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동래읍성 해자 출토유물

출토유물로 본 조선시대의 무기

Ⅱ. 임진왜란 관련 유물과 유적

7. 동래읍성 해자 출토유물

동래읍성의 해자가 발견된 곳은 수안동 교차로 아래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안동 전철 역사가 들어설 예정지역에서 발견되었다.(사진10) 동래읍성은 왜군이 제일 먼저 부산진성을 공략한 다음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곳으로 선조 25년 4월 15일에 부사 송상현은 전사하고 동래읍성은 함락되고 만다.

해자는 흑갈색사질토층 위에 축조되었으며 크기는 동쪽 석축의 길이가 55m, 서쪽 석축의 길이가 42m, 폭 540~570㎝이고, 석축은 9~15단으로 170~250㎝정도이다.

석축의 진행방향은 동래읍성의 성벽 진행방향과 유사하고 해자의 내부 퇴적토 최하 층에서는 木杙이 세워져 있었다.

해자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해자의 상부와 하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부에서는 조선 후기의 백자 및 도기편, 기와편과 말, 소, 개과에 해당되는

9) 한신대학교 박물관, 2001「용인 마북리 석축유구」 『경기 남부의 조선시대 유적』 한신대학교 박물관 총서 제13책

2009년 초등교사 역사교실

94

수골이 출토되었고, 목익과 자연목이 출토된 암갈색점질토층과 흑갈색 니질토와 사 질점토가 혼합된 최하층에서는 찰갑 1벌과 찰갑 편, 첨주, 환도 16점, 단도 9점, 장 군전 촉, 각궁편, 화살촉 116점 등의 무기류와 청동숟가락 5점, 백자, 옹기, 기와편 이 출토되었다.(도면 2)

① 札甲

찰갑은 조사지역의 남동쪽인 동쪽 석축 부근의 흑갈색 니질층에서 찰갑 1부가 출토 되었고 목익층에서 흩어져 다수의 찰갑편이 출토되었다. 찰갑은 해자의 진행방향과 평행하게 출토되었으며, 찰갑의 하부와 연접한 지역에서는 인골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화살촉 ․ 도자 ․ 장방형석판이 있는 목제가구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찰갑의 크기는 길이 61㎝, 너비 48㎝이며, 상의의 크기는 길이 48㎝, 너비 48㎝이다. 1차 발굴조사 에서는 찰갑편이 남쪽 및 남서쪽에서 집중적으로 19점이 출토되었다.(사진11)

② 簷冑

첨주의 크기는 길이 21㎝, 너비 27㎝, 투모 창의 폭은 4.5㎝정도이다. 첨주는 평면 형태가 제형인 철판 4매를 Ω형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는 너비 3㎝의 긴 장방형의 철제 판 4조를 3개소에 리벳으로 고정시킨 다음 교차되는 투모의 꼭지에는 직경 6.8㎝의 원형철판을 대고 4개소에 리벳으로 고정시켜 제작하였다. 첨주의 창은 평면형태가 도넛형으로 안쪽은 투모의 내부로 부착한 다음 리벳으로 고정시켰다.(사진12)

③ 環刀

환도는 목익이 확인되는 층에서 16점이 출토되었고 아울러 소도자 9점도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 환도 3점은 동쪽 석축의 벽석 중앙과 북쪽 부근인 목익이 노출되는 흑갈색 니질층에서 출토되었다. 환도는 길이가 80㎝전후, 신부의 폭은 2.5~3.5㎝이며, 신부의 단면은 역삼각형이고, 신부와 자루 사이에는 원형의 鐔이 있는 것도 있다.

(사진13) 자루는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2개의 정목으로 고정시킨 것도 있다. 그 외 칼집의 말단부 3점이 출토되었는데, 칼집의 말단부는 가장자리에는 U상의 철제 띠를 두르고 그 내부에는 목질이 남아 있다. 자루는 나무와 골기를 사용하였으며 신부의 폭은 대체로 좁은 편이다.

출토유물로 본 조선시대의 무기

95

④ 刀子

도자는 총 9점으로 목익이 노출되는 흑갈색니질층의 해자 내부 전 지역에서 출토 되며, 6점은 목제 및 골제의 병부가 있는 완형이고 3점은 병부가 없는 상태에서 출토 되었다. 신부의 단면은 역삼각형이며 병부는 목제 또는 골제를 이용하였고 병부의 단면은 타원형 또는 원형이다. 전체 길이는 30cm 이하이다.

