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논의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의 담론적 이해
-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을 중심으로 - 서 정 연†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Understanding on the Movement in Discourse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 Focused on Ahn Yung Bae’s 「Exterior Space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
Jeong Yeon Suh
†School of Architecture, Soongsil University, Seoul 156-743, Korea
Abstract: Through 1960 and 1970s, there had been constant endeavor in order to succeed the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al heritages. Among those efforts Ahn Yung Bae’s book 「Exterior Space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presented unique methodology utilizing abstraction of space and movement of subject. His method doesn’t refer traditional form of architecture. He ignores formal elements. Instead, he reads space through subject’s movement and this reading act creates meaning of space. So, he constructed knowledge not about the object of traditional architecture but the subject of today. Ahn’s book opens new discourse based o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His analyses didn’t deal with the form of traditional space, but the experi- ences of observer. However many historical documents related to architecture had not been in- terpreted until nineties and the succession of heritage became to be broken by modernity through 20th century. In this situation his book showed the unavoidable method, that is, the modernization of tradition.
Keywords: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movement, Ahn Yung Bae, exterior space
1. 서 론
1
1970 년대는 한국건축이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60년대 한국건축은 국립중앙박물관(현 민속박물관) 현상공모전에서의 전통논쟁과 부여박물관의 왜색시비를 거치며 근대 화의 격랑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즉 전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다시 꺼내들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3년간의 전쟁과 이어지는 극도의 빈곤은 전통
2013년 6월 12일 접수; 2013년 7월 5일 게재확정
†교신저자 : 서 정 연 ([email protected])
이라 불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거의 형해만 남게 하였으며, 그래서 전통은 단지 과거라는 시간적 지 층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 고통과 비운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우리의 얼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70년대 한국건축가들에게 전통이란 도 저히 놓을 수 없는 정체성의 끈이었으며 유교적 정서로 엮여있는 건축적 아버지의 유품이 되었다.
현대생활에서도 제사를 지내듯 현대건축의 한복판
에서 전통건축의 혼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몸부
림은 70년대를 거치면서 계속되었다. 과거 조선시
대에 집이 아버지로부터 장자에게로 물려지듯 전
통도 세대를 이어 물려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사라진 조선과 근대화된 한국은 계승될 수 있는 간극의 한계를 넘어 전통은 닿을 수 없는 심연 속에 잠기고 말았으며 이제 전통은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독학(獨學)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계승에 대한 강한 관심은 줄기차게 그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게 하였으며, 그 결과 전통건축에 관한 다양한 연구방법이 시도되어 70 년대에 이르러 다수의 도서로 출간되었다. 윤장 섭의 한국건축사(1972), 정인국의 한국건축양식론 (1974), 신영훈의 한국고건축단장(1975),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1978), 주남철의 한국건축의 장(1979) 등이 196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
은 197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나 그 내용의 기초는 1974년 3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총 8회에 걸쳐 「공간」지에 동일한 명칭의 코너로 게재되 었다. 80년대 이후 전통건축에 대한 서적발간이 활발한 점에 비추어 보면 안영배의 책은 전통건축 논의에서 초창기에 출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70년대 전통건축도서들이 건축물의 양식과 의장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진 것에 비해 「한국 건축의 외부공간」은 전통건축의 외부공간을 대상 으로 삼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이 책에서 전 통을 공간으로 사유하고자 한 점에서 뿐만 아니라, 건축공간이라고 하면 건축물이 구성하는 그 내부 공간을 지칭하는 것이 통상적임에도 외부공간을 관심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또한, 그가 다루는 외부공간은 그 공간의 평면적 형상의 분류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경험하는 움직 임의 방식과 그 의미로까지 발전하는 흥미로운 지적 전개를 보여준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인식에 기초 하여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서 논의되 어지는 전통건축의 공간을 매개로 한 담론의 분석을 통해 70년대 한국 전통건축담론의 한 특성을 고찰 하고자 한다. 특히 그가 외부공간에서의 움직임을 통해 구성하는 전통이해에 주목하여, 70년대 전통의 계승방법론이라는 담론적 흐름아래서 신체의 움직 임이 엮어내는 의미와 지향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2. 「한국건축의 외부공간」과 70년대 전통 논의
