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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신 신앙의 혼종성

문서에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 연구 (페이지 120-151)

조상신 신앙 전승에 있어 현재 주도 세력은 심방 집단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 하여 앞에서 논의하였다. 신앙민들이 집안의 조상신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있 다는 점이며, 그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 집단이 심방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심 방 집단의 조직 또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조상신 신앙 전승은 그 변화에 많 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아래 인용한 글은 과거 현용준이 직접 경험한 심방 활동에 대한 간략한 보고이다.

조상신 신앙의 전승 주체가 신앙민에서 매인심방으로 변모된 양상은 이미 오래 전 에 시작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상신 신앙뿐 아니라 제주도 무속 신앙의 전 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심방 집단이 주도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용준의 연구 논문에 언급된 1950년대 후반의 심방 활동 양상을 보면 매인심방의 활동에 대하여 추정해 볼 수 있다.

필자가 본 바, 濟洲市 龍潭1洞 男巫 安仕仁의 경우 舊正이 되자 新年祭인

<철가리>를 하러 단골(信仰民家) 집에 나가지 않은 날이 2개월간에 불과 10일 도 안 되었다. 이 한 사람뿐이 아니라, 조금 이름 있는 심방은 거의 이 정도 다.103)

<철갈이>는 본향당의 신과세가 끝난 후부터 각 단골 집안과 매인심방의 조정을 통하여 일정이 정해지고 의례가 행해진다. 정월 중반 정도부터 시작되는 철갈이는 늦어지면 3월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는 현재도 비슷하다 특히 자신 이 맡은 본향당과 동일한 생활권에 거주하는 심방들의 경우, 즉 전통적인 개념의 매인심방들의 경우는 현용준이 설명한 1950년대 상황과 거의 동일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필자는 2022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철갈이를 총 13 회 조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중 한 곳은 코로나 전파 등의 상황으로 인하여 계

103) 현용준, 「濟州島 堂神話考」, 『巫俗神話와 文獻神話』, 1992, 71쪽.

속 연기되다가 5월에 진행한 곳도 있다. 조사 지역은 조천읍 선흘리·함덕리, 구좌 읍 김녕리·행원리, 성산읍 고성리, 남원읍 의귀리·신흥리, 한림읍 월령리 등이다.

의례를 행한 심방은 총 7명이었다. 대부분 문전제와 철갈이를 함께 하는 의례였으 나, 칠성제, 토신제 등과 엮어서 철갈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중 2명 정 도의 심방은 제주도의 전통적인 매인심방의 체계를 유지하며 무업 활동을 이어가 고 있었다. 그리고 세시적 성격을 갖는 무속 의례 활동에서 매인심방 체계를 유지 하는 심방과 아닌 경우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인심방으로 활동하는 심방이 있는 마을의 경우, 본향당에 오는 신앙민들 대부분이 당연히 신년제를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 대부분의 신앙민들의 일정을 심방과 단골들이 함께 조정하 면서 개별 집안의 신년제를 하나하나 치뤄 나가는 양상이다. 오랜 세월 한 지역에 서 함께 생활해온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해석할 수 있다. 매인심방으로 활동하지 않는 심방의 경우는 이와 다른 양상으로, 신년제를 하는 횟수에 있어서도 더 적은 양상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무속 신앙 전승의 기본 구조 중 하나인 매인심방 조직도 붕괴된 지 오래 되었다. 특정 당에 매인심방을 맡은 심방의 경우도 그 당 신앙권과 동일한 생활권 안에 거주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필자가 2021년부터 2022년까 지 진행한 20명의 심방 개별 조사에서 거주 지역과 당 맨 지역이 동일한 심방은 3 명뿐이었다. 좀더 느슨한 기준으로 심방의 출신지나 인근 지역 거주지까지를 포함 했을 때 5명이 더해져 총 8명 정도가 전통적 의미의 매인심방으로서의 역할을 하 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104) 필자가 개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심방들이 대부 분 현재 본향당제나 어촌계 의례 등을 맡아 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조사 대상을 늘린다고 하여도 현재 정리한 매인심방의 비중이 더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 단된다. 매인심방이 없는 마을의 경우, 개인 의례를 당연히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 의 매인심방에게 의뢰하였던 습속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주굿을 하지 않는 무속인이나, 불교승이 이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토신제나 조왕제의 이름으로, 독경을 읽어가며 의례를 올리는 방식으로 양식 또한 변화되고 있다.

