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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세와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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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s

精 神 精 神 分 析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 精 神 分 析 分 析 分 析 : : 第 第 11 卷 卷 第 第 2 號 號 2 0 0 0

Vol. 11, No. 2, page 300~315, 2 0 0 0

아자세와 오이디푸스

李 炳 郁

*

Ajase and Oedipus

Byung-Wook Lee, M.D.*

序 論

정신분석이론에서 세인들에 의해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 었던 주제는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다. 프로이트는 소 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에 나타난 부친살해와 근친 상간이라는 주제로부터 영감을 받아 오이디푸스라는 용어를 차용하였다. 반면에 일본의 분석가 고자와 헤이사쿠(古澤平 作)는 불교설화에서 힌트를 얻어 아자세 콤플렉스라는 개념 을 주장함으로서 자신의 이론적 독창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고자와의 阿門

世 콤플렉스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로 일 본 정신분석학계에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 국제적으로는 그 이론적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한 형편에 있다. 물론 그 런 사정의 이면에는 동서간의 문화적, 언어적, 종교적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통이론과의 사이 에 메꾸기 어려운 간격 같은 것이 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론적 차원을 떠나 작품 자체의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오이디푸스왕의 주제가 본의 아닌 父親殺害와 近親相 姦으로 인하여 비극적 운명을 맞게된 저주받은 왕가의 몰락 이 주된 테마라고 한다면 아자세왕의 주제는 전생의 원한으 로 인한 父親殺害와 母親殺害 그리고 佛法에 의한 구제가 주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동서양을 불 문하고 부친살해라는 주제는 공통적으로 언급된데 반하여 근친상간의 주제는 주로 서양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동양에 서는 오히려 모친살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흥미 롭다. 근친상간이라는 말은 특히 동양사회에서는 입에 올리 는 일조차 몹시 꺼릴 정도로 금기시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근 친상간 운운 하느니 차라리 모친살해 쪽이 차라리 정서적인

부담이 적은 게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서구인들에 비하여 동양인들은 모자간의 정서적 유착이 더욱 공고하기 때문이 며 그러한 유착관계를 근친상간적 개념으로 상정한다는 것 은 너무도 충격적이며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오 히려 그러한 개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럴 바엔 차라 리 모친살해 쪽이 좀 더 마음에 편히 받아드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러한 용어가 선택된 게 아닐까 한다. 자신의 친 모를 범한다는 것은 살인보다 더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절개를 강조한 동양의 여인들은 치 한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경우에도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고 요구할 정도로 수치심을 두려워하였으며, 또한 강제로 몸이 더럽혀진 후에 자살을 시도한 여인들도 많았다. 그러한 전 통 속에 살아온 동양사회에서 근친상간이라는 말은 둘도 없 는 모욕이요 상말이었다. 수 천년 동안 내려온 욕설 중에서 가장 심하고 상스러운 욕은 근친상간적 내용을 뜻하는 욕설 이었다.

고자와의 모친살해 욕망에 근거한 아자세 콤플렉스가 과 연 보편적 이론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인 만의 독특한 문화심리적 현상에 불과한 것인지의 여부는 여 기서 논할 수 있는 성질이 못된다. 다만 이 자리에서 논하고 자 하는 바는 아자세왕과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적 드라마를 비교하면서 거기에서 도출된 이론적 배경과 차이를 검증해 보는데 의미를 두었을 뿐이다. 阿門

世의 梵名은 아자타샤트 루(Ajatasatru)이며 우리말로는 아사세로 발음되지만 고자 와가 이미 오래 전에 아자세(Ajase)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바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르기로 한다.

오이디푸스왕의 悲劇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왕위를 빼앗긴 후, 다른 나라로 피 신하여 그 곳의 왕자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살아간 다. 그러던 중 왕자에 대한 동성애적 요구 때문에 시비가 벌

*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校室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ver-

si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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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301 어져 결국 그를 죽이고 만다. 왕자는 죽으면서 라이우스에

게 저주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나중에 그가 자신의 아들 손 에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이었다. 왕위를 되찾은 라이우스는 인척관계인 이오카스타와 결혼하게 된다. 델피의 신탁을 통 하여 아폴로신은 라이우스왕이 자신의 아들에 의해 죽게될 것이며 그 아들은 어머니를 아내로 삼으리라는 무서운 내용 의 운명을 예언한다. 라이우스는 두려운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갓 출생한 아들의 복사뼈에 쇠못을 찔러 손발을 묶은 채로 산속에 내버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마침 코린트 왕 국의 한 목동이 아기를 발견하여 자기 나라 왕에게 데려갔 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그는 코린트 왕가에서 무럭 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어느날 술에 취한 늙은 신하 한사람이 오이디푸스에게 무심코 그가 주워온 아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오 이디푸스는 자기의 출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신탁을 의뢰하 지만 출생에 대한 사실은 얻지 못하고 단지 그가 부친을 살 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게된다는 신탁만이 내려진다. 오 이디푸스는 그러한 끔찍스런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그동안 친부모로 알고 자란 양부모를 떠나 방랑생활을 하던 중에 우연히 마주친 라이우스왕 일행과 사소한 시비가 벌어졌는 데 서로 부자지간임을 알지 못한 채 오이디푸스가 라이우스 를 포함한 일행 모두를 살해하고 말았다. 당시 테베에는 몸 은 사자이면서 여자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 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마침 과부가 된 이오카스타 왕비가 스핑크스를 퇴치하는 자는 왕으로 추대하여 모시겠 다는 포고문을 내렸다. 테베로 향하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 스를 만나 괴물이 낸 수수께끼를 간단히 풀고 약속대로 테 베의 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오카스타와 결혼하여 2남 2녀까지 낳았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평화롭던 나라에 무서운 기근과 전염병이 돌면서 수많은 백 성들이 죽어가게되자 왕은 델피의 신전에 신탁을 의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탁의 내용은 죽은 라이우스왕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처단해야만 재앙이 멈추리라는 것이었다. 때마 침 오이디푸스가 그동안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던 코린트의 왕이 죽었으니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라는 전갈이 오게되자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내려졌던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그는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예언가에게 범인을 찾아내라고 명하 지만 예언가는 처음에는 답하기를 거부하다가 계속 그가 다 그치자 할 수 없이 바로 오이디푸스 자신이 범인이라고 고 백한다. 이에 받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이오카스타가 방 으로 달려가 자살하자 왕은 그녀의 곁에서 자신의 두눈을 찌르고 소경이 된 채 어린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테베

를 떠나 비참한 방랑생활로 들어간다(황문수 1998). Freud (1900)를 감동시킨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을 그는 꿈의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오이디푸스 왕의 운명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에게 내린 저주가 우리에게도 역시 태 어나기 전부터 내려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 와 똑같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 닌 최초의 성적 욕망의 대상은 어머니이며, 최초의 증오의 대상, 죽여버리고 싶은 대상은 아버지라는 운명을 우리도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우리들의 꿈이 이 사실을 명확히 보 여준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면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던 것이다. 또한 프 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증거를 소포클레스의 비극 에서 찾은 게 아니라 인간이 처한 운명적 비극의 단서를 오 이디푸스의 삶에서 발견한 것이라 하겠다.