2.1. 70년대 전통논의의 이해
1970 년대는 전통형태의 직설적 모사로 공론을
일으킨 국립종합박물관(강봉진 1966 설계공모안 당
선)과 왜색시비에 휘말린 부여박물관(김수근 1967)
으로 시작된 60년대의 전통논의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국립극장(이희태 1973), 국회의사당(김정수
1975), 세종문화회관(엄덕문 1978) 등 공공대형
건축물을 통해 ‘반공과 전통’이라는 지배이데올로
기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정부 주도적 상황
에서 매우 제한된 논의영역이지만 계승이라는 논점
을 갖게 된다(안 1999). 이미 60년대에 치룬 전통
형태의 모사나 왜색형태의 논란에 의해 70년대의
전통논의는 형태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단계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건축가 김원이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국립극장의 건축적 해결과 그 가치에
관해서 흥미가 없다. 거기서 시도된 한국의 전래적
디테일의 모더나이즈라는 한 작가의 방법론이 …
( 중략)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나쁜 의미에
서의 한국적 디테일ㆍ디자인이다.”라는 표현을 쓰
면서 까지 열주나 처마의 조형, 현대화한 전통문양
등과 같은 형태의 추상화 내지는 현대화를 저평가
할 정도로 형태를 통한 전통표현은 그 한계에 달
하였다(김 1975). 안영배가 「공간」에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을 시리즈로 기고할 70년대 중반에는 이미
형태를 통한 전통의 계승, 즉 조형적 표현방법을
통한 방법론은 담론적 위상을 거의 상실할 즈음이
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김홍식의 글에서
도 확인된다. 그는 “형태의 모사에 의한 방법은 전통
건축의 외부형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방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선배들의 몇 가지 실험으로
거의 한계점이 엿보이는 방법”으로 평가하였다. 대
신에 김홍식은 같은 글에서 형태의 분석에 의한
방법, 내용에 의한 전통계승방법을 주장한다(김홍식
1975). 이와 유사하게 주남철은 축, 공간, 기둥, 검은
기와, 자연과의 조화 등을 전통계승방법론으로 제시
하였으며, 민현식도 빛, 바람, 물, 나무 등과 같은
자연요소를 중심으로 전통을 이해하고 계승하는
Fig. 1. Ahn Yung Bae’s 「Exterior Space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노력을 제안하였다(공간 1975). 이로써 전통논의는 70 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형태에서 공간으로 그 논 의의 중심이 이동하였으며 이는 동시에 객관적 실 체에서 주관적 경험으로 관심이 옮겨감을 의미하 였다. 김홍식은 ‘전통의 이해와 표현’이라는 글에서
‘전통계승은 몸으로’라는 부제를 통해 그런 경향성 을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이 글에서 “다시 말해서 전통은 스스로의 발과 몸을 통해서만이 획득되는 그러한 것이며, 자각되지 않는 전통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역설함으로써 70년대를 거치면서 변화하는 전통논의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었다(김홍식 1978). 경제적으로 산업 화가 가파르게 달성되던 70년대를 관통하며 전통 논의는 형태와 공간, 대상과 주체, 사실과 체험과 같은 나뉨과 구별을 형성하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Fig. 1).
2.2.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서 공간과 주체의 문제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은 서론, 제1부 전통공간 의 개념과 특성, 제2부 공간의 유형과 구성기법의 분류, 제3부 실례해석 등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과 1부는 이론에 해당하며, 2부와 3부는 그 이론의 실제적 적용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서론 은 6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분히 수필적 문체로 딱딱하지 않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서론에서는 크 게 공간과 주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안영배는 공간을 건축의 본질이며, 영속적인 것으 로 설정한 바, “그 기능은 변질되거나 사라지기도 하며 뒤에 영원히 남는 것은 건축적 공간뿐이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경과한 지금에도 고건축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당시의 실용성의 해결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공간구성에 달려 있으며 인간적인 공간으로서의 건축생명력은 영원 한 것이기 때문이다.”(안 1978)라는 전제를 가능하 게 한다. 안영배의 이러한 공간 중심적 해석관은 뵐플린(H. Wölfflin), 쉬말소프(A. Schmarsow), 힐데브란트(A. Hildebrand), 기디온(S. Giedion), 제비(B. Zevi)로 이어지는 서구 근대 건축공간론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이들의 저작 중 가장 마지 막에 출간된 브루노 제비의 「공간으로서의 건축 (ARCHITECTURE AS SPACE 1957 영역본 출간)」에서 공간은 ‘건축의 주역’으로, 나아가 “건 축사는 근본적으로 공간개념의 역사”로 주장되는 데, 이는 안영배의 전제와 동일한 것이다(브루노 1997).
