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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비판철학과 종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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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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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비판철학과 종교 1-2

철학사에서 칸트의 위치 개괄하겠다 이미 아는 분들도 처음 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 , . 기가 필요한 인물- 꼭 필요한 인물이 철학사에서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플라톤은 해야 해 아, . . 우구스티누스 토마스는 필요 없어 데카르트, . ? 필요 없다 그렇다고 필요 없다고 해서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칸트는 필요하다 헤겔은 어떨까 헤겔은 두번째 이야기는 꼭 해야 해 첫. . . . 번째는 하면 좋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칸트의 철학사적인 위치 두 토막으로 할- . - 것이다 몇 년도에 걸친 이야기. ? BC 5만년에서 AD2014년까지. 52014년의 이야기 내가 엮어. 내는 문명사의 방식으로 칸트를 위치 짓는 방식으로 보겠다 큰 거에서 점점 좁혀서 칸트로 들, . , 어가서 칸트 자체의 철학체계의 최소한의 이름열거까지 가면 오늘은 목표를 이룬 것이다.

문화화 과정 가치 계보적 분석 시작은 이렇다 성미선진으로 펼쳐지고 칸트는 진선미성으로 나, . . , 올 것이다 어떻게서 저 시작이 칸트에서 그렇게 끝날 것인가에 초점을 둘 것이다 제목의 문화. . 화 과정- 우리 문화에서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자 종교 종교의 문화화 과정 제목부터 살짝. . . . 설명하자면- 종교 자체는 문화와 관련해서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니버가. 5가지를 열심 히 말했다 그건 굉장히 신학적인 이야기가 되겠다 그걸 더 인간적으로 말한 사람으로는 현대적. . 고전으로서 틸리히가 있다 문화신학 등 저는 이 맥락에서 종교 뒤에 문화화 과정을 붙였을 때. . 는- 종교라는 초월적인 영역- 신현적 성현적 종교, - 무슨 이야기냐 신 사막 종교 척박한 환경. . . 은 인간이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초월자를 구하기 마련이다 저편의 힘을 구하니 초월. . 자가 될 것이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 전통이 엮어진다 신본 종교가 된다 거기에 비해서 대표. . . 적인 예로 유태 이슬람 그리스도교이다 오늘날 서양종교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해서 서양종교는- - . , 아니다 서양에서 크기는 했지만 그런가 하면 우리 쪽 아시아가 배경이 되는 속칭 초원 종교. . , . , 가 있다 초원이라는 배경 거두어지는 수확을 잘 먹고 자연의 원리에 따라 순응하고 한평생 살. . , 면 된다 초월이 아니라 내재 신본이 아니라 인본의 종교다 내재 종교 인본종교 초월종교만 문. , . 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종교 신본 종교도 문화화한다 그 착지점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 다이, . . 어그램을 그리기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건 문화화하는 것은 둘 다 예외가 아니다 이, . 이야기는 좀 뒤에 나오지만 비일상성을 일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 문화화 과정, . 은 비일상의 일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 계보적- 가치가 계보를 따른다 가치. - 칸트의 네 비판서가 추구하는 가치 순수이성비판. . 우리를 헷갈리고 복잡하게 하는 것이 이성 지성 오성 감성은 좀 구분이 되는데. . Vernunft가 이 성 그런데 책에서. Verstand를 지성으로 번역했어 와이섹에 항의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됐어 익. . 숙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성에서 연관성 차이를 볼 수 있는 용어를 써야하지 않겠나 생, 각한다 그런 부분인데. - 일단 이 책 칸트라면 익숙할만한 용어들, - 감성 오성 이성 결론은 이성. 이다 감성의 한계 오성의 한계 말할 것도 없이 이성도 한계가 있다 감성 오성 한계는 당연한. , . 데 이성은 그런 생각 못했다 데카르트는 그런 생각도 못했다 그의 후예도 그렇다 스피노자, . . . ,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이성에게 활동을 줬다 앞 두 사람에게 없던 통찰로 칸트에게 도움이. . 되었다 거기서 선험성이 나왔다 하지만 이성론자에게 이성의 한계는 나올 수 없었다 경험론자. . . 에게서 나온다 롸크는 조심스러웠다 비숍은 좀 송구스러워도 넘어가도 된다 흄은 뒤흔들어 이. . . . 성의 한계 순수이성비판의 결론은 결국 이성의 한계다 하지만 한계만은 아니다 주도적이다 주. . . . 도적이면서 한계적이다 한계적이면서 주도적이다 주도성과 한계성 반대편으로 뛰는 두 마리 토. . . 끼 그게 다 있다 감성 오성 이성 한계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게 될 것이다 오성을 지성과. . . .