王舍城의 悲劇

왕사성은 고대 인도의 강국인 마가다 왕국의 수도 라자그 리하(Rajagriha)를 말하며 현재는 네팔에 인접한 비하르 州 에 속한 라지기르(Rajgir)市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劉宋시 대에 서역인 카라야사스(Kalayasas 畺良耶舍)가 한역한 觀 無量壽經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觀經중의 하나이다.

무량수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관무량수경에서 전하는 왕사 성의 비극은 다음과 같은 배경을 지니고 시작되었다. 고대 인도에는 카필라 왕국과 마가다 왕국이라는 두 개의 왕국이 강성한 국력을 자랑하며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카필라 왕국의 정반왕과 마가다 왕국의 빔비사라왕 두 사람 모두 대를 이을 왕손이 없어 노심초사하던 중에 때마침 정반왕의 왕비였던 마야부인이 왕자를 출산하자마자 곧 죽고 말았다.

그 왕자는 후에 출가하여 해탈함으로서 부처가 되었는데 그 가 바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다. 경쟁상대의 득남 소식 에 빔비사라(Bimbisara)왕은 더욱 초조감을 느끼게 되었으 며 왕비인 바이데히(Vaidehi, 韋提希:고자와의 이다이께 Idaike는 漢譯의 일본식 발음) 부인도 마음이 불편하긴 마 찬가지였다. 왕은 유명한 점술가들을 불러 자문을 구한 바, 산중에 수도 중인 현자가 곧 입적하게되면 그가 왕자로 환 생하여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왕은 지체없이 그 현 자를 찾아가 언제쯤 그가 죽게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 답은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탐욕에 눈이 어두 워진 왕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순 없다고 생각하여 부하를 시켜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현자는 죽어가면서 내가 왕자 로 환생하면 반드시 원수를 갚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후 바이데히 왕비는 임신을 하게 되었으나 현자의 저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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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세와 오이디푸스

302

마음에 걸린 왕은 왕비와 상의하여 아기를 죽이기로 결심하 고 일부러 높은 누각 위에 올라가 출산토록 함으로서 아기 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운좋게도 아기는 손가 락만 부러졌을 뿐 목숨을 건지고 살아 남았다. 그후 왕자는 부모의 귀여움을 받으며 무럭 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부처와 숙적 관계인 데바닷타가 나타나 아자세의 출생에 관 한 비밀을 말하며 왕자를 유혹했다. 부모가 자신을 한 때 죽 이려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아자세는 증오심에 불 타오른 나머지 부왕을 옥에 가두고 왕권을 빼앗고 말았다.

한편 바이데히 부인은 온몸에 곡식가루를 바르고 마실 것을 준비하여 아들 몰래 왕을 찾아가 위로함으로서 기운을 찾도 록 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발각되자 아자세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즉각 칼을 집어들어 어머니를 죽이려했으나 신 하들이 나서서 필사적으로 만류하는 바람에 아자세도 결국 칼을 내던지고 부하들에 명하여 어머니를 궁궐 깊은 방에 유폐시키도록 하였다. 관무량수경은 유폐된 바이데희 부인이 비탄에 빠져 부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그녀의 뜻을 아신 부처가 직접 부인 앞에 나타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수행법에 대하여 설법하신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전하는 기록마다 제각기 차이가 많이 난다. 부모 를 처형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뒤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 고 형 집행을 멈추게 하려 했으나 때가 이미 늦어 부모가 결국 처형되고 말았으며 부모가 죽고난 후에는 悔熱로 괴로 워하다 몹쓸 惡瘡에 걸려 고생하였으나 名醫 기바(耆婆)의 인도로 부처에 귀의함으로서 병도 낫고 불교 육성과 보호에 남은 여생을 바쳤다는 설도 있고, 아자세가 부왕을 죽이고 난 후 그 때문에 심적 고통과 악창으로 고생하다가 기바 의 설득에 의해 부처에 귀의하였다는 설도 있다(空波無垢 1998).

觀無量壽經의 원문에 기록된 내용만을 본다면 왕사성의 비극적 설화는 서두 부분에만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즉 왕사성의 아자세 태자가 나쁜 친구인 데바닷타(Devadatta) 의 꾀임에 빠져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유폐시키고 왕권을 찬 탈하였으나 어머니인 바이데히가 먹고 마실 것을 아들 몰래 남편에게 넣어주었다는 사실을 아자세에게 들키고 말았다.

분노가 극에 달한 아자세는 칼을 뽑아 어머니를 죽이려 했 으나 신하들이 나서서 베다 성전에도 옛부터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惡王들이 1만 8천명이 넘는다고 하나 어머니 를 살해했다는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면서 필사적으로 아자세를 말리고 나섰다. 이에 왕은 자신의 행동에 놀란 나 머지 즉시 칼을 내던지고 그 대신 어머니를 궁궐에서 가장 깊은 방에 유폐시키고 외부 출입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經의 본문 대부분은 그후 유폐된 바이데히 부

인의 절망적인 호소를 부처가 들으시고 그녀 앞에 나타 나 극락정토에 태어나기 위한 설법을 하신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고자와(古澤)版 阿門

世 說話

觀無量壽經에서 전하는 아자세설화 내용과 고자와 헤이사 쿠가 말하는 내용과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 는데, 중요한 점은 고자와가 관무량수경의 원문을 참고하면 서도 자신의 독특한 母子中心의 이론 전개를 위하여 아자세 설화의 내용 일부를 손질하여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고자와 版으로 개조된 설화내용은 다음과 같다(小此木 1999b).

고대 인도 마가다왕국의 왕비 바이데희는 자신의 아름다 움이 사라지게되면 왕의 사랑을 잃게되지나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초조해진 그녀는 점술 가를 불러 도움을 요청한 바, 수도중에 있는 어떤 한 현자가 있는데 3년후에는 그가 죽어서 그녀의 아들로 환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3년이나 기다릴 수 없다 고 생각한 왕비는 그 현자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억울하게 죽어가던 현자는 언젠가 그녀의 아들로 태어나 왕을 죽일 것이라는 저주를 남겼다. 그리고 임신이 됐는데 현자의 저 주와 복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가 출산을 함으로서 아기를 땅에 떨어뜨려 죽이려했다. 그러나 아기는 새끼 손가락만 부러진 채 살아남았으며 그후에는 행 복한 성장과정을 밟았다. 청소년기에 이른 아자세왕자에게 어느날 부처의 적이며 경쟁자인 데바닷타가 찾아와 왕자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폭로하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 이 깨진 아자세는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죄의식 때문에 곧 심한 악창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의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간호하였음에도 병이 낫지를 않고 게다가 그가 수차례 어머니를 죽이려하자 이에 절망한 그녀가 부처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부처의 가르침에 마음의 평안을 찾게된 어머니가 아들 병간을 계속함으로서 결국 왕자의 병도 낫고 그후에는 훌륭한 왕이 되었다.

