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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그림보기] ② 형식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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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0, No. 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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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개론 한 권을 뒤적이다 보면 틀림없이 만나

게 되는 그림이 있다. 형태 심리학의 개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루빈의 꽃병‘ 그림은 반드시 소개되는 이 미지다. 아마도 심리학 서적뿐만 아니라‘흑백논리’ 설명하는 글이나, 상담 치료학과 관련된 문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루빈의 꽃병’은 덴마크의 형태 심리 학자 에드가 루빈(Edgar Rubin, 1886-1951)이 고안 한 그림이다. 보기에 따라 꽃병이 되기도 하고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선으로 나뉜 흑백의 두 영역 중 무엇을 물체로 보고 무엇을 배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꽃병이나 사람 얼굴 중 어느 하나를 선택적으로 볼 수는 있으 나, 동시에 두 가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윗부분이 넓 고 중간이 좁다가 다시 조금 커지는 형식(form)의 이 미지는‘꽃병’이라는 내용(content)이 될 수도 있고 혹은“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옆 얼굴”이 될 수도 있다.

형식이라는 남자와 내용이라는 여자가 만났다. 이 들을 곧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이따금 형 식은 내용의 무질서를 비판하며 오롯이 홀로 서 보기 도 하고, 내용 또한 형식의 무뚝뚝함에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곧 이 둘 은 서로 함께 있을 때에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금방 화해하고 평생을 붙어 다니 며 해로하였다. 생뚱맞은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여 하튼 시각 예술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각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다소 광범위한 이 주제들을 평면 시각 예술에서만 국한하여 정의하자면, 형식 혹은 형 태는 눈에 의해 포착된 대상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로 위치와 방향을 제외한 사물의 공간적 면모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형태는 어떤 윤곽이라 할 수 있다. 3 차 원의 물체가 2 차원의 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맛있게

그림보기

② 형식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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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형태가 예술 작품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수용 되는지에 대한 연구들 중에 형태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이 있다. 이에 반해, 내용은 한 예술 작품 이 어떻게‘의미(meaning)’를 갖게 되는지에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예술사회학 (Sociology of Art)과 예술심리학(Psychology of Art)에서 다루어졌다.

예술을 과학으로 뜯어보기

19세기에 과학 분야의 급격한 발달이 이루어졌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한 정확 한 과학적 판단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 서구의 학자들은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과학적’

수술을 실시하였고 특히 기존의 관념적이고 사변적이 었던 학문 분야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시작되었 다. 지금의 인문학 분야 대부분이 이 시기에 그 틀을 잡고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철학으로 여 겨졌던 미학 분야에서도 과학적 잣대로 평가 받는 것 을 피할 수 없었다.

19세기 말까지 학자들은‘아름다움(美)’이란 곧

‘선(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철학의 창시자격 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초를 둔 것 으로, 아름다움과 선함의 연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감되고 있다. 유럽의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시각 예술 분야는‘인간’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혁혁한 발전을 이루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최대한의‘모방’

‘기술’로 가장‘아름다운’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18세기 경험주의 사상이 대두되면서,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는‘형식’과‘내용’을 구분하며 철 학의 체계를 집대성하게 된다. 그는 인간은 경험을

‘내용’으로 삼되, 경험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인식 능 력이라는‘형식’으로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정 리하였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미 적 판단력이 있고 욕망이 수반되지 않는 쾌락으로‘미 (美)’를 판단한다고 정의하면서 이것 때문에 미(美)’

는‘학(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저 관조의 대 상일 뿐 과학으로 아름다움을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 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예술학(Sceince of Art, Kunstwissenschaft)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을 관조 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예술 심리학, 형태이론, 예술사회학, 실험미학, 정보이론 등 의 이름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형태심리학 은 칸트가 다루었던 미적 쾌감 문제를 오히려 과학의 틀 안으로 끌어와서 분석하려 시도한 것이다.

20세기 초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 1880- 1943)를 필두로 하여 쾰러(Wolfgang Köhler, 1887- 1967), 코프카(Kurt Koffka, 1886-1941)로 이어지는 베를린 학파의 형태심리학에서는 시지각의 원리로 크 게 세 가지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1) 군집의 법 칙(Law of Grouping), (2) 단순성의 법칙(Law of Simplicity), 그리고 (3) 형과 배경의 원리(Principle of Figure and Ground)의 틀 안에서 지각 반응이 이 루어지고, 인간은 미적 쾌·불쾌를‘형태 양호도 (Goodness of Configuration)’에 따라 느끼게 된다고 보았다.

형태심리학이 예술의 형식적 구성에 초점을 둔 것 이라면, 예술사회학과 예술심리학은 예술의 내용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예술사회학은 예술 작품이 사 회 내적 존재이며 작품은 작가가 사회적 조건들에 의 해 제작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예술심리학 은 예술 작품을 하나의 심리적 반응의 결과물로 간주 하고 기존의 관념적 미학에서 탈피하여 검증의 잣대 를 적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예술사회학과 예술 심리학에서 다루는 내용 즉 의미(meaning)의 추구는 많은 경우에서 작가주의와 결합되어 작가의 사회적 위치, 역사적 상황, 심리적 기제 등을 분석하여 예술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형식을 다루었던 형태심리학이나 내용에 중심을 둔 예술사회학 및 예술심리학은 결과적으로 예술을‘탈 신비화’시키고 인간과 예술 사이의 의미를 과학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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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제30권 제4호, 2012

맛있게 그림보기 - ② 형식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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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0, No. 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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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찾아보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학

은 20세기 학문적 접근법으로‘부분들의 분석’을 거 쳐‘전체의 해석’에 이르려는,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 체계를 성숙시켰다는 평가다.