(2)

혼동시키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과 지성은 경우에 따라 바꿔 쓸 수 있다. 지성 옆에는 의지가 있다 지정의라는 삼각구도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삼분구도면 지성

(intellectus) . . ,

이분구도는 이성으로 쓴다 지정의는 중세적 분류다 라틴적 분류다 이분법은 고대적인 분류다. . . . 그게 우리를 혼동시킨다 백종현 선생도 열심히 설명하지만. - 중세적인 인식론에서는 당연히 버무 려서 쓴다 칸트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 그 아저씨가 시작했는데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장황. . . 스럽게 늘어놓느냐 순수이성비판은 지성에 대해서 삼각구도. . , 3요소에서는 지성.

실천은 의지 판단력은 감정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종교는 종교 관심 없는 사람은. . ? 3개만 열나 게 이야기 해 그런데 그건 하나를 빠뜨린 것이다 그 그림이 진선미만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 아니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고 했던 것. - 표방의 근거가 되었던 것- 지성이 추구하고 표방하는 가치를 진이라고 하겠다 의지가 표방하는 가치는 설명이 필요없이 선이다 감정은 미가 될 것이. . 다 그리고 그 무엇이 표방하는 것은 성이다 그래서 칸트가 추구하는 비판철학은 동시에 가치철. . 학이다 그러면 둘을 합치면 가치비판철학 맞기는 한데 가치. ? ? . ( )비판철학 들어갈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4개의 비판철학이 가치를 재정립한다 칸트의 방식으로 다시 재구성한다. .

이 앞에서 하려는 계보도 그것과 관련되어있다 칸트가 그랬던 것은 그것이 그랬기 때문이다 역. , . 사의 굽이굽이 문화화 과정에서 좀더 잘 살기 위해 행복하게 행복은 칸트에게서 매우 중요하다, , - 살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저 없이 행복이라고 하는데 칸트는 과연 그럴까요 하고 주

- . ,

저한다 그리고 대안을 찾는다 대안과 행복 사이의 관계 그래서 비판이. . . 3개로 끝날 수가 없다. 그래서 4번째까지 간다 진선미성을 전개한다 그것의 원조가. . - 정신사의 맥락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한 부분은 이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의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종교에 중립. . , 적으로 문화의 눈으로 본다고 해도 종교가 시작일 수밖에 없다 왜, . ? 그건 인간의 구조이다 물. 론 여러분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반론이 불가능한 진리는 없으니까 그러나 종교를 염두. . 에 두지 않는 문명사여도 종교가 출발점인 이유는 종교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중요하고, 행복이 중요하고 행복을 우아하게 표현하면 가치이기 때문이다 가치 그런데 그것의 시원에 종, . . 교가 자리잡고 있다 종교 뭘 어떻게 했길래 시작일 수밖에 없느냐. - .

빨간색 힘 힘을 구한다 신현적 종교 아까 말했는데 신이 나타난다 성현적 종교. . . - 이루면 된 다 그래서 성불 성현이다 성현적 종교 신현적인 종교 성현적인 종교이든. , . . , - 공통분모는 역현성 이다 힘이 드러난다 그런데 어떤 힘인가. . ? 인간이 모자란 힘이다 인간이 여러 가지로 자기 문. 제가 있는데 해결을 못하니까 힘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는 죽음의 문제를 놓고 인간의 힘으로, . 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음 너머 저편 무한을 향해서 동경을 하게 된다 무한자와 무한. , . 성 인격이든 경지이든 한 신이다 그리고 힘이다 아무리 우아하게 포장해도 힘이다 원색적으. , . . . 로 말하자면 무한한 힘이다 절대자 무한자 인격적 존재로 보여준다 이 힘에 대해서 인간이 만. . . 난다.

