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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와 의미와의 불완전성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작품에서 서로 간의 소통이 불가능함을 말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우만은 꾸준하게 관객을 초대한다. 부조리극 또한 소통의 불완전성 을 인식하지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그 자체가 존재의 의미임을 말하기 때문 인 것이다. 이 문제는 부조리적 존재의미를 다루는 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블라디미르: 매여 있다니 무슨 뜻인가?86)

이 대화를 보면 일반적인 문장에 생소함을 느끼는 주인공의 반응을 알 수 있다.

‘매어있다’의 음절을 소리 단위로 나누어 그 음소들, ‘매, 어, 있, 다’가 과연

‘매어있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표기와 의미 간의 필연성을 의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대사는 더욱 직설적으로 등장 인물들이 하나의 대상을 다른 음으로 불러보는 놀이를 한다.

에스트라곤: 재미있을 거야

블라디미르: 무엇이 재미있단 말인가?

에스트라곤: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는 것 말이야. 각각 다른 이름으로.

그렇게 하면 시간이 잘 갈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조만간 꼭 들어맞는 이름을 떠올리게 될 거야.87)

이러한 대사는 이름과 의미, 표기와 대상 사이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있다. 사물을 명명하는 데 있어서의 우연성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 는 명칭들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극 내내 에스트라곤과 블 라디미르라는 이름대신‘고고’와‘디디’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것은 마치 다다 이스트들이 그들의 예술운동을‘다다’라고 이름 지은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 들이 밝히듯이‘다다’라는 이름은 어린이들이 타는 목마의 유아적인 표현으로 아무 런 의미 없이 우연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렇게 표기와 대상 사이에는 아무런 개연 성이 없음을 의도적으로 나타내며 관습적인 표기를 부정하고 있다.

나우만 역시 전통적인 예술적 표현의 도구들을 포기하고 언어와 언어, 기호와 기 호, 언어와 기호 사이에서 단절된 소통과 언어의 불완전성을 찾아간다. 나우만은 그 의 언어 작품에서 언어의 표기와 그 의미 간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표기와 본질의 괴리를 통한 전통적 언어질서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있다. <은색 책(Silver Livre), 1974>은 영어‘은색(Silver)’과 프랑스어‘책(Livre)’이라는 두 단어로 구성된 제 목이다. ‘silver’의 철자를 재구성하여‘livre’라는 전철어구를 만든 것이다. 또 한 <Articulate Art/Tar a Lucite Rate, 1973>라는 작품도 앞의 철자를 재구성한 같 86) 상게서, p. 29.

87) 상게서, p. 114.

은 맥락의 작품이다. 이러한 전철어구를 사용한 작품은 더욱 발전하여 작품, <아무 도 노래한다 네온 사인(None Sing Neon Sign), 1970>과 <두려움으로부터 도망한다/뒤 쪽으로부터의 재미(Run from Fear/Fun from Rear), 1972>[도판35]에서 보듯 철자의 자리바꿈으로 운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언어가 단지 소리를 표 기하는 수단에서 각각 조형적인 요소를 지닌 추상적 문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며 소 리표기의 전달적인 요소라는 한계를 넘어 문자의 기능을 갖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나우만의 중요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데 그것은 언어 가 표기하고 있는 의미와 그 표기와의 필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즉, 철 자 s, i, l, v, e, r로 구성된 표기가 과연 은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 제제기인 것이다.

나우만은 상황과 언어와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역설적인 상황을 발견한다. 앞서 살 펴보았듯이 작품, <명료한 시각(Clear Vision)>[도판33]과 <주목해라(Pay Attention), 1973>[도판34]는 상황과 언어의 불일치성을 다루었다. 이와 같이 작품,

<완벽한 문(Perfact Door), 1973>[도판18]과 <완벽한 냄새(Perfect Odor), 1973>[도 판18] 또한 언어의‘완벽함’이라는 개념을 실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상황과 언어 의 불일치성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적 요소의 중심개념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와 상황의 불일치는 개념과 언어적 정의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혼돈스러운 해석을 관객에게 부여하고 있는데 나우만은 이렇듯 상호작용의 정보가 흔 들리고 접근과 해석이 용이하지 않은 상태의 혼동된 긴장감을 통해 오히려 소통의 흥 미로움을 느낀다고 밝히고 있다.88) 앞에서 살펴본 작품 <설탕, 라거스(Sugar Ragus), 1973>와 그 외에 작품 <Ill Caste, 1972>와 <Lewidr, 1972> - 레오 카스텔리 (Leo Castelli)와 니콜라스 와일더(Nicholas Wilder)의 이름의 철자를 치환하여 만든 작품 - 등은 단어 철자들을 무작위로 치환하여 전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작품 들로 의미의 불분명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의미와 언어 기호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성 이 없음을 말한다. 의미와 언어기호의 우연적 선택으로 인해 그 필연성을 부정하면 서 베케트와 나우만 모두 습관적 언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려 는 의도가 나타낸다.

88) Christopher Cordes, "Talking with Bruce Nauman: An Interview, 1989," Bruce Nauman: Prints 1970-1989 (New York: Castelli Graphics, Lorence Monk Gallery, Donald Young Gallery,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