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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류계 여성의 표상

33)

- 유곽물과 여급소설을 중심으로 -

34)

이가혜

**

목 차 1. 들어가며

2. 문예물에 나타난 당시대의 반영 3. 서사의 유형과 여성표상의 변용 4. 나가며

<국문초록>

본 연구에서는 유곽과 카페의 혼재로 이루어진 1920년대의 에로공간을 배경으 로 하는 문학, 즉 소위 1910년대 유곽소설에서 1930년대의 여급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인 1920년대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 전후 시대와는 상이한 1920년 대 화류소설의 특징을 고찰한다.

우선 1920년대의 유곽소설이나 여급소설에서는 그 서사 중에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당시 재조일본인 사회 내에서의 도박문제를 비롯한 일 본‘내지’의 제국주의적 이동 경로의 확장 및 민주주의의 분위기 등이 작품에 투영 됨으로써 기존의 유곽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1920년대 유흥의 공간이 유곽에서 카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기간인 만큼 유 녀 및 여급의 표상 역시 공통과 차이점이 혼재하고 있다. 기존의 유녀의 경우 부 정․타락의 주체라기보다는 주변 상황 또는 ‘사나운 운명’ 때문에 게이샤가 된 수

* 이 연구 성과는 2016년 BK21플러스 중일언어․문화교육․연구사업단의 참여 학생으로 서 작성한 것임.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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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적 존재로서 표상되고 있다. 이에 반해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인생에 대해 고 뇌하고 좌절하는 자아를 가진 인간,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표상되는 등 이후 등장하는 ‘모던걸’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주제어 : 재조일본인, 유녀, 유곽, 여급, 카페

1. 들어가며

1876년 부산 개항 이후 조선에는 일본인 상인, 공무원 등의 남자 일본인 들의 도한과 함께 많은 수의 일본인 여성의 이주가 이루어 졌다.1) 그리고 재조일본인사회의 확장과 함께 증가한 유곽 및 재조일본인 화류여성의 존 재는 당시 재조일본인일본어미디어의 기사 및 문예의 소재로 활용되어 재 조일본인 사회에 활발히 유통되었다. 이에 재조일본인 사회 연구의 일환으 로써 재조일본인 여성,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던 예창기를 비롯한 소위 재조일본인 화류여성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재조일본인 화류여성과 관련된 선행연구는 크게 1900에서 1910년대, 1920 년대 말에서 1930년대라는 시기상의 구분을 기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자 는 주로 초기 재조일본인 사회의 성립에 있어서 유곽설립 및 유녀 유입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2)나 ‘내지’ 여성과 구별되는 ‘식민지의 여자’로서의 도한 일본인 여성 연구3), 현모양처와 창부의 경계적 존재로서의 조추(女中)에 관

1) 다카사키 소지에 따르면, 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직업군은 바로 예창기(藝娼 妓)로, 1896년 한성에 거주한 일본인 1,749명 중 여성의 총수는 730명이었으며, 재조일 본인 여성 5명중 1명꼴인 140명이 작부, 예기는 10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高崎宗司,

「植民地朝鮮の日本人-軍人から商人, そして芸者まで」, 岩波書店, 2002, 72면.) 2) 이가혜, 「초기 재조일본인 사회에서의 재조일본인 유녀의 표상 -뺷조선지실업뺸, 뺷조선

(급만주)뺸의 기사 및 유곽물을 중심으로」, 뺷인문학연구뺸 제49집, 2015.

3) 이승신, 「일본어문학에 나타난 도한 일본인여성」, 뺷일본연구뺸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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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4)가 있으며, 후자로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걸쳐 급격히 증가 한 카페와 그에 소속된 여급 및 모던걸에 관한 연구5)가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가 시대와 사회 상황에 따른 재조일본인 화류여성의 표 상을 고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라는 시기에 대한 정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1920-30년대를 하나로 묶어 소비도시로서의 경성과 그 속에 발생한 카페, 여급에만 집중함으로써, 기성의 재조일본인 화류여성이라 할 수 있는 유곽 및 예․창기, 즉 유녀6)의 존재는 어느 순간 소거된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1900년대부터 이어져 온 유곽물(遊 廓物)7)은 꾸준히 지면을 차지하고 있어 뺷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뺸를 대 상을 했을 때 1920년대 전반에 걸쳐 총 10편의 유곽물과 다수의 관련기사 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카페(カフエ)’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 은 1917년 5월의 「경성의 카페와 카페의 여자(京城のカフエーとカフエー の女)」라는 기사이며, 이후 1920년대 초반에 걸쳐서는 간헐적으로 카페에 대한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또한 카페의 여급을 주인공으로 한 소위 여급

4) 김효순, 「식민지 조선에서의 도한일본여성의 현실-현모양처와 창부의 경계적 존재로 서의 조추(女中)를 중심으로」, 뺷日本硏究뺸 제13집, 2010.

5) 김효순, 「1930년대 일본어잡지의 재조일본인 여성 표상 -뺷조선과 만주뺸의 여급소설을 중심으로」, 뺷日本文化硏究뺸 제45집, 2013.

6) ‘유녀’라는 명칭은 고대로부터 존재해 왔지만, 원래 예능에 종사하는 여성 일반을 가리 키는 것으로 매매춘전업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매매춘 여성을 칭하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여 뺷만엽집(万葉集)뺸에 우카레메(遊行女婦)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래 각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혼용되었다. 특히 본 논문의 연구 대상 시기인 근대 에는 예기(藝妓), 창기(娼妓), 죠로(女郎), 작부(酌婦) 등의 다양한 명칭이 등장하고 있 으며, 이들 여성을 총칭하는 용어로는 ‘유녀(遊女)’가 사용되고 있다. 이는 佐伯順子의 뺷遊女の文化史뺸, 今西一의 뺷遊女の社會史뺸, 金一勉의 뺷遊女․からゆき․慰安婦の 系譜뺸등의 선행연구저서의 용례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 바, 본 논문에서는 근대 성매매와 관련 된 여성을 총칭하는 용어로 ‘유녀(遊女)’를 사용하고자 한다.