그리스도교 문명권에서 칸트가 열심히 종교비판과 관련해서 쭉 살피지만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 - 다 그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도교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샘플로 두고 볼 것이다 신현적 종교에. . . 서는 신이다 힘 신이라는 등식을 잘 생각해야 한다 힘 신의 동네가 있는가 하면 신 힘이라는. = . = , = 등식도 성립할까 모든 조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하. . 지 않는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힘을 구해 힘 신은 마땅하지만 신 힘은. . = , = 마땅하냐 뒤집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한한 힘의 존재를 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신에 대. . . 하여 인간이 겪는 마딱드리는 감정이 종교의 시발점이 된다 그 만남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이고, . , 다른 한편으로는 이끌림이다 힘 앞에는 무한한 이라는 말이 있다 상반되는 성격이다 루돌프 오. . .

(3)

토가 질러줬지만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상반된 성질이다, . . 두려움과 이끌림- 달아나는 것과 다가가는 것 둘을 묶어서 뭐라고 할까 거룩함이라고 했다 직. ? . 립인간으로서 힘을 구한다.

왜 행복이라는 삶의 현실- 그 문제를 다뤄야 하는 필요 때문에 순수이성비판으로 부족해서 실천 이성비판 그걸로도 부족해서 판단력비판 그것도 부족해서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종교까지 나, , 온다. Homo erectus. 돌조차도 삼라만상의 하나로서 왔다가 사라지는- 무상성의 세계 온 재료, 이다 무수한 삼라만상은 이런 한 모습 저런 모습의 원재료가 된다 그런 식의 그림이다 그러면. . . 돌도 자기의 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이 거기까지 된다 어떤 면에서는 의인적인 생각이지만. . 종교는 그 이상까지 생각한다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도 우리가 보는 식물이 아니

- . ,

다 식물도 자르면 통증을 느낀다 그래서 모자르트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은 식물은 다르. . 다고 한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다 네 발 짐승 포유류와 두 발 짐승 인간 직립 인간은 앞 너머. . . 의 미래를 본다 결정적인 차이는 네 발 짐승의 본능과 인간의 욕망이다 본능과 욕망은 밀접하. . 게 관련되어있다 하지만 양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르다 맹수는 싱싱한 거 먹어도 잘 잔다 냉. . . 장고가 없어서 하지만 인간은 냉장고가 다 채워서 옆 사람 냉장고 채울 때까지 채운다 내 새. . 끼 손주 먹을꺼 같지 채운다 본능 유한 만족 하지만 욕망은 무한 불만족하다 욕망의 불만이, . . . 문명의 견인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만이다 이게 문명통찰이다 본능과 욕망 사이에. . . 서- 유한을 잡아늘이면 무한이 되나? 이런 이야기가 칸트의 신존재증명 공격에서 나왔다 유한. 무한을 양적인 차이로 본 중세인들을 공격한다 하여간 직립 인간은 욕망에서 무한성을 배우고. , 무한성을 동경하게 된다 무한의 경지를 힐끗 봤다 도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슬쩍 봤다 그리고. . . . 그 욕망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을 계속 부추긴다 그것이 또 문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욕망. . 자체는 불만이라고 해서 욕망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고대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이. 성을 높게 감성을 낮게 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그렇게 왜곡. , 되어 보기 시작했다 스토아는 그대로 따라갔고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라고 하니까 반대말 같지. . 만 반대가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쾌락 성취 욕망이다 결국 욕망을 줄여서 현실의 성취, . , = / . 를 늘리는 것 결국 금욕주의적 쾌락주의다 고대 폴리스 로마에 잡혀먹히는 상황에서 어떤 쾌락, . , 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원인과 결과 철저히 아구가 맞도록 원인이 없는 것은 없다 그래서 테오. , . . 스 로고스를 결합해서 공격하는 것이 스토아다 다만 에피쿠로스는 스토아의 결정주의에 대해서. 반대한다 우연성에 초점을 맞춘다 결정성. . vs 우연성의 대결이라고 봐야 정확하다 그리고 이것. 이 십분 그리스도교 신학계에도 깔끔하게 받아들여진다 특별히 신약성서에서 예수보다는 바울을. 통해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조상으로 모시면서 받아들여진다 자기는 할 것 다하고 나서, . - 준경전으로 받아들여진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렇게 된다 그러면서 욕망이 부정적으로 읽혀진. 다 하지만 예수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다 예수는 욕망의 문제와는 또 다르다 예수는 휘브리스를. . . 가지고 이야기했다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 전부 자기의 문제다 인간 심성의 폐부를 찌르는. 것이 다른데 교회는 둘을 동급으로 놓는 오류를 범한다 하여간 욕망은 부정적으로 잘못 읽혀졌, . 지만 중립적이다, .

