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물리 이야기] 물리학자에서 사회개혁가로 - 이강영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물리 이야기] 물리학자에서 사회개혁가로 - 이강영"

Copied!
2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물리학과 첨단기술 OCTOBER 20 1 9 49

물리학자에서 사회개혁가로

이 강 영

저자 약력 이강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물리학 이론을 전공해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스핀>, <불멸의 원자>, <보이지 않는 세 계>, <LHC> 등이 있다. (kylee.phys@gnu.ac.kr) 그림 1. 로버트 W. 풀러. (http://www.robertworksfuller.com) 웜홀은 시공간에서 떨어져 있는 두 점 을, 시공간을 통하지 않고 직접 연결하는 구조를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 성 이론이 기술하는 장 방정식을 풀어서 웜홀이 되는 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빈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플람(Ludwig Flamm, 1885‑1964)이다.[1]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이 발견되고 불과 1년이 지났을 때였다. 하지만 플람의 이 기괴한 해는 그 후 19년 동안 물리학자 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1935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은 플람의 해를 알지 못한 채 그의 공동연 구자인 네이선 로젠(Nathan Rosen, 1909‑1995)과 함께 이 기괴한 해를 다 시 발견했고, 비로소 이 해는 물리학자들 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2] 이후 한동안 사람들은 이 해를 아인슈타인-로젠 다리 (Einstein-Rosen Bridge)라고 불렀다. 이 해는 잘 알려진 슈바르츠실트의 해에서 특이점을 제거하기 위해 좌표계를 교묘 히 변환해서 얻어진 결과였고 지금은 이 런 웜홀을 슈바르츠실트 웜홀이라고 부 른다. 1957년에 프린스턴 대학의 존 휠러 (John Archibald Wheeler, 1911‑2008) 는 그의 학생이던 찰스 미즈너(Charles W. Misner, 1932‑)와 함께 쓴 논문에서 이런 형태의 해에 관해서 논하며, 좀 더 생생한 이미지를 주는 이름인 “웜홀”을 제안했다.[3] 웜홀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다. 휠러는 그 해 또 다른 논문에 서 슈바르츠실트 웜홀이 아닌 다른 형태 의 웜홀을 제안하기도 했다. 웜홀을 통하 면 전혀 다른 곳의 시공간으로 갈 수 있 으므로, 웜홀은 상대성 이론을 위배하지 않고도 빛보다 빠르게 먼 우주로 이동하 거나, 심지어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고 SF에서 각광을 받았 다. 하지만 1962년 휠러는 그의 또 다른 학생이었던 로버트 풀러(Robert Works Fuller, 1936‑)와 함께, 아인슈타인-로젠 다리 형태의 웜홀은 불안정해서 곧 사라 져 버린다는 것을 보여서,[4] SF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웜 홀이 별과 같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적인 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풀 러와 휠러에 따르면 이 웜홀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탄생하고 팽창했다가 수축 하고 마침내 사라진다. 이들이 밝힌 전형 적인 웜홀의 일생은 이렇다. 우주 어딘가 에 각각 두 개의 특이점이 존재하면 이 특이점들은 4차원 시공간을 넘어서는 공 간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 만약 두 특 이점이 만나면 웜홀이 형성된다. 웜홀이 만들어지면서 웜홀의 둘레는 점점 팽창 했다가 특이점들이 멀어지면서 다시 수 축하고, 결국 연결이 끊어지면서 웜홀은 사라진다. 남는 것은 다시 두 개의 특이 점들뿐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웜홀을 통과 해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가 능하지 않다. 훗날 스티븐 호킹이나 킵 손 같은 이 들이 웜홀에 특이물질(exotic matter) 등 을 더해서 안정된 웜홀을 만들려고 시도 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럴듯한 결과 는 얻어지지 않았다. SF 팬들에게는 실 망스럽게도 아무래도 웜홀을 통한 시공 간 여행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인 모양 이다. 나아가서, 사실 기존의 웜홀조차도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극히 의심 스럽다. 블랙홀 등과는 달리, 웜홀은 중 력 방정식의 해로서 가능하기는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는, 적어 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생각하기 어 렵기 때문이다. 휠러와 함께 웜홀의 탄생과 죽음을 밝 혀 낸 로버트 풀러는 오하이오 주의 오 버린 컬리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 의 존 휠러 밑에서 공부했다. 풀러는 핵 분열이 일어날 때의 중성자 생성을 연구 해서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직 후에 휠러와 함께 위의 웜홀 논문을 썼 다. 졸업 후 풀러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서, 당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핵물리 학과 일반 상대론 분야를 연구하고, 분야 의 최고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인 휠러를 지도교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당대 물 리학의 최고의 중심지였던 컬럼비아 대 학에서 경력을 시작한 풀러는 물리학자 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 같았 다. 그러나 그는 돌연 물리학자로서의 인 생을 마감한다. 1970년 풀러는 그의 모교인 오버린 컬리지의 제10대 총장이 되었다. 총장이

(2)

