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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를 상실한 순환적 구조

D. 언어의 한계성극복

2. 인과관계를 상실한 순환적 구조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된 행위는 한 가지 결과에 집중되어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 도의 도착이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연계성있는 사건의 시작, 중간부, 결과도 없고 인과의 법칙도 없다. 베케트는 발단, 절정, 결말이라는 전통적 인 희곡의 플롯을 깨뜨린다. 각 장은 극이 계속해서 연결되어질 것만 같은 대화로 마쳐진다.

블라디미르: 만일 자네가 좋다면 지금도 우리는 작별할 수 있네.

에스트라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네.

(침묵)

블라디미르: 그렇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네.

(침묵)

에스트라곤: 자, 우리 가볼까?

블라디미르: 그래,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막(1장) 블라디미르: 자, 우리 갈까?

에스트라곤: 그래, 우리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막(2장)

연극은 진행과정 중에 있는 듯 보인다. 나우만과 같이 베케트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 는 것이 아니다. 제 1차 대전 이후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의 부조리한 인간의 행동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베케트에게는 이러한 비인과성이 그의 사고를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요소가 되었다. 현실사회에서 옳은 또는 예상되어지는 결과는 없다. 인간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그저 발견해 나갈 뿐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예술가와 작가의 역할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이유를 모르는 채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연극의 첫 무대의 방향은 극 전체에 나타날 반복의 궁극적 역할을 예감시키고 있다. 부츠를 벗는 것을

처음 시도에서 실패한 에스트라곤은 처음에는 포기하지만 연극 내내 그것을 벗기 위 해 반복해서 재시도를 하며 탈진되어진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이제 무얼하지?(What do we do now?)”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가치를 묻기 위해 고도를 정처없이 기 다리는 동안 알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정체감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모자 돌리기, 말장난, 흉내내기, 장화신고 벗기 등의 행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시험해보는 것이 어떤가?

에스트라곤: 나는 모든 것을 시험해보았네.

블라디미르: 아니, 내 말은 장화를 신어서 시험해보란 말이야.

에스트라곤: 괜찮을까?

블라디미르: 그렇게 해서 시간이 가는 거지. (에스트라곤은 머뭇거린다) 확실히 그것으로 일거리를 삼을 수도 있네.105)

기다림과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정체감, 권태감, 기다림, 절망감을 극대화시 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반복적 형태는 갇힌 공간, 그 속에 갇혀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순환적이고 변화 없는 숨막히는 공간 속에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극중 대화의 반복을 살펴보자.

에스트라곤: 가자.

블라디미르: 우린 못가.

에스트라곤; 왜?

블라디미르: 우린 고도를 기다리고 있잖아.

에스트라곤: (절망적으로) 아!106)

105) 홍복유(역), 『고도를 기다리며』(서울: 문예출판사, 1969), p. 116.

106) 상게서, pp. 16, 115, 120.

이 간단한 대화는 연극 중에 여섯 번 반복된다. 베케트의 작품 속 인물들의 반복적 인 행동과 이 간단한 대화는 나우만의 행위예술 작품에 담긴 작품의도를 공유한다.

나우만은 이러한 방법으로 보는 이를 지루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반복되는 구조 안에서의 시간의 개념을 보자. 베케트는“인간은 시간과 하루 하루를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말하였다.107)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실존의 문제를 질 문하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의 개념에서 해석이 된다. 기다림은 늘 시간 의 흐름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극 속에서 기다림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기다 림의 결과, 상황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는 끝내 환상에 끝나버린다. 결과 적으로 극 속에서 이어지는 끊임없는 기다림은 자기 소진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로 끝나버린다. 이것이 베케트가 고발하는 세상의 불변성이다. 기다림을 배반하듯 언 제가 변하지 않는 세상의 상황, 결국은 죽음이고 그 죽음밖에는 기다릴 것이 없는 인 간의 부조리한 존재의미, 사는 것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허무한 삶의 의미, 이것이 바로 베케트 작품의 중심 내용이다. 다음 대사는 이러한 허무한 시간의 개념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빌어먹을 시간이라는 것을 가지고 당신은 왜 나를 괴롭히는 것이요?

지긋지긋해! 언제! 언제냐구! 어느 날, 어느 날 벙어리가 되었다고 하면 충분하지 않소. 어느 날 나는 눈이 멀었고 어느 날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것이요.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것이요.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각에 말이요. (...) 태어날 때부터 무덤에 걸터앉게 되는 것이요. 눈 깜박할 사이에 빛이 비치고 또 다시 밤이 되는 것이요.108)

순환과 반복의 구조는 시간성과 무상함을 말해 준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시간성과 무상함에 대한 베케트의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베케트의 드라마들은 모두 인간 관계에 내재해있는 비극성을 가시화 하고 있다. <놀이의 끝>109)은 깊은 침체상태에 빠진 인간에게 엄습하는 무감각, 꺼질 듯한 무거움, 절망의 처절한 느낌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베케트의 <놀이의 끝> 또한 <고도를 기다리며>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의 미의 형상인물과 줄거리를 포기하며 인간의 상황을 드라마 형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107) Samuel Beckett, Proust (London: Chatto & Windus, 1931), p. 2.