7) ‘유곽을 배경으로 하거나 유녀를 소재로 하여 재조일본인의 일본어미디어에 게재된 문학’

을 지칭하는 것으로, 아직 이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마련되지 않은 듯하다. 다만, 본고에 서는 허석의 논문에서 사용된 ‘遊廓物’이라는 용어를 차용하고자 한다. (허석, 「메이지시 대 한국이주 일본인문학과 매매춘에 관한 조사연구」, 뺷일본어문학뺸 제27집, 2005, 3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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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8년의 「카페야화(カフエ-夜話)」로, 이후 1925 년을 기점으로 카페를 무대로 한 정담(情談)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게재현황은 1920년대의 에로 공간으로서 유곽과 카페 가 혼재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행연구에서는 카페 및 여급의 존재가 1920년대 중반 이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임에 도 불구하고 이를 1920년대 전반을 아우르는 에로의 표상으로 상정함으로 써 유곽이라는 에로 공간 및 유녀의 존재를 소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유곽과 카페의 혼재로 이루어진 1920년대의 에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 즉 소위 1910년대 유곽물에서 1930년대의 여급 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인 1920년대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 전후 시대와는 상이한 1920년대 화류소설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일제 식민지기 전반에 걸쳐 간행된 재조일본인 일본어잡지인 뺷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뺸8)의 지면을 분석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이 잡지 는 1908년에서 1941년까지 간행된 일제시기 최장수 일본어잡지로, 1900-1910 년대의 유곽물 및 1930년대 이후의 관련 작품과의 비교에 있어서도 적합하여 재조일본인 사회의 유흥문화 및 관련 소설의 전모와 통시적 변화를 파악하기 에 용이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우선 1920년대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대상황, 특히 일본제국 의 대륙으로의 세력 확장 및 급속한 도시화와 관련지어 분석함으로써 1920 년대 유곽물 및 여급소설의 새로운 방향을 확인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유곽 물과 여급소설에 각각 나타나는 여성표상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공란으로 되어있는 1920년대 재조일본인 사회에서의 여성표상의 변화상을 고찰한다.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하는 1920년대 뺷조선급만주뺸에 게재된 유곽물 및 여급소설을 발췌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8) 이하 뺷조선급만주뺸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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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1920년대 조선급만주에 게재된 유곽물 목록

게재일 권호 작가 제목

1920.08.15. 158 村上曉谷 破戒

1922.04.01. 173 紅谷暁之助 賭博者の父から芸者に賣られる迄

1922.04.01. 173 松之助 芸者を裏面から観て [對話劇]赤裸々な芸者の裏面 1922.08.01. 177 紅谷暁之助 [落籍情話] 芸者から女へ

1923.07.05. 188 多加木三太郎 [創作] 自殺者の手記 1925.01.01. 206 鉉歌樓醉客 〇〇食堂の斷髮美人の哀話

1925.04.01. 209 舷歌樓 [鴨江悲話] 更けし夜の … 川波に散りし花 1926.07.01. 223 柳井正夫 追はれた女

1928.01.01. 242 篠崎潮二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

<표 2> 1920년대 조선급만주에 게재된 여급소설 목록

게재일 권호 작가 제목

1925.01.01. 206 榮之助(東京) 東京の暮れの街から ーあるカフェーの出し 1925.06.10. 211 東京 暮二 カフェー哀話 1925.07.01. 212 東京 暮二 カフェー情話 戀は哀し 1925.08.01. 213 東京 暮二 カフェー情話 戀は哀し (基二) 1926.01.01. 218 篠崎潮二 苦の十字架を背負はされた滿洲の女 1928.01.01. 242 篠崎潮二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

2. 문예물에 나타난 당시대의 반영

2.1. 시대의 반영

1922년 뺷조선급만주뺸에 게재된 소설 「도박자인 아버지에 의해 게이샤로 팔리기까지(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는 제목만으로 그 줄거리 를 유추해 낼 수 있을 정도의 매우 단순한 서사구조로, 경성에서 여학교를 졸업한 오쵸(お蝶)라는 여학생이 도박에 빠진 아버지에 의해 인천의 게이 샤로 팔려가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경성에 있는 내지인 중 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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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많다는 것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라는 설명으 로 시작한다. 오랫동안 재조일본인사회에서 문제시 되었던 도박과 이로 인 한 인신매매가 주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소설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 られる迄」는 3페이지 정도 분량의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작자는 그 중 반 페이지를 할애해 당시 재조일본인 사회의 도박판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경성에 있는 내지인 중 도박사가 많다는 것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이다. 이는 상류사회의 오락- 소위 요직에 있는 대 관리들을 비롯하 여 신사신상(紳士紳商)의 가정 중 거의 반이 도박을 일상적인 오락으로 하고 있다 -으로 생각되어, 모두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기자는 수년전에도 그 방면의 모 형사에게 ‘왜 이러한 위법자를 검거하거나 단속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형사의 답변이 매우 근사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下略)9)

재조일본인의 상류사회를 비롯한 신사신상(紳士紳商)의 가정에서 도박 을 일상적 오락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단속해야 할 형사들조차도 그 일 원이 되어 도박에 관여하고 있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1920년대 초반의 재조 일본인 사회에서의 문제점만은 아니었다. 사실 재조일본인 사회에서 도박 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재조일본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1900년대 경부터 지속적으로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재한일본인중 다수는 일을 하지 않고 횡재를 바라는 방자한 이가 많고, 이로 인해 각종 악덕죄악이 계속해서 일어고 있다. 본 관헌과 시찰자에 의해 사실 이상 이 밝혀져 나는 재한일본인의 체면을 생각해 이를 변호해야하는 사람이지만, 공 정하게 말하자면 실로 무시하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며 특히 도박(博奕)과 매음은 공공연하게 행해져 거의 공개적이며, 관리, 신상(紳商), 변호사, 신문기자, 부랑인,