104) 심방의 거주지와 당 맨 지역이 동일한 경우는 구좌읍 김녕리, 평대리, 남원읍 의귀리이다. 심방 의 출생지나 인근 거주 지역으로 확장하였을 경우는 구좌읍 월정리, 하도리, 남원읍 신흥리, 한 남리, 표선면 가시리, 토산리 등이 포함된다.

개별 집안의 단골이 더 이상 집안의 조상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 조상신 신앙 전승에 대한 심방 집단이 갖는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 다. 앞에서 조상신 의례에 대한 논의 중 <돗제>의 사례를 인용하였다. 그 자료 내 용 중, 심방이 조상신을 거느려 가다가 본주의 시어머니 성씨를 묻는 대목이 나온 다. 본주의 시어머니 또한 동일 지역 출신지였기 때문에 지역과 성씨를 확인하면서

‘떨어지는’ 조상신이 없도록 확인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105)

이제 거의 와해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매인심방 제도는 조상신 신앙에도 영향을 끼 치고 있다. 개별 집안의 조상신이 갖는 특정성에 대한 혼란 양상이다. 각 성씨별로 대표적인 조상신본풀이가 있다. 예를 들어 순흥 안씨 집안의 ‘안판관’, 군위 오씨 집안의 ‘오설룡아기씨’, 평대리 부씨 집안의 ‘부대각’, 와산리 양씨 집안의 ‘양씨 일 월’ 등이 그렇다. 그런데 특정 성씨라고 해서 그 성씨 집안을 대표하는 조상신을 모두 모시는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동이풀이>의 경우는 광산 김 씨 집안에 전승하는 조상신 의례이다. 그런데 광산 김씨 집안 중 송당계와 명도암 계가 다르다. 또한 ‘고전적’의 자손인 ‘고씨 집안’에서는 본풀이는 동일한 본풀이를 전승하고 있지만 의례로서 <동이풀이>는 전승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조상신 내력 의 세세한 차이를 아는 심방은 본주 집안의 성씨 내력을 좀더 세분화하여 파악해 서 굿의 구조를 세워간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조상신 전승의 혼성적 양상을 일으 키게 된다.

무속 신앙 전승의 근간인 단골 제도 약화와 매인심방 제도 붕괴 등은 신앙 양상 을 축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혼성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성 성은 무속 신앙 내에서 조상신 신앙의 배타적 고유성을 해소시키는 것뿐 아니라 무속 신앙을 넘어서는 혼성성으로 확산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5) 떨어지는: 청해야 할 신을 청하지 않는 경우.

제5장 결론

본고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제주도의 조상신 신앙이 제주도의 ‘태우다’라는 고유한 가치관을 근저로 하여 형성된 특별한 신앙 갈래임을 밝혔다. 또한 그간 토 착적 신앙이라 인식되어 왔던 당 신앙과 조상신 신앙이 제주도의 고유한 ‘조상’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며 발생한 것으로 유사한 신앙 발생 경로를 밟아온 것에 대하 여 살펴 보았다. 이는 본풀이에 드러난 ‘조상’ 관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본풀이 서 사 구조, 신앙민의 신앙 관념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살피는 과정 이었다.

