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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랑시에르의 역사적 진실성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39-46)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역사학은 무언가를 “너무 늦은 시기에 위치시키는 잘못”71) 을 뜻하는 개념도 제시해야 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실제로 19세기에 편찬된 사 전들에는 아나크로니즘의 맞은편에 ‘파라-크로니즘(para-chronisme)’이란 용어가 존재했다. 심지어 역사 사전 편찬자들은 유사한 오류들을 포괄하는 ‘메타-크로니즘 (meta-chronism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개념 들 속에서 아나크로니즘 개념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랑시에르는 아나크로니즘 개념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이는 접두사 아나(ana)가 갖는 이중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접두사는 위로 움직이는 동작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로부터 ‘아나크로니즘은 단순히 연속의 문제에 국한된 작용이 아니기 때문에 아나크로니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라는 가설이 도출된다. 실제 존재했던 것들의 순서에 관해서 생각해보자. 존재들은 수평적 연속성 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층적으로 분할된 수직적 관계 안에 배치된다. 따라서 아나크 로니즘은 ‘우리가 분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ce que l'on reçoit en partage)이라는 의미에서 시기의 분할에 관한 문제이다. 아나크로니즘에 관한 질문은 분할 속에서 시기가 결정적으로 지니는 것에 해당된다. 어떠한 시기를 그 시기의 위쪽에 위치한 시기, 흔히 우리가 영원이라 일컫는 시기로 수직적 순서에 따라 연결 짓는 과정 속 에서 말이다. [...] 아나크로니즘은 단순히 한 날짜에서 다른 날짜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아나크로니즘은 해당 날짜들이 속한 시기에서 ‘그 날짜들이 속하지 않는 시기’(ce qui n'est pas le temps des dates)로 넘어가는 것이다.72)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할 대목은 아나크로니즘이 단순히 ‘연속의 문제에 국한된 작용’이 아니라 ‘해당 날짜들이 속한 시기에서 그 날짜들이 속하지 않는 시기로 넘 어가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이 문장들은 역사 서술에서 ‘아나크로니즘’ 개념을 어 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아나크로니즘’은 연속된

‘날짜’들의 뒤얽힘을 문제 삼는 개념이 아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섞여 있는 날짜들

71) Jacques Rancière, "Le concept d'anachronisme et la vérité de l'historien", L'Inactuel, n.6, 1996, p. 54.

72) Ibid., p. 54.

을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연속된 순서대로 재배열하는 방식으로는 아나크로니즘 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역사가 다른 층위와 다른 계열(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다. 아나크로니즘이 해당 날짜들이 ‘속한 시기’에서 그 날짜들이 ‘속하지 않는 시 기’로 넘어간다는 문장은 이 개념을 시기 구분에 한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 야 한다.

랑시에르의 관점에서 ‘아나크로니즘’은 단일하고 연속된 시간 또는 날짜들의 연 속인 ‘수평적’ 개념이라기보다 또 다른 시기의 분할을 함의하는 ‘수직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하나의 시간적 연속성이 아닌 다중의 시간성과 복수의 시기/시대들을 상정한다.73) 랑시에르는 신화시대와 실제로 증명된 특정한 시대 간의 ‘중첩’이 가 능하다고 본다.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운 신화시대의 이야기와 기독교 연대기가 시 작된 이후의 역사적 중첩에 대한 문제는 ‘아나크로니즘’ 개념으로 정당화할 수 있 다. 이는 역사학에서 ‘아나크로니즘’이 역사가의 진실성이라는 의무를 규정하기에 앞서 오랫동안 시나 소설의 창작 권리를 먼저 규정해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역사적 이야기를 구성할 때 이루어진 시적 방식은 ‘아나크로니즘’ 개념 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을 설명해준다. 여기서 ‘시적’(poétique)이라는 말은 고전 수사학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플롯의 구성과 배치를 ‘인벤티오(inventi o)’, ‘디스포시티오(dispositio)’, ‘엘로쿠티오(elocutio)’라는 세 가지 주요한 수사학적 기술74)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 방법을 말한다.

