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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조상신 신앙은 조상을 신격으로 모시는 신앙 관념이다. 보편적으로 조상 이란 혈연 조상을 의미하며, 제주도의 조상신 신앙 또한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 렇지만 혈연 조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주도 조상신 신앙이 관념하는 ‘조상’은 혈 연 조상을 넘어서며 다면성을 갖는다. 이러한 확장성과 다면성이 제주도 조상신 신 앙을 특별한 신앙 관념으로 존재하게 한다.

본고는 이러한 확장된 ‘조상’에 대한 관념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혈 연 조상, 맺은 조상, 태운 조상’이다. 세 가지의 조상 관념은 조상신 신앙의 대상 신격이 갖는 각기 다른 특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상 관념은 조상신본풀이의 유형 과 조상신 의례의 유형에 모두 적용되어 각각의 갈래를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

(1) 혈연 조상

‘혈연 조상’은 일반적인 조상 관념이다. 부모와 조부모, 증조, 고조에 이르는 4대 봉사(奉祀)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이다. 한민족 고유의 조상 의례 습속이 4대 봉사 로 전승해 온 근거에는 고유의 영혼관이 존재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백(魄)·귀 (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오르고, 백은 땅으로, 귀는 인간의 공간에 함께 거한다.

백은 3년의 제사로 땅에서 흩어지고 귀는 4대 봉사 끝에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러 한 관념은 3년 상(喪)과 4대 봉사라는 조상 의례의 습속에 영향을 끼쳤다.27) ‘혈연

27) 최길성은 한국 조상숭배에 대한 연구를 총괄하면서 “유교 제사 전래 이전에 이미 민간신앙이나 불교신앙에 의해 조상 숭배와 같은 것이 존재했”고, “친자 관계에서 강조되는 유교적 혈연 원리 가 그렇게 강하지 않던 재래신앙에서 혈연을 강조해 간 과정이 보이고, 조상에 대한 신앙적 가호 (加護)나 탈이 난다는 관념이 유교에 의해 죽은 자에 대한 공적을 기리는 비신앙적인 경향으로 의례화하여” 간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본고는 한민족 고유의 조상 숭배가 토착적으로 전승되어 왔을 것이라는 점과 혈연을 강조하지 않는 자연신앙에서 혈연 신앙으로 변화되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최길성, 『한국의 조상숭배』, 예전, 1993, 31쪽.

조상’을 특성으로 삼는 조상신은 후손을 두었으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사후에도 조상의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살아 생전 집안을 빛냈던 걸출한 조상들이거나 특정한 직업의 시조로 위치하는 조상들이다. 유교 조상 의례의 불천 위(不遷位) 중 사불천위(私不遷位)와 유사한 관념으로 볼 수 있다. 유교적인 개념의 4대 봉사는 17세기 이후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기에 이르러 『주자가례 (朱子家禮)』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후 우리의 풍습을 재편성하여 규례의 규 범을 잡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이 발간된 때는 1844년에 이르러서이다. 이 시기 이전까지는 우리 고유의 조상 의례가 이어져 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초기 가례는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되었다. 당상관 이상은 4대 봉사, 하급 관원들은 3대 봉사, 일반 평민들은 2대 봉사를 지키도록 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사회적인 배려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부를 축적한 농민과 상인들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4대 봉사를 추진하면서 신분간 차등 규정이 없어지고 이를 일반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28)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조상 의례에서 일반적으로 조 상의 기제사는 4대까지만 모신다. 5대부터는 혼백을 무덤에 묻고 묘사(墓祀) 의 대 상으로만 모시는데,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에 해당하는 조상의 경우 계속하여 신 위를 사당에 모신다. 이 조상은 기제사는 물론 묘사나 시제(時祭)를 지낸다는 점에 서 제주도 조상신 의례와 유사점이 있다. 조상신으로 모시는 조상의 경우, 불천위 와 유사하게 그 집안의 기제사와 명절제사에서 함께 모시는 의례를 행한다. 조상신 본풀이 중 혈연 조상에 대한 본풀이의 유형이 성취 경향을 띠는 것은 불천위제사 (不遷位祭祀)의 개념과 통하며 그 대상이 되는 혈연 조상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 이다.

‘혈연 조상’을 대상으로 하는 조상 숭배 관념은 조상과 자손의 관계성을 전제로 형성된다. 여기서의 조상은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자(死者)’이며, 이에 대하여 고 유한 관계성을 갖는 자손들의 신앙 관념이 조상신 신앙의 가장 근본적 요소로 자 리한다.29)

28) 조성윤, 「정치와 종교: 조선시대의 유교 의례」, 『사회와역사』 53집, 1998; 현승환, 「제주도의 상 례와 무속」, 제9회 한국전통상례문화 전승 및 세계화 방안 국제학술세미나 <도서(島嶼)의 상례 (喪禮)>, (사)나라얼연구소, 2022.