한편, 서구 근대건축에서 공간이 우주에 편만한 텅 빈 공간, 즉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오로지 공간 만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듯,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서 설정되는 공간 역시 그 공간을 인식 하고 정의하며 분절하고 체험하는 주체가 함께 등 장한다(배 2002). 서론에서는 공간의 이런 주체 설정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감상적인 톤으로 서술 되어 있는데 “나, 한국인”과 “주관과 객관”이라는 짧은 두 글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건축에 대한 감각과 정신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직도 우리 맥박
속에 일부가 되어 흐르고 있을 것”임과 “체험적인
감각 또는 지각의 일면”을 설정함으로써,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공간’과 더불어 감각
적으로 동일한 주체가 전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처럼 전통의 이해를 현대를 살아가는 주체의 인식
혹은 의식을 매개로 전개하고자 하는 시도는 안영배
만의 것은 아니었다. 미술사가인 최순우는 그의 사후
출간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이런
일화를 남겼다. “나는 과거 외국을 여행하면서, 미
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동양 불상 조각들을 보게
될 때는 먼저 설명을 보지 않고 일부러 멀찍이서
… (중략) … 한국 불상이거니 하고 판단한 것은 거의 들어맞았던 것이다.”(최 1994) 그가 마치 ‘척 보면 안다’는 뉘앙스의 이 이야기를 남긴 것은 자 신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인 이라면 알아볼 수밖에 없는 독특한 공통감이 전통을 통해 전달되고 유지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다.
바꾸어 말하면 전통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후세에 게 전수하고자 하는 주체의 의식과 노력이 없이는 성립하거나 유지될 수 없다는 이해이다. 이 같은 경향성 즉, 현재의 ‘나’를 통해 전통이 계승된다는 실존적 전통관은 미술사학자인 진홍섭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전통이란 자립의식 위에 성립하는 것이고 이러한 토대가 아니고서는 전통이란 생겨 날 수 없다.”고 하며 “전통을 살린다, 전통을 찾는 다 등등은 자아를 찾는다, 자립의식을 살린다.”를 의미한다고 보았다(진 1966). 물론 최순우의 주체 는 불상 앞에 서 있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주체 이며 진홍섭의 주체는 포괄적이며 역사적인 주체 라는 점에서 구별이 가능하기는 하나, 두 주체 모 두 전통의 인식과 성립이 주체의 존재 자체와 연 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런 맥락에서 안영배의 주체는 앞서의 인용문에서와 같이 전통 의 맥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 계승자의 ‘몸’을 입고 있으며, 동시에 체험과 지각의 근거가 됨을 말한다 고 볼 수 있다. 이는 가문의 적통자로서의 위치와 동시에 근대적 비판자로서의 위상이 융합된 주체 이며, 따라서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서는 서구 근대건축공간에서 설정되었던 ‘공간-비판적 근대 주체’의 구도 이외에 ‘전통-혈통적 계승의 주체’라 는 이중적 설정이 모호하게 중첩된 양상을 보인다.
3.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 나타난 움직임 분석
본 장에서는 전술한 논지를 바탕으로 「한국건 축의 외부공간」에서 드러나는 움직임의 담론적 분석을 하고자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건축 의 외부공간」에서 전통은 전통건축의 외부공간과 그 공간을 관찰하고 의식하는 주체 사이에서 변증
적으로 통합되는 경험의 대상이며 이해의 총체로써 설정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이런 인식의 과정에서 신체적 움직임은 주체의 몸과 그 살아 움직임을 강조함으로써 체험의 내용을 단편적 사실로만 나 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언술로 격상시 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움직임 은 그 언술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데, 이 의미체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전통공간은 건축적 산책과 유사한 스펙터클의 연속이 되며 이 는 오히려 전통과는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움직임은 전통과 주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므로, 본 장에서는 움직임을 매 개로하여 공간에서 의미까지 이르는 논리의 궤적 을 살펴보고 그 성격을 분석하고자 한다.