9) 紅谷曉之助, 「處女の陥ちゆく道(二) -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 뺷朝鮮及 滿洲뺸 第173號, 朝鮮及滿洲社, 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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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상인(モグリ), 또는 부인, 요정의 주인(お神さん)거의가 도박을 함께하고 대수 롭지 않게 가게를 내어 공개적으로 매매를 하고 게다가 거리낌 없음, 언론의 자유 와 한인과의 교섭에 대한 일본인의 단속은, 매우 엄중한 당국관헌이 이 도박매음 을 묵인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우리가 깊게 고민할 부분이다.10)

위 기사는 초기 재조일본인 사회에서 도박과 매음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당국관헌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1920년대 초에도 역시 그러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전호(前號)에 게재된 작가의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경성 사회의 어두운 면에 잠겨있는 신사도박”과 인신매매를 “사실 그대로 소개”하였다는 점에서 유추해 볼 때, 당시 재조일본인 사회에서 도박 및 그로 인한 인신매매는 고질적인 사회 문제였으며, 이것이 문예물의 소재로서 민감하게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4개월 후 동지(同誌)에 게재된 「예기에서 여자로(藝者から女へ)」11) 는 전자에 비해 조금 복잡한 서사구조를 보인다. 아카사카의 미기(美妓)△△

와 ×중장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미타카(三孝)가 곡예단 일원으로 여러 나라 를 전전하다가 다시 조선으로 와 충남 청주와 경성에서 게이샤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유곽물에서의 배경이 일본과 조선 또는 만주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있었던데 반해, 히로인의 이동공간이 상해, 싱가포르, 남양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그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이 동이 서사진행의 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타카가 태어난 곳은 일본의 아카사카(赤阪)이며, 이후 조선과 만주는 물론 “적모청안(赤毛靑眼)의 남 양”을 순회하며 곡예를 하였고, 이후 극단에서 도망치려다 발각되어 “풍속,

10) 「風紀の取締」, 뺷朝鮮뺸第3卷第6號, 朝鮮及滿洲社, 1909.8.

11) 紅谷曉之助, 「落籍情話 藝者から女へ」, 뺷朝鮮及滿洲뺸 第177號, 朝鮮及滿洲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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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부터 언어까지 완전히 다른 남양의 한 섬의 토인을 상대로 덧없는 일 년을 보내”기도 한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모 대위에 의해 동경으로 돌아 가게 되지만 다시 충남 청주와 경주, 경성을 이동하며 게이샤 생활을 유지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와 같은 이동공간의 확대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국제연맹으로부터 남양군도를 위임통치 받으면서 성행하게 된 남진론(南進論)으로 인해 일본인의 심상지리가 남양, 동남아까지 확대된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제정세에 따른 일본제국의 이동경로, 또는 침략 공간의 확장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문예에 그대로 활사됨으로서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공간 역시 확대, 다양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의 확대에 따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일본인과 조선인 에 한정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1926년에 게재된 여급소설인 「고통의 십자 가를 진 만주의 여자(苦の十字架を背負はされた滿洲の女)」에는 여자대학 을 다니던 중 사랑하는 정인이 죽자 그 절망감에 만주 봉천(奉天)으로 건너와 카페의 여급이 된 시즈카(靜香)가 등장한다. 그리고 현재 봉천에서 그녀를 돌보고 있는 자는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 상업가로, 시즈카의 사랑 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녀에게 금전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1928년의 「대륙에서 흘러온 가련한 여성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12)이라는 글은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떠도는 여성들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지하실의 여자(地 下室の女)」에 등장하는 일본인 야마치 란코(山地蘭子)는 중국 하얼빈의 바 (bar) 등지에서 춤을 추며 주로 러시아인 남성을 상대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 지고 있다. 이밖에도 1920년 게재된 「파계(破戒)」에 역시 외국인 남성이 짧게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품의 주인공인 일본인 남성 소노다 (園田)가 이들 외국인에 대해 느끼는 동경의 감정이다.

12) 篠崎潮二,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 뺷朝鮮及滿洲뺸 第242號, 朝鮮及滿洲社, 1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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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는 두 명의 외국인이 이 집의 여자를 상대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굿바이, 외국인.’

그는 말했다. 두 명의 외국인도 답례하였다. 그 신기한 발음을 듣자, 자신의 볼품없는 발음으로 그들의 가슴에 어느 정도 반응을 주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 올 정도로 감격했다.13)

외국인에게 “볼품없는 발음으로” “굿바이”라는 영어 한마디를 건내고 그 에 답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현대문명에 다가선 것으로 여겨지는 것 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근대화와 서구문명의 유입에 따 른 서구지향적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藝者から女へ」는 단 5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분량임 에도 불구하고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자본가와 노동자문제에 대한 언 급이 등장하는 등 당시 사회의 일면을 읽어내는데 용이하다.

노동문제가 한창 논의되던 작년 말, 다카사고(高砂)지역의 게이샤들이 자신 들들 역시 육체노동자라고 주장하며 대단한 기세로 보이콧을 선언하고 자본가 즉, 우두머리와 대항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당시 화가 치밀어 오른 미타카는 반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전란 의 전선에 서서 자본가와 싸웠다. (中略)

이것도 노자(勞資)쟁의가 한창일 때 일어난 일이다.14)

소설 전체를 볼 때 그다지 개연성 있는 언급은 아니지만 본 소설 ‘실화’라 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유곽의 포주와 유녀 사이에서 노동문 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1920년대 초라는 시 대상황과도 결부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1920년대 초의 일본에서는 제1차

13) 村上曉谷, 「破戒」, 뺷朝鮮及滿洲뺸 第158號, 朝鮮及滿洲社, 1920.8.

