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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사 증언 청취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극복 대책

3. 현지인사 증언 청취

답 : 오래전부터 심장에 이상이 있어 국가병원에서 제공하는 무료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뇌졸중이 생겼습 니다. 재향군인 고엽제 피해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5명 낳았는데 2명은 태어나서 원인 모르게 바로 죽고 3명은 뇌성마비 장애, 지체 장애. 시각 장애자로 성장 했습니다.

문 : 무어라 감히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동안 한 가 정이 정말 큰 고통 속에 살았군요. 지금 뚜언 옹의 건강 상태는 어 떻습니까?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있나요? 그리고 자녀 들 생활은요?

답 : 국가병원의 지속적 혜택으로 지금은 몸이 많이 회복되어 걸어 다니 는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만 조심하고 있습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겨 울에 추운 북쪽보다 남쪽 호치민의 따뜻하고 상쾌한 날씨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전쟁 군인 참전자로서 매월 연금 5,000,000만동(25만원) 정 도를 받기 때문에 고엽제 피해에 대한 보조금은 없는 것 같고(연금 에 포함된 금액인 것 같음) 의료보험 및 병원 이용. 교통비 등은 전액 또는 일부 무료 혜택을 받습니다. 국가의 재정 형편에 따라 혜택이 더 확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애자 자식들에게는 3명 각 자에게 따로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 단위 합산으로 보조금 의 최대 금액이 넘지 않게 2,800,000만동(14만원)을 받고 있습니 다. 그리고 재활시설에서 무료치료를 받고 장애자를 위한 국가기업 에 우선 취업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문 : 뚜언 옹은 전쟁 당시 어디에서 주로 복무 했고 어떤 일을 했습니 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답 : 나는 하사관이었습니다. 베트남의 최남단 까마우에서 남쪽의 특수 민간 게릴라를 훈련시키는 교관 임무를 주로 수행 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해상 루트를 통해 집결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 고엽제를 집중적으로 살포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전쟁의 비극은 더 이상 있지 말아야 합니다.

증언청취 #2 : 참전군인 미망인과 2세에 대한 지원(하노이거주) 문 : 당신의 인적 사항을 먼저 알려 주시고 이야기 하도록 했으면 합니

다.

답 : 내 이름은 응엔 반 응옥 (NGUYEN VAN NGOC, 여성) 이고 나이 는 63세 입니다. 현재 사는 곳은 하노이시 하동현 쓰완 마을에 삽 니다.

문 : 당신의 가족 중에 고엽제 피해자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 데, 누구이며 어디가 아픈가요?

답 : 네. 39살 먹은 내 외아들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남 편과 우린 결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 기뻐했는데, 애기 가 소리를 전혀 못 들어요. 의사가 귀머거리래요.

문 : 청각 장애군요. 남편이 전쟁에 참전 했나 본데, 어디에서 싸웠는지 들은 적 있나요?

답 : 1970년에 17도선이 있는 꽝찌성에서 주로 근무 했다고 그래요. 남 편은 10년 전에 폐암으로 죽었어요. 폐암에 걸려 1년 동안 국가병 원에서 무료 치료는 해 주었는데, 지금의 아들처럼 돈은 안 주더군 요.

문 : 아들은 현재 무슨 보조금을 받고 있나요?

답 : 남편이 죽고 난 몇 년 후부터 참전자 가족이 고엽제 피해로 장애가 있으면 정부에서 정밀 검사 후 도와 준다는 말이 참전자 사회에 은 밀히 들렸어요. 그래서 아들의 고엽제 피해신청을 하니, 2년의 최종 심사 끝에 남편의 폐암도 고엽제 피해 범위에 들었고, 그에 따라 당 과 국가에서 아들을 피해자로 인정 하더군요. 보상은 매월 900,000 만동(4만5천원)을 받습니다. 병원비는 면제되고요. 재활센터를 다니 라고 하지만 선천성이라 어렵고 다니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안 가요.

문 : 다른 참전자 피해자도 보상 금액이 똑 같은 가요?

답 :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제일 적은 금액을 받습니다. 제일 많이 받 는 사람은 2.800.000만동(14만원)까지 받습니다.

문 : 그러면 남편도 고엽제 보상금을 따로 받나요?

답 : 남편은 정부 규정이 만들어 지기 전에 죽었고, 참전 군복무 연금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문 : 그러면 주변에 아시는 살아 있는 참전자는 고엽제 피해가 있어도

별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가요?

답 : 잘은 모르지만. 참전 연금 액수가 보조금 보다 많으면 연금만 받고, 병원에 다니는 사회건강 보험증(정부지급)을 무료로 받는다고 그 래요. 그 외에는 보상이 없는 것 같아요.

문 : 주변의 고엽제 피해자로 정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전 쟁에 참전 했던 사람이나 그 가족들인가요?

참전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피해자 지원을 받지 못하는지요?

답 :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거의가 다 참전자들인 것 같아요. 경찰 가족 도 참전자로 들어갑니다. 베트남에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국가를 위 해 싸웠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전자가 우선인 것 같아요.

증언청취 #3 : 참전군인 3세 유자녀에 대한 지원(꽝남성 거주) 문 :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아름과 나이 그리고 어디에 사는지 말

해 줄 수 있어요?

답 : 제 이름은 레 티 타오 (LE THI THAO )입니다. 올해 19살 입니 다. 사는 곳은 꽝남성 땀끼현 번탕리 마을에 사는데 전에 살던 고향 은 땀끼현에서 서쪽으로 더 들어가 산이 많은 동네, 지앙이라는 마 을 이라고 해요. 시골보다 시설도 좋고 치료를 잘한다는 하노이에 왔어요, 현재 친척 이모집에 머물러 있어요.