29) ‘조상의 자격’은 최길성이 조상숭배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면서 인용한 Meyer Fortes의 개념이기

(2) 맺은 조상

‘맺은 조상’은 원혼(冤魂)과의 특별한 내력을 통하여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맺으 면서 조상신으로 좌정하는 경우이다. 한민족의 영혼관에서 ‘후손’을 두었는가 아닌 가의 여부는 원혼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 이유는 제사 에 대한 문제이다. 즉 제사를 올리는 ‘후손’이 있어 제사를 받는다면 편안한 죽음 을 맞을 수 있으나, ‘후손’이 없거나 ‘후손’이 있어도 사정이 있어 정성스런 제사를 받지 못한다면 그 영혼의 백·귀가 흩어지거나 소멸되지 못하고 계속 인간의 주위를 맴돌기 때문이다. 즉 죽은 조상의 신체는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남아 자손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한국 무속 신앙의 핵 심적 관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 무속 신앙 또한 이러한 원혼 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다. ‘맺은 조상’의 대부분이 원혼의 내력담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러한 영혼 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맺은 조상’은 혈연 조상 중 후손 없이 미혼의 몸으로 죽은 경우도 있고, 혈연 조 상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으나 끝내 조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여 원혼으로 남겨진 경우도 있다. 토착적 영혼관, 원혼 관념, 제사가 중시되는 관념 등으로 ‘조상으로서 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존재들’에 대하여 위해의 공포감을 갖게 되면서 그들의 위 해를 수호(守護)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 ‘맺은 조상’의 핵심적인 신앙 관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무속 신앙의 관념에서 원혼을 형성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미혼의 죽음 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다. 또한 예기치 못한 죽음, 즉 여러 이유의 사고 에 의한 죽음이 원혼을 형성한다. 제주굿에서는 하나의 제차가 끝날 때마다 이러한 영혼들을 거듭하여 위무(慰撫)한다. 한민족 고유의 영혼관이 제주굿에서 하나의 의 례 형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맺은 조상’이 원혼을 중심으로 내력을 형성하 는 것은 이러한 관념에 근거한다.

원혼이 갖는 여러 속성 중 신령성(神靈性)이 있다. 이는 원혼이 갖는 신성(神性)과

도 하다. “조상은 단순히 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의례 의해 조상이 되며 자손이나 문중으로 인간 관계를 복귀한 것이라고 한정시켰다.”; 최길성, 『한국의 조상숭배』, 예전, 1993, 75~76쪽.

신력(神力)을 말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원혼은 잘 모시면 신으로 좌정하게 되는 근거를 갖는다. ‘맺은 조상’은 그 내력담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자손과의 ‘조상 맺음’을 통하여 ‘조상의 자격을 획득’한다. 조상의 자격을 얻어 집안의 기제사와 명 절 제사에 제향을 받는 존재가 되면서 원혼은 더 이상 위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 고 조상의 번성을 약속하는 조상신으로 좌정하게 되는 것이다.

(3) 태운 조상

제주도의 ‘태운 조상’은 제주도에서 두드러지는 ‘조상 맺음’의 경우로 볼 수 있으 며, 좀더 자연적인 신앙 관념이라 할 수 있다. ‘태우다’는 “어떤 특별한 복(福)이나 기능 또는 재주를 타고 나다.”의 의미이다.30) ‘타고나다’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이 개념이 좀더 운명적이고 신앙적인 관념으로 작동하고 있 다. 조상신 신앙에 있어서 ‘태운 조상’은 분명한 하나의 갈래를 형성한다. 넓은 의 미로 보아 혈연 조상이 아닌 경우를 모두 칭할 수도 있으나, 좀더 선명한 의미는 비인격적 존재를 ‘조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애니미즘을 기원으로 하는 자연 신앙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태운 조상’의 대상신은 자연물의 정령성(精 靈性)과 현몽(現夢)을 통한 인격화(人格化)를 특성으로 갖는다.

<선을리 안판관 제주판관본>으로 보고된 조상신본풀이는 안동땅에서 입도한 삼형 제의 내력담이다.31) 거처를 정하지 못한 삼형제 앞에 ‘귀는 작박이요, 몸은 머들인 부군’이 나타나고 삼형제 모두 가진 것을 내어놓으며 자신에게 들겠는지를 묻는 다.32) 그런데 ‘부군 조상’이 선택한 자손은 삼남(三男)이다. 다음은 처음으로 ‘부군 조상’과 삼남인 ‘족은 아시’가 조상과 자손으로 연을 맺는 장면이다.

