기 때문이다. 현문 출입시설과 관련하여 등성시설 북쪽에서 출토된 기둥구멍이 주목 되지만 구체적인 형상이나 방법은 출토된 예가 없어서 추정하기 어렵다. 등성시설의 상면 이 좁은 것은 많은 병력이 동시에 올라서지 못하게 하여 방어상 이점을 유지하기 위한 조 치이다. 즉 다소 통행에 불편함이 따르더라도 방어력이 성벽에 비하여 취약한 성문을 강 화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2) 門道 - 통로부 문도(통로부)를 구성하는 유구는 문도 양 측벽 내부에 조성된 바닥시설과 문을 설치하 기 위한 문확석 및 보조석축이 있다. 그리고 문도 상면부에 조성된 문루를 들 수 있다.. ① 바닥시설 바닥시설은 판석형 석재를 깔아 조성하였고, 그 위에 점토를 덧바르고 통행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바닥 내부에 배수로가 조성되는 여부에 따라 2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배수로가조성되지않는경우는고모산성과삼년산성의성문을들수있다. 성안에서밖 으로자연경사면을이루고있으며, 敷石遺構의경사도를따라자연배수처리토록하고있다. 배수로를 설치하는 경우는 바닥 부석시설 하부에 조성하는 경우와 그 상면에 따로 설치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배수로의 위치는 측벽에 붙어 있거나, 배수로 중앙에 설 치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② 문구부 보조석축 성문 내부에서 고모산성 서문과 남문, 삼년산성 남문에서 開口部 내측 양단에 門口部 를 조성하기 위한 석축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이 석축은 양측벽 축조로 인하여 공간이 마 련된 개구부에, 측벽에 접하여 양측에 석축을 축조하여 문구부를 조성하기 위한 시설물로 추정된다. 즉. 石築 사이 공간부가 성문 축조시 통로부인 문구부이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63.

(22) <그림 8> 문경 고모산성 남문지 평면도 및 측벽 입면도. 64. 제12호.

(23) <그림 9> 문경 고모산성 남문 종·횡 단면도. 남문 문구부 석축. 서문 문구부 석축. <그림 10> 고모산성 문지내 문구부 석축 모습. ③ 문 구조 성문의 문짝 구조에서는 單扉式과 雙扉式, 內開式과 外開式, 현문에서 문짝을 오르내 리는 방식에서 設梯식과 展開式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성문의 신방석 이 기준이 된다면 本柱에 해당하는 長柱(원형, 방형)와 門楔柱(有無), 그리고 門扉柱(軸.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65.

(24) 柱)가 돌아가기 위한 확쇠(軸受 具, 혹은 凹凸 具, 華城에서의 靴 과 確 , 우리말의 확쇠와 박쇠)가 필요하고, 양측의 기둥사이를 연결하는 문지방이 석재, 혹은 목재로 되고, 거기에 수레바퀴가 통과하는(차철) 턱을 새기거나 끼웠다 빼었다 하는 장치까지를 고뇌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29). 이러한 여러 요소 가운데 어느 요소가 생략되느냐의 요건에 따른 구분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점차 성곽 문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된 다음에는 꼭 필요한 연구 과제이다.. <그림 11> 성문 문구조 모식도. ④ 문루 문지에 문루를 조성하는 목적은 구조상 아래를 멀리 조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출입의 통제와 감시 기능이 강화되며, 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문지는 열린 공간 이기 때문에 적의 집중공격을 받기 때문에 문루를 조성했다면 적의 화공을 막기 위해서는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29)@차용걸, 2008,^윗글_ , pp.64-65.. 66. 제12호.