고자와가 수정, 편집한 설화내용에는 부자관계가 완전히

생략되어 빠지고 없다. 부왕의 죽음, 부자간의 갈등, 왕권탈

취, 근친상간적 욕구, 신하들의 만류와 설득, 왕권탈취 후

어머니의 행적, 부모관계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아자세왕에

대한 부처의 개입 등에 관한 중요한 배경들이 모두 빠지고

없다. 오로지 어머니의 탐욕과 전생의 원한, 영아살해, 아들

의 복수, 지극한 모성애, 모자간의 화해와 상호 용서 등의 멜

로드라마적 이야기로 탈바꿈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관무

량수경의 설화내용과 비교 검토해 보면 그 차이점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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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303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Table 1).

觀無量壽經의 내용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은 부처님과 바이 데희 부인이다. 부친살해와 왕권찬탈이라는 끔찍한 비극적 사건을 겪고 비탄에 빠진 바이데희 부인이 부처님께 간절히 구원을 요청하여 그에 대한 응답으로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 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고자와가 프로이트에게 소개하였 다고 전해지는 涅槃經에 의하면 빔비사라왕이 부하를 시켜 선인을 죽이도록 했으며 바이데희 왕비가 임신을 한 후 점 쟁이가 말한 장차 태어날 왕자의 복수 때문에 두려움이 생 긴 왕이 왕비와 상의하여 출산 때에 높은 누각에서 낳아 떨 어져 죽게하자고 결정하였지만 왕자는 운좋게도 손가락만 부러졌을 뿐 목숨은 건지게 되었다. 大般涅槃經에는 아자세 가 부왕을 살해하고 왕이 된 후 마음에 悔熱이 생겨 그로 인해 온몸에 종기가 번지는 악창 때문에 고생하였으나 당시 명의인 기바의 인도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병을 고치게 되었 다고 한다.

고자와 판 설화 내용과의 정확한 비교를 위하여 觀無量 壽經의 原文 一部를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박혜경 1999).

爾時 王舍大城 有一太子 名阿門

世 隨順調達惡友之 敎 收執父王頻婆娑羅 幽閉置於七重室內

國大夫人 名韋提希 恭敬大王 浴淸淨 以酉禾蜜和麥少 用塗其身 諸瓔珞中 盛蒲桃漿 密以上王

王食麥少蜜 得聞法故 顔色和悅. -中略-

時 阿門

世 聞此語已 怒其母曰 我母 是賊 與賊 爲伴 沙門惡人 幻惑呪術 令此惡王多日不死

卽執利劍 欲害其母 時 有一臣 名曰月光. 聰明多智 及與耆婆 爲王作禮 白言大王

臣聞 毘陀論經設 劫初已來 有諸惡王 貪國位故 殺害 其父 一萬八千 未曾聞有無道害母

時 阿門

世 驚怖惶懼 告耆婆言 汝不爲我耶 耆婆白言 大王 愼莫害母 王聞此語懺悔求救

卽便捨劍 止不害母 勅語內官 閉置深宮 不令復出.

고자와는 일본의 고승 신란(親鸞)이 [敎行信證]에서 길게

인용한 아자세왕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후 [觀無量壽 經]을 통하여 보다 그 내용을 모자관계 중심으로 편집하였 다. 그러나 부왕이 관련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개작 함으로서 비극적 사건의 내용을 상당히 왜곡시켰다는 점이 드러난다. 오꼬노기(小此木 1999b)는 프로이트가 소포클레 스의 비극에서 부모 자식간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모 사이의 갈등이나 태생과 관련된 사건 부분을 무시한 것은 프로이트 자신의 태생에 대한 불안 및 방어 탓이라고 하였 는데 그러나 고자와는 부자관계를 생략하고 무시한 것에 그 치지 않고 이를 아예 새로운 각본으로 창작하였다는 점이 문제이며 모자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우선 왕사성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부친살해를 누락시켰으며 부왕의 행적 에 대한 언급이 없이 왕자의 모친살해기도만을 말하고 있으 며, 뿐만 아니라 모친을 살해하려 시도한 패륜적 악행에 대 한 신하들의 견제와 개입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이 없다. 즉 고자와는 자신의 개념에 알맞게 관무량수경 원문의 내용 일 부를 과감히 생략, 축소, 변조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父親殺害와 母親殺害

아자세 설화의 중심 테마는 부친살해를 통한 왕권탈취의 이야기이며 불경에서 왕사성의 비극을 거론한 이유는 고통 에 빠진 바이데히 부인을 구제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설하신 법문을 전하고자 함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고자와는 이와같 은 불교설화의 내용 중에서 전생의 원한 및 모자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어 아자세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은 비록 의도적인 부친살 해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친을 살해하고 자신의 모 친과 결혼함으로서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으며 비탄에 빠 진 모친의 자살과 그에 대한 죄의식으로 자신의 두눈을 스 스로 찔러 장님이 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오이디푸 스를 도와줄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는 이미 죽었고 두 딸은 너무 어렸다. 비록 장녀 안티고네 역시 아버지의 죄업 을 이어받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되지만 저주받은 왕가의

Table 1.

觀無量壽佛經 古澤平作 版 設話

빔비사라왕이 선인을 살해 바이데희부인이 선인을 살해

아버지가 아기를 죽이도록 명함 어머니가 아기를 떨어뜨려 죽이려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킴 어머니를 살해하려 시도

부왕을 죽인후 악창이 생김 모친살해 시도후에 악창이 생김

아들은 부왕을 죽인후 잘못을 뉘우침 참회한 아들은 어머니와 화해함 기바의 인도로 부처님에 귀의함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와 사랑에 감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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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세와 오이디푸스

304

집안은 그렇게 하여 종말을 보게된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 역시 부친살해를 통한 왕권찬탈의 이 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근친상간이 라는 주제가 전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프로 이트의 인용은 적절한 것이었다. Freud(1927)는 고금을 통 한 걸작 세 편이 모두 부친살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가 지칭한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오이 디푸스 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 마조프 가의 형제들]로서 프로이트는 이 세 작품에서 부친 살해의 동기뿐 아니라 여자를 둘러싼 노골적인 성적인 경쟁 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오꼬노기는 프로이트 역시 자신의 이론과 정확히 딱 들어맞지 않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이 디푸스라는 용어를 차용한 바 있으니 다소 내용이 바뀌더라 도 이론 설명을 위해서 굳이 필요하다면 고자와 역시 아자 세라는 용어를 차용하는데 별 문제가 없겠다는 주장이다(小 此木 1999b).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듯한 내용이지만 아주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위하여 오이디푸스 비극의 내용 에 결코 한점, 한획도 손을 댄 적이 없다. 천하가 다 알고있 는 내용인데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자와는 천하가 다 알고있는 왕사성의 비극 내용을 부분적 으로 왜곡하고 매우 편향적인 시각에서 아자세 용어를 인용 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남근기 이전의 조기 모자관계를 강조한 대상관계 이론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하여 아자세 콤플렉스라는 새로 운 용어를 굳이 붙인 것이라면 그 차이라는 것이 보다 명확 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 점이 분명치가 않다. Klein의 이 론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depressive position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으로 유방과 관련된 초기의 양가감정에 오이디푸스적 경쟁심과 질투심이 덧붙여져 더욱 강화된다.