3.1. 추상화와 외부공간
그 서명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건축의 외부
공간」의 초점은 외부공간이며 이 외부공간은 내부
공간을 포괄하며 전통건축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
하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서 전통건축물이란 외부공간을 위한 보조적 역할
을 맡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건축물은 내부공간보
다도 외부공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
에 머리말에서 이미 “개개의 건축에 대한 시대적
고증이나 구조양식적인 면은 의도적으로 피하였
다”라고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안 1978). 시대와
양식을 떠난 건축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Fig. 2
는 통도사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대웅전 주변을
분석한 다이어그램이다. Fig. 3은 동일한 장소를
촬영한 것으로 사진 왼편이 대웅전, 오른편이 나한
전이며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건물은 일로향각이
다. 다이어그램인 Fig. 2와 사진인 Fig. 3은 만자
( 卍字)형 공간을 설명하는 페이지에 함께 실려 있
으며 그 내용상 같은 장소를 설명하고 있는 자료
들이나 자세히 보면 두 개의 이미지가 구성면에서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즉, 진입하며 대면하는 순
서는 서로 일치하나 배치에서의 위치는 잘못 표기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오류가 논점은 아
니며 여기서는 도식표현에 적용하는 추상성을
주목하고자 한다. Fig. 4의 실제 배치도와 비교해
Fig. 2. Diagram of 卍-shape space in Tong-do temple.
Fig. 3. Tong-do temple.
Fig. 4. Site plan of Tong-do temple.
Fig. 5. Diagram of tangential connection.
보면 각 건물의 형태는 물론 그 크기와 간격 역시 단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Fig. 2만 보아서는 이 그림이 표시하는 곳이 전통사찰인지 혹은 현대 적 건물군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전통건축물의 시 대적 양식을 소거하여 기하학적 도형으로 단순화 한 형태적 추상화는 현대건축의 연장선상에서 전 통공간을 파악하고자 했던 방법이며 나아가 현대 건축에 적용하기 위한 도구였다. 공간을 드러내기 위한 추상화 방법은 Fig. 5에서 한층 명확하다.
Fig. 5 는 통도사에서 Fig. 2와 동일한 일곽을 다이 어그램화한 것으로 대웅전과 일로향각, 명부전과 감로당 주변의 마당들이 그 대상이다. 각 건물들은 마당에 면한 입면들은 굵은 선으로 환원되었으며 마당을 감싸는 윤곽선으로 작용한다. 적어도 도식 에서는 건물은 사라지고 빈 공간만이 존재하는 셈 이다. 이렇듯 건축물이 추상화된 면으로 환원되고 그 면들로 구성된 공간을 읽고자 할 때 과연 무엇
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Fig. 5에 기입한 건물명을 제거하면 어느 시대
혹은 어느 장소인지 알 수 없으며, 이런 추상화를
통해 획득하는 것은 보편적 공간이며 결과적으로
서구근대건축의 공간적 담론을 전통건축논의 속
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이런 사실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미술사가인 한스 제들마이어(Hans
Fig. 6. Diagram of Windmill-shape space.
Fig. 7. Sketch of elevated platform.
Fig. 8. Diagram of tangential connection.
Sedlmayr)가 1948년에 출간한 「중심의 상실-19, 20 세기 시대상징과 징후로서의 조형예술」에서 확 인할 수 있다. “이는 단절되는 부분도 없고, 조각 적인 요소도 없으며, 단면도 없는 동질의 매끈한 평면을 애호하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벽은 추 상적인 경계면으로 바뀌고 그로부터 훗날 유리로 만 된 공간 외장이라는 이상(理想)이 생겨나는 것 이다.” 또한 “한편 현실의 지상공간은 공기와 빛의 무한한 공간속으로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펼쳐지 는데, 여기서는 훨씬 멀리까지 뻗어가는 지표를 따 라 가로로 연장해 가는 것이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융합이라는 이러한 경향은 지극히 상징적 인 하나의 형상을 산출해 냈다.”(제들마이어 2001) 앞의 문장은 근대건축에 등장한 기하 추상 형태를, 뒤의 문장은 확장과 유동성이라는 근대공간의 속 성을 말하고 있다. 제들마이어의 관찰과 본 절에서 도 논의한 전통건축의 외부공간과는 시대양식이 소거되고 매끈한 추상형태로 대체된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전통형태를 대신하여 공간이 대두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내용을 보여주며, 따라 서 70년대 한국전통건축 논의에는 이미 서구근대 건축의 전제와 개념의 영향이 자리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3.2. 주체의 개입과 움직임의 생성
Fig. 6 은 Fig. 2의 관찰을 보다 일반화시킨 만 (卍)자형 다이어그램으로서, 안영배는 “개방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지닌 함축성 있는 공간”이며 “공
간은 틔어서 흐르게 하고 시선은 받아서 막아주는 우수한 기법”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안 1978).
