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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방정부의 크기가 그가 물려받을 당시 절대적으로 큰 정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상태에 있었다. 레이건 이전 까지 복지국가와 전쟁국가를 추구하고 각종 규제가 만연한 결

72) 여기에 레이건 시대의 재산권 보호, 공기업 민영화, 자본시장 자유화 등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평가는 불완전한 것 이다. 사실 그런 작업은 이 짧은 보고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과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산 위에 레이건은 통화량을 잘 관리하여 인플레이 션을 크게 통제했고 조세개혁과 창업의 활성화와 노동시장 유 연화를 통하여 실업률을 하향 안정시켰다.73) 레이건 정부 말 기에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그때까지 어느 때 보다 긴 호황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의 레이건 정책이나 결과는 실패로 규정해야 한다. 먼저 국민의 조세부담률을 낮추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 란 재정적자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그의 임기 마지막 해에만 재정적자가 GDP의 2.9%였다. 많은 저축대부은행의 부실과 그 로 인해 재정적자가 약 1,250억 달러 추가되었다. 저축대부은 행의 부실은 카터 정부의 유산이지만 그런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이 자유시장 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버 정부 이래로 가장 많은 무역장벽을 쌓았다. 그의 집권 후반기에는 외환시 장에 개입했다. 앞에서 열거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 니라 반시장적인 정책이거나 반시장적 결과이다. 규제정책에 관한 한 대내적으로는 친시장적인 것과 반시장적인 것이 혼합 되어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니스카넨은 그의 글에서 레이건 시대에 어떤 급격한 변화 또는 개혁, 즉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은 없었다고 평가했 다. 당시의 경제 환경으로 보아 만약 그가 신자유주의를 진정 으로 실천하고자 했다면 정부 자체에 대한 급격한 변화나 개 혁이 있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연방정부의

73) 통화주의의 정책 제안에 따른 통화 관리와 조세 개혁이 가능했던 것 은 카터 정부 시대와 레이건 시대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그 두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나 연방정부의 일부가 폐지되지 않았다. 즉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후쿠야마는 레이건-대처 혁명 이 그 이후의 근 30년의 성장과 정보기술과 바이오테크와 같 은 새로운 산업의 출현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주장했다.74)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여겨진다.

레이건 시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기로 한다. 레이건은 인 플레이션 억제, 실업률 하향 안정 등과 같은 빛나는 업적을 남 겼다. 그러나 반시장적 정책이나 국방비 지출의 증가 등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레이건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나 결과에서 부정적인 효과나 결과를 빼고 남는 순효과는 그렇게 빛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쳤다면 그가 얻 었던 결과보다 훨씬 빛나는 업적을 남겼을 것을 예상할 수 있 다. 다시 말하면 레이건이 모든 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일관 되게 실천했다면 우리가 현재 보는 결과보다 더 나은 결과를 초래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75)

74) Francis, Hukuyama Newsweek, 2008년 10월 13일자

75) 역사를 평가하는 정확한 방법은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결 과와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는 것이다. 흔히 하듯이 어떤 역사적 사실 과 다른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는 방법은 틀린 것이다. 예를 들어 레 이건의 업적은 미국의 다른 대통령의 업적과 비교하는 것은 틀린 것 이다. 역사 평가의 정확한 방법은 레이건의 업적을 레이건이 최선의 정책을 채택했었다면 일어났을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물론 최선의 정책이란 정확한 경제 이론에 의해 유도된 것을 말하고 인기에 영합 해서 내린 어떤 정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무엇이 정확한 경제이론 또는 좋은 경제이론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필자는 주 류경제학으로 일컬어지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틀린 경제이론 또는 나쁜 경제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정확한 경제이론 또는 좋은

국민의 조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혁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방비, 복지비 등의 연방지출을 줄여 재정적 자를 줄였어야 했다. 무역장벽을 추가할 것이 아니라 그가 평 소에 말한 바와 같이 자유무역을 향하여 기존의 무역장벽을 조금이라도 폐지했어야 했다. 부실한 금융기관을 정부의 재정 으로 구제할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외환시장도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어야 했다. 각종 규제도 더 과감하게 제거하여 각 산업의 성과가 정 부의 지원이나 보조금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도록 했어야 했다. 니스카넨의 지적처럼 연방정부 기관이나 연방정 부 프로그램을 폐지하여 제도적 차원에서의 개혁을 단행했어 야 했다.

레이건은 세인의 이목을 신자유주의로 돌리게 하는데 크게 성공한 사람임이 분명하고 그에 따라 상당한 경제적 번영을 초래했지만, 국내외 모든 정책에 있어서 신자유주의를 일관되 게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후대에 남긴 것 도 사실이다.76) 그가 직면한 현실이 극적인 개혁이 가능했을 정도로 미국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중요 한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경제이론이란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을 말한다. 역사 평가의 정확 한 방법에 대해서는 Mises(1962)를 참조

76) 이 점은 밀턴 프리드먼과 비슷하다. 그는 자유시장의 위대함을 신봉 하고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 그가 제안했던 정책은 정부의 간섭을 확대하거나 용인하는 것이 많았다.

문서에서 국제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페이지 6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