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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46-74)

와 같은 사적인 문장에서는 [だ体]를 , 논리적인 문장이나 공식적인 문장에서는 [である 体]를, 정중함을 나타내는 문장에서는 [です․ます体]를 사용하여 문장을 사용한다.40)

무등산 국립공원 페이지를 포함하여 오매광주 홈페이지의 소개 문구는 논리적 문장, 공식적인 문장이기에 문체는 [である体]를 사용해야한다.

(국립공원-1) 무등산 국립공원

국문41)

국가지질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 국립공 원은 전체면적 75.425㎢, 해발1,187m로 광주, 담양, 화순에 걸쳐 있다.

서석대, 입석대로 불리는 주상절리(용암이 식을 때 수축하여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 모양인 것)을 포함 해 기암괴석 등 61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수달, 상제나비, 삵, 담비, 하늘다람쥐, 으름난초 등 멸종위기종 8종을 포함해 총 4,012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42)

無等山(ムドゥンサン)国立公園は、全面積75.425㎢、標高1,187mの山で、

光州や潭陽(タミャン)、和順(ファスン)にまたがっています。

瑞石台、立石台などと呼ばれる柱状節理(溶岩などが冷却固結する際に生じる 節理のうち、断面の形態が五角形や六角形の柱の形をしたもの)や奇岩怪石など6 1ヶ所の自然景観を有する他、カワウソやアオダイショウ、ヤマネコやテンなど、絶滅 危機品種8種を含む計2,296種の動物や植物が生息しています。

수정문

無等山国立公園(ムドゥンサングンニプゴンウォン)は、全面積75.425㎢、標 高1,187mの山で、光州や潭陽(タミャン)、和順(ファスン)にまたがっている。

瑞石台、立石台などと呼ばれる柱状節理(溶岩などが冷却固結する際に生じる 節理のうち、断面の形態が五角形や六角形の柱の形をしたもの)や奇岩怪石など6 1ヶ所の自然景観を誇っている。カワウソやアオダイショウ、ヤマネコやテンなど、絶 滅危惧種8種類を含む計4066種の動物や植物が生息しています。

(국립공원-1) 가타카나음역 위치를 조정하여 문장을 재배치하였다. [ます体]를 [である 体]로 변경해야한다.

원문에서는 [자연경관을 자랑한다.]라고 문장을 마무리 하였으나, 번역문은 [自然景 観を有する他、]로 하여 뒷문장과 이어지고 있다. [~을 자랑한다.]라는 의미의 [を誇ってい

40) 정일영, 「한국관광안내문의 일본어 번역연구」, 동덕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P.58 41) 「무등산 국립공원」, 오매광주, https://tour.gwangju.go.kr/, 2020년 11월 05일

42) 「無等山国立公園」, 오매광주, https://tour.gwangju.go.kr/jpn/, 2020년 11월 05일

(역사문화유적-1) 신창동 유적

국문44)

신창동 유적지는 2000년 전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가사적 375호이다. 신창동 유적지는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서 비아 쪽으로 달리 다 보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아파트가 밀집해 있지만, 원래는 영산강 유역의 낮은 평야지대였다.

원문45)

新昌洞遺跡地には、2000年前の生活の様子を一目で見ることができる国家史 跡375号である。新昌洞遺跡地は、光州市北区雲岩洞から飛鴉方面に向かって 行くと右側に位置している。今はアパートが密集しているが、元々は栄山江流域の 低い平野地帯であった。

る。]로 변경해야한다.

원문과 번역문이 다른 부분이 있다. 원문은 수달, 상제나비, 삵, 담비... 순으로 이어 지는 반면, 번역본은 수달, 구렁이, 삵... 순으로 이어진다. 또한 [멸종위기종]을 [절멸위 기종]으로, 무등산의 생물종을 4,012종에서 2,296종으로 번역하였다. 국립공원 홈페이지 [무등산 국립공원]에 따르면, 현재 무등산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수달, 구렁 이, 삵, 으름난초 등 멸종위기야생동물 26종을 포함하여 총 4,066종의 생물종이 서식하 고 있으며…]라고 되어 있다.43) 데이터를 최신화하여, [4066種]으로, 일본에서 [멸종위 기종]에 대응되는 단어인 [絶滅危惧種]으로 변경해야 한다.

