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이전: 3년을
뒤돌아보며
김상규 (국토연구원) 세종시로 이전한지 벌써 3 년이란 세월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세월이 빨라진다고 느끼는 것인지... 이전 후 적응 하고 정리하면서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것인지... 청사 앞으로 흐르는 금 강처럼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간다.<세종시 이전을 위한 준비와 막연한 두려움>
세종시 이전을 위한 신청사 설계는 도서관 실무자나 기타 직원들은 알 수도 없게 설계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 혁신도시 이전기관이나 세 종시로 이전하는 자체청사를 소유한 기관들도 청사설계에 많은 관심을 가 지고 있을 때였다. 2012 년인지 2013 년인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 만, 「신청사이전추진단」 담당자와 설계사무소 담당자가 도서관 설계도를 가 지고 찾아왔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설계한 도서관 설계도는 첨에는 뭐가 뭔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정말 이게 도서관을 만들려고 설계한 것인지 어 이가 없었고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고쳐야할지,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내 말을 따라서 수정을 해줄 지도 의문이었다. 인력도 없는데 도서관 출입구가 2 개이고, 도서관은 2 층인데 1 층 식당에서 아무런 통제도 없이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은 출입문이 3 개인 것이다. 이전담당 자 및 설계담당자와 한참을 이야기 하는데, 소통도 안되고 요즘 도서관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참으로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 시작 단계인데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한숨만 나왔다. 국토연구원은 이제 한참 신청사 설계가 진행중인데, 2013 년 12 월 KDI 가 세종으로 이전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너무 딱하 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식당도 없고 아직 허 허 벌판에 제대로된 인프라도 없다고 하는데...국토연구원은 청사가 매각이 되지 않아 청사 설계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 다. 청사 매각공고 입찰을 10 번이나 하였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속으로는 무지무지 좋아했다. 청사가 매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늦게 이전을 할 수 있어서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자금을 차입을 해서라도 내려가라고 압력을 넣는다. 원장은 수시로 청와대로 불려다닌다. 그러나 노조에서는 차입에 대한 이자 를 정부에서 대납을 해주면 OK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절대 불가입 장이다. 정부에서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대납해주는 것도 선례가 없을뿐더 러 해줄 리가 절대 없다. 그 당시 우리연구원 노조는 강성노조로 유명했다. 그 당시에는 노조가 너무 이쁘고 고마웠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정부에서는 청사가 있는 안양시에 압력을 넣어서 용도변경을 지시한다. 안 양시에서는 용도변경시 일부 기부체납을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허가하였다. 용도변경을 함으로써 청사의 가치는 엄청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청사가 매각되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전 준비를 해야했다. 2015 년을 전후해서 모든 이전 대상 연구기관들이 세종시나 지방혁신도 시로 이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힘든 이전 준 비를 끝내고 정착해 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참 걱정도 많이 되었다. 연구원에서는 나 이외에는 다른 누구와도 도서관 공간 설계와 이전에 대해 상의할 직원이 없었다. 도서관 이전 준비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사실 그 당시 다른 공공기관으로부터 우리 연구원은 공 공의 적이 되었다. 혁신도시・기업도시 및 세종시 건설 등을 주도했으면서도 제일 늦게까지 버티고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 년 7 월에 착공식을 하였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했고, 맘이 바 빴다. 도서관 공간은 평촌 청사 공간과 비슷하게 주어졌다. 최소한 20~30%는 더 넓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면서 먼 저 이전한 농촌경제연구원, 조세연구원, KDI 등 여러 기관들을 둘러보았다. 공간설계와 서가배치 등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공사현장 에 내려와서 체크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도서와 서가를 어떻게 배치할 지 고민을 하였다. 열람공간과 붙어 있고 많이 이용하는 동양서 서고와 연 구보고서 및 희귀도서 등을 배치하는 보존서고를 분리해서 배치하기로 하 였다. 보존서고는 모빌랙과 항온항습을 갖추고 약 9 만권 정도 소장할 수 있게 설계하고 일반서고는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모든 서가와 기타 가구들 의 높이를 150cm 로 맞추어 개방감과 금강까지의 시야를 확보하도록 하였 다. 