무한에 대해서 힐끗 경험하게 되고- 이걸 싸잡아서 거룩함으로 간다 이런 상반된 성질을 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상반된 성질이다 이 상반된 성질을 동시에 조합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 . 반대이니까 앵기고 싶고 작살날까봐 도망가고 싶고 한꺼번에 싸잡는 과제를 안고 있고 문화화. , . . 과정 속에서 내내 이렇게 머무를 수 없다 힘에 대한 앙망으로 욕망으로. , religiosus가 되게 만 들었는데 두려움을 줄이고 이끌림을 늘이고 싶은 것이다 이게 바로문화화 작업이다 문화화라는. . 것은- nature에 대한 culture는 길들이기다 두려움을 줄이고 이끌림을 증폭하는 방식으로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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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비일상성. - 예측 불가능성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 예측불가능성을 극복하고. - 이끌림으로 나 타나면 괜찮은데 두려움으로 나오면 안 된다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만이라도, .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 비일상성은 성인데 일상은 화이다 비일상성은 그대로인데 일상은. , .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화는 상징으로 이루어진다 예술이다 발광하는 인간 놀이하. . . , 는 인간 더 나아가서 몸짓만이 아니라 도구까지 쓴다, . Homo faber까지 상징은 나름대로 역할. 을 하는데 모호하다, .

발광이 아름다움을 향하는가 동네마다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어있다 요란하게 치장해도? . 다른 곳에서는 안 통한다 원시인이라고 불리는 문명 아직도 있다 아마존 밀림지대 아프리카 어. , . 디인가 오스트레일리아 옆동네 다 있다 하나도 걸치지 않고 사는 족속들이다 우리가 생각하기. . 에는 측은하게 보이지만 문화제국주의적인 폭력일 수 있다 그들이 덜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없, . 다 하지만 여지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족장이 제주다 정치적인 지도자가 종교적인 지도자. . 다 이 동네에서만 가능하다 상징의 모호성이다 그래서의 공감대를 확대하려고한다 언어를 쓰. . . . 는 단계로 간다.

일상화는 지속되고 언어로 그려진다 말과 글을 인류가 쓰게 되면서 이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 면서 동네가 넓어진다 신화라는 장르가 등장한다 신화가 꼭 나오는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전. . 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교의 문화화 과정에서 신화는 도덕을 포함한다 그리고 선을 추구. . 한다 그러나 아직도 상징성에 머물러있다 이걸 더 확대하기 위해서 보편화의 욕구가 일어난다. . . 그래서 상징에서 개념으로 간다 개념에서 학문으로 간다 참됨 진. . , .