2.2. 역사문화유적

첫 번째로 다루어볼 역사문화유적은 [신창동 유적] 페이지 이다. 신창동 유적 페이지 는 본문의 2~4문단이 5~7문단에서 반복되어 번역되어있다. 첫 2~4문단의 번역오류에 비해 두 번째로 등장하는 5~7문단은 번역오류의 빈도가 줄어, 두 문단의 차이점은 2~4 문단은 한국어 문장부호[, .]를 사용하였고, 5~7문단은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문장부호 [、。]로 교체하였다. 2~4문단에서 과일의 씨앗을 의미하는 [~씨]를 사람에 대한 존칭 표현인 [~さん]으로 번역한 것을 [~の種]로 변경한 점 등이 있다. 수정이 이루어졌으나, 완전한 교체가 아닌 추가만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창동 유적의 번역오류를 문장별 로 나열하고 분석하도록 한다.

43) 「무등산 국립공원」,국립공원, http://www.knps.or.kr/, 2020년 11월 05일

수정문

新昌洞遺跡地(シンチャンドン·ユジョクチ)は、2000年前の生活の様子を一目 で見ることができる。新昌洞遺跡地は、光州市北区の雲岩洞(ウンアム )から 飛鴉(ビア)に向かって行くと右側にある。今はマンションが密集しているが、元々は 栄山江流域(ヨンサンガン)の低い平野地帯であった。

(역사문화유적-2) 신창동 유적

국문

①이러한 근거를 입증하듯 신창동 유적지에는 늪과 연못 터가 있고, 토기 굽는 가마터가 있으며, 독무덤과 집터 및 배수시설 등이 있어 마치 당시의 타임캡슐을 보는 듯하다. 영산강의 범람으로 인해 형성되었을 걸 로 추정되는 늪과 연못 터는 구릉의 동쪽 낮은 충적지의 하부에 위치하 며, 모두 10개 층으로 나누어진다.

②늪과 연못 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목제검, 칼집, 활 등의 무기류와 빗, 괭이, 물고기를 잡는 통발, 나무 뚜껑, 굽다리 접시 등의 목재류가 있다.

또한 발화대라 하는 불틀과 신발 제작을 위한 신발골, 문짝, 생활용구로 사 용되었을 빗자루와 망태기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토기류, 칠기류, 석기류와 불에 탄 쌀인 탄화미, 볍씨, 살구씨, 오이씨 등의 씨앗류도 출토되었다.

③특히 칠기제작 공정자료의 출토는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 켰다. 칠을 모아 정제하고, 또한 저장해 두고서 수시로 바를 수 있는 저 장 용기와 칠주걱 등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유물들이기 때문이다.

원문

①このような根拠を立証するかのように新昌洞遺跡地には沼や池があ り、土器を焼いた窯跡があり、甕棺墓や家跡および排水施設などがあり、

ちょうど当時のタイムカプセルを見るかのようである。栄山江の氾濫に (역사문화유적-1) 본문에서 고유명사가 최초로 기재될 때, 가타카나가 누락되었다.

[아파트]의 번역어로 [アパート]를 사용하였다. アパート는 영국의 flat과 같이 3가구 이상에 입구, 복도, 계단, 설비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연립주택을 의미 한다46). 한국의

‘아파트’와 같은 의미의 일본어 단어인 맨션(マンション)으로 번역해야한다.