앞에서 살펴본 세 다이어그램 즉, Figs. 2, 5, 6은
모두 평면도 또는 배치도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데, 이들의 공통점은 관찰자의 위치가 지면이 아닌
허공에 있으며 전지(全知)한 시점에서 그려진 점이
다. 그러나 Fig. 2에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며 관
찰자의 동선을 표시한다. 이 화살표는 각 건물의
전면을 서성이다 옆 건물로 이동하는 연속적인 움
직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다이어그램들이 의미
를 발하는 시점은 허공이 아닌 지면 위를 거니는
관찰자의 시점이며 이는 전통건축을 감상하는 주
체의 개입을 의미한다. Figs. 7과 8은 앞서 말한
다이어그램보다 한층 적극적으로 이런 주체의 존
재를 만화적 인물이나 화살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관찰자인 주체는 추상화된 전
통공간의 배치구성 안에서 시선의 실마리를 따라
움직임을 만들며 지각하고 반응하는 살아있는 존
재가 된다. 이때 시대와 양식을 보지 않기로 한 시
선은 건축물 위에 머물지 못하고 열려진 틈새를
통해 또 다른 곳을 흘러간다. 따라서 개방과 폐쇄 의 구성을 가진 마당에서 그의 시선은 건물의 표 면을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미끄러지는 시선은 연 경당에서도 다음과 같이 재현된다. “연경당 주변의 공간구성은 시선이 바뀔 때마다 전면으로 받아주 면서 옆으로 시선이 흘러나가게 하는 소위 만자형 구성으로 되어있다. … (중략) … 선향재건물이 정면으로 받아주면서 그 옆으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있고 선향재 앞에서는 태일문이, 태일문 앞에서는 다시 우신문으로 향하게 하여 공간의 깊이가 끝없이 연속되게 느끼게 한다.”(안 1978) 이처럼 시선이 사물위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은 대면하는 사물이 우리의 시선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의도적으로 정면의 사물에서 시선 을 거두고 다른 공간이나 다른 마당의 사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사물은 무의미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므로, 감상 혹은 체험은 시간이 흘러가도 완결되지 못한 채 지속될 뿐이다. 후자의 경우 전통건축물처럼 역 사와 양식을 담은 의미 있는 형태일지라도 공간을 읽기로 하였으므로 시선은 머물지 못하고 관찰자 의 주변을 훑어가며 다음의 사건을 기대하게 된다.
전자의 무의미한 사물성에 의해 유발되는 그래서 결코 완성되지 않는 감상은 관찰자 자신을 포함하는 경관에 대한 체험의 시간을 요구한다. 한눈에 읽혀 지는 구성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의 지속을 필요로 한다. 이런 측면에서 후자의 전통공간읽기 역시 시간 속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지 속적 체험에서 의미를 구한다는 점에서 실존적이다.
전통형태를 추상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의도가 유발하는 시선의 미끄러짐은 이처럼 두 가지 효과 를 가져 온다. 추상화된 기하형태가 구성하는 공간 에의 인식과 시선의 인도를 받은 신체의 움직임이다.