아이는 환상 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성적 만족을 부모가 서 로 나누고 있는 것으로 경험하는데 그러한 강렬한 욕망과 좌절의 대상인 부모는 아이의 환상 속에서 공격대상이 되지 만 depressive position에서는 자신이 부모에 의존되어 있 고 동시에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공격들에 대해서 오히려 상실감, 죄책감 및 우울, 불안 등이 야기되는 것이다(Segal 1979). 결국 이런 상황에서 paranoid-schizoid position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퇴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자세를 더욱 자극시킨 요인 은 분명히 바이데희 부인의 행동에 있었다. 물론 심성이 고 운 부인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온몸 에 버터와 마른 밥가루 섞은 것을 바르고 목걸이 속에 포도

주를 넣어 아들 몰래 숨겨 가져가서 왕으로 하여금 먹고 마 시게 한 행동은 이미 자신의 욕망을 행동화시켜버린 아자세 의 눈에는 상당히 자극적인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또 한 그로 인한 배신감, 극도의 질투심이 발동하여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데바닷타는 이미 설치되어 있던 도화선에 불만 붙여 놓은 것이고 그로 인해서 점화된 아자세의 묵은 갈등 재현은 스스로 방어하기 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하여 paranoid-schizoid position 상태로 퇴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친살해욕 망의 근거가 왜 하필이면 태생전 원한과 관계가 있어야하는 것인지, 그리고 태생전 원한이라면 고대 인도적 사유의 산 물인 윤회설을 전제조건으로 설정해야만 하는 것인데 태생 이전의 문제를 어떠한 심리학적 방법으로 검증하고 증명하 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아자세 콤플렉스를 확인하 려면 환자의 분석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도 함께 분석해야 되는데 과연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한 조치일지 의 구심이 든다.

출생 이후 벌어진 아자세왕의 비극만으로 볼 때, 그 사건 은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갈등과 삼각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태생 이전에 바이데히 부인의 심리적 갈등은 추정해 볼 수 있다. 아들을 얻지못함으로서 생기는 초조함과 자존 심의 상실, 그리고 잉태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없게 만든 왕 이 저지른 불길한 살해사건과 저주받은 운명의 환생설 등등, 그러한 왕비의 불안정한 심리는 입덧을 하는 동안 왕의 어 깨에서 흐르는 핏물을 마시고 싶다는 그녀의 욕구에서도 드 러나고 있다. 저주의 씨를 잉태하게 만든 왕에 대한 살해욕 구 및 낙태시도를 통한 영아살해욕구를 이미 왕비는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심리적 개념이 없던 시절에 고대 인 도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인간욕망의 비극적 대물림을 윤 회설이나 환생설로 지극히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바이데히 부인의 살해욕구는 아자세 태자에게 유전된 것도

아니고 태생 이전에 이미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극히 양가

적인 감정적 혼란과 불안정상태에 놓인 왕비의 심리적 갈등

상태는 자연히 출산후 아기 양육과정에서 모자관계를 통하

여 어린 왕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왕

과 왕자에 대한 왕비의 태도는 너무도 양가적이다. 그것은

사랑과 미움이 혼재된 상태를 말한다. 결국 왕비는 옥에 갇

힌 왕을 위하여 아자세 몰래 찾아가 도와줄 정도로 극진히

왕을 사랑한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온몸을 던져 필사적으

로 왕의 죽음을 막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자세왕도 처음부

터 모친을 살해하고자 한 게 아니다. 부친을 옥에 가둔 후

모친이 자신의 명을 어기고 몰래 부친을 만나 도와주고 있

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분노와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6)

李 炳 郁

305 충동적으로 모친을 죽이려하다가 신하들의 만류로 포기하고

깊은 궁궐에 그녀를 유폐시키고 만 것이다.

서양의 고대 비극은 과감하게 근친상간적 상황을 솔직하 게 작품으로 묘사하였다. 반면에 동양적 상황은 그렇게 노 골적으로 대놓고 비윤리적인 근친상간문제를 공론화할 수 없었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것이 다. 오이디푸스는 왕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하여 한 침대를 사용하였다. 고자와에 의하면 아자세는 왕을 죽이고 모친의 설득으로 참회하여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오이디푸스왕은 비극적 파멸로 끝났고 아자세왕은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

왜냐하면 부친을 제거하고 어머니와 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 았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며 부처님은 지지적 태도 로 아자세의 무죄를 선언해준 셈이다. 왜냐하면 죄가 있다 면 아자세 한 개인의 죄가 아니라 그러한 사건에 연루된 전 후 모든 상황과 인간들의 죄 때문이라는 설법이었기 때문 이다.

經에 이르기를, 분격한 아자세왕이 모친을 살해하려하자 충직한 신하가 나서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말리면서 하는 말이, 베다 성전이래 역사적으로 부친을 살해하고 왕권을 찬탈한 예가 일만 팔천명은 족히 된다고 들었으나 어머니를 죽였다는 예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로서 왕의 마 음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신하의 언급에서도 짐 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부친살해는 고대사회에서 그리 희 귀한 일도 아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왕사성의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부친살해이 다. 아자세 왕이 모친을 살해하려 했던 것은 자신이 제거하 려 했던 부친에게 모친인 바이데히 부인이 자신의 명을 거 역하고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보임으로서 아자세왕은 극도 의 질투심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이지 태생 전의 원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즉 부친을 제거한 후 모친과 의 화해라는 고자와의 구도 설정은 그 자체가 오이디푸스 갈등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고자와는 부자관계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모자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모자관계 중심의 이야기로 변조시킨 것 같다.

Fromm(1979)은 지적하기를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3부작 모두를 읽지않고 서둘러 근친상간에 초점을 맞 춤으로서 오류를 범한 것 같다고 하면서 근친상간보다는 부 친살해 및 가부장제와 모권중심사회의 갈등이 주된 핵심이 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근친상간과 부친살해 는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역동적인 갈등상황이라고 보아야 하며, 2부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내용 역시 늙고 병든 아버지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헌신적으로 돌보는 딸 안 티고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러한 안티고네가 아버

지의 죄업을 이어받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아 버지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3부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부의 모자간의 근친상간적 관계는 2부와 3 부에도 계속 대를 이어 부녀간의 심리적 밀착관계를 보여주 고 있는 것이다. 2부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중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오이디푸스:아, 내 딸들아!