족은 아시는 귀약통 남개를 벗으나 좁아서 당초(當初) 들어갈 수가 없더라.

상이(上衣) 입성을 벗어내여, “제에게 테운 조상이로고나. 이레 듭서.” 상이(上

30) 『개정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846쪽.

31) 현용준, 『제주도 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851~853쪽.

32) 이 조상신본풀이는 사신에 대한 내력담이다. 현용준은 이 자료에 대한 각주에서 부군을 ‘富君’으 로 표기하며, ‘뱀을 일컫는 말’로 설명하였다. ‘부군’은 ‘칠성 신앙’과의 연관성, ‘부군당 신앙’과 의 연관성을 두고 아직 분명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후 이어져 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재물 번성의 수호신이라는 의미에서 ‘(칠성)부군’으로 칭하고, ‘富 君’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衣) 입성 안테레 살살 들어오니, 들를 적에는 싀성제(三兄弟)가 어기여차 들렀 주마는 업어진등 말아진등 다.33)

위 장면에서 몇 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태운 조상’의 유형에서 일종의 법칙처럼 드러나는 점이다.

가장 먼저, 인연 맺음의 선택권이 ‘조상’에게 있다는 점이다. 조상과 자손의 인연 이 맺어질 때 늘 ‘조상’이 ‘자손’을 선택한다. ‘자손’이 ‘조상’을 찾아 나서거나 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조상’이 ‘자손’에게 찾아오고, ‘조상’이 ‘자손’을 택한다. 안동에서 입도한 삼형제 모두 갑자기 나타난 ‘부군 조상’에게 자신의 옷이 나 ‘약도리’ 같은 것을 내어 놓는다.34) 그렇지만 ‘부군 조상’이 선택한 것은 셋째 아들이다.

다음으로, ‘조상’의 선택에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운 조상’의 선택 은 인과 관계를 갖거나 특정한 이유가 있지 않다. 특정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손’은 ‘조상’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태운’ 것 외에 다 른 의미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나주기민창조상>, <솥할망>, <선씨일월> 등 비 인격신의 특성을 갖는 조상신은 모두 ‘태운 조상’으로 ‘자손’에게 오고, ‘현몽’이라 는 방식으로 ‘자손’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태운 조상’의 관념은 제주도에 특별히 전승하는 관념이다.

제주도에서 이 관념은 반드시 무속 신앙에만 연관되지 않는다. 현재 ‘제주도 민속 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복신미륵 서자복(西資福)과 관련한 내력담에서도 ‘태 운 조상’의 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35) 서자복 옆에 있는 ‘동자미륵’에 대한 내력이 다. 1970년대 조사 당시 용담동에 살았던 한 신앙민이 자식이 없어 걱정을 하였더 니 꿈에 한 동자불(童子佛)이 나타나 “나를 위하면 자손을 이어주마.”고 한다. 다 음날 밭을 갈다 이 동자미륵을 주워 현재 위치에 놓고 정성을 드렸더니 아들을 낳

33) 현용준, 『제주도 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852쪽. [막내동생은 화약통을 열어 조상을 받 아 들이려 하였지만 좁아서 당초 들어갈 수가 없더라. 웃옷을 벗어 깔고 “저에게 테운 조상이로 구나. 이쪽으로 드십시오.” 웃옷 안으로 살살 들어오니, 들어 올릴 때는 세 형제가 어기여차 힘 을 들여 들었지만, 등에 짊어지고 나니 업은 듯 만 듯 한다.]

34) 약도리 : 노끈 따위로 그물같이 맺어 둘레에 고를 대고 긴 끈을 단 물건(제주).[출처: 표준국어대 사전]

35) 현용준, 「불교민속」 <3절 信仰과 儀式>,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濟州道篇)』, 문화공보부·문화 재관리국, 1974, 171~172쪽.

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태운 조상’으로서의 서사 구조가 분명히 드러나는 불 교 연기 설화라 할 수 있다. 제주 불교가 갖는 민간신앙적 속성을 보여주기도 하 며, 제주도 내에서 ‘태운 조상’이 갖는 보편적 수용을 확인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처럼 ‘태운 조상’은 제주도민에게 ‘원형적’ 사고와도 같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는 ‘태우다’라는 세계관이 신앙 관념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문서에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 연구 (페이지 3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