(25)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30)에 사용된 산성 중 현문 구조에서 문루를 올렸던 유적은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 2차 문지와 충주산성 동문지 조사에서 문루를 조성했을 가능성에 대해 서 언급한 바가 있다. 삼년산성 서문지는 통로부 내에 문확석과 심방석이 설치되어 문루를 조성했던 유구는 통로부 내에 존재하였다.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도 통로부 내에 4매의 초석이 배치되어 있 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보면 문루를 구성했던 유구는 통로부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 인다31). 그러나 1차 문지는 통로부가 유실되어 문루를 조성했던 유구의 흔적을 찾을 수 없 었다. 문루의 유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1차 문지 통로부에 문루가 조성됐던 가능성 만 제시하게 한다. 현문구조에서 문루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로부 내에 문루의 기둥을 세웠 던 초석 등의 유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확석과 판문을 설치하였던 현문일 경우는 문루 의 조성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현문 통로부 양측벽 상면에 인방목재를 걸치고, 기 둥을 세울 자리에 조선시대 도성 문지건축과 같이‘井’처럼 대형석재로 육축한다면 측벽. 설성산성 문지 내 초석 및 철이음쇠. 삼년산성 서문. <그림 12> 설성산성 및 삼년산성 통로부 내 문루 시설. 30)@고구려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면 고구려 성곽 문에 문루를 올렸던 상황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성곽은 1937년 小泉顯夫 가 발견한 고구려 평양성 문지에서 문방 내측에 6매의 방형초석을 배치한 것을 확인 한 바 있다(成周鐸, 2002,d百濟城址 硏究e , 서울: 서경문화사, p.336). 신라의 성곽은 1980년 삼년산성 서문지 하층 유구에서 문확석과 측벽을 따라 심방석에 기둥을 올렸던 흔적을 확인함으로써 문지에 문루가 조성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제의 경우는 백제성곽으로 비정되 어지는 여수 고락산성과 광양 마로산성 등에서는 성문 측벽을 따라 목주혈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 목주혈이 문루의 기둥 구멍일 가능성도 있다. 31)@문확석과 판문을 설치하였던 현문일 경우는 문루의 조성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현문구조에서 문루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로부 내에 문루의 기둥을 세웠던 초석 등의 유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로부 양측벽 상면에 인방부재를 걸치고, 기둥을 세울 자리를 조선시대 도성 문지건축과 같이‘井’ 처럼 대형석재로 육축한다면 가능한 구조라고 생각된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67.

(26) 이 문루의 기초시설로써 사용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러나 조사 사례가 없기 때문에 차후 현문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된다면 문루에 대한 성격도 밝혀지리라 생각된다.. 단. 면. 도. <그림 13> 삼년산성 서문 평면도. (3) 내부 시설물 문지에서 성안으로 진입하는 부분에 설치되는 시설물에는 내옹성과 계단시설, 차단벽 을 들 수 있다. 그 기능은 성 안으로의 통행을 유도하거나 차단하는 시설과 더불어 성 안 의 우수로부터 문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① 내옹성 내옹성은 문지 통로부 한쪽 측벽과 연결되어 문지 통로부를 안에서 감싸듯이 활처럼 휘어지게 축조되었다. 그 기능은 성안으로 진입하는 적을 虎口처럼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 의 기능이 큰 것으로 보여진다. 고모산성 남문지와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 평택 자미산성 북문지, 망이산성 서문지에서 확인되었다. 잔존상태가 양호한 설성산성 서문지의 내옹성 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옹성은 잔존 길이가 9m, 최고 높이 110㎝, 최고 6단 정도가 남아 있다. 시작부분(북측. 68. 제12호.

