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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마법의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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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법의 언어가 된‘경제민주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당(黨)이 있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이 당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Ministry of Peace), 사상범죄 를 포함한 모든 범죄를 관리하는 ‘애정부’(Ministry of Love), 매일 같이 배급량 감 소만을 발표하는 ‘풍요부’(Ministry of Plenty), 모든 정보를 통제, 조작하는 ‘진리 부’(Ministry of truth)로 구성되어 있다. 조지 오웰은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

에서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사랑의 이름으로 고문’을, ‘풍요의 이름으로 배급’

을, ‘진리의 이름으로 통제와 조작’을 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허구성을 언어의 이중 적 사용과 혼란에서 찾았다. 언어의 본래 의미가 극도로 왜곡되는 세상을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이다. 공자도 ‘정명론’을 통해 이름과 실재가 일 치하지 않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세상의 혼란을 경고하였다.

세상의 혼란은 언어의 혼란에서 시작된다. 어지러운 세상에선 좋은 말이 난무하 지만, 도대체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 이 혼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의 혼란이 언어의 혼란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 에 실행되어 재앙을 초래한다. 정치권의 권력자들이 최근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시 작한 이런 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는 △재벌 개혁, △중소기업 적합 업종 확대 △순환출자금지 △금산분리 강화 △재벌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 해배상제도 확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 △재벌세 도입 △경제 범죄 총수의 경영권 제한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대주주 일가에 증여세 또는 상속세 부과 △ 배임죄 특례 신설 △공평과세와 책임담세 △시장경제 질서 확립 △소상공인 지원 강화 △조세정의의 실현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조세 개혁 △중소기업과 자영업 자의 이익 보장 △금융기관 제대로 감독 △가계부채 경감, 서민생활비 부담 경감

‘경제민주화’는 마법의 언어인가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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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복지농정 기반 마련 △식량안보확보 △지주회사 요건 강화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횡령·배임 등 기업범죄시 대주주·이사 자격 제한 △연기금 주주권 행사로 시 장의 공적기능 보완 △내부자 감시(노동자 경영참가)로 민주적 경영 실현 △공정거 래위원회 독립성 강화 및 불공정거래 근절 △초과이익 공유제 및 원청의 하도급 이 행보증보험 의무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확대 및 입점 허가제 도입 등 온갖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관점을 달리하여 경제민주화에 ▲공정경쟁 ▲기회균 등 ▲소비자 주권론 ▲경제활동의 자유를 포함시키는 학자들도 있다. ‘경제민주화’

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언어, ‘마법의 정책’을 이끌어 내는 산실이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계통을 세우기 어려운 여러 가지 것들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민주주의’는 성스러운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우리가 성취해야 할 역사적 과제로 설정하는 것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드디어 1987년,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함으로써 과제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 각에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추가로 달성해야 할 역사적 과제 로 설정하고 모든 부분에서 민주화를 주장하였다.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갈망해온 나머지 그것이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 의’라는 말이 들어가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습 관’이 형성되었고,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이러한 ‘마음의 습관’에 승차하고 있는 것이다.

2.‘경제민주화’와 전체주의

‘경제민주화’를 이 말의 본뜻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 로버트 달, 김형기, 김상봉, 유종일을 예로 들 수 있다. 로버트 달의 ‘경제민주화’는 ‘자치 기업 (self-governing enterprise)’의 이념을 따른 것이다. 달의 ‘자치 기업’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업을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기업이다.

기업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이 1인 1표를 행사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완전히 평등하게 기업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 려면 기업이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으로 소유되어져야 한다.

김형기는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는 소수의 수중에 있는 경제력 집 중이 해소되고, 경제적 의사결정에 다수가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력을 보다 많 은 경제 주체에게로 분산시키고,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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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직접적으로 혹은 대의기구를 통해 경제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경제민주 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불안정성과 불평등성을 가지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과 시민사회의 민주적 통제는 경제민주주의의 필수적 과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상봉도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장 을 노동자가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주식회사는 원래 주인이 없는 기 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들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일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주식회사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 서 선임한다.’는 조항을 상법에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유종일은 ‘민주적 시장경제’(경제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평등 이념을 시장경제 의 틀 안에서 구현한 경제”로 정의한다. 곧 민주적 시장경제(‘경제민주화’)는 경제 적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평등’은 기회의 평등, 분배의 평등, (경영) 의사 결정 참여의 평등, 소유의 평등이다. 여기서 핵심은 소유 의 평등이다. 그는 “(소유의 평등은) 사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쟁과 가격 기구에 의한 자원 배분이라는 시장경제의 틀은 유지하지만, 자본을 소유하는 소수 자본가들이 기업을 지배하고 사회적인 의사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지하여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소유의 평등까지 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경제 민주화’ 정신에 입각하여 새로운 기업을 창건하면, 소유의 평등을 이 룰 수도 있다. 기업을 창건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액수를 투자하여 기업을 설 립하면 된다. 그러나 기존의 기업은 이미 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주식을 사지 않는 한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업을 대상으로 경제 민주화를 실행하려면, 소유의 평등을 이룩하려면, 그 수단은 무엇인가?