안티고네: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귀여워하시게 마련 이죠.

오이디푸스:너희들은 이 늙은이의 목숨이다.

안티고네:그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하죠.

오이디푸스:나는 지금 귀여운 딸들을 안고 있다.

지금 너희들이 내 곁에 있으니 죽어도 한이 없겠구 나. 얘들아, 내 양쪽으로 바짝 다가와 네 아비를 꼭 껴안고 지금까지 외롭고 참혹하게 방황한 일을 잊도 록 해라!

-중 략-

오이디푸스:테세우스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 오. 뜻밖에 애들이 돌아오니 정이 넘쳐서 애들과 말 이 길어졌군요.

-중 략-

이스메네: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무덤이 없지 않아 요?

안티고네:그곳으로 날 데려가서 나도 죽게 해다오.

오이디푸스는 딸들과의 애틋한 상봉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테세우스가 혹시라도 이상한 시선으로 오해할까봐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지 마시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근친상간적 욕 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한 자기 자신의 죄책감 때문인가. 오이디푸스는 2부에서도 계속해서 사람들 에게 자신을 변명하고 있다. 자신은 부모인줄 전혀 모르고 저지른 일이었다고. 결혼도 하지않고 평생을 오로지 아버지 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자신의 딸 안나에 대하여 프 로이트는 항상‘나의 안티고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한 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왕 3부작을 모두 읽지도 않고 내 용을 잘못 해석했다는 Fromm의 주장은 지나친 억측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가 말한 사회심리학적 견해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반면에 융은 아들을 중심으로 프로이트가 설명한 오이디

푸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딸의 위치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

를 명명하였다. 그러나 성별의 차이에 따른 명칭의 구분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오히려 오토 랑크가 스핑

크스의 존재를 특히 강조했다는 점이 차라리 독창적이라고

(7)

아자세와 오이디푸스

306

하겠다. 다만 랑크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맡은 스핑크스의 역할이 결국은 어머니에게로 되돌아가는 도상에서 영웅이 극복해야만 될 출생외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잃어버린 낙원, 즉 어머니 자궁으로의 귀소본능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통분석이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Mullahy 1948).

오꼬노기(小此木 1999a) 역시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의 출생과 관련된 부분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의 떳떳 치 못한 출생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대로 라면 프로이트의 아자세 콤플렉스에 의한 모친살해욕구가 실제로 프로이트의 긴 삶의 여정에서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 다는 단서라도 갖고서 하는 주장인지 의심스럽다. 뿐만 아 니라 그의 어머니 아말리아가 프로이트를 유산시키려는 살 해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프로이 트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구에 대한 회피와 억압 때문에 조 기 모자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 가 하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린다. 실제로 프로이트 는 평생동안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폈으며 한번도 자신의 모 친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프로이트 가 소포틀레스의 비극에서 큰 영감을 받은 것은 아마도 자 신의 무의식적 부친살해욕구 및 근친상간적 욕구 때문이었 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그가 관무량수경에서 전하는 왕사성 의 비극적 설화 내용을 알았더라도 동일한 부친살해와 근친 상간적 욕구에 관한 내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더욱이 고자와 판 아자세 설화 내용 역시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버 지를 제거한 아들이 비록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결국 상호 용서를 통하여 어머니와 화해함으로서 나머지 여 생을 복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관무량수경의 원문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아자세는 처음 부터 어머니를 죽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단 지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계획에 어머니가 적극 동조하지 않 고 오히려 자신의 뜻에 반하여 아버지를 도와주려 했기 때 문에 질투와 배신감을 느꼈기에 충동적으로 어머니를 살해 하려고 동작을 취해 보았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신하들이 만류하며 나서 주었기 때문에 명분이 생긴 아자세는 못이기는 체 하 며 칼을 내던지고 부하들을 시켜 어머니를 깊은 궁궐에 유 폐하도록 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자세 가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했던 것은 뿌리 깊은 전생의 원한 때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근친상간적 욕구에 기인한 부친 제거라는 구도에 더욱 잘 어울리는 내용인 것이다.

前生 怨恨

고자와가 아자세 콤플렉스의 핵심적 갈등으로 말한 것은 胎生 前 怨恨이다. 이러한 개념은 불교에서 주장하는 還生 과 輪回를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내용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태생 전 원한이란 唯識論에서 말하는 第八識 즉 아뢰야識, 또는 칼 융의 原型論에 보다 가까운 개념이다.

Johansson(1979)은 불교에서 말하는 識(vinnana)이란 윤 회론의 중심이 된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랑크의 出生外傷 理論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았지만 모든 노이로제를 이별불안에 기초한 출생외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는 동의하 지 않았는데(Fine 1979), 그러한 이면에는 이론의 사실 여 부를 떠나 심리과학적 접근방식으로는 검증하기 어려운 주 제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랑크의 출생 불안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이후 랑크가 자신의 이론과 치료에 광범위하게 적용한 출생외상이라는 극단적인 추론을 받아들이기 거절한 것이다. Mullahy(1948)에 의하면 출생 외상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오히려 프로이트였다 고 한다. 그러나 단지 프로이트는 불안의 한 원인으로 출생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신체적, 생리적 어려움을 강조한 것 뿐이며 자신의 이론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부여하진 않았다.

반면에 랑크는 자궁속의 심리적 낙원으로부터의 근원적인 분리 및 박탈과정으로 출생을 규정짓고 이를 모든 노이로제 의 근원이 되는 primal trauma 또는 primal anxiety라고 불렀으며 그후의 거세위협은 second trauma가 된다고 하 였다. 잃어버린 낙원, 자궁으로의 회귀라는 측면에서 랑크와 페렌치는 서로 공감함으로서 한 때 가까워지기도 하였는데 페렌치는 [Thalassa]에서 인간 성행위의 근원적 동기로서 자궁에의 동경을 언급하였다(Ferenczi 1968).