문 : 현재 어디가 아픈가요?

답 : 피부의 온몸에 하얀 비듬 같은 각질이 생기고 가렵고 아파요. 그래 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몸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니 사람 들과 만나기가 두렵고 싫어요. 의사가 주는 약을 계속 먹고 발라도 5살 때부터 시작된 피부병이 낫지를 않아요.

문 :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도 몸이 아픈가요?

답 : 아버지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딱딱해 진다 그랬어요.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해요.

문 : 돈이 없는데 타오 군은 어떻게 의사를 만날 수 있어요?

답 : 몇 년 전에 우리 집에서 4시간 정도 바다 쪽으로 떨어져 있는 관광 도시 호이안에 사는 어떤 나이 많은 노인(일찍 돌아가신 우리 할아

버지 친구라고 함)이 우리 집에 여러 번 왔다 간 후 부터 내가 병 원에 다닐 수 있었어요.

문 : 혹시 타오 집에서 나라로 부터 돈을 받는다는 애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리고 타오가 병원에 갈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본 적이 있나요.

답 : 나중에 들은 말인데. 우리 할아버지가 프랑스 전쟁과 미군 전쟁 때 민간인 전사로 싸웠던 사람인데, 국가 기록에 누락 된 것을 할아버 지 친구가 당시 함께 일 했다는 것을 이리저리 증명한 결과, 내가 병원에 다니고 지금은 돈도 매월 1,000,000만동(5만원)씩 받는가 봐요. 그런데 아버지는 여러 번 의사를 만나고 검사를 했는데도 병 원에 갈수가 없었어요.

문 :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일도 하고 장가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 생각인지요?

답 : 의사는 몸이 좋아지면 조국전선(국가 보훈처를 말하는 것 같음)이 마련 해주는 일터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데, 가렵고 아프면 모두가 귀찮아요. 의사는 몸이 건강해야 결혼 할 수 있다고 걱정도 해줘요.

증언청취 #4 : 일반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빈딘성 거주) 문 : 몸이 불편 한데 만남을 요청해서 미안 합니다. 저는 당신의 친척 오

빠 히에우 씨의 소개를 받아 당신을 만나게 되어 고맙습니다. 먼저 인적 사항을 말해주고 어디가 아픈지 말해 주세요.

답 : 제 이름은 응엔 보 프엉 아인 (NGUYEN VO PHUONG ANH.여 성)이고요, 36살 입니다. 제 고향은 푸깟(PHU CAT)인데 그곳에 서 자라났습니다. 지금은 빈딘(BINH DINH)성에 살고 있는데, 하 노이는 치료에 필요한 정보와 고엽제 피해자 혜택에 대한 친척 오 빠의 도움을 받고자 1년에 2번 정도 빈딩성에서 오곤 합니다.

고향에서 학교 다니고 결혼도 했는데 첫 아기가 사산 되어서 큰 충 격을 받았고, 그 후 부터는 전신에 감각이 무디며 마비 현상이 일 어났습니다. 남편의 정성어린 도움으로 병원 치료와 약을 먹어 다 소 회복 이 되기는 했는데, 아직도 몸의 일부에 장애가 생겨 계속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문 : 빈딩성 푸캇이면 퀴논시 위에 있는 푸캇 산 기슭을 말하는 것이네

요. 그곳에 유명한 곡창지대 고보이(GO BOI)평야가 있지요.

답 : 네, 맞습니다. 제 고향은 통일되기 전부터 쌀이 많이 생산 되는 곳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6대째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합니다.

문 : 부모님 가운데 원인모를 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은 없나요?

답: 나의 친정어머니도 사산을 포함해 유산을 몇 번 했다고 들었습니다.

임 신 중 아주 조심 했는데도 말입니다.

문 : 집안의 가족 중 전쟁에 참전한 사람은 없나요? 가족 중 그런 사람 이 있으면 고엽제 피해 검사를 받아 판정되면 참전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도 각종 혜택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답 : 미국과의 전쟁 중 군인이 된 사람은 없고 (북쪽이라는 단어를 꺼내 다 얼른 접는다.) 농사꾼으로 농사만 지었답니다. 현재도 농사일을 하는 남편이 고엽제 피해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년 전에 의료 검진해 군청에 신청 했는데 고엽제 피해 판정여부를 기다리라는 소 식만 듣고 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하노이에 있는 친척 오빠에게 도 도움 요청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 : 그러면 아인 씨는 아무 곳에서도 의료혜택이나 재정 도움도 받 지 못 하고 있습니까?

답 : 지방 자치단체인 빈딩성에서 장애인 법에 따라 푸캇 군청을 통해 약값에 도움이 되라고 돈을 지원 해주는데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명절 등 특별한 기념일 등에 사회단체, 또는 관내 유지들이 장애인 돕기, 불우 이웃돕기 행사로 모금한 돈을 나누어 줍니다. 의료혜택은 마을 보건소에 가기도 하는데 큰 도움 되지 못 하고, 군청에서 비정기적이지만 국내 또는 외국인 의료 봉사단이 오 면 장애인이나 아픈 사람들에게 많은 진료와 치료 기회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또한 빈딘성과 인접한 꽝응아이성에 있는 평화의 마을을 중심으로 재활 치료센터를 활용하고, 외국인 봉사 단체가 주관해 다양한 진 료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우리 군청의 주선으로 일 년에 2~3 회 군민들에게 제공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각종 질병을 가진 사람은 많고 국가의 의료 예산이 많 이 부족해 외국의 도움을 바라는 노력을 계속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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