14) 紅谷曉之助, 「落籍情話 藝者から女へ」, 뺷朝鮮及滿洲뺸 第177號, 朝鮮及滿洲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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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이후 다이쇼(大正)기 데모크라시의 분위기 속에서 ‘쌀소동, 노동 쟁의, 보통선거운동’이라는 사회적 소동과 운동이 나타나고 이를 통해 ‘무산 계급 또는 제4계급’이라는 계급의식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에 토대하여 다이쇼노동문학(大正労働文学)의 등장이후 본격적으 로 계급의식과 계급문학을 주장하는 흐름이 뺷씨뿌리는 사람(種蒔く人)뺸(1921), 뺷문예전선(文芸戦線)뺸(1923)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계열 잡지를 통해 본격 화되었던 시기였다.15)즉, 비록 제한된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의 사회적 풍조, 나아가 ‘내지’ 일본의 문학적 움직임에 대한 동시대적 반응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1920년대의 유곽물 및 여급소설은 그 서사의 구 조가 다소 거칠기는 하나 그 속에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 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일본제국의 이동 경로의 확장에 따른 소설 속 무대의 확대와 외국인의 등장이나,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내지’의 프로 문학 융성에 따른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분쟁 등의 소재가 반영됨으로서 이전의 1910년대 유곽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향성을 보이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2.2. 도시 유흥공간으로서의 카페

1923년의 관동 대지진은 도쿄를 황폐화시키고 도시를 서구식 건물과 자 동차로 가득 찬 현대적인 대도시로 바꾸는 추진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유녀를 바탕으로 한 기성 오락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며 새로운 유흥문 화로서의 ‘카페’의 출현을 이끌었다. 도쿄 긴자의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생 겨난 이들 카페는 커피와 차, 가벼운 식사를 제공할 뿐이었지만, 그 기능은 바(bar)나 술집 이상이었다. 게이샤와 즐기기 위해서는 사전에 까다로운 절

15) 정병호, 「1920년대 일본어 잡지 조선급만주(朝鮮及満州)의 문예란 연구 - 1920년대 전 반기 일본어 잡지 속 문학의 변용을 중심으로」, 뺷日本學報뺸 98집, 2014, 2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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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필요하고 거액의 돈도 지불해야하지만 카페는 중산층 월급쟁이들에 게 보다 적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카페는 상당히 합리적 인 가격에 현대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과 자유와 자극을 고 객에게 제공한 것이다.16)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유흥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침투되었다. 당시 조선은 1910년 식민화된 이래 1925 년 조선신궁 건축, 1926년 조선총독부 이전 등 식민 도시의 외형을 갖추었 고,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근대도시, 소비도시로서의 면모 를 갖추어 갔다.17)경성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백화점, 음식점, 영화관, 음악회장, 다방, 카페와 같은 근대적 소비문화 공간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1930년대에 전성기를 맞는 카페는 커피와 양주, 서양음식, 재즈, 사교춤 등의 서구적 기호물과 여급을 중심으로 도시 유흥 풍속을 선도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카페나 여급들은 새로운 도시유흥의 상징으로서 당시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 및 작가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르포기사나 꽁 트, 소설 등의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다.18)

<카페>라고 입안에서 불러 보면 그 톤은 참으로 밝고 가벼운 느낌으로 울린 다. 유혹적이기도 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음이 이 단어에서 흘러나온다. (中略) 주위로부터도 내가 현재 놓인 위치로부터도 떨어져서 꿈같은 알콜의 현혹에 푹 잠겨버릴 때까지, 그리고 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같이 있을 때라도 아무도 나에 게 말을 걸어오지 않고 내가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진정한 혼자만의 기분 이고 싶다 19)

16) 이노우에 마리코, 「근대 일본 카페 여자종업원의 시선과 ‘모던 걸’의 自我성립」, 뺷미술 사연구뺸, 1999, 233면.

17) 김효순, 앞의 논문, 뺷日本文化硏究뺸 제45집, 2013, 89면.

18) 김효순, 앞의 논문, 뺷日本文化硏究뺸 제45집, 2013, 91면.

19) 天來生, 「京城のカフエーとカフエーの女」, 뺷朝鮮及滿洲뺸 第119號, 朝鮮及滿洲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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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세상의 풍파로부터 동떨어진 환락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적어도 이 곳에 있는 동안에는 길거리의 살풍경한 잡음을 멀리하고 복잡한 인간사회의 이 해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현재하는 생활고까지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하 는, 그리고 단지 달콤하고 화려한 음악적 기분에 잠긴다.20)

첫 번째 인용문은 뺷조선급만주뺸지에 최초로 ‘카페(カフエ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아직은 카페라는 것이 주류의 유흥공간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던 1917년이지만 “밝고 가벼운 느낌”의 유흥공간으로서 근 대적인 도시문명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동지(同誌)의 최초 여급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京城のカフエーとカフエー の女」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페는 “세상의 풍파”와 “내가 현재 놓인 위치”로 부터 동떨어져 “달콤하고 화려한” “환락”과 “알콜의 현혹에 푹 잠겨버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임과 동시에 조선이라는 “살풍경한” 길거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모던한 문명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카페에 대해 언급하 는 많은 기사의 경우 모던 또는 문명, 도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카페라는 것은 도시의 문화가 발전하여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신장될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쇠망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경성 카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즉 경성이라는 도시 자체의 번영이며, 견해에 따라서는 문명 정도를 묵시하는 하나의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다.21)

[여급은-역자주] 근대도시가 낳은 새로운 여성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 에 현대도시문명 - 유쾌한, 단순한, 밝은, 신선한- 문명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22)

20) 榮之助(東京), 「東京の暮れの街から ーあるカフェーの出し」, 뺷朝鮮及滿洲뺸 第206號, 朝鮮及滿洲社, 1925.1.