추상적 기하형태와 이로 인한 공간 그리고 신체의 개입이라는 구도는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을 수 있으나 서구미술의 미니멀아트에서의 체험적 구도 와 견주어 고찰해 볼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물이 미니멀아트의 사물화된 작품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고는 하나 공간의 개방과 폐쇄를 통한 시선의 멈 춤과 흐름을 통해 전통건축을 읽는 작업은 관찰자
의 행위를 통한 체험이 의미를 대체하게 되는 미니 멀아트에서의 체험형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Art and Objecthood」에서 미니멀아트에 대해 예술성 은 없고 연극성(theatricality)만 존재한다고 폄하 한다. 그에게 예술이란 직관으로 알 수 있는 혹은 인식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며 이 완전 하고도 근원적 앎은 어느 한순간에 획득하여 그 이후로는 변함없는 확신으로 남는 것이다. 그가 이 글에서 인용한 토니 스미스의 체험은 미니멀 아트 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그 도로에서의 경험은 당 시까지의 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예술의 종말이 분명하다고 혼자 생각하였다. 그 이 후로는 대부분의 회화작품들이 예쁜 그림들로만 보였다. 그것을 프레임에 담을 수는 없었다. 단지 경험해보아야만 하는 것이었다.”(Michael 1998) 이 경험은 예술작품을 대면한 상태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아직 개통하지 않은 한밤중의 텅 빈 고속 도로에서의 경험이며,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장 소에 있는 주체의 어떤 심리를 토대로 생성되는 체험의 문제이다. 주지하듯 미니멀아트에서의 형 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예술적 확신에 도달할 수 없으며 경험 혹은 감상은 영원히 지속 될 뿐이다. 그래서 무의미한 사물로 인한 체험, 관 찰자 자신을 주체화시키는 전체적인 경험 그 자체 가 예술을 대신하는 것이다. 형태를 배제한 이런 경험, 즉, 공간을 형성하는 추상적 형태에 의한 신 체의 실존론적 경험을 통하면, 「한국건축의 외부 공간」에서 언술되는 시선의 미끄러짐과 움직임의 생성이 단순히 신체의 이동을 의미하는 바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임으로써 예술적 경험을 확보하였으며 더 나아가 움직임 자체가 의미화의 통로라는 논제로 상정할 수 있다.
3.3. 움직임의 의미화
본 절에서는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서 등장
하는 관찰자의 움직임이 도달하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통도사라는 동일한 대상을 분석
한 최순우와 안영배의 글의 비교를 통해 움직임이
위치와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 최순우는 1968년
통도사의 배치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이 절 전체의 평면배치에 대해서도 여기에 적응하는 시각효과를 거두고자 동면을 정면처럼 보이도록 한 파격적인 의장을 쓴 것임에 분명하다 … (중략) … 일주문을 들어서서 바라보면 우선 잡연(雜然)한 것 같으면서도 일종의 이양(異樣)한 질서가 잡혀있음 에 감명을 받게 된다. 즉 사역의 둘레 건물들인 영산전,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 감로전, 원통방, 만세루 등은 모두 남향한 건물인 반면 내정에 들 어선 불이문, 약사전, 극락전, 응진전, 범종각, 천 왕문 등은 모두 동향 건물이어서 이율적인 평정 질서의 묘를 지니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최 1994) 이 글의 중간에 있는 ‘들어서서 바라보면’
이라는 표현은 신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기는 하나 그 자체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 가 통도사 배치의 특징으로 꼽은 ‘이양한 질서’나
‘ 이율적인 평정 질서’는 무질서한 듯 보이나 전체 적으로 미묘하게 균형 잡힌 질서를 말하며 이는 어느 한 시점 즉, 전체 배치의 중심적 장소에서 얻 어지는 통찰이다. 관찰의 특정한 위치를 고수하는 최순우의 방법은 그가 부석사 무량수전을 분석한 글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최 1994) 이 글에서 관찰자는 무량수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량수전의 전체와 부분을 감상 하기 위해 움직이며, 이 움직임에서 대상의 다양한 감상을 위한 신체이동 그 이상의 의미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똑같은 통도사를 관찰한 안영배의 글에서 움직임은 대상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 를 취한다. “대웅전 남측 뜰에 들어서면 여기까지 연속된 모든 공간체계의 마지막 부분인 것처럼 느 껴지기도 하나, 공간의 흐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대웅전 옆을 돌아서 두 세 개의 낮은 단을 올 라가면서 구룡지가 있는 작은 공간으로 유도된다.