44) 「신창동 유적」, 오매광주, https://tour.gwangju.go.kr/, 2020년 11월 05일

45) 「光州 新昌道 遺跡」, 오매광주, https://tour.gwangju.go.kr/jpn/, 2020년 11월 05일

46) 『日本大百科全書』,“アパート”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에서 재인용, 2020년 11월 16일

よって形成されたものと推定される沼と池は、丘陵の東側の低い沖積地の 下に位置し、全部で10の層に分けられる。

②沼と池のある場所から出土した遺物には木製剣、鞘、弓などの武器 類と、櫛、鍬、魚を捕る筌、木の蓋、高杯などの木材類がある。また発火 台という発火具や履物を作るための型、扉、生活用具として使用されてい た箒と繩やひもで編んだ袋も出た. だけでなく土器類, 漆器類, 石器類と火 に燃えた米であるタンファミ, 種もみ, 杏さん, きゅうりさんなどの種子 類も出土された.

③特に漆器製作公正資料の出土は学界にすごい関心を催した. 漆を集め て精製して, また保存しておいて随時に塗ることができる保存入れ物と七 杓子などは当時としては想像しにくい遺物たちだからだ.

①このような根拠を立証するかのように新昌洞遺跡地には沼や池があ り、土器を焼いた窯跡があり、甕棺墓や家跡および排水施設などがあり、

ちょうど当時のタイムカプセルを見るかのようである。栄山江の氾濫に よって形成されたものと推定される沼と池は、丘陵の東側の低い沖積地の 下に位置し、全部で10の層に分けられる。

②沼と池のある場所から出土した遺物には、木製剣、鞘、弓などの武器 類と、櫛、鍬、魚を捕る筌、木の蓋、高杯などの木材類がある。また発火 台という発火具や履物を作るための型、扉、生活用具として使用されてい た箒や縄や紐で編んだ袋なども出てきた。それだけでなく、土器類、漆器 類、石器類と火で焼かれていた米の炭化米、種もみ、杏の種、胡瓜の種な どの種類も出土された。

③特に漆器製作工程資料の出土は、学会に非常な大きい関心を呼び起こし た。漆を集め精製し、また保存しておいて随時に塗ることができる保存容器 と漆杓子などは、当時としては想像しがたい遺物であるためである。

수정문

①このような根拠を証明するかのように新昌洞遺跡地には沼や池があり、土器を 焼いた窯跡があり、甕棺墓や家跡および排水施設などがあり、ちょうど当時のタイム カプセルを見るかのようである。栄山江の氾濫によって形成されたものと推定される沼

と池は、丘陵の東側の低い沖積地の下に位置し、全部で10の層に分けられる。

②沼と池のある場所から出土した遺物には、木剣、鞘、弓などの武器と、櫛、

鍬、魚を捕る筌、木の蓋、高杯などの木器がある。また発火台という発火具や履 物を作るための型、扉、生活用具として使用されていた箒や縄や紐で編んだ袋など も出てきた。それだけでなく、土器類、漆器類、石器類と火に焼かれた炭化米、

種もみ、杏の種、胡瓜の種などの種子類も出土された。

③特に漆器製作工程資料の出土は、学会に非常な大きい関心を呼び起こし た。漆を集め精製し、また保存しておいて随時に塗ることができる保存容器と漆ヘラ などは、当時としては想像しがたい遺物だからである。

(역사문화유적-2) 본문에서 [이러한 근거를 입증하듯이…]로 시작되는 문장부터, […

상상하기 힘든 유물들이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세 문단은 일문페이지에서 2~4문단 이 5~7문단으로 두번 반복되었고, 3~4문단과 6~7문단은 다르게 번역이 되어있다. 2~4문 단과 5~7문단의 다른 점은 2~4문단에서 한국어에서 사용하는 문장부호[, .]를 5~7문단 은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문장부호[、。]로 교체한 점, 2~4문단에서 과일의 씨앗을 의미 하는 [~씨]를 사람에 대한 존칭표현인 [~さん]으로 번역한 것을 수정한 점이다. 오매광 주 홈페이지에서는 이 문단을 구분하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으나, 본 연구에서는 번역 사례 오류분석을 위해 문단마다 번호를 기재하였다.

①입증을 그대로 번역하였다. 일본어에서 立証이라는 단어는 [증거를 들어 사실을 증명하다, 증거를 보여 정당성을 밝히다]47)라는 의미로, 주로 법률용어, 신문기사에서 쓰인다. 이 문장에서는 [존재하는 사물을 판단하여 진위를 가린다.]는 의미의 証明으로 번역해야한다.