그러나 본 글의 주제인‘맛있게 그림보기’와 이러 한 일련의 세세한 학문적 성과가 무슨 연관이 있으며, 이들 학자들의 보고서가 나의 그림 감상에 어떤 영향 을 줄 수 있는가? 굳이 예술학의 학문적 근거나 설명 을 학습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림을 맛있게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예술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라는 양면을 이토록 많은 학자들이 나름의 접근방법으로 이해하려 한 만큼,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이다. 그림을 볼 때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여 감상한다 면 아마도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발견과 재미가 생 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Less is more

앞서 살펴보았던 형태심리학의 내용 중에서‘단순 성의 법칙’은 우리의 시지각이 복잡한 시각 정보를 경 제성의 입장에 따라 되도록 간단히 지각하려는 경향 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성의 법칙은 시각예술 분야보다는 디자인 분야에서 보다 쉽게 찾 을 수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유행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과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한 미술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은 산업혁명 이후 의 기계생산에 반발하며 수공 공예의 부활을 도모하 였다. 특히 기능성이 강조되는 공예품에 예술성을 향 상하려는 시도로 디자인과 공예의 역사에 중요한 동 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디자인은 다분히 장식적 이었다. 20세기에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이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여기 서 흥미로운 점은 장식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 했던 미술공예운동은 예술세계가 강조되는 공예 분야 로 발전하였고, 예술적인 측면보다 기능성과 대중성 이 필요했던 모더니즘 디자인은 단순성의 형태를 취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한 것은 예술성이 없는

가? 이 질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것 자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형식’으로 그 안에 있는 내용과 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이 예술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을 수 없다. 그러나 20세기 추상화의 등장 은 단순성과 예술성의 상관관계에 새로운 도전이 되 었다.

여기 차가운 추상으로 대표되는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작품이 있다. 현대미술의 역 사에서 큰 획을 이룬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형태적으 로 단순하다 못해,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

싶을 것이다. 심지어 수억 원에 거래되는 어떤 예술 작품은 그저 점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밑 도 끝도 없이 네모 몇 개 있는 그림에 무슨 내용이 있 으며, 이것이 어떻게 예술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 러나 이것은 예술 작품이다. 예술 작품은 형식과 내용 이 상관관계를 가지며 어떤 의미를 만든다. 이 몬드리 안의 작품은 확연히 보이는 점, 색, 면으로 구성된‘형 식’을 가지고 있다. 작품 제목은 무제에 가깝다. 이 작 품의‘내용’은 사물을 단순화하여 선, 면, 색으로 본질 을 드러내는 모더니즘의 정신이다. 몬드리안은 추상 이야말로 전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회화 언 어라고 믿었다. 이것이 이 예술 작품의‘의미’인 것이 다. 몬드리안의 이 작품은 20세기 초의 역사적, 사회

Mondrian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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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철학적 내용을 창작자의 정신으로 해석하고 2차원 으로 옮긴 시각 예술이다.

여기 애플의 아이폰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Less is more(간결한 것이 좋은 것이다)”를 외치며 사랑해마 지 않았던 작은 기계다. 스티브 잡스가 선(禪, Zen) 사상의 추종자이며 그가 고안한 제품뿐 아니라 그의 삶 모든 부분에서 간결하고 단순한 것을 추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애플의 디자인에 대해서 는 훗날의 비평가들이 다시 평가하겠지만, 단순성과 기능성이 조화를 이룬 훌륭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는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형식면에서 단순함의 미학이 있고 내용면에서 이 시대 현대인들의 기능성 도모와 함축적인 동양 사상이 들어 있다면, 아이폰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다소 분명하지 않다. 만약 이 질문을 20세기의 미학자들에 게 묻는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 계는 기계일 뿐, 형이상학의 세계와 맞닿는 예술정신 과 이 장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을 내리 는 데 주저할 수 있다. 스스로를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로 규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몬드리안의 작품 이 갖는‘의미’보다 아이폰이 갖는‘의미’가 더 예술 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물건 이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니며 거

래될 수 없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몬드리안의 작품이 갖는 희소성 가치 가 없으며 한 사람의 작가 정신에 의해 탄생된‘작품’

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술학자 되기

나도 가지고 있고 너도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 할지 라도‘형식’이 있고 그 안에는 어떤‘내용’이 있다. 하 물며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위대한 예술 작품’ 로 평가 받는 화가들의 그림이라면 그 속에 형식과 내 용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면, 음식을 주문하 고 기다리면서 그 그림을 형식과 내용으로 한 번 뜯어 보기 바란다. 의외로 식당의 음식보다 맛있는 그림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훈련을 반복하면서 자주 그림을 본다면, 어느 순간 당신의 마음을‘쩡’ 고 울리는 그림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선만을 그린 현대미술의 추상화일수도 있고, 웹서핑 중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풍경사진일 수도 있다. 혹 은 매일 무심히 봤던 달력 그림일 수도 있다. 형식과 내용으로 그림을 더 맛있게 볼 수 있다면, 수많은 학 자들이 갑론을박하며 찾아 헤맸던 예술학 분야에서 당신도 당당한 한 명의 학자인 것이다.

송주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을 배우 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교육 으로 석사(MA)를 받았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근무하면 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 벌, 디자인코리아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예술관련 서적의 번역과 편집을 하며 프리랜서 저술가로 활 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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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제30권 제4호, 2012

맛있게 그림보기 - ② 형식과 내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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