그러나 고자와는 랑크나 페렌치보다 한술 더 떠 태생 이 전의 원한이나 갈등을 말하고자 하였다. 과학지향주의적 심 리학을 엄격히 추구한 프로이트가 생전에 아자세 콤플렉스 를 제대로 알았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프로이트는 불교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문헌에 유일하게 언급된 불교용어라고도 할 수 있는 Nir-

vana principle도 사실은 Barbara Low가 사용한 용어를

빌린 것으로 원래 프로이트는 항상성의 원리, 즉 principle

of constancy라고 불렀던 것이다(Freud 1924). 오꼬노기

(小此木 1999b)는 아이의 태생 전 원한을 논하면서 분명히

그것은 자신을 낳을 때 어머니가 겪은 갈등을 알게 되면서

갖게되는 아이의 증오라고 하였다. 그 근거로 불교에서 말

(8)

李 炳 郁

307 하는 환생의 은유에 입각한 아자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자세의 어머니 바이데희가 죽였던 선인이 그녀의 아들로 환생하면서 저주와 증오심까지 함께 지니고 아이가 태어났 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인을 죽인 것은 바이데희 부인이 아 니다. 모자관계의 원한과 증오심을 강조하려다 보니 어머니 가 그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논지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 설화의 내용을 바꾼 것이다. 經에 나타나듯이 바이데희 부 인은 교양있고 기품있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그런 악행을 저 지를 여인이 아니었다. 분명히 經에는 빔비사라왕이 신하를 시켜 왕명을 거역한 선인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던 것이고 그후 왕비가 임신을 하자 선인의 저주가 마음에 걸려 낙태 시킬지 여부를 왕비와 상의한 것으로 되어있다. 왕의 허락 도 없이 왕비가 멋대로 아이를 낙태시키거나 제거할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부부간의 합의하에 의도적으로 높은 누각 에 올라가 출산을 함으로서 아기를 땅에 떨어트렸지만 아기 는 손가락만 부러진 채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아자세의 원한이 있다면 이 모든 사태를 앞에 나서서 지휘한 아버지 에게 향해져야 마땅한 것이다. 원한을 품고 죽은 선인도 왕 비인 바이데희 부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절대권력을 누렸던 당시의 왕으로서는 왕명을 거역한 자의 목숨을 빼앗 는 것이 무슨 큰 악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 다가 오랜 수도생활로 거의 득도의 경지에 이른 선인이 왕 명을 거역하고 죽어가면서 복수와 저주의 원한을 품었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않는 대목이다. 진정한 선인의 태도라 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꼬노기(小此木 1999b)는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영아살 해 관습을 예로 들면서 바이데희 부인도 남편으로부터 정서 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아기를 키 우고 책임져야했다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데 일본의 전통이 고대 인도와 같을 수도 없을뿐더러 또 반드시 같아야할 필 요도 없다. 또한 평민도 아니고 일국의 왕비 신분으로서 그 것도 어렵사리 얻게된 왕자를 낳고 키우며 유산시키는 문제 를 왕비 혼자 전적으로 도맡아했다는 추론을 어떻게 받아들 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많은 시녀들과 유모들이 할 일은 도 대체 무엇이고 더군다나 당시에 상당히 불심이 깊었던 왕과 왕비로서 오꼬노기가 추정한 바처럼 그렇게 서로 무관심한 채 소원한 관계속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꼬 노기는 태생 전 원한의 임상 예로 든 미쯔코 사례에서도 미 쯔코의 어머니, 아자세의 어머니 모두 임신을 한 후 아이가 태어나면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죽이 고자 했으며 미쯔코와 아자세는 태내에 있을 때부터 각자의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갈등과 원한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설 명을 하였다. 그러나 태내의 시기는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고통을 모르는 축복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혹한 운명의 여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낳 을 아기에게 모두가 원한을 품고 살해욕구를 경험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가혹한 운명일수록 자식에 대한 깊은 애 착과 모성애를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을 간과 하고 원한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가 아 닐른지 모르겠다.

오꼬노기는 영아살해와 관련한 아자세 이야기를 듣고 해 석해준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Theodore Lidz의 통찰 에 의존하여 전능한 사랑을 베푸는 이상적인 어머니와 생사 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어머니라는 두 개의 모습으로 분리되어 나타난 모자관계의 갈등을 고자와가 아자세 콤플 렉스라고 명명한 것으로 믿는다고 확신하였는데, 저자의 생 각으로는 바이데희 부인의 모습에서 고자와가 묘사하고 싶 어했던 그러한 무섭고 잔혹한 어머니의 태도는 찾기 힘들다 는 것이다. 영아살해를 기도하였다는 점은 사실이라 하더라 도 그러한 행동이 오로지 부인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저절로 나온 것도 아닐뿐더러 본인이 살해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 여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선인의 저 주는 왕에게 향한 것이었지 모친을 죽이겠다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선인의 저주를 두려워할 사람은 왕비가 아니라 왕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嚴父慈母의 전통이 강했던 시대 보다 嚴母慈父의 경향이 두드러진 오늘날에 이르러 존속살 해 및 폭행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초자아 발달의 문제에 대한 규명이 전제되지 않은 영아살해와 관련한 아자세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Lidz(1976)는 원래 생의 주기에 중점을 두고 특히 가족의 구조와 기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학자였다.

따라서 인격발달에 있어서 임신 및 출산 전후의 어머니의 심리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 부모의 협력관계가 아이 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왔던 입장에서 그로서는 당연히 아자세의 이야기를 부모간의 역 할 분담이나 협력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했을 것이다.

Lidz는 특히 원치않는 아이의 출산이 어머니의 양육방식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말한 바 있으며 부모의 화합과

불화가 아이의 성격 통합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주장은 이미 정신의학에서조차 당

연한 가족이론으로 정착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Lidz가 강

조하는 점은 태생 전의 문제가 아니라 출생후의 부모 및 가

족환경을 말하는 것이며 시대적 변화에 따른 양육방식이나

(9)

아자세와 오이디푸스

308

환경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현대의 가족환경을 잣대로 머나먼 수천년 전의 가족환경을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한다 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오꼬노기는 고자와 판 아자세 이야기를 일종의 은유라고 표현하였지만 보다 적절한 은 유가 되기 위해서는 원전의 내용을 새롭게 편집할 게 아니 라 논리적 일관성이 허용되는 다른 설화를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아자세 이야기의 핵심은 전생의 원한이다. 불교에서 말하 는 환생 및 윤회설에 의하면 왕족이나 고귀한 승려신분으로 태어나는 것도 전생에 선업을 쌓았기 때문이요 백정과 같이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은 전생에 악업을 쌓았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빔비사라왕이나 바이데희 부인는 선업을 많이 쌓았던 사람들일텐데 묘한 악연에 빠지고 말았다. 아자세도 왕자로 태어날 정도면 좋은 선업을 쌓았기 때문일텐데 저주 와 복수를 맹세하며 원한에 사무쳐 환생하는 악연에 빠져들 었다. 부모를 해친 악행으로 본다면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지 었기 때문일텐데 실제로는 평생을 수도한 선인이었다. 말하 자면 前生理論의 잇점은 좋은 일에는 선업이라 하고 나쁜 일에는 악업이라고 설명하는 마치 요술방망이와도 같이 아 주 편리한 해석장치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데바닷타와 같은 인물도 부처님의 사촌인 동시에 왕족으로 태어났으면 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필시 그는 전생에 수많은 선업 과 악업을 동시에 쌓았던 것이리라. 즉 인간은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이분법적으로 어느 한쪽으로만 선택하여 살수 만은 없으며 온갖 모순된 감정적 앙금과 혼란 속에서도 자 기 스스로 통제하며 살지않으면 안되게끔 조건지워진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아자세의 경우는 유아기의 good and bad object의 이분법적 단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정신적 미숙 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청소년기의 방황시기에 이르러 데바닷타의 간계에 이끌리면서 갑자기 paranoid- schizoid단계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즉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시에 혼란을 겪을 시기에 아자세의 그러한 심리적 취약성을 간파한 데바닷타가 아자 세를 이용하기 위한 술책을 부리게 됨으로서 불난 집에 기 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데바닷타는 불타에 대한 극심한 시기심 및 자신의 부친살해욕구를 성취 하기 위하여 아자세로 하여금 자신의 역할을 대행시킴으로 서 모든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湯田 豊(1990)는 불교사상사에서 안혜의 주석을 인용하 는 가운데“아뢰야식은 망상이다. 그것은 의지처를 갖고 있 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즉 주관과 객관, 자기와 대 상이라는 이원적 세계를 망상으로 간주하며 부정한 것이다.

