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유희성/희극성

D. 언어의 한계성극복

3. 유희성/희극성

다. 네온으로 제작한 작품 <목매단 사람(Hanged Man), 1985>[도판36]은 네온 조명이 머리, 팔, 허리, 다리, 성기 순서로 켜지고 다 꺼진 후 다시 순서대로 켜지는 장치가 되어있다. 시간적인 회기성을 나타낸다. 죽음이 다시 삶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작 가의 희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순환적 구조 속에 반복되어 진다는 나우만의 사고는 작품, <백가지 산다와 죽다(100 Live and Die), 1984)>[도판21]에서도 잘 볼 수 있다. 같은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그 순환성을 드러내고 있다. 순환과 반복의 어법이 삶과 죽음이라는 두 영역을 접목시켜 나우만 의 삶과 죽음에 대한 냉소적 사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나우만과 베케트는 인과관계를 상실한 순환적 구조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무상함 앞에 놓인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드러내고 있다.

블라디미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네.

에스트라곤: 확실히 그렇네.

블라디미르: 이제 겨우 시작일세.

에스트라곤: 무서운 저녁일세.

블라디미르: 무언극보다 더 끔찍해.

에스트라곤: 곡마단보다.

블라디미르: 음악회보다.

에스트라곤: 곡마단보다.114)

시간을 보내기 위한 무의미한 행위들이 곡마단이나 음악쇼처럼 우스꽝스러운 상황들 로 연출된다. 모자 바꾸기, 바지 벗겨지기, 욕하기, 이미 소통의 의지를 잃은 의미 없는 대화나누기 등 인간이 그 존엄성을 잃은 행위를 보여준다. 모든 존재 의미가 사라진 상황 속에서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은 무슨 말이든지 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에서 등장인물은 둘씩 짝을 지어 등장한다. 자신의 실존 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상대자에게 말을 하고 있을 때 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긴 기다림의 고통, 죽음과도 같은 정지됨을 통과하려 한다.

에스트라곤: 그동안 우리 조용히 얘기 좀 해보세. 우리는 말없이 있을 수 없으니까.

블라디미르: 자네 말이 맞네. 우리는 피로를 모르니까.115)

그들에게 언어행위는 잠시 동안 자신들의 상황과 존재를 잊게 하는 도구이다. 그들 은 심지어 서로에게 욕을 하는 게임을 한다. 그들에게 언어의 의미나 소통은 중요하 지 않다. 단지 침묵을 깨주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바보!

에스트라곤: 바로 그거야. 우리 서로 욕해보세.

(두 사람은 돌아선다. 멀리 떨어진다. 다시 돌아선다. 그리고 서로 맞대어 선다.)

114) 상게서, pp. 53, 54.

115) 상게서, p. 103.

블라디미르: 바보!

에스트라곤: 해충이!

블라디미르: 병신!

에스트라곤: 사면발이!

블라디미르: 시궁창 쥐새끼!

에스트라곤: 부젓가락!

블라디미르: 백치!

에스트라곤: (최종으로 말하듯이) 비평쟁이!

블라디미르: 오!

(그는 맥이 풀린다. 졌다. 물러선다.)116)

여기서 보듯, 이들에게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긴 지루함을 이겨내려는 유 희의 수단에 불과 하다.

인간존재의 근원에는 비극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죽음이 비극적인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조리극은 희극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희극성을 통해 인간존 재의 비극성을 극복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런 희극성은 무엇보다도 부조리극의 언어사용에서 두드러져 횡설수설, 상투어구, 유치한 말투, 의미없고 간결한 언어패턴 의 반복 등으로 자주 나타난다. 나우만의 작품을 보면 두 개의 상반된 지시문이나 제목 등에서 유머와 말장난을 관찰하게 된다. 또한 변기에 앉아 소리 지르거나 중심 을 못잡고 넘어지는 광대의 모습, 지시문대로 행하는 행위자의 모습, 제어할 수 없는 행위 또는 그들이 하는 말 등은 희극적이며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나우만에게 유머 는 진지한 비극적 의미를 너무 비극적이지 않아 보이게 만드는 도구임과 동시에 비극 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무감각을 풍자하는 수단이 된다. 베케 트와 나우만은 이러한 희극적 요소로 부조리한 행위를 하는 비극적인 인간존재를 더 욱 비참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관객에게는 비극과 희극의 중간지점에서 인간의 실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116) 상게서, pp.128,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