73) 랑시에르는 서구의 역사가 적어도 세 가지의 연대기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정의된 기독교 연대기, 로마 건국 이래 사용된 로마 연대기, 올림피아드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연대기라는 주요 연대기 사이에서 아나크로니즘 개념은 이 시기들 간의 전환과 이동에 관련된 다. 아나크로니즘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시는 고전시대 베르길리우스가 쓴 디도와 아에네이스의 사 랑 이야기다. 역사에 반하는 잘못의 전형인 아나크로니즘이 실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적으로 가공의 인물인 두 인물에서 나타난다. 이렇듯 다른 시대의 인물이 만나는 것은 아나크로니즘이 역사 가의 의무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문학의 창작자의 권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베르길리우 스의 과오는 이후 시대(카르타고)를 이전의 시대(트로이 전쟁) 앞에 놓은 것이 아니라, 별개인 두 개 의 다른 체제와 권리에 속한 두 시대를 이야기를 위해 함께 중첩시킨 것이다. Jacques Rancière,

"Le concept d'anachronisme et la vérité de l'historien", L'Inactuel, n.6, 1996, p. 54 참조.

74) 일반적으로 고대 수사학은 수사적 연설의 생산 단계 또는 방법을 다섯 가지로 한정한다. 나머지 기 억술과 발표를 제외한 기술 가운데, 첫째는 ‘논거 착상술(인벤티오, inventio)’이다. 논거 착상술에서 연설가는 주제를 파악한다. 그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자료들) 가운데 윤곽을 그려 줄 가설을 세우 고, 논쟁 상황을 조사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논거와 자료를 정리한다. 두 번째 단계는 ‘논거 배열술 (디스포지티오, dispositio)’를 말한다. 이 단계는 특정한 패턴에 따라 재료와 논거들은 배열하는 것이 다. 연설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의 목적에 맞는 논거 배열은 매우 중요하고 그에 대한 세부

그런데 랑시에르는 수사학적 방법들로 역사를 재배치하는 시적 방식을 소개하면 서, 동시에 전통적인 역사학이 규정한 ‘아나크로니즘’ 개념을 폐기하자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아나크로니즘’ 개념이 전통적인 역사학이 정초한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나크로니즘’ 대신에 ‘아나크로니’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다음의 대목에서 랑시에르의 의도를 파악해보자.

아나크로니즘은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시간교란, 즉 아나크로니(anachroni e)라고 부를 수 있는 연결방법들은 존재한다. 이 연결방법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게 하면서, 통일된 동시대성에서 벗어나고, 그 시대 ‘그 자체’가 갖는 동일한 정체성 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의미를 순환하게 하는 사건들, 관념들, 의미들을 뜻한 다. 아나크로니는 ‘자신들의(leur)’ 시대로부터 벗어난 단어, 사건, 의미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발견되지 않은 시간적 방향 전환을 결정지을 능력과 비 약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 한 시간성의 행렬을 다른 행렬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능력 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 전환, 비약, 연결을 통해 역사를 ‘만드는(faire)’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적 행렬의 다양성, 그리고 ‘동일한’ 시대 안에 포함된 시대가 갖는 의미의 다양성은 역사적 행동을 위한 조건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역사학의 출발점일 것이다.75)

이 대목에서 랑시에르는 ‘시대착오’라는 ‘아나크로니즘’ 개념을 ‘아나크로니’라는 단어로 대체하려 한다. ‘아나크로니’라는 단어를 통해 랑시에르는 역사가의 직능을 다시금 고찰하도록 이끈다. 이 개념은 본래의 시대로부터 벗어난 단어, 사건, 의미 를 나타내면서 ‘방향 전환’, ‘비약’, ‘연결’을 통해 이전의 역사와 다른 역사를 만들 게 하는 ‘힘’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는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면서 시간과 시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 랑시에르는 ‘아나크로니’ 개념을

적 방법들도 개발되었다. 세 번째로, ‘문체론’과 ‘문채론’이 있다. 이 분야는 다양한 수사학적 기법들 (은유법, 환유법, 생략법, 반복법, 대구법, 교차 배열법 등)을 사용해 자신의 글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게르트 위딩, 박성철 역, 고전수사학, 동문선, 2003. pp. 71-90 참조.

75) 랑시에르의 아나크로니는 ‘시간교란’으로 번역하였다. 문학적인 용어인 시간교란은 신화나 종교에서 연대기를 뒤섞거나 연대기에 위배되는 서사를 제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Jacques Rancière, "Le concept d'anachronisme et la vérité de l'historien", L'Inactuel, n.6, 1996, pp. 67-68.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역사가를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역사가는 ‘창작자 의 수사학적 특권’을 활용하며 역사적 시간을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맡는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아나크로니즘’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듬어지고 있 다. 페브르의 ‘시대착오’, 블로크의 ‘역진적 방법’과 같은 시간의 방향 전환, 브로델 이 제시한 시간 구조와 장기지속은 아나크로니즘 개념에 대한 초기 관념을 보여주 었다. 아나크로니즘 개념의 부분적 수용은 벤느를 통해 드러났다. 벤느의 ‘구성적 상상력’ 개념은 허구적이고 다면적인 역사 서술로의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20세기 말에 제출된 랑시에르의 연구는 ‘역사’ 개념에 대한 인식이 변해 감에 따라 ‘아나크로니즘’ 개념이 폐기되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들이 보 여준 연구는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아나크로니즘을 ‘예찬’76)할 수 있는 이론적 환경 을 조성해 주었다. 그들은 ‘아나크로니즘’ 개념의 효용성을 인정하면서 이를 역사 연구 방법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77)