소유의 평등은 사유재산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 서 모든 부와 재산과 재화는 어느 누구인가의 소유이다. 개인 소유든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의 소유든 소유주가 없는 부와 재산과 재화는 없다. 소유의 평등을 위해 서는 이 모든 것을 빼앗아 다시 분배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 나면 부의 불평등이 발생할 것이고 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시행할 수 있는 국가는 이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전체주의 국가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의 정치 논리인 참여와 권력의 분산을 경제 영역에 적용하려는 ‘경제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 국가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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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종일은 민주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 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확보하 기 위해서 ‘사유재산’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3. 경제민주화와 르상티망

‘경제민주화’에 대한 최근의 정치적 담론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나 시기심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는 ‘재벌 개혁’이나 ‘부자 증세’는 ‘로빈후드 프로젝트’ 같은 의 미를 풍긴다. 경제적 승자의 지위나 재산·소득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권력의 힘으로 재조정하거나 세금을 통해 빼앗는 것은 정의롭다는 생각이다. 국가 가 재벌을 개혁하거나 부자에게서 세금으로 부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경제적 승자 의 부당한 지위나 부를 국가 권력으로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시정적 정의’(是正 的 正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시정적 정의의 배후에 는 원한과 분노, 증오와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작동할 여지가 많다.

경제민주화가 표방하고 있는 ‘사회 정의’가 아무리 고고한 도덕적 이상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도덕적 심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참으로 정의로울 수 없다.

개인의 윤리적·도덕적 동기가 작동하지 않는 로빈후드 방식으로는 올바른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 복지는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정치 철학적 대의명분보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개인의 도덕적 감정에 기반 을 둘 때 더 바람직하다. 니체도 지적하였듯이 ‘원한(ressentiment)’은 자아가 참다 운 자기다움을 상실하였을 때의 감정이다. ‘자기 자신을 정정당당하게 긍정하는 고 귀한 도덕’, 시민들이 가진 ‘근원적 도덕의식’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 적 담론이 이런 의식과 맞닿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다운 삶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4. 시민들의 판단에 거는 기대

다행스럽게도 정치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자들에게 ‘복지보다 성장, 경제 민주화보다 일자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현대경제연구원) 결과 가 있다. “대선 후보들이 성장과 복지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나”라는 질문 에 ‘선(先) 성장, 후(後) 복지’라고 응답한 사람이 41.9%, ‘선 복지, 후 성장’ 응답 이 13.7%, ‘성장과 복지의 균형’ 응답률은 44.3%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적어도 복 지를 위해서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선 후보들이 어떤 정책에 중점을 두어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물가 안정’이 36.0%, ‘일자리 창출’

이 32.3%, ‘경제 민주화’가 12.8%, ‘복지 확대’가 6.7% 등의 순으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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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사 결과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상충하는 것이다. 이미 새누리당 이 국회에 제출한 여러 개의 ‘경제민주화’ 법안의 법제화가 성장과 일자리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민주화’ 정책의 대부분은 “개발독재시대에 공고화된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적 활력과 공정성 면에서 정당화되기 어렵 고,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무수한 모순과 갈등,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재벌 체제의 본질은 “단지 그 규 모의 방대함에 있지 않고 정치적ㆍ경제적 권력의 독점을 통한 전 사회의 독재적 지 배에 있다.”라는 주장도 근거 없는 독단에 불과하다. ‘경제력 집중’과 ‘정치력 집중’

은 범주가 다른 집중이다. 정치력 집중은 시민들의 자유를 위협하지만, ‘경제력 집 중’은 이와 무관하다.

‘경제민주화’가 설정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실제의 문제인지, 아니면 문 제가 아님에도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였는지, 문제라면 올 바른 문제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실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려면,

‘경제민주화’와 같은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총체적 개념이 아니라, 문제 하나하나 에 접근하여 논의를 활성화하는 ‘방법론적 개체론’을 선택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경제민주화’의 목적이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라면,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을 버리고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라는 이름으로 이것들의 정당성을 합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경 제민주화’라는 이름의 後光에 압도되어,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가 당연시되면서 이에 대한 합리적 토론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어려 운 경제 현실을 도외시하고 오직 ‘집중보다 분산’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윤리 적 판단에 기초하여 ‘재벌 개혁’이나 ‘양극화 해소’를 정책화하면, 목적 달성은 고사 하고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도대체 정치권력이 무슨 근거로 어떤 도덕적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 성하기 위해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공론 의 場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현재 우리 사회의 논의는 정치적 이익이 무 겁게 담겨 있어 합리성과 개방성이 결핍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논의하 는 전문가나 정치인의 비판적 지성과 도덕성, 책임감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꾸리에, 2012.

김형기, “경제 민주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한국선진화 포럼 제65차 월례토론회 토론문, 2012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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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섭,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 2012 대한민국에의 시사점, 이념ㆍ철학적 측면”, 2012 KERI 정책토론회, 한국경제연구원, 2012년 6월 4일.

신중섭, “경제민주화’ : 경제에 도덕의 자리가 있는가”, 『철학과 현실』, 94집, 2012년 여름호.

유종일, 『진보 경제학』, 모티브북, 2012.

조원희, “경제민주화와 경제체제 개혁 구상”,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39가지 개혁 과제』, 참여사회연구소 편, 푸른숲, 199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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