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통신사가 해운대를 완경할 때 차일과 돗자리 이외에는 별도로 거행하는 것이 없었는데, 금년에 와서는 동래부에서 접대할 차례가 되었으나 동래부사가 우연히 喪服을 입게 되었 기에, 통신사 정사께서 분부하시기를 동래부사가 복을 입게 되었으면 수영에서 담당하도록 하였고, 正使의 종자를 접대하도록 하고 종사관을 따라온 하인배들은 다음 차례가 되는 읍이 담당하라는 營門의 분부에 의거하여 驛人의 料米 100升과 40필 말의 馬太 4斗, 粥 糠 1석을 都洞 소임을 불러 지급하였으므로 陸三洞(중, 우, 좌)에서는 합력하여 역졸을 접대하고 역마를 먹이는 일을 하고 접대에 들어가는 물건과 그릇 등은 수영에서 담당하 였기에 海洞(해운대동)에서 혼자 담당함.
통신사가 올 때의 임시가옥을 짓는 재목으로 동쪽의 봉산 소나무를 찍어 운반할 적에는 그 儒生, 將校, 民戶 등으로 상하단에서 바로 해운대까지 끌어 내려서 海民의 배로 실어 水路로 凍所里 강 어구에 운반하여 邑民으로 하여금 관가에 바치게 할 것
세 통신사가 해운대 완경하면서 음악을 쓸 적에 세 동네의 차일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재 송동의 차일을 가지고 와서 보충할 것
(海雲臺의 옛모습이 담긴 東下面古文書, 부산시 해운대구, 1994, 69~71쪽)
● 통신사 부산 구경
제술관 남옥(南玉)의 기행문 『일관기(日觀記)』의 8월 28일 내용
부산에 머물렀다. 일행 중에 왜관에 가서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함께 가자고 하기에 내가 이르기를 “이번 행차가 단지 부산에 이르러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소.
그런데 이제 장차 大坂(오사카)의 번화함과 江戶(도쿄)의 부유함을 볼 것인데 왜관쯤이야 어찌 족히 볼 것이 있겠소. 또 자취를 감추는 것은 성실하지 않음이요 모욕을 받는 것은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나는 가지 않으려오”하였다.
한일 교류의 架橋, 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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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통신사 관련문헌
通信使謄錄, 海行摠載, 일본 「對馬島宗家文書」 가운데 「通信使記錄」.
관찬 사료: 朝鮮王朝實錄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그 외 수많은 조선 외교 관련 자료 : 交隣志 增正交隣志 通文館志 同文彙考
故事撮要 春官志 典客司謄錄
14. 통신사 관련 그림과 사진
2009년 초등교사 역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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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승되는 통신사, 부활하는 통신사
통신사는 한일 우호교류의 상징물로서, 최근 많은 관심 고조.
1995년 11월 : 조선통신사연지(緣地)연락협의회 결성. 쓰시마(대마도)에서는 8월 첫째 토요일부터 아리랑마쯔리 실시.
2002년 3월 13일 부산, 조선통신사행렬재현위원회 결성 → 「2002 월드컵 문화행사」로 통신사 행렬 재현. 2003년 1월 13일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로 개편.
2005년 4월 20일 : «조선통신사»발간. 지은이-한일공통역사교재제작팀 2005년 6월 17일 : 조선통신사학회 발족.
조선통신사 역사자료관 건립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