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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조직의 생성과 전개

홍동면‧장곡면 일대의 지역사회 발전을 서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그 기 원이 풀무학교 설립에 있다고 본다면, 현재 이곳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실천 의 바탕이 되는 서사적 원형은 1960년대 초반에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 다. 서사들이 그대로 유지, 전승되면서 현재의 지역사회 발전과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원형적 서사들은 여러 계기를 만나 구체화되고 분화되었고, 그런 변형과 분기가 일어날 때마다 지역사회 조직(그리고 사회 연결망)의 변화가 일어났다. 주된 활동의 장소도 점차 다양하게 형성되었다(그림 5-1).

그 같은 계기는 지역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외부와 닿은 연결망 을 통해서도 촉발되었다. 서사 및 사회 연결망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분기

점이 몇 있다. 풀무학교 개교, 1975년 유기농업 시작, 1990년대의 오리농

<그림 5-1(계속)> 홍동면‧장곡면 지역사회의 서사와 조직 전개 과정

홍동면‧장곡면 일대에서 진행된 역사적 과정을 서사-조직-장소의 세 층 위에서 살펴보았다. 문헌 및 면접 조사 자료를 시기별로 배치하고 발생한 사건, 관련된 조직의 형성과 활동, 활동이 주로 이루어진 장소 등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지역사회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요소들을 몇 가지 발견하였다. 홍동면‧장곡면 사례에서 발견한 내용들이지만, 가설적인 수준 이나마 다른 농촌 지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정식화한 결과는 다음 <표 5-2>에서 보인 바와 같다.

발견 ① 지역사회의 문제가 구체적인 서사 형태로 식별되면서, 주민들은 그 문제에 대응하려고 지역사회 발전 조직을 만든다.

발견 ② 서사는 분화하거나, 새롭게 출현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지역사회 발전 조직도 조응하여 다른 조직으로 전환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분화한다.

발견 ③ 지역사회 발전 조직이 활동하는 장소도 변경되거나, 넓어지거나, 새로 형성된다.

발견 ④ 외부 여건 변화, 외부와의 접촉 또는 교류가 지역사회의 문제를 새로운 서사로 표현하는 계기(발견

①)를 만든다.

발견 ⑤

큰 규모의 자원을 동원해야 대응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제의 경우, 지역사회 외부와의 연결망 또는 지역사회 내 대형 조직의 협력이 중요해진다. 지역사회 외부와의 연결망에서 동원하는 자원에는 지식‧정보, 물적 자원, 인적 자원 등이 있다.

발견 ⑥

지역사회 문제가 구체적인 서사 형태로 식별되거나(발견 ①), 조직이 형성되는(발견 ②) 핵심 필요조건은 지역사회 내의 기성 사회 연결망이다. 기성 조직, 기성 조직들의 연결망, 지역사회 안에서 여론 영향력을 지닌 개인들의 비공식적 연결망 등의 형식을 띤다. 이를 사회 자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발견 ⑦

지역사회 내 서사 구조가 복잡해지고 조직들도 분화하는 과정 속에서 서사 및 조직 형성의 토대가 되는 사회 자본은 의사소통 그 자체를 주요 목적으로 삼는 공식적 형태의 조직으로 결절(結節)되는 경향이 있다.

발견 ⑧ 서사의 출현 및 분화(발견 ①과 ②) 시점은 지역사회가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 생산(novelty production)’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표 5-2> ‘지역사회의 발전’ 메커니즘과 특징

3. ‘농업 서사’를 중심으로 본 지역사회 조직의 전개

농업과 관련한 지역사회의 서사 변동과 각종 관련 지역사회 조직의 출현 은 뚜렷하게 조응한다(표 5-3). 홍동면‧장곡면 지역사회의 ‘농업 서사’가 분 기하는 모든 지점에서 관련된 주민들은 문제 또는 자신들의 필요를 식별하 는 언어적 활동을 수행하는 동시에 ‘조직’을 만들어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농촌 지역사회의 발전 과정에 대한 분 석 결과로 제안한 몇 가지 발견들의 근거를 서술한다.35

<발견 ①과 ②> 지역사회의 문제가 구체적인 서사 형태로 식별되면서, 주 민들은 그 문제에 대응하려고 지역사회 발전 조직을 만든다. 서사는 분화 하거나, 새롭게 출현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지역사회 발전 조직도 조응하 여 다른 조직으로 전환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분화한다.

[A-1 유기농업 도입] 1975년, 일본의 유기농업 단체인 애농회 회장 고다 니 준이치가 풀무학교를 방문하여 유기농업을 소개한 이후 유기농업은 풀 무학교 졸업생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홍동면의 농민들 이 주축이 되어 한국 최초의 유기농업 생산자 조직인 정농회를 결성하였다 (1976년). 한참 뒤에는 정농생협(1987년)과 풀무생협 유기농업생산자회 (1992년)가 결성되었다.

35

‘발견 ⑤’에 관한 내용은 앞의 4장에서 우리마을의료생협 창립 과정에 관한 서

술에서 살펴보았고, ‘발견 ⑥’에 관한 내용도 4장에서 다루었다. ‘발견 ⑦’에 관

해서는 이 장의 다음 절에서 별도로 다룬다.