여기서 공간은 다시 최종적으로 종형의 사리탑이 있는 금강계단으로 들어가면서 자연속의 무한한 공간으로 확산되어 간다.”(안 1978) 안영배에게 대 웅전 남측 뜰은 그간 경험한 공간적 연속 가운데 에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부여 받으며, 금강계단
주변에서는 더 이상 길이 없는 상황에서 ‘자연으로 의 확산’을 되새긴다.
안영배의 관찰자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위치한 공간은 항상 다음 공간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며 사찰의 맨 끝에 도달하여 걷기를 멈추기까지 이어지는 연속체의 한 부분일 뿐이다. 대웅전의 두 개의 정면이나 전체 경관의 내적 질서는 다음 공간의 존재를 알리는 요소로 환원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선을 받아주며 튕 겨내는 사물 혹은 그들의 위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걷기를 통해 공간을 읽어내는 그의 독해방식은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의 보행(步行)-발화 ( 發話)개념을 통해 고찰해 볼 수 있다. 세르토는 그의 대표적 저서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에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적 실천행위를 분석하였다. 여기서 실천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간이 현대사회의 구조에 매몰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보행은 그런 실천행위 중의 하나로서 건축가나 도시계획가에 의해 강제된 도시 공간에서 의 창조적 말하기 행위가 된다. 즉, 걷기란 보행자 스스로 이야기를 생성하는 도시장소의 소비이며 동시에 생산행위인 것이다(Certeau 1988). 그렇다면 전통공간의 독해가 움직임을 통해 얻은 이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세르토는
‘Walking in the City’ 라는 글에서 움직임이 만드 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걸어 다니기와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갔다가 돌아오는 행위, 즉 오늘날의 장소에는 없지만 과거 에는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전설 덩어리를 대체하 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행위는 옛날이건 오늘날이건 ‘미신’의 여행적 기능을 갖는다.
여행은 (걷기처럼) 뭔가 다른 공간을 여는 데 이용
되었던 전설의 대용물들이다 … (중략) … 이상의
논의 결과로 이러한 의미화 실천이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박
2007) 즉, 걷기란 그 자체를 통해 의미를 발생하는
하나의 실천적 행위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공간은 건축적 공간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천적 행위에
의해 그 의미가 열려, 우리가 생각하고 그것에 대
해 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모하는 어떤 장소를 지칭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건축의 외부공간」
에 등장하는 주체의 움직임은 전통건축에서 움직 임의 방향과 시간을 내면화하며 엮어가는 읽기 행위이며 이렇게 이해된 전통공간은 관찰의 대상 이며 나아가 독해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 므로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휘인 ‘생동감’과
‘ 공간감’은 전통건축공간의 본질적 의미라기보다는 주체로서 독해하는 감정이입의 즐거움이며 걷기를 통해 획득하는 공간독해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4. 결 론
1960 ∼70년대를 거치면서 전개된 한국 전통건 축의 관찰과 이해는 끊겨진 전통을 잇기 위한 계승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노력들 중,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은 공간의 추상성과 주체의 움직임을 통해 다른 방식의 계승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안영배의 관찰은 시대와 양식을 표상하는 전통건축의 형태를 향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무관하게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독해함으로 읽음의 공간을 생성하는 창조적 행위가 되었다.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행위가 지식이 된 셈이다. 따라서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은 한국건축전통의 분석이라기보다는 한국전통건축을 배경으로 한 근대적 주체의 색다른 이야기가 되었 으며, 이 이야기는 전통공간의 형식을 체험한 후기 가 아니라 체험을 형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가 공간을 관찰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이미 그의 독해는 자신의 몸을 통해 장소를 소비한 읽 기행위로 작동한 셈이며, 역사적 지층을 담은 장소 는 연극적 무대로 대체되었고, 이는 그의 책을 통해
‘ 장소’라는 어휘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이기 도 할 것이다. 당시까지 충분히 해독되지 않은 역사
자료 속에 잠겨있기에 공간에 관한 선조들의 이야 기를 들을 수 없었던 70년대, 전통형태가 주는 의 장적 의미를 제거한 안영배의 관찰자는 스스로 의 미를 발생시키는 공간적 이야기를 만들 수밖에 없 었을 것이다. 형태를 소거한 시선과 발화적 움직임 은 땅의 이야기가 사라진 곳에서 발생하는 자생적 깨달음이었으며, 독학이며 동시에 독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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