(27) 벽 쪽)은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나 중간 부분부터는 붕괴가 심하고 겨우 기단열만 남 아 있다. 더구나 끝 부분은 기단열도 유실되었고 기단을 올려놓기 위해 다졌던 흔적만 토 층에서 확인될 뿐이다. 옹성 뒤쪽에서는 주공이 열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암반층을 원형으로 굴착하였는데 옹 성의 진행 방향과 평행을 이루며 문지 북쪽의 내벽 전면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평균 지름이 26㎝, 깊이는 18㎝ 정도이고 옹성 뒤쪽은 약 4m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 나 내벽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면 주공의 간격은 1.3m로 좁아지고 있었다. 이 주공열의 용도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주공열이 내벽이나 옹성에서 상당한 거 리를 두고 진행하고 있어서 성벽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곳이 문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① 서문지 방어와 관련된 시설이 설치되었던 흔적 ② 서문지 출입과 관련된 어떤 시설과 관련될 가능성 ③ 내성벽이나 옹성 축조와 관련된 기둥구멍 등을 추정하여 볼 수 있다. ①과 ②의 경우에는 내옹성과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③의 경우가 주목되는데, 주공의 위치로 보아 성벽을 축조하기 위하여 기둥을 세운 흔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벽 전면에 점토가 채워져 있었고, 내옹성 뒤채움도 점토로 축조되었기 때문에 점토를 다져 올리기 위하여 기둥을 세웠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② 계단시설 계단시설은 문지 통로부에서 성안으로 진입하는 시설물로 반월산성 북문지와 동문지, 설성산성 서문지 3차 문지, 자미산성 북문지 2차 문지에서 확인되었다. 포천 반월산성 북문지에서 바닥석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모두 5단의 계단석이 확인되 었다. 설성산성 서문지 3차 문지의 경우 2차 문지 입구(내벽 쪽)에는 2단의 석렬이 계단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폭 약 20㎝ 정도였다. 자미산성 북문지 2차 문지 계단시설은 북 쪽이 좁은 사다리꼴 형태이며, 가운데에 남북으로 이어지는 (추정)배수홈이 있어 여길 중 심으로 좌우대칭 되고 있다. 계단시설의 범위는 동서 상단 폭이 600㎝, 하단 폭이 400㎝ 정 도이고, 남북 폭은 330㎝ 정도이다. 계단시설의 규모는 높이가 110㎝ 정도이고, 추정단수 는 8~10단 정도이다. 각 단은 남쪽이 둥글게 돌출한 반원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계단시설 은 다른 유적보다 규모가 크고, 형태면에서 가운데에 배수로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대체로 내옹성 상면에 조성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내옹성이 사용되는 문지보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69.

(28) 후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방어적 측면에서 보면 내옹성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문지의 변천과정과 산성의 활용문제를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③ 차단벽 문지의 내측부를 폐쇄했다는 점은 문지의 방어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차단벽은 계단식 구조와 옹벽식 구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계단식 구조는 반월산성 동문지 2차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차 문지는 문지 외. 고모산성 남문 옹벽. 고모산성 서문 계단시설. 자미산성 북문 1차 내옹성. 자미산성 북문 2차 계단시설. 부모산성 북문 옹벽. 망이산성 내측 옹벽. <그림 14> 성문 내부시설물 모습. 70. 제12호.

