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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조상신’

문서에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 연구 (페이지 44-47)

제주도의 ‘조상신’은 다면적인 ‘조상’의 관념을 반영하여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신앙 형성의 적층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혈연과 비혈연, 비인격적인 자연신앙적 요소로부터 인격적인 실재 역사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다층 적이고 광범위한 관념을 한 층씩 쌓아올리며 ‘살아있는 신앙’으로 전승해 온 것이 다.

‘태운 조상’이라는 관념이 제주도 조상신 신앙을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원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맺은 조상’을 이루는 ‘원혼’ 관념은 현재 전승하는 조상신 신앙의 중심적인 위치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도의 조상신 신앙은 전형적인

’조상 맺음‘을 보여주는 신앙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앙 관념은 한반 도의 무속 신앙과 공유되는 관념이라 할 수 있다.

‘원혼’은 정상적으로 죽은 영혼보다 원한이 깊기 때문에 ‘해원(解冤)’이 쉽지 않은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귀신이 되어서 공중에 떠돌면서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무속 신앙은 이 관념을 바탕으로 하여 ’원혼‘의 위해를 막고자 조상이 원혼 이 되지 않을 길을 택하였다. 자손이 없어 아무런 제향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조상 맺음’을 통하여 안정적으로 제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무속 신앙 관념은 상 당히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으며, 제주도 조상신 의례 양상과 유사성을 보이는 자료 를 확인할 수 있다. 장주근은 한국 민간신앙에서 전승하던 조상 숭배를 다룬 논문

에서 신라 김씨 왕가의 조상신인 김알지신화의 황금궤와 ‘조상단지’의 유사성에 대 하여 논의한 바 있다.48) 여기서 장주근은 ‘안방’이라는 좌정처의 동일함으로 인한 신앙 관념의 혼란을 지적하면서, 가신신앙으로서의 산신(産神)신앙과 구별되는 조 상신 신앙이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제기하였다. 이 내용에 근거하면 좌정처의 유사 성, 명칭-제석오가리, 조상단지, 시준단지 등-의 유사성, 직능의 동일함 등으로 제 주도의 조상신 신앙의 근원에 대한 단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영남 골맥이 동제신의 조령적 성격에 대하여 논의하였는데, 현용준 이 당신의 조령성에 대한 논의에서 언급하였던 성씨(姓氏)가 골맥이신에게도 동일 하게 붙어 있는 양상을 제시하면서 시조신적 성격에 대하여 제기하고 있다.

현용준이 당신의 조령성에 대하여 밝혔던 것처럼 제주도 무속 신앙은 광범위한 조상 관념을 바탕으로 전승되어 왔다. 집안 조상에 대한 관념은 마을 공동체 신앙 으로 확장된다. 이는 씨족 공동체로 형성되었던 자연마을 설촌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향당굿을 벌일 때 본향신을 청하는 제차인 ‘본향듦’의 순서가 되면 당굿에 참석한 신앙민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본향신을 맞이하는 마을들이 있다. 본향신을 조상으로서 대우하는 관행 중 하나이다.

신도 인간과 같이 그 좌정처를 찾아서 산중을 헤매다가 맨 먼저 만난 인간에 게 길을 묻고 음식을 요구하고는 그 인간을 상단골로 정하곤 한다. 전도적으로 많은 「당신본풀이」가 그 속에서 주민의 성까지 지명하면서 신이 상, 중, 하단 골을 결정하고 있는 것을 심방들이 구송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신을 「조상」이라 부르고, 민중들은 「자손」이라고 구송하고 있다. 이 성씨까지 규정된 씨족적인 신들이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있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씨족 혈연공동체의 신이 마을 지연공동체의 신으로 이행해가고 있는 느낌이며, 지금은 그 양쪽을 겸하고 있는 느낌이다.49)

장주근이 당 신앙과 당신에 대한 관념을 ‘조상 맺음’, 혹은 ‘자손 맺음’으로 설명 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설명은 제주도의 대표적 공동체 신앙인 본향당 신앙의

48) 장주근, 「한국 민간신앙의 조상숭배-유교 제례 이외의 전승자료에 대하여」, 『한국문화인류학』 15 권0호, 1983, 63~80쪽.

49) 장주근,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역락, 2001, 26쪽.

기본적인 얼개를 ‘조상신앙’으로 이해하게 한다. 정리하면 ‘신과 인간의 조우-상단 골의 탄생-조상과 자손으로의 관계 설정’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조상신 신앙 구조 와 많이 닮아 있다.

공동체 의례로서 제주도에 전승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것으로 마을마다 행해지는

‘포제(酺祭)’가 있다. 마을의 ‘토신(土神)’이나 ‘용신(龍神)’을 주로 대상으로 하며 유교식 제례에 맞춰 제관과 제일, 제법을 구성한다. 제주도에는 현재 새해를 시작 하는 공동체 의례로서 남성 의례의 의미를 갖는 유교식 포제와 여성 의례의 의미 를 갖는 무속식 본향당굿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두 의례에 있어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본향당제가 ‘조상신앙’의 맥락 에서 이루어진다면, 포제에서는 그러한 관념을 수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포제 를 하기 앞서 유교식의 ‘본향당제’를 치르는 마을이 많다. 이는 마을의 큰 행사를 앞두고 마을의 조상인 ‘본향당신’에게 먼저 가서 고(告)하는 의미를 갖는다. ‘본향 당굿’이 마을의 대표적인 공동체 의례였던 전승이 남아 있는 흔적이기도 하지만, 좀더 근원적으로는 ‘조상’으로서의 ‘본향당신’에 대한 관념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양상이다.

집안의 수호신으로 정의되고 있는 제주도 조상신 신앙은 비단 한 집안의 신앙으 로 국한되는 협의의 개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제주도 여러 신앙 갈래에 공유 되고 있는 뿌리 깊은 ‘조상신앙’의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 할 수 있다. 제주도 ‘조상신’이 갖는 다층성과 유동성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 할 때 당 신앙이나 다른 종교와의 교섭 양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 다. 무엇보다도 신앙 전승에 있어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이 갖는 확장성의 구조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상신 신앙은 끊임 없이 새로운 조상신을 탄생시킨다. 이는 조상 관념의 다면성에서 근원한다. 일반신과 당신은 신의 이름, 내력, 직능을 새로 이 만들어낼 수 없는 고착적인 특성을 갖는다. 개별 신마다 그 신의 위계에 걸맞 는 ‘젯리’와 ‘굿리’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이러한 위계의 개별 신은 그 내재 적 특성으로 인하여 신앙 양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최대한의 전승 과제가 된 다. 최대한의 과제를 지켜내지 못하면 신앙은 축소되고 사멸되는 길을 가야 하는 본성을 갖는다. 그러나 조상신 신앙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조상신 신앙은 신앙민 의 내력에 따라 스스로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구조로 형성되어 왔다. 특정 신앙민의

삶의 내력이 조상신 신앙 내력에 그대로 반영되어 새로운 조상신과 새로운 신앙 내력을 형성한다. 전승 양상의 차원에서 볼 때 조상신 신앙은 제주도 무속 신앙의 심지와 같은 역할로 자리잡고 있다.

문서에서 제주도 조상신 신앙 연구 (페이지 4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