108) 홍복유(역),『고도를 기다리며』 (서울: 문예출판사, 1969), p. 155.

109) Samuel Beckett, Endgame (London: Faber and Faber, 1976)

극의 등장인물, 함과 클롭, 포조와 러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개인들이 아니 라 인간의 근원적 행동방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은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반복되는 인간이 처해있는 전형적인 상황들인 것이 다. <고도>의 제 2막은 제 1막의 근본상황이 약간 변형되어 반복되어 있고 <놀이의 끝>의 마지막에서는 클롭이 함을 떠나려는 결심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지를 볼 수 없다. 이 두 작품은 블라디미르가 <고도>의 제 2막 처음에 부르는 다음과 같은 노래 의 형식과도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개 한 마리 들어왔네, 주방 안으로 들어와서 빵 한 조각 슬쩍 훔쳤네.

요리사가 나타났네, 국자 가지고.

그러고는 개를 때려 죽였다 하네.

그러니까 개란 개는 다 뛰어왔네.

그러고는 죽은 개의 무덤을 팠네.

...

(멈춘다. 생각한다. 다시 계속한다.)

그러니까 개란 개는 다 뛰어왔네.

그러고는 죽은 개의 무덤을 팠네.

앞으로 찾아오는 개들을 위해 비석에 이런 말을 써서 두었네.

개 한 마리 들어왔네, 주방 안으로 들어와서 빵 한 조각 슬쩍 훔쳤네.

...110)

이 노래와 같은 대사는 몇 번에 걸쳐 반복되어 진다. 이 반복되어지는 대사는 나우

110) 홍복유(역),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 문예출판사, 1969), p. 96.

만의 작품 속 광대가 중얼 거리는 대사와 그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1980년대 만들 어진 그의 작품, <광대 고문(Clown Torture)>[도판26]을 보면 이 순환과 반복의 구조 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를 녹화하여 전시장에 비디오 모니터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광대분장을 한 사람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중얼거 리는 것을 담아 모니터로 보여준다. 모니터는 서로 마주보게 설치되어 두 모니터안 의 인물들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 안의 긴 대사를 살펴보 자.

어둡고 폭풍우치는 밤이었다. 세 남자가 모닥불 주의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줘, 잭’그리고 잭이 말했다.

‘어둡고 폭풍우치는 밤이었다. 세 남자가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줘, 잭’그리고 잭이 말했다.

‘어둡고 폭풍우치는 밤이었다’...(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Three men were sitting around a campfire. One of the men said, 'Tell us a story, Jack.' And Jack said, '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Three men were sitting around a campfire. One of the men said, 'Tell us a story, Jack’ And Jack said,‘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111)

피트와 리피트가 울타리 위에 앉아 있었다. 피트가 떨어졌다. 누가 남았 을까? 리피트. 피트와 리피트가 울타리 위에 앉아 있었다. 피트가 떨어 졌다. 누가 남았을까? 리피트... (Pete and Repeat were sitting on a fence. Pete fell off. Who was left? Repete. Pete and Repete were sitting on a fence. Pete fell off. Who was left? Repete...)112)

광대는 이 대사를 계속 반복한다. 이러한 순환적 형식은 탄생과 죽음의 직선적 시간 적 개념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순환적 구조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인간이 행하는 행위들, 즉 악수하기, 걸어 가기, 발로차기, 콧구멍 찌르기 등의 행위 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구조를 보여준 111) Emma Dexter, Raw Materials (London: Tate Publishing, 2004), p. 33.

112) Ibid., p. 32.

다. 네온으로 제작한 작품 <목매단 사람(Hanged Man), 1985>[도판36]은 네온 조명이 머리, 팔, 허리, 다리, 성기 순서로 켜지고 다 꺼진 후 다시 순서대로 켜지는 장치가 되어있다. 시간적인 회기성을 나타낸다. 죽음이 다시 삶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작 가의 희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순환적 구조 속에 반복되어 진다는 나우만의 사고는 작품, <백가지 산다와 죽다(100 Live and Die), 1984)>[도판21]에서도 잘 볼 수 있다. 같은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그 순환성을 드러내고 있다. 순환과 반복의 어법이 삶과 죽음이라는 두 영역을 접목시켜 나우만 의 삶과 죽음에 대한 냉소적 사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나우만과 베케트는 인과관계를 상실한 순환적 구조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무상함 앞에 놓인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