연대기적으로 homo erectus는 BC 5만년이라고 할 수 있다. Homo religiousus도 5만연으로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유산으로 남겨져있지만. , 5만년보다 훨씬 뒤다 한. BC 2천년 그리고 말? 로 전해지는 것이 2-3천년으로 전해진다 그러다가 학문은. BC 5세기 정도로 본다 중첩적이지. 만 숫자는 큰 의미는 없다 고고학적인 탐구가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동시다발적일 것이다. . , . 다른 형태 없이 이렇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굳이 연대기적으로 분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종교. . 는 당연히 발광하고 그러면 당연히 도구를 갖고 언어를 쓰고 학문까지 간다 그래서 종교의 문, , . 화화 과정은 종교에서 아름다움 선함 참됨으로 간다 성미선진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와는 다르, , . . 다 칸트도 진선미성이다 왜 반대가 되었을까. . ?

익숙했으니까 그렇게 썼을텐데 왜 반대인가 이게 바로 개념 학문 진 이걸 꿰뚫고 들어간 것, ? , , . 이 로고스다 로고스의 출현 때문이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전환이다. . . 2500년 역사의 기준이 이 전환이다 시발점. . 2500년 내내 로고스가 지배했다 야 이거 너무했다고 시비하기 시작한 것. , 이 요즘의 일이다. Logos에 어찌 감히 centrism을 붙여 그냥, center인데 근대 현세 모두 로. 고스의 지배인데 그렇게 된 마당에. - 로고스 참됨 학문이 기준이다보니, , - 아무리 최근에 들어와 서 다양한 장르에서 logos centrism-이건 벌써 부정적인 평가다 로고스의 법정 속에서 사는, 것 성찰해보자 그래서 포스트모더니티가 나오는 것이다, , - 고대 중세의 로고스와 근세의 로고스 는 다르다 신적 이성에 대한 인간 이성의 자율성 도전이다 인간 중심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 떠오르는 것이다 그건 최근의 일이다 진이 기준이다 진리가 기준이다 참이 기준이다 거꾸로. . . . 신화를 보고 예술도 보고 거룩함도 본다 우리에게는 참이 시작이기 대문에 거슬러 살피게 된다. . 진선미성 진선미성이라는 순서는 거꾸로 성미선진이라는 계보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이런. . 진리이다.

자 여기 이제 등장한 학문은 진의 기준으로 선도 본다. .

와 선함 아름다움 거룩함 그런데 내내 진리가 기준이다 와 무엇무엇

Rationality , , . . Rationality .

이제야 힐끗 다른 걸 본다 그래서 신화가 각광을 받는다 학문에는 담겨질 수 없는 문화의 보고. .

(5)

들이 신화에 나타난다 그래서 인문학적인 드라이브가 예술까지 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드라이브. 에서 종교는 배제되어있다 나이테를 잘 보면 당연히 다 들어있는데 그걸 제끼는 방법으로 학문. , 을 해왔다 재단하고 난도질을 했다 학문이 법정이 되어서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자연과학이. . .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근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한계를 알아내고 자. 폭한다 그게 현대다 근세의 데카당스에 합류하고 정신에 대해 물질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살짝. . , , 조금 이후 20세기 초 자연과학이 스스로 한계선언을 한다 보편타당성 객관성이 가능하지 않고. , 타당하지 않다 자폭 고발이다 과학이 객관성의 허상을 고발한다 거기서 로고스 센트리즘 공격. , . . 이 결정적으로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나이테로 이미 갖고 있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예술도 종. . . 교와 예술도 중세는 안 그랬는데 근세에 찢어졌다.

탈종교적인 예술가 세속적인 예술과 종교적인 예술의 찢어짐의 근세는 뒤로하고 현대는 또 다르. 지.