물리학과 첨단기술 OCTOBER 20 1 9 50 그림 2. 멕시코 올림픽 200미터 시상대에서 저항 의 표현을 하는 스미스와 카를로스. (https://spartacus-educational.com/CRsmithT. htm)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 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힐 만큼 파격적인 젊은 총장이었다. 그가 총장 자 리를 수락한 이유는 변화를 갈구하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 문이다. 원래부터, 풀러가 학생이던 1950년대에도 오버린 컬리지는 리버럴 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과 흑인에게 동등 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옹호하 는 입장이었다. 1960년대에는 이런 주장 이 사회 전체에 공격적으로, 저항적으로 솟구쳤다. 풀러가 재직한 4년 동안 컬리 지는 격렬한 변화를 치렀으며, 이러한 변 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인권과 차별 철폐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 력을 보여주는 한 가지 상징적인 사건으 로, 백인 위주의 대학 사회에서 최초로 네 명의 흑인 육상 코치를 고용한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그 중 한 명은 1968 년 멕시코 올림픽 200미터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Tommie C. Smith, 1944‑) 였다. 스미스는 멕시코 올림픽 200미터 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 으나, 미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 로 3위를 차지한 동료 존 카를로스(John Wesley Carlos, 1945‑)와 함께 신발을 벗고 검은 양말만 신은 채 시상대에 올 라 한 짝씩 검은 장갑을 나눠 끼고 주먹 을 쳐드는 퍼포먼스를 벌려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었다. 이 사건은 흑인 인권 투쟁의 중요한 장면이 되었지만,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그 대가 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미국에 돌아온 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은 테러와 살해 위협까지 받았으며 직장을 잡기 어려워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것이다. 오버 린 컬리지는 그러한 스미스를 채용함으 로써 학교의 입장을 잘 보여주었다. 총장을 그만 둔 뒤 풀러는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세계 각지를 다니며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고 이해하려 했다. 1977년에는 팝 가수 존 덴버 등과 함께 “기아 프로젝트 The Hunger Project”를 창립해서 세계 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힘썼다. 이 단체의 일원으로서 풀러는 카 터 대통령을 만나서 대통령 직속의 세계 기아 위원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했 다. 냉전 시기에 소련을 오가며 냉전을 완화하기 위한 민간 활동을 벌이기도 했 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 활동을 위한 비영리 단체 “인터뉴스 Internews”의 이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회개혁가로서의 풀러의 사상은 그가 만든 랭키즘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다. 랭키즘이란 랭크 rank, 즉 서열의 차이에 의해 부여되는 권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남용하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즉 서열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풀러는 이러한 서열 주의가 모든 차별의 핵심이며, 모든 ‘주 의’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그동안 인간은 인종차별, 성 차별 등을 겪어왔고, 아직 모두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들 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적어도 소위 1세계에서는 이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이나 성 차별을 주 장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서열에 의한 차별은 아직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고, 사실 아직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도 않다 는 것이 풀러의 주장이다. 그래서 서열상 우위인 사람, 소위 섬바디는 자기보다 아 래 서열의 사람, 소위 노바디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차별하고 있다. 따라서 노바디 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깨달아야 하고, 동시에 섬바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특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끊 임없는 견제와 감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풀러는 사회 개혁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도 랭키즘 에 관한 그의 생각을 집약한 책이라면 2003년에 발표한 <섬바디와 노바디: 서 열의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 Somebodies and Nobodies: Overcoming the Abuse of Rank>일 것이다.[5] 이 책은 <신분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었다.[6](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7] 참고문헌

[1] L. Flamm, Beiträge zur Einsteinschen Gravitationstheorie (Comments on Einstein’s Theory of Gravity), Physik- alische Zeitschrift XVII, 448 (1916). [2] A. Einstein and N. Rosen, Phys. Rev.

48, 73 (1935).

[3] C. W. Misner and J. A. Wheeler, Ann. Phys. 2(6), 525 (1957).

[4] R. W. Fuller and J. A. Wheeler, Phys. Rev. 128, 919 (1962).

[5] R. W. Fuller, Somebodies and No- bodies: Overcoming the Abuse of Rank (New Society Publishers, 2003). [6] 로버트 풀러 지음, 안종설 옮김, 신분의 종말

(열대림, 2014).

참조

관련 문서

만약에 사람이 자유낙하를 한다면 자신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주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간단한 생각에 깊은

특정 작품이나 , 특정 작가의 특징적인 문체를 흉내 내 어 그것을 전혀 맞지 않는 상황에 적용시킴으로써 아이 러니컬한 효과를

상징의

Ø 고전물리학에서는 앞에서 오는 빛은 기차의 속도와 더해지고 뒤에서 오는 빛은 기차의 속도를 빼야 하므 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다르게 관측되어도 이상할 것이

그러나 이는 어디까 지나 분량이 짧다는 것이지 작품이 간직한 세계의 깊이가 결코 작거나 적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단형의 분량에

율격과 운율의 문제...

 When the price of an item declines, the substitution effect always leads to an increase in the quantity demanded of the good.. Income

참고 ) 문화상징을 효과적으로 구사한 시인은 종교적인 상징을 개성적 으로 창출한 한용운 , 서정주 , 김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