21) 松本輝華, 「カフェー情調 カフェーと私」, 뺷朝鮮及滿洲뺸 第226號, 朝鮮及滿洲社, 1926.9.

22) 榮之助(東京), 앞의 글, 1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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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문에 의하면 경성에서의 카페는 “도시의 문화가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한 “그 생명은 영원”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근대적 문화와 카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카페라는 유흥공간의 손님이 주로 학생, 신문가자, 문인 등의 지식인 남성들이었다는 점과도 일맥 상통한다. 1911년도 일본에서 최초를 카페를 설립한 예술가 마스야마 쇼조 (松山正造, 1884~1970)가 긴자의 카페 프렝탕(Cafe Printemps)의 설립 목적 에 대해 “유럽에서와 같이 사람들이 모여 대화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나거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바와 같이, 서구적인

‘이향취미’ 및 서구에 대한 향수를 공유하는 ‘엘리트적 카페’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이후 카페 라이온(Cafe Lion)이 처음으로 여급을 두어 손님들의 시중 을 들게 하면서 ‘에로’라는 유흥적 의미가 추가되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카페가 갖는 기본적인 이미지는 근대적 문명과 궤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여급은 “근대도시가 낳은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유쾌하 고 단순하고 밝고 신선한 도시유흥의 제공자로 등장하게 된다. 카페는 근대 도시 “문명의 정도를 묵시하는 하나의 바로미터”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의 카페라는 공간은 조선이라는 살풍경한 길거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모던한 문명의 공간이었다. 즉 현실과는 동떨어진 휴식의 공간임과 동시 에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면서도 “유혹적이기도 한” 카페는 세련된 신문명 의 이미지와 더불어 여급들에 의한 밝고 가벼운 ‘에로’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성이라는 소비도시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카페는 모던한 도시유흥의 첨병(尖兵)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3. 서사의 유형과 여성표상의 변화

본 장에서는 1920년대 전반에 걸쳐 게재되고 있는 유곽물 및 여급소설을 1) 유녀가 되기까지의 경위를 적은 소설 2) 자살이라는 극단적 파국으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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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소설 3) ‘성(性)을 판다’는 것에 대한 시선 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구분 하여 분석을 행한다. 이를 통해 1920년대라는 중간적 성격이 매우 강한 시 기의 유녀 및 여급이라는 존재가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는 물론, 유흥의 공 간이 유곽에서 카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유녀 및 여급이라는 유 흥여성의 표상이 변화되는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3.1. 유녀가 되기까지의 경위

① 사나운 운명에서 사로잡힌 수동적 여성

紅谷曉之助(베니타니 교노스케)라는 동일한 작가에 의해 작성된 두 소설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와 「藝者から女へ」의 줄거리는 크게 보아 한 여성이 재조일본인 유녀가 되는 경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작품의 히로인 중 한명은 경성고등여학교를 졸업한 여학생, 다른 한명은 게이샤 어머니와 내지의 ×중장 사이의 사생아라는 신분상의 차이는 있으나, 두 설정 모두 유녀의 길을 걷게 되는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의 히로인인 오쵸(お蝶)는 이제 막 고 등여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으로, 그녀의 친모는 게이샤 또는 매음부였으나 출산 후 종적을 감추었고 조로(女郎)출신의 새어머니와 도박에 빠진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도박에서 이기면 삼 사 일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유곽에 다니며 오초를 근처 막과자가게에 맡겨두”었고 결국 도박자금 때문에 자신의 딸을 인천의 게이샤로 팔아넘기기로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 때문에 자신의 딸을 파는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 기 때문에, 딸이나 양녀에게 예를 배우게 하는 것 역시 팔아넘기기 위한 준비과정 이었다. 출발과 동기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예는 몸을 구할 정도의 불행’인 것으로, 결과적으로도 역시 정조의 가치를 낮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 만큼, 정부는 정부대로 자신이나 타인의 딸을 파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공인하고 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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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쵸는 일찍이 부터 샤미센과 오도리 같은 예능을 익히고”있었는데, 이 는 도박과 인신매매가 “일상의 오락”이 된 사회에서 딸이나 양녀를 팔기위 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었으며, 예를 몸에 익히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 놓인 여성이 자신의 몸을 구할 수 있는 “불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의 도박자금 때문에 게이샤가 될 것을 권유받은 오쵸의 반응은 매우 흥미롭다.

‘네, 저 가겠어요, 아버지. 긴 시간동안 키워주신 은혜가 있는걸요. 한번은 부 모님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효행이라고 생각하면 저 괴로울 것 없어요.’

오초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제단 위에 올려진 사람처럼 관념의 눈동자를 완전 히 닫아버리고 말았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쑤욱하고 콧잔 등까지 솟아올라, 고개를 숙이자 하얀 손가락과 반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24)

오쵸는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게이샤로 팔려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은혜를 갚는 “효행”의 실천으로 받아들이고 있 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의 주도권을 부모에게 일임하고 마치 제단 위의 제물처럼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뜨거운 눈물”만을 뚝뚝 흘리는 매우 수 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변 상황에 휩쓸려 게이샤로 전락한다는 서사는 「藝者から女へ」의 미타카(三孝)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사생아 출신으로 곡예단에 들어가 만주, 싱가포르, 홍콩, 자 바 등지를 전전하고, 극단에서 도망치려던 것이 미수에 그쳐 남양의 어느 섬의 토인에게 팔려간다. 이후 17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와 재회하지 만 그를 따라갈 것을 거부한다. 이 장면은 작품상에서 미타카가 처음으로

23) 紅谷曉之助, 「處女の陥ちゆく道(二) -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 뺷朝鮮及 滿洲뺸 第173號, 朝鮮及滿洲社, 1922.4.