(29) 부 바닥과 통로부 바닥의 차이가 줄어들어 방어상 취약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 으로 내부에 옹성과 같이 통로부를 봉쇄하는 등성시설 마련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등성 시설은‘ㄷ’자 형태로 통로부를 감싸고 있다. 상면의 높이는 성벽 상면과 일치하여 마치 내옹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 5단으로 구성된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상단 은 남북 4.5m, 동서 1.8m이며, 최하단은 남북 2.5m, 동서 1m이며, 높이는 70㎝이다. 사용 된 석재는 화강암과 편마암 등으로 성벽을 축조한 석재와 석질 및 크기가 유사하다. 장방 형으로 면과 모를 다듬어 틈이 없이 정교하게 축조하였다. 상단의 석재는 화강암재를 다 듬어 사용하였으며, 하단은 편마암계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편마암계의 석재는 1차 문지 의 출입시설인 계단을 구성한 석재처럼 앞면만 다듬은 석재들이 있다. 이것들은 계단에 사용된 석재를 재사용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각 단은 폭은 하단부터 20 → 15 → 10㎝ 등 으로 점점 좁아지고 있고, 상단 2단은 들여쌓기를 하지 않았다. 단의 폭이 실제 오르내리 기에 불편할 정도로 좁은 것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된 석재의 크 기는 46×13㎝ 66×13㎝, 51×21㎝ 등으로 비교적 고른 편이다. 옹벽식 구조는 충주산성 동문지에서 확인된다. 동문지 성 안쪽에 집수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문지 바닥에는 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문지가 조성된 위치가 곡부 혹은 산성 내에서 지형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했을 경우로 옹벽이 우수에 의해 성 내부 토사가 침식되어 문 지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충주산성 동문지와 같은 입지조건일 경우 통로부 내측을 폐쇄한 옹벽은 우수와 침식된 토사로부터 문지를 보 호하기 위한 기능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4) 출토품 ① 문확석 백제 고락산성 등에서는 성문 측벽을 따라 木柱穴이 확인되고 있으며, 고구려 환도산 성과 국내성 성문에서는 성문 측면 기단열에 방형구멍과 원형구멍이 있는 문확석이 각각 별개의 석재로 발견되고 있다. 또한 일본 고대 산성에서는 성문 기저부에 평면 ㄷ자형을 이루는 석재가 있어 掘立柱 및 門柱를 세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신라 성문 내부에 서 회전축에 사용된 철제품인 확쇠가 출토되고 있으나, 이와 관련하여 유실 및 훼손여부 를 감안하더라도 대모산성과 삼년산성 서문지를 제외한 유적에서는 門確石 및 門礎石 등 성문 관련 석재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모산성 서문과 남문은 완전하게 성문 기저부 바닥층이 노출되었으며, 서문에서는 원.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71.

(30) 위치로 추정되는 확쇠가 출토된 바 있으나 성문 관련 석재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서문 바닥 상면으로 소토층이 확인되고 있어 성문이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음을 추정케하는 데 문확석 등을 인위적으로 후대에 사용하기 위하여 탈락시킨 현상은 찾아 볼 수 없다.@@ ② 확쇠 확쇠는 성문의 기둥을 고정시키고 문을 열고 닫을 때 원활한 움직임을 주기 위해 사용 되었다. 古代城郭 城門에서 확인되는 확쇠는 위 확쇠와 아래 확쇠가 결합되는 형태의 암 수 1조로 나타나고 위 확쇠는 上部로 진행할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는 圓錐形인데 이 는 기둥을 세우는데 있어 그 무게중심을 중앙부로 이동시키고 下部는 넓게 하여 어느 정 도 안정적인 모습을 취하도록 하고 있다. 아래 확쇠의 상부는 위 확쇠와 연결되어 원활한 움직임을 주고 하부는 돌이나 나무 등을 이용하여 고정하기 위해 方形 또는 圓形의 형태 를 띠고 있다. 이러한 성문의 기초부를 이루는데 사용되었던 확쇠는 성문의 규모와 구조 를 밝힐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확쇠가 국내의 고대산성에서 출토된 곳으로는 聞慶 姑母山城 西門址에서 2기, 報恩 三 年山城 南門址, 淸州 父母山城. 門址, 忠州 忠州山城. 門址에서 각각 1기가 수습되었고. 楊州 大母山城 東門址에서는 아래 확쇠를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던 門確石에 연결된 모습으로 확인되었다. 국내 古代山城에서 출토되었던 확쇠는 모두 懸門式을 갖추고 있는 신라의 산성에서만 출토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각각의 세부적인 모습을 비교하였을 때, 서로 차이점을 보 이고 있다. 그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래 확쇠의 하부 平斷面 모습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모산성과 삼년산성은 평 단면이 원형이지만 이 외의 지역에서 확인되는 형태는 방형이다. 양주 대모산성의 경우는 아 래 확쇠가 주초석에 고정되어 있어 정확한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없으나 이와 연결되었던 주초석위에 장방형의 홈이 확인되고 있어 그 형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아래 확쇠를 돌 이나 나무 등의 주초위에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원형과 방형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둘째, 아래 확쇠의 外面에 보이는 돌기의 존재여부다. 돌이나 나무 등의 주초위에 아래 확쇠를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원형보다는 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 형은 네모서리가 角을 이루고 있어 움직임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면에 원형은 둥글기 때문에 움직임이 심하여 버팀목의 역할을 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4면에 돌기부를 마련하여 방형의 네모서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고정시킬 수 있게 고안. 72. 제12호.

