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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세 이미지

문서에서 인디언의 생태철학에 대한 고찰 (페이지 12-22)

1.야만인으로서 인디언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이 인디언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떤 때는 인디언을 짐승이 나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바라보았는가 하면,문명에 때 묻지 않은 에덴동산 의 아담과 하와처럼 놀라움과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았다.11)이를테면 데 오비에 도(G.F.deOviedo)는 “인디언은 비록 이성적이고 또 신성한 노아의 방주 후손이 기는 하나,우상 숭배,희생제의,극악무도한 의식을 행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금수와 같다”12)고 평하고 있다.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위해 도착한 유럽인에게 그 곳은 황량한 곳이었다.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브래드포드(W.Bradford)는 그 곳을 ‘음 험하고 삭막한 황야’라고 표현하였고 위글즈워즈(M.Wigglesworth)는 그때의 느낌 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버려진 황량한 황야

그곳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다만 지옥의 마귀들과 야만인들이 악마를 경배하고 있었다.13)

1940년대 인류학자 홀름버그(A.Holmberg)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베니 지역의 시리오노족 사회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인디언들의 삶을 조사했다.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오노족은 예술,종교,문화가 전무한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 간의 전형”14)이었다고 적었다.그러나 그는 시리오노족의 예술,영적인 종교,자연

11)김욱동,「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태의식」, 미국학논집 35․1,한국아메리카학회,2003봄,35쪽.

12)엔리케 두셀, 타자의 은폐 ,박병규 역,그린비출판사,2011,49쪽.

13)J.R.데자르뎅, 환경윤리 ,김명식 역,자작나무,1999,255쪽에서 재인용.

14)찰스 만, 인디언 ,전지나 역,오래된미래,2005,17쪽.

친화적 문화의 역사를 연구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고,450년 전부터 아메리카에 불 어 닥친 허리케인이 지나간 황량한 흔적을 보고 돌아온 것이다.그는 인디언의 영 적이고 자연친화적인 고상한 모습은 보지 못하고 백인과 정부군에 쫓기어 몇 명 남 지 않은 시리오노족을 만나 그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갓 건너온 청교도들에게 식량과 종자를 나누어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그러나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은 인디언의 비 축된 식량과 땅을 탐내기 시작했다.미국인이 흔히 내세우는 개척정신,즉 프런티어 정신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 는 모험과 용기 그리고 인내를 의미하는 진취적인 이념이었지만 인디언의 입장에서 는 땅과 목숨을 빼앗는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인디언이 유럽인보다 자연과 환경을 더 많이 파괴해 왔다 고 지적하기도 한다.오지브와족 인디언을 연구한 한 학자는 “옛날 인디언은 짐승 을 멸종하다시피 했고,최근에는 인디언 거주지역에 맥주캔이나 고장난 자동차 쓰 레기를 여기저기 버린다”15)고 비판하고,인디언과 가깝게 지냈던 상인,선교사,개 척자들이 남긴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인디언은 불을 질러 짐승을 몰살시키거나 짐승을 절벽 아래로 몰아붙여 살해했고,잡은 짐승은 필요한 부위만 취하고 나머지 는 그대로 버린다고16)비판한다.그리고 또 다른 이는 “인디언은 본능적으로 자연 을 파괴하는 성격이 있다.그들은 ‘목동의 눈’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백정의 눈’으로 보았다”17)고 비난하기도 한다.

한편 인디언의 무지는 짐승들을 대량학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짐승을 통 한 전염병이 번지면서 인디언 샤만들조차 손을 쓸 수 없게 되자,인디언들 사이에 짐승들이 인간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이른바 ‘음모설’까지 나돌았는데,이는 전적으 로 과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리고 유럽에서 모피가 인기를 끌게 되 면서 인디언은 또 다시 짐승들을 대량학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몇몇 짐승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18)

15)김욱동,「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태의식」, 미국학논집 35․1,한국아메리카학회,2003봄,38쪽.

16)위의 논문,39쪽에서 재인용.

17)같은 곳 참조.

18)같은 곳 참조.