24) 紅谷曉之助, 「處女の陥ちゆく道(二) - 賭博者の父から藝者に賣られる迄」, 뺷朝鮮及 滿洲뺸 第173號, 朝鮮及滿洲社, 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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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장군은 자신의 딸에게 되도록 도쿄로 돌아가기를 권했지만, 정조도 도덕도 잃 어버린 미타카는 자기 스스로가 두려워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25)

하지만 이 역시 “정조”와 “도덕”을 잃어버린 지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에 서 기인한 결정으로, 사생아 출신으로 사생아를 낳은 유녀라는 주어진 운명 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작자는 히로인의 다사다난한 삶에 대해 “운수가 사나운(數奇) 운명”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하 며 끝을 맺고 있다. 도박자금에 때문에 게이샤로 팔려가는 여성과 사생아로 태어나 세계를 전전하다 결국 사생아를 낳은 게이샤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나운 운명”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것이 근대제 도나 사회적 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확대되는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② 도시에 대한 동경과 스스로의 선택

1925년 게재된 「카페애화(カフェー哀話)」는 다니코토 기미코(谷本君子) 라는 여급이 자신이 카페에서 일하게 된 경위에 대해 필자에게 이야기 하는 형식의 글이다. 그녀는 치바(千葉)의 시골마을에서 꽤나 존경받는 의사집안 에서 태어나 여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여학생이었 다. 그러나 “여자에게 교육은 필요하지 않다”는 부모님의 말에 상급학교 진학 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결혼을 앞두게 된다. 고민 끝에 도쿄에서 의전(醫專)을 다니고 있는 오빠에게 상담을 요청하지만 오빠역시 여자에게 상급학교 진학은 필요 없는 ‘허영심’이며 대학을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설교만을 듣고 돌아오게 된다. 이후 가족과 집에 머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진 그녀는 가출을 하게 된다.

25) 紅谷曉之助, 「落籍情話 藝者から女へ」, 뺷朝鮮及滿洲뺸 第177號, 朝鮮及滿洲社, 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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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도쿄로, 도쿄로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도시를 동경하고 있었 습니다.26)

가부장적인 부모의 차별과 일방적인 결혼 결정, 그리고 상급학교로의 진 학이 좌절된 상황에서 도쿄라는 대도시는 그녀에게 “유일한 답”이며 “동 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도쿄에서 생활하기 위 해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여급을 “선택”한다는 부분이다.

사무원이 되기에는 귀찮은 수속이 많았기 때문에 근래 직업부인으로서 생겨 나 ‘카페여급’이 되었어요. ‘카페여급’은 무학력에 생초보자인 사람도 할 수 있고, 비교적 쉬엄쉬엄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방종으로 흐르기 쉬웠죠. 저는 부 인 직업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저급한 직업을 선택해서, 스스로 몸을 파괴한 지경에 이른거죠. 이것도 자업자득이라 할 수 밖에 없겠지만요.27)

여학교 출신으로 사무원이나 기타 “직업여성”으로서의 선택지가 존재했 음에도 불구하고 여급을 선택한 이유는 “무학력에 생초보자인 사람도 할 수 있고, 비교적 편한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여급이라는 직업 이 부인 직업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저급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 어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직업으로서의 자발 적 선택에 의해 여급이 되었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유곽물에서 그려진 유녀 가 된 경위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유곽물에 그려진 유녀 의 경우 “정조”와 “도덕”을 잃어버린 존재이기는 하지만 음란, 부정, 타락 등의 주체라기보다는 주변 상황에 의한, 즉 “사나운 운명” 때문에 게이샤가 되고 만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여급소설의 경우 대도시에 대한 동경을 기반으로 조금 더 편하고 쉽게 돈을 벌기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여러 가지 “부인직업” 중 스스로 여급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모

26) 東京 暮二, 「カフェー哀話」, 뺷朝鮮及滿洲뺸 第211號, 朝鮮及滿洲社, 1925.6.

東京 暮二, 상기 글, 19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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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에서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보다 자발적인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3.2. 자살이라는 극단적 파국

① 사랑의 실패와 좌절

1920년대의 유곽물 및 여급소설 모두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로 히로 인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파국으로 이야기가 끝마치는 양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유곽물과 여급소설의 경우 히로인의 직업적 특성 상 사랑이라는 소재 와 결부되기 쉬운 만큼, 사랑에 실패하고 배신에 절망하에 자살을 시도하는 삶이 그려지고 있다. 우선 1925년 게재된 「〇〇식당의 단발미녀의 애화(〇

〇食堂の斷髮美人の哀話)」28)와 「[압강비화] 깊은 밤 … 강물에 떨어진 꽃 ([鴨江悲話] 更けし夜の … 川波に散りし花)」29)라는 두 소설은 이루어지 지 않은 사랑에 절망한 히로인의 자살이라는 기존의 서사구조를 전형적으 로 보여주고 있다.

「〇〇食堂の斷髮美人の哀話」의 히로인은 본래 압록강 근처의 누각에 서 샤미센을 연주하던 게이샤였으나, 사랑하는 시마다(島田)에게 배신을 당한 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여 남자를 곁에 머물게 하 지만 결국 남자의 마음은 이미 떠난 후였고 이를 비관한 히로인이 다시 한 번 칼을 꺼내들지만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비록 ‘자살’이라는 극단까지 진행되지는 않으나, 사랑하는 이의 배신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인과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 유곽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같은 해에 게재된 「[鴨江悲話] 更け し夜の … 川波に散りし花」는 보다 극단적인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태어

28) 鉉歌樓醉客, 「〇〇食堂の斷髮美人の哀話」, 뺷朝鮮及滿洲뺸 第206號, 朝鮮及滿洲社, 1925.1.