②木剣단어는 [나무로 만들어진 칼]48)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木製剣보 다 木剣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武器類의 번역은. 일본어에서 類의 의미가 비 슷한 것끼리의 모임, 친척, 생물 분류학의 관용어 등의 의미를 가지며, 특정 도구, 물건 을 묶어 말할 때 ~類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武器로 번역하였다. 마지막으로 木材 類혹은 木材라는 번역은 ‘나무를 사용해 만든 도구’라는 의미보다 ‘나무재료’라는 의미

47) 『大辞林第三版』,“立証”, 『日本国語大辞典』,“立証”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에서 재인용, 2020년 11월 16일

48) 『大辞林第三版』,“木剣”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에서 재인용, 2020년 11월 16일

가 강하기 때문에 木器로 교체해야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게재된 광주신창동유적 페이지에서는 [목제유물로는 칼〔

劍〕·칼부속구·칼집·활· 등의 무기류와 괭이·괭이자루·낫자루·절구공이 등의 농구류, 자 귀자루·도끼자루·망치 등의 공구류, 국자·통형(筒形)칠기·사각(四角)용기·굽접시·그릇뚜 껑 등의 용기류, 파문원형칠기·새모양〔鳥形〕목제품 등의 제의구(祭儀具), 발화구·신발 골·부채자루·현악기·실감개·바디·쐐기·문짝 등이 출토되었다.]49)라고 되어, 목제유물의 범주 안에 본문에서 무기류로 분류한 [목제검, 칼집, 활]이 포함됨을 알 수 있다.

일본어 원문에서 [불에 탄]에 대한 번역은 3문단에서 [燃えた]으로, 6문단에서 [焼かれ ていた]로 표기되었다. [燃える]와 [焼く]모두 [불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燃える]

의 경우 [스스로 불에 타다]라는 의미가, [焼く]는 [태우다, 굽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본 문에서 등장한 [탄화미]의 경우 [불에 타버린 채 발견된 쌀]이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 에 [焼く]의 수동 형태인 [焼かれた]로 변경해야 한다.

③ 저장 용기(보관용기)번역의 변경, [칠주걱]을 [일곱주걱(七杓子)]으로 번역한 것을 수정, 쉼표[、]추가, 문장의 마무리를 [遺物たちだからだ.]에서 [遺物であるためである。]으 로 변경한 것이다. 다만, [칠주걱]의 번역을 [漆杓子]으로 하였는데, 杓子는 [밥이나 국 따위를 옮겨 담는 도구]50)라는 의미가 강한 반면, 신창동 유적에서 발굴된 [칠주걱]은 [옻칠의 채취 및 가공, 칠기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51)되는 유물이 기 때문에 漆杓子이라는 번역보다 漆ヘラ라는 번역이 자연스럽다.

(역사문화유적-3) 신창동 유적

국문 신창동 유적지 근처의 영산강은 예로부터 ‘칠천’이라 회자되었는데 바 로 이와 같은 칠기류 제작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문 新昌洞遺跡地の近くの栄山江は、昔から「漆川」と人々から言われていたが

、まさにこれらのような漆器類の製作と深い関連があったことを推し量ることができる。

수정문 新昌洞遺跡地の近くの栄山江は、昔から「漆川」と広く知られているが、まさ にこれらのような漆器類の製作と深い関連があったことを推し量ることができる。

(역사문화유적-3) [회자되다]는 [칭찬을 받으며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다.]52)또는

49) 『한국민족대백과사전』,“광주신창동유적(光州新昌洞遺蹟)”, https://encykorea.aks.ac.kr/, 2020년 11월 16일

50) 『大辞林第三版』,“杓子” コトバンク에서 재인용, https://kotobank.jp/ , 2020년 11월 16일 51) 「광주 신창동유적」,국립광주박물관, https://gwangju.museum.go.kr/, 2020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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