따라서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인디언이 생명외경사상을 가진 것도 결국 무지의 소치라 할 수도 있다.대표적으로 허치슨(W.H.Hutchinson)은 그러한 입장을 취한 다.“인디언이 자연에 대하여 경외감을 느꼈던 것은 자연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 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자연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만큼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유럽인과 비교해서 유난히 의식과 제의 그리고 금기가 발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연을 달래어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였다.”19)그 관점에 따르면 자연에 대하여 경외감을 느꼈던 것은 자연에 대한 합리 적 이해에 이르지 못한 단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유럽인은 유순한 인디언을 나태하고 미개한 종족이라 폄하 하며 자신들의 우월한 생활방식을 강요하고 그들의 땅을 요구했다.군대를 동원하 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디언 부족을 학살했고 사기와 뇌물로 그들을 분열시키고 수많은 조약을 체결했다 파기하면서 인디언의 땅을 차지했다.그들의 싸움은 15세 기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를테면 1870년대에 북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의 성지인 ‘파하 사파’,즉 검은 언 덕(Blackhill)에서 금이 발견되자 백인들은 그 지역을 손에 넣으려고 하였다.20)인디 언에게 있어 세계의 중심지이고,위대한 영과 만나 투시력을 얻는 성스러운 곳으로 수우족의 정신적 고향이던 검은 언덕에서 백인과 인디언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결국 인디언들은 정신적인 고향을 상실하게 되었다.한편 몽테뉴는 인디 언을 야만인으로 부르는 편견에 반대했다.

교통수단도 없고,문자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숫자에 대한 이해도 없다.경찰이나 정치 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으며,부와 가난의 차별도 없다.계약도 없고,왕위 계승도 없으며, 경계선도 없다.직업도 없이 한가하며,옷도 걸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다.땅을 갈지도 않고,술도 마시지 않는다.그들 사회에는 거짓,허위,배신,탐욕,시기,욕설을 의미하 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은 매우 쾌적하고 온화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내가 알고 있는 한 그들 중에는 병든 육체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그들은 하루 종일 춤추면서 보낸다.젊은이들은 활과 화살을 둘러메고 들짐승을 사냥하러 나가

19)김욱동,「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태의식」, 미국학논집 ,35․1,한국아메리카학회,2003봄,40쪽 재인용.

20)마리 산도스, 크레이지 호스 ,김이숙 옮김,휴머니스트,2003,12쪽.

고,여인들은 나름대로 바쁘다.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근거해 그들을 야만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야만성으로 볼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들을 훨씬 능가한다.21)

근대 이후의 과학기술문명의 측면에서 볼 때 인디언들은 미개한 야만인처럼 비칠 수 있다.그러나 자연과 생태계파괴를 가져온 과학기술,물질적 욕망을 부추기는 경 제체제,개인주의를 강화하는 정치체제 등은 환경문제와 공동체 파괴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오히려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는 인디언의 문화도 유럽문명과는 또 다른 문화로 볼 수도 있다.

2.문화인으로서 인디언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하고,더 나아가 세계와 우주의 모 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반면에 인디언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 이며 우주적 자연 질서와 조화로운 관계에 있음을 알고 있다.현대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인간이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온전한 삶은 자 연과 상호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디언의 삶을 연구한 니콜(C.A.Nicole)은 “전체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배출해 왔던 문명을 우리가 파괴한 것은 아닌가 두렵다”22)고 말하고,휴 이트(E.L.Hewett)는 인디언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인디언은 우리들 문명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었다.단지 그들은 철을 사용하는데 능숙 하지 못했을 뿐이다.미학적 측면,윤리적 측면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인디언은 정복 자들보다 앞서 있었다.인디언이 유럽의 정부 형태와는 전혀 다르면서 훨씬 효율적인 조직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일이다.종족의 복지가 그들 조직의 최고 목적이었다.23)

21)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김영사,2003,254쪽 재인용.

22)어니스트 톰슨 시튼 외, 인디언.영혼의 노래 ,정영서 옮김,책과삶,2013,90쪽에서 재인용.

23)위의 책,89쪽 재인용.

아메리카 원주민을 처음 본 유럽인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콜럼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강인한 육체는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강인한 육체는 어느 시대에나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는 전인교육을 위해 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인디언은 다양한 언어,정치․경제제도,문화를 가지고 있었고,그러한 다양성 속 에서 인디언은 여러 부족 간에 긴밀히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그들은

인디언은 다양한 언어,정치․경제제도,문화를 가지고 있었고,그러한 다양성 속 에서 인디언은 여러 부족 간에 긴밀히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그들은

문서에서 인디언의 생태철학에 대한 고찰 (페이지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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