29) 舷歌樓, 「[鴨江悲話] 更けし夜の … 川波に散りし花」, 뺷朝鮮及滿洲뺸 第209號, 朝鮮 及滿洲社, 19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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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 얼마 안 돼 어머니를 잃은 후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오사키(お吸)는 압록강변의 한 유곽에서 일하는 유녀로 50살쯤 되는 손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남자가 실은 자신의 친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함께 동 반자살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는 사랑에 배신당하거나 사나운 운명의 장난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픔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② 희망이 사라진 삶과 좌절

사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이루지 못할 사랑에 비관하여 자살을 한다는 설정은 1900년대 이래의 유곽물에서도 자주 보이는 특징이지 만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실의 원인이 비단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시노자키 조지(篠崎潮二)의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 중 「地 下室の女」의 주인공 야마치 란코(山地蘭子)는 어떠한 경위로 하얼빈에 오 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으나,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인을 대표하는 저 검은 눈을 파내고 싶을 정도로” 추잡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녀는 일본 인은 무시하며 러시아인이나 중국인만을 상대로 매춘을 해오다 끝내 자살에 이르고 있는데 사인에 대해서는 “실연한 나머지 몸을 마구 굴리다 결국 절체 절명의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역시 “엉터리소문”에 불과하다 고 적고 있다.

또한 동일한 소설 속의 또 다른 에피소드인 「上海で毒死した女」의 히로 인 역시 결혼생활에 실패 한 후 “옷 재단이나 바느질을 배워 장래의 안정”

을 도모하고자 하는 계획에 부풀어 상하이로 건너간다. 그러나 무서운 환락 의 도시인 상하이의 “뻔뻔한 놈들의 먹잇감이 되어” “진흙탕에 앉아 술과 음락에 몸을 더럽히는 노동에 빠져들”어 대륙을 떠돌다 결국에는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에 죽음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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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불과 반년 만에 사망한 그녀는 그저 환락을 쫓아, 그 뒤편에 숨어있 는 연옥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뛰는 말이 떨어지듯이 쉽사리 나쁜 신의 덫에 떨어진 무지한 여성이었다. 세상의 젊은 여성이여, 상하이를 두려워하라, 환락을

… 허식을 …30)

앞서 살펴본 자살의 경우 사랑에 대한 배신 또는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에 대한 절망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데 반해, 위 소설 의 두 히로인의 경우 환락과 음락에 빠지거나 삶의 계획이 망가진 후 더 이상의 희망이 사라진 자신의 삶에 대한 절망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어디까지나 비극적인 결말이라 하겠지만, 종래의 유곽물에서 는 서사의 주된 내용이 남녀 간의 사랑과 배신, 암투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녀 및 여급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부정적 이기는 하나, 사랑에 매달리는 여성으로서만이 아닌 인생의 실패에 대한 고 뇌와 좌절, 그로인한 자살을 선택한다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그려지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3.3. ‘성(性)을 판다’는 것에 대한 시선

① 파는 여자, 사는 남자

1926년에 게재된 「쫓겨난 여자(追はれた女)」에는 중국 상하이의 광산에 서 사업을 하다가 때마침 일어난 전쟁으로 때 돈을 번 오오노(大野)라는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중국에 있을 당시 친밀하게 지내던 게이샤를 낙적 (落籍)시켜 부인으로 맞이하였으나, 사업이 번창하고 여염집 여자와의 혼 담이 줄을 잊자 그녀와 헤어지기 위해 고민하며 친구인 야마다(山田)에게 상담을 한다. 그는 여자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녀 가“평민의 딸”에 “험한 일을 하던 여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며 다음과

30) 篠崎潮二, 앞의 글, 1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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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어차피 이유는 몸이나 기예를 파는 여자였기 때문 에, 그런 방면의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네. 파는 사람이 있으니 사는 거지.”

“자네처럼 말한다면 험한 일을 하던 사람은 서푼 값어치도 없어지겠군. 마치 노예 매매처럼, 자신의 부인이 싫어지면 곧 팔아버리고 다른 걸로 바꿔버릴 테 니까.”

그렇지만 오오노의 생각은 한쪽 입장에서 보자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원 래 파는 것을 샀으니 싫어지면 되팔아버리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도 주저할 것 은 없는 것이다.

여자가 여염집 처자였더라면, 게다가 정당한 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였더라면 그리 쉽게 같이 살거나 헤어지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화류계 여성을 상 대로 하는 것이어서 남자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31)

위의 인용문에서는 유녀에 대한 오오노와 야마다의 인식이 분명하게 나 타나고 있다. 유녀란 본디 “몸이나 기예를 파는 여자”이기 때문에 돈을 주 고 낙적을 시켜 그 몸을 사온 이상 “싫어지면 곧 되팔아버리고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는 것은 당연하며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 이와 같은 사고 파는 성의 대상이라는 유녀에 대한 표상은 1920년에 게 재된 「破戒」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는, 그리고 잊혀 간다. 거기에 어떠 한 사랑도 없으며 집착도 없다.32)

하룻밤의 음락(淫樂) 후 인사를 하고 유곽을 나오는 남자에게 유녀는 쾌 락과 성을 파는 사람이며 그 성은 금전에 의해 매매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전을 매개로 한 유녀와 손님의 관계에서 권력은

31) 柳井正夫, 「追はれた女」, 뺷朝鮮及滿洲뺸 第209號, 朝鮮及滿洲社, 1926.4.

村上曉谷, 앞의 글, 1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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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손님에게 있으며, 유녀는 단지 남성의 성욕을 위해 희생되는 수동적 인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즉 1920년대 전반에 걸쳐서 유녀는 사랑도 집착 도 없는, 돈에 의해 사고 파는 것이 당연한 상품에 불과한 존재로 표상되고 있으며 이는 1900년대 이래로 재조일본인 유녀에게 부여된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다.