(31) 되도록 한 것이다. 고모산성과 삼년산성의 경우가 원형의 아래 확쇠에 돌기부를 마련하였다. 셋째, 아래 확쇠를 고정시키기 위한 주초의 재료로 크게 돌과 나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양주 대모산성의 門確石만이 확인된 상태로 석재를 이용하였고 확구멍을 내어 고정시켜 결구하였다. 이와 비슷한 아래 확쇠의 형태를 띠고 있는 부모산성과 충주 산성 또한 석재를 주초로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모산성과 삼년산성의 아래 확쇠는 원형의 돌기부를 조성한 형태를 띠고 있어 아래 고정 확의 재료가 나무였을 가능 성이 높다. 즉, 원형의 홈을 만든 이후에 각 4면에 돌기부와 연결되어 고정할 수 있도록 쉽 게 만들 수 있는 재료로는 목재가 석재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산성 발 굴조사를 통해 원형 구멍을 가지고 있는 문확석은 있지만 그 안에 확쇠의 돌기부가 들어 앉아 연결될 수 있도록 마련된 문확석은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以上 차이점으로 볼 때 고모산성과 삼년산성의 확쇠는 부모산성, 충주산성의 출토품과 형태를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모산성의 확쇠와 함께 수습된 원형 철판은 위 확쇠와 아래 확쇠의 연결 부분 주위에서 이를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노출되었다. <표 3> 新. 古代山城 出土 확쇠 재원(단위:㎝). 名稱. 잔존 길이. 위확쇠 直徑(最大). 아래확쇠 直徑(最大). 위확쇠 돌기. 아래확쇠 돌기. 고모산성 1. 21.5. 11.6. 7.4. 4개. 4개. 고모산성 2. 20.5. 11.9. 7.8. 4개. 4개. 삼년산성. 25.7. 10.7. 8.3. 4개. 4개. 부모산성. 23.5. 9.4. 6.0. 4개. 無. 충주산성. 20.0. 14.5. 5.7. 4개. 無. 대모산성. 11.4. 12.2. 5개. 無(?). 고모산성 출토 확쇠. 부모산성 출토 확쇠. <그림 15> 성문 출토 확쇠.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73.

(32) ③ 철 이음쇠 현문에서는 통로부에 문짝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실물이 남아 있는 사례가 없다. 다 만 문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음쇠가 삼년산성 남문지, 부모산성 북문지, 충 주산성 북문지, 문경 고모산성 서문지,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 평택 자미산성 북문지에서 출토되었다. 이음쇠와 문확쇠가 동반하여 출토된 경우는 삼년상성과 부모산성, 충주산성, 문경 고모산성 등이다. 이음쇠는 양쪽 끝에 방형의 철판을 끼워 고정시킨 형태이다. 형태는 철제막대의 양쪽 끝을 철판이 빠지지 않도록 방형으로 마감한 형태이다. 이음쇠는 12~15cm, 18~20cm 정 도의 2 종류가 출토되었다. 소형의 경우는 판문을 제작할 때에 사용되고, 대형의 경우는 판문을 문설주에 연결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음쇠가 출토된 위치를 통해 문의 위치를 추정해 보면 자미산성 북문지와 설성산성 서문지 판문은 성 내측부에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3. 현문 구조 및 변천과정 현문은 그 구조와 내부 시설물을 바탕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표 4> 현문 구조 형식분류 형식. 구조. 유적 삼년산성 북문과 남문, 고모산성 서문과 남문33), 충주산성 북문,. 1형식32). 현문구조 + 문확석 혹은 문 확쇠. 2형식. 현문구조 + 내옹성. 고모산성 남문, 충주산성 북문, 설성산성 서문지 1, 2차 문지. 3형식. 현문구조 + 내측 계단구조. 반월산성 북문지34), 설성산성 서문지 3차 문지, 전주 동고산성. 4형식. 현문구조 + 내측 폐쇄구조. 충주산성 동문, 반월산성 동문지. 청주 부모산성 북문, 대모산성 동문 등. 32)@①형식은 문확석에 확쇠를 설치하거나 혹은 통로부 바닥에 나무로 문 인방을 조성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형식은 현문의 통로부(=門道)에 해당되는 부분의 일반적인 구조로 보인다. 33)@문경 고모산성 서문지와 남문지 현황표 34)@강남대학교 한국학연구소,d포천 반월산성지표조사보고서e , 1995. 단국대학교 문과대 사학과,d포천 반월산성 1차 발굴조사보고서e , 1996. __________________________,d포천 반월산성 2차 발굴조사보고서e , 1997. __________________________,d포천 반월산성 3차 발굴조사보고서e , 1998.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d포천 반월산성 4차 발굴조사보고서e , 1999.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d포천 반월산성 5차 발굴조사보고서e , 200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d포천 반월산성 6차 발굴조사보고서e , 20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d포천 반월산성 -종합보고서(Ⅰ·Ⅱ)-e , 200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d포천 반월산성 동벽 정비구간 발굴조사보고서e , 2005.. 74. 제12호.