⑤ 角弓片

각궁편은 목익이 확인되는 층에서 10점 이상 출토되었으며, 모두 활의 끝부분만 남아 있다. 이처럼 고자 부분만 남아 있는 것은 제비추리라고 하는 고자의 끝부분이 노루발에 결합되는데 이를 결합시키기 위하여 바른 풀이 오랫동안 침수지에 있으면서 분해되어 남았기 때문이다.10) 그 가운데 2점의 각궁편에는 「東」자와 「印」자가 정탈목 상부에 낙인되어 있다.(사진14)

⑥ 화살촉

화살촉은 모두 116점으로 목익이 노출되는 흑갈색 니질층의 해자 내부 전 지역에서 출토되며, 인골이 출토되는 지점의 주변과 찰갑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철촉은 모두 有莖式鐵鏃으로서 촉신의 형태는 蛇頭形 ․ 菱形 ․ 柳葉形 ․ 錐形, 鑿形이며 촉신의 단면은 대부분 마름모형이다. 관부는 능형은 둔각을 이루고 추형은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크기는 능형은 대부분 크고 추형이나 유엽형은 작다.(사진15)

⑦ 將軍箭 鏃

장군전은 총통을 이용하여 발사하는 화살을 통칭하는 것으로 장군전은 최소 5점 이상이 출토되었다. 그 중 1점은 黃字銃筒에 실어서 사용하는 피령전 촉으로 촉의 평면은 유엽형이고 단면은 능형이다. 경부의 길이는 20.5cm, 촉두의 길이 12cm로 전체 길이 32.5cm이다. (사진16)

⑧ 깍지

깍지는 궁수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가락지로서 가죽이나 상아, 뼈, 소뿔 등으로 만든다. 깍지는 긴 혀가 달려 있는 숫깍지와 혀가 없는 암깍지로 나뉘는데 10) 글 김일환/사진 정수미, 2002『중요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국립문화재연구소 중요무형문화

재 기록도서, 화산문화

2009년 초등교사 역사교실

96

동래읍성 해자에서 출토된 것은 숫깍지이며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를 거쳐 출토된 유일한 깍지이다. 전체 길이 6.2cm, 손가락 구멍 직경 3.2cm, 혀의 길이 3cm, 폭 2cm, 두께 1cm 정도이며 재질은 소뿔로 추정된다.11)(사진17)

⑨ 槍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자루에 끼워져 완형으로 남쪽 호안 석축과 평행하게 출토 되었다. 창두의 길이 24cm, 전체 길이 300cm에 이른다. 『朝鮮王朝實錄』에 창의 길이가 10척이라 하였는데 기록과 정확히 부합하고 있는 중요한 유물이며 이 역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조선전기의 유일한 창이다.(사진18)

⑩ 菊池槍

철제이며 전체 길이가 54cm, 중앙에는 직경 2.6cm의 황동고리와 길이 6cm의 원 통이 부착되어 있다. 도신 상단에는 길이 8cm 정도의 혈구가 남아 있고 이어서 등의 폭을 줄여서 봉부에 이른다. (사진19)

이외에도 청동숟가락 8점(사진20)과 해자 남동쪽의 동쪽 석축 부근에서 4개체, 북 서쪽의 서쪽 석축에서 두개골 1개체 등 최소 15개체 이상의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목익이 노출되는 흑갈색 니질층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숟가락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춭토되는 것과 동일한 형식의 것으로 당시 분묘에 부장된 것이 읍성의 해자로 흘러 들어왔다고 보기는 어렵고 조선군에게 지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숟가락은 1점을 제외하면 모두 사용흔이 술부의 왼쪽에 남아 있다.12)

8. 其他

이상과 같은 유물 이외에도 매장문화재 발견 신고 목록을 참고하면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사리 출토 주자총통 7점,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출토 삼총통 23점, 하동군 옥종면 출토 완구 1점,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출토 소진천뢰 3점과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출토 대완구 탄환 360점, 경북 상주, 칠곡, 금릉, 영양, 월성, 봉화 등지에서 출토된 조총이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경남 의령에는 곽재우장군이 사용한 장검(보물 671-1)과 1982년 의령읍 중동리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화살촉과 철질려가 11)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1994『한국의 활과 화살』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제29회 연합전시회 12) 鄭義道, 2007「韓國古代靑銅匙箸硏究-高麗時代-」『石堂論叢』第38輯, 東亞大學校 石堂學術院

출토유물로 본 조선시대의 무기

97

충익사에 보관되어 있고 진주박물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권응수장군이 사요한 장검이 있다. 또한 서울 청계천 복원공사에서 만력 19년 명 총통(선조24년, 1591)이 1점 출 토되었고 왜검의 부속품인 계 2점이 죽성리왜성과 가덕도왜성에서 각각 1점씩 발견 된 바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