칸트는 1700년대 후반 사람으로서 200년 전의 사람이니 현대적일 수는 없고 근대적인 버전으, 로 나이테를 확인하는 작업을 갖는다 현대 보편타당성 신화 예술 몰아넣었던 것은 헤겔도 그. - , - 랬다 칸트는 좀 다르다 헤겔은 종교 예술 사이의 반관계하고 철학을 위에 놓는다 칸트는 어떨. . . 까 미리 짐작 해보자 그 안에 나이테를 확인한다 여기에 책들을 딱딱 대입할 수 있을텐데 무? . . , 슨 근거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을까 단편적인 이해는 여러분이 밀도에 따라 좌우할 수 있겠지. 만 제 표현을 다시 쓰자면 나이테를 거슬러서 자기 속에서 이걸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문명사, , . 의 진화과정 속에서 부득불 왜곡된 나이테의 회복도 칸트에게 적극적으로 있다 그럴 때 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가 갖는 의미를 얻는다 판단력 비판을 우리가 읽지는 않지만. - 종교 비판을 살피 기 위해서 최소한 찍고 갈 것만 잡아가지고 여기까지 왔다.

근대적인 학문과도 근대적인 자리매김을 교부한 칸트의 작업에서는 근대적인 버전으로는 어떻게 될지 예측해볼만하다.

이게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체적으로는- 원시 원초적인 그리스도교로 힘과 거룩함이 이루어졌겠고. 아름다움은 에전 에배 동방정교회는 혁명적인 전환은 없었다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 . 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경전까지는 한 묶음이다 학문적인 대입은 별로 안 했다 서방 가톨릭 교회. . . 는 스콜라주의로 상당히 학문을 발달시켰다 개신교회는 이 모드. ㄴ것 거룩함과 예술적인 차원, 을 뒤로 하고 경전과 학문에 집중했다.

종교는 문호화 과정에서 일상화하면서 동시에 왜곡을 겪어왔다.

칸트는 이걸 다룬다 그 시대의 방식으로 물론 이 계보의 방식으로 정확하게 아구가 맞아떨어지. . 지는 않는다 종교비판. - 근세인의 종교비판 그 이후 헤겔이 집대성하는 종합 그런 비판 과정을. . 거치지 않고는 앞으로 뒤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 뒤의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칸트 개신교는 물론, ! 카톨릭 신학도 내내 씨름하고 있다 현대 해석학도. - 칸트의 분기점이 없었더라면 이런 게 있을, 게재가 없다 선험적 감성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나온다 시간과 공간 시간은 내적 공간은 외적. . . , . 칸트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이 되었다 고전 형이상학에서 공간이. 당연히 기준이다 부동성의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고정이 기준이다 그런 동기는 인류 구원이었. . . 다.

시대적인 씨름이 현대까지 이어지는 칸트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 서- BC 500년까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는. 5만년. 495세기의 이야기라면- 이제

(6)

는 2500년의 이야기다 그런데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 제목만 몇 가지 지르고 이어지는 이야- 기니까 조금만 지르겠다 그래서 조금 더 할 것인데 아름답지 못한 전통은 제 시간에 끝나지 않. - 는 것이다 첫 시간이니 양해를 해주시고. .

자. BC 500년에 시작한 학문-

철학과 신학의 관계 구조와 역사를 중심으로; .

힘이 신으로 불리고 학문의 영역에 등장하면서 참으로 등장한다, .

이건 계보적으로 순서가 중요하다 힘이 신으로 불리고 학문의 출연에서 참으로 불린다 제 철. , . 1 학으로 형이상학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는 것이 오르페우스 전통에서 나온 신화의 형이상학화이. 다.

학문이 추구하는 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난 물음과 대답의 방식으로 추구한다.

그러면 참을 무엇으로 묻고 있음과 없음으로 본다 자세한 건 다음 주에 하고 큰 거만 보자. . . 있음과 없음 버전은 각양각색이야 하지만 반대야 두 개로 봉착되는 형이상학 거기서 어떻게라. . . . 는 물음이 등장한다 최소한 모순되지는 말아야지 참의 동일성 하나여야 할 것을 요구한다. . , . 6개 의문사 중에서 모두 다 바리에이션이 끼어들지만 무엇은 같다 언제 어디서 묻든지 무엇 물음은. 동일한 답을 구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순이다 그래서 어떻게가 나왔다 이것이 되었든 저렇게 되. . . 었든- 앎의 문제 인식론 앎과 모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주무르냐에 따라 또 결과가 나온다. . . 반비례적인 관계가 나온다 모름은 훨씬 더 진지하다 순수이성비판. . -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불변성을 보고 시간은 공간의 이동이다 칸트에게는, , . ? 시간은 내적 공간은 외, 적이다 어떤 것이 먼저. ?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형이상학적인 범주였다 첫번째가 실체가 나머지. 개는 속성 없어도 실체는 실체로 성립한다 타자 의존적인 관계가 아니다 관계의 결정적인 요