(33) 앞서 소개한 현문 중 자미산성 북문지와 이천 설성산성 서문지를 통해 보면 2형식이 3형식 구조보다 선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천 반원산성 동문지를 통해 보면 3형식이 4형식보다 유구 조성 순서 상 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35). 1과 2형식은 고모산성 남문과 같이 5~6세기경에 소백산맥 이남에서 축조되었다. 그 후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이후인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는 충주산성, 이천 설성산성, 자미산성 등 소백산맥 이북에서 당항성으로 이어지는 대당교역선상에서 축조된 것으로 보여진다. 3형식은 7세기 중엽에서 8세기 전반 경에 포천 반월산성 북문지와 동문지 1차 문지, 이천 설성산성 2차 문지, 전주 동고산성에서 축조되었다. 그리고 2형식보다 넓은 범 위에서 확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時期에 따른 懸門의 變化樣相과 特徵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5~6세기경에 축성된 고모산성과 삼년산성의 성문 내부의 基底部 바닥시설은 板 石形 石材를 이용하여 정연하게 맞물리게 하여 平坦面의 敷石施設을 조성하였다. 성문 내 施設物로는 開口部 내 側壁에 접하여 石築을 축조하여 門口部를 조성하였음이 확인된다. 기저부에 따로 排水施設은 조성하지 않고 경사에 따라 배수처리를 하였다. 出土된 확쇠는 上下 모두 4개의 돌기를 갖춘 圓錐形으로 石材보다는 木材에 結構하였던 것으로 推定된다. 둘째, 6~7세기경에 축성된 충주산성과 부모산성 북문은 기저부 바닥시설에서 부석시 설은 확인되지 않으며, 排水 가 조성되고 있어 시기에 따른 변화상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한 성문 기저부는 평탄면을 조성하기 위하여 판석형 석재들을 이용하여 맞물리게 조성한 것이 아니라, 경사면 또는 층단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출토 확쇠에 서는 상하단부가 다른 형태를 보인다. 하단부는 방형으로 돌기가 없으며, 방형 확이 조성 된 門確石에 결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통일기에 성문이 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모산성은 성문 기저부면에 전체적으 로 부석시설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횡방향 석렬을 놓아 바닥층을 조성하였다.. Ⅲ. 현문 조사연구 방법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 발굴현장에서 이루어져 온 통상적인 작업순서에 따라 고대 석축. 35)@포천 반월산성의 경우 통일신라 북변에 해당하고, 패강진 설치 및 발해와의 긴장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유적이다. 따라서 반월산성 동문지의 내부 시설물은 유동적으로 변화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古代 石築山城 懸門 調査硏究. 7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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