유식은 바로 그러한 주관과 객관을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이

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주관과 객관은 비유에 불과한 것 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실재하지 않는 이 두 가지가 거짓으 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아뢰야식은 주관과 객관으 로 분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식사상에 의하면 고자와가 강조하는 전생원한이란 한낱 덧없는 미망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이론적 기반으로 삼은 불교의 유식론적 관점에 서 본다면 아자세 콤플렉스를 인간 보편의 근원적인 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할 수가 없는 셈이 되고 만다.

아일다의 父母殺害와 近親相姦

부왕을 죽게한 후 아자세왕은 회한의 고통에 시달리다 결 국 몹쓸 악창에 걸리고 말았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당시 명 의였던 기바(耆婆)가 나타나 세존께 귀의하여 병을 고칠 것 을 아자세왕에게 권하면서 바라나국(波羅奈國)의 아일다(阿 逸多 Ajitta)에 관한 사례를 설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 바가 언급한 아일다는 아자세보다 더 지독한 패륜을 저질렀 지만 그런 아일다도 결국은 세존께 나아가 참회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아자세왕을 설득한 것이다. 그 렇다면 과연 아일다는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바라나국에 살던 아일다라는 사람은 장남으로서 어느 때에 자신의 모친 과 정을 통하고 부친을 살해하였으며 나중에는 그 어미가 다른 사내를 넘본다하여 어미까지 죽였다. 그뿐 아니라 친 구가 자신의 죄상을 알고있다는 이유로 그 친구마저 죽여버 린 것이다. 그 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祈園精舍를 찾은 아일다는 비구들마저 자신의 죄상을 알고 받아주지 않자 더 이상 성을 참지 못하고 사원에 불을 지르고 여러 사람을 또 죽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존을 찾아가 출가를 허락받고 모든 죄업을 소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광준 2000).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근친상간과 부친살해

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론이다. 아자세 콤플

렉스는 모친살해와 전생원한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론적 개념이다. 앞에서 소개한 아일다 이야기의 주제는

근친상간과 부모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일다 콤

플렉스라는 이론을 새로이 또 내세워야만 할까? 아일다의

사례는 근친상간 및 부친살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아자세보다 오이디푸스에 가깝다. 고자와는 무슨 이유로 프

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개념과 비슷한 아일다 이야기를 소

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출처가 분명치않은 전설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러한 내용을 미처 알지 못했었는지 확인

할 도리는 없겠지만 그러나 오랜 불교설화 내용 가운데 오

이디푸스와 비슷한 일화의 존재는 오히려 프로이트에게는

(10)

李 炳 郁

309 아주 유용한 인용문헌이 되고도 남을 법 했을텐데 하여튼

고자와는 무슨 이유에선지 아자세 이야기만을 다루었으며 아일다 이야기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세 사람의 차이를 대 조하면 다음과 같다(Table 2).

소포클레스의 비극‘오이디푸스왕’은 프로이트의 오이디 푸스 콤플렉스 내용을 뒷받침하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측면들도 많다. 우선 부친살해만 하더라도 오이디푸스가 부 왕인 라이우스를 죽인 것은 자신의 부친인줄도 모르고 우연 히 살해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부친살해 욕구를 설명하기에는 적합치 못하며, 근친상간의 경우도 자 신의 어머니인줄 모른 상태에서 왕비로 맞아들인 것이기 때 문에 모자관계에서의 무의식적 근친상간적 욕구를 나타낸다 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다.

오히려 불교설화 내용 중에 인용된 아일다의 경우가 근친 상간 및 부친살해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아 마 프로이트가 아일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하고 무릎을 치면서 오이디푸스라는 이름 대신에 아일다 콤 플렉스로 명명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일다가 나중에 모친까 지 살해한 것도 결국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 한눈 파는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과 질투심에서 그랬던 것이기 때 문에 근친상간적 욕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행동 이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아일다의 일화는 그 이야기의 진 위 여부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 문제이며, 經에 따라서는 미 륵보살의 이름도 아일다로 기록된 것이 있는가 하면 미륵과 아일다가 전혀 다른 인물로 기록된 내용도 있어 상당한 혼 선을 빚고 있는 이름으로 고대 경전마다 同名異人이 많다는 점(여익구 1986)을 감안한다 해도 현재로서는 아일다의 일 화를 정설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아자세(阿門

世) 콤플렉스

고자와 헤이사쿠가 주장한 아자세 콤플렉스의 핵심적인 주제는 어머니의 임신 및 유아살해 욕망과 태생 전 원한 및 모친살해 욕망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 및 부친살해 욕망과는 기묘한 대조

를 이루고 있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아자세 콤플렉 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여부와 그것이 일본인 특유의 핵심적 갈등인지 아니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인간 심 리의 보편적 현상인지의 여부가 될 것이다.

Pollock과 Ross(1988)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보편성 여부를 논하면서 고자와의 아자세 콤플렉스에 대하여 간단 히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그 요지는 아버지를 향해 성적 욕 망을 보인 어머니로부터 강한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아자세 가 부왕을 살해하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서 아자세 콤플렉 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용어를 문제삼지 않고 고찰해본다면 근친상간에서 비롯된 아버지와의 경쟁심 그리고 제거해야될 대상으로서의 아버지 라는 존재 및 그러한 삼각구도 내에서의 갈등상황이라는 이 론적 전개는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 거 슬러 올라가 모친살해욕구의 원인이 태생 전 원한에 의한다 는 논리는 이미 과학적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 종교적 교리 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태생 전 원한이라면 태아가 잉태 되기도 전에 이미 원한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는 논리 적으로도 성립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왜냐하면 원한은 아기 가 지닌 것인데 원한을 지녀야할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적개심 및 원한이 아기에게 태내에서 전수된다는 뜻이라면 태교를 중시한 전통적인 개념과 다를 바 없어진다.