9 , . .

소- 시간과 공간 실체에서는 배제가 된다 무공간적 그래서 실체는 영원하다 형이상학에서 그. . . . 렇게 그려졌다 하지만 칸트에게 시간과 공간은 속성이 아니라 감성의 장치로 들어온다 여기. . - 내가 알지 않아도 시간과 공간 안에 얘와의 관계 안에서 인식행위의 틀로 시간이 들어온다 저, . 기 있던 것이 들어온다 순서 이상의 혁명이다 근세적인 전환이다 현대는 더 뛴다 현대에서는. . . . 어떻게 전환되는가? 유물론자들이 실존주의자들이 해석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은 어떠한가, , ? 당연 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속성으로 머물 수 없다 틀린 것이 아니라 불충분하다 점점 더 넓어지고. . 깊어진 인간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그래서 새간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 대상과의 관계성에서 첫단계로서 시간과 공간이었는데 앎으로 이제 들어왔다 있음의 영역에서 앎으로 들어왔다 하지. . . 만 헤겔 반동 사조의 다양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공유하는 것은 전부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직조, 물로 본다 삶을 구성하는 틀로 본다 시간 공간의 자리가 이렇게 달라진다 모름이 등장하니 이. . . 런 게 생각났다 왜 그럴까 경험론자들은 이 모름을 중시했다 이성론자들은 필연성을 추구했지. ? . 만 경험론자들은, probable이다 이게 칸트로 온다 독단적인 꿈에서 깬다 그 중요한 선언은 흄. . . 에 의해 나온다 이중적이다 그걸 선취적으로 끌어준 양반이 경험론자이다 그래서 롸크와 흄을. . . 꼭 봐야한다.

무엇 어떻게를 결합한다 목적과 방법 모순을 지양하고 동화한다 물음을 결합해서 있음과 앎을- . . . 결합한다 모순 대문에 어떻게가 등장했는데. - 이걸 극복하기 위해 두 개를 결합했다 헤겔 그래. . 서 고중근세의 종합이다 그리고나서 왜가 나온다 역설이다 우리는 어떻게와 무엇 어떻게 사이. . . - 에 있을 것이다 칸트는 둘 사이의 가교 자리이다 무엇 어떻게와 왜 사이에는 현대의 반동이 생. . - 긴다.

신학사적인 구조에서는 이런 대비들이 있다 자세한 것은 칸트 이야기로 넘어들어가면서. 4개의

(7)

비판을 살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왜 칸트에게는 애써 진선미 판단력에서 종교 이야기까지 가게. . 되었을까?

저 옛날에 있음은 합리주의 없음은 신비주의 처음 듣는 사람은 암호 같을 수도 있는데 이성론. , . . 경험론. 이성과 경험이 대비구도에 있다.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합리주의 경험주의는 우리를 하게 할 수 있다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와의 관계에서 등장한다 의지주의까지 합쳐서

misreading . .

지정의 신관이다보니 그렇다 누가의 등장과 함께 인식의 주체로 인간이 등 아한다 주지주의. . ㅈ . , 주의주의 주정주의로 나온다 정통주의 자유주의 경건주의의 자리에 나타난다 그 자리에 칸트가, . . 있다 그리고 육체의 반동으로 물질 실존 실증이 나타난다 환원을 거부하고 다름을 주목하고 차. . , 이를 중시한다 그게 현대로 간다 그랬을 때 칸트는 같음의 이야기에서. . ? - 같음의 철저한 지배에 대해 다름의 해방의 전초적인 작업을 한다.