시기 서사/장소 지역사회 조직 발견

등으로 인해 쉽게 확산되지는 않는 형편이었다. 그 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 으로 오리농법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오리농법작목반을 조직하였다(1995 년). 홍동면 문당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오리농법은 지역사회 안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오리농법을 적용하는 벼 재배면적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농민이 오리농법을 하게 된 문당리에서는 홍성환 경농업마을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유기농업 실천을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 하기에 이르렀다(1999년).

[A-1-2 유기농업 후방 연관 형성] 지역사회에서 유기농업이 급격하게 확 산되면서, 농경지에 투입할 유기질 투입재 수요가 증가했다. 이 문제에 대 응하려고 홍동농협 부설 부산물비료공장을 지었다(1995년). 품질이 더 좋 은 유기질 비료 등을 생산하려면 미생물 제재를 지역사회 안에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홍동면의 유기농 생산자들은 풀무신협과 함 께 출자해 미생물제재 생산 시설을 짓고 ‘영농조합법인 미생이세상’을 조 직해 운영하기 시작했다(1996년).

[A-1-2-1 유기농업 후방 연관 형성] 유기농 생산의 산업연관 후방에서 공급되는 유기질 비료 등 투입재를 지역사회 안에서 조달하기 위한 노력만 으로 주민들의 실천이 끝나지는 않았다. 전국에서도 선구적인 유기농업 지 역으로 자리매김하던 홍동면에서 생산자들은 유기농업을 계속 발전시키려 면, 지역의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축적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리고 유기농업의 기술 그 자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과학 적 노력도 필요했다. 마침 2000년대 들어 풀무학교에는 2년제 대학 과정에 준하는 ‘전공부’ 과정이 생겼고, 이를 배경으로 연구 기능을 수행할 조직으 로 갓골생태농업연구소를 설립했다(2008년).

[A-1-2-2 유기농업 전방 연관 형성] 1990년대부터 유기농업 실천이 지역 에서 빠르게 확산되었고 생산량도 크게 늘었다. 유기농산물 출하를 종래의 방식과는 다르게 조직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고, 풀무소비자협동조합을 풀 무생활협동조합으로 재편했다(2000년). 이 과정에서 풀무생협은 아이쿱생 협 등과 더욱 긴밀한 관계 속에서 거래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유기농 쌀을 보관하고 가공하기 위해 시설이 필요해졌고, 홍동농협 친환경미곡처리장을

건립했다(2007년). 아이쿱생협에 높은 비중을 두는 구조로 유기농산물 전 방 연관 관계를 형성하게 된 이후, 여러 가지 사건으로 풀무생협에는 갈등 이 일어났다. 이는 대형화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농촌의 농업 생산자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성격을 갖는데, 갈등 국면에서 아이쿱생협과 관계를 단 절하면서 아울러 유기농 쌀에 집중된 유기농산물 생산 구조를 재편하려는 의도에서 여러 생산자들이 풀무생협을 이탈했다. 이들은 대안적인 전방 연 관 관계를 형성하고자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을 결성했고(2005년), 그 사 무실도 홍동면이 아니라 이웃한 장곡면에 두었다.

[A-1-2-2-1 유기농업 전방 연관 조정] 2009년에 아이쿱생협과 전속 거래 관계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던 풀무생협은 경영난에 빠져 결국 아이쿱생 협에 경영을 위탁하기에 이르렀다. 풀무생협에 속한 홍동면의 농업 생산자 들은 이를 자율성이 제약된 상황이라고 인지하였고, 아이쿱생협과의 관계 구조를 재편하려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풀무생협에 속한 생산자들을 별도 의 영농조합법인으로 독립해서 아이쿱생협과 관계를 맺는 구조를 형성하 게 되었다. 이때 작목별로 세 개의 생산자 조직이 결성되었다(2014년). 풀 무주곡영농조합법인, 풀무채소영농조합법인, 풀무축산영농조합법인이다.

한편, 2010년 이후 완주의 로컬푸드협동조합이 성공을 거두고, 그 무렵 정 부가 지원정책을 펼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 한 로컬푸드운동이 홍동면에도 영향을 끼쳤다. 2012년 무렵부터 영세고령 농 여성이 참여하는 ‘할머니장터협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던 차에, 홍동 농협이 정부의 지원사업을 받게 되었다. 정부 지원사업은 이른바 로컬푸드 직매장을 건립하는 데 자금을 보조하고 융자하는 것이었다. 홍동농협에는 로컬푸드직매장을 건립했을 때 농산물을 출하할 소농 그룹이 필요했다. 할 머니장터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홍동농협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공급 하기로 약속하였고, 홍동농협 로컬푸드매장이 문을 열었다(2014년).

[A-1-2-2-2 청년 농업인 육성 및 새로운 농업 실천] 2001년의 풀무학교 전공부 설치, 2000년대 아이쿱생협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풀무생활협동조 합의 내홍과 2008년 전국적인 조류인플루엔자 이후 오리농법의 중단 사태, 200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귀농‧귀촌 등의 사건은, 홍동면‧장곡면

지역사회의 ‘농업서사’에 중대한 변화 계기로 작용했다. 유기농업과 관련 된 새로운 실천은 쉽사리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 풀무학교 전공부 출신을 포함해 늘어난 귀농자(특히, 자본이 부족한 청년 귀농자)가 지역에 잘 정착

지역사회의 ‘농업서사’에 중대한 변화 계기로 작용했다. 유기농업과 관련 된 새로운 실천은 쉽사리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 풀무학교 전공부 출신을 포함해 늘어난 귀농자(특히, 자본이 부족한 청년 귀농자)가 지역에 잘 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