그러한 주장이라면 Klein이 주장한 조기 모자관계에서 아기 가 경험한 유방선망 및 적개심에 관한 이론을 태내의 단계 까지 소급해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Rank가 주 장한 출생외상보다 더욱 이른 자궁내 상태로까지 거슬러 올 라가 태아의 심리상태를 논하는 것인데 태아분석이 가능하 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곤란한 문제이며 단지 과감 한 추론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히 려 최근에 Britton등(1989)이 말한 오이디푸스적 삼각구도 에 의한 설명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린다. Britton등(1989) 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시작되는 시점의 심적 공 간은 세 개의 꼭지점(아버지, 어머니, 아이)을 갖는 삼각구 도를 지니게 되는데 이 세 개의 꼭지점들을 각기 연결하는 세 개의 선(모자관계, 부자관계, 부모관계)들이 형성됨으로 서 역학적 관계에 놓이지만, 그러나 각각의 이자관계에서 배제된 제3의 인물은 관찰자로 전락하면서 적대적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만약 배제된 제3자가 마음이 너 그러운 사람이면 아이의 마음 속에 중요한 부분을 이루면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환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 고 동시에 외부세계에 관한 너그럽고 중립적인 호기심을 갖 도록하는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관계가 아이에

Table 2.

오이디푸스

(Oedipus) 阿門者世(Ajase) 阿逸多(Ajitta)

父親殺害 父親殺害 父親殺害

近親相姦 - 近親相姦

母親自殺 母親幽閉 母親殺害

咀呪받은 運命 前生怨恨 -

自己懲罰과 追放 懺悔후 母親과 和解 世尊께 歸依

(11)

아자세와 오이디푸스

310

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부모사이 를 연결하는 선에 대한 공격이 나타나고 따라서 삼각구도의 심적 공간이 파괴된다는 것으로 이는 아자세의 비행이 부모 관계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수긍이 가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오꼬노기(小此木 1999b)가 아자세 콤플렉스의 존재 근 거로 내세운 미쯔코, 아키라, 타마미 등의 증례들도 자세히 검토해보면 태생 전 원한과의 상관보다는 출생후 조기 모자 관계에서 빚어진 상호 갈등상태의 재연이라는 정통이론의 범위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결국 내용적 으로는 실제 조기대상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상황 및 오이디 푸스적 갈등을 말하면서도 용어만이 아자세로 바뀐 것이며 거기에 다소 서구인들에게는 낯선 불교적 윤회개념이 가미 되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이론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국 인들의 임상 예에서 보더라도 모친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심 각한 패륜아 또는 문제아들의 경우, 오히려 어머니의 피학 적 경향이 문제되는 수가 많으며 태생 전 원한보다는 적개 심을 통제할 수 있는 초자아의 발달에 헛점이 많거나 어머 니의 과잉보호로 인한 병적 나르시즘의 경향이 두드러진 경 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Segal(1997)은 나르시즘의 구조 를 죽음의 본능과 선망의 표현 및 그에 대항한 방어로 보면 서 삶의 본능은 자기애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상과의 애정관계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삶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삶을 제공하는 대상도 함께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그런 점에 서 나르시즘의 경우에는 건강한 자기애 및 삶의 제공관계마 저 모두 공격당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정신의 발달과정 을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사이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 정으로 인식했던 Klein의 이론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 는 설명인데 아자세의 강력한 공격성 및 적대적 선망을 이 해하려면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뿐만 아니라 대상 관계이론에서 말하는 paranoid-schizoid position 및 de- pressive position을 오가는 역동적 관계를 통하여 보다 명 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임신과 출산을 중심으로한 갈 등상태 및 아기에 대한 양가감정을 경험하기 마련이며 특히 불행한 결혼상태에 놓인 어머니들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동양의 어머니들은 특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인고의 정신으로 온갖 사회적 불이익과 모멸감을 참고 견디 어왔기 때문에 상당한 적개심을 억압해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양의 여인들이 서양 여인들에 비하여 아무리 보다 열악한 조건과 모멸적 상황속에서 임신, 출산 및 양육의 경 험을 이루어 왔다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애착과 모정은 비

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깊다고 할 수 있다.

고자와는 자신의 전생원한 및 모친살해 논리에 수미일관 성을 갖추기 위해 원문에는 아버지가 죽였다는 선인을 어머 니가 죽인 것으로 바꾸었고, 아기를 죽이려 한 것도 아버지 가 결정하여 왕비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한 것을 어머니 독 단으로 결정하여 행한 것으로 바꾸었다. 아자세가 자신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알고난 후에 모친살해욕구가 일어났다 고 하였지만 실은 아버지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처음 부터 어머니에게 위해를 끼칠 의사는 없었음이 분명하며 만 약 어머니가 자신의 계획에 동조하고 협조하였으면 어머니 를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을 터인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동정하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시기심 과 배신감으로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친을 살해하 려는 돌출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아자세가 그야말로 그 토록 뿌리깊은 원한에 의한 모친살해욕구를 지녔다면 신하 들이 말린다고 해서 그처럼 간단히 살해의사를 즉각 포기하 며 철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관무량수경 원 문을 전후 맥락의 차원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고자와가 프로이트에게 소개한 아자세 콤플렉스 논문의 원제는 [Two Types of Guilt]였다고 한다(小此木 1999a).

즉 고자와가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죄의식에 대한 서구인들

의 인식론과 차별화를 두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근친상간

적 욕구로 인하여 아버지로부터 징벌을 당할 것 같은 두려

움과 그러한 두려움에 기초한 죄의식과는 다른, 보다 근원

적인 죄의식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죄와 벌의 문제는 결

국 악이 무엇이고, 무엇이 죄이며, 누구로부터의 벌이냐 하

는 기본적인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동양과 서양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며 악에 대한 명

확한 인식을 토대로 한 서구인들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동

양인들은 악에 대한 개념이 애매모호함으로서 죄의식 또한

서구인에 비하면 상당히 느슨한 방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부처님의 개입방식에서 논의될 것이지만 아자세

의 악행에 대하여 부처님의 해결방식은 죄의 근원을 희석시

켜버림으로서 죄에 대한 책임을 원천적으로 취소시켜버렸다

는 특징이 있다. 즉 한 개인의 악행이 있기까지에는 그러한

죄업에 연루된 무수한 인간들과 사건들이 모두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아자세의 악행에는 부처님 자신

도 부분적으로는 책임이 있다는 논리인 것이기에 이러한 일

반화의 작업을 통하여 그 당사자는 죄의식에서 해방되는 것

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론에 근거한 방식이 과연 그와 동

일한 악의 재발과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

스럽다는 점이다. 그러한 불교적 인식론에 오랜 세월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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