이미 물자체와 현상을 말했을 때 그는 물자체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불가지 이것은, . . 오늘날 우리에게 이야기되는 인식론자들이 열심히 구워삶은 이성론자와 경험론자들은 공유했다, , . 대상을 주체로 끌고 오는 것은 공유했다 칸트는 종합한다 그런데 물자체 불가지와 함께 다름의. . 자리를 만들어낸다 현대 철학사가들은 칸트와 헤겔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본다 한 줄로 볼 때는. . 칸트나 헤겔 모두 타자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또다른 입장에서 헤겔에서 타자가 없다. - 타자를 분명히 띄웠다 하지만 자기화한다 지양 종합이 그것이다 칸트에게도 그런 궤적이 있다 같은. . , . . 라인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물자체 불가지를 끝까지 고수했다 그래서 실천의 영역으로 넘, . 어가야 한다 헤겔은 이걸 안 남겨둔다 헤겔에게도 이게 문제였다 헤겔에게도 타자가 있었지. . . . 하지만 그걸 못 견디고 남겨두지 않았지 지금 난 인간 개체의 삶에서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 - 다 개체실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절대 보편이 중요한 거다 그 그림이다보니 다름을 모르지. . . 않았는데 타자의 자기화 대상화라는 이름의 주체화를 결국에 도장 찍는 방식으로 나갔다 칸트. . . 는 물자체에 불가지 영역을 남겨줬고 그래서 근세의 선구적 통찰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 자기, . 관점에서 써먺는 것이겠지만.

그런 맥락인데 이제 그 맥락에서 칸트의 작품- 4 .개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이성 종교, , , .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마치겠다.

하나 더 하자면- 우리 전개과정의 그림- 최소한의 힌트로 하나의 궤적을 읊어보자면- 저 뒤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앞의 이야기가 어떤 위치를 지니는지 선이해를 가지면 더 유기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다. .

이게 마지막 위치 잡는 작업이다 저 계보에서 칸트만 그렇겠나 토마스도 다 했다 다 깔끔하게. ? . 네 단계의 가치를 와꾸에 맞게 체계화하지는 않았지만 비중이 달라도 슬쩍 다 건들게 되어있다, . 토마스도 아우구스티누스도 체계적으로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이 이 양반에게서 벌어진 것이다. . 이들 사이의 관계를 봐야한다 원리와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희망이 어떻게 연관되는 방식으로. 그려질 것인가 그게 이성 종교 안에서 다뤄진다 선에 대해서 굉장히 윤리적으로 이야기한다 칸. .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지성 의지 감정

진 선 미 성

원리 당위 현실 희망

철학 윤리 예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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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의 입장이고 자기 철학의 반영이고 하지만 선하고도 구별되는, . - 앞에서는 도덕이자 신화였지 만 여기는 윤리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는 굉장히 윤리적인 버전이다 그래서 칸트가 종교를 윤리, . . 로 환원했다는 비판을 받는데 그런데 이 윤리와도 구분되는 종교의 이유가 종교 안에 있다 그. . 걸 주목하기를 바란다 그게 종교 비판. - 현실 제도적인 문제까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거기에 대. 해서 영수가 열심히 연구해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좌중에 기여할 사람이 많다 루소 열심히. . , 베버 열심히 공부한 기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기여가 될 것이다 윤리 축소. . , 환원이라는 칸트의 철학적 종교론이 나름대로의 이유 윤리적인 환원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 , 전히 제 3지대? 제 지대네 제 지대는 누가 쓰는 말인데 하여간 제4 . 3 . 4지대의 저것이 윤리와도 구별되는 관계가 여기에도 있다 원리 당위 현실이 굉장히 형식적인 언어이고 내용이 무엇인지. , 는 껍질을 벗겨봐야 한다 그래서 벗기고 꺼내고 집어넣고 읽어야 한다.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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