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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 전통의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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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세계화와 글로벌화의 거센 파고와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각 국가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문화에서 찾고 있다. 이로 인해 21세기는 문화 의 세기라고 불리고 있다. 이를 근거로 판단해 본다면, 우리의 차문화 전통은 시 대마다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차문화는 삼국시대에 시작되 었으며, 고려시대에 불교의 부흥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숭 유억불 정책의 시행으로 침체기와 과도기와 중흥기를 동시에 겪었다, 또한 우리 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조선의 차문화 전통은 거의 일본의 차문화 풍습 으로 대체되었으며, 우리 차문화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문화적 측면에서 현대의 차문화 및 차문화산업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전통적인 차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274) 박영환, 앞의 책, pp. 321-366.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현대 차문화 및 차문화산업은 아직도 우 리의 전통 차문화를 완전하게 재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활발했던 차 문화가 숭유억불 정책으로 조선시대에는 침체기와 과도기와 중흥기를 거쳤지만, 조선시대의 차문화는 고려시대의 차문화를 여전히 계승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의 차문화와 차문화산업은 실학의 영향으로 중흥기를 맞이하였으며, 중국 차 문화산업에 대한 문헌 연구와 실학자들의 실증주의 정신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 다. 하지만 조선 후기 차문화산업의 활성화 분위기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한 차원 높은 전성기의 단계로 진입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을 겪게 된 원인은 내부적 요인보다는 외부적 요인이 더 컸다. 이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수탈 정책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차문화산업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시련과 고통의 단 계로 접어들었으며, 차의 재배와 생산은 일본인들에 의한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차 착취와 수탈은 조선의 차문화산업이 외부적 요인에 의 해 침체와 붕괴 상황을 맞이하게 된 직접적 이유였다. 더욱이 일본은 우리나라 고유 차 품종을 일본의 차 품종으로 대체 및 개량하였고, 이를 통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차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려 하였다. 일본의 차문화와 다도, 그리고 차 맛은 점령지 한국인의 차에 대한 기호를 변화시켰으며, 일본의 다도는 한국 고유의 다도를 붕괴시키고 한국의 전통적인 차문화도 붕괴시켰다. 현재까지도 우 리나라에는 일본의 다도가 널리 전파되어 있으며, 이를 차문화의 정설로 여기는 집단도 존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고유 차문화 전통을 무시하고 외국의 차문화 전통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 고유 의 차문화 전통은 단절되었고, 우리 차문화의 정체성도 계승되거나 재정립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는 우리의 고유 차문화 전통과 정체성이 해방 이후 까지도 회복되지 못했던 실질적 이유였다. 이후 우리의 차문화는 일본과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고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한국 차 문화의 전통적 정체성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차문화의 존 재감 상실은 역사의 질곡과 비극과 함께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차문화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일부 차 애호가들과 사찰에 의해 유 지되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차문화가 형식적으로 재현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말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는 우리 전통문화의 재현과 부활을 의미하였으며, 전통문화산업의 대중화를 위한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전통문화의 부흥을 추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 차문화 전통의 계승과 차문화산업 발전

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는 경제적 측면의 차문화산업 발전, 사 회적 측면의 차문화 애호 집단 확장, 그리고 문화적 측면의 차문화 공간 확대를 의미하였다. 우리의 차문화산업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전통과 풍부한 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차문화산업에서 목격했듯이 사회적·학문적으 로 다양한 계층에 의한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산업적·

경제적으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차문화산업의 현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성 을 제시해주었다.

조선의 차문화산업 육성정책에서 고찰했듯이 정부의 차문화산업에 대한 관심 은 민간 차원의 차문화 전통 부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문제는 왕이 바뀌 고 정권이 바뀌면서 차문화산업에 대한 정권의 관심도도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차문화산업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자리 잡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 대상 으로 존재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조선시대의 차문화산업에 대한 재 고찰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으로 조선시대의 차문화산업이 현대의 차문화산업에 제시해 주고 있는 핵심 사 항은 숭유억불 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려시대의 차문화 전통을 유 지했다는 점, 왕실과 사대부 문인과 사찰의 승려들이 다례의식과 사신 맞이와 시·서·화를 통한 문학적 교유와 승려와 유학자 간 교유를 통해 전통 차문화를 계 승했다는 점, 그리고 실학자들이 중국의 다서를 탐독하고 차에 관한 저서 출판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선의 차문화 전통을 학문적으로 계승하려 노력했다는 점 등 이었다. 결론적으로 문화적 측면에서 현대 차문화산업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의 왕실과 사대부 문인, 그리고 사찰과 승려 중심의 차문화가 고려시대의 차문화 전통을 이어가려 노력했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에서 그 해답 을 찾아야 한다. 이는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창출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세계화시대를 대비하고 세 계인과 상생을 모색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수단이기도 하다. 차문화에 대한 법고 창신, 즉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우리 전통 차문화에 대한 정체성 회복과 차 문화 전통 계승 및 중흥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차문화 정신의 계승, 차문화 교 육의 확대, 차음용의 대중화, 그리고 차문화 공간의 확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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