20세기 이후의 역사가들은 제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아나크로니즘’을 규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논지는 아나크로니즘과 역사 서술의 긴밀한 연관성을 드러내 주었 다. 이들은 전통적인 연대기, 진리, 진보의 관념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허구적 시간, 역사의 다양한 시간성, 시간의 착종과 시간의 불연속성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전 개시켰다. 그와 같은 아나크로니즘 개념에 대한 역사가들의 검토는 일반 역사 영 역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사에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III 장에서 제시될 미술사가들 은 당대의 역사학과 사상적으로 공유되어 있었으며, 그들 스스로 ‘역사’ 개념에 대 한 비판적인 논지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20세기 프랑스 미술사가들 이 고찰한 미술사의 시간성과 ‘아나크로니즘’ 개념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76) Nicole Loraux, Éloge de l'anachronisme en histoire, Le Genre Humain, Seuil, juin 1993, pp.

23-39.

77) François Dosse, De l'usage raisonné de l'anachronisme, Clio, Histoire, Femmes et Sociétés

& Espaces Temps 87-88/2004, pp. 156-171 참조.

Ⅲ. 20세기 프랑스 미술사학과

다니엘 아라스의 아나크로니즘 개념

아날학파와 그 이후의 역사가들이 보여준 역사적 시간성과 ‘아나크로니즘’ 개념 에 대한 이해는 당대의 미술사가들에게서도 유사하게 드러났다. 일례로, 지그프리 드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자신의 저서인 역사에서, 미술사가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과 그의 제자인 조르주 쿠블러(George Kubler)를 소개한다.

크라카우어는 그들이 비균질적이며 공시적인 역사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쿠블러는 시간의 모양들-사물의 역사에 대하여(The Shapes of Time : Remarks on the History of Things)에서 시대와 양식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가들이 연대를 따지기보다는 “다양한 시간의 덩어 리”78)를 발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역사가들과 역사철학자들이 과학적 역사를 강 조하며 ‘아나크로니즘’을 부정하는 동안, 미술사가들은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가 갖 는 시간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개념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장에서 소개될 미술사가들은 미술사의 ‘시간성’을 사유했다. 초 기 아날학파와 학문적으로 결연을 맺고 있었던 미술사가들은 미술사에 시간성을 다원화했다.79) 또한 20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미술사가들은 미술작품에 대한 자신 78) 쿠블러가 말하는 ‘덩어리진 시간들(shaped times)’은 예술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배열체이 다. 각각의 배열체는 그 고유한 모양을 갖고 있으며, 배열체의 모양에 따라 그 배열체가 그리는 시간 의 곡선도 달라진다. 따라서 시간순으로는 동시적인 예술작품들이라고 해도 모두 저마다의 시간 곡선 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동시대에 속하지만 연령(age)은 전혀 다를 수 있 다.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 김정아 역, 역사, 2012, pp. 155-180 참조.

79)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아날 학파와 피에르 프랑카스텔의 학술적 친밀성을 상기시켜볼 필요가 있다.

페브르와 브로델이 회장과 학장으로 활동했던 고등학술연구원 제 6부(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 VIᵉ Section)에서 프랑카스텔은 미술사가로 연구와 강의를 수행했다. 그는 페브르와 브로델이 출간하는 잡지에 다수 기고했으며, 브로델은 그의 연구를 높이 샀다. 본 연구에서도 언급된 브로델의

「역사학과 사회과학들 : 장기지속」에서 그의 장기 지속 개념을 예시하는 대표 연구서로 페브르의 라 블레와 16세기 무신앙 문제와 프랑카스텔의 미술과 사회를 꼽는다. 이처럼 20세기 중반의 역사학 과 미술사학을 자의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역사학과, 철학, 심리학, 문학이론에 영향을 받은 정도가 모두 다를 것이다. 프랑카스텔에 대한 브로델의 언급은 Fernand Braudel, "Histoire et sciences sociales : la Longue duré"e, Ann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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