이 부분이 지금까지 제일 잘한 결정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도서관 내부 공사 사진> <국토연구원 신청사 조감도> 도서관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서 인테리어 업체와 몇 달에 걸쳐서 준비를 하였다. 정말 욕심을 내서 준비를 했다. 조명이며 개인공간, 도서관 입구, 회의공간, 기둥, 벽, 천장 등. 그런데 원장이 갑자기 틀어버린다. 어이구. 첨 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다 준비하고 직원들 의견수렴까지 했는데 안된다 고 한다. 허망하기도 했지만 업체한테 너무 미안했다. 주위에서 그냥 욕심 내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후에 원장은 다른 연구원 도서관들은 조 명도 있고 개인공간 등도 있는데 우리는 왜 없냐고 따지길래,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다. 당신이 반대하지 않았냐고,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전문가라면 원장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관철시켰어야지 하고~~~)
<본격적인 이전>
2017 년 1 월 7 일 드디어 이전이다. 첫 이전 선발대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먼저 빠져야 다른 사무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가 있다. 그렇게 도서를 포장을 해서 이사업체들과 같이 세종으로 먼저 내려왔다. 세종 신청사는 아직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로비며 사무실이며, 도서관 바닥공사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갈 줄 알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려왔다. 그런데 아침 새벽부터 작업을 해야한다고 해서 꼼짝없이 묶이게 되었다. 중간중간에 체크를 안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12. 30 일에 계약한 오피스텔이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그냥 5 일 동안 잠만 잘 수 있는 정 도였다. 1 월 13 일부터가 되어서야 연구원 전체 이전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몇 일 먼저 내려왔다고 다른 직원들한테 안내사항이며 이것저것 알려주었 다. 직원들은 한마디로 맨붕이었다. 공사는 계속되었고, 소음과 먼지가 끊이업복을 입고 정신없이 일하고 저녁에는 매일 술만 마신 것 같다.. 도서관은 내려오자마자 서비스를 오픈하였지만 이용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본인 들 연구보고서 마무리하고 인쇄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국토연구원 도서관 전경-1> <국토연구원 도서관 전경-2>
<이전 후의 삶과 지역사회 네트워크 형성>
이전하고 3 개월이 지나자 업무는 안정화되어 가는데, 직원들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 복장은 점퍼에 청 바지나 등산복들이었다. 깔끔한 신청사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서로서 로를 보면서 웃었다. 전통시장에 나온 상인처럼 보인다고... 내부직원들에 대한 서비스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으나, 외부 이용자가 거의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평촌에 있을 때에는 방학을 이용해서 방문 하는 외부 이용자들(수도권 학생이나 교수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지역상 생과 공공기관 개방을 통한 사회가치 실현”이라는 거대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홍보를 해도 외부인 방문은 거의 없다. 수도권 학생이나 교수들이 찾아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지역 주민들은 방문해도 수준에 맞는 볼만한 도서가 없다.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해야할 지.. 찾아오지 않으면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다. 일단 주민들에게 국토연구원 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2019 년 11 월에 “세종시민과 함께하는 국 토이야기”라는 주제로 세종도서관에서 인근 주민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2 회에 걸쳐 강의를 진행했다. 강사로 나선 박사님들도 공무원이나 전문가들 앞에서만 보고하거나 발표를 하다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려니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세종도서관 담당 직원들이 보도자료를 내 고 홍보도 하고 많이 지원해 주었다. 호응도 좋았고 고급지고 날카로운 질 문들도 많았다. 특히 2019 년 12 월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제 5 차 국토종합계획과 인구감소와 도시의 변화 등 앞으로의 어떤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하 는 당부의 말도 꽤 있었다. 2020 년에도 세종도서관에서 새로운 내용과 방식으로 어떻게 강의를 할 지 경영진과 이미 협의를 하였다. 이 외에도 초중고에 직접 찾아가서 강의 를 통한 재능기부도 구상하고 있다. 