본고가 가장 주목한 점은 제주도 무속 신앙에 있어서 ‘조상신 신앙’이 갖는 근원 성이다. ‘태운 조상’, ‘혈연 조상’, ‘맺은 조상’으로 구분한 조상 관념의 유형이 조 상신 신앙의 본풀이나 조상신 신앙 관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 였다. 이러한 바탕 속에서 제주도 무속 신앙의 전체를 다시 조망할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한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 방향의 시작점을 제안하는 일이 본고가 가장 목 적하는 바였으며, 이 연구가 그 방향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자 하였다.

그간 제주도 무속 신앙에 대한 연구는 일반신본풀이 중심의 성과를 가장 먼저 축 적해 왔으며, 이제 당 신앙으로 연구의 축이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 나 그간의 연구가 제주도 무속 신앙을 개별의 영역으로 분절시켜 영역별 연구로 이루어져 왔던 한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한계성을 확인하고 조상 신 신앙에 대한 관점을 세우면서 대한 조상신 신앙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논의가 당 신앙과 제주도 무속 신앙 전체의 근원적 논의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도 조상신 신앙의 요체가 되는 ‘조상’에 대한 관념은 개 인 혹은 가정 차원의 신앙 관념으로 축소될 것이 아니며, 당 신앙과 당 본풀이에 대한 연구에서 공동의 논의 과제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관점 속에서 조상신본풀이와 당신본풀이를 새로운 관점으로 구분 하는 시도를 하였다. 조상신 신앙과 당 신앙 사이에 공통의 ‘조상’ 관념으로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었다. 본고에서 시도하였던 당 본풀이에 대한 새로

운 구분은 좀더 다듬고 내적 연결성을 더욱 확보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주 도 무속 신앙을 조망하는데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상신 신앙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반드시 짚어야 할 과제가 ‘일월’,

‘군웅’ 등에 대한 개념 정의이다. ‘조상’ 관념과 이 개념들의 맥락을 밝혀야 신앙 관념과 의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최대한 그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 였다. 이는 ‘군웅본판’과 개별 집안의 조상신본풀이가 갖는 연결성을 해석하는 근 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상신 신앙에 대한 연구가 조상신본풀이 중심의 연구에서 의례와 신앙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이 기도 하다.

본고는 ‘일월’, ‘군웅’, ‘군웅본판’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이

‘혈연 조상’에 대한 조상 신앙 관념으로 시작된 관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 한 차원에서 제주도의 특별한 신앙 관념을 형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근원이 한 민족이 공유하는 보편적 조상 신앙 관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 다. 또한 이 과정은 이후의 연구로 이어져야 하는 과제를 남기기도 하였다. 제주도 조상신 의례에서 대표적인 석살림의 <덕담>과 <지두셔>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이 다. 또한 다른 지역의 조상 신앙과 연관된 고유 제차와 제주도 조상 의례가 갖는 연관성에 대한 논의도 과제로 남겨졌다. 이 논의는 의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겠지만 결국은 제주도의 ‘조상신 신앙’이 갖는 보편적인 ‘조상신앙’의 연결성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제주도 조상신 의례의 기본적인 특성은 고정적 제차가 없다는 점이다. 조상신 의 례의 확장을 위하여 수시성과 유동성을 보장 받고자 하는 의례 형식으로 인시되어 왔다. 그런데 ‘군웅본판’에서 보여지는 ‘혈연 조상’ 유형의 조상 관념과 특별한 조 상 내력담을 갖지 않아도 모든 집안에서 거느려지는 ‘교술 무가’ 형식의 조상신본 풀이를 보았을 때 조상신 의례의 고정적 제차 가능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다. 이 또한 다른 지역의 조상 신앙 제차와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밝혀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본고에서 조상신 의례와 관련하여 정리할 수 있는 성과는 조상신 의례에 대한 본 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본고는 조상신 의례를 제주굿 의례가 갖는 기 본 요소를 적용하여 풀어보고자 하였다. 말로 이루어지는 ‘말명’이 중심이 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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