② 자유연애

그러나 1928년 「大陸を流れ漂ふ哀れな女性」 중 「무희 다카다 아키코(舞 姬高田明子)」에 등장하는 아키코(明子)는 이러한 기존의 유녀상과는 상당 히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대련으로 향하는 배의 갑판위에서 외국 인 에르만과 진한 입맞춤을 하며 공공연하게 러브신을 시연하는가 하면, 배에 서 내려서는 마중 나온 젊고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인 일본 애인과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연애에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에르만에게 돈을 받고 “음란한 짓”을 했다는 혐의로 경찰서에 불려가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은 매음(賣淫)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 여쭤보겠습니다. 저는 에르만 씨와 사랑을 했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저는 에르만씨를 좋아하고, 저 분도 저를 좋아한다면 … 그리고 사랑의 표현으로 돈이나 타원형의 귀걸이를 받거나 주었다면요. 연애는 자유 아닙니까? 경찰은 그런 것까지 간섭해야 합니까? 다이렌의 경찰은 너무 담이 작으시네요.”33)

에르만과 자신은 사랑하는 사이이며 그 표현의 일환으로 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아키코는 자유연애를 주장한다. 금전적 매개체가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가 아닌 연애라는 평 등하고 자유로운 개념이 들어오게 됨으로써 유녀는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에로틱한 상징이 아닌 하나의 사고를 가진 개인으로서 독자성을 지니게 되

33) 篠崎潮二, 앞의 글, 1928.1.

(23)

는 것이다. 이러한 아키코의 모습은 이후 1930년대의 ‘자유연애’, ‘에로․그 로․넌센스’의 총아로 나타난 모던걸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는 종래의 유곽물에서는 유녀가 주로 성매매의 관계 속에서 약자이며 남성 의 성적 욕망을 위해 희생되는 수동적 존재로 표상되어온 것과는 매우 대 비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즉 재조일본인 유녀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는 상업적 공간 속에서 화폐를 매개로 여성의 몸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 의 유흥산업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확보하고 스스로를 욕망 의 주체로 인식하는 보다 능동적 존재로 표상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4. 나가며

이상의 고찰을 통해 1920년대 유곽과 카페의 혼재로 이루어진 에로공간 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특징 및 화류여성의 표상변화를 확인하였다. 우선 1920년대의 유곽물 및 여급소설은 그 서사 속에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재조일본인 사회 내에서 심 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던 도박에 대한 언급을 비롯하여 일본제국의 이동 경로의 확장에 따른 소설 속 무대의 확대와 외국인의 등장, ‘내지’의 데모크 라시 분위기 속에서 싹튼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분쟁 등의 소재가 반영됨 으로서 이전의 1910년대 유곽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향성을 보 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23년의 관동 대지진 이후 급속화 된 일본

‘내지’의 근대도시화와 함께 발현된 새로운 유흥문화로서의 ‘카페’라는 존재 가 재조일본인 사회에 투입되면서 경성의 카페가 세련된 신문명의 이미지 와 더불어 여급들에 의한 밝고 가벼운 ‘에로’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작용하 는 모던한 도시유흥의 첨병(尖兵)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는 유흥의 공간이 유곽에서 카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인 만큼, 유녀 및 여급의 표상 역시 공통과 차이점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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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우선 유녀나 여급이 된 경위에 있어서는, 유녀의 경우 음란, 부정, 타락 등의 주체라기보다는 주변 상황에 의한, “사나운 운명” 때문에 게이샤가 되 고 만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여급소설의 경우 대도시에 대한 동경을 기반으로 편하고 쉬운 돈벌이의 수단으로써 여러 ‘부인직업’

중 스스로 여급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발적인 여성으로 표상되고는 있으나, 그 이면에서는 ‘에로’의 주체가 됨과 동시에 타락과 부정의 책임 역시 스스로에게 지워진다는 점에 서 종래의 유녀표상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종래의 유곽물에서는 서사 의 주된 내용이 남녀 간의 사랑과 배신, 암투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녀 및 여급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부정적이기는 하나, 사랑에 매달리는 여성으로서만이 아닌 인생의 실패에 대한 고뇌와 좌 절, 그로인한 자살을 선택한다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그려지고 있다는 것 역 시 새로운 여성의 표상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는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로 인식하는 보다 능동적 존재로 표상되는 등 기존 1900년대 이래의 유녀표상과는 다른 새로운 유흥여성으로서 이후 1930년대 에 ‘자유연애’의 총아로 등장하는 ‘모던걸’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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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ransformation of Prostitute Symbol of 1920s’ 뺷Chosun and Manshu뺸

34)Lee, Ka-hye*

This research aimed at investigating coexistence of prostitute quarters and cafes as the adult entertainment space in Japanese society in Chosun during the 1920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ostitute quarters during the 1920s.

Above all, there’s a movement to reflect the social aspect of that period among the adult entertainment materials or the narrations of adult entertainment novels during the 1920s. While the expansion of imperialistic movement route of Japanese ‘Domestic’ and democratic mood, etc. including gambling problem within Japanese society in Chosun were reflected on the work, a new direction appears which the existing adult entertainment materials did not display.

As 1920s’ entertainment space was in a transitional period that passed from the prostitute quarters to cafe, there is a coexistence between common ground and difference in the symbol of prostitute and maid. In case of the existing prostitutes, they were not symbolized as the subject of corruption․

fall, instead the passive existence that became geisha due to the surrounding situation or ‘unfortunate fate’. On the contrary, during the 1920s, they were symbolized as the active subject of desire, who had agony and frustration at the life, showing the clue of ‘modern girls’ which appeared later on.

Key Words : Japanese settlers in colonial Korea, prostitute, prostitute quarters, Cafe waitress, Cafe

* Graduate School,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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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 이가혜

소속 : 고려대학교 중일어문학과 (박사과정) 전자우편 : hirahira-@live.co.kr

논문투고일 : 2016년 12월 30일 심사완료일 : 2017년 2월 10일 게재확정일 : 2017년 2월 13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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