연구원을 알리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일단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되고 아무리 문턱을 낮 춰도 관공서는 심리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시민대상 강의> <세종시 시민강의 보도자료> 그리고 지역사회공헌활동을 하기 위해서 교도소를 찾았다. 2019 년도 전 국도서관운영평가 평가위원으로 전문도서관을 대표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구치소와 교도소 도서관을 실사 방문하면서 너무 열악한 환경을 보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전국도서관운영평가라는게 평가만 하지 평가를 통해 실제적으로 도서관에 도움을 주는 정책은 펴지 못하고 있다고 개인적 으로 생각했다. 우수도서관으로 선정이 되면 상장과 상금이 수여되는 것 외 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런 평가를 통해서 열악한 도서관을 위한 다양 한 정책이 도서관정책기획단이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에서 나와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독서량은 사실 우리 일반들보 다 더 많다. 요즘 일반인들은 대부분 스마튼 폰에 중독되어 독서를 거의 하 지 않는다. 하지만 교도소는 스마트 폰을 이용하지 못하고, 운동이나 TV 시 청, 종교활동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독서를 한다고 한다. 교도관 이야기로는 독서가 재소자들의 교화와 출소 후 직업선택 등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구입할 예산이 없다. 예를 들어서 공주교 도소 같은 경우에도 연말에 남은 약 50 만 원의 비용으로 겨우 책을 구입 하는 실정이다. 주로 무협소설책이나 에세이, 시집 등과 직업에 관한 도서
그렇다고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교도소에서 만난 재소자들 은 우리가 영화나 TV 에서 보는 것처럼 험악하거나 무섭지 않았다. 미디어 를 통한 편견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교도소에 처음 가서는 솔직히 무서웠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재소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에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재소자들이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교도관이라고는 도서관 담당 자 한 명이 나와 같이 있었다.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피해야할지, 아 니면 그냥 당당하게 걸어가야할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교도관은 그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걸어가라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 재소자들이 바로 앞 으로 왔고 교도관과 웃으며 인사하면서 지나갔다. 도서관은 운동장에 있었 다. 아마 우리나라 교도소 도서관 중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다. 운동장에서 또 재소자들이 만났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탁구, 달리기, 족구, 축 구, 웨이트 등 수십 명의 재소자 사이를 지나 조그만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 서관은 작았지만 정말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 놓았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서가들은 재소자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실력이 대단했다. 튼튼하고 디 자인도 좋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느꼈다. 재소자들의 도서관에 대 한 애착과 맘이 느껴졌다. 공모를 하여 도서관 명칭도 지었다. “꿈과 미래를 여는 열린 책방”
‘재소자들이 생각하는 꿈과 미래는 무엇일까?’
사무실로 돌아와 6 개월마다 폐기하는 시사잡지를 기증하기로 하고 한 달 뒤에 약 50 종 400 권 정도를 기증하였다. 교도소에서는 시사잡지의 인 기가 최고라고 한다. 주간지나 월간지를 통해 세상 돌아가 것을 알아가고 시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란다. 올해에도 이 도서 기증행사는 계속 이어 갈 것이고 공주교도소와 자매결연 맺기도 추진할 예정이다. 더불어 국토연 구원 직원들의 동참도 유도하려고 한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보지 않는 책들 을 모아서 보낼 것이다. 며칠 전에는 부원장님의 사모님이 활동하고 있는 세종시 00 주부합창단 에서 공주교도소에 노래봉사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중간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공주교도소에 이런 내용을 전달하니 흔쾌히 승낙하였고 봄쯤에 행사를 하기로 하였다. 공주교도로소부터 감사장도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교도소로부터 감사장이라~~~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이지만 한 번쯤 은 가 볼만한(죄 짓지 않고) 곳=>교도소’ 세종시 이전해서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내려와서 가장 소중 하고 자랑스러운 일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도서관을 이용한 지역사회 봉사!!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교도소 도서관 내부-1> <교도소 도서관 내부-2>